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이를 처음 만나면 책을 좋아하는지, 얼마나 읽었는지 물어봅니다.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아이라면 함께 수다를 떱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잘댑니다. 지금까지 책을 잘 읽지 않은 아이라면 책을 좋아할 수 있을지 알아봅니다. 몇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수요일의 전쟁이나 책벌레들의 책없는 방학을 주고 읽는 태도를 관찰하는 겁니다. 킥킥대며 재미있게 읽으면 틀림없이 문장을 사랑하는 아이가 됩니다.

아예 책에 관심이 없는 아이는 어떻게 할까요? 무더운 여름 한 달, 아이가 책을 읽으며 지낸다면 좋겠지만 속만 태우기 십상입니다. 독서캠프에 보내려고 해도 아이가 싫어합니다. 독서캠프에 가면 책 읽고 글 쓰고 힘듭니다. 놀이 위주로 접근하는 캠프도 있지만 갔다 온 뒤에 책과 더 친해지는 것 같지 않습니다. 저는 독서캠프를 이렇게 합니다.

대상도서를 한 권 정합니다. <책벌레들의 책없는 방학>을 읽고 오는 게 캠프 참가 자격입니다. 평소에 책을 아예 안 읽는 아이라도 캠프에서 즐겁게 지내게 해줄 자신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책을 많이 읽는 아이라도 정해준 책을 안 읽고 오면 힘듭니다. 독서토론은 똑똑하고 말 잘하는 아이 찾아내는 게임이 아닙니다. 책을 꼼꼼하게 읽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적용하는 걸 가르치는 좋은 방법입니다. 아이들은 자신과 다른 의견을 듣고 배웁니다. 지식을 자랑하며 상대를 이기기 위해 덤벼들지 않고 책 내용으로 반박합니다. 책을 읽지 않고 토론하면 논리가 아니라 자기를 내세우게 됩니다. 좋지 않습니다.

<책벌레들의 책없는 방학>에는 재미난 일이 많이 나옵니다. 피비는 양동이에 물을 떠놓고 낚시를 합니다. 루스는 자연사를 좋아해서 뼈조각을 모읍니다. 레이첼과 피비는 아빠가 낚시할 때 쓰는 구더기로 경주를 합니다. 피비는 오소리 굴에 머리를 들이밉니다. 루스와 나오미는 해변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요리를 합니다. 루스는 까마득히 멀리 보이는 섬에 수영을 하러 간다고 덤빕니다. 산에 올라가고, 나오미는 혼자 팔이 부러져서 돌아옵니다. 티파티도 하고 엉망진창으로 놉니다. 독서캠프에서 이것들을 직접 합니다. 아이들 스스로 모닥불을 피우고 고구마를 굽습니다. 네 자매가 해변에 가져간 감자, 베이컨, 토마토를 가지고 알아서 요리합니다. 독서카드를 만들고 그걸로 보드게임을 합니다. 눈 덮인 산을 오르고 오릅니다. 독서토론도 하고 독서감상문과 독서편지도 씁니다. 독서퀴즈를 하지만 지식 자랑하기가 아니라 협력하는 퀴즈대회입니다.

