월요일 아침에 학교 오다가 1학년 아이를 만났다. 자전거 타고 쓱 지나쳤는데 아이가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안녕! 00아~” 하고 지나갔는데 계속 뛰는 소리가 들렸다. 자전거를 세웠다. 왜 혼자 가는지 묻고는 “자전거 뒤에 탈래?” 했다. 좋아한다. 복잡한 가정사 때문에 아침에 아이가 혼자 일어났다. 1학년이 혼자 옷 입고 언덕길을 내려와서 혼자 학교로 걸어갔다. (도로에서 멀진 않지만, 언덕이 높아 가스 배달이 안 되는 집에 산다.)
평소에는 할머니가 데려다줬는데 오늘은 혼자다. 처음으로 혼자 학교에 가다가 나를 보고 안심이 되었나 보다. 아이를 태우고 학교에 왔더니 아이가 친구들에게 자랑했다. 1학년 선생님이 아이들이 엄청 부러워한다고 말씀하셔서 오늘 태워줬다. 한 명씩 뒷자리에 앉히고, 발을 요기, 요기에 올리라고 말하고, 자전거가 왼쪽(오른쪽)으로 넘어지면 왼발(오른발)을 내려서 땅에 대는 연습하고 “자~ 출발합니다!” 운동장 밖으로 난 도로를 한 바퀴 돌았다.
한 번 탄 아이는 다음 친구가 탈 때 자전거를 따라 뛰었다. 세 번째 아이를 태울 때는 두 아이가 따라 뛰었고 네 번째 아이를 태우자 세 아이가 따라 뛰었다. 마지막 아이를 태울 때는 1학년 전부 쫓아다녔다.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자전거 한 번 태워주고 사랑받는 느낌이었다.
도움반 아이 두 명이 걱정되었는데 소리 지르는 아이는 꽉 잡고는 아무 소리도 지르지 않았다. 우는 아이는 한 바퀴 돌고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으려 했다. 내리라고 하니 또 우는 표정이다. “얘들아, 선생님 말씀 잘 들어. 그럼 다음에 또 태워줄게~” 했다.
젊었을 때 나는 아이들 옆에서 뛰었다. 종종 아이들 앞에서 뒤를 보고 달리면서 아이에게 외쳤다. “계속 뛰어.” 가만히 서서 아이들에게 빨리 뛰라고 말하는 사람을 싫어했다. 뒤에서 아이들을 떠밀며 뛰라고 말한 사람을 싫어했다. 아이들과 같이 뛰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아이들을 기다려주진 못했다.
철없던 시절에 아이들이 나를 많이 참아주었다. 그 아이들 덕분에 지금은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는 사람이 되었다. “무서워? 괜찮지? 바람 시원하지?” “자, 이제 쿵 합니다.” 뒤에서 두려움이 느껴지면 천천히 달렸다. 즐거움이 느껴지면 쌩쌩 달렸다. 아이가 느끼는 마음이 내게도 느껴졌다. 내게 전해지는 아이 마음에 따라 자연스럽게 속도를 조절했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 선생 같아져서 좋다.
참, 월요일에 만난 아이 엄마가 선생님에게 결석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때 아빠는 술에 취했고, 엄마는 아빠를 피해 잠시 나갔다. 깨어났는데 엄마와 할머니가 없으니 아이가 그냥 학교로 나섰나 보다. 나도 토론대회 나가는 아이들 지도하려고 20분 일찍 나갔다. 내가 20분 빨리 가서, 평소보다 10분 늦은 아이를 만났다. 자전거 지나가는 게 한순간인데 그때 나를 보고 부르다니~! 2~3초만 빨리 갔어도 골목 모퉁이로 사라져서 못봤을 텐데~! 이렇게 시간이 딱 맞는 건 은혜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괜히 감상적인 마음이 된다.
2024년 5월, 중학생 21명이 참가해서 독서토론대회 예선을 치르고 11명과 본선을 했습니다. 삼척시 청소년 독서토론대회 예선과 본선을 위해 준비한 발문지입니다.
배경지식 관련 발문
1. 화를 내거나 당황해 본 적이 있는가? 혹은 욕이나 비속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때의 기분이나 신체 변화를 이야기해 보자. (운전하는 아빠, 친구, 인터넷 게임 등)
2. 자신이 자주 쓰는 욕이나 비속어, 혹은 주변 친구들이 자주 쓰는 욕이나 비속어가 있는가?
3. 만화로 제시된 여러 상황 중에서 여러분이 직접 겪거나 공감하는 장면이 있을 것이다. 어떤 장면인지 소개해 보자.
4. 말끝마다 욕을 하는 사람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무섭다. 기분이 나쁘다. 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5. 11쪽에서 저자는 욕하고 나서 뭔가를 읽어버리거나 갑자기 허전해지는 기분을 느껴 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실제로 그런 적이 있나?
6. 친구, 선배, 후배 등이 욕설이 담긴 대화를 온라인에 올린 적이 있는가? 어떤 매체에 어떤 욕설을 담았는지 이야기해 보자.
7. 또래들과 욕을 주고받는 일상이 문제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욕이 왜 문제일까?
대상 도서의 내용 관련 발문
1.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 (우연히 욕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봄, 요즘 학생들이 상황에 맞는 적절한 말을 떠올리지 못해 욕을 쓰기도 한다는 내용에 공감)
2. 이 책에서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을 소개해보자.
3.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나? 어떤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가? (거친 언어를 사용하며 자신을 과신하는 사람, 또래 문화에 동화 되기 위해 욕을 하는 사람)
4. 여러분이 댄스팀 최종 리허설에서 동작이 자꾸 틀리는 한 사람인데 리더가 “ 야 그렇게 출 거면 그만둬, 그걸 춤이라고 추냐?” 라고 했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1. 무서워서 “죄송합니다”라며 울기 2. 더 열심히 새서 기대 만족시키기 3. 서먹하게 지내다가 서서히 멀어지기 4. 별말 없다가 다음날 갑자기 자기 팀 탈퇴)
4-1. 여러분이 댄스팀 리더이고 최종 리허설 진행 중인데 한 명이 자꾸 동작을 틀려서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면 여러분은 리더로써 그 팀원에게 무엇이라고 말하겠는가? “00아 무겁다! 발이 무겁기만 한 것이 아니라 노래보다 느리다. 안 너무 속상하다”
5. 대상도서 79쪽에서 저자는 충동적인 사람이 욕을 더 한다고 했다. 동의 여부를 근거를 들어 말해보자.
