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참 좋습니다. 아이들이 읽기만 한다면. 책을 많이 읽으면 더 좋습니다. 제대로 읽기만 한다면. 독서감상문을 쓰면 더더욱 좋습니다. 책 읽고 느낀 게 있다면. 그냥 책을 읽고, 느낌 없이 독서감상문 쓰는 거론 부족합니다.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독서감상문 쓰면서 책 읽기 싫어지고, 책 읽으며 스트레스 받으면 평생독자가 되지 못합니다.

우리나라 독서 환경에서 <아침독서>만큼 크게 영향을 준 운동은 드뭅니다. 다독왕을 뽑고 독서퀴즈 대회를 하고 독서감상문 대회를 오래도록 해도 변화가 없던 독서환경을 단번에 바꾸었습니다. 공부 잘 하는 몇 명만 참가하던 독서퀴즈, 줄거리를 잔뜩 늘어놓는 독서감상문이 주지 못한 즐거움을 아침독서가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그냥 읽고, 즐거워하고, 책을 좋아합니다. 아침독서는 학교 독서환경에 이슬입니다. 아침마다 아이들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줍니다.

아침독서는 시작점입니다. 아침독서가 정착되는 수준을 넘어 책으로 삶을 이야기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책 읽고 독서감상문 쓰는 수준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서토론을 해야 합니다. 독서토론을 하면 말하고 들으며 저절로 배웁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듣고, 다른 사람과 삶을 나눕니다. 합리성을 갖춰 자기를 주장합니다. 독서토론을 하면 글을 쉽게 씁니다. 줄거리를 넘어 깊이 뿌리를 내리는 귀한 기회입니다.

독서토론을 하려면 질문을 준비해야 합니다. 질문을 잘하면 설명하지 않고도 가르칩니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창비>으로 독서토론을 해봅시다. 주인공 형제는 사자왕 형제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형 요나탄은 사자처럼 용감하지만 동생 카알은 겁쟁이입니다. 전혀 용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사자왕 형제로 불립니다. 그래서 별명을 토론 주제로 잡았습니다. 어떻게 질문해야 할까요?

저는 3단계로 질문합니다. 책을 읽지 않아도 대답할 수 있는 가벼운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아이들이 겪은 일을 이야기하며 긴장을 풀고 토론이라는 중압감을 이겨내게 합니다. <배경지식에 관한 발문>이라고 합니다. 1. 가장 듣기 괜찮았던 별명을 소개해주세요. 왜 그 별명이 마음에 드나요? 책 내용을 잘 몰라도 별명 이야기라 편하게 말합니다. 저도 별명을 말하고 아이들도 맞장구를 치며 별명과 관련된 경험을 떠올립니다. 책 내용과 관련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1-1) 요나탄은 동생 카알 레욘을 스코르빤이라고 부릅니다. 왜 그렇게 부를까요? 1-2) 카알은 형이 불러주는 별명을 어떻게 생각했나요? 1-3) 이 별명 외에 다른 별명은 무엇인가요? 세 질문은 책을 읽어야 답합니다. 독서토론에서 책을 읽고 내용을 파악하는 건 기본입니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3단계 개인 삶, 사회 현상과 관련된 질문입니다. 1-4) 스코르빤과 사자왕이라는 별명은 카알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1-5) 카알의 별명은 사자왕입니다. 카알은 겁쟁이처럼 행동하며 사자왕에게 어울리는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불러주어야 할까요? 실제로 카알과 함께 지낸다면 어떤 별명을 부르겠습니까? 두 질문은 마지막 질문을 하기 위해 꺼냈습니다. 1-6) 카알은 사자왕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겁쟁이입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사자왕처럼 행동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전혀 사자왕처럼 보이지 않는 아이가 사자왕이 될 수 있을까요? 이걸 한 사람의 미래는 현재 드러나 보이는 능력에 달려있다.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 로 바꿔 교차쟁점토론(찬반토론을 일정한 형식에 맞춰 진행하는 토론방식)을 하면 더 재미있습니다.

별명을 말하며 편하게 시작한 이야기가 무엇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하는가?’로 이어집니다. 겁쟁이처럼 보이는 아이라도 사자왕으로 바라보고 기대하며 기다리면 변할 수 있는가를 묻는 질문입니다. 책에서는 겁쟁이 카알도 사자왕이 됩니다. 공부 못하거나 부족한 아이도 사자왕이 됩니다. 정말 그렇다면 부족해 보이고 친구들이 싫어하는 아이를 멀리하지 말아야겠죠. 사자왕이 되리라 기대하고 격려해야겠죠. 실제로 이렇게 행하지는 못하더라도 토론하면서 마음이 바뀝니다. 저자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아이들을 워낙 좋아해서 어른을 이기는 아이 삐삐를 만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자왕 형제도 같은 뜻으로 만들어냈다고 봅니다.

어린이용 책으로 청소년, 어른도 독서토론을 하면서 깊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나비를 쫓는 아버지(현덕, 효리원)’는 그림책이지만 어른들이 울면서 토론하게 만듭니다. 그림책을 나누는 어른들 모임도 있습니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도 초등 고학년 대상 책이지만 질문을 잘하면 청소년과 어른들도 토론할 수 있습니다. 중고등학생을 위한 질문은 이렇습니다.

2. 여러분이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악당은 누구입니까? 한 중학교 여학생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성추행하는 사람에게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좋지 않은 경험을 해서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선생님들도 생각지 못한 대상을 악당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냥 토론이라면 말하기 어려울 텐데 등장인물에 감정을 투사해서인지 솔직하게 말합니다. 2-1) 텡일(책에 등장하는 악당)이 한 나쁜 짓을 모두 말해조세요. 텡일은 왜 그렇게 나쁜 짓을 할까요? 2-2) 텡일이 나쁜 짓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2-3) 텡일은 죽어 마땅하다. 찬성합니까? 반대합니까? 2-1, 2-22-3을 나누기 위한 사전 질문입니다. 곧바로 2-3을 물으면 토론이 너무 쉽게 끝나거나 방향을 잡지 못합니다. 책 내용으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2-3을 물으면 일정한 범위 안에서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합니다. 2-3은 선한 사람에게 일어나는 불행, 악한 사람이 떵떵거리며 잘 사는 모습으로 이어졌습니다.

교사모임이나 어른들 모임에서 나누는 질문입니다. 2-4) “하지만 나는 사람을 죽이지 못한다는 걸 당신도 알잖아요.”, “자네 자신이 죽느냐 사느냐는 문제인데도 적을 못 죽인단 말인가?”, “아무튼 목숨을 빼앗는 것만은 못 하겠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모두 자네 같다면 죄악은 영영 사라지지 않을 텐데.” 나는 반대로 모든 사람이 요나탄 형 같다면 죄악 따위는 아예 생기지도 않았을 거라고 말했습니다.(259) 카알의 말이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2-4) 아돌프 오토 아이히만은 유대인 대학살의 전범이다. 독일 SS중령으로 유대인 박해의 실무 책임자였다. 2차 세계대전 직후 국제 전범으로 수배 중에 아르헨티나로 도피하여 이름을 바꾸고 15년 동안 살았다. 1960년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에 체포되었다. 재판 당시 그는 자신이 유대인을 박해한 것은 상부에서 지시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했다. 1962531일에 처형되었다. 아이히만을 처형한 것은 정당한가요?

4월에 포항교사모임에서 이 질문들로 직접 토론하면서 독서토론을 가르쳐드렸습니다. 2시간 30분 동안 선생님들은 토론을 배운다는 걸 잊어버릴 정도로 이야기에 빠져들었습니다. 한껏 웃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며 자기 이야기와 세상,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나누었습니다. 토론을 끝내고 돌아가면서 선생님들은 학교에서 아이들과 토론을 다짐했습니다. 저는 두 가지를 당부했습니다. ‘아이들이 멍하게 있다면 질문을 잘못한 거라 생각하세요. 질문을 바꾸면 아이들이 반응합니다. 또 하나, 강요하지 말고 마음을 이끌어내세요. 마음을 이끌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질문입니다.’