책에 나오는 네 아이는 여름 방학 동안 책을 사랑하는 할머니 집에 갑니다. 할머니는 아이들이 너무 책만 읽는다며 책을 모두 다락방에 감춥니다. 네 아이는 위에 소개한 여러 활동을 하면서도 줄곧 책을 찾아 헤맵니다. <책벌레들의 책없는 방학>을 읽는 아이마다 네 아이가 다락방을 찾아서 책을 읽어야 하는데…… 꼭 책을 읽어야 하는데……합니다. 그래서 좋은 책입니다. ‘책을 읽어라강요하지 않고, ‘아이들이 책을 꼭 읽어야 하는데라는 마음을 저절로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박**(정라초 6)
“~ 일주일만 더 있으면 좋겠다. 나는 이 독서캠프를 통해서 정말 좋은 추억을 만든 것 같다. 다음에도 꼭 다시 독서캠프에 올 것이다. 3일 동안 정말 재미있었다. 정말로……라고 썼습니다. 아빠 직장 일로 6월에 카타르로 떠났는데 무더위를 책과 함께 이겨내면 좋겠네요.
이**(정라초 6)
처음에 딱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무엇을 할지 궁금하기보다는 걱정이 먼저 앞섰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면 생길 어색함을 어떻게 풀지 고민이었다. 하지만 캠프를 시작하자 그 고민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건물 안에서 토론이랑 글쓰기만 할 줄 알았는데 나무로 시계도 만들고, 직접 모닥불도 피워보고, 산에도 올라가면서 어느새 전혀 모르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내 기억 속에 오래오래 남을 소중한 캠프였던 것 같다. 산에 올라가는 것도 힘들었긴 했지만 즐거웠다. 그리고 산에서 내가 만든 카나페를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독서캠프에 현직 교사들이 도우미로 참가했습니다. 차비밖에 못 받는 봉사활동이지만 독서캠프를 어떻게 하는지 배우려고 전라도, 경상도, 경기도, 강원도 선생님 9명이 함께 했습니다. 윤**(대구)선생님은
하루 전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캠프니까 단순히 즐겁기만 하고 낱낱이 활동들만 하다가 의미 없이 끝나면 어쩌지? 나는 단순히 즐겁게만 활동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약간 두려움이 앞섰다. 그리고 마냥 즐겁게 열심히만 참여하는 건 부담스럽다. 점점 캠프를 진행하면서 책과 만나게 되고 사고를 자극하는 질문들이 재밌어졌다. 책과 관련하여 여러 활동들이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니 하는 활동들이 의미가 있어졌다.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흥미진진했다. 사고를 발전시키는 모습에서 나도 흥분되고 몰입이 되었다.”라고 후기에 썼습니다.

활동이 기억날 뿐 의미가 생각나지 않더라도 즐겁게 지내다 오면 괜찮겠지요. 아이에게 추억을 선물하려 했다면 즐거운 기억으로 충분합니다. 즐거운 기억은 아이들을 건강하게 자라게 합니다. 캠프에서 아이들은 독서퀴즈에서 꼴찌를 해도 놀이로 받아들여 즐거워했습니다. 고구마가 설익어도, 목공 시계를 완성하지 못해도 좋아했습니다. 제가 캠프를 하면서 원한 수준이 딱 이 정도였습니다. ‘책과 함께 즐겁게 지내자! 대단한 의미를 주려고 하면 즐기지 못한다. 즐거움을 주면서 스스로 의미를 찾도록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들은 독서지도 방법을 배우려고 오셨으니 아이들보다는 캠프가 주는 의미를 더 생각했을 겁니다.

항상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책 읽으라고 잔소리를 하지만 정작 나 자신조차도 책을 즐겨 읽지 못했다. 지루하고 졸립기만 한 책읽기다. 하지만 이번 독서캠프를 통해 즐거운 책읽기, 신나는 책읽기에 대한 실마리를 찾은 것 같다. 책 읽기가 즐겁지 못했던 이유는 책과 내 삶이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책 속에 들어가 주인공이 되어보고 주인공들과 함께 놀아야 하는 데 책 속의 주인공들을 그저 바라만 보았다. 근데 캠프에서 모닥불도 피우고, 산도 오르고, 주인공의 마음을 생각하며 카드도 만들면서 주인공들이 되어보고 주인공들과 함께 한 것 같다. 또 지루하다고만 생각했던 책에서 아이들이 이렇게 즐거워할 수 있는 활동이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제 다시 교실로 돌아가면 아이들에게 책 읽기가, 책 읽기가 이렇게 신나고 재미있는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같이 책이 지루하고 재미없어 하는 아이들의 생각을 바꿔주고 싶다.” (이**, UBMK 울람바토르 학교)

이** 선생님 후기가 딱 제 마음입니다. ‘하면 또 독서감상문 쓰라고 하겠지. 몇 명만 상 받는 독서퀴즈는 싫은데……가 아니라 그때 정말 즐거웠는데……라는 말을 남겨주고 싶습니다. 독서캠프를 마칠 때 <책벌레들의 책없는 방학>을 지은 힐러리 매케이가 쓴 다른 책들을 조별활동 상품으로 나눠주었습니다. <책벌레들의 비밀후원작전>, <금요일의 개 프라이데이>, <새피의 천사>, <인디고의 별>을 준비했는데 책에 미친 아이들처럼 달려들었습니다. 방학이 다가옵니다. 자녀와, 제자와 함께 즐겁게 노는 독서여행이나 독서캠프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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