6. 12쪽에 있는 <욕 생활 진단 테스트>를 해봤을 겁니다. 어떤 결과를 얻었는지 말해봅시다.
6-1. ‘욕 생활 진단 테스트’ 결과 0점이나 10점이 나온 사람을 만나면 어떤 생각이 들까?
7. <상황별 욕 테스트>도 해봤을 것이다.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었나?
8. 욕 대신 ‘식빵’, ‘시바견’ 등의 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러한 대체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가? 근거는 무엇인가?
8-1. 식빵을 ‘씨발’의 의미로 사용한다면 그건 욕이 아닌 걸까? (기타 : 식빵, 시바견의 고유한 이름이 왜곡되어 속상할 거라는 표현이 나온다.)
8-2. “씨발”이라는 욕과 발음이 비슷해서 ‘식빵’이나 ‘시바견’이라는 말은 쓰는데 이런 말은 정말 욕을 쓰지 않은 게 될까? 아니면 그것도 욕일까? 여러분의 의견은? 욕이 아니라면 만약 ‘에이 00같은 사람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은 어떨까?
9. “개구리 소리도 들을 탓”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같은 현상도 기분이 좋을 때는 좋게 보일수 있는데 기분이 안 좋을 때는 나쁘게 보인다는 의미다. 혹시 이런 경험이 있는가?
10. 경상도, 전라도에서는 ‘쫌’, ‘마’, ‘아따’, ‘거시기’와 같은 어휘를 만능으로 사용한다. 내가 주로 사용하는 만능 어휘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11. 대상도서 3부에는 저자가 관용 표현, 감각적이고 창의적인 표현을 예로 들어 대안으로 제시한다. 어떤 표현이 있었는지 말해보자.
가. 관용 표현 -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민다. 자다가 봉창,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 까마귀 아래턱 떨어질 소리, 삶은 호박에 이 안 들 소리
나. 창의적인 표현 - 명문 집어먹고 휴지 똥 눌 놈, 똥통에 빠질 놈, 치석 틈에 똬리 튼 충치 - 싸가지를 깍둑썰기로 썰어 먹었냐, 씨알머리 없는 녀석, 무뢰한, 달 보고 짖는 개, - 등잔불에 콩 볶아 먹을 놈, 꿩은 머리만 풀에 감춘다. 벼락 맞은 꽹과리 - 섶을 지고 불러 들어가려 한다. 숯이 검정 나무란다.
다. 속담 -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 - 가는 말이 고와야 - 말 한 마디에 천냥 빚 같는다. - 낮말은 새가 - 엑 하면 떽 한다. - 말이 고마우면 비지 사러 갔다가 두부 사 온다. - 혀 아래 도끼 들었다. - 세 치 혀가 사람 잡는다 - 촌철살인 - 죽마고우도 말 한마디에 갈라진다. - 관 속에 들어가도 막말은 말라
11-1. 친한 친구나 주변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속담이나 관용어구가 있는가? 상황과 관용어구나 속담을 함께 이야기해주세요.
12. 욕하는 자신의 모습을 인식했던 순간, 욕설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적이 있나?
12-1. 욕하지 않는다면 대화가 어떻게 될까? 알맞은 말이 떠오를까, 욕하지 않으면 친구들이 차이를 알아챌까?
13. 친한 친구끼리는 욕이나 비속어를 써도 되는가? 더 예의를 지켜야 하는가?
14. 여러분이나 주변사람들이 욕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속상하고 서운한 감정 표현, 화가 나서, 민망하고 부끄러운 감정이 들어서 등)
14-1. 욕을 쓰는 ‘진짜’ 이유를 말해보았다. 그렇다면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에 욕을 하는 이유가 달랐졌는지 말해보자.
15. 오랫동안 욕에 노출되거나 언어 폭력에 시달리면 나타나는 증세는? (우울함, 자존감 낮아짐, 분노 조절이 어려움, 주변 친구들도 우울함, 의욕이 없어짐.)
16. 화가 나거나 당황하면 몸에 어떤 변화가 생긴다고 했는가? (심장이 빨리 뛰고 호흡이 가빠짐. 얼굴이 빨개짐. 숨쉬는 것도 힘드어짐. 몸이 부들부들 떨림)
17. 화가 나거나 당황하면 나오는 호르몬은 코르티솔입니다. 코르티솔에 대해 이야기해보세요 (코르티솔은 호르몬으로 스트레스에 맞서 대항하며 우리 몸을 지켜주지만 오랫동안 분비되면 몸의 균형이 무너지고 좌뇌 우뇌 연결부분이 망가짐, 몸에 악영향)
18. 29쪽에서 식빵이가 게임 중인 컴퓨터를 꺼버려서 허스키가 욕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런 경우 우리 몸은 갑자기 스트레스를 받아서 균형이 무너진다. 이때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심장이 빠르게 뛰며 흥분 작용이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욕은 다 호르몬 때문일까?
19. 코르티솔은 좋은 영향을 주기도 한다. 무엇인가?(코르티솔은 식욕을 높인다.)
19-1. 코르티솔이 스트레스로 균형을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식욕을 높여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때 욕하는 대신 스트레스를 줄일 대안을 찾아보자. (먹기, 울기, 운동하기, 수학 문제 풀기 등)
20. 51쪽에서 ‘뇌의 발달이 언어와 관련되어 있다’라는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요약을 해주어도 좋고요, 어느 부분은 동의하고 어느 부분은 동의하지 않는지 말해줄래요?