 

저는 아이를 처음 만나면 책을 좋아하는지, 얼마나 읽었는지 물어봅니다.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아이라면 함께 수다를 떱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잘댑니다. 지금까지 책을 잘 읽지 않은 아이라면 책을 좋아할 수 있을지 알아봅니다. 몇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수요일의 전쟁이나 책벌레들의 책없는 방학을 주고 읽는 태도를 관찰하는 겁니다. 킥킥대며 재미있게 읽으면 틀림없이 문장을 사랑하는 아이가 됩니다.

아예 책에 관심이 없는 아이는 어떻게 할까요? 무더운 여름 한 달, 아이가 책을 읽으며 지낸다면 좋겠지만 속만 태우기 십상입니다. 독서캠프에 보내려고 해도 아이가 싫어합니다. 독서캠프에 가면 책 읽고 글 쓰고 힘듭니다. 놀이 위주로 접근하는 캠프도 있지만 갔다 온 뒤에 책과 더 친해지는 것 같지 않습니다. 저는 독서캠프를 이렇게 합니다.

대상도서를 한 권 정합니다. <책벌레들의 책없는 방학>을 읽고 오는 게 캠프 참가 자격입니다. 평소에 책을 아예 안 읽는 아이라도 캠프에서 즐겁게 지내게 해줄 자신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책을 많이 읽는 아이라도 정해준 책을 안 읽고 오면 힘듭니다. 독서토론은 똑똑하고 말 잘하는 아이 찾아내는 게임이 아닙니다. 책을 꼼꼼하게 읽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적용하는 걸 가르치는 좋은 방법입니다. 아이들은 자신과 다른 의견을 듣고 배웁니다. 지식을 자랑하며 상대를 이기기 위해 덤벼들지 않고 책 내용으로 반박합니다. 책을 읽지 않고 토론하면 논리가 아니라 자기를 내세우게 됩니다. 좋지 않습니다.

<책벌레들의 책없는 방학>에는 재미난 일이 많이 나옵니다. 피비는 양동이에 물을 떠놓고 낚시를 합니다. 루스는 자연사를 좋아해서 뼈조각을 모읍니다. 레이첼과 피비는 아빠가 낚시할 때 쓰는 구더기로 경주를 합니다. 피비는 오소리 굴에 머리를 들이밉니다. 루스와 나오미는 해변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요리를 합니다. 루스는 까마득히 멀리 보이는 섬에 수영을 하러 간다고 덤빕니다. 산에 올라가고, 나오미는 혼자 팔이 부러져서 돌아옵니다. 티파티도 하고 엉망진창으로 놉니다. 독서캠프에서 이것들을 직접 합니다. 아이들 스스로 모닥불을 피우고 고구마를 굽습니다. 네 자매가 해변에 가져간 감자, 베이컨, 토마토를 가지고 알아서 요리합니다. 독서카드를 만들고 그걸로 보드게임을 합니다. 눈 덮인 산을 오르고 오릅니다. 독서토론도 하고 독서감상문과 독서편지도 씁니다. 독서퀴즈를 하지만 지식 자랑하기가 아니라 협력하는 퀴즈대회입니다.

책에 나오는 네 아이는 여름 방학 동안 책을 사랑하는 할머니 집에 갑니다. 할머니는 아이들이 너무 책만 읽는다며 책을 모두 다락방에 감춥니다. 네 아이는 위에 소개한 여러 활동을 하면서도 줄곧 책을 찾아 헤맵니다. <책벌레들의 책없는 방학>을 읽는 아이마다 네 아이가 다락방을 찾아서 책을 읽어야 하는데…… 꼭 책을 읽어야 하는데……합니다. 그래서 좋은 책입니다. ‘책을 읽어라강요하지 않고, ‘아이들이 책을 꼭 읽어야 하는데라는 마음을 저절로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박**(정라초 6)
“~ 일주일만 더 있으면 좋겠다. 나는 이 독서캠프를 통해서 정말 좋은 추억을 만든 것 같다. 다음에도 꼭 다시 독서캠프에 올 것이다. 3일 동안 정말 재미있었다. 정말로……라고 썼습니다. 아빠 직장 일로 6월에 카타르로 떠났는데 무더위를 책과 함께 이겨내면 좋겠네요.
이**(정라초 6)
처음에 딱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무엇을 할지 궁금하기보다는 걱정이 먼저 앞섰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면 생길 어색함을 어떻게 풀지 고민이었다. 하지만 캠프를 시작하자 그 고민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건물 안에서 토론이랑 글쓰기만 할 줄 알았는데 나무로 시계도 만들고, 직접 모닥불도 피워보고, 산에도 올라가면서 어느새 전혀 모르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내 기억 속에 오래오래 남을 소중한 캠프였던 것 같다. 산에 올라가는 것도 힘들었긴 했지만 즐거웠다. 그리고 산에서 내가 만든 카나페를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독서캠프에 현직 교사들이 도우미로 참가했습니다. 차비밖에 못 받는 봉사활동이지만 독서캠프를 어떻게 하는지 배우려고 전라도, 경상도, 경기도, 강원도 선생님 9명이 함께 했습니다. 윤**(대구)선생님은
하루 전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캠프니까 단순히 즐겁기만 하고 낱낱이 활동들만 하다가 의미 없이 끝나면 어쩌지? 나는 단순히 즐겁게만 활동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약간 두려움이 앞섰다. 그리고 마냥 즐겁게 열심히만 참여하는 건 부담스럽다. 점점 캠프를 진행하면서 책과 만나게 되고 사고를 자극하는 질문들이 재밌어졌다. 책과 관련하여 여러 활동들이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니 하는 활동들이 의미가 있어졌다.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흥미진진했다. 사고를 발전시키는 모습에서 나도 흥분되고 몰입이 되었다.”라고 후기에 썼습니다.

활동이 기억날 뿐 의미가 생각나지 않더라도 즐겁게 지내다 오면 괜찮겠지요. 아이에게 추억을 선물하려 했다면 즐거운 기억으로 충분합니다. 즐거운 기억은 아이들을 건강하게 자라게 합니다. 캠프에서 아이들은 독서퀴즈에서 꼴찌를 해도 놀이로 받아들여 즐거워했습니다. 고구마가 설익어도, 목공 시계를 완성하지 못해도 좋아했습니다. 제가 캠프를 하면서 원한 수준이 딱 이 정도였습니다. ‘책과 함께 즐겁게 지내자! 대단한 의미를 주려고 하면 즐기지 못한다. 즐거움을 주면서 스스로 의미를 찾도록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들은 독서지도 방법을 배우려고 오셨으니 아이들보다는 캠프가 주는 의미를 더 생각했을 겁니다.

항상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책 읽으라고 잔소리를 하지만 정작 나 자신조차도 책을 즐겨 읽지 못했다. 지루하고 졸립기만 한 책읽기다. 하지만 이번 독서캠프를 통해 즐거운 책읽기, 신나는 책읽기에 대한 실마리를 찾은 것 같다. 책 읽기가 즐겁지 못했던 이유는 책과 내 삶이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책 속에 들어가 주인공이 되어보고 주인공들과 함께 놀아야 하는 데 책 속의 주인공들을 그저 바라만 보았다. 근데 캠프에서 모닥불도 피우고, 산도 오르고, 주인공의 마음을 생각하며 카드도 만들면서 주인공들이 되어보고 주인공들과 함께 한 것 같다. 또 지루하다고만 생각했던 책에서 아이들이 이렇게 즐거워할 수 있는 활동이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제 다시 교실로 돌아가면 아이들에게 책 읽기가, 책 읽기가 이렇게 신나고 재미있는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같이 책이 지루하고 재미없어 하는 아이들의 생각을 바꿔주고 싶다.” (이**, UBMK 울람바토르 학교)

이** 선생님 후기가 딱 제 마음입니다. ‘하면 또 독서감상문 쓰라고 하겠지. 몇 명만 상 받는 독서퀴즈는 싫은데……가 아니라 그때 정말 즐거웠는데……라는 말을 남겨주고 싶습니다. 독서캠프를 마칠 때 <책벌레들의 책없는 방학>을 지은 힐러리 매케이가 쓴 다른 책들을 조별활동 상품으로 나눠주었습니다. <책벌레들의 비밀후원작전>, <금요일의 개 프라이데이>, <새피의 천사>, <인디고의 별>을 준비했는데 책에 미친 아이들처럼 달려들었습니다. 방학이 다가옵니다. 자녀와, 제자와 함께 즐겁게 노는 독서여행이나 독서캠프 어떠세요?

