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업 시간에 영상 매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아이스크림, 인디스쿨은 전혀 쓰지 않는다. 내 경험, 내가 아이들을 만난 시간, 아이들이 남긴 글, 내가 읽은 책과 고민하면서 얻은 통찰로 가르친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관찰하면서 생긴 안목, 책을 읽고 토론하며 생긴 인간에 대한 이해가 내 수업을 떠받친다.

수업하면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많이 한다. 묻고 대답을 듣고, 다시 묻고 또 듣는다. 내 수업을 본 선생님들이 스토리 텔링수업이라고 한다. 나는 수다 떨기 수업이라고 한다. 아이들과 계속 이야기하면서 가르친다. 아이들은 듣고 말하며 배운다.

도덕 시간에 공부하다가 엄마, 아빠 이야기로 흘러갔다.

얘들아, 정답이 없는 유치한 질문 하나 해볼게. 꼭 대답해야 하는 건 아니야. 정말 유치한 질문이거든. 너희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와글와글 시끌벅적~~~”

손 들어 볼까? 꼭 한 번만 손 드는 건 아니야. 엄마가 좋은 사람?”

아이들 대부분 손을 든다.

아빠가 좋은 사람?”

대부분 손을 든다.

그렇구나. 엄마,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좋지! 그럼 반대로 생각해볼까? 아빠가 싫은 사람?”

한두 명이 손을 든다. 아빠가 너무 일만 해서 싫다고 한다. 내가 지켜본 아이는 손을 들지 않았다. 3월 초에 아이가 엄마와 저녁 먹으러 갔던 일을 써왔다. 댓글로 그때 아빠는 무얼 하셨어?” 하고 물었다. 얼마 뒤에 학부모 상담 시간에 엄마가 학교에 오셨다. 9개월째 아빠와 별거 중이라 하시며 그 댓글을 말씀하셨다. 실수라고 말씀드렸던 적이 있어서 지켜봤는데 아빠가 싫다고 하지 않았다. 어린이날에는 아빠가 선물을 사줬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엄마가 싫은 사람을 물었다. 우리 반에는 엄마 없는 아이가 셋 있다. 한 아이는 이혼한 사실을 아빠가 말하지 않았다. 엄마가 일본에 갔다고 말했고 아이는 그대로 믿었다. 아빠 말로는 엄마가 한국에 사는 것 같았다. 엄마가 베트남으로 돌아간 사실을 아는 아이도 있다. 이 아이는 주중에는 고모가, 주말에는 아빠와 할머니가 돌본다. 또 한 아이는 4~5살 때 부모가 이혼했다.

엄마가 싫은 사람?”

몇 명이 손을 드는데 잔소리를 해서 싫다고 한다. 일본 엄마, 베트남 엄마가 싫다고 하지는 않았다. 둘 다 마음을 감출 정도로 자라진 않았는데 엄마가 싫다고 하지 않아서 다행으로 생각했다.

선생님, 우리 엄마는 일본에 갔어요.”

우리 엄마는 베트남에 갔어요.”

두 아이는 구김살 없는 해맑은 표정으로 엄마가 없다고 말한다. 어버이날 편지를 쓸 때도 밝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고모한테 쓸게요.”

하며 엄마 대신 자기를 길러준 고모에게 고맙다고 했다.

엄마가 일본에 가버렸다고 말해도 친구들은 반응하지 않는다.

엄마가 과자 사줬어.” 또는 어제 자장면 먹었다.”처럼 듣는다. 엄마가 없어서 고모가 엄마 대신 학교 행사에 오고, 어버이날 고모에게 편지하고, 부모님 이야기 대신 고모 이야기를 해도 똑같다. 아이들은 신경쓰지 않는다. 그냥 그렇구나!’ 한다.

 

2018년에 면 지역에서 4학년 8명을 가르쳤다. 세 아이 엄마가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온 캄보디아와 베트남 분이었다. 2020년에는 8명 중 4명 엄마가 네팔과 베트남에서 왔다. 2022년에 6학년 8명을 가르쳤는데 4명이 베트남에 외가를 두었다. 강원도 시골에는 다른 나라에서 온 엄마가 많다. 그런데 아무도 놀리지 않는다. 신경도 쓰지 않는다.

