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은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다른 학교에 가서 샬롯의 거미줄로 토론 수업을 보여주었다. 수학이나 과학처럼 정답 찾는 수업도 부담스러운데, 처음 만나는 아이들과 토론하는 모험을 했다. 토론은 상호작용이 잘 일어나야 한다. 담임교사가 그분 오시면 발표 잘하고 적극 참여해라한다고 되지 않는다. 내용 이해 활동만 하다 끝날 수도 있다. ‘정답 맞추기 그만하고 아이들과 이야기하라고 외치고 싶어서 모험을 했다.

두 편으로 나눠 번갈아가며 윌버와 관련된 내용 말하기 시합을 했다. 토론해도 될 정도로 대답을 잘한다. 긴장이 풀리며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샬롯은 윌버에게 소중한 친구다. 샬롯이 윌버를 소중하게 대하지 않았다면 윌버는 살지 못했을 거다. 윌버는 펀에게 소중한 돼지다. 펀이 윌버를 살리려 애쓰지 않았다면 윌버는 틀림없이 죽었다. 어려움에 처한 누군가에게 친구가 되어주는 일이 얼마나 귀한지 보여주려고 E. B. 화이트가 샬롯의 거미줄을 썼다고 생각한다. ‘소중한 것을 이야기해야겠다.

펀이 윌버를 어떻게 만났는지 물었다. 아빠가 죽이려는 무녀리를 펀이 살려주었다고 대답한다. 무녀리를 살려야 하느냐 물으니 다 살리겠다고 한다. “모두 살려야 한다고 말하니 내가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겠다. 너희들 모두 다 덤벼라. 내 의견을 꺾어봐라.” 했다. 논리에 맞는지 따지지 않고 덤벼든다. 독서토론을 해보지 않은 아이들이라 동네싸움 하듯 따진다. 이렇게 두면 계속 가벼운 논리에 감정만 실어 소리를 높이겠구나 싶어 다른 질문을 했다. 이쪽 길은 막혔으니 돌아가는 길을 찾아야지.

펀은 버스 안에 있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 창밖만 내다보며 세상이 너무 아름답고 ( )를 혼자 차지하게 되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했다.(16)” ( )에 들어갈 내용을 물어보니 윌버라고 한다. “맞아. 윌버지. 이게 너희들 이야기라고 생각해보자. 너희는 무얼 차지하면 세상이 아름답게 보일까?” 했더니 허황된 답을 말한다. “세상을 다 갖고 싶다. 학교를 갖고 싶다.” 한다. “아니,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 현실에서 가능한 걸 말해보자했더니 최신 핸드폰, 죽은 고양이 나비가 다시 살아오면 좋겠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한다. 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아이가 많다.

죽은 고양이 대답을 듣고 준비한 질문 순서를 바꾸었다. 토론을 처음 하면 준비한 질문을 그대로 하는 실수를 한다. 초보는 준비한 과정에서 벗어나기 어려워한다. 예외가 생기면 어떻게 감당할지 모른다. 아이들이 관심 가지는 내용으로 자연스럽게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생님이 정답을 유도하는 것처럼 느낀다. 자기들이 관심을 두는 이야기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억지로 정답만 말하게 된다. 토론을 잘하려면 아이들 대답에 맞게 물 흐르듯이 토론을 이끌어야 한다.

독서토론이 생소한 사람은 눈앞에 있는 질문에만 집중해서 아이들을 어디로 이끌고 가야할지 모른다. 그러면 어떤 날은 굉장히 좋다가 다른 날에는 토론 망쳤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 대답이 다른 가치를 따라갈 때, 그걸 존중하고 발문 자체를 그쪽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은 아이들이 어떻게 대답해도 계속 무녀리를 살려야 하나?’ 물을 것이다. 아이들이 어디로 빠지더라도 무엇 때문에 살아갈 가치가 있나?’를 물을 것이다. 토론을 처음 하는 아이들은 가벼운 생각을 계속 늘어놓는다. 다 받아주면 즐거운 시간 보내고 끝이다. ‘깊이를 맛보게 하려면 한 가지를 깊이 나누어야 한다.

죽은 고양이 나비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게 소중한 것을 제대로 토론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질문을 바꾸었다. “정말 소중하게 여기는 것, 그걸 위해서라면 위험한 일이라도 할 마음이 있는 대상을 소개해 보자.” 키우고 있거나 키워본 애완동물을 주로 말한다. 아파서 죽은 동물, 처음부터 약하게 태어나서 죽어간 동물도 있다. “좋아하는 동물이 힘들어하고 고통당하는 걸 봤잖아. 마음이 힘들었지? 그럼 태어날 때 죽는 게 낫지 않았을까? 동물도 고통당하지 않고 너도 힘들지 않잖아!” 하니 그것도 괜찮겠다고 한다. “약하게 태어나서 고통당할 거라면 죽이는 게 낫지 않을까?”를 다시 물었다. 3/4이 찬성한다.

아이들이 죽는 게 낫다고 말하도록 유도하지 않았다. 그건 나쁜 태도이다. 윌버를 당연히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왜 그래야 하는지, 죽는 게 나은 건 아닌지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죽여야 한다고 말했다면 반대로 살려야 할 이유를 생각하도록 계속 자극했을 것이다. 무조건 옳다는 생각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토론은 누가 더 조리 있게 내세우는지 알아보는 시합이 아니다. 토론은 생각하는 공간을 제공한다. 토론해서 생각이 바뀐다면 정말 좋은 토론이다. ‘설득이 아니라 이해와 경청, 용납이 더 중요하다. 나는 계속 어떨까? 아닐까? 그럴까?’ 하며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도록 물었다.

우린 아프고 고통당하며 힘들어할 거라면 죽는 게 나을까? 아프고 힘들더라도 추억을 나누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게 나을까?’를 생각했어. 처음에 너희는 살리는 게 당연하다 말했지. 그러다가 자기가 키운 애완동물이 죽은 경험을 말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어. 생각이 바뀌었다는 점이 중요해. 우린 펀의 아버지 입장에서 죽이느냐 살리느냐를 고민한 거야. ‘샬롯의 거미줄을 쓴 작가는 죽여야 할 돼지를 살리기 위한 대안이 있었어. 그게 뭐지?”

힘들고 어려워도 친구가 도와주면 이겨낼 수 있다는 거예요.” “누가 어떻게 도와줬어?” “펀은 아빠가 윌버를 죽이려 할 때 살려줬어요.” “어떻게 살려줬는지 과정을 말해봐.” “죽이지 말라고 말했어요.” “아빠를 설득하려 했구나! ? 말만 했어?” “아빠 도끼 붙들고 못 죽이게 말렸어요.” “그래, 행동도 했구나! 말만 하지 않고 행동도 했단 말이지! 다른 의견은 없을까?” “샬롯은 거미줄을 만들어줬어요. 동물들이 윌버를 위해 회의를 했어요.~”

독서토론이 잘되면 물이 바다로 흘러가듯 저절로 어떤 결론을 향해 흘러간다. 나는 토론이 이렇게 흘러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발문도 이렇게 하지 않았다. 내가 준비한 마지막 발문은 일찍 일어나는 사람에게 어떤 행운이 생겼나?’ 이다. 다분히 교사다운, 열심히 하자는 대답을 이끌어내는 질문이다. 물론 토론할 때는 이 질문을 하지 않았다. 독서토론이 삶에서 무엇이 소중한가? 한 존재의 삶을 귀하게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로 흘러가는데 일찍 일어나는 사람꺼내는 건 말도 안 되는 짓이다.

그럼 작가는 윌버를 왜 살렸을까? 무얼 말하고 싶었을까?” “친구들이 도와주면 윌버도 살 수 있어요.” 그래, 이게 핵심이다. 고통, 상실이 크더라도 함께 추억을 나누고, 위로하며, 행복한 기억을 갖게 해준다면 죽이는 게 나았다는 생각 자체가 의미 없어진다. 결론은 중요하지 않다. 토론이 아이에게서 무엇을 끌어내는지가 중요하다. 토론한지 30분 만에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말한다. “만약 왕따 같은 일로 고통당하는 아이가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할 때 어떻게 하지?” 망설임 없이, 곧바로 샬롯처럼 친구가 되어주면 된다.”고 대답한다. 상처와 상실을 추억과 기쁨으로 바꿔주면 윌버는 살아난다.

모르는 아이들과 독서토론 한다고 했을 때 걱정했다. 토론이 잘되지 않으면 아이들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토론이 안 됐다.’고 말하겠다고 변명까지 생각해뒀다. 그러나 토론하면서 독서토론이 얼마나 좋은지 더 확신했다. 마지막 질문을 했다. “너희는 1학년부터 계속 같은 반이었잖아. 서로 싸우기도 하고 화해도 하고 좋아졌다 싫어졌다 하며 지내왔지?” 모두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 “그럼 우리, 서로에게 고백해볼까? 샬롯이 윌버에게 '대단한 돼지, 겸허한 돼지'라고 말한 것처럼 친구에게 ( ) 친구라고 말해보자 했더니 우리반을 즐겁게 만드는 ○○○ , 비밀을 지켜주는 ○○○, 청소를 잘 도와주는 ○○○ 이라고 칭찬한다. 칭찬이 사랑 고백처럼 이어진다. 정말 따뜻한 시간이었다.

 

인권을 다룬 책이다. 1. 인권이 뭐예요? 2. 세상을 바꾼 인권의 역사, 3. 세계 인권 선언, 4. 희망을 만들어 가는 우리 이웃 이야기, 제목만 봐도 딱딱하다. 부모와 함께 의식주 걱정 없이 사는 아이들에겐 우리와 상관없는, 책에나 나오는 이야기이다.

독서반 아이들 모두 한 번씩 읽어왔다. 동화책은 두세 번 읽기도 했지만 인권 책은 재미없겠지. 똑같이 한 번 읽었으니 평소 책 읽는 습관을 알아볼 기회다. 내용 파악 문제 14개를 줬다. 1. 결손 가족이라는 말에 대해 저자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2. 우리 주위에서 인권과 관련된 현상을 찾아보자. (: 왕따) …… 10. ‘잊힌 죄수들을 기억하자는 뜻으로 시작된 세계 최대 인권 단체는 무엇인가? 11. 세계 인권 선언은 2차 대전에서 일어난 일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어떤 일인가?

