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파는 아이들>은 두 이야기가 번갈아 나옵니다. 1985, 주인공 살바는 갑자기 벌어진 총격전에 쫓겨 학교에서 무작정 숲으로 도망갑니다. 난민캠프를 전전하다 1996년에 미국으로 입양되어 갑니다. 살바가 겪는 이야기 사이에 2008년 수단에 사는 니아라는 아이가 몇 시간이나 걸어 물을 뜨러 가는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물이 없어 기생충이 가득한 흙탕물을 마시고 사람들이 죽어갑니다. 흙탕물이라도 차지하려고 부족끼리 싸워 또 죽습니다.

아이들과 나누는 두 번째 책입니다. 고려청자 이야기 <사금파리 한조각>을 쓴 한국계 미국인 린다 수 박이 실화를 바탕으로 쓴 책입니다. 저는 당연히 아이들이 두 이야기를 이해할 줄 알았습니다. 색깔도 다르게 인쇄되었고 1995, 2008년이라고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첫 시간에 몇 아이가 갈색으로 써진 내용은 뭐예요?’ 하고 묻습니다. 아이가 무얼 묻는지 몰랐습니다. 절반 정도 아이가 두 이야기를 연결하지 못합니다. ‘, 읽는 법을 모르는구나!’

첫 시간, 첫 질문으로 책을 읽고 느낀 점을 100자로 써보자고 했습니다. 절반가량은 불쌍하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살바와 니아가 겪은 일을 불쌍하게 봅니다. 초등학생 일기와 독서감상문에도 불쌍하다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안타까운 일을 보면 불쌍하다고 합니다. 다른 표현은 잘 모릅니다. 왜 불쌍하냐 물으니 그냥불쌍하답니다. 내용을 넣어 말해보라 하니 물이 없어 불쌍하다’, ‘힘들어서 불쌍하다합니다. 아이들은 표현을 못합니다. 저는 가슴 먹먹하게 읽었는데 아이들은 불쌍하다로 끝입니다. ‘, 느낌을 모르는구나!’

아이들이 책을 건성건성 봅니다. 대충 내용을 알지만 정확하게는 모릅니다. 적당히 줄거리만 아는 수준으로 책을 읽으니 글을 못 씁니다. ‘랑랑별 때때롱을 할 때는 정답 찾기에서 벗어나려고 내용 확인을 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문제를 냈습니다. 아이들이 책을 어떻게 읽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내용이 짧아서 쉽게 이해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나도 모르는 아이가 둘, 딱 하나만 대답한 아이가 한 명입니다. 나머지 절반은 몇 가지만 압니다. 제대로 읽은 아이는 1/3뿐입니다. 130쪽이 안 되는 짧은 내용인데도 기억이 안 난답니다. ‘, 내용도 모르는구나!’

딩카 족과 누어 족은 서로 싸우고 죽입니다. 싸우는 이유, 싸움이 니아 가족에게 주는 영향이 책에 나와 있습니다. 싸움을 끝낼 방법도 책에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걸 못 찾습니다. 책 내용을 바탕으로 말하지 않고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으로 대답합니다. 정답 찾기를 피하려고 의견을 물어도 책 내용과 상관없는 곳에서 자신이 적당히 아는 상식을 정답으로 말합니다. 아이들에게는 의견이 없습니다. ‘내가 알아요를 계속 외칩니다. ‘, 의견을 말하는 법을 모르는구나!’

책을 대충 읽으면 아무리 많이 읽어도 소용없습니다. 내용을 확인하면서 알려주니 정답을 열심히 적습니다. “이거 왜 적어? 정답 쓴다고 다음에 볼 것도 아니잖아. 책 읽는 태도를 바꾸는 게 더 중요하잖아.” 했더니 다음에는 책을 자세하게 읽겠다고 합니다. 대충 읽으면 안 되겠다고 하고, 평소에 읽던 것과 다르게 읽어야겠다고 합니다. 이 마음이면 충분하겠죠.

지난 독서반 아이들도 처음에는 이랬습니다. 책을 나와 상관 없는 종이 안에 쓰여진 이야기로 읽으면 아무리 많이 읽어도 똑같습니다. 토론도 못하고 글도 못씁니다. 물이 많다면 딩카족과 누어 족은 싸우지 않았을 겁니다. 자원은 희소한데 원하는 사람이 많아서 다툼이 생깁니다. 4학년 사회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마에 있는 표시가 다르다고 싸웁니다. 왕따 문제입니다. 딩카족과 누어족의 싸움은 약과입니다. 수단은 남북으로 나눠 싸웁니다. 우리나라 남북 관계입니다. 책 안에 쓰여진 내용은 수많은 이야기로 연결 지어 생각을 넓히게 만듭니다. 아이 혼자 이걸 못하기 때문에 독서반에 나오는 겁니다. 부모나 교사가 해줘야 하는 부분입니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질문을 쉽게 바꾸었습니다. 책에 나온 이야기를 아이들 삶과 연결 짓도록 준비했습니다. 2명씩 짝을 지어 살바가 겪은 어려움을 10가지 이상 찾게 했습니다. 며칠씩 굶고 물도 못 먹고, 발톱이 빠져도 걸어야 하고, 삼촌이 총살당하고, 악어가 득실대는 강을 건너고…… 살바가 겪은 사실뿐만 아니라 실망감, 배신 당한 아픔도 말합니다. 그 중에 가장 힘든 일 3가지를 고르라고 했습니다. 2명이 의견을 나누어 결정해야 하니 혼자 할 때보다 낫습니다. 2팀은 육체의 고통 중에서, 1팀은 정신의 고통 중에서, 마지막 한 팀은 양쪽에서 골랐네요.

