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2013년 즈음부터 곤혹스런 면역 이상을 앓아 왔다. 고통스러운 그 기간 동안 많은 이들과의 관계가 질병때문에, 질병에서 오는 내 무능력 때문에 끊어졌고, 그 중 몇몇은 먼저 내쪽에서 정리했다. 고통의 기간 동안 사람들에게는 의외로 고통스러워하는 이 "곁에" 그저 함께 "서" 있으며, 함께 아파해줄 능력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러한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나에게는 날카로운 상처로 남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고통스러워 하는 이 앞에서조차 무의식적으로 능력 있어 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어떤 이의 경험, 또는 많은 이들의 정제된 경험이라 하더라도 한 개별적인 고통 앞에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럴 때 많은 이들이 하게 되는 흔한 실수는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유사한 해결책을 고통에 처한 개인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이건 이렇게 하면 돼. 이럴 때일 수록 힘을 내야지 임마, 죽을 정도는 아니잖아- 같은. 그러나 그렇게 내 해결과 너의 해결, 내 서사와 너의 서사가 같을 것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사고 속에서 고통에 처한 이는 또다시 괴로울 수밖에 없다. 그 단순한 일반화가, 조언이, 또 과장된 마음표현이 받는 이에게는 또다른 폭력, 고통이 되고 마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의 저자 권일한(형님)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내가 그에 대해 아는 지극히 작은 조각은 그 힘든 시간 동안 내 곁에. 그저. 서 있어 준, 내 문제 앞에서 자신의 무능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준 몇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것과, 진실에 관해서 강박에 가까운 무엇이 있다는 것 정도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면 때문에 나는 내 삶에서 가장 힘겨운 기간 동안 그에게 언제나 전화할 수 있었고, 좀 나아진 때에는 찾아가 밥까지 청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이 두가지만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또 다른 책. 곁에.서.를 낸다고 했을 때, 그것이 화재사고로 아파했던 아이들의 이야기임을 듣고서 망설임 없이 책을 주문했다. 그는 그저 고통스러워 하는 이의 곁에. 서. 있어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생각하는 척, 사랑하는 척 페이지를 낭비할 사람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적어도 글로 아픈 이들에게 또다른 폭력-헛된 조언이나 부푼 거짓 마음-을 전할 이가 아니었기에 나는 안심하고 오랫동안 아파하는 이의 곁에서 함께 서 있었던 그의 이야기를, 깊게 듣고 싶어졌다. 아직 읽지 않았지만 분명 그는 그들 곁에, 그저 서 있었을 것이다. 그 기간 동안 그가 ‘아팠다’고 썼다면 나는 그가 정말 아팠구나 믿을 수 있다. 그의 마음은 글 속에서 그렇게 투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아이들의, 사람들의 마음이 열릴 때까지 그저 서 있어야 했던, 열리고 나서도 그저 자신의 마음을 문지르며 얼얼히 서 있어야 했던 그의 무기력한 마음을, 그러면서도 함께 할 수 있는 용기를 나는 읽고 느끼고 배우고자 한다. 오랫동안 고통으로 아파했지만 나는 아직도 그저 어떤 다른 고통스러운 이들의 곁에. 그저 서. 있는 그 마음을, 시선을 배우지 못했다. 책으로 그런 마음의 길을 함께 하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은, 가까운 일상에서 저자 권일한(형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는 나에게는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아프고 힘겨운 시간을 보낸 이에게, 또는 아프고 힘겨운 이와 함께 있어야 하는 이에게 이 책을 감히 추천드린다. 채 읽기도 전에, 분명 우리 깊은 마음과 함께 해 줄 책이므로
2. 출판사 대표님이 쓴 글
2012년 강원도 삼척 도계읍에 있는 산골 작은 교회에서 가스 폭발 사고가 났습니다.