반만 맞춰도 대단하다고 말하고 시작했지만 실망이다. 책 좀 읽는다는 아이들이 3-4문제 맞췄다. 엄마에게 등 떠밀려 온 다섯은 1-2문제 외엔 다 모른다. 무슨 말인지 모르면서 억지로 읽었다. 평소에 책을 다양하게 읽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6학년 한 아이만 12 문제 맞췄다. 아이는 평소에 인권에 관심을 가진 것도 아닌데 내용을 대부분 기억한다. 불법 체류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왜 참는지, 님비현상이 무엇인지 안다. 전제정치와 왕권신수설도 알고 두 나라가 싸울 때 상대 국가 물건 불매운동을 벌이는 이유도 안다. 로자 파크스와 세계 인권선언도 안다. 책에 나오는 사직동 그 가게가 티베트 사람을 위해 일하는지도 안다. 한 번 읽고 이 정도 알다니 놀랍다.

한 번 읽고 어떻게 내용을 다 알까?” 물었더니 친구들이 얘는 똑똑하잖아요.”, “평소에 책을 많이 읽어서 그렇겠죠.” 라고 대답한다. 당사자는 별 생각 없이 읽었는데 그냥 기억이 나요.” 한다. “얘는 책 한 번 읽고도 내용을 잘 알고 있어. 비법을 알려줄까? 한 번만 읽고도 기억하면 좋잖아?” 하니 궁금해 한다. “최신 음악을 한 시간 동안 듣는다고 해보자. , 너희, 작곡가나 가수가 들으면 얼마나 기억할까?” 나는 최신 음악을 거의 모르기 때문에 쟤들 왜 저래?” 할 거라고 한다. 자기들은 나보다 많이 기억하겠지만 작곡가나 가수보다는 모를 거라 한다.

음악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은 음악에 대해 풍부한 배경지식을 갖고 있다. 같은 노래를 들어도 배경지식이 풍부한 사람은 많이 보고 많이 느낀다. 책을 한 번 읽고도 잘 아는 까닭은 배경지식을 많이 알기 때문이다. 어려운 내용을 읽어도 관련된 이야기와 내용 즉 배경지식이 떠오르면 쉽게 이해하고 오래 기억한다. 배경지식을 많이 알면 쉽고 빠르게 배운다. 책을 많이 읽더라도 한 종류만 읽지 말고 여러 분야를 골고루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겪어본 걸 하면 생소한 걸 할 때보다 잘하기 마련이다.

연세 드신 분들은 튀김을 먹을 때 몸에 나쁘다고 하지만 그래도 튀김은 역시 식용유에 튀겨야 제맛이지!” 한다. 식용유에 튀긴 음식이 맛있다기보다는 오래도록 식용유에 튀긴 음식을 먹어 입맛이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고향하면 떠올리는 풍경도 사람마다 다르다. 자기가 겪은 고향을 생각한다. 책은 온갖 이야기를 접하게 한다. 배경지식이 있으면 처음 만나는 내용에서도 구수한 고향 맛이 떠오르게 한다. 이해하지 못할 어려운 이야기가 전에 먹어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이건 굉장한 보물이다. 내가 독서반을 하는 까닭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친구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이다.

아이들이 인권 내용을 어려워해서 둘째 시간에도 내용을 파악했다. 1, 인권차별 사례를 내용에 따라 정리했다. 신분제도, 결손가족, 학교폭력, 여성 차별, 종교, 불법체류자, 장애인 관련 차별 사례를 찾아 이야기했다. 사례들의 공통점을 찾아 인권 침해의 원인을 알아봤다. 영국, 미국, 프랑스, 한국, 러시아의 인권 역사는 어려워해서 아이들이 질문하고 내가 대답했다. “너희가 묻지 않으면 내가 묻고 너희가 대답해야 한다.” 했더니 잘 묻는다. 그래도 모르는 내용은 아이들이 알고 있는 배경지식에서 답을 찾아가도록 인도했다. 질문을 쉽게 바꿔서 묻고, 관련 내용을 묻고, 질문을 이해하도록 다른 내용을 연결해서 물었다. 이렇게 하면서 저절로 책 내용을 이해하게 도와주었다.

셋째 시간에는 인물을 중심으로 토론했다. 마틴 루터 킹, 로자 파크스, 넬슨 만델라, 왕가리 마타이, 파키스탄의 아이 이크발이 겪은 일을 살펴보았다. 넬슨 만델라가 감옥에 갇혀 지낸 모습을 이야기하면서 여러분에게 진짜 자유를 준다면 무얼 하고 싶어?” 물었다. “잠자고 싶다. 그냥 가만히 있고 싶다. 놀고 싶다. 텔레비전 실컷 보고 싶다.”고 한다. 강원도 아이들이 이 정도라면 서울과 대도시 아이들은 어떨까?

44쪽에 가수 데프콘이 부른 <힙합 유치원>이라는 노래 가사가 실려 있다. 경쟁에 시달리며 자유롭게 지내지 못하는 가사가 자기들 이야기 같다고 공감한다. 당장 자기 마음을 둘 곳을 찾기 어렵다면 대단한 이야기를 읽어도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로 읽을 것이다. 인권을 배우면서도 인권을 누리지 못하는 아이, 인권책을 읽으면서 자기 이야기로 받아들일 생각조차 못하는 아이가 얼마나 많을까! 인권의 역사만큼 지금 내가 누리는 인권이 중요하지만 느낄 기회를 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인권을 모른다.

만델라는 나는 내 영혼의 선장이라고 외치며 감옥에서 인권을 빼앗긴 채 소망 없이 지내는 시절을 견뎌냈다.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나누고 너는 네 영혼의 선장이니? 누가 네 영혼의 선장이야?” 물었다. 지금 우리는 아이를 인권이 아니라 돈과 성적, 운동 실력 따위로 평가한다. 평가는 다른 사람을 깔보게 만들고, 자신을 비하하게 만들었다. 저마다의 배를 이끌어 대양을 향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지 못하도록 짓누른다. 그래서 네가 나가고 싶은 대양을 생각해보라는 뜻으로 물었다. 스스로 영혼의 선장이라고 외치는 아이는 없었지만 자신의 영혼을 누가 이끌어 가는지 고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영국은 명예혁명으로, 프랑스도 혁명으로 자유를 누렸다. 그렇게 얻은 자유로 약한 나라의 자유를 빼앗았다. 인권을 소중하게 여긴 역사를 가진 나라가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힘으로 밀어붙이고 차별했다. 지금도 국제 관계, 외교 관계는 만델라를 감옥에 가둔 힘의 논리가 앞선다. 강자는 자기 이익을 위해 세운 기준을 내세워 차별한다. 약자, 소수, 남과 다른 특징을 가진 사람은 괴롭힘을 당한다. 그래서 모두 다수, 강자에 끼기 원한다. ‘나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한다. 만델라는 나만의 자유가 아니라 나와 너가 함께 누리는자유를 원했다. 우리나라에는 다툼과 분열이 많다. 그러기에 더욱 나와 네가 함께 누리는 자유를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인권책을 읽고 글을 쓰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예상대로 인물의 일대기를 요약하는 글이 많았다. 그러나 평소에 마음을 내보이지 않던 두 아이가 마음을 털어놓았다. “어린이는 어른들의 꼭두각시이고 어른들은 어린이들을 조종하는 리모컨 같다. 우리 어린이들도 인권이 있고 권리가 있는데……(최윤정, 정라초 5),” “어른들도 어린이의 말을 좀 들어주면 좋겠다. 어른들도 한때는 우리처럼 어린이였을 때가 있었다. 어른들이 어린이일 때도 지금의 우리처럼 같은 생각을 한 번씩은 해봤을 것이다. 이 상황을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라고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김해인, 정라초 6)” 두 아이 글을 읽고 어렵지만 인권 책을 나누기 잘했다고 생각했다. 부모와 교사가 아이들을 모두 틀림없이 다른 독특한 존재로 바라본다면 두 아이처럼 생각하는 아이가 줄어들겠지. 자기 문제를 뛰어넘어 아이들이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날이 가까이 오면 좋겠다.

 

루이는 소리를 내지 못하는 백조이다. 아이들이 책을 읽으며 안 됐다. 힘들겠다.”하거나 소리를 내지 못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까?” 궁금해 할 줄 알았다. 책을 읽고 어땠는지 물어보니 별 느낌이 없다는 아이가 있다. “루이가 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걸 알았을 때 어땠어? 어떻게 될까 호기심이 생기지 않았어?” 하니 왜요? 나중엔 잘 될 텐데요.” 한다. ‘어라? 이건 무슨 반응이지?’ 하면서 그럼 나쁜 일이나 긴장되는 일이 생길 때마다 이러다가 결국은 좋게 끝날 거야!’라고 생각하니?” 그렇다고 한다. “정말 안 좋은 일이 생겨 누군가 죽으면 이거 뭐야? 여기서 왜 죽어? 이 책 진짜 이상하네?’ 라고 생각해?” 하니 당연하다는 눈으로 본다.

이렇게 읽으면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재미없다. “백조가 글을 배운다는 것, 그리고 설마 설마 했는데 기어이 물갈퀴를 잘라 손가락처럼 사용해서 트럼펫을 분다는 내용 등이 너무 억지처럼 느껴졌다.(홍은미 선생님)”고 생각하는 건 괜찮다. 내용에 동의하지 못해도 생각하고 글도 쓸 수 있다. 그러나 그냥 그랬어요하면 토론도, 글쓰기도 힘들다. 생각 없이 읽으면 할 말이 없고 줄거리밖에 쓸 수 없다.