선생님, 누나 둘이 집에서 베트남 말로 너무 시끄럽게 떠들어요. 결혼식이 있어서 누나가 따라가는데 행운이에요. 행운!”

해도 자연스럽게 듣는다. 엄마가 베트남에서 두 딸을 데리고 강원도 시골에 와서 나이 든 아빠와 재혼하고 자기를 낳았는데도 괜찮게 생각한다. 시골 학교는 다문화라고, 엄마나 아빠가 없다고, 고모가 기른다고, 아빠가 할아버지처럼 나이가 많다고 놀리지 않는다. 옛날 드라마에 나오는 집에 살아도, 냄새가 나도, 자폐 친구가 옷을 벗어도 비난하거나 놀리지 않는다. 더 친한 친구, 덜 친한 친구는 있어도 나와 다르다고왕따시키는 아이는 없다.

산과 들, 강과 새를 보고 살면서도 편견을 가진 사람이 있다. 공부를 많이 하고, 돈이 많다고 편견이 없는 것도 아니다. 엄마가 한국말을 제대로 못 하고, 엄마가 없어서 고모나 아빠가 아이를 기르고, 공부를 못하는데 아무도 공격하거나 무시하지 않는 까닭이 뭘까? 그건 시골 학교의 특별한 매력이다. 교사가 아이를 알고 정성껏 가르친다. 마을 사람들이 아이를 알고 이름을 부른다. 아이들은 6년 내내 같은 반 친구로 지낸다. 때로 다투고 싸우고 울기도 하지만 사람의 처지를 공격하진 않는다. 그리 많지 않은 사람이 서로 어우러져 함께 살아야 한다는 걸 자연스레 아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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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한일전저자가 쓴 책이라 반가웠다. 날마다 한일전저자라면 문장, 글의 흐름, 주제 모두 기대할 만하다. 유령스팸20451010~12일까지 일어난 사건을 다룬다. 스펨은 2045년에 작동하는 인공지능 로봇을 일컫는다. 청소하고 심부름하는 것부터 차를 만들고 위험한 일까지 해낸다. 사람이 할 일을 로봇이 빼앗아간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시위를 벌인다. 그러나 일자리와 시위는 책의 배경일 뿐, 핵심 내용이 아니다.

스펨을 부리는 사람들은 도심부에 산다. 스펨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사람들은 주변부로 밀려난다. 주변부는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된 곳처럼 사람들이 떠나고 생활이 어려워진다. 이때 주변부 건물이 붕괴하는 사고가 잇따라 일어난다. 유령 스펨은 주변부에 남은 학생들이 주인공이다. 성구는 자율주행차가 일으킨 교통사고로 엄마가 돌아가셨다. 신우는 할아버지와 다투던 아빠가 죽는 일을 겪었다. 할아버지는 도심부에 산다. 신우는 할아버지 곁에 가기 힘들어한다. 정연은 성구 엄마가 사고를 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동혁도 스펨과 연관된 묘한 경험을 하면서 생각이 바뀐다.

작가가 시간을 이용해서 내용을 이끌어간다. 1장과 2장은 시간이 반대로 되었다. 2장이 1장보다 시간이 앞선다. 4,5장부터는 시간이 제 순서이다. 3의 배수로 된 장은 1년 전 이야기다. 암에 걸린 유이와 주인을 떠난 로봇 이야기다. 쉽게 이해하려면 3, 6, 9……을 먼저 읽고 다른 장을 순서대로 읽어도 좋다. 그러나 저자가 전하려는 바를 알려면 처음부터 차례로 읽어야 한다. 인공지능 로봇이 유이를 통해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가는 과정을 읽으며 1년 뒤에 일어나는 사건을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다. 차례에 나오는 시간 순서를 확인하며 읽으면 내용도 이해할 수 있다

1년 전 이야기가 중요하다. 주인을 떠난 로봇이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유이에게 계속 질문한다. 유이는 로봇에게 일삼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질문에 대답한다. 둘의 대화가 1년 뒤, 성구와 친구들이 겪는 일의 배경이다. 유이와 일삼이 없다면 상구와 친구들은 폭발 사고에서~ (더 말해주면 책이 재미없어지겠지!)