탄광촌 지역의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교회에서 무료로 공부방을 열었다가 가스 누출로 인한 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이 사고로 목사님 부인이 죽고 9명의 아이가 화상을 입었습니다.
그중 5명은 인근에 소재한 소달초등학교 학생들이었습니다.
전교생이 총 14명인 학교에서 다섯 명이 사고를 당한 것이었습니다.
학교는 초상집 분위기로 돌변했습니다.
인근의 주민들은 자식을 소달초등학교에 보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소달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겠다는 교사도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로지 '예수님의 마음'으로 소달초등학교에 가서 사고를 당한 아이들이 모두 무사히 졸업할 때까지 그들의 '곁에' '서서' 친구가 되어 준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불쌍한 아이들을 위해 '예수님의 사랑'을 갖고 갔는데, 막상 그곳에서 맞닥뜨린 현실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소달초등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은 화재 사고 외에도, 여러 종류의 아픔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홀부모와 살고 있었고, 흔히 탄광촌을 가리켜 '막장 인생'이라고 부르듯, 경제적으로 어려워 그곳까지 흘러들어온 집이 많았습니다.
이런 아이들과 하루 종일 친구처럼, 동네 형 혹은 오빠처럼, 부모처럼 붙어 살면서, 그들에게 '곁'을 내어주고, 그들의 '마음'을 얻기까지 적잖은 대가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상처 입은 아이들이 다른 상처 입은 아이를 위로하는 법을 함께 배웠고, 무사히 고등학교까지 졸업했습니다.
권일한 선생님과 이 책을 쓰기로 처음 약속한 것은 10년 전인 2014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때, 권 선생님과 소달초등학교에서 만났던 아이들 이야기를 쓰되, 그러나 그 아이들이 모두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이야기를 풀어보자고, 약속을 했습니다.
독서 수업 사례를 모았다. 우리 학교에서 한 수업 다른 학교에 가서 한 수업 우리 학교와 다른 학교 아이가 함께한 수업 대안 학교에 가서 한 수업 독서 동아리 수업까지 한 권에 묶었다.
책 첫머리에 쓴 <<들어가는 글>>이다.
<한 학기 한 권 읽기> 수업하다가 3학년 아이가 소리쳤다.
“이게 제가 원하는 수업이라고요! 이렇게 배우고 싶어요.”
독서가 간접 경험을 하게 한다면, 독서 수업은 간접 경험을 직접 겪게 해준다. 독서 수업은 책 이야기를 내 이야기로 바꾼다. 당연하다고 여긴 것이 사실인지 생각하고, 작은 일에서 행복을 찾고, 글에 자신을 담아내고, 실수를 인정하고… 무엇보다 진짜 자신을 마주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는 곳까지 이끈다. 초등 3학년 때 만나 9년 동안 독서 수업에 참여한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편지를 썼다.
글쓴이 : 이가진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마지막 10대도 가치 있게 보낼 수 있었어요. 올 한 해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어요. 이겨내지 못한 일도 있었고 스스로를 확인할 수 있었던 일들도 있었어요. 혼란스러운 시간이었는데 그때마다 선생님과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렸어요.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고, 당연하다 생각되는 걸 의심하고, 생각을 거듭하고 이해하려 노력했어요. 전부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거예요.
제가 선생님께 배운 가장 소중한 것은 나를 마주하는 방법이었어요. 스스로를 인정한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더라구요. 내 미운 점까지 전부 나라는 걸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어요. 부모님을 보며 ‘난 절대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했던 모습도 결국에는 전부 ‘나’였어요. 처음에는 괴로웠는데 솔직해지고 비워 내려 하니까 받아들여지더라구요. 고맙습니다.