스스로 생각하게 하려고 핵심내용 찾기를 했다. 먼저 줄거리를 최대한 짧게 썼다. 전체 이야기를 줄이는 방식으로는 100자 이내로 쓰지 못한다. 등장인물이 무엇을 했는지 쓰다보면 길게 쓰기 마련이다. 작가가 무얼 말하려는지 핵심을 찾아야 짧게 쓸 수 있다. 내용을 요약하지 말고 무엇을 말하는 이야기인지 생각하라 한다. ‘결국 잘 될 것이다로 읽는 아이도 책에서 핵심 내용을 찾으면 경험과 생각을 연결해서 글을 쓸 수 있다. “언어 장애가 있는 백조가 장애를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 “못한다고 포기하지 말고 노력해서 밝은 미래를 향해 걸어 나가는 사람이 되자고 쓴 아이는 포기하지 말고 노력하자를 주제로 글을 쓰면 된다.

두 번째 시간이다. 루이가 겪은 사건을 함께 간추렸다. <루이가 샘을 만난다.루이는 말을 못한다.루이가 읽고 쓰기를 배운다.루이가 세레나를 짝사랑한다.루이 아빠가 트럼펫을 훔친다.루이가 트럼펫을 분다.루이가 세레나와 자유를 찾는다.루이가 돈을 벌어 빚을 갚는다.> “루이가 사람이라면 어떤 일을 겪을까?” 장애인, 왕따, 학교폭력 피해자,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 공부 못하는 아이, 늘 비교 당하는 아이를 말한다. 루이가 말을 못하는 모습을 다른 사람보다 부족한 걸로 생각한다. 트럼펫을 부는 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고 샘을 만난 건 이해해주고 도와주는 사람을 만난 셈이다.

지난주에 쓴 요약 문장과 오늘 정리한 내용으로 주제를 찾아 정리했다. “다른 사람보다 능력이 부족하게 태어난 사람이 자기를 이해하고 도와주는 사람을 만나 노력해서 마침내 꿈을 이루는 이야기로 정리했다. 이렇게 하니 그냥 그랬어요한 아이도 이게 그런 내용이구나!’ 한다. 첫 시간과 둘째 시간 활동 순서를 바꾸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마지막으로 엘윈 브룩스 화이트가 책을 쓴 까닭은 ~”에 이어지는 문장을 썼다.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장애인이든 동물이든 차별받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가며 자유를 가질 권리가 있으니 생명을 희생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서이다.(권서진, 5)” ‘노력이 아니라 자기만의 독특한 생각이라면 금상첨화다.

많은 아이들이 책에서 한두 군데(인상 깊은 장면, 인물의 행동) 내용을 골라 독서감상문을 쓴다.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로 글을 써야 깊이가 있지만 이렇게 할 생각을 못한다. 주제를 찾기 어렵고 한 가지 주제로 글 한 편을 완성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첫째 시간에 줄거리를 짧게 줄인 까닭은 주제를 찾기 위해서이다. 둘째 시간에 주요 사건을 사람들 모습에 빗대어 내용을 정리한 것도 주제를 찾기 위해서 했다. 주제를 찾으면 관련되는 경험과 책 내용을 연결해서 설명해야 한다. ‘내가 찾은 주제를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하면 된다. 글을 자주 쓰지 않은 아이는 설명을 못하고 간단하게 쓰지만 연습하면 괜찮아진다. 그러나 글로 쓸만한 주제를 찾지 못하면 무얼 써야 할지 생각조차 못한다.

셋째 시간이다. 글을 쓰기 전에 루이가 돈을 버는 과정을 나누었다. ‘열심히 노력해서 루이처럼 성공하자는 정답형 글을 쓰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루이는 아빠가 훔쳐온 트럼펫 값을 갚아주려고 연주를 한다. 첫 일자리인 학생 캠프에서 나팔을 불어 시간을 알려주며,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한다. 돈 벌면서 루이도, 같이 있는 사람들도 행복했다. 도시(보스턴) 호수 공원에서 트럼펫을 불어 돈을 벌 때도 행복했다. 다음에 루이는 나이트클럽에 취직한다. 돈을 많이 받지만 밤에 자지 않고 나이트클럽에서 연주를 하면서 힘들어한다. 다행히 루이는 사람이 아니어서 돈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 나이트클럽을 떠나 사랑하는 친구를 다시 만난다. 나이트클럽에서 일했다면 홀로 쓸쓸히 죽어갔을 것이다. 막대한 유산 남겨두고……

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으니 막막해 한다. 돈이냐? 가치냐? 물어보면 정답을 찾을 것 같아서 성형외과 의사가 될래? 흉부외과 의사가 될래?” 하고 물었다. 성형외과 의사는 돈 벌기 위해 선택하는 직업이다. 흉부외과 의사는 돈도 벌지만 힘들다. 1명 빼고 모두 성형외과 의사가 된다고 한다. 깜짝 놀랐다. 루이가 나이트클럽을 떠난 선택이 옳다고 말한 아이들이 현실에서는 모두 돈을 선택했다. 불법이 아니라면 가치보다 돈을 선택하겠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니 돈 많이 벌어서 해외여행 다니며 편히 지내고 싶다고 한다.

독서반에 나오는 아이가 돈이 최고라고 하다니 깜짝 놀랐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아이가 없다. ‘요즘 아이들이 이 정도였나!’ 하는 생각이 들어 중학생 독서반에서 물었다. 절반은 돈을, 나머지는 가치를 선택했다. 나는 생각하며 살아가라고 독서반을 한다.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하고, 더 귀한 가치를 찾아 도전하라고 자극한다. 아이들이 돈의 위험을 알고 돈보다 가치를 바라보고 살아가기 바랐다. 그러나 아이들은 돈을 원한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교사와 공무원을 꿈꾸는 나라엔 소망이 없다. 가치 있는 일을 위해 돈을 포기하고 땀을 흘리며 뛰어드는 아이가 없다니…… 오래도록 독서반에 붙들어 두고 깨뜨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루이가 돈을 번 네 곳에서 겪은 일을 4가지 기준으로 평가했다. 1. 돈을 많이 벌었나? 2. 가치가 있었나? 3.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나? 4. 행복했나? 이야기를 나눈 뒤에 글감을 정했다. 흉부외과 의사를 선택한 아이는 가치 있는 돈을 글로 쓰겠다고 하고, 대부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쓰겠다고 한다. ‘노력하자보다는 낫지만 장애인에 대한 편견 역시 정답처럼 쓰기 쉽다. “원하는 걸 쓰되, 고민하지 않고 정답처럼 대충 쓰지 말자. 이렇게 생각해 보자. 넌 장애인이야. 무시당하고 손가락질 당했어. 네 가족도 장애인이야. 마음에 분노가 쌓였어. 너는 장애인을 대표해. 네 뒤에 장애인 천 명이 너만 바라보고 있어. 뭐라 말할 거야? ‘차별은 나빠요!’라고 할 거야? 사람들을 설득해야지. 네가 외치는 한 마디로 마음을 움직여 편견을 깨야지!”

그래도 울분을 토해내며 글을 쓰진 않는다. 아직 초등학생이고 독서반에 온지 6개월밖에 안 됐다. 예전 아이들도 그랬다. 2년이 지나서야 정답이 사라지고 마음을 담은 글을 썼다. 생각하지 않고, 도전하지 않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고 산다면 장애를 가진 거나 마찬가지라는 걸 우리 아이들이 느끼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겨울방학이 지나면 아이들이 부쩍 자란다. 방학 지나고 한 달 만에 만났는데 생각이 자란 모습이 보인다. 낱말이나 짧은 문장으로 대답하던 아이가 관련 내용을 더해서 말한다. 책 읽은 느낌을 나누었다. 남학생은 대단하다고 대답한다. 그린란드에서 알래스카까지 북극해 주위 12000km를 개썰매 타고 혼자 탐험했으니 정말 대단하다. 남학생은 탐험이야기를 좋아할 줄 알았지만 여학생도 재미있다고 하며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묻는다. <이누이트가 되어라>는 우에무라 나오미가 혼자 개썰매를 타고 북극에 가기 위해 훈련한 과정을 쓴 동화이다. 일본 탐험가 나오미는 북극권에서 살아가는 이누이트처럼 생활하면 혼자 힘으로 북극점에 다녀올 수 있다고 믿었다. 책의 대부분은 그린란드에서 캐나다를 지나 베링해 근처까지 해안을 따라 탐험한 내용이다. 북극점에 다녀온 이야기는 뒷부분에 간단하게 나온다. 백인들은 에스키모(날고기를 먹는 사람)라고 부르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이누이트(사람)라고 부른다.

아이들이 문제를 만들고 함께 풀며 내용을 파악했다. 한 학생이 이날부터 ○○○이 말을 듣지 않았다.”에 들어갈 낱말이 무엇인지 묻는다. 북극점에 가까울수록 자기력이 강해져서 나침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북극점에 가까이 왔다는 뜻인 줄 알았다면 어느날 나침반이 말을 듣지 않았는데 왜 그랬을까?” 라고 문제를 내야 했다. 자기만의 문장을 만들지 못하면 단답형으로 묻는다. 독서감상문에 줄거리를 가득 쓰는 것도 자기만의 문장을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 문장을 가지려면 원인을 찾는 추론능력, 다른 내용과 연결 짓는 종합 능력, 숨은 뜻을 찾아내는 분석 능력을 길러야 한다. 책을 많이 읽기만 해서 되지는 않는다. ‘그랬는지 계속 물어야 한다. 무슨 뜻인지 자기만의 말로 바꿔 표현해야 한다. 인물의 성격이나 특정한 사건이 이야기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을까? 그런 성격이 아니거나, 다른 사람을 만났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무턱대고 이어질 내용을 상상해보자하기 전에 책 내용이 무얼 말하는지 먼저 따져보고 분석해야 한다. 그러면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추론과 분석에 바탕을 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상상력은 멋대로 지어내는 능력이 아니다. 정확한 사실에 바탕을 두어 그럴 듯하면서도 새로운 이야기를 자기 문장으로 표현하는 능력이다.