21. ‘새끼’라는 말은 내가 친구에게 할 때는 욕이고, 할머니가 나에게 할 때는 욕이 아니다. 이러한 차이가 생기는 이유가 무엇일까?
21-1. 욕은 특정한 단어를 지칭하는 것일까, 의미에 따라 결정되는 것일까?
22-2. 욕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기준의 ‘의미’라면 험한 의도를 담은 말은 모두 욕일까? ‘야 뒤질래?’와 ‘감자밭에 묻어 줄게 물 실컷 먹고 쑥쑥 자라 볼래?’는 모두 험한 의도를 갖고 있다. 둘 다 욕이라고 할 수 있을까?
23. 말하면 내용만이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대화에 영향을 주는 맥락(요인)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23-1. 말의 내용, 표정, 몸짓, 말투 중 어떤 것이 가장 영향을 많이 줄까?
24. 대상 도서 51쪽에서는 ‘장난도 상대가 받아들여야 장난이다’라고 언급한다. 그렇다면 욕을 상대가 장난으로 받아들인다면 해도 괜찮을까?
25. 상대방의 생각과 느낌을 중심으로 장난과 욕이 구분된다면, 상대가 기분 나쁜 말은 모두 욕이라고 할 수 있을까?
26. 110쪽에서는 욕을 쓰지 않고도 화가 나는 수많은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합니다.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권하는데요, 혹시 ‘나-전달법’을 이용하여 갈등 상황을 해결한 경험이 있다면 이야기해볼까?
27. ‘말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를 온몸으로 겪어 보았나요? 그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습니까?
28. 욕이 필요하다. (찬반) 찬성 근거 찾기 : 22 욕하는 문화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동물도 화날 때 욕을 한다. 힘들거나 고통스러울 때 욕하면 상황을 버틸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아플 때 욕하면 통증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반대 근거 찾기 : 몇 글자로 축약한 욕은 우리 감정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29. 대상도서에서 제시하는 대안을 말해보자.
101 대안 / 별명 부르기 107-108 대안 / ‘나’ 전달법 아이 메시지 만능 말 찾기 여러 감정을 담은 부사 활용하기 흉내말로 재미있고 유쾌하게 관용 표현으로 재치있게 맞받아치기 감각적이고 창의적인 표현으로 선조들의 조언 대응하지 않기
29-1. 현실성이 가장 큰 대안과 현실성이 적은 대안을 말해보자.
30. 혹시 애정이 듬뿍 느껴지는 ‘별명’으로 불린 적이 있지요? 별명이 대안이 될 가능성이 높을까요? 아니면 부정적인 감정을 주는 제2의 욕이 될 가능성이 높을까요?
인간 삶이나 사회 관련 발문
1. 친구 또는 가족과 대화하는 중 갑자기 튀어나온 욕으로 ‘갑분싸’(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짐)가 된 경우가 있는가?
2. 나의 언어 생활을 돌아본다면 10점 만점에 몇 점을 줄 수 있을까? 그러한 점수를 준 이유는 무엇인가?
3. 욕을 욕으로 상대하는 경우는 우리 주변에 매우 흔하다. 욕을 욕이 아닌 말로 이긴 경험이 있는가?
4. 40쪽에서 욕은 상대의 인격을 무시하는 말이라고 사회적으로 합의했기 때문에 욕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합의가 된다면 욕을 허용할 수 있을까?
5. 자녀인 ‘나’를 걱정하신다며 부모님께서 하시는 말씀 중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거나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습니까? 있다면 그건 무엇인가요?
5-1. 부모님은 우리가 잘 되기라고 잔소리하시는데 우리 입장에서는 부모님이 내 마음을 몰라주니까 부모님 말이 귀찮게만 느껴질 수 있다. 내가 부모님한테 맞춰야 한다 VS 부모님도 나한테 좀 맞춰줘야 한다.
5-2 부모님의 잔소리를 피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다고 한다. 동의하나?
5-3. 몰라주는 부모님에게 감정적으로 행동하면 마음이 전달될 수 없으니, 마음을 최대한 정확한 감정 언어로 전달하자고 제안한다. 감정 언어가 뭘까?
6. 대상 도서 55쪽에서는 개인 방송의 출현으로 규제가 없는 컨텐츠가 욕의 확산을 도왔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6-1.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KBS의 개그콘서트 ‘이상해’ 씨는 공영 방송의 심의로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대부분 특정 상표)을 방송에서 말하지 못한다는 점을 개그의 소재로 활용한다. 공영 방송의 과도한 규제와 검열을 풍자한다고 볼 수 있다. 검열과 규제 덕분에 공중파 방송에서 청소년 관람 불가 영상을 제외하고는 욕을 찾아볼 수 없다. 공중파 방송의 규제와 검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그 근거는 무엇인가?
6-2. 최근에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개인 방송이 자유로워졌다. 모두가 컨텐츠 생산자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욕설과 비속어의 난무, 건전하지 못한 정보의 생산, 가짜 뉴스 등의 문제도 동시에 대두되고 있다. 개인 방송에 대한 검열과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근거는 무엇인가?
7. 우리나라에서는 미성년자에게 술과 담배를 팔지 못한다. 미성년자는 음주와 흡연이 금지되었다. 욕도 나이 제한을 두면 어떨까?
8. 욕이 전혀 없는 인간 사회가 가능하다고 봅니까? 만일 불가능하다면, 욕에도 순기능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
9. 욕의 구분을 듣는 사람의 감정을 기준으로 하는 것처럼 법에서도 죄의 처벌을 피해자 중심에서 다루는 방식이 있다. ‘친고죄’, ‘반의사불벌죄’가 그것이다. 두 개념은 법률상 차이가 있다. 하지만 수사와 처벌 과정에서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최근 스토킹 범죄의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폐지하여 스토킹 범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더라도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게 되었다. 스토킹 범죄가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할 때는 가해자가 억지로 합의를 종용하고 2차 범죄가 발생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반면 현재 반의사불벌죄 조항이 폐지되고 난 후에는 너무 과도한 처벌과 범죄자를 양산한다는 문제점이 대두되고 있다. 스토킹 범죄의 반의사불벌죄 조항 삭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해보자.