언제나 가까이에 선생님이 계신다는 게 큰 위안이었는데 더 이상 그렇지 않아서 아쉬워요. 다시 만날 기회가 온다면 그때는 선생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아직 못해본 이야기들이 많잖아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만나 10년 동안 함께 책과 글을 나누면서 배운 것들은, 제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이에요. 제가 고흐를 사랑하는 것도, 사소한 일에서 행복을 찾는 것도, 글 속에 나를 담아내는 방법도, 실수를 인정하고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아는 것도 전부 선생님 덕분이에요. 다시 없을 최고의 순간들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곁에 언제나 행복이 있길 바랄게요. 책 속의 세상에서도요.”
아이들이 독서 수업을 기다린다. 책 읽기, 내용 알아보기는 재미있고, 토론은 즐겁게 긴장되며, 글을 쓰면 마음이 시원하다. 친구와 함께 책을 읽으면 즐겁다. 놀이로 내용을 알아보면 책이 더 재미있어진다. 토론하면 마음이 울렁이며 표현하고 싶어진다. 쓰고 싶은 내용이 생긴다. 책에 빠져들어 자기 이야기를 하고, 아픈 마음을 내보인다. 울기도 한다. 꼭꼭 감춰둔 생각을 털어놓고는 다음 수업을 기다린다.
독서 수업, 독서동아리를 하면서 아이들이 치유와 회복, 추억을 누렸다. 즐겁게 생각하고 배우며 자랐다. 책이 양분을 공급하고 열매를 맺게 했다. 소개한 편지가 독서 수업이 어떠했는지 잘 보여준다. 독서 수업이 어떻게 다시 없을 최고의 순간이 되었는지 소개한다.
아이들이 점점 책을 읽지 않는다. 아이들을 꼬드기려고 책놀이를 만들었다. 크게 두 가지다. 1. 책 갖고 놀면서 책과 친해지는 놀이 2. 책을 읽고 내용을 알아보는 놀이 두 가지 내용을 담았다.
이창수 선생님이 읽고 쓴 후기다.
"독서와 글쓰기, 교육은 사람이 우선이다" 저자 권일한 선생님이 행복하게 책놀이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마트폰과의 전쟁을 선포하다!
요즘 온통 애나 어른이나 구분없이 스마트폰에 고개를 파 묵고 지낸다. 지루할 틈이 없다. 가짜 흥미에 빠져 시간을 송두리째 바치며 살고 있다. 길거리에 걸어가면서도 스마트폰에 눈을 떼지 않는다. 자동차가 지나가는데도 무슨 배짱인지 피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완전 좀비다. 일상의 삶이 그럴진대 학교에 와서는? 별반 차이가 없다. 금단 현상이 보인다. 종이책에 집중하지 못한다. 아예 종이책을 무시하는 행동도 보인다. 책을 모아 둔 도서관은? 유물 전시관처럼 뻔히 쳐다만 본다. 오죽 했으면 2015 개정교육과정에서는 수업 시간에 책 읽으라고 공식적으로 시간을 확보해 주었다. 한 학기에 최소 8~10시간은 꼬박 책 한 권은 읽어야 한다. '한 학기 한 권 읽기'다!
저자는 책을 싫어하는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는다. 원래 책을 싫어하는 아이들은 없다고 본다. 책놀이로 아이들을 꼬드긴다. 대상 도서를 읽지 않아도 된다. 독서퀴즈대회처럼 책 읽은 아이들만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암만 뛰어봐도 결과가 뻔한 대회는 하지 않는다. 책을 읽지 않아도 신나게 책과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내도록 전략을 짠다. 책 제목에 '소.달.학.교.' 라는 낱말이 들어간 책 찾아오기, 책으로 53cm 높이 만들기, 250쪽 분량의 책 먼저 찾아오기 등 도서관에서 부지런히 움직이기만 하면 누구든지 즐길 수 있는 책놀이부터 시작한다. 책으로 자신을 소개하기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고, 책에 나온 음식을 직접 만들어보는 독서캠프도 진행한다. 도시와 시골 아이들이 함께 모여 책으로 만나고 책으로 친해지는 시간도 갖는다. 무엇보다도 학부모들과도 '문학기행'을 꾸준히 한다. 만나도 싶은 작가의 책을 함께 읽고 그곳을 찾아가는 기행은 모두가 만족하는 특별한 여행이라고 한다. 저자의 수고로움이 교육공동체 모두를 행복하게 만든다.