나오미는 야콥스하운을 떠나 여러 마을을 지나면서 코츠뷰까지 간다. 나오미가 한 마을에서 다른 마을에 가는 여정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봤다. 야콥스하운에서 우마나크까지 가면서(39-52) 개들이 개썰매를 제대로 끌지 못했고, 개가 도망쳤고, 겨우 우마나크에 갔다. 문장으로 바꾸기 힘들어해서 내가 정리했다. “길들여지지 않은 개 데리고 힘들게 산을 넘었다.” 우마나크에서 우퍼나빅까지 가는 여정은 내용이 짧아서(53-60) 쉽게 썼다. “개들이 계속 말을 듣지 않아서 힘들게 우퍼나빅까지 갔다.” 이런 방법으로 나오미가 탐험한 내용을 문장으로 표현했다. 추론 능력, 분석 능력, 자기 문장으로 쓰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했는데 아이들이 어려워했다. 자기 문장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둘째 시간에 주제 중심 토론을 했다. 1. 인간은 여러 가지 도전의 기록을 갖고 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도전을 소개해보자. 북극, 남극, 에베레스트, 우주…… 중에 하나는 말하리라 예상했지만 아무도 모른다. 대답하지 않는 아이들 얼굴을 보면서 , 내가 주제를 잘못 잡았구나!’ 하는 느낌이 확 다가왔다. 극지나 우주에 처음 간 사람, 대항해 시대 탐험가를 물었더니 몇 사람을 말하지만 내 질문이 허공에 떠다니는 것 같다. 그래서 1-1, 1-2를 뛰어넘어 1-3) 여러분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일에 도전해보고 싶나? 온 힘을 기울여 해보고 싶은 일을 말해보자고 물었는데 조용하다. 돌아가며 물어봐도 도전해보고 싶은 게 없다고 한다. 질문을 바꾸었다. “돈과 시간을 마음껏 준다면 무얼 하고 싶어?” 집에서 뒹굴거나 학원 빠지거나 pc방에서 실컷 게임하고 싶다고 한다. 번지점프 해보고 싶다는 5학년 아이가 없었으면 정말 슬펐을 것이다. ‘, 아이들이 무언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구나! 그냥 쉬고 싶어 하는구나!’ 생각하니 슬프다.

1-1) 나오미가 도전한 일을 책에서 잘 찾지만 1-2) 나오미처럼 도전하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더니 추운데 왜 고생하러 가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혼자 날고기 먹으며 개썰매를 타고 12000km를 고생하며 간 탐험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너무 편하게 지내서일까? 공부와 학원에 떠밀려서 지친 걸까? 집에서 뒹굴며 텔레비전 보거나 게임 실컷 하는 것보다 눈을 반짝이게 만드는 일이 없을까? 토론하고 나서 조금이라도 도전하는 마음이 생기면 좋겠지만 자신이 없다.

2. 프랭클린 탐험대는 대서양에서 북극해를 거쳐 태평양으로 빠지는 뱃길을 찾으려다가 빙산에 갇혀 129명이 모두 죽었다. 왜 모두 죽었을까? “가까이에 이누이트가 살고 있었지만 죽어가면서도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어요.”, “날고기를 먹고 털가죽 옷을 입는 야만인에게 문명인이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고집 때문이에요.(21)”, “명예를 중시하는 영국사람 눈에 이누이트는 사람 같지 않은 사람, 사람이 되다 만 존재로 보였을 거예요" 2-1) 월터 스콧 역시 남극점에 도전했다가 대원이 모두 죽었다. 죽은 까닭을 찾아보자. 스콧 역시 명분과 명예를 내세우다 대원이 모두 죽었다고 대답한다.

2-2) 노르웨이 탐험가 아문센은 남극점을 정복하고도 영국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영국은 오히려 실패한 프랭클린과 월터 스콧을 영웅으로 받들었다. 무엇 때문일까? 아문센은 털가죽 옷을 입고 시베리아 허스키가 끄는 썰매를 타고 남극점에 도달했다. 스콧은 남극에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설상차와 조랑말을 이용했다. 말이 다치면 자기들이 짐을 끌고 다친 말까지 데려갔다. 아문센은 돌아오는 길에 지친 개를 잡아먹을 요량으로 식량을 줄여 썰매를 가볍게 했는데 스콧은 반대로 행동했다. 아이들은 나오미나 아문센처럼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졌으면 졌다고 말해야지, 스콧이 기사도를 발휘한 영웅인 것처럼 말하는 태도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자존심을 내세운 거라며 영국을 비판한다.

2-3) 나오미는 왜 아문센의 방법을 따랐을까? 나오미의 판단이 옳을까? 당연한 거 아니냐고 말한다. 아이들은 아문센과 나오미가 한 일이 당시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이야기로 바꿔 물었다. “우리와 일본이 똑같은 경쟁을 벌였다고 하자. 일본이 아문센의 방법으로 남극점에 먼저 가고 우린 실패했다면 어떻게 말할까?” 했더니 씩 웃으며 그야 영국처럼 말해야죠.” 한다. 우리와 일본의 경우로 묻지 않고 2-4)를 물었다면 모두 아문센의 방법이 옳다고 말했을 것이다. 2-4) 여러분은 누구의 방법이 옳다고 생각하는지 이유를 들어 말해보자. 4명은 아문센을, 4명은 스콧을 응원한다. 어느 편도 들지 않은 한 아이에게 물었더니 왜 가야 해요?”한다. 어느 한 쪽 편을 들지 않고 이유를 묻는 건 좋은 태도이다. 이어서 아문센과 스콧의 이야기를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로 연결해서 토론했다. 그러나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아이들 모습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왜 가느냐고 물은 아이는 “~ 어차피 한 문제를 풀면 다른 문제가 생긴다. 미지의 세계는 미지의 세계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사람들이 미지의 세계에 가고 싶어 할 이유가 없다.(6 )”고 썼다. 지금 생활에 만족해서 미지의 세계에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다행이지만 혹시라도 공부나 성적, 친구 관계가 힘들어 꿈을 꿀 생각을 하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공무원 되라는 말에 눌려서 고개를 들고 멀리 내다보는 마음까지 않은 건 아니겠지!

새롭게 시작하는 3월이다. 이누이트가 되고 싶은 아이가 많아지도록 활기를 불어넣어보자.

 

창경궁 동무는 정후겸이 주인공이다. 정후겸은 정조의 동생 화완옹주에게 양자로 들어간 사람이다. 화완옹주는 남편(부마)과 무남독녀를 잃고 정후겸을 양자로 삼아 아들처럼 키운다. 세손(정조)과 창경궁에서 동무처럼 함께 뛰어놀던 사이였지만 정조 즉위 15일 만에 정조의 외할아버지 홍인한과 함께 사약을 받는다. <초정리 편지>에서 역사에 숨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솜씨를 보여준 배유안 작가가 이 내용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책을 읽은 느낌을 나눴다. 독서반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들이 많아 간단하게만 말한다. 깊이 생각하진 못해도 자세하게 말하면 될 텐데 힘들어한다. 그럼 새로운 방법을 써야지. “앞사람이 말한 낱말은 다시 쓰지 못한다. 누군가 슬프다고 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슬프다는 말을 쓰지 말아야 한다. 나중에 발표할수록 힘들겠지?” 했더니 먼저 하겠다고 손을 든다. 평소에 발표하지 않던 아이도 나중에 하면 말할 게 없다며 손을 번쩍 든다. 표현이 부족한 아이부터 시켰다.

낱말이 어려웠다. 책 앞부분 내용에서 갑자기 다른 내용으로 넘어가 힘들었다. 슬펐다.”에 이어 다른 위인전과 다르게 주인공이 아닌 사람이 말한다고 한다. 정조가 아니라 정후겸이 주인공으로 나와 색다르다는 말이다. “슬프고 어둡다고 한다. <창경궁 동무>는 무겁고 슬프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이야기와 아버지의 죽음을 바라보며 오열하는 세손(정조), 세손을 질투하는 정후겸의 모습이 읽는 이의 마음을 짓누른다.

미리 준비한 질문 10개를 나눠주고 두 사람씩 짝을 지어 같이 답을 찾게 했다. 잘하는 한 사람만 찾지 않게 하려고 비슷한 실력을 가진 아이끼리 짝을 지어주었다. 20분 뒤에 물어보니 정답을 간단하게 말한다. “그게 어떤 이야기에 나와? 그때 등장인물은 어떻게 행동해?” 하면서 관련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나는 정답만 맞추지 않고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며 책 내용을 이해하게 한다. 마지막 질문으로 정후겸이 세손을 질투할 만한 내용을 찾아보았다. “정후겸은 세손빈과 같은 아내를 맞지 못한다. 활을 아무리 잘 쏴도 세손빈과 세자는 세손이 쏜 화살에만 관심을 둔다. 세손에겐 따르는 사람(내관)과 부하(호위무사)가 있다. 활쏘기와 글을 가르치는 특별한 스승이 있다. 숲에서 놀다가 정후겸은 피가 나고 세손은 살짝 까졌는데도 어의를 부르라느니 하며 세손에게만 신경 쓴다. 영조 앞에서 학문을 논할 때도 세손이 주인공이다. 세손에게 일이 생기면 내관이 정후겸을 나무란다.”

짝과 함께 답을 찾고, 이야기를 나누며 정리하니 전체 내용을 이해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이야기를 연결할 줄 모르지만 질문하면 핵심을 찾는다. 왕실과 친인척 관계가 복잡해서 왕실 가계도를 그렸다. 여자애들이 좋아한다. 왕실은 역시 여자의 로망인가 보다. 왕실 가계도를 나누다가 외척, 파벌, 붕당, 세도정치가 무엇인지 묻는다. 모르는 걸 물어보고 찾아가는 독서라면 언제나 환영이다!