인간이 무엇인지, 인공지능 로봇이 미래에 어떤 모습일지 보여주는 좋은 책이다. 청소년과 토론하기에 좋다.

우리 반에 공부를 어려워하는 아이가 있다. 3월에는 받아올림이 있는 덧셈, 받아내림이 있는 뺄셈을 힘들어했다. 아침 시간,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 계속 가르쳤다. 한 달 동안 되풀이해서 가르친 뒤에 겨우 덧셈과 뺄셈을 익혔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교육청에 추가 지도를 신청했다. 아이 상황을 알고 싶어 지난 담임교사에게 아이가 어떤지 물었다.

아이는 예쁘지요. 엄마가 아이를 가르치지 말라고 했어요. 아이 스트레스 받는다고. 숙제도 내지 말고, 잘 몰라도 그냥 두라고 했어요. 뭘 좀 하려고 하면 스트레스 받게 하지 말라고 하는 통에 아이가 모르는 게 많아요.”

그래? 그럼 안 될 텐데. 아이가 배워야 할 때 배워야지. 나중에 더 스트레스 받을 텐데.”

점심 먹을 때도 스트레스 받으니까 김치고 나물이고 하나도 먹이지 말라고 했어요.”

그래? 어쩐지. 김치를 못 먹더라. 나물도 안 먹고. 엄마가 안 먹였구나!”

맞아요. 엄마가 대놓고 항의하며 말해서 안 먹였지요.”

나는 급식 시간에 반찬을 골고루 먹으라고 한다. 안 먹겠다고 해도 먹인다. 골고루 먹어야 한다고, 조금이라도 먹으라고, 정말 먹기 힘들면 하나라도 먹으라고 한다. 김치 하나를 살살 꼬드겨 먹였다.

선생님, 김치 처음 먹었어요.”

정말? 평생 김치를 한 번도 안 먹었어?”

그렇다고 한다. 깍두기가 나왔다. 하나를 먹였다.

선생님, 깍두기 처음 먹었어요.”

시금치, 오이, 깻잎, 버섯, 피망이 나왔다.

선생님, 시금치 처음 먹어요. 오이 처음 먹어요. 깻잎 처음 먹어요. …… 처음 먹어요!”

아이는 점심 먹을 때마다 물었다.

선생님, 깍두기 먹어야 해요?”

이거 뭐예요?”

선생님, 안 먹으면 안 돼요?”

그냥 먹였다. 하나만 먹으라고 했다. 나물은 더 먹으라고 했다. 가끔 다 먹으라고 했다. 아이는 힘들어했다. 늦게까지 남아 눈치 보며 겨우 하나 먹었다.

하루, 이틀, 한 달, 한 학기가 지나자 조금 나아졌다. 그래도 깍두기를 마지막까지 미뤄두고, 먹을 때마다 머뭇거렸다.

반찬을 다 먹으라고 하진 않지만, 최소한 하나는 먹으라고 한다. 때로 더 먹인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만 이러는 게 아니다. 지난해에 3학년을 가르쳤다. 우리 학교는 학생이 적어 3,4학년이 같이 하는 활동이 있다. 그래서 4학년을 잘 안다. 행사할 때마다 만나서 친해졌다. 4학년도 우리 반처럼 편식이 심하다. 4학년 아이가 나물 반찬에 손도 대지 않고 버리려고 했다. 식판을 들고 내 옆을 지나갈 때 통곡했다.

엉엉~ 아이고, 엉엉! 00이가 나물을 하나도 안 먹고 다 남기네. 아이고, 이를 어쩐다. 00이가 나물을 안 먹다니~”

엄청 큰 소리로, 예고도 없이, 막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급식소에서 일하는 분들이 깜짝 놀라서 쳐다봤다. 식사하던 아이들과 교사들도 무슨 일인가 하고 쳐다봤다. 그러건 말건

어떻게 나물을 하나도 안 먹냐? 건강하게 자라라고 영양 생각하며 만들어줬는데 하나도 안 먹고 다 남기다니~ 어떻게 00이가 그럴 수 있냐?”