 

 

일기를 왜 쓸까요? ‘반성하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명심보감 읽고 날마다 자기를 다듬었던 선비들도 저녁마다 반성하는 글을 쓰진 않았습니다. ‘열하일기에는 반성이 없습니다. ‘난중일기는 공무수첩처럼 대부분 한 일을 적었습니다. ‘안네의 일기에는 반성은커녕 소녀의 잡다한 생각만 가득합니다. 초등학생들이 평범하게 지낸 하루 일과와 생각을 쓴 일기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순간이 있을까요?

빼앗긴 내일을 엮은이는 일기는 기억을 왜곡시키지 않고, 경험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 줍니다. 일기는 글을 쓴 시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 세상에 발표할 작정을 하고 쓰는 글은 아니기 때문에 매우 솔직하고 진실합니다. 처음부터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니지만, 결국 개인적인 방식으로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5)”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일기는 평범한 일상에 대한 자기만의 생각을 그때그때 다른 수준과 낱말로 쓰기 때문에 가치가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어른들이 쓰라고 하기 때문에 쓴다고 대답합니다. 시키지 않으면 거의 안 씁니다. 아이들은 일기 쓰는 까닭을 모릅니다. 무언가를 기록하는 게 얼마나 귀한지도 모릅니다. 부모님 중에서도 일기를 왜 쓰는지 직접 느낀 분이 적습니다. 오래도록 일기를 꾸준히 쓴 분은 소수이고, 대부분은 억지로 쓰다가 어느 순간 그만두었을 겁니다. 어른이 되도록 남겨둔 일기를 보며 유치하면서도 순진한 시절을 돌아보는 분도 적습니다. 그래서 일기의 가치를 반성이나 글쓰기 연습정도로 낮춰버리고 강요합니다. 아이들은 억지로 쓰긴 하지만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해방되는 날만 기다립니다. 열심히 쓴 아이들도 중학교에 가는 순간 일기를 끝냅니다.

빼앗긴 내일은 일기 모음집입니다. 1차대전, 2차대전, 홀로코스트, 베트남전쟁, 보스니아내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이라크전쟁을 겪은 아이들이 쓴 일기를 모아놓았습니다. 즐라타 필라보빅이 11, 피테 쿠르가 12살로 가장 어립니다. 전쟁의 한가운데,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아이들은 죽음의 위기와 불안을 일기에 적으면서 견딥니다. 전투에 참가하면서 일기를 쓴 아이들도, 전투가 벌어지지 않는 곳에서 살았던 아이들도 모두 힘들고 어려운 때를 보냅니다. 그리고 일기를 씁니다. 기록으로 남긴 일기를 보며 우리 아이들도 그들이 겪은 불안과 고통을 조금이나마 느낍니다.

어른이 되어서 지금을 돌아보면 어떤 마음이 들까 물었습니다. 미래에 여러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면 좋을까? 3가지를 말해보자.” 했더니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평안하게 살고 싶답니다. 전쟁을 말하는 아이는 없지만 불안을 내비칩니다. 지금은 평안하게 지내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미래는 지금보다 나아질까? 나빠질까?” 물었더니 2/3는 좋아질 거라 하고 1/3은 환경파괴 때문에 나빠질 거라고 합니다. 대답은 하지만 아이들에게 미래는 막연합니다. 확실하게 꿈이 있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지금이 소중하다는 건 압니다. 토요일마다 모여 책을 읽고 토론하고 글을 쓰는 이 순간이 소중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기록으로 남겨놓지 않으면 희미한 추억으로 남을 겁니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마다 기록으로 남길만한 걸 찾으라고 합니다. 토론하는 이유도 기록할만한 걸 찾기 위해서라고 가르칩니다. 계속 이걸 강조해서 아이들도 기록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빼앗긴 내일주인공들도 죽음의 불안을 기록으로 남겨 놓았기 때문에 그때를 기억하며 내일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런 책을 읽는 아이가 별로 없습니다. 빼앗긴 내일도 처음에는 즐라타 필라보빅 혼자 쓴 일기모음으로 출판되었습니다. 보스니아 내전에서 저격병의 총탄을 피해 숨어 지내며 쓴 기록을 읽는 사람이 적어 절판되었습니다. 빼앗긴 내일도 언제 절판될지 모릅니다. 일기를 반성이 아니라, 개인의 역사를 남기는 중요한 기록으로 받아들인다면 많은 사람이 오래도록 읽을텐데 안타깝습니다. 일기는 기록입니다. 기록 자체로 중요합니다. 난중일기, 열하일기, 안네의 일기 모두 기록에 가치가 있습니다.

아이들과 토론하면서 가장 신경을 쓴 주인공이 시란 젤리코비치메리 해즈보운입니다. 시란은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가장 싫어하는 낱말은 폭탄테러입니다. 시란은 폭탄이 터질까봐 조마조마하고 폭탄을 터트리는 아랍인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메리 해즈보운은 팔레스타인 사람입니다. 메리는 탱크바퀴가 굴러가는 소리를 들으면 시란이 보인 반응을 그대로 보입니다. 탱크는 메리의 마을에 공포로 몰아넣었습니다. 메리가 사는 마을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은 교회에 집중포격을 가했습니다. 이런 내용을 알아본 뒤에 시란 젤리코비치와 메리 해즈보운이 서로의 일기를 읽는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물었습니다.

둘은 서로를 모릅니다. 자기가 겪은 일로만 판단합니다. 시란에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폭탄을 짊어지고 다니는 나쁜 사람들입니다. 메리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은 탱크를 몰고와서 정든 곳을 밀어버리고 황폐하게 만드는 나쁜 사람들입니다. 둘이 서로의 일기를 읽는다면~ ‘껴안고 울며 서로를 위로할 것이다는 대답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슬퍼하는 아이는 슬픔을 담은 기록을 보며 회복됩니다. 소망을 잃은 사람은 자기보다 더 소망 없는 곳에서 일어선 사람을 보며 회복됩니다. 기록으로 남길만한 여건이 되지 않는 형편에서 남긴 기록은 지금도 사람들을 회복시키며 일으켜 세웁니다.

호다 타미르 제하드는 이라크에 삽니다. “호다 제하드(이라크)는 미군이 아줌마를 죽인 걸 일기에 썼다. 아줌마는 아침 6시에 왜 밖으로 나갔을까? 미군은 왜 아줌마에게 총을 쏘았을까?” 아줌마는 집이 무너지는 바람에 아이들이 다칠까봐 도움을 요청하려고 나왔습니다. 미군은 여자로 변장한 스파이라 여겨 죽였습니다. “이럴 때 옳고 그름을 어떤 기준에서 판단해야 하는가?” 물었더니 둘 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전쟁이 가져온 고통이지 누구의 잘못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시란과 메리가 서로의 일기를 읽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물었던 것처럼 호다 타미르 제하드의 일기를 미국 사람들이 읽고 이라크 전쟁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어떻게 말할까?”도 나누었습니다. 생각이 달라질 거라고 대답합니다. 영상으로 미사일 쏘는 걸 보는 것과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아이가 쓴 일기를 읽는 건 완전히 다릅니다. 그래서 기록이 중요합니다. 아이들에게 계속 기록을 강조하며 마지막으로 이렇게 물었습니다. “‘빼앗긴 내일과 소개한 일기글을 바탕으로 지금 우리나라에 가장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이야기해보자.” 아이들에게 자유로운 대답을 듣기 위해 한 질문이 아닙니다. 정답을 기록으로 만들어 놓고 이래도 기록하지 않을 거냐?’를 말하려고 작정하고 한 질문입니다.

또 다른 주인공 클라라 슈왈츠는 유대인입니다. 포로수용소에서 죽어야 하지만 독일인 벡씨가 숨겨주어서 살아남습니다. 전쟁 뒤에 벡씨 가족은 나치에 협력한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클라라의 일기를 증거로 목숨을 구합니다. 대단한 내용을 적지는 않았지만 아이의 일기가 한 가족을 죽음의 위기에서 구합니다. 일기는 전쟁의 광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피난처를 주었습니다. 전쟁을 게임 속 이야기로만 아는 아이들에게 내일을 빼앗긴 아이들 일기는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기록입니다. ‘쟤네는 힘들고 어려운 형편인데도 저렇게 잘 살았다. 너도 공부 좀 해라!’가 아니라 기록하라고 말해야 합니다. 독서반에서 아무리 책을 읽고 토론해도 글을 쓰지 않으면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기록하고 또 기록하세요.’