첫 시간을 끝내며 책 내용을 토론으로 알아보니 어떤지 발표해보자. 앞 사람이 말한 낱말 쓰지 않고 발표하기다!” 하니 또 손을 번쩍 든다. ‘잘 몰랐는데 문제를 풀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무슨 이야기인지 알게 되었다는 내용이 많았다. “내용을 잘 모르면 토론을 제대로 못한다. 책을 한 번 읽고 줄거리 대충 알면 늘 똑같은 글을 쓴다. 내 것으로 만들 때까지 곱씹어야 한다. 정말 좋은 답이라도 듣기만 하면 금방 잊는다. 스스로 찾고 생각하면 오래 기억한다. 책을 이렇게 읽어라. 다음 주에 토론하는데 한 번 더 읽고 와라. 글 쓰는 주에도 또 읽고 공부할 때마다 읽으면 내 책이 된다. 그래야 한다.”고 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둘째 주에는 주제중심 독서토론을 했다. “신분제도를 주제로 책 내용과 현대사회를 연결하는 토론이다. 신분제도가 외척, 파벌, 붕당과 세도정치를 낳은 과정을 나누려 했다. 책에서 신분 차이가 드러나는 부분을 찾았다. 주로 세손과 정후겸 사이에 일어난 일을 찾는다. 옹주가 비록 왕의 딸이지만 빈궁 옆에 앉았다고 꾸중 듣는 장면도 있다. 신분사회를 깨보자. “만약 정후겸과 세손이 공정하게 경쟁한다면 누가 실력이 좋을까?” 정후겸은 세손보다 나이가 많아 힘이 세고 말도 더 잘한다. 머리가 좋고 야심도 있어서 상황 파악을 잘한다. 세손은 어리지만 왕이 될 수업을 받고 있어서 권위와 능력을 갖추었다. 어느 쪽이 낫다고 결론을 내리기 어렵지만 아무래도 나이가 많은 정후겸이 유리할 거라 한다. 그러나 정말 누가 더 뛰어난지 알 수가 없다. 세손과 정후겸은 공정한 경쟁자가 아니라 왕자와 평민으로 다른 관점에서 서술되어왔다. 둘을 공정하게 비교하기 어렵다. 토론이 어느 정도 진행되자 평행선을 그린다. 새로운 논리나 증거를 말할 만큼 지식과 통찰력이 뛰어난 아이가 없으니 당연하다. 토론하다 보면 어느 수준까지는 증거를 찾고 논리에 맞게 말하지만 찬반이 평행선을 그리기 시작하면 말싸움으로 변해간다. 이때는 토론을 그만두거나 다른 눈으로 보게 만드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정후겸 지지자와 세손 지지자로 나눠 유세분위기로 몰아갔다. 지지율 비슷한 후보가 선거하는 것 같다. 좀 듣다가 정후겸 지지자로 돌변해서 무조건 정후겸을 외쳤다. 한 아이가 책에서 정후겸은 세손을 질투하는 모습이 많은데 왕이 된 뒤에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을 질투해서 죽이면 어떡하냐?”고 묻는다. “정후겸은 너무 훌륭해서 질투할 만한 대상이 없다.”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내가 이렇게 반응하자 애들이 단체로 덤빈다. 내가 이상한 논리로 말하는데도 꺾지 못해서 답답해한다. 일부러 극단으로 반응한 뒤에 지도자 주변에 있는 사람이 나 같으면 어떻게 될까?” 물었다. ~ 한다.

우리나라는 투표로 대표와 지도자를 뽑는다. 공정할까?” 물으니 공정하다고 한다. “축구선수를 투표로 뽑으면 공정한가?” 하니 그건 아니라고 한다. “축구선수는 실력으로 뽑아야 하지. 그럼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투표로 뽑는 게 공정한 거냐구?” 하니 어리둥절해 한다. 한 아이가 투표로 뽑으면 인맥이나 인기만으로 판단한다.”고 말한다. "맞다. 투표는 공정하게 보인다. 그러나 투표할 때 실력을 제대로 판단하지 않으면 내가 정후겸을 지지한 것처럼 뽑을 수 있다. 너희들이 어른이 되면 제대로 판단해라."고 말했다. ~ 이런 의도로 이야기를 시작한 게 아닌데 이상하다.

세 번째 시간에 신분사회로는 글을 쓰기 어려울 것 같아 정후겸의 욕심과 질투에 초점을 맞춰 우리가 만나는 욕심과 질투를 살펴봤다. 문장쓰기를 했더니 욕심이란, ‘하나가 있는데 두 개 갖고 싶은 것, 아무리 마셔도 목마른 바닷물이라고 한다. 가장 공감을 얻은 답은 배가 채워졌는데 더 먹고 싶은 것이다. 그럼 질투는 아무리 배가 불러도 네 배가 더 부르면 기분 나쁜 것이다. 문장쓰기를 나누며 많이 웃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먹는 걸로 이야기하니 귀에 쏙쏙 들어오나 보다.

주제를 자유롭게 정해서 글을 썼다. 아이들이 신분제도누가 왕이 되어야 할까?’를 쓰기 바랐지만 10명이 욕심, 질투를 주제로 쓰고 두 명만 신분제도에 대해 썼다. 글로 쓸 정도로 충분히 이해하기엔 어려운 주제였나 보다. 글을 쓰기 전에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글을 쓰면 다른 사람 말을 늘어놓다가 끝난다. 쉬운 주제를 정하더라도 여러분이 잘 아는 내용,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내용을 써라했고 아이들은 내 말을 따랐다. 글을 쓰고 네 번째 시간에 글을 고쳤다. 아이들과 토론하면 새롭고 즐겁다.

학기초에 학급문고로 살 책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제가 책을 잘 알고 있으니 목록을 보내달랍니다. 목록을 보내주면 그대로 삽니다. 교실에 꽂아두고 책벌레 선생님이 추천한 책이다. 좋은 책이니 읽어봐라합니다. 제게 목록을 부탁한 교사는 읽을까요? 책을 읽으라고 말은 하지만 이 책을 읽어라 하진 않습니다. 책 안 읽는 교사에게는 이 책이 없으니까요. 책을 덩어리째로 던져주면 아이는 잘 읽지 않습니다. 아이에겐 책들이 아니라 바로 이 책이 필요합니다.

교사마다 좋아하는 책이 다릅니다. 전문가의 추천이 아무리 좋아도 직접 맛을 보고 입맛에 맞아야 다른 사람에게 권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시키지 않아도 하지만 의무에 떠밀리면 시켜도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읽는 분은 제게 목록을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억지로 산 학급문고는 제역할을 못합니다. ‘책벌레 선생님이 추천한 책이다는 좋지 않습니다. ‘내가 읽어봤는데 말이야 이 책은~’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좋은 책을 갖다 놓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사가 어떤 마음으로 책을 대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학급문고는 소문으로 들은 좋은 책 덩어리가 아니라 아이에게 자신있게 권해줄 수 있는 이 책을 갖다놓아야 합니다.

학급문고가 왜 필요할까?

제게 목록을 부탁하는 분은 그나마 나은 편입니다. 학년 전체가 한 사람이 정한 목록을 그대로 사기도 하고 지난해에 산 책을 그대로 사기도 합니다. 도서실에 가면 같은 책이 20권씩 꽂혀 있습니다. 남의 목록 그대로 사는 분은 도서실에 책이 많은데 왜 자꾸 교실에 학급문고를 만들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정말 그렇네요. 몇 권 되지 않는 책을 학급문고로 교실에 굳이 놔둘 필요가 있을까요?

도서실은 책을 읽는 곳입니다. 책이 많아야 합니다. 교실은 무얼 하는 곳일까요? 책 읽는 곳입니다. 책이 있어야 합니다. 집은 무얼 하는 곳이죠? 책 읽는 곳입니다. 책이 있어야 합니다. 집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는 텔레비전이나 옷장이 아니라 책장이 있어야 합니다. 교실에서 아이들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도 책이 있어야 합니다. 책 없이 어떻게 아이를 키우며 가르칩니까? 학급 문고는 당연히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건 책벌레에게나 통하는 이야기입니다.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학급문고가 필요할까요?

제 자녀는 중학생인데 핸드폰이 없습니다. 스마트폰 빌려줘도 금방 싫증냅니다. 책을 주면 밥 먹으러 오라는 소리도 무시합니다. ‘여기만 읽고 갈게요하고는 한참 지나야 옵니다. 온 사방 책으로 가득한 곳에서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책을 좋아합니다. 우리반 아이들도 책을 친근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책 읽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책이야기를 합니다. 무언가 물어보면 책에서 찾아줍니다. 스스로 답을 찾도록 책을 건네줍니다. 학급문고 앞에서 서성입니다. 그럼 아이들이 책을 읽습니다.

도서실에 가라고 해도 아이들은 한 귀로 흘립니다. 교실 안에, 바로 곁에, 손 뻗으면 닿는 곳에 책이 있어야 합니다. 스마트폰보다 책을 더 좋아하게 하려면 자주 만나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기에 도서실은 너무 멉니다. 저는 교실을 예쁘게 꾸미는 재주가 없습니다. 그냥 책을 꽂아둡니다. 책 읽고 쓴 글, 일기글을 자주 바꿔가며 걸어줍니다. 우리반 아이들은 책을 많이 읽고 글도 잘 씁니다. 자주 접하면 잘하고 좋아하게 됩니다.

학급문고에 어떤 책을 둘까?

저는 3가지 기준으로 학급문고를 정합니다. 먼저 제가 재미나게 읽은 책을 고릅니다. 진짜 재미있다고 말할 책입니다. 입소문 타는 맛난 음식점에 데려가듯 내가 읽어보니까~’ 합니다. 베스트셀러는 아닙니다. 소문만 요란한 책이 아니라 진짜 제 입맛에 맞는 책입니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책, 제목만 말해도 얼굴 표정이 바뀌고 ~’ 하는 책입니다. ‘선생님이 저렇게 좋아할 정도면 나도 읽어봐야겠다고 느끼게 만드는 책입니다.