10. 유치원생 또는 초등학교 1학년인 동생이 있다고 가정합시다. 그 어린 동생이 정말 찰지게 욕을 사용한다면, 언니/누나, 오빠/형으로서 동생에게 무엇을,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겠습니까?
10-1. 만약 내가 부모가 되어 내 아이나 혹은 현재 내 동생이 욕을 쓴다면 지도할 것인가? 아니면 이해할 것인가? (요즘 아이들은 어차피 쓴다 VS 내 아이(동생)는 절대 쓰면 안 된다.)
11. 자아 개념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욕이 자아 개념에 어떤 영향을 줄까?
12. 후배에게 들은 욕이 더 기분 나쁠까? (다른 나라는 어떨까? 사회 분위기 때문일까?)
13. 이 책을 다 읽은 뒤에 유난히 잊혀지지 않는 단어나 문장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머리와 가슴에 남은 단 한 문장(단어)을 말해줄래요?
14.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하는 영화 대사를 알고 있나요? 언어 예절은 중요한 매너 중 하나죠. 이 책과 독서토론이 여러분의 언어 생활에 어떤 영향을 줄 것 같나요?
솔로몬 시대에 나라가 견고해진 배경에는 나단 선지자가 있다. 나단 선지자의 역할이 없었으면 솔로몬은 왕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전성민 교수님은 열왕기가 선지자들의 기록이라고 했다. 사무엘기가 엘리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했다면, 열왕기는 나단으로 시작한다.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들이 아니라 선지자가 나라를 이끌어간다고? 우리나라도 선지자가 이끌어가는 나라인가?
내 삶은 누가 이끌어가나? 여호와께서 이끌어가게 하려고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 뜻을 찾았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뜻을 찾으며 노력하였다. 그러다가 찾는 행위에 매몰되진 않았나? 하나님 뜻을 찾고 조금 안다는 사실에 빠져 찾기만 하는 건 아닌가? 하나님 뜻을 찾는 사람을 도와줄 때가 있어서 정말 잘 안다고 착각하는 건 아닐까?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열쇠를 찾는 사람이 어리석은 줄 안다. 열쇠를 잃어버린 곳에서 찾아야 하는 줄 안다. 하나님 뜻을 아는 건 열쇠 찾기와 다르다. 어디서 잃어버린 줄 모른다. 잘못된 가르침을 들어서, 시대와 문화의 가르침에 물들어서, 어쩌면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구한 적이 없어서 등의 이유로 여호와의 뜻을 모른다. 어디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하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열쇠를 찾는다.
내 가로등 불빛은 어디일까? 내가 열쇠 비슷한 것을 찾았던 자리 아닐까? 과연 그 자리가 하나님의 뜻을 찾을 장소인가? 보통 고통의 자리, 힘들고 어려운 때 하나님 뜻을 찾는다. 나는 아침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날마다 고민하며 하나님 뜻을 찾았다. 행복할 때도 고통을 생각했다. 그래서 하나님 뜻을 찾는 내 패턴, 내 방식에 매몰되진 않았나? 마치 열쇠를 잃어버린 장소가 아닌 불빛 아래에서 헤매는 사람처럼.
나는 불빛이 있어야 찾기 쉽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계속 불빛 주위에서 서성이는 사람 아닐까?
아이들과 지내면 웃을 일이 많아집니다. 제가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았다면 다른 얼굴을 했을 거예요. 아이들을 보내고 나면 웃을 일이 확 줄어듭니다. 학교에서 저는 더 밝고 활기찬 표정을 짓습니다. 힘들고 지칠 때도 많지만, 아이들이 있어서 많이 웃습니다. 아이들과 1주일만 지내보면 아실 거예요.
세상이 이렇게 밝은 것은, 즐거운 노래로 가득한 것은 집집마다 어린 해가 자라고 있어서다. 그해가 노래이기 때문이다
<에피소드 1>
점심 먹으려고 아이들 데리고 손 씻으러 가는데 아이가 말을 걸어요.
"선생님, 1학년 애들이 선생님을 뭐라 하는지 알아요?” “뭐라 할까? 책벌레 선생님? 할아버지 선생님?” “아니오, <걸레 선생님>이라고 해요.” “뭐라고? 벌레 선생님?” “아니요, 걸레 선생님이요!” “걸레 선생님? 내가 왜 걸레 선생님이야?" "책벌레 선생님을 책걸레 선생님이라고 해요."
"아~ 벌레가 걸레로 들렸구나!" "책벌레~" 하면 "책걸레~" 라고 해요.
하하하~~~ 1학년에게 저는 걸레 선생님입니다. 지난해엔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아이도 있었는데 이젠 걸레가 되었습니다.
<에피소드 2>
3학년 국어 3단원, 높임 표현을 배웁니다. 상대방을 높일 때는 ‘습니다’, ‘시’를 넣거나 높임 표현 낱말(진지, 잡수세요)을 쓴다고 배워요. 내용이 쉬워서 아이들 표정이 밝네요. 시간도 좀 남았어요. 그래서 왕을 높이는 표현(용안, 용상)을 알려주려고 물었습니다.
“왕은 높은 분이라서 특별히 더 높은 표현을 사용했어, 뭔지 알아?” “몰라요.” “‘용’이라는 말을 많이 했대.”
‘용’이라는 말을 문장 끝에다 붙이면 높임 표현인가요? 애들이 사방에서 ‘용용’ 하는 거 들으며 웃었습니다.
용안, 용상을 알려주다가 우리반 ‘용찬’이가 눈에 들어왔어요. “임금님 얼굴이 용안, 임금님 의자는 용상, 그럼 임금님 반찬은?” 애들이 용찬이를 바라보며 말합니다. “용찬? 오! 용찬아, 넌 임금님 반찬이야!” 용찬이가 아주 좋아하네요.
<에피소드 3>
점심시간에 <남자:여자>로 몰려다니며 다툽니다. 3학년은 남녀로 나눠 다툴 때죠. 교실에 들어오니 남자들이 어쩌고, 여자들이 저쩌고 하며 시끄러워요.