 

대상도서 : 15소년 표류기, 비룡소

15소년 표류기는 <80일간의 세계 일주><해저 2만리>를 지은 쥘 베른 작품입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름난 소설이어서 세계 명작 시리즈에 꼭 들어갑니다. 독서반 아이들도 이미 몇 명이 읽었다고 합니다. 원작을 읽은 아이는 얼마나 될까요? 한 명도 없습니다. 모두 출판사에서 적당히 줄여서 낸 책을 읽었습니다. 레미제라블이 영화로 나왔을 때 기대하며 보았습니다.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읽어야 했는데 원작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니 실망이 큽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줄여서 편집하지 않으면 10시간 분량이 되었을 테니까요.

원작을 줄여놓은 책은 편집자의 책입니다. 줄거리를 바꿀 수 없으니 설명과 묘사를 뺍니다. 중심 줄거리에 영향을 주지 않는 사소한 이야기도 빼야 합니다. 세부묘사가 빠진 소설은 읽는 맛이 완전히 다릅니다. 화학조미료 넣어서 흉내냈지만 구수한 맛이 사라진 음식과 같습니다. 출판사에서 원작을 줄여서 책을 내놓는 까닭은 아이들이 줄거리 중심으로 책을 읽기 때문입니다. 복선과 암시를 빼버리고 편하게 읽게 만들어야 많이 팔립니다.

독서반에서 아이들에게 토론할 질문을 스스로 만들라고 하면 저도 생각하지 못한 좋은 질문을 만듭니다. 깊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저를 놀라게 합니다. 글도 잘 씁니다. 그렇지만 책을 읽을 때는 줄거리가 우선입니다. 더 좋은 능력을 많이 갖고 있지만 줄거리를 읽어내는 수준을 뛰어넘기가 어렵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책은 내용이 마음에 들어야 끝까지 읽습니다. 내용은 줄거리입니다. 당연히 아이들은 줄거리 중심으로 글을 읽습니다. 이 습관을 고치려고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하고 글을 씁니다. 꾸준히 하면 줄거리를 읽는 수준을 넘어서리라 믿고 계속 이야기를 나눕니다.

쥘 베른이 이름난 사람이고 15소년 표류기도 명작에 이름을 올렸지만 이미 150년 전 작품입니다. 내용이 단순합니다. 토론하지 않으면 15명이 폭풍우를 만나 섬에서 2년 반 살다가 구조되는 이야기로만 기억합니다. 그러면 재미있는 책재미없는 책으로는 구분하지만 좋은 책나쁜 책, 의미 있는 책으로는 말하지 않습니다. 읽고 줄거리를 알고 끝입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하면 책을 깊이 읽습니다. 무조건 교훈을 찾으려고만 하지 않습니다. 깊이 느끼건, 날카롭게 분석하건 줄거리를 읽는 수준과는 견줄 수 없이 발전합니다. 15소년표류기를 읽고 이렇게 나눴습니다.

1. 분석 : 15소년은 폭풍우를 만났지만 아무도 안 죽습니다. 아이들은 어려운 일을 많이 만나지만 모두 잘 헤쳐 나갑니다. 제규어도 단칼에 죽이고, 바다표범을 잡아 등잔으로 쓸 기름을 만들기도 합니다. 배를 분해하고 뗏목을 만듭니다. 도르레를 설치해서 무거운 물건을 뗏목에 싣습니다. 사냥도 잘하고 긴 겨울도 아무 사고 없이 버팁니다. 대포를 쏘면 백발백중이고 해적을 만나도 아무도 안 죽습니다. 당연히 해적은 모두 죽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우연을 찾아보니 너무 많습니다. 줄거리를 읽을 때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우연이 너무 많아서 아이들이 웃습니다. 이야기를 나눈 뒤에야 이거 너무 유치한 이야기잖아라고 합니다.

2. 비교 : <영국의 기숙학교는 학생들에게 보다 많은 자율권을 주고 따라서 아이들은 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 이것이 학생들의 장래에 매우 좋은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이 철없이 지내는 시간이 더 짧아지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교양교육과 지식 교육이 함께 이루어진다.(62)>라는 문장으로 우리나라 교육제도를 토론했습니다. 로알드 달이 지은 발칙하고 유쾌한 학교에 나오는 영국 기숙학교의 모습과 견주어 보았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교육 받은 우리가 표류를 한다면 15소년처럼 할 수 있을까도 나누었습니다. 중학교에 가기 직전이라 중학교 교육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3. 인기투표 : 이 시간은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글을 쓰기 전에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려고 가장 마음에 드는 아이는 누구냐?’ 물었더니 브리앙, 고든, 도니펀, 쟈크를 말합니다. 여자 아이들에게 애인으론 누가 좋을까?’ 물었다가 토론교실이 콘서트장처럼 변해버렸습니다. ‘도니펀 잘생기지 않았니?’, ‘귀족이니까 돈도 많을 거야!’, ‘까칠한 게 멋있어하며 도니펀을 지지합니다. 몇몇은 다정하고 친절한 브리앙과 사귀는 것처럼 말합니다. 브리앙은 친절하고 다정하지만 재미는 없을걸!’ 했더니 도니펀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남자는 역시 잘생겨야 해!’하며 깔깔댑니다.

4. 새로운 상상 : 브리앙과 도니펀이 갈등을 일으키다가 도니펀이 아이 3명과 함께 떠나잖아. 쥘 베른은 아이들이 돌아와 함께 지내는 이야기로 만들었지만 실제라면 어떨까? 실제로 고집 세고 콧대 높은 도니펀이 무리에서 떠난다면 어떻게 할 것 같아?” 물었습니다. 아이들은 서로 미워하다가 총을 쏘며 싸웠을 것이다’, ‘도니펀이 브리앙을 해칠 것이다’, ‘도니펀이 해적들을 불러들여 브리앙 편에 든 아이들을 몰아낼 것이다에 이어 도니펀이 동쪽 동굴에 정착한 다음 살기 편하게 만들어서 브리앙 편에 있는 아이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것이다. 브리앙이 용서를 빌며 찾아와서 부하가 되겠다고 할 때까지 수를 쓸 것이다는 의견까지 나왔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너희들 작가다. 지금 말한 식으로 글을 써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있다고 했더니 무슨 책이냐고 묻습니다. 다음 달에는 읽자고 조른 그 책은 파리대왕입니다. ‘파리대왕은 아이들에게 어렵습니다. 그래도 계속 읽자고 합니다.

<분석>은 제가 주로 해줬습니다. 줄거리를 읽어내는 아이들은 책을 분석하지 못합니다. 제가 말해주고 나서야 비로소 , 그렇구나!’ 합니다. <비교>는 함께 나누었습니다. 로알드 달 시대 이야기는 제가 해주었고, 현재 학교 모습은 아이들이 주도했습니다. <인기투표>는 완전히 아이들 차지였습니다. 저는 그저 웃기만 했습니다. <새로운 상상>을 할 때는 질문만 했습니다. 토론하면서 아이들 마음은 우주와 같다. 잘 끌어내기만 하면 넓고 새로운 생각으로 끝없이 뻗어나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5소년 표류기로 토론하면서 파리대왕을 끌어냈으니 이렇게 생각해도 되겠지요!

700쪽이나 되는 분량이 부담스러워서 350쪽 정도의 요약판을 읽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줄거리는 알겠지만 문장과 복선, 묘사와 긴장을 제대로 읽지 못했을 겁니다. 장면을 눈앞에 떠올리기 어려웠을 테고 유치한 이야기가 되었겠죠. 위에서 인용한 62쪽 문장은 줄거리에 영향을 주지 않으니 사라졌을 겁니다. 그럼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와 비교하며 토론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인기투표 역시 불가능합니다. 700쪽 분량에는 당시 삽화를 넣었지만 350쪽에는 그렇지 못하겠지요. 도니펀이 잘생겼다는 걸 알 수 없으니 아이들 모두 브리앙을 뽑을 겁니다. <새로운 상상>도 안 됩니다.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묘사와 설명이 없는 책을 읽으면 파리대왕은 없습니다.