두 번째로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책을 고릅니다. 수준은 떨어집니다. 만화류 몇 권, 주인공 두세 사람이 과거로 가서 여행하며 역사적 사실을 겪어내는 이야기 몇 권, 단순 흥미 위주의 추리나 이야기 몇 권입니다. 일종의 시식코너입니다. ‘일단 맛을 보시라니까요꼬드기는 책입니다. 학급문고 앞에 발을 멈추고 손을 내밀어 책을 꺼내게 만들기 위한 유혹거리입니다. 이런 책은 괜찮은 관련 책을 함께 삽니다. ‘북극에서 살아남기를 읽은 아이는 북극에서 살아가는 이누이트 이야기에 손을 뻗습니다. 일단 맛을 본 뒤에 먹을 더 좋은 걸 준비해 놓습니다.

세 번째로 공부와 관련한 책을 삽니다. 4학년을 가르치면 도시와 촌락에 관한 책, 민주주의에 관한 책을 삽니다. 화산과 지진, 식물의 성장에 관한 책도 삽니다. 인물, 사건, 배경이 잘 나타난 동화책도 삽니다. 4학년에서 배우는 수학동화도 삽니다. 선행학습은 배울 내용을 그대로 미리 가르칩니다. 이미 배운 내용을 학교에서 또 배우면 재미가 없습니다. 책으로 읽으면 어떨까요? 책은 넓게 알려줍니다. 배경지식을 쌓게 만듭니다. 공부할 때 관련 이야기가 떠오르게 해서 흥미를 유발합니다. 학급문고에 학년에 맞는 공부 관련 책을 두면 조사참고 자료로도 씁니다.

좀더 깊이 생각해 볼까요? 난이도를 조절하세요. 약간 쉬운 책, 보통 수준, 약간 어려운 책을 1/3씩 사세요. 처음엔 쉬운 책을 읽습니다. 2학기가 되면 보통 수준 책이 쉬워지고 학기말에는 약간 어려운 책에 눈높이가 맞아집니다. 저절로 이렇게 되진 않습니다. 아이들은 어렵고 힘들면 피하려 합니다. 교사가 욕심 부려서 고급스럽고 어려운 책을 두면 먼지만 쌓입니다. 포장만 요란하지 아무도 읽지 않는 우리 학교 필독서, 우리반 필독서는 만들지 마세요. 반대로 너무 쉽고 만만한 책만 사면 어려운 책은 아예 읽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발전이 없지요.

3월에 한꺼번에 다 사기보다는 1, 2학기로 나눠 두 번 사면 더 좋습니다. 저는 1학기에 2/3를 사고 2학기에 1/3을 삽니다. 새로움을 두 번 느끼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있는 곳은 강원도 소규모 학교라 가능하지만 이렇게 하기 어려운 학교도 있을 겁니다. 책을 감춰두고 조금씩 꺼내주세요. 한꺼번에 학급문고에 꽂아두고 올해는 여기 30권을 다 읽어라하지 말고 10권만 꽂아두고 다음에 또 꺼내놓으세요. 아이들은 변화를 좋아합니다. 턱 강요하지 말고 조금씩 꺼내서 유혹하세요.

어떻게 해야 학급문고에 관심을 가질까?

학급문고로 산 책을 조금씩 꺼내주면 관심이 계속 이어집니다. 아이들이 학급문고에 관심을 갖게 하는 최고의 방법은 책 읽어주기입니다. 1주일에 하루, 10분씩 한 권을 꾸준히 읽어주세요. 저는 나니아 연대기를 읽어줍니다. 책을 다 읽어주고 나면 영화를 보여줍니다. 제가 읽어줄 때 같은 책을 빌려와서 손으로 짚어가며 따라 읽는 아이도 있습니다. 로알드 달 책도 읽어줍니다. 그럼 도서실에서 로알드 달 책이 사라집니다.

1주일에 한 권씩 책을 바꿔가며 한 부분만 읽어줘도 좋습니다. 올해 입학식 때 아이들을 모아놓고 그림책을 읽어주었습니다. <옛날 옛날에 파리 한 마리를 꿀꺽 삼킨 할머니가 살았는데요, 심스 태백><옛날에 오리 한 마리가 살았는데, 헬린 옥스버리 그림>을 들으면서 입학식에 따라온 동생과 학부모까지 깔깔깔 웃었습니다. 읽은 책을 입학생과 따라온 동생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학급문고를 사면 예전과는 다르게 반응하겠지요.

아이에게 책을 자주 접하도록 하는 게 가장 좋은 독서지도입니다. 공부할 때 인터넷이 아니라 책을 찾습니다. 좋은 말을 해줄 때도 책에서 인용합니다. 식물도감 들고 운동장에서 나무와 꽃이름을 찾습니다.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면 책에서 읽은 이야기를 합니다. 학급문고에 있는 책이라면 더 좋겠지요. 학급문고에 있는 책에서 좋은 구절을 찾아 교실에 걸어놓고 이 구절은 우리반 학급문고 어느 책에 나와 있을까요?”라고 써놓으세요. 누군가 틀림없이 선생님, 여기 있어요. 이 책 맞지요?” 할 겁니다. 그럼 , 정말 찾았구나! 굉장한데……해주세요.

과학을 전담으로 가르칠 때입니다. 5학년 교실에서 아이들이 실험관찰 정리할 동안 학급문고를 구경했습니다. 책이 뒤집어져서 꽂혀 있는 거야 이해합니다. 누군가 보고 그렇게 꽂아두었다는 거니까요. 1학기 다 지나가는 6월인데 책이 너무 깨끗합니다. 그래서 책을 양쪽으로 나누었습니다. 오른쪽에 있는 책을 왼쪽으로 옮기고 왼쪽에 있는 책을 오른쪽으로 옮기며 학급문고 앞에 서있으니 묻습니다. “선생님 뭐하세요?” “, 책을 나누고 있어.” “어떻게 나누는데요?” “정말 좋은 책을 왼쪽으로 보내고 있어.” 했더니 실험관찰 다 정리했는데 책 읽어도 되요?” 합니다. “그래, 가져가라!” 했더니 왼쪽에 있는 책을 가져갑니다. 다른 아이도 와서 왼쪽에 있는 책을 가져갑니다. 실험관찰 다 못한 아이가 과학 선생님은 책도 썼대. 선생님이 좋다고 하는 책 나도 읽고 싶은데~” 합니다. 사실 오른쪽에 있는 책이나 왼쪽에 있는 책이나 똑같습니다. 책 좋아하는 선생 이름 걸고 기회를 준 겁니다. 과학 시간 끝날 때는 왼쪽이 있는 책이 텅 비었습니다.

학급문고에 손 댈 기회를 자주 주세요. 비 오는 체육시간에 책상 뒤로 밀어놓고 책을 살짝 펼쳐서 세워놓은 뒤에 뛰어넘기라도 해보세요. 책 다섯 권 주고 높이 쌓기 시합이라도 하세요. 아무도 읽지 않은 책 꺼내서 무조건 정답 찍기독서퀴즈를 하세요. 그럼 체육 시간에 뛰어넘은 책, 높이 쌓으려고 몇 번 만진 책, 전혀 모르는 내용 찍어서 퀴즈대회 한 책을 읽으려고 할 겁니다. 관심을 갖도록 책으로 찔러대세요.

학급문고로 무얼 할까?

책 읽으면 교사들은 대부분 독서감상문을 쓰라고 합니다. ‘, 지겨워!’ 독서감상문을 쓰니까 아이들이 책을 안 읽습니다. 30권 읽고 독서감상문 30개를 쓰면 지겹습니다. 똑같은 독서감상문 30편 쓰는 건 하지 말아야 할 짓입니다. 독서감상문을 쓰지 말아야 할까요? 1년 동안 독서감상문으로 쓸 책을 딱 한 권만 정하세요. 독서감상문 전용 책이죠. 아이가 좋아해서 몇 번이고 읽는 책을 골라야 합니다. 아이마다 다르겠죠. 처음 읽고 독서감상문을 씁니다. 5번쯤 읽으면 다시 씁니다. 10번 읽고 다시 씁니다. 세 편을 견주어보세요. 세 편이 모두 똑같은 내용이라면 소용없는 쓰기활동 하지 말고 어떻게 쓰는지 가르치세요. 책을 읽으며 생각하게 만드세요. 세 편 모두 내용이 달라졌다면 어떻게 달라졌는지 견주어보세요. 글감이 바뀌었는지, 깊이가 깊어졌는지……

학급문고가 오면 우리반 책을 정합니다. 1년 동안 우리반 아이들 모두 한 번은 읽어야 할 책입니다. 딱 한 권입니다. 5학년을 할 때 <마당을 나온 암탉, 황선미>을 정했습니다. 32, 아이들을 처음 만나면 마당을 나온 암탉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장면을 이야기합니다. 과학 시간에 동물을 배우면 마당을 나온 암탉에 나오는 동물을 찾아 조사합니다. 계절을 배우면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계절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계절이 바뀌는 모습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찾습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암탉이 어려움을 이겨낸 모습을 찾습니다. 헤어질 때는 암탉이 초록머리를 떠나보내는 장면을 함께 나눕니다. 우리반 아이들이 다 알고 있어서 이야기만 꺼내면 공감대가 형성되는 책으로 만듭니다. 이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독서감상문이 달라집니다.

12월에는 우리반 책으로 퀴즈대회를 합니다. 문화상품권 받으려고 몇 명만 책을 달달 외우는 대회가 아닙니다. 아이들이 모두 한 문제씩 내고 함께 맞춥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선생님이 해준 이야기는 어떤 부분일까?”는 아주 좋은 문제입니다. 책과 우리 경험을 연결해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행사입니다. 우리반 책으로 낱말퍼즐을 만들고, 그림자연극을 합니다.

어떻게 할지 잘 모르면 아무 것도 하지 마세요. 그냥 읽게 하세요. 어설프게 부담 주지 말고 책 참 재미있다말하게 해주세요. 이것만으로도 훌륭합니다. 3월에 학급문고 들여놓고 읽어봐라한 뒤에 잊고 지내다가 방학 직전에 몇 권 읽었냐? 많이 읽은 사람 독서상 준다하지 마세요. 별다른 활동 하지 않아도 꾸준히 학급문고를 아이들에게 던져주세요. 이걸로도 충분합니다.