책에 풍덩 빠져서 책이 삶이 되고, 삶에 책이 묻어난다. 그러면 대화가 자연스럽게 토론이 된다!
저자가 책놀이를 하는 이유는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기 위함이다. 그깟 지식을 좀 더 심어주기 위함이 결코 아니다. 책을 깊게 읽으면 등장 인물의 삶과 내 삶을 비교하게 된다. 등장 인물을 통해 자신을 보게 된다. 등장 인물의 생각에 동의하기도 하지만 따져 보기도 한다. 한 권의 책을 깊게 읽으면서 그 책을 매개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나눈다. 함께 읽은 책이기기 때문에 친구들끼리 얘기가 통한다. 형식적인 주제를 애써 만들어 억지로 토론하지 않아도 된다. 자연스러운 대화가 토론이 된다. 서로의 생각을 들으며 친구들을 좀 더 이해하게 된다. 진행하는 교사도 아이들을 좀 더 알게 된다. 평소에는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던 애들이 스스로 자기 얘기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책놀이가 아이들의 삶을 보게 한다.
『책벌레 선생님의 행복한 책놀이』는 단지, 책놀이 기교를 자랑하는 책이 아니다. 책이 삶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아이들도 책을 읽어낼 수 있음을 알려주는 책이다. 독서지도에 관한 다양한 강의들을 들었다할지라도 직접 실천하지 않으면 금방 까먹는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저자의 노하우가 담긴 책을 그저 부러움의 시선으로만 읽는다면 책장을 덮는 순간 끝이다. 잠깐의 감동은 느낄 수 있겠지만 딱 거기까지다. 이 책을 읽는 이유는 실천에 있다. 쉬운 것부터 하나하나 시도해 보면 된다. 교과별로 수업 시간에 활용할 방법도 자세하게 있다. 아이들이 엄청 즐거워하는 독서 행사 방법도 아낌없이 공개 되어 있다. 아이들이 기다리는 독서 캠프 진행 방법도 단계별로 있다. 용기만 내면 된다.『책벌레 선생님의 행복한 책놀이』한 권 쯤은 책상에 항상 놓아두자. 수업 시작 하기 전에 살짝 펴 보고 따라해 보자. 2~3분이면 된다. 그러다보면 좀 더 응용할 능력도 생길거다. 아이들이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다면야 뭘 못할까! 깔깔거리며 책을 이야기하고, 뚫어지게 책을 쳐다보는 아이들의 모습만 봐도 흐뭇하지 않을까?
'어..? 이 책 아니고 다른 책이었는데..' 권일한 선생님의 <학교에서 외계인을 만나다>를 골라놓고 막상 결제는 이 책을 했나 보다. 실수였지만 그래도 같은 저자의 다른 책이니 다행인 건가. 어쩐지 내가 책을 고른 게 아니라 책이 나를 찾아온 느낌이다.
책 표지에 '산골학교 선생님의 교단일기'라는 표현이 선생님들의 학교일지 같아서 교사라는 직업 안에서의 한정된 이야기가 아닐까, 사실 선생님들 특유의 모범 답안 같은 내용이지 않을까 싶었다. 또 아이들 글이 아무리 잘 써봤자 풋내 나는 서툰 글일 거라 미리 짐작했다.
그런데 한 장 한 장 넘어갈수록 책 속에 빠져들어 읽었다. 단지 교사와 학생의 관계로서가 아니라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어쩌면 인간 대 인간으로서 우린 서로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아이들의 숨겨진 마음을 찾는 과정을 '숨바꼭질'에 비유한 선생님의 표현 또한 얼마나 적절한가 감탄하게 된다.