책을 나눠주었을 때 아이들은 이렇게 두꺼운 책은 처음이에요.’, ‘400쪽 넘는 책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는데……했습니다. 그렇지만 1주일이 지나고 다시 만났을 때는 ‘700쪽도 별 것 아니네요.’라고 합니다. 두께는 책읽기에 걸림돌이 되지 않습니다. 줄거리만 읽는 책읽기가 더 걸림돌입니다. 제대로 읽고 여럿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을 펼쳐야 합니다. 그렇게 펼쳐낸 생각들 가운데 하나를 붙들어 글을 쓰며 정리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새로운 명작을 만들지 않을까요?

<위험한 비밀편지>를 나눠주자 아이들이 첩보추리소설을 떠올리며 즐거워합니다. 그동안 제가 나눠주는 책이 꽤나 무거웠나 봅니다. 좀 가벼운 책을 읽는다 해도 아이들 삶이나 사회 현상과 연결지어 고민을 끌어내려고 했으니 무겁게 느꼈을 겁니다. 쉬운 책이건 어려운 책이건 토론하다 보면 빠져들어 즐거워하지만 새 책을 정할 때면 위험한 비밀을 다루는 내용을 기대합니다. 새 책을 정할 때마다 가볍고 편한 것을 기대하는 마음이 작동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받아갈 때 표정이 아주 밝습니다.

잔뜩 기대했던 아이들은 실망한 표정으로 모였습니다. 추리소설이 아닌 건 참을만하지만 내용이 너무 허무하답니다. 비밀편지가 계속 이어지리라 기대했는데 편지 4번 쓰고 끝이라니 황당하다고 합니다. 바로 앞서 읽은 <책벌레들의 비밀후원작전>에 나오는 영국 아이들은 아프리카까지 찾아가지만 이 책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낙제위기에 처한 애비가 낙제를 받지 않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아이와 펜팔을 하다가 허무하게 끝납니다.

아프가니스탄에 사는 사디드라는 남자아이와 미국에 사는 애비라는 여자아이가 편지를 주고받는 이야기입니다. 애비는 유급 위기에 처해 특별과제로 펜팔을 선택합니다. 애비는 아프카니스탄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숙제를 해내기 위해 편지를 보냅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마을어른들이 모여 회의를 엽니다. 적대국인 미국, 게다가 여자아이와의 편지라니요!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의 관계를 모르면 <위험한 비밀편지>는 위험도 없고 비밀도 없는 이상한 편지가 됩니다.

독서반 아이들도 두 나라에 대한 배경지식이 별로 없습니다. 이제는 뉴스에서도 아프가니스탄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책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음식점을 찾아가는 것도, 여행을 하는 것도 배경지식이 풍부할수록 제대로 맛볼 수 있습니다. 배경을 모르고 단순하게만 이해하면 토론과 적용도 단순해집니다. 그래서 배경을 이해하는 조별활동을 했습니다. ‘사디드와 애비가 사는 곳의 차이점을 최대한 많이 찾기시합입니다. 묻어가는 아이가 없도록 2-3명으로 팀을 나눠 상품도 걸었습니다. 기준도 알아서 정하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정한 기준은 종교, 전쟁상황, 기후, 경제 여건, 성차별, 정치방식, 전자기기 사용, 인구밀도, 인종, 언어, 산업, 음식, 화폐, 지형, 학교 모습입니다. 많이 찾기 시합답게 유치한 대답도 나오지만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이 얼마나 다른지 이해합니다. 편지가 위험비밀을 담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합니다.

그래도 두 나라를 멀게만 느끼기 때문에 우리 형편에 맞게 재구성했습니다. “우리가 위험비밀을 느낄만한 편지 상대를 찾아보자. 서울 아이들은 어떨까? 제주도는?” ‘북한이라고 말하면 이해할까요? 직접 북한 아이와 편지를 주고받지 않는다면 제대로 느끼지 못할 겁니다. 그래도 최대한 비슷하게 느끼는 쪽으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저는 독서토론 발문을 적용으로 이끕니다. 책에만 담겨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는 어떤 모습으로 되살아날까 묻습니다. 그래야 그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로 받아들입니다. 내 이야기가 되면 독서감상문도 내 느낌을 쓰고, 독서논술도 내가 살아가는 사회를 반영한 생각을 담아 씁니다.

이어서 세 가지 논제로 찬반토론을 했습니다. 1. 유급제도가 필요하다. 2. 사디드가 편지를 보낸 일은 정당하다. 3. 애비가 사디드에게 받은 편지를 감추고 동생 아미라의 편지만 게시판에 걸어놓는 것은 선생님과 정한 원칙에 어긋난다. 아이들이 자기 이야기로 받아들인 논제는 유급제도입니다. 제가 생각지 못한 근거를 꺼내서 설득합니다. 찬성의견이 더 많습니다. 애비는 머리는 좋지만 왜 공부해야 하는지 몰라서 안 했습니다. 그러다가 유급된다는 말에 공부를 했으니 유급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동생들과 잘 어울려 놀기 때문에 한 해 더 배워서 알고 가는 게 낫다고도 합니다. 알아야 할 내용을 모르고 올라가면 결국 좌절한다는 의견도 냅니다. 반대편은 애비가 잘하는 것을 격려하지 않고 성적으로만 평가하는 건 잘못이라고 말합니다. 오두막을 만들고 바깥놀이를 잘하는 장점을 살려주어야지 이미 아는 것을 왜 다시 해야 하는지몰라서 숙제를 하지 않은 애비를 괴롭히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유급을 두고 말한 내용은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세 시간을 하면서 우리 삶과의 적용점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글로 쓸 만큼 이야기를 충분히 나눴지만 아이들에겐 부족합니다. 정확하게 알지 못하거나, 스스로 느끼지 못하면 글을 쓰기 어렵습니다. 아이들은 제 질문에 대답은 했지만 글로 쓰는 건 다릅니다. 여러 가지 질문을 연결지어 하나의 주제로 이어내는 건 어렵습니다. 전체를 넓게 보는 눈을 가져야 쉬운데, 아이들에게는 아직 어렵습니다. 제가 그렇게 질문하는 이유, 앤드루 클레먼츠가 <위험한 비밀편지>를 쓴 이유를 깨달을 정도는 아닙니다. ‘유급제도로 독서논술을 쓰는 주제가 아니라면 적당히 쓸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까지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편지를 소개해보자고 했습니다. 주로 가장 친한 친구와 주고받은 편지를 말합니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 외국에 갔을 때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하는데 몇 아이가 맞장구를 칩니다. 아이들 눈빛이 빛납니다. 잠시지만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지낼 때 돌봐주고 마음을 나눠준 사람들을 잊지 못한답니다. 사디드와 애비가 일상을 벗어난 경험을 편지로 나눴듯이 아이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이 이런 마음을 일으키나 봅니다. ‘소중함따뜻함을 이야기하는 아이들 표정과 몸짓에 저도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아이들이 이런 느낌을 알고 있구나!’

마지막으로 빠르고 차가운 이메일, 손편지로 바꿔드려요라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이메일로 편지 내용을 보내면 손편지로 바꿔서 보내주는 서비스에 관한 기사입니다. 손으로 쓴 글씨가 더 좋다는 말을 아이들이 합니다. 독서반 아이들은 학원에 많이 다니지 않습니다. 대도시에서 사는 것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예쁜 옷과 최신 스마트폰을 원하지만 따뜻한 이웃소중한 친구아름다운 추억의 가치를 압니다. 사람들은 흥미롭고 새로운 일들을 원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을 모른다. 지금 곁에 있는 친구, 가족, 무심결에 지나친 작은 풍경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막상 자신의 곁을 떠나면 그때서야 소중함을 깨닫는다. 소중한 것인지도 모르고 부수고, 깨뜨리고, 새로 개발하고…… (중략) 그저 많은 사람들과 만나 포장된 마음만을 보여준다. 포장된 마음을 끝없이 보여주며 진심을 감추는 사람들. 그건 로봇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이가진) 아이가 쓴 글에 마음이 뭉클합니다.

<위험한 비밀편지>위험비밀에 대한 기대에서 시작해서 허무함을 지나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는 따뜻함으로 끝났습니다. 이런 이야기로 흘러올지 저도 몰랐습니다. 책을 읽고 내용파악을 위한 첫 시간 발문을 준비하면서 토론이나 글쓰기 방향을 정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제 의도와 다른 곳으로 흘러갑니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방향을 따라갑니다. 준비해간 발문지를 접어두고 아이들 흐름을 따라갈 때도 많습니다. 아이들은 저에게 배우려고 독서반에 오지만 저는 아이들에게 배우려고 독서반에 갑니다. 책을 좋아해서 저를 찾아오는 아이들을 참 좋아합니다.