강요는 금물, 살살 꼬드기세요.

제가 준 목록 그대로 학급문고 산 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강요합니다. 책벌레 선생님이 추천한 책이므로 읽지 않으면 아이 탓으로 돌립니다. 책은 좋지만 아이가 읽지 않아서 문제라는 거지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무관심해집니다. 학급문고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읽지 않아도 신경 안 씁니다. 학급문고가 장식용이 되는 겁니다. , 슬픕니다.

독서지도를 하는 분도 있습니다. 역시 강요합니다. 독서록을 쓰라고 하고 읽은 책 목록을 만듭니다. 책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에게 결과를 재촉합니다. 아이들은 느낌 없이 강제로 하는 활동을 거부합니다. 책을 억지로 읽는다고 해도 책을 싫어합니다. 책을 싫어하게 만드는 학급문고, 독서활동은 끔찍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책에서 손 뗍니다. “어릴 때는 책 참 많이 읽었는데……만 남습니다.

살살 꼬드기세요. 자꾸 만나게 해주세요. 학급문고에 얽힌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주세요. 선생님들도 학급문고 앞에서 좋은 추억 만드시면 좋겠습니다.

 

수요일의 전쟁, 좀 길지만 기가 막힌 책입니다. 저는 수요일의 전쟁을 읽으며 열 번 정도 낄낄거리고 다섯 번 정도 눈물을 글썽입니다. 책 좋아하는 자녀 둘도 몇 번씩 울고 웃습니다. 누구나 이렇지는 않습니다. 책과 친하지 않은 선생님 몇 분께 추천했더니 한두 번 웃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고 합니다. 수요일의 전쟁은 책벌레를 위한 책입니다. 책벌레들을 웃기고 울립니다. 2년 반 동안 1주일에 한 번씩 만난 독서반 아이들이 뽑은 최고의 책 5위에 듭니다.

저는 토론할 때 발문지를 만듭니다. 발문이 토론에 주는 영향을 압니다. 수요일의 전쟁을 나눌 때는 작가가 책을 쓴 까닭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질문을 준비했습니다. 주인공 홀링 후드후드는 수요일마다 돌봐줄 사람이 없어 선생님과 단둘이서 세익스피어 작품을 읽습니다. 세익스피어라니! 처음에는 끔찍한 고문으로 생각했지만 점점 세익스피어에 빠져듭니다. 작품에 나오는 욕을 배워 써먹고 세익스피어 작품으로 연극을 합니다. 저자는 홀링이 겪는 상황 곳곳에 세익스피어 작품을 녹여냅니다. 솜씨가 기가 막힙니다.

게리 슈미트는 영어과 교수입니다. 대학생들과 세익스피어 작품을 나누겠죠! 학생들이 세익스피어를 읽을까요? 깊이가 얼마나 될까요? 언젠가 <완득이>를 읽고 웃지 않는 고등학생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완득이를 교과서와 문제집처럼 읽으면 재미가 없습니다. 웃지 않지요. 우리나라 고전 50선이나 ○○대학 선정 도서 100권을 다 읽어도 저자가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모릅니다. 게리 슈미트도 이런 일을 겪지 않았을까요? 영어과에 입학한 대학생이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지만 스스로 읽지 않은 건 아닐까요? 그래서 세익스피어 작품이 곳곳에 녹아든 책을 쓴 건 아닐까요? 독서반 아이들은 게리 슈미트가 책 안 읽는 입학생을 위해 세익스피어 작품이 얼마나 재미난지 보여주려고 책을 썼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아이들은 책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합니다. 재미로 읽고, 자기가 관심 두는 내용만 찾습니다. 다른 책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토론을 해도 늘 아는 이야기만 하고, 말꼬투리 잡고 이기려고만 합니다. 그러면 배우지 못합니다. 그래서 발문을 준비해야 합니다.

책을 읽어도 발문이 생각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아이들 말을 들으면서 토론거리를 찾습니다. 수요일의 전쟁도 첫 시간에 게리 슈미트가 책을 쓴 의도를 찾는 도중에 , 책 내용을 이야기하며 독서감상문 쓰는 방법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섯 종류 질문을 만들어 두 번째 시간 내내 나누었습니다.

홀링이 겪은 일은 모두 작가의 경험에서 나왔습니다. “만약 우리가 책을 쓴다면 어떤 경험을 포함시키고 싶을까?” 가족과, 친구와, 혼자 겪은 일을 말합니다. 유치원 때, 몇 년 전에, 올해 겪은 일도 말합니다. 홀링이 겪은 일을 보면서 작가에게 소중한 기억을 생각하고 내게 아름다운 순간을 떠올립니다.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독서감상문에 쓰면 어떨까? 홀링이 겪은 일과 저자를 연결하고 내 기억을 글로 표현하면 좋은 독서감상문일까?” 하니 그렇다고 합니다.

아빠와 누나는 격렬하게 대립한다. 누구 편을 들고 싶은가? 가장 마음에 드는 선생님은 누구인가? 여러분이 겪은 선생님과 견주어 보자.” 내용을 이야기한 뒤에 우리는 등장인물과 사건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했다. 이걸 쓰면 된다. 독서감상문엔 인물과 사건에 대한 자기 생각을 쓴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을 물어보니 여러 아이들이 베이커 선생님은 나를 보았다. 나는 알았다. 선생님이 혼자 있으려고 나를 교장실로 보내지 않으리라는 것을. 함께 촛불을 켠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은 없는 법이다.(350)”를 뽑았습니다. “독서감상문에 좋은 문장, 감동을 주는 부분을 써도 될까?” 하니 좋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홀링에게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고 독서감상문을 써오라고 합니다. 그때 홀링은 여자친구에게 배신을 당한 뒤라 이렇게 씁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세익스피어가 인간다움에 대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것이다. ~ 만약 줄리엣을 만나지 않았다면 로미오는 아무 탈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주 받은 운명 때문에 로미오는 줄리엣을 만났으며, 줄리엣이 온갖 계획을 서슴없이 털어놓는 바람에 로미오는 결국 독약을 마시고 죽어가게 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생의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된다.(229)”

며칠 뒤에 배신이 오해였음을 알고 홀링은 독서감상문을 다시 씁니다. “세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인간다움에 대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동시에 두 가지를 좋아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몬태규 가문도 좋아하고 줄리엣도 좋아하기는 힘들다. ~ 만약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예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두 사람은 아직도 살아있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있다 하더라도 그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는 것이 세익스피어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이다.(231-232)”

홀링은 독서감상문 내용을 왜 이렇게 바꾸었나? 이 질문을 통해 볼 때 좋은 독서감상문은 어떻게 쓰는 걸까?” 물었습니다. 홀링이 겪은 일이 독서감상문 내용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나 같은 내용을 써내는 정답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쏟아낸 글입니다. 아이들에게 독서감상문은 줄거리가 아니라 자신을 써야한다고 계속 말해도 바뀌지 않았는데 독서토론을 하면서 독서감상문을 배운 뒤에는 글이 바뀝니다. 독서감상문을 쓰는 것도 과정을 겪어내야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교육을 가르침으로 생각합니다. 잘 가르치는 좋은 선생을 찾아다닙니다. 좋은 문제집 찾으면, 좋은 강사 만나면, 좋은 방법을 알면 아이가 잘 배운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는 맞지만 교육은 가르침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가르침과 배움은 다릅니다. 엉터리로 가르쳐도 배우는 아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지점에서도 아이들은 배웁니다. 잘 가르쳐야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배우는 아이들입니다. 아이를 알아야 합니다.

저는 시를 잘 쓰는 아이를 여럿 만났습니다. 아이들과 나눈 방법을 선생님들께 알려드렸습니다. 한분이 제가 알려준 방법 그대로 시 수업을 하고는 영상으로 찍었습니다. 영상에서 선생님은 제가 보여준 시를 보여주고, 제가 한 활동을 그대로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 반응이 선생님 기대와 다릅니다. 아이들 반응에 따라 질문을 바꾸고 대응해야 하는데 계속 제 방법을 따라갔습니다. 수업 끝나고 선생님이 내가 원하는 목표를 향해 가다가 아이들 반응을 놓쳤다고 합니다. 제가 만든 발문지 그대로 가져다가 다른 아이들과 토론하면 전혀 다른 반응이 나옵니다.

시를 가르치건, 독서토론을 하건, 무엇을 가르치던지 좋은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방법만을 매뉴얼로 내세우다가 아이를 놓치면 안 됩니다. 아이 수준에 따라, 반응에 따라, 준비도에 따라, 관심에 따라 방향이 달라집니다. 2년 동안 독서모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독서모임을 하려면 좋은 책을 골라야 합니다. 발문을 잘 해야 합니다. 글쓰기 지도도 해야 하고 쓴 글을 고쳐주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아이들입니다. 아이가 가장 중요합니다. 아이 눈을 바라보세요. 눈을 보고 말하세요. 아이 눈을 반짝이게 하는 걸 찾으세요. ‘이건 중요하다. 네가 꼭 알아야 한다고 선생님 눈빛을 반짝여도 아이가 그게 뭐가 중요해요?’하면 방향을 바꾸세요. 아이에게 맞추세요. 제 글을 읽는 여러분 모두 아이들과 책을 나누며 함께 배우는 즐거움을 누리기 바랍니다.

글 쓰다 보니 수요일의 전쟁, 또 읽고 싶어집니다. ~ 이 맛을 알면 여러분도 책벌레입니다.

 

<우물 파는 아이들>은 두 이야기가 번갈아 나옵니다. 1985, 주인공 살바는 갑자기 벌어진 총격전에 쫓겨 학교에서 무작정 숲으로 도망갑니다. 난민캠프를 전전하다 1996년에 미국으로 입양되어 갑니다. 살바가 겪는 이야기 사이에 2008년 수단에 사는 니아라는 아이가 몇 시간이나 걸어 물을 뜨러 가는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물이 없어 기생충이 가득한 흙탕물을 마시고 사람들이 죽어갑니다. 흙탕물이라도 차지하려고 부족끼리 싸워 또 죽습니다.