하고 소리쳤다. 그랬더니 식판을 들고 자리로 돌아가서 나물을 먹었다. 놀란 아이들에게 눈을 찡긋하며 씩 웃었다. 밥을 다 먹고 나가면서 급식소 직원들에게 나물 먹이려고 일부러 그랬다고, 다음에 또 그럴 거라고 했다.

선생님, 저희야 고맙죠. 건강 생각해서 만들었는데 먹기만 하면 좋죠!”

했다. 아이들과 친해서 이렇게 했다.

어린이회장이 버섯을 남기네. 아이고 슬퍼서 어떡하냐?”

삼척시 육상대표 선수가 피망을 남기다니~ 무려 삼척시 대표선수인데~”

하며 너스레를 떤다. 그러면 아이들이 김치와 나물을 먹는다. 크면 자연스럽게 먹을 수도 있다. 그래도 어릴 때 야채를 먹고 자라기를 바랐다. 받아줄 만한 아이에게만 이렇게 한다. 친하지 않은 아이, 소심한 아이에겐 이러지 않는다. 반찬 하나 먹이자고 상처를 주면 안 되니까.

2학기 학부모 상담을 했다. 아이 스트레스 받게 하지 말라고 했던 엄마와 통화했다. 반찬 얘기를 꺼낸다.

우리 00이가 집에 와서 김치 먹은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올 게 왔구나!’ 생각했다. 살짝 걱정하며 어떻게 말할까 고민하는데

“00이가 처음 깍두기 먹었다고 했어요. 오이도 처음 먹었다고 자랑했어요. 나물도 먹어보니 괜찮다고 해요.”

그래요? 먹기 힘들어했는데.”

먹기 힘들지만, 그래도 먹었다고 집에 와서 자랑해요.”

그래요? 제가 실실 웃기며 꼬드깁니다. 하나라도 먹으라고 강요하기도 합니다. 억지로 먹일 때도 있어요. 어떻게 해서든 먹이려고 합니다.”

“00이가 김치와 오이 먹어서 깜짝 놀랐어요. 계속 먹으라고 해주세요. 자기도 깍두기와 오이 먹을 수 있다고 뿌듯해했어요.”

내가 놀랐다. 억지로 먹는 줄 알았는데 집에 가서 자랑하다니 말이다. 엄마는 또 웬일이래?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우리 학교는 2학년과 3학년이 시끄럽다. 말 많고 활발하고 들썩들썩한다. 며칠 전에 급식 먹다가 갑자기 장난기가 끓어올랐다.

얘들아, 오늘은 2학년과 3학년 반찬 먹기 시합이다. 지면 청소다. 3학년이 지면 2학년 청소하고, 2학년이 지면 3학년 청소하기야!”

이번 작전은 완전 성공이다. 추임새 몇 번으로 반찬이 사라졌다.

우와, 3학년은 세 명이나 다 먹었네!”

“2학년이 역전하나요. 00이가 이렇게나 잘 먹었어?”

“00, 제발 먹지 마. 김치 맵잖아. 남겨도 돼. 나물은 안 먹을 거지. 제발~”

이러면 애들이 더 먹는다. 2학년 선생님도 재미가 붙었다.

우리 2학년은 벌써 다섯 명이나 다 먹었다. 00이도 다 먹을 거야. 우리가 이겨!”

올해 처음으로 우리 반 14명이 남김없이 다 먹었다. 2학년은 한 명 빼고 12명이 다 먹었다. 애들이 다음에 또 하자고 한다. 글쎄~ 우리 반한테는 좋은데 2학년 때문에 고민이다. 2학년이 반찬 남겨서 지기 때문일까? 아니다. 반찬 다 먹기 시합 끝나고 2학년 애들이 선생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선생님, 우리가 졌으니까 3학년 청소하러 가요. 3학년 청소하러 가고 싶어요.”

또 시합하면 2학년 아이들이 일부러 지겠다고 하려나? ‘다음이 되면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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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 잡기

  승마장에서 말 타고나서 놀고 있었는데 &&이가 개구리를 잡았다. 개구리를 보는데 호박벌이 나왔다. 선생님이 쫓아냈다. 안 무서웠다. 그다음에 산딸기를 타고 싶어서 따러 갔다. 따러 가서 송충이를 찾았다. &&이가 잡았다. 소리 안 질러서 선생님이 놀랐다. 선생님한테 보여줬다. 그다음 엄청 큰 방아깨비도 있었다. 잡았다. 또 선생님에게 보여줬다. 커다란 메뚜기를 잡았다. 선생님한테 또 보여줬다. 재미있고 안 무서워서 좋았다.

