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 담임으로 학부모 공개수업을 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책을 직접 고르며 책과 친해지는 기회를 주고 싶었고, 부모님들에게는 책 때문에 즐거워하는 아이들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도서실에서 수업을 했습니다. 도서실 책상을 ㄷ자로 만들고 부모님들이 뒤에 앉으셨습니다.

쓰기책에 푸른꿈 도서관이라는 글이 나옵니다. 도서실에서 책 고르는 방법, 책을 빌리는 방법, 도서실에서 주의할 점이 주된 내용입니다. 교과서를 읽고 퀴즈로 내용을 알아보았습니다. 영상매체와 인터넷 매체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문단이 무엇인지 알려줄 때는 색지를 잘라서 칠판에 붙였습니다. 책을 고르고 빌리는 방법을 배우고 로알드 달이 지은 책을 알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2학년은 아직 작가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 책 참 재미있다말하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우리 반은 로알드 달을 알고 있습니다. 가끔 로알드 달 책을 소개하고 인용했더니 한 아이가 <멋진 여우씨>를 말합니다. 멋진 여우씨를 읽은 아이들도 2/5가량 됩니다.

주문한 학급문고가 들어오던 날, 아이들에게 멋진 여우씨를 간단하게 소개했습니다. “여우를 잡으려는 사냥꾼 세 명이 있어. 평소에는 여우를 쉽게 잡는데 이번에 만난 여우는 멋진 여우씨야. 멋진 여우씨는 아주 똑똑한 여우야. 어떻게 될까?” 그랬더니 학급문고에서 멋진 여우씨를 가져가려고 쟁탈전이 붙었습니다. 며칠 그러더니 금세 시들해집니다. 오늘 멋진 여우씨를 말하면 아이들이 또 읽으려고 할 겁니다. 며칠 지나 시들해지면 또 말해줄 겁니다. 선생님이 책이야기를 자주 하면 그만큼 아이들이 책을 더 읽겠지요.

독서토론을 하려면 책을 읽어야 합니다. ‘이 책으로 독서토론을 할 겁니다. 꼭 읽으세요라고 하면 2학년은 물론이고 고학년이라고 해도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만 읽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선생님이 책을 읽어주는 겁니다. 저는 1주일에 두 번 정도 아침활동 시간에 책을 읽어줍니다. 지금 읽어주는 책은 사자와 마녀와 옷장입니다. 네 번째로 읽어주고 있는 책인데 아이들이 참 좋아합니다. 전체 아이들이 모두 듣기 때문에 책으로 이야기를 나눌 때 좋습니다.

수업 후반에 도서실에서 책 찾기 시합을 했습니다. 2학년은 시합을 너무 좋아합니다. 멋진 여우씨를 지은 로알드 달작품 찾기를 했더니 이 책, 저 책 뒤지며 다닙니다. 오늘 배운 도서관에서 주의할 점을 지켜가며 찾아야 합니다. 하루 전에 미리 로알드 달이 지은 책을 여러 곳에 골고루 숨겨두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들은 과학, 역사, 위인, 경제…… 온갖 종류의 책을 만지고 제목을 읽으며 찾아다닙니다. 다음에 도서실에 오면 멋진 여우씨를 찾으려다가 눈에 익은 책이 또 보일 테고 그러면 읽으려는 마음이 더 생기겠죠!

로알드 달 책 찾기를 한 뒤에는 가장 읽고 싶은 책을 골라오라고 했습니다. 너무 쉬운 책을 골라오면 내용을 설명하며 바꿔줍니다. 아이에게 맞는 책을 추천하고 칭찬하고 격려하며 모두 책을 한 권씩 가져옵니다. 부모님들은 그걸 보며 흐뭇해 합니다. 오늘 아이들은 책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읽고 싶은 책을 골라와서 또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워합니다. 혜영이뿐만 아니라 모두 깔깔 웃으며, 도서실을 좋은 곳으로 생각합니다.

<오늘은 학교에 부모님들께서 오셨다. 그래서 특별히 도서실에서 수업을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선생님께서 발표를 시키셨다. 도서관에서 부모님과 공부하는 소감을 물으셨다. 그때 예현이가 손 들었는데 부모님들이 뒤에 계셔서 좀 그래요.” “그래, 뒤통수가 뜨끔뜨끔선생님 말씀에 모두 웃었다. ‘하하! 까르르르그런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도 좋으셨지만 학부모님이 오시니 더 좋아지신 것 같은데?‘ 그래도 너무 재미있고 행복한 하루였다.>(원**-2학년)

 

지구상에 있는 어떤 민족보다 유대인들에 관한 책이 많습니다.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박해와 위협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노벨상을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전세계 인구의 2%가 안 되지만 노벨상은 10배나 많이 받습니다. 유대인들 교육의 핵심은 독서와 토론입니다. 유대인들은 듣고 말하고 의견을 나눕니다. 도서관에서도 토론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고, 교실에서도 토론으로 수업합니다. 묻고 답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우리나라는 교사의 설명을 학생들이 잘 듣고 이해해서 외웁니다. 이해하지 못해도 외우다 보면 이해가 될 거라고 합니다. 자기 의견은 사라지고 정답 찾기만 남습니다.