5~6교시에 미술을 해요. 사람, 캐릭터, 동물, 이야기 주인공 등을 생각하며 얼굴을 만들어요. 찰흙을 나눠줬더니 애들이 조용해졌어요. 말랑말랑한 흙을 만지며 즐거워하네요. 남자 한 아이만 계속 여자가 어쩌고 하며 씩씩댑니다. 그러더니 여자 귀신을 만들겠다며 얼굴은 없고 머리카락만 잔뜩 만듭니다. “00아, 너 지금 여자 생각하고 있지? 누군지 이름을 말하지 말고 대답해봐.” “네. 여자 생각해요.” “그렇구나. 미술 시간에 그녀를 생각하는구나!” “맞아요, 여자 귀신 만들고 있어요.” “집에 가도 그 여자아이가 생각나겠지?” “그럴 거예요.” “꿈에도 그녀가 나오는 거 아니냐?” “네.” 하는데 친구들이 킥킥거리며 웃어요. “얘들아, 그녀가 누군지 알아도 절대 말하지 마라. 비밀을 지켜줘야 한다.” 하고는 00이가 만드는 걸 지켜봤어요. 분이 풀리지 않아서 씩씩대네요. 그래서 00이에게 계속 물었어요.
“지금도 그녀를 생각하는 거야?” “네, 그 여자 생각해요.” “아까도 여자 생각하더니 계속 그녀를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지?” “네, 계속 생각해요.” “가만히 있어도 그녀가 저절로 생각나는 거지?”
애들이 킥킥대고, 선생님이 계속 그녀를 생각하냐고 물으니까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나 봐요. “계속 그녀를 생각할 거야? 그래서 그녀를 만드는 거야?” “여자들이 먼저 우리한테 뭐라 하고 ~~~” “너, 지금도 그녀를 생각하는구나!”
이걸 몇 번 더 했더니 만드는 대상을 바꾸네요. 그녀의 귀신 머리카락을 해파리 촉수로 바꾸었어요. “이제 그녀를 만들지 않는 거야?” “해파리 만들 거예요.” “진짜? 그녀는 잊어버리는 거야?” “네, 해파리를 만들 거예요.”
이렇게 남자 대 여자 싸움은 끝이 나버렸어요. 물론 모든 아이에게 이렇게 하진 않아요. 00이는 밝고 명랑하거든요. 소심한 아이, 벌컥 성질내는 아이에겐 심각한 일로 장난치면 안 되니까요.
<에피소드 4>
국어 시간에 맨 앞에 앉은 아이가 꼼지락거리며 쪽지에 뭔가를 써요. 낙서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계속 쓰네요. “공부 시간에 무얼 자꾸 쓰는 거야? 이리 줘.”
손을 뒤로 빼며 쪽지를 감추네요. “공부도 안 하고, 이제 선생님 말도 안 듣는 거야? 쪽지 이리 줘!”
그래도 안 주려고 해요. “선생님이 이야기하면 ‘네, 선생님!’ 하는 거야. 쪽지 이리 줘!”
했더니 겨우 손을 내밉니다. “00 오빠야, 나랑 사기자.~”
‘사귀자’가 아니고 ‘사기자’네요. 우리반 남자아이들은 싸워야 할 적으로 보이지만, 4학년 오빠는 멋진 남자로 보이나 봐요. 이 사랑을 지켜줘야겠죠.
3월 20일, 춘분입니다. 3월 21일이 춘분 아니냐고요? 맞아요. 올해는 2월이 29일까지 있는 해라 1년이 366일입니다. 춘분이 하루 일찍 왔어요.
아침에 창밖을 보니 헉~! 눈이 10cm는 왔네요. 눈이 그쳤다면 운전해서 출근하겠지만, 눈이 점점 더 많이 옵니다. 지금은 싸락눈이 쏟아져요. 함박눈은 살포시 내려서 슬며시 녹습니다. 겨울 함박눈은 많이 쌓이지만, 봄 함박눈은 그냥 녹아요. 싸락눈이 와다다다 떨어지면 바닥에 닿아도 녹지 않습니다. 싸락눈이 도로와 땅을 덮어버리면 이어서 함박눈이 내립니다. 눈으로 꽉꽉 다져서 급속도로 쌓입니다. 3월 20일 아침이 이런 상황이었어요.
등산화 신고 걸었습니다. 학교까지 3km, 40분쯤 걸립니다. 처음엔 차들이 저를 앞질러 갑니다. 2km쯤 가니 차들이 제 걸음과 비슷한 속도로 갑니다. 학교 앞 교차로에 오니 주차장입니다. 학교 앞이 살짝 오르막인데 차가 여기저기 미끄러지면서 오도 가도 못하네요. 아주 꽉꽉 막힙니다.
학교 버스가 9시 40분쯤 들어왔어요. 4명은 도로에서 한 시간 넘게 기다리다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열 명과 함께 책 읽고, 알파벳 대문자와 소문자 찾아내기 게임하고, 수학 덧셈과 뺄셈 문제를 풀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아이들과 운동장으로 나갔습니다. 남자아이들과 성을 쌓았습니다. 눈을 굴려 1m 정도 크기의 덩어리를 만들고, 덩어리 몇 개를 붙였어요. 성을 쌓으니 공격 본능이 솟구치나 봅니다. 싸울 대상을 찾아다닙니다.
“이제 선생님이랑 말 안 할 거예요!”
여자아이가 삐쳤어요. 갑자기 무슨 일일까요?
“왜? 왜 말 안 해?” “남자애들만 해주고, 우리 도와준다고 해놓고는~” “아하, 그렇구나! 이제 해주러 왔지. 그런데 진짜 말 안 할 거야?” “말 안 할 거예요.” “진짜?” “진짜예요.” “지금 나랑 말하고 있는데~”
그러자 입을 꾹 다뭅니다. 3학년 여자아이 삐침은 5분 가나요? 열심히 눈 미끄럼틀 만들어주니 재잘재잘 계속 이야기합니다. “자, 타자. 1단계부터 3단계까지 있어. 1단계는 천천히, 2단계는 보통, 3단계는 빠른 거야. 손님 나와서 단계를 말하세요.” “저는 2단계요!” “네, 손님! 2단계 갑니다.”