사람은 대부분 자기가 겪은 어려움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한다.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 물으니 여러 대답 중에 한 아이가 내가 직접 겪지 않아서 모르기 때문에 살바가 겪은 일은 그냥 힘들겠구나하는 정도라고 말합니다. 이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여러분이 겪는 어려움은 어떤 거야?” 물었습니다. 사고 당한 이야기도 하고, 가끔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다고도 합니다. 제 딸은 아빠가 화낼 때 마음이 힘들다고 합니다. “아빤 화내는 거 아니라고 하지만 저는 화내는 걸로 들려요라고 하네요. 들으며 찔렸습니다. 독서반에 오지 않았다면 들을 기회가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여러 아이들 앞에서 제가 힘들게 했다고 말하지만 괜찮았습니다. 감추지 않고 꺼낸다는 건 상처가 깊지 않다는 거니까요. 아직은 아빠가 들어줄 거라는 믿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단에 사는 니아가 겪는 어려움도 찾았습니다. 니아가 지금 우리나라에 와서 산다면 무엇에 감사할지 말해 보라고 하니 금세 찾습니다.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다리 안 아프고 친구 많고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답니다. 신발 신고 다니고, 병원 가깝고, 학교에 가는 것도 좋답니다. 평소에 감사하며 사느냐 물으니 그렇다고 합니다. 저는 아이들이 주어진 것 그냥 누리며 생각 없이 사는 줄 알았는데 아닙니다. 아이들 감사를 들으며 제가 감사했습니다. 아빠가 화내서 힘들다고 말한 딸은 아빠, 엄마가 좋아서 감사하다고 하네요.

책에서 두 아이가 겪은 어려움을 찾으며 내용을 조사합니다. 가장 어려운 두세 가지를 고르며 그게 정말 어렵겠다는 느낌을 가집니다. 내가 겪는 어려움으로 연결하고 감사로도 연결합니다. 내용을 이해하고, 생각하고 느끼며, 내 상황에 적용하니 아이들도 재미있나 봅니다. 찾고 이야기하고 듣고 함께 웃고 즐거워합니다. 두 번째 시간에는 정말 배꼽 빠지게 웃었습니다. 예원이(정라초 5학년)는 의자 아래로 내려가 기어다니며 웃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제가 독서반을 하는 까닭은 글을 쓰기 위해서입니다. 이해하고 입력하기만 하는 독서, 밖으로 내뿜어 표현하지 않는 독서는 한쪽 날개를 잃은 새와 같습니다. 읽으면 생각하고 써야 합니다. 쓰기 힘들어해서 책 내용과 아이들 삶을 연결지어 주었습니다. 한 편을 쓸 만한 힘이 없기 때문에 한 문단만 썼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생각나는 경험이나 책과 연결 지은 뒤에 한 문단 씁니다. 내가 겪는 어려움을 살바가 겪은 어려움과 연결 지어 씁니다.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을 의견 차이로, 의견이 차이나는 바탕에 자존심이 있다는 이야기로 연결 지어 씁니다. 지금은 책 읽는 법도, 내용도, 느낌도, 이야기하는 잘 모르지만 차근차근 손잡고 끌어주면 됩니다. 지금은 한 문단 쓰기를 하고 있지만 몇 달 뒤에는 독서감상문 한 편을 쓰겠지요. 그때가 기다려집니다.

<우물 파는 아이들>을 마지막으로 나누는 네 번째 시간입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건물 1층에서 월드비전과 함께 하는 아프리카 우물파기 자선까페가 아닐 열렸습니다. 오민섭(삼척초 6)이 일찍 와서 기다리다가 제게 묻습니다. “선생님 자선까페는 뭐 하는 거예요?” “누군가를 돕기 위해 잠시 여는 까페야. 음료수와 음식을 조금 비싸게 팔아서 그걸로 가난한 사람을 돕는 거지. 여기 가는 사람은 누군가를 돕기 위해 기꺼이 비싸게 사먹는 거고.” 하니 그럼 이번에는 누굴 돕는 거예요?” 하네요. “내가 듣기론 아프리카에 우물 파준다고 하던데……하니 우물 파는 아이들에 나온 것처럼 말인가요?” 해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다음날 교회에서 목사님이 민섭이 이야기를 합니다. 민섭이가 성경을 사려고 용돈을 모으고 있었는데 자선까페 후원함에 23000원을 모두 넣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민섭이 대단하네!’ 하는데 저는 우물 파는 아이들!’을 생각했습니다. 머리에 남는 지식이 아니라 삶과 연결하고 이젠 이웃에게 나눠주기까지 하네요. 민섭이 성경은 내가 사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이 사줬다고 합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책, 살아있는 책을 만나는 아이를 보고 가슴이 뛰었습니다. 책을 지식의 도구로, 자신의 미래를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빛나는 진주 하나를 발견한 마음입니다. 이런 아이를 계속 만나고 싶습니다. 책과 삶을 부지런히 연결시켜주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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