아이들과 나누는 두 번째 책입니다. 고려청자 이야기 <사금파리 한조각>을 쓴 한국계 미국인 린다 수 박이 실화를 바탕으로 쓴 책입니다. 저는 당연히 아이들이 두 이야기를 이해할 줄 알았습니다. 색깔도 다르게 인쇄되었고 1995, 2008년이라고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첫 시간에 몇 아이가 갈색으로 써진 내용은 뭐예요?’ 하고 묻습니다. 아이가 무얼 묻는지 몰랐습니다. 절반 정도 아이가 두 이야기를 연결하지 못합니다. ‘, 읽는 법을 모르는구나!’

첫 시간, 첫 질문으로 책을 읽고 느낀 점을 100자로 써보자고 했습니다. 절반가량은 불쌍하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살바와 니아가 겪은 일을 불쌍하게 봅니다. 초등학생 일기와 독서감상문에도 불쌍하다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안타까운 일을 보면 불쌍하다고 합니다. 다른 표현은 잘 모릅니다. 왜 불쌍하냐 물으니 그냥불쌍하답니다. 내용을 넣어 말해보라 하니 물이 없어 불쌍하다’, ‘힘들어서 불쌍하다합니다. 아이들은 표현을 못합니다. 저는 가슴 먹먹하게 읽었는데 아이들은 불쌍하다로 끝입니다. ‘, 느낌을 모르는구나!’

아이들이 책을 건성건성 봅니다. 대충 내용을 알지만 정확하게는 모릅니다. 적당히 줄거리만 아는 수준으로 책을 읽으니 글을 못 씁니다. ‘랑랑별 때때롱을 할 때는 정답 찾기에서 벗어나려고 내용 확인을 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문제를 냈습니다. 아이들이 책을 어떻게 읽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내용이 짧아서 쉽게 이해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나도 모르는 아이가 둘, 딱 하나만 대답한 아이가 한 명입니다. 나머지 절반은 몇 가지만 압니다. 제대로 읽은 아이는 1/3뿐입니다. 130쪽이 안 되는 짧은 내용인데도 기억이 안 난답니다. ‘, 내용도 모르는구나!’

딩카 족과 누어 족은 서로 싸우고 죽입니다. 싸우는 이유, 싸움이 니아 가족에게 주는 영향이 책에 나와 있습니다. 싸움을 끝낼 방법도 책에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걸 못 찾습니다. 책 내용을 바탕으로 말하지 않고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으로 대답합니다. 정답 찾기를 피하려고 의견을 물어도 책 내용과 상관없는 곳에서 자신이 적당히 아는 상식을 정답으로 말합니다. 아이들에게는 의견이 없습니다. ‘내가 알아요를 계속 외칩니다. ‘, 의견을 말하는 법을 모르는구나!’

책을 대충 읽으면 아무리 많이 읽어도 소용없습니다. 내용을 확인하면서 알려주니 정답을 열심히 적습니다. “이거 왜 적어? 정답 쓴다고 다음에 볼 것도 아니잖아. 책 읽는 태도를 바꾸는 게 더 중요하잖아.” 했더니 다음에는 책을 자세하게 읽겠다고 합니다. 대충 읽으면 안 되겠다고 하고, 평소에 읽던 것과 다르게 읽어야겠다고 합니다. 이 마음이면 충분하겠죠.

지난 독서반 아이들도 처음에는 이랬습니다. 책을 나와 상관 없는 종이 안에 쓰여진 이야기로 읽으면 아무리 많이 읽어도 똑같습니다. 토론도 못하고 글도 못씁니다. 물이 많다면 딩카족과 누어 족은 싸우지 않았을 겁니다. 자원은 희소한데 원하는 사람이 많아서 다툼이 생깁니다. 4학년 사회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마에 있는 표시가 다르다고 싸웁니다. 왕따 문제입니다. 딩카족과 누어족의 싸움은 약과입니다. 수단은 남북으로 나눠 싸웁니다. 우리나라 남북 관계입니다. 책 안에 쓰여진 내용은 수많은 이야기로 연결 지어 생각을 넓히게 만듭니다. 아이 혼자 이걸 못하기 때문에 독서반에 나오는 겁니다. 부모나 교사가 해줘야 하는 부분입니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질문을 쉽게 바꾸었습니다. 책에 나온 이야기를 아이들 삶과 연결 짓도록 준비했습니다. 2명씩 짝을 지어 살바가 겪은 어려움을 10가지 이상 찾게 했습니다. 며칠씩 굶고 물도 못 먹고, 발톱이 빠져도 걸어야 하고, 삼촌이 총살당하고, 악어가 득실대는 강을 건너고…… 살바가 겪은 사실뿐만 아니라 실망감, 배신 당한 아픔도 말합니다. 그 중에 가장 힘든 일 3가지를 고르라고 했습니다. 2명이 의견을 나누어 결정해야 하니 혼자 할 때보다 낫습니다. 2팀은 육체의 고통 중에서, 1팀은 정신의 고통 중에서, 마지막 한 팀은 양쪽에서 골랐네요.

사람은 대부분 자기가 겪은 어려움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한다.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 물으니 여러 대답 중에 한 아이가 내가 직접 겪지 않아서 모르기 때문에 살바가 겪은 일은 그냥 힘들겠구나하는 정도라고 말합니다. 이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여러분이 겪는 어려움은 어떤 거야?” 물었습니다. 사고 당한 이야기도 하고, 가끔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다고도 합니다. 제 딸은 아빠가 화낼 때 마음이 힘들다고 합니다. “아빤 화내는 거 아니라고 하지만 저는 화내는 걸로 들려요라고 하네요. 들으며 찔렸습니다. 독서반에 오지 않았다면 들을 기회가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여러 아이들 앞에서 제가 힘들게 했다고 말하지만 괜찮았습니다. 감추지 않고 꺼낸다는 건 상처가 깊지 않다는 거니까요. 아직은 아빠가 들어줄 거라는 믿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단에 사는 니아가 겪는 어려움도 찾았습니다. 니아가 지금 우리나라에 와서 산다면 무엇에 감사할지 말해 보라고 하니 금세 찾습니다.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다리 안 아프고 친구 많고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답니다. 신발 신고 다니고, 병원 가깝고, 학교에 가는 것도 좋답니다. 평소에 감사하며 사느냐 물으니 그렇다고 합니다. 저는 아이들이 주어진 것 그냥 누리며 생각 없이 사는 줄 알았는데 아닙니다. 아이들 감사를 들으며 제가 감사했습니다. 아빠가 화내서 힘들다고 말한 딸은 아빠, 엄마가 좋아서 감사하다고 하네요.

책에서 두 아이가 겪은 어려움을 찾으며 내용을 조사합니다. 가장 어려운 두세 가지를 고르며 그게 정말 어렵겠다는 느낌을 가집니다. 내가 겪는 어려움으로 연결하고 감사로도 연결합니다. 내용을 이해하고, 생각하고 느끼며, 내 상황에 적용하니 아이들도 재미있나 봅니다. 찾고 이야기하고 듣고 함께 웃고 즐거워합니다. 두 번째 시간에는 정말 배꼽 빠지게 웃었습니다. 예원이(정라초 5학년)는 의자 아래로 내려가 기어다니며 웃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제가 독서반을 하는 까닭은 글을 쓰기 위해서입니다. 이해하고 입력하기만 하는 독서, 밖으로 내뿜어 표현하지 않는 독서는 한쪽 날개를 잃은 새와 같습니다. 읽으면 생각하고 써야 합니다. 쓰기 힘들어해서 책 내용과 아이들 삶을 연결지어 주었습니다. 한 편을 쓸 만한 힘이 없기 때문에 한 문단만 썼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생각나는 경험이나 책과 연결 지은 뒤에 한 문단 씁니다. 내가 겪는 어려움을 살바가 겪은 어려움과 연결 지어 씁니다.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을 의견 차이로, 의견이 차이나는 바탕에 자존심이 있다는 이야기로 연결 지어 씁니다. 지금은 책 읽는 법도, 내용도, 느낌도, 이야기하는 잘 모르지만 차근차근 손잡고 끌어주면 됩니다. 지금은 한 문단 쓰기를 하고 있지만 몇 달 뒤에는 독서감상문 한 편을 쓰겠지요. 그때가 기다려집니다.

<우물 파는 아이들>을 마지막으로 나누는 네 번째 시간입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건물 1층에서 월드비전과 함께 하는 아프리카 우물파기 자선까페가 아닐 열렸습니다. 오민섭(삼척초 6)이 일찍 와서 기다리다가 제게 묻습니다. “선생님 자선까페는 뭐 하는 거예요?” “누군가를 돕기 위해 잠시 여는 까페야. 음료수와 음식을 조금 비싸게 팔아서 그걸로 가난한 사람을 돕는 거지. 여기 가는 사람은 누군가를 돕기 위해 기꺼이 비싸게 사먹는 거고.” 하니 그럼 이번에는 누굴 돕는 거예요?” 하네요. “내가 듣기론 아프리카에 우물 파준다고 하던데……하니 우물 파는 아이들에 나온 것처럼 말인가요?” 해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다음날 교회에서 목사님이 민섭이 이야기를 합니다. 민섭이가 성경을 사려고 용돈을 모으고 있었는데 자선까페 후원함에 23000원을 모두 넣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민섭이 대단하네!’ 하는데 저는 우물 파는 아이들!’을 생각했습니다. 머리에 남는 지식이 아니라 삶과 연결하고 이젠 이웃에게 나눠주기까지 하네요. 민섭이 성경은 내가 사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이 사줬다고 합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책, 살아있는 책을 만나는 아이를 보고 가슴이 뛰었습니다. 책을 지식의 도구로, 자신의 미래를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빛나는 진주 하나를 발견한 마음입니다. 이런 아이를 계속 만나고 싶습니다. 책과 삶을 부지런히 연결시켜주어야겠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