눈 미끄럼틀 꼭대기에 누운 아이 다리를 높이 들게 한 뒤에 양쪽 신발을 모두 잡고 아래로 확 당겼습니다. “우와~ 재미있다. 재미있어요. 이제 3단계 해주세요.” “3단계는 빨라. 위험할 수도 있어. 자 눕고, 다리를 들고, 준비, 출발!” “우와, 우와! 진짜 재미있어요.”
놀이터 미끄럼틀 길이의 1/3밖에 안 되는데도 이게 더 재미있습니다. 눈 미끄럼틀이니까요. 스무 번쯤 미끄럼틀 태워주니 팔이 아픕니다. 왼손으로 바꿨습니다. 왼손은 힘이 없어서 속도가 빠르지 않습니다. 다시 오른손으로 바꿔서 손님을 모십니다. 말 안 한다던 아이는 이미 제 편이 되었습니다. 그러고도 한동안 미끄럼틀에 손님을 모셨습니다. 남자아이들을 눈 산성 위에 올라가게 한 뒤에 뛰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에니메이션 캐릭터 포즈인데 저는 잘 모릅니다. 나루토 뭐라 했는데 기억이 안 납니다.)
학교에 오지 못한 네 아이도 즐겁게 지냈겠지요. 제 기억에 남은 눈 추억이 있어요. 군입대 신체검사를 받으러 병무청에 가기 3일 전부터 눈이 왔습니다. 병무청에 가기 전날까지 180cm나 내렸습니다. 신호등 위에 눈이 쌓여 신호등이 부러졌지요. 지붕에서 소리가 나면 자다가도 지붕에 올라가 눈을 쳤습니다. 주택, 스케이트장, 창고도 많이 무너졌습니다.
2005년 3월 4일, 마읍분교에 부임하던 날 눈이 70cm 왔습니다. 산골짜기 한가운데 있는 분교여서 겨우 올라갔습니다. 차 한 대 다니지 않는 길을 뚫고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나왔습니다. 잠깐 입학식하고 아이들을 집에 데려다줬습니다. 2010년, 모교에 근무할 때 160cm가 왔어요. 2016년 소달초등학교 졸업식하던 날 130cm 왔던 눈도 기억납니다. 소달초에 있을 때는 4월 3일에도 눈이 왔지요. 날리는 정도가 아니라 운동장을 하얗게 덮었습니다.
눈이 오면 아이들이 신나지요. 다음날(3월 21일)도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놉니다. 2층에서 내려다보니 눈 밟은 자국이 많이 남았습니다. 운동장이 여기저기 파인 것 같아요. “선생님, 운동장이 바다 같아요.” “그래? 어떻게 바다처럼 보이지?” “그냥 바다 같잖아요.” “너희 눈에는 눈 덮인 운동장이 바다처럼 보이는구나!”
점심시간이 지나면서 눈이 많이 녹아 흙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점심 먹으려고 손 씻으러 가는데 “선생님, 운동장이 갯벌이 됐어요!” “우와, 시네. 눈이 오면 운동장이 바다가 돼요. 눈이 오면 운동장이 갯벌이 돼요.~”
눈이 아이들 마음에서 시를 길어냅니다. 마읍분교 6학년 남자아이가 3월 30일쯤 눈이 온 날에 시를 써왔습니다. 그 산골 마을이 눈에 선합니다.
v6 솔로몬이 말하였다. “당신이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주와 함께 성실과 공의(째다카)와 정직한 마음으로 행하였기 때문이다. 주께서 그를 위하여 이렇게 큰 은혜를 주셔서 지금처럼 저의 위에 앉을 아들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솔로몬은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성실, 공의, 정직으로 행하였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했다. faithfulness(에흐메쓰)는 성경에 127회 쓰였다. 확고함, 충실함을 뜻한다. righteousness(쩨다카)는 157회 쓰였다. 의를 말한다. uprightness(강직함)는 한 번만 쓰였다. 솔로몬이 다윗을 생각하며 따로 고른 낱말인 것 같다. 솔로몬은 다윗이 충실하고, 의롭고, 강직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복을 주셨다고 생각했다. 솔로몬은 다윗의 잘못을 몰랐을까? 아니면 의례로 하는 말일까?
솔로몬은 다윗이 올바로 행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은혜를 베풀었다고 했다. 사람이 올바로 행하면 여호와께서 은혜를 베푸신다. 그러나 올바로 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호와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건 여호와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사람이 행하는 바가 중요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계획이 악할 뿐임을(창 6:5, 창 8:21) 아신다.
물론 솔로몬은 자신에게 안정된 나라를 물려준 아버지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해야 했겠지. 나라를 새롭게 시작하면서 다윗의 삶을 아름답게 정리하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면 다윗처럼 올바로 행동해야 하는데 솔로몬은 그러지 않았다. 하나님께 제사하고 기도할 때는 괜찮았지만, 외교 관계에서는 이방 여인을 데려왔다. 군사력을 위해 말과 전차를 사들였고, 외국에 팔기도 했다.
솔로몬은 종교 행위(제사, 기도)는 하나님 백성처럼 했으나 왕의 역할은 이방인처럼 했다. 지금 신자들 같다. 교회에서는 하나님 백성이지만, 회사와 가정에서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지 않는다. 다윗은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으며 사는 동안 하나님을 찾고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나날이 위기였으니 순간순간 하나님을 찾았다. 솔로몬은 아도니야 외에는 위기가 없었다. 아도니야도 다윗이 겪은 문제다.