승마장에서 개구리, 메뚜기 잡았을 때 여자아이가 쓴 글이다. 얘는 갑자기 비명 지르는 아이다. 벌이 나타나면 소리를 빼액 지른다. 파리가 지나가도, 곤충 소리가 나도 소리를 지른다. 기분이 나빠지면 삐치고 운다. 보통 우는 게 아니다. 소리를 높여 엉엉 운다. 정말 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억억대며 운다. 알고 보면 별일 아니다. 벌이 지나갔고, 친구가 발을 살짝 밟았고 하는 일이다.

4월 어느날 급식소에서 점심을 먹다가 갑자기 비명이 들렸다. 전교생이 모두 일순간 조용해졌다. 누가 크게 다친 줄 알았다. ‘무슨 일이지?’ 하고 봤더니 파리가 지나가서 비명을 질렀다. 정말 큰 일인가 싶었는데 겨우 파리였다. 그냥 웃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몇 분 뒤에 다시 비명을 질렀다.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이번에도 파리가 지나갔다고 한다. 당황스러웠다. 전교생이 얼어붙을 정도로 크게 비명을 질렀는데 파리 때문이라니! 다시 밥을 먹는데 또 비명이 들린다. 짧고 강하고 빼액~

우리에게 별것 아닌 일이지만, 아이에겐 큰일이다. 아이는 가끔 비명을 질러 친구들을 놀라게 했는데 대부분 곤충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큰 파리가 하필 아이 곁으로 지나다녔다. 아이 비명을 듣고는 전교생이 아이 비명 때문에 놀랐다. 아이 곁에 가서 팔을 휘저으며
  “이놈의 파리가 정신을 못 차리고 말이야? ~” 해줬다.

수학 시간에 세 명이 손을 잡고 얼마나 오랫동안 풍선을 떨어뜨리지 않는지 시간을 재는 활동을 했다. 체육관에 가서 마음이 맞는 친구끼리 짝을 정했다. 셋이 손을 잡았는데 친구가 풍선을 치려다가 손을 잡아당겨서 몸이 흔들렸다. 쓰러질 정도로 강하게 잡아당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가 주저앉았다. 내 눈치를 슬쩍 보는 것 같았는데 말하지 않고 지켜봤더니 훌쩍인다. 같이 하던 친구들이 당황해서 달랜다. 울 정도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이가 소리를 내며 울었다. 괜찮다고, 그 정도는 그냥 일어나라고 했더니 엉엉 운다. 울 일이 아니라고 하고 계속하자고 했더니 더 운다. 두 아이에게 그냥 둘이 하라고 했다.

얘는 우는 아이다. 그야말로 엉엉 운다. 자주 울기 때문에 아이가 울면 친구들이 그냥 놔두는 편이다. 보통은 잠깐 울다가 만다. 잠시 지나면 금방 웃고 떠든다. 그런데 지금은 다른 아이들이 풍선을 치는 가운에 혼자 의자에 앉아 엉엉 운다. 그냥 뒀더니 울음을 멈추었지만, 표정이 말이 아니다. 10분 정도 풍선 놀이를 하고 교실에 들어왔다. 아이들에게 우유를 마시라고 했는데 아이는 팔이 아파서 보건실에 가야겠다고 했다.

보건실에 갈 정도는 아니야. 네가 원하는 친구와 풍선놀이 했잖아. 여자 친구끼리 모였고, 운동 경기가 아니라 손잡고 풍선을 치는 놀이여서 살살 했어. 친구가 풍선을 치려고 손을 강하게 움직여도 손목에 무리가 갈 정도는 아니야. 선생님이 운동을 많이 해서 아는데 이건 아픈 것도 아니야!” 했다.