아이넷을 키우는 엄마로서 '숨바꼭질'이라는 단어 하나에 모든 게 그려지는 것 같았다. 우리 애들도 숨바꼭질을 좋아한다. 놀이 자체로도 좋아하지만 마음이 상할 때 아이들은 숨는다. 이불 속이든 구석진 어디든 들어가 버린 아이가 숨어서 신호를 보낸다. 숨는 건 화났으니 와서 풀어달라는 뜻이지 찾지 말라는 게 아니다. 그럴 땐 찾아가서 달래주고 안아줘야 풀린다.
모든 아이들이 이런 숨바꼭질을 하고 있고 누군가는 찾아가 마음을 어루만져줘야 한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선생님이 만났던 아이들 하나하나의 이야기에 마음이 아리고 눈물이 났다. 마음의 빗장을 잠그고 꼭꼭 숨어버린 아이들도 실은 누군가의 위로와 사랑을 기다리고 있다. 거칠고 난폭한 아이들, 나쁜 행동이 일종의 신호였고, 단단한 갑옷 속에 상처 입은 연약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챘어야 했다. 어른으로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어만 가는 청소년 문제를 떠올리며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외치기만 하는 어른들처럼 나 역시 모난 아이들을 보면 품어줄 여유가 없었다.
만약 이 책이 아픈 아이들 이야기만 있었다면 마음만 무거웠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글쓰기'를 통해 마음을 표현하고 치유되는 과정을 보며 놀라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아이들에게 글쓰기는 치유이자 위로였고 서로를 향한 격려였다. 솔직하고 순수한 아이들의 글을 읽으며 나의 마음까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개울가로 달려가 개울물 위로 엄마 닮은 자기 얼굴을 본다는 아이, 교실 옆 대나무 숲을 관찰하며 자신의 마음을 죽순에 그대로 투사해 글을 써낸 아이, 그리운, 때론 원망스러운 가족에 대한 솔직한 마음들. 맑은 샘물 같은 글들에 몇 번이나 눈물이 났다.
이 책은 선생님들 뿐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아니 꼭 부모가 아니라도 누군가의 마음을 찾는데 서툰 사람들, 혹은 자기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 답답한 사람들도.
오늘 밤은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픈 그런 날이다.
내가 슬픔을 아는 사람이라서일까, 아이들이 슬픔을 써서 보여준다. 자살하려던 순간, 상처 받은 기억,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이야기를.
꼭꼭 닫아버린 아이 마음에 종이를 내밀고 글을 쓰라 했고 아이들 글을 읽으며 아이 마음을 헤아리려 했다.
-- 글쓰기로 아이 마음을 알아간 이야기다.
완전 책벌레 정현욱 목사님이 경상일보에 낸 책 소개 글
1950년, 하와이의 카우아이 섬은 실업자와 알코올, 마약 중독자들이 팽배한 곳이었다. 불우한 환경은 수많은 사회적 부적응자를 만들어 냈다. 심리학자인 에이미 워너는 '불우한 환경이 범죄자로 만든다'라는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종단 연구를 시작한다. 800여 명의 아이들을 연구하면서 가장 고위험군은 201명을 따로 집중적으로 살핀다. 그 가운데 31%의 정도가 '예외'가 생겼다. 그들은 당연히 범죄자로 전락해야 했지만 학교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좋은 대학에 들어갔으며, 훌륭한 모범시민으로 성장했다. 에이미 워너는 '왜 이런 예외가 발생하는가' 의아해하면서 연구의 방향을 바꾸어, '예외'의 이유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다양한 환경임에도 유일한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지해준 단 한 명의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단 한 명의 지지자만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여 노력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만들어 준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회복탄력성’이라 명명했다.