솔로몬은 다윗에게 베푸신 큰 은혜에 감사했다. 세월이 지난 뒤에 돌아보면 안 좋은 일에서도 은혜가 느껴진다. 그러나 하나님 은혜는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만 나타나지는 않는 게 현실이다. 다윗처럼 올바로 행해도 사울이 죽이려 한다. 착한 사람에게도 나쁜 일이 생긴다. 올바로 행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을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전도서가 괜히 쓰이지 않았다. 하나님의 사랑만은 변함이 없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 이걸 잊지 말자.
3월에 교사는 힘들다. 처음 만나는 아이들과 관계를 시작해야 한다. 달라진 분위기에 적응하면서 아이들이 다투고 갈등한다. 선생님 기준과 스타일에 맞추느라, 새로운 친구들과 관계를 시작하면서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상담해야 한다. 몇 시간 수업에 녹초가 된다. 자다가도 깨어 기도하게 된다. 평안한 날을 달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기도가 일으키는 변화는 아이들이 아니라 내게 나타난다.
아이들은 내가 가르쳐야 한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이들이 배우고 자라지는 않는다. 기도하면서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다시 힘을 얻는다. 사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생각하는 이때가 복된 날 아닐까? 하나님 은혜로 평안한 나날을 보내는 건 축복이다. 하지만 절박하게 하나님을 찾는 마음도 복되지 않나?
물질적 풍요와 번영만이 하나님의 축복은 아니다. 축복은 하나님을 누리는 삶이다. 돈과 권력은 하나님을 누리는 삶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돈과 권력을 하나님의 축복이라 생각한다면 솔로몬의 길을 따르는 셈이다. 한국 교회가 솔로몬의 지혜와 부를 부러워하며 구했기 때문에 예배와 기도 따로, 가정과 직장에서의 모습 따로가 되었다.
나는 돈과 권력을 바라지 않는다.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평안하게 지내면 좋겠다. 교사로 30년 지내며 많이 닳았다는 생각이 커진다. 나를 소모하며 가르쳤다. 사람들을 떠나 나무를 돌보며 지내는 삶을 기대하는 게 하나님 뜻에서 멀어진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생각이 나를 높이는 죄악 아닐까? 다윗이 이루어놓은 것을 솔로몬처럼 누리려고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학생들은 3월에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나이 먹는 1월보다 새로운 교실에 들어가는 3월에 더 긴장합니다. 3학년은 교과서도 낯섭니다. 2학년까지 배우던 『즐거운 생활』, 『슬기로운 생활』이 아니라 『도덕』, 『사회』, 『과학』, 『영어』, 『음악』, 『미술』, 『체육』을 배우거든요.
개학하는 날 제가 맡은 3학년 아이들 기분을 글로 들었습니다. 남자아이들은 기분을 간단하게 썼습니다. 여자아이는 다짐을 쓰기도 했네요. ★ 집에 가고 싶다. 공부가 더 어려워졌다. 3학년 되면 6교시 해야 한다. 교실에 책이 많다. (남) ★ 기쁘다. 3학년 올라가서. 체육 시간이 좋다. 도덕을 배워서 좋다. (남) ★ 3학년 공부가 어려울까 봐 긴장된다. 3학년이 되니까 후배가 한 학년이 더 생겨서 신이 난다. 새해 다짐, 공부 열심히 하기를 꼭 지키고 싶다. (여)
도덕을 배워서 좋다고 쓴 아이는 무얼 생각했을까요? 처음으로 한 도덕 수업이 기대대로 되었을까요? 3학년 아이들이 만난 인생 첫 도덕 수업입니다. 개학 다음날 했습니다.
1단원 『나와 너, 우리 함께』 소주제 1. 친구는 왜 소중할까요? 사람은 서로 다르다. 다르면 다툴 수 있다. 혼자 지내면 외롭기 때문에 친구가 있어야 하고, 친구와 잘 지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먼저 손병오 게임을 했습니다. 손가락을 다섯 개 펴고, 문장을 하나씩 말할 때마다 자기에게 해당하는 내용이면 손가락을 하나 접습니다. 첫 번째 주제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 말하기!” 한 사람도 빼지 말고 모두 손가락을 접으면 성공입니다. 아이들이 돌아가며 말합니다. ★ 올해 3학년이 된 사람 접어! ★ 내년에 4학년 되는 사람 접어! 하하! 얘네들 응용력이 있네요. 첫 번째 게임하면서 우리가 서로 비슷하다고 느낍니다.
두 번째 주제는 “다른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 말하기!” 끝까지 손가락을 남겨야 이깁니다. 3월이 생일인 아이가 말합니다. ★ 3월이 생일 아닌 사람 접어! ★ 검은 옷 입은 사람 접어! 검은 옷을 입지 않은 아이가 이렇게 말해서 자기 손가락도 접었습니다. 하하하! 이럴 수 있죠. 아직 3학년이니까요.
“두 번째 게임하면서 무얼 알았어?” “우리는 서로 달라요.” “그렇지? 비슷한 게 많아서 친구가 됐는데 다른 게 많으면 어떻게 될까?” “다퉈요.” “다투지 않고 잘 지내려고 개학날 학급 규칙을 함께 만들었지? 어떤 규칙이 있어?” “따돌리지 말고 친구와 같이 놀기, 욕하지 않기, 양보하기…… ” “잘 알고 있구나! 너희는 정말 훌륭하네.”