그러자 다시 울기 시작했다. 그대로 두고 다른 아이에게 관심을 가졌더니 잠시 뒤에 교실 뒤로 가서 화장지를 길게 풀어서 손목에 감았다. 압박붕대로 손목을 감듯이 화장지로 손목을 칭칭 동여맸다. ‘선생님, 내가 아픈 걸 당신이 알아줘야 해요.’ 하는 것처럼 그래서
그거 감을 정도로 아프지 않아.”
했더니 또 운다. 무시하고 풍선 놀이한 시간을 수학책에 적으며 공부를 시작했다.

보건실에 보내면 쉽다. 보건 선생님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면 괜찮아질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아이를 달래야 하나? 그래서 일부러 울렸다. 친절하게 말했지만, 아이 마음을 달래지 않았다. 보건실에 가게 해달라는 부탁도 들어주지 않았다. 휴지로 손을 칭칭 동여맬 때 그거 감을 정도로 아프지 않다고 했다. 일부러 그랬다.

점심 먹으러 가면서 말했다.
체육관에서 아프다고 할 때 달래줄 수 있었어. 휴지로 손목을 감을 때도 보건실에 보낼 수 있었어. 그러면 너는 계속 아기 마음으로 살 거야. 누가 네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이겨낼 수 있어야 해. 이젠 3학년이잖아!”

엉엉 우는 반면, 마음은 빨리 풀린다. 지금도 벌써 마음이 풀려서 잘 들었다. 그러고는 잘 안 되지만 노력하겠다고 했다.

우리 반은 점심 먹을 때 번호대로 돌아가며 앉는다. 공교롭게도 아이가 내 앞에 앉았다. 수다 떨면서 밥 먹다가 아이가 물었다.
선생님은 뭘 싫어해요?”
? 난 반찬은 다 먹어. 그런데 말이야. 싫은 게 있긴 해.”
뭐예요?”
말하기 싫은데~”

계속 말해달라고 조른다. 살살 애를 태우다가 말했다.
우리 반 아이가 울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우는 거!”

하며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우는 척했다. 찌그러진 내 얼굴을 보고 아이가 웃었다.

이후에 우는 게 줄었다. 비명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그러더니 호박벌이 부웅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데도 안 무서웠다고 썼다. 송충이를 보고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메뚜기를 보고도 무섭지 않았다. 아이가 자랐다. 아기 마음에서 벗어나는 것 같다.

2학기에는 우는 걸 한 번 봤다. 놀라운 일이다. 삐치는 건 아직 못 고쳤다.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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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은 제국주의자가 될 환경에서 살았다. 인도 벵골에서 아편국 하급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명문학교 진학을 목표로 내세우고 제국주의자를 양성하는 학교에 다녔다. 당시 영국의 정책에 부합하는 학교였다. 학비도 부족하고 학업에 흥미가 없어져서 인도 제국 경찰관이 되었다. 아버지가 근무했던 버마로 갔다. 영국 경찰 90명이 버마 경찰 1만 명을 관리하는 일로 엄청난 연봉을 받았다. 동물 농장이 성공하기까지 그만한 돈을 벌지 못할 정도로 많았다.

그러나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만났다. 버마에서 돌아온 뒤 파리에서 가난하게 살았다. 그때 경험을 <Down and Out in Paris and London>에 써서 르포 작가가 되었다. 탄광 노동자들과 지내며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썼다. 그리고 결혼 6개월만에 바르셀로나로 갔다. 아내와 함께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고는 카탈로니아 찬가를 썼다.

제국주의자로 길러진 사람이 어떻게 자유를 위해 싸우게 되었을까? 자란 환경을 보면 오웰은 제국주의자가 될 확률이 높았다. 물론 제국주의 세계에서 살았기 때문에 제국주의를 싫어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스페인 내전에 참전해서 배고픔과 냄새를 견디며 싸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같은 대의를 가졌던 사람들이 서로 속이다가 죽이기까지 하는 현실을 겪으며 환멸에 젖지 않을까! 세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더러운 세상!’을 외치지 않을까?