 

독서수업을 하려면 아이들이 책을 읽어야 합니다. 그러나 읽지 않는 아이가 꼭 있습니다. 그렇다고 독서 수업할 때마다 선생님이 책을 읽어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책을 읽지 않은 아이, 적극 참여하지 않는 아이를 빼고 나면 수업에 참여하는 아이는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럴 때 저는 거꾸로 퀴즈를 하면서 배경지식만으로 독서토론을 합니다.

거꾸로 퀴즈는 아이들에게 재미있게 책을 소개하기 위해 제가 만든 방법입니다. 아이들이 한 번도 읽지 않은 책, 내용을 전혀 모르는 책을 소개할 때 거꾸로 퀴즈를 합니다. 거꾸로 퀴즈는 책을 읽기 전에 책 내용을 맞추는 활동입니다. 읽고 얼마나 아는지 알아보는 문제 풀이가 아니라서 부담이 없습니다. 어차피 책을 읽은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틀려도 괜찮습니다. 읽고도 모르면 부끄러울 수 있지만 안 읽은 책은 하나만 맞춰도 기분이 좋습니다. 거꾸로 퀴즈를 하고 책을 소개하면 아이들이 책에 굉장한 관심을 보입니다. 책을 잘 읽지 않는 아이들도 관심을 갖습니다. 책을 많이 읽은 아이와 경쟁해서 지기만 하는 대회가 아니거든요. 그렇다고 거꾸로 퀴즈가 단순히 찍기 대회는 아닙니다. 배경지식을 많이 알수록 문제를 맞추기 쉽습니다.

아버지의 편지(정약용, 한문희 엮음, 함께읽는책)는 정약용이 두 아들에게 쓴 편지를 편집한 책입니다. 특별히 독서와 공부’, ‘생활과 실천에 관한 내용을 가려 뽑았습니다. 귀양 간 아버지가 자식들을 걱정하며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입니다. 정약용 전기를 읽은 아이도 이 책은 거의 읽지 않습니다. 대부분 훈계하는 내용이고 고리타분합니다. 거꾸로 퀴즈를 하면서 관심을 갖게 하면 많은 아이들이 딱딱한 내용도 읽으려고 할 겁니다. 거꾸로 퀴즈를 해볼까요?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이해력과 통찰력이 뛰어난 아이는 아래 문제 중에 3-4문제는 맞출 수 있습니다.

1) 앞으로 우리가 읽을 책은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아들 이름은 학연, 학유입니다. ‘이분 이전에 이분만한 사상가가 없었고, 이분 이후에도 이분만한 학자가 쉽사리 나타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할 정도로 뛰어난 분입니다. 조선시대에 억울하게 귀양을 갔던 이분은 누구일까요?
  아이들은 대부분 정약용을 맞췄습니다. 6-1학기 교과서에서 본 적이 있다는 아이도 있고, 귀양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아이도 있습니다. 정답을 맞춘 뒤에는 두 편으로 나눠 정약용 설명 주고받기 배틀을 합니다. 서로 주고받으며 정약용에 대해 더 이상 설명하지 못하는 편이 나올 때까지 번갈아가며 말하면 됩니다. ‘남자다’, ‘아들이 둘 있다’, ‘귀양을 갔다는 쉬운 대답부터 거중기와 수원성을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목민심서, 경세유표에 이어 자산어보를 지은 정약전까지 등장합니다. 재미로 시작한 퀴즈가 정약용을 이해하는 시간으로 이어집니다. 그것도 즐겁게 게임하면서 말이죠. 정약용을 잘 모르더라도 친구들이 한 말을 잘 들으면 응용해서 대답할 수도 있습니다. 이만하면 저자에 대한 배경지식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2) 독서와 공부 내용에 관한 편지의 제목입니다. ( )에 들어갈 말을 넣어주세요.
확고한 뜻을 세우고 ()을 읽거라. 중요한 내용은 (기록)해 두거라. 공부는 계획을 세워 (실천)해야 한단다. (독서)는 집안을 일으키는 떳떳한 길이다. 이 문제 역시 한두 아이만 틀리고 대부분 맞추었습니다.

3) 선생님께서는 집안을 안정시키는 네 가지 근본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속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요? (4)
화목하고 순종함 부지런하고 검소함 독서 친구 사이의 의리 이치를 따르는 것 4번 친구 사이의 의리는 집안을 안정시키는 일과 상관이 없습니다. 독서라고 답한 친구가 좀 많았습니다.

4) 선생님은 편지에서 두 아들에게 어떤 가축을 키우는 방법을 자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자주 먹는 이 가축은 무엇일까요?
여기서는 혼자 문제를 풀지 않고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정답은 닭인 것 같은데 왠지 함정이 있는 것 같다고 합니다. 소나 돼지 정도 되어야 키우는 방법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고도 합니다. 정답을 맞추고 그 자리에서 책을 펴서 내용을 찾았습니다. 함께 읽고 어떻게 키우라는 건지 알아보았습니다. 정약용 선생님은 이 가축에 관한 책을 읽어보라고 권합니다. 색깔, 키우는 방법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조사해보라고도 합니다. 가축을 그냥 키우지 말고 연구를 해서 개량시키라는 뜻입니다. 이 부분을 통해 정약용 선생님이 무엇을 하건 대충 하지 말고 연구하는 자세로 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500권이나 되는 책을 지으셨겠죠. 더불어 자산어보역시 같은 마음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떤 가축인지는 여러분이 찾아보세요.)

5) 다음은 생활과 실천의 장에 쓴 편지 제목입니다. 편지에 없는 제목은 무엇일까요?(3)
눈앞의 이익을 쫓기보다 옳은 일을 하자꾸나 사람이란 목숨보다 의리를 따라야 하는 것이다.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 공부의 근본이다. 삼가고 조심해서 행동하거라. 채소밭을 가꿀 때에는
질문이 생활과 실천의 장에 관한 것이므로 공부의 근본을 설명한 3번이 정답이 아닙니다. 이 다섯 문제만으로도 저자와 책 내용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퀴즈를 하면서 궁금증이 생겼고, 읽으면서 퀴즈한 내용도 나오니 책을 더 즐겁게 읽습니다. 그럼 아버지의 편지처럼 교훈만 들어있는 딱딱한 책도 읽어냅니다.

거꾸로 퀴즈를 하고 나서 문장쓰기를 했습니다. ‘책은 ( )이다를 쓰고 설명을 썼습니다. ‘나와 책의 관계는 ( )이다.’를 쓰고 역시 설명을 썼습니다. ‘아버지의 편지에서 정약용 선생이 독서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기 때문에 을 주제로 정했습니다. 다른 책으로 거꾸로 퀴즈를 한다면 선생님이 정한 주제로 문장쓰기를 하면 됩니다. 거꾸로 퀴즈는 내용에 관심을 갖게 합니다. 문장 쓰기는 아이가 책 읽기 전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려 줍니다.

두 가지 활동을 하고 진짜 독서토론을 예고합니다. 그래도 책을 읽지 않고 오는 아이가 있습니다. 독서토론을 할 때 책을 읽지 않은 아이가 끼어 있으면 난감합니다. 책을 읽지 않은 몇몇 아이들은 구경꾼이 되고, 결국 떠들면서 방해꾼이 됩니다. 그 아이들에게만 다른 걸 시키기도 하지만 역시 방해가 됩니다. 이럴 때는 책을 읽은 아이들이 대답하기 전에 읽지 않은 아이들에게 상상하여대답해보라고 먼저 시킵니다. 읽지 않은 아이들이 거꾸로 퀴즈로 책에 있을 법한 대답을 예측하여 말하고, 읽은 아이들이 정답 여부를 확인하는 겁니다. 신기하게도 정답을 맞추는 아이가 있습니다. 작가가 이끌어가는 이야기 그대로 예측해서 책을 읽고 온 친구들을 놀라게 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비록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책 내용을 맞히는 아이에게 , 작가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구나! 네가 쓰기만 하면 작가가 되겠네!’라고 해줍니다. 그러면 아이는 자기가 모르는 내용을 친구들이 말할 때에 관심을 갖고 듣습니다. 책 때문에 꾸중 듣지 않고, 선생님이 시킨 다른 활동 하면서 소외되지 않고, 칭찬까지 듣습니다. 그러면 다음에는 책을 읽고 옵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고, 책을 읽지 않은 아이가 독서토론에 집중하게도 만듭니다. ‘넌 읽었고, 넌 잘했고, 넌 왜 그러니?’식의 평가는 책에서 멀어지는 아이를 만듭니다. 모두 함께 책벌레가 되도록 칭찬하고 격려해주세요.