권일한 선생의 새로운 책이 출간되었다. 이번 책은 이전 책들과 사뭇 달랐다. 지금까지의 책이 ‘실용적’ 측면이 강했다면 이번 책은 ‘원리’에 가까운 책이다. 지금까지의 책들은 독서토론과 글쓰기를 진행하면서 체득한 경험을 정리해 놓은 것들에 가깝다. 그러나 이번에 출간한 책은 자기 독백적이며, 독서토론과 글쓰기를 통해 만나고 나누었던 삶의 이야기를 다룬다. <선생님의 숨바꼭질>이란 제목이 의아해 한참을 고민했다. 책 표지에 ‘꼭꼭 숨겨진 아이들 마음을 찾아 나선 산골학교 선생님의 가슴 뭉클한 교단일기’로 적혀 있지만 그것만으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적당히 거리를 두면 아이들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 그럼 숨바꼭질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고 좌절할 일도 없다.”(175-6쪽)
숨바꼭질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숨겨진 마음 찾기다. 글쓰기를 하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읽고, 삶을 보았다. 강원도 탄광촌이라는 산골 마을 이혼과 죽음, 가난과 폭력이 일상에 스며있는 곳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아픔을 꼭꼭 숨기고 자신의 상처를 마음 깊이 침전시킨다. 저자는 글쓰기를 통해 그들의 마음을 수면 위로 올려놓는다. ‘직면이 곧 치유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글을 통해 발견한 아이들의 생채기를 안고 함께 삶을 나눈다.
책의 절반쯤 읽어 나갔을 때, ‘회복탄력성’이란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실패와 좌절이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도 마침내 성공적 삶을 살아간 이들의 한결같은 특징은 자신을 믿고 기다려준 한 사람이 있었다. 권일한 선생은 바로 그 ‘한 사람’이다.
“상처를 입으면 사랑하는 사람 곁으로 가라고 했다. 비난하지 않고 섣불리 충고하지 않으며 아픔을 함께해줄 사람 곁에 가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다시 일어설 힘이 난다. 그런 사람 곁에 있으면 꽁꽁 얼어붙은 마음이 슬며시 녹고 누군가 손을 잡아 주는 것 같다.”(177쪽)
책은 크게 3부로 나누어져 있고, 17개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숨바꼭질하는 아이, 어떻게 대할까?’는 눈으로 보이는 아이들의 행동을 보고 ‘하지 마!’라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현대의학의 병폐로 알려진 대증요법(對症療法)은 병의 결과만을 보고 처방한다. 병의 원인과 뿌리를 간과함으로 무리한 약리작용으로 인해 부작용이 속출한다. 아이들의 문제적 행동은 ‘그림자’(21쪽)다. 유능한 교사는 그림자를 보고 판단하지 않고, 아이들의 숨겨진 마음을 찾는 술래가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언제 자신의 숨겨둔 마음을 보여줄까? 자신을 믿어 줄 때, 자신을 사랑할 때 마음을 연다. ‘하지 마!’는 판단이며, 모욕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부족함을 알지만 그것을 지적당하는 순간 방어한다. ‘해와 구름’이라는 이솝우화의 이야기처럼 판단하고 지적하는 것은 결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 초보 교사 시절, 권일한 선생은 ‘하지 마!’를 적지 않게 내뱉었다. 아이들의 마음을 열기보다, 오히려 상처를 주고 닫게 만들었다. 아이들의 그릇된 행동을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먼저 ‘무슨 일 있어?’라고 물어야 한다.
2부 ‘아이는 부모에게 숨바꼭질을 배운다’에서는 부모를 통해 학습되는 아이들의 마음을 다룬다. 폭력적인 아버지로 인해 마음이 삐뚤어진 영철이의 이야기는 심장에 통증을 유발한다. 자존감이 낮은 부모는 자신을 함부로 다룬다. 저급한 언어와 폭력적 행동, 게으름과 부도덕한 삶을 살아간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그것을 혐오하면서도 학습한다. 부모의 아픔은 고스란히 아이들이 아픔이 된다. 부모는 아이의 잘못을 야단치기 전에 자신을 보아야 한다.