동물농장은 오웰이 쓸 법한 책이라 생각한다. 냉소적인 작가가 스탈린과 일당을 돼지에 비유하여 본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 속이 시원할 것이다. 세상 돌아가는 꼴이 보기 싫어서 이렇게 가다가는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 거야!” 하며 1984를 쓸 법하다. 카탈로니아 찬가는 글쎄다. 스페인 내전을 겪으면서도 어떻게 인간의 품위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을까? 자유를 향한 갈망을 계속 가졌을까? 기대했던 모습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전쟁을 겪으면서도 어떻게 실망하지 않았을까?

두 번째 질문, 오웰은 총을 들고 싸우면서도 어떻게 평상심을 유지했을까? 나는 똥을 싸놓은 참호에서 화를 냈을 것이다. 아무리 같은 편이라도 이건 아니지. 적이 비록 사람이지만, 저격병의 총에 맞으면 슬프거나 화가 치밀거나 해야 한다. 그러나 오웰은 몬손 병원에서 적이었던 강습대원 옆에 누워 같이 담배를 피웠다. 이건 그나마 이해할 수 있다. 오웰은 적 참호를 공격했을 때 적을 쫓아가면서 견갑골을 찌르려 했던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려준다. 자기가 죽을 뻔했던 이야기도 낄낄대며 말하는 분위기다. 전투에서 돌아오자마자 죽을 줄도 모르는 상황에서 친구를 찾아 다시 전선에 나간다. 유머를 타고나서 이럴까?

오웰은 사람을 소중하게 여긴다. 사람의 존엄성, 인간이 누려야 할 자유를 위해 다른 나라에 가서도 싸운다. 더럽고 추악한 모습, 속고 속이며 배신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 지저분한 뒷골목 사람들, 형편없는 탄광마을 사람들에게서 존귀와 빛나는 모습을 찾아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30년 교사로 지내면서 아이가 귀찮아지고 학교에 가기 싫었던 적이 꽤 많다. 오웰이라면 낄낄대며 다시 시작했을 것이다. 젊었을 때는 진지한 내 태도가 좋았다. 그러나 점점 웃으며 지나가는 여유가 부러워졌다. 오웰이 이런 태도로 살았기 때문일까?

조지 오웰은 버마 경찰로 근무할 때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사형수가 물웅덩이를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인간의 존엄을 느꼈다고 한다. 물웅덩이를 피하는 자연스러운 행동을 보며 저 사람도 인간이구나!’ 느꼈다고 썼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갖기 전에 하나님의 명령을 교육받은 게 내게 영향을 준 것 같기도 하다.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기 전에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고 명령을 받아 살면 계명을 더 앞세울 것 같다. 그나마 사랑하라는 말씀을 배웠으면 다행이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므로 주일을 성수해라, 충성해라, 헌신해라 하는 말을 더 많이 들었다.

그때 우리는 가깝게 지냈다. 어른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다. 친구들과 친했다. 추억도 많다. 그러나 우리가 들은 말씀은 대부분 목사에게 잘하고, 교회에 잘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우린 무얼 배웠을까? 사랑이 가장 중요한 곳에서 주일 성수, 목사에게 순종, 헌금 같은 걸 강요받으면 웃음을 잃을 것 같다. 사람보다 규정에 더 매인다. 참호에 똥 싸놓고, 전쟁터에서 담배 찾아 헤매는 사람에게 사람도 아니라고 짜증을 낼 것이다. 교회에서도 이렇게 하지 않나!

집사가 어떻게 그래?’, ‘그러고도 장로냐?’, ‘꼴에 목사라고는~’

아이를 사랑하려고 했다. 의지로 사랑했다. 그리스도인이기에 힘든 일을 맡았다. 아이 마음을 살폈고 아픈 아이들을 찾아갔다. 그렇다고 내가 정말 아이들을 사랑했을까? 오웰처럼 낄낄대며 아이들 곁에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람을 사랑하는 게 뭔지 조금 알 만한 나이가 되자 웃음이 조금씩 많아졌다. 앞으로 더 많이 웃어야 한다. 규정이나 윤리가 아니라 사람이다.