 

(지난 호에 이어) 서찰을 전한 아이처럼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고민한 적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대답이 참 재미있습니다. 자신이 잘못해서 엄마한테 혼날 때 엄마가 너 몇 대 맞을래?’ 하면 진짜 고민이 된답니다. 한 대 맞는다고 하면 속이 들여다보이고, 맞는 횟수를 늘리면 아파서 몇 대가 적당한지 고민하는 게 중요한 결정이랍니다. ‘어떤 옷을 고를까, 무얼 먹을까도 중요한 결정입니다. 한 아이는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가 사귀자고 고백을 했답니다. 그러자고 하면 자기가 싫고, 싫다고 하면 상대방이 힘들어할 것 같아서 고민이랍니다. 더 거창한 걸 기대했지만 듣고 보니 정말 그렇겠네!’ 하는 마음이 듭니다. 아이들에게 서찰을 전하는 것은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형제와 이웃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치자는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겠지요!

미래에 정말 중요한 결정을 할 때가 언제일지 물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문과와 이과 결정할 때, 대학교에서 과를 선택할 때, 직장, 결혼대상자 등을 말하더니 결론은 입니다. 자신이 무얼 하며 살아갈지 결정하는 순간이 가장 힘들 거라고 합니다. 지금도 하는 고민이지요. ‘앞으로 나는 무얼 하며 살아갈까?’를 이야기하면서 서찰을 전한 아이가 같은 고민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찰을 전할까 말까 고민하는 것과 이 고민이 다르지 않습니다.

이어서 아버지 잃고 자기가 위험에 처하면서도 서찰을 전했지만 결국 전봉준은 죽었다. 그럼 아이가 서찰을 전하려고 고생한 건 의미가 없는 걸까?‘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반으로 의견이 나누어졌습니다.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 아이들은 아버지의 뜻이니 따라야 한다, 맡은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의견을 냅니다. 의미 없다는 아이들은 그래봐야 죽지 않았느냐? 아버지도 죽고 전봉준도 죽었는데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합니다. 그래서 다시 질문했습니다.

과정이 중요할까? 결과가 중요할까? 쉽게 말해보자. 열심히 공부했는데 시험 치는 날 상태가 안 좋아서 결과가 나쁘게 나왔다. 반대로 공부 안 하고 놀았는데 결과가 좋게 나왔다. 어떤 게 좋은가?” 반 반 정도로 나뉜 의견이 이번에는 대부분 과정이 좋다는 쪽으로 기웁니다. 어찌 되었건 성적 잘 나오면 좋다고 대답할 줄 알았는데 의외입니다. 이걸 바탕으로 서찰을 전한 아이 결정이 의미가 있느냐고 다시 물으니 멋진 이유를 말합니다. ‘서찰을 전하기 위해 여행한 과정에서 보람을 느낀다면 충분하다’, ‘전봉준 장군에게 서찰을 전해주었으니 아이는 할 일을 다 했다. 장군이 죽은 이유는 서찰에 적힌 대로 하지 않은 전봉준 장군 때문이지 아이와는 상관 없다.’ ‘아이는 서찰 전하는 책임을 다했으니 성취감을 가질 수 있어서 좋다. 자부심이 생긴다’, ‘이런 일을 겪었으니 꿋꿋하게 자라서 잘 살아갈 것이다등을 말합니다. 과정을 제대로 겪어낼 때 얻을 수 있는 유익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또 질문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열심히 노력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일을 이루지 못했다고 하자. 그래도 괜찮은가?” 아이들은 모두 괜찮다고 합니다.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에서 얻는 유익으로 다른 일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서찰을 전하는 아이를 이해한 독서반 아이들이 멋지게 보입니다. 물론, 금방 떠들고 사소한 일에 쉽게 흥분하지만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들의 삶에서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스스로 깨달았으니 이만하면 훌륭합니다.

독서토론 마지막 시간에는 글을 씁니다. 토론하지 않고 각자에게 맡기면 참 재미있습니다. 나도 아이처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씁니다. 마음에서 생각을 길어내지 않고 표면만 적시다 끝납니다. 토론하고 이야기를 나누면 뻔한 주제에서 벗어납니다. 차별 당하는 경험을 떠올리며 분노를 터트렸으니 차별로 쓰면 좋겠지요. 우리 아이들은 중요한 결정과정이냐 결론이냐라면 쓸 말이 많습니다.

그럼, 글을 써볼까요. 글을 제대로 쓰려면 세 가지를 갖추어야 합니다. 무엇을 쓸지 정해야 하고, 정한 주제에 맞는 내용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생각한 내용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용을 생각하고 표현하는 능력이 글을 쓰기 위한 조건이라는 건 대부분 인정합니다. 좋은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면 진짜 좋은 글이 나오겠지요. ‘생각 좀 하고 잘 좀 써라는 잔소리도 같은 말입니다.

백일장이나 글쓰기 행사에서는 정해진 주제에 따라 글을 씁니다. 주제는 무엇을 쓸지 정한다고 할 때의 무엇입니다. 이때는 주제에 맞는 내용을 생각해서 표현하면 됩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른 사람이 주제를 정해주지 않은 곳에서 글을 씁니다. 책을 읽고 독서감상문을 쓸 때 아이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무엇입니다. 일기를 쓸 때도 무얼 쓸지 몰라 끙끙댑니다. 책을 읽고도 글로 써낼만한 주제를 찾지 못합니다. 주제만 잡아줘도 내용을 생각하고 표현하는데 이걸 못합니다. 생각과 표현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들은 어른들은 무얼 쓸지 뭐 그리 고민하느냐?’ 하며 쓸거리는 대충 정하고, 글이나 잘 쓰라고 합니다.

저는 독서토론을 하면서 책을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발문합니다. 서찰을 전하는 아이를 시대적 배경으로, 거래라는 면으로, 갈등으로, 편견으로, 중요한 결정 앞에서의 고민, 과정과 결과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가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 가지 주제로 책에 경계를 긋지 않고 온갖 생각을 하도록 부추깁니다. 마지막 시간에 우리가 나눈 주제들을 늘어놓고 자신이 꼭 써보고 싶은 주제를 고르라고 합니다. 한 가지 주제를 주고 무조건 이걸로 써라하면 아이들이 더 편하게 생각합니다. 어떻게든 그 주제로 쓰면 되니까요. 그래도 아이들에게 여러 주제를 놓고 선택하게 합니다. 무엇을 쓸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이미 내용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쓸만한 내용을 담은 주제가 무엇일까?’ 고민합니다.

한 아이가 글을 이렇게 마무리 지었습니다. “~ 중요한 결정은 내 생각으로, 내 의지로 선택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사소한 일도 중요한 것이라 생각하고 신중하게 선택하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 더없이 필요한 세상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더 가르칩니다. ‘우리는 주로 책과 나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것도 굉장히 중요하고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글에 담아야 한다. , 나와 책과 세상을 연결지어 글을 써야 한다. 특히 논술할 때는 내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사회를 말해야 한다.’라고 합니다. 이걸 이해하려면 또 토론해야 합니다. 말로만 가르치면 아이들이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표현은 세 가지를 말합니다. ‘이어주는 말을 쓰지 말아라’, ‘문장을 짧게 써라.’, ‘주어와 서술어가 어울리게 써라세 가지를 자연스럽게 해내려면 몇 년이 걸립니다. ‘그리고그래서를 수백 번 쓴 뒤에 이어주는 말을 줄입니다. ‘~했는데, ~해서, ~ 했다가를 이어 한 문장을 대여섯 줄 넘도록 수도 없이 쓴 뒤에 짧게 씁니다. 앞뒤 이야기가 맞지 않는 비문을 수없이 쓰고 나서 고칩니다.