독서교육이라고 해도 독해력, 이해력, 독서퀴즈, 독서감상문 대회 따위를 생각합니다. 독서감상문을 쓰려면 글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의견을 내세우고 다른 사람 의견을 듣는 토론은 초등학교 고학년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논리적으로 주장을 내세워 상대방 의견을 이기는 게 토론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토론 규칙을 배우고 토론 순서에 따라 연습합니다. 그래서 토론은 어렵고 딱딱하다 생각합니다. 규칙과 절차에 맞는 토론도 해야 합니다. 독서감상문도 써야 합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독서교육은 이야기 나누기입니다. 이야기 나누기는 토론과 토의의 차이점을 몰라도 할 수 있습니다. 유치원 아이와 할아버지가 함께 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많이 해야할 독서활동은 이야기나누기입니다.

로알드 달을 소개하면서, 동물 이야기를 하다가, 어떻게 하건 상관없이 여우 이야기가 나오면 멋진 여우씨를 말할 수 있습니다. 2학년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책이야기를 자주 하면 아이들이 책을 더 보게 되고, 줄거리를 넘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나중에는 자기 생각을 담습니다. 이걸 글로 쓰면 좋은 독서감상문이 됩니다.

우리반 00이는 농장 주인이 부자여서 좋겠다고 합니다. 꼭 이웃을 도와주어야겠다고 쓰지 않아도 됩니다. ‘여우를 다 죽여버리고 싶다는 표현이라면 상담을 해야겠지만 아이들이 가진 저마다의 생각은 받아주어야 합니다. &&이는 세 사냥꾼은 너무한 것 같아요. 가축 몇 개 잡은 건 이해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해를 해줘야 인기가 많아지고 인기가 많으면 너무 자랑스럽단 생각이 들 거예요. @@한테 쫓겼을 때 난 여자화장실에, @@가 나한테 쫓길 때 남자화장실에 영리하게 숨었어요. @@는 남자고 나는 여자거든요. 내 생일파티에 초대한 안**이 덥다는 이유로 안 와서 안** 걱정한 게 헛수고라는 생각이 들고 여우한테 속은 사냥꾼이 된 것 같았어요. 여우 같은 영리한 친구가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멋진 여우씨에서 배운 건 영리함은 욕심을 이긴다는 것이에요.”라고 썼습니다.

정확한 형식을 따지면 부족함이 있겠지만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쓴 글로는 굉장하지 않습니까! 영리함이 욕심을 이긴다는 걸 자연스럽게 느끼고 마음에 새긴다면 무엇보다도 귀한 배움입니다. 책을 읽은 뒤에 아무 것도 말하지 못하고 독서감상문 한 편 쓰고 마치면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깊은 생각을 길어내지 못합니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써야 깊이 남습니다.

1학기에 멋진 여우씨를 소개했으니 2학기에는 아이들이 책 먹는 여우와 만나게 할 겁니다. 근처에 여우를 볼 수 있는 동물원이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저는 미술시간을 싫어했습니다. 그림은 고통을 주는 괴물이었습니다. 좋아하는 미술가는 없었고 미술 관련 위인이나 책은 한 권도 안 읽었습니다. 교사가 된 뒤에도 변하지 않아서 미술은 정말 가르치기 어려웠습니다. ‘그려라외에는 할 말이 없어서 편하고도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감상이 힘들었습니다. 느끼지 못하면서 이 그림이 어쩌고 저쩌고하면 한숨만 나옵니다. 아이들이 그림을 보며 감탄한다면 저도 태도를 고쳤겠지만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시골 촌놈들답게 사진과 가장 비슷하게 그려야 잘 그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날,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고 처음으로 느낌을 받았습니다. 램브란트는 그림을 5분 이상 들여다보게 만들었고, 저도 놀랐습니다. 네덜란드에 가서 풍차나 튤립이 아니라 미술관에서 원작을 보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얼마 뒤에는 하버드 교수직을 내던지고 데이브레이크 공동체에서 중증장애인을 돌본 헨리 누엔이 탕자의 귀향을 몇 시간이고 들여다 보았다는 말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림에 대한 관심이 생긴 뒤로 가장 눈에 들어온 화가가 고흐입니다. 3-4학년들과 해바라기를 사랑한 고흐(김미진, 파랑새어린이), 5-6학년들과 태양을 훔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염명순, 아이세움)‘을 토론했습니다. 저는 따로 안녕 내 친구 빈센트 반 고흐(김유리, 교학사)‘반 고흐, 영혼의 편지(반 고흐 지음, 예담)‘을 읽었습니다. 모르면 지나치지만 알면 보게 되고, 그러면 사랑하게 된다고 합니다. 고흐는 정말 멋집니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고흐가 그린 그림 중에 가장 기억에 나는 작품을 소개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제가 어렸을 때와 달리 느낌을 풍성하게 나눕니다. 풍부한 표정을 담은 가셰의사를 좋아하는 아이, 붉은 수염이 인상깊이 남아있는 자화상을 좋아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서로 겹치는 그림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그림을 말합니다. 고흐가 가졌던 마음처럼 자신에게 와닿는 그림을 골라냈습니다.