『앤서』를 읽었다.
2년 전에는 쉘터 3부작이었다.
지난해에 한 권으로 줄이더니 드디어 책이 나왔다.
글 잘 쓰는 작가가
“이게 뭐냐?” 소리 듣고도 히죽 웃으며
“아이, 참.” 해놓고는 열심히 고쳐 쓴다.
『앤서』는 훌륭했다.
과거 이야기와 현재 이야기를 절묘하게 배치했다.
권력자들의 욕심, 그들 곁에서 단물을 빨아먹는 사람들
얄팍하게 판단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꼭 현실 같았다.
“이게 뭐냐?” 했던 이야기가 이렇게 바뀌다니 놀랍다.
역시 작가는 다르다.
『앤서』의 대답을 들으며 질문이 생겼다.
지루한 설득과 토론, 기다림과 인내로는 변화가 어려울까?
마음에 드는 문장을 두 개 골랐는데 지금 보니 어둡다.
왜 우울하고, 허탈하다는 문장이 좋았을까?
작가는 잘 살아가자고 했는데 말이다.
33쪽/ 그리움은 해소할 없는 갈증 같아서
빠져들고 나면 매번 우울감에 젖어 들곤 했다.
42쪽/ 발버둥 쳐도 결국 마주하게 되는 건 벽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영혼이 말라버리는 것처럼 허탈했다.
 
여름 방학 동안 책뜰안애에 손님이 왔다.
기윤실 꿈섬 2.0에 참여한 16명이 2박 3일 동안 지냈다.
남교사는 책뜰안애에서 자고, 여교사들은 인근 한옥 민박을 소개해드렸다.
 
『일수의 탄생』으로 책 놀이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찬반 토론이 꽤나 격렬해져서 '이러다 싸우는 건 아니겠지?' 하는 순간도 있었다.
 
둘째날 밤에는 잔디밭에 누워 별을 봤다.
글을 쓴 선생님이 찍은 밤하늘
셋째 날에는 글을 썼다.
책뜰안애를 떠나며 남자 선생님이 이렇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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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여름캠프 후기, 권일한의 교실을 만나다.
 
권일한의 교실에서, 권일한의 학생으로 3일을 보냈다.
그의 교실 속에서,
보통의 사람 일수를 만나 나의 보통이 좋아졌다.
속 빈 화려함을 가진 일석이를 만나,
서른이 되도록 자신을 찾지 못했던 나의 젊은 날을 위로할 수 있었다.
부모의 기대대로 살지 못한 죄책감에 눌린 일수를 만나며
집에 갈 때마다 무거워졌던 마음의 한 켠을 이해할 수 있었다.
권일한의 교실은 나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그가 책을 보며 하나님의 세계 속에서 자신을 만나듯,
그의 교실에서는 자신을 만나게 되는 모양이다.
사람을 책 속으로 불러들여 자신을 만나게 하는 교실,
이곳이 권일한이 일구고 지켜가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가 싶다.
사람, 책, 만남.
그리고 그것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선생님.
권일한이 지켜왔고,
우리가 함께 지켜야 할 우리 교실의 모습이다.

다음 방학 때 오실 분들을 기다린다.

학부모 상담을 마쳤다. 오늘은 여섯 명과 통화했다.

교우 관계 걱정, 공부 걱정, 자존감 걱정……

자녀를 생각하면 부모는 걱정이 앞선다.

진상 부모도 있지만, 대부분 부모는 좋은 사람이다.

 

나는 자녀 칭찬하고, 잘하는 거 말하고 그러다가 부탁한다.

이렇게 하면 잘할 거예요. 성장할 거예요.’ 라고.

마지막으로 제가 아이들을 좋아해요.” 한다.

그러면 엄마는 선생님이 아이 사랑하는 거 알아요. 느껴져요.” 한다.

 

대한민국 독서토론/논술대회에 가서 심사하면서 몇 번 들었다.

선생님이 애들을 좋아하는 게 느껴지네요.”

토론 진행 잘한다는 말보다 훨씬 좋았다.

 

젊었을 때는 아이를 사랑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이젠 사랑만으론 안 되는 줄 안다.

사랑보다 잘 지도하고 가르치는 게 더 중요한 줄 안다.

우리반 애들이 나를 따르는 건 계속 듣고 개입하고 조정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난 잘 가르친다는 말보다 사랑한다는 말이 좋다.

계속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만나고 싶다.

사랑하는 마음이 들지 않으면 그만 떠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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