주제 정하기, 내용 생각하기, 알맞은 문장으로 표현하기 모두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주 쓰고 고치는 겁니다. 아이들이 지겨운 이 과정을 즐기게 하려면 독서토론이 재미있어야 합니다. 결국,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좋은 글은 나오지 않습니다. 한 발, 한 발씩 나가다 보면 내가 가야 할 산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느낄 날이 올 것입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는 **초등학교에서 뒤늦게 독서반을 열었습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재잘거리는지 깜짝 놀랐습니다. 한 학년에 반이 두 개밖에 없는 작은 학교라 아이들이 저를 이미 알고 있었지만 처음 만난 어색함은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 것 전혀 없습니다. 말하기 좋아하는 아이들이니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독서모임을 처음 하는 아이들이라 읽기 쉬운 책을 골랐습니다. ‘서찰을 전하는 아이는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던 1894년 전후 이야기입니다. 분량이 적당하고 내용이 흥미진진합니다. 책이 어땠느냐고 물으니 재미있다고 합니다. 5학년 아이는 두 번 읽었고 6학년들은 한 번 읽고 대충 다시 한 번 보았다고 합니다. 다 읽었다고 해도 내용을 잘 모릅니다. 독서반을 오래 하다보니 아이들이 말하는 잘 읽었다와 제가 원하는 잘 읽었다가 다르다는 걸 압니다. 그래서 늘 정말 잘 읽었는지 확인을 합니다.

제대로 읽었는지 확인하려고 내용을 확인하는 문제 14개를 내줬습니다. 대충 읽어도 맞출 수 있는 문제 5, 한 번 읽으면 찾을 수 있는 문제 5, 집중해서 읽어야 맞출 수 있는 문제 5개를 주관식으로 냈습니다. 저는 항상 첫 시간에는 내용 확인 문제 풀이를 합니다. 문제의 2/3이상을 모른다면 그날은 내용 확인에 관한 이야기만 계속 나눕니다. 책 내용을 제대로 모르면 책에 바탕을 두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합니다. 아무리 수준이 낮아도 책 내용에 바탕을 두고 말하면 독서토론입니다. 반면에 아무리 대화 수준이 높아도 책 내용과 상관 없으면 독서토론이 아닙니다.

문제를 풀어보니 한 아이만 제대로 읽었습니다. 그래서 독서모임 시간 100분 동안 내용 확인만 했습니다. 문제와 관련된 내용을 물으며 앞뒤 내용을 연결지었습니다. 도중에 아이들 경험과 연결지어 이야기를 나누면서 책 내용을 파악했습니다. 책을 다시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문장이나 문단에 줄을 그어오라고 숙제를 냈습니다.

두 번째 시간에는 자기가 골라온 내용을 소개하며 시작했습니다. 제가 먼저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를 말했더니 책에 이렇게 좋은 내용이 있었나?’합니다. 왜 이걸 골랐는지 말하고 아이들 의견을 들었습니다. ‘한 사람을 구하고 때로는 세상을 구하는 일이라는 겉표지 문장을 말한 아이도 있습니다. 줄거리를 아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한 문장을 남길 수 있는 책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이어서 찬반토론을 했습니다. 다른 독서반을 할 때는 두 번째 시간에 이야기식 독서토론을 하고 세 번째 시간에 찬반토론을 합니다. 올해는 워낙 말하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라 찬반토론을 먼저 했습니다. 세 가지 토론주제로 발문지를 만들었는데 너무 열심히 토론해서 두 가지 주제로 토론을 하고 나니 100분이 다 지났습니다. 첫 번째 토론 주제는 아버지는 아들과 자신에게 나쁜 일이 생길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봉준 장군을 찾아가려고 한다. 한 사람을 살리려다가 두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여러분이 아버지라면 서찰을 전하러 가겠는가? 안 가겠는가?”입니다.

독서모임을 처음 하는 아이들은 근거를 말하지 않고 간다, 안 간다라고만 말합니다. 가고 안 가는 이유를 물어도 아주 간단한 대답만 합니다. 배경을 충분하게 이끌어내지 않으면 단답형으로 말합니다. 자세하게 근거를 들어가며 토론하려면 쉬운 이야기부터 끌어내야 합니다. 토론을 하기 전에 토론을 이끌어내는 질문을 몇 가지 던져주었습니다. 두 번째 질문입니다.

1) 아이는 서찰에 쓰인 글 뜻을 알아내기 위해 네 번 돈을 지불한다. 누구를 만나 얼마를 내고 알아내는가?
  (
아이들 대답을 들었습니다.)
2)
가난해 보이는 아이가 글씨를 묻는데 돈을 받고 알려준 사람들 행동을 어떻게 봐야 하나? 받아들일 수 있나? 지나친
   요구인가
? (서로의 필요를 위해 거래한 것이므로 돈을 받는 게 정당하다고 대답했습니다.)
3)
가장 돈을 많이 쓴 때는 언제인가? (처음 거래할 때) 4) 아산에서 아이는 김진사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두 냥씩 받았다.
   글씨를 알아내기 위해 쓴 돈과 비교할 때 노래를 불러주고 두 냥을 받은 것은 합당한가? 아닌가?
   (
김진사가 부자이기 때문에 합당하다는 의견과 노래 하나에 두 냥은 비싸다는 의견으로 나누어졌습니다.)

네 가지 질문을 하면서 아이가 한 거래에 초점을 맞추고 마지막 질문을 던졌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거래 중에서 가장 합리적인 거래는 무엇인가? 이유를 들어 말해보자.” 아산 도련님이 글씨를 알려주고, 아이가 노래를 불러준 거래가 가장 합리적이라고 말합니다. 가장 나쁜 거래는 오호두 글씨를 알려주면서 두 냥을 받은 장사꾼이라고 대답합니다.

세 번째 시간에는 차별을 중심으로 발문했습니다.
1)
아산에서 아이는 양반댁 아이를 어떻게 대하는가?
2)
당시 사회의 신분제도를 설명해 보자.
3)
요즘에도 높은 사람, 낮은 사람, 귀하고 천한 사람으로 나누는가?
4)
정당하지 못한 이유로 차별을 받아본 경험이 있다면 이야기해보자.
5)
아직도 없어지지 않은 가장 큰 차별은 무엇인가?
6)
차별이 없는 세상이 가능할까?
7)
차별을 없애기 위해 일하고 있는 단체를 소개해 보자.

4번 질문에서 아이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열을 냅니다. 엄마가 성적으로 차별하고, 할머니가 남자인 오빠만 좋아하고, 언니만 좋아하고…… 성토대회를 하는 것 같습니다. ‘분노폭발하거나 울어버릴 것 같아 말려야 했습니다. 자신들이 당하는 차별에 아이들은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차별은 잘 모릅니다. 아직 그 정도까지 생각하지 않았겠지요. 조선시대 신분차별과 남녀차별은 들은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자신이 겪은 차별은 실제입니다. 실제는 머리에 있는 생각을 가슴으로 끌어내립니다. 느끼고 표현하게 만듭니다.

독서모임 첫 시간에 조선 후기 관리들과 농민들의 관계에서 차별이 어느 정도였는지 말해도 그런가?’했습니다. 자신이 당하는 차별까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점점 그럴 수 있겠다’, ‘나라도 그렇게 했겠다로 바뀌었습니다. 역사를 배우지만 누가, 언제, 어떤 일을 했는지만 알면 역사의식이 생기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동학농민운동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시험 끝나면 곧바로 잊습니다. 중국과 일본 군대가 왜 개입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반일감정이 들끓습니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일본을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그런 일을 겪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여기까지 가진 못했지만 서찰을 전하는 아이가 한 걸음 더 내딛게 했을 거라 믿습니다.

아이들은 차별이 없는 세상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차별 없는 세상을 소망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전봉준이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 질문은 이겁니다. “아이가 서찰을 전해주어 김경천을 조심하라고 말했는데도 전봉준은 나와 함께한 동지도 믿지 못한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하며 잡힌다. 전봉준은 죽을 줄 알면서 왜 피노리에 갔을까?” 이 질문은 어려운지 대답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을 말해주었습니다. 자기 때문에 동료들이 계속 잡혀가는 걸 참을 수 없어서,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서, 자신이 희생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생각해서……

(서찰을 전하는 아이, 2편 원고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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