가셰 의사의 집 뒤뜰에서 찍은 사진

 

고흐에게 좋은 영향을 준 일과 나쁜 영향을 준 일을 많이 찾는 시합도 했습니다. 찾은 내용 중에 3가지를 골랐습니다. 조카 이름을 빈센트 반 고흐로 지은 일, 동생 테오, 탕기영감을 만난 일, 고갱과의 만남, 의사 가셰를 만난 일이 좋은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고갱과의 만남, 청혼 실패, 가난, 정신병을 나쁜 일로 뽑았습니다.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들을 만난 것이 좋았고, 이해하지 못하고 밀쳐낸 사람들을 만난 것이 나쁜 영향을 주었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화가라고 해도 고흐 역시 사람이었고 사랑과 이해에 목마른 영혼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했습니다. 사람들이 고흐를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고흐가 더욱 그림에 매달렸다고 생각합니다.

고흐를 읽고 우리나라 위인전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하고 물었습니다. ‘우리나라 위인은 어려서부터 뭐든지 잘하고 뛰어나지만 고흐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합니다. 위인전의 기본 법칙은 용꿈이나 호랑이 꿈을 꾸고 기대를 한몸에 품고 태어난 아이가 어려서부터 비범한 능력을 보이다가 성공하는 것입니다. 장군은 호랑이를 잡은 이야기를 가져야 하고, 학자는 어린 나이에 어려운 책을 좔좔 읊어야 합니다. 자기 허벅지 살이라도 떼어주어야 효자가 됩니다.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고흐는 아이들이 보기에도 딱합니다. 되지도 않는 사랑에 목을 메고, 뒤늦게 그림에 빠져 세월만 낭비합니다. 돈이 되는 그림은 그리지 않고 고집 부리다가 인정받지 못하고 죽습니다.

그래서 좋은 위인전입니다. 좌절하고 실망하고, 고민하고 애쓰는 보통 사람들과는 너무나 다른, 로봇 같은 대단한 사람들을 소개하는 위인전은 좋지 않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서며 애쓴 위인이 훨씬 좋습니다. 고흐는 그런 사람입니다. 게다가 고흐는 이상한 편집증까지 갖고 있습니다. 위대한 그림 뒤에는 고흐의 고뇌와 아픔이 들어있습니다.

마지막 시간에 고흐를 평가했습니다. 가족 관계, 이웃 관계, 친구 관계, 직장 생활, 이성 교제, 경제 자립, 그림 실력은 제가 정한 기준입니다. 아이들도 따로 기준을 정해서 성격, 지위를 평가항목으로 넣었습니다. 방송의 영향을 많이 받은 세대답게 외모도 평가하자고 해서 함께 평가했습니다. 그림 실력은 점수를 좋게 주었지만 다른 기준은 들쭉날쭉입니다. 고흐가 잘생겼다고 10점 준 아이도 있고, 반대로 1점 준 아이도 있습니다. 테오를 생각해서 가족 관계를 9점 준 아이가 있는 반면에 부모를 힘들게 해서 낮은 점수를 준 아이도 많습니다. 늘 평가 받다가 다른 사람을 평가하니 재미있는지 연신 웃습니다.

한 항목씩 평가 결과를 발표하며 토론을 했습니다.
1.
고흐는 부모가 원하는 일은 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일을 했다. 여러분이라면 부모님 뜻을 따를까?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까
? (2명을 제외하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겠다고 합니다.)
2.
고흐 같은 아이가 전학 온다면 친하게 지낼까? 거리를 둘까? (한 명만 친하게 지내겠답니다. 고흐처럼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아이가 멋있다고 생각하며 고흐의 외모에
10점을 준 아이입니다.)
3.
여러분이 사장이라면 고흐 같은 직원을 붙들어둘까? 해고할까? (모두 해고하겠다고 합니다. 고흐의 태도를 이해하면
   서도 돈을 버는 일에는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압니다
.)
4.
고흐 같은 방식으로 사랑을 고백해오는 사람이 있다면 받아줄까? 거절할까? (혼자만의 생각으로 자해소동을 벌이는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는 없었습니다
. 모두 거절한다고 말합니다. 고흐가 지금 태어나도 친구를 얻기는 어렵겠습니다.)

고흐의 가족관계를 이야기하며 네 가족 관계는 어때?’ 묻습니다. ‘누구와 가장 갈등이 심해?’ 남자아이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가족 중에 한 사람과 갈등이 심하다고 말합니다. 함께 사는 형제, 자매, 부모 중에 한 명이 자신을 힘들게 한답니다. ‘짜증나게해서 미치겠답니다. ‘그럼 너희들이 괜찮게 생각하는 한 사람과 함께 산다면 어떨까?’ 물으니 좋겠다고 팔짝팔짝 뜁니다. 힘들게 하는 