다음으로 교과서를 읽었습니다. 영화 <퀘스트 어웨이>를 소개하는 내용이어서 영상을 잠깐 봤습니다. “이 사람은 왜 배구공을 친구로 만들었을까?” “혼자 있으니까요. 심심해서요. 친구가 없어서요.” 한 아이가 “외로워서요!” 라고 하기에 곧바로 물었습니다. “00아, 너는 언제 외로워?” 아이들에게 언제 외로운지 한두 줄 써보라고 했습니다. 남자아이는 대부분 외롭지 않다고 썼습니다. 엉뚱한 걸 쓴 아이도 있네요. 이제 막 3학년이 됐으니까요. ★ 학교에서 외롭지 않다. (남) ★ 나는 외로울 일이 없다. (남) ★ 나는 학교에서 외롭지 않다. (남) ★ 게임할 때 형아랑 싸우다가 압수당했다. (남)
두 아이는 친구가 없었을 때와 놀렸던 때를 떠올립니다. ★ 친구가 없어서 혼자 놀 때 외롭다. (남) ★ 유치원에서 아토피 심하다고 놀려서 외로웠다. (남)
외롭다고 쓴 여자아이가 남자보다 많습니다. 여자아이가 외로움을 더 크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 나는 학교에서 안 외롭다. (여) ★ 외로운 게 기억이 안 났다.외롭다. (여) ★ 나는 외로울 일이 없다. 여자 친구들도, 남자 친구들도 모두 즐겁고 재미있다. 너무너무 즐겁다. (여)
두 아이는 예전 기억을 떠올립니다. 한두 줄만 쓰면 되는데 쉬는 시간에도 씁니다. 한 아이는 점심시간까지 씁니다. ★ 누리 유치원에서 김민지가 있었다. 김민지는 날 때리고 따돌렸다. 힘들고 계속 날 따라왔다. 화장실까지 날 따라왔다. 머리도 잡아당기고 장난감도 빼앗고. 난 그래서 외로워졌다. 그다음에 단짝이 왔다. 놀았다. 기분이 좋았다. (여)
★ 단짝이 없을 때 단짝이 날 맨날 지켜줘서 좋았다. 그런데 단짝이 없으면 김민지가 때린다. 아프고 괴로웠다. 그리고 속상하다. 민지가 무섭다. 화장실 갈 때도 가만히 두지 않는다. 나도 사실 때리고 싶었다. 누리유치원에서는 힘이 없어서 친구들을 지켜주지도 못했다. 민지랑 같은 반 하늘반이 되었다. 너무 무섭고 괴로웠다. 단짝은 감기 걸려서 안 왔다. 민지는 나를 중심으로 때렸다. 아팠다. 사과할 때는 꼬집기도 한다. 너무 괴로웠다. 하지만 학교가 달라지면서 좋았다. 1학년은 선생님도 좋고 친구도 만나서 좋았다. 1학년은 재미있다. 어느덧 2학년이 되었다. 선생님은 이쁘셨다. 또 2학년 방학이 되었다. 놀이터에서 눈감술을 하고 있었다. ★★이가 밀었다. 순간 깜짝 놀랐다. 3학년인 지금도 괴롭힌다. 무섭다. 지금 쓰는데도 괴롭다. (여)
v6 솔로몬이 말하였다. “당신이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주와 함께 성실과 공의(째다카)와 정직한 마음으로 행하였기 때문이다. 주께서 그를 위하여 이렇게 큰 은혜를 주셔서 지금처럼 저의 위에 앉을 아들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영어를 직역함)
솔로몬은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성실, 공의, 정직으로 행하였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했다. faithfulness(에흐메쓰)는 성경에 127회 쓰였다. 확고함, 충실함을 뜻한다. righteousness(쩨다카)는 157회 쓰였다. 의를 말한다. uprightness(강직함)는 한 번만 쓰였다. 여호와께서 다윗을 충실하고, 의롭고, 강직하다고 하셨다. 솔로몬은 다윗의 잘못을 몰랐을까? 아니면 의례로 하는 말일까?
솔로몬은 다윗이 올바로 행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은혜를 베풀었다고 했다. 사람이 올바로 행하면 여호와께서 은혜를 베푸신다. 그러나 그 은혜는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만 나타나지는 않는다. 올바로 행해도 나쁜 일이 생긴다. 올바로 행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을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전도서가 괜히 쓰이지 않았다.
물론 솔로몬은 자신에게 안정된 나라를 물려준 아버지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해야 했겠지. 나라를 새롭게 시작하면서 다윗의 삶을 아름답게 정리하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면 다윗처럼 올바로 행동해야 하는데 솔로몬은 그러지 않았다. 하나님께 제사하고 기도할 때는 괜찮았지만, 외교 관계에서는 이방 여인을 데려왔다. 군사력을 위해 말과 전차를 사들였고, 외국에 팔기도 했다.
솔로몬은 종교 행위(제사, 기도)는 하나님 백성처럼 했으나 왕의 역할은 이방인처럼 했다. 지금 신자들 같다. 교회에서는 하나님 백성이지만, 회사와 가정에서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지 않는다. 다윗은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으며 사는 동안 하나님을 찾고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나날이 위기였으니 순간순간 하나님을 찾았다. 솔로몬은 아도니야 외에는 위기가 없었다. 아도니야도 다윗이 겪은 문제다.
3월에 교사는 힘들다. 처음 만나는 아이들과 관계를 시작해야 한다. 달라진 분위기에 적응하면서 아이들이 다투고 갈등한다. 선생님 기준과 스타일에 맞추느라, 새로운 친구들과 관계를 시작하면서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상담해야 한다. 몇 시간 수업에 녹초가 된다. 자다가도 깨어 기도하게 된다. 평안한 날을 달라고 기도한다. 사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생각하는 이때가 복된 날 아닐까? 하나님 은혜로 평안한 나날을 보내는 건 축복이다. 하지만 절박하게 하나님을 찾는 마음도 복되지 않나?
물질적 풍요와 번영만이 하나님의 축복은 아니다. 축복은 하나님을 누리는 삶이다. 돈과 권력은 하나님을 누리는 삶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돈과 권력을 하나님의 축복이라 생각한다면 솔로몬의 길을 따르는 셈이다. 한국 교회가 솔로몬의 지혜와 부를 부러워하며 구했기 때문에 예배와 기도 따로, 가정과 직장에서의 모습 따로가 되었다.
나는 돈과 권력을 바라지 않는다.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평안하게 지내면 좋겠다. 교사로 30년 지내며 많이 닳았다는 생각이 커진다. 나를 소모하며 가르쳤다. 사람들을 떠나 나무를 돌보며 지내는 삶을 기대하는 게 하나님 뜻에서 멀어진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생각이 나를 높이는 죄악 아닐까? 다윗이 이루어놓은 것을 솔로몬처럼 누리려고만 하는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