“진짜 용감한 부모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한다. 아이를 위해 아픔은 참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아이를 위해 도움을 요청하는 태도야말로 지혜로운 용기이다.”(135쪽)
믿기지 않지만 ‘머릿니’로 인해 곤욕을 치른 이야기는 열약한 교육 현실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머릿니를 옮긴 아이는 어머니가 없었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큰 관심이 없다. 씻지 못한 아이는 이를 달고 다녔고, 아이들에게 옮긴 것이다. ‘이를 잡으려면 집 안 어디에 이가 있는지, 왜 이가 생겼는지 알아야’(175쪽) 한다. 아무리 상담해도 알 수 없던 문제의 원인을 집에 찾아가고 부모님을 만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아이가 처한 환경이 문제를 만든 것이다. 보이는 이만 잡으려고 한다면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를 잡기 위해 아이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적당한 거리를 두면 아이들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175쪽)
3부 ‘아픈 아이 마음 찾기’에서는 마음의 병을 안고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기고백적 글쓰기를 통해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다. 생채기 가득한 아이들의 마음을 꾸미지 않고 보여준다. 이것이 글쓰기의 힘이 아닐까? 부모의 이혼 때문에 동굴에 사는 아이, 아버지의 욕설과 학대로 인해 주눅이 들어 꽁꽁 숨어버린 아이들이 글로 숨겨진 마음을 표현한다. 아픈 사람은 자신을 감춘다. 아프지 않은 것처럼, 용감한 것처럼, 가난하지 않은 것처럼 자신을 포장한다. 선생은 아이들 마음에 숨겨진 상처를 찾아내야 한다. 그것은 불편한 일이고, 희생과 수고를 요구한다. 저자는 글쓰기를 통해 그것을 끄집어낸다. ‘해와 구름’에 나오는 해처럼 글쓰기는 그들이 발설하도록 만들어 준다.
“감정은 밖에서 밀어 넣기 전에 안에서 터져 나와야 한다. 관계가 먼저이고 기능은 다음이다. 아이를 바라보고, 희망 꽃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대하면 글이 달라진다.”(221쪽)
솔직한 글에 박수를 보내고, 서로 위로하게 했다. 마음에 감춰둔 아픔을 꺼냈다. 아이들은 견디기 힘든 현실이지만 벗어나기 위해 ‘새가 울듯이 글을 썼다.’(225쪽) 조그마한 흙만 있어도 식물은 자리고 꽃을 피운다. 누군가 자신을 지지해 준다면 아이들은 기꺼이 ‘마음의 빗장’(226쪽)을 연다. 사고로 얼굴을 다친 아이는 하나도 아프지 않은 것처럼 살았다. 그러나 어느 날, 아이는 자신 때문에 아파하는 엄마의 마음을 글로 ‘처음’ 표현하기에 이른다. ‘아이는 사물을 꿰뚫어보는 눈으로 글을’(232쪽) 썼고, ‘사고를 당했지만 사물을 관찰하고 생각하는 능력은 다치지’(228쪽) 않았던 것이다.
이 책은 ‘한 명의 지지자’에 대한 이야기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생존의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는 아이들을 지지하는 ‘한 명의 지지자’, 권일한 선생의 이야기는 좋은 교사의 본이 무엇인지 알려 준다. 카우아이섬의 아이들은 대부분 ‘불우한 환경은 아이들은 범죄자로 만든다’는 가설을 따라갔다. 그러나 ‘예외’의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 ‘한 명의 지지자’다. 저자는 분명 글쓰기를 통해 자신이 체득하고 배운 것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그러나 내가 읽기로 이 책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역전시키는 멋진 선생님의 뜨거운 희생과 사랑의 이야기다. 책을 다 덮고 나서야 아이들의 마음을 찾는 것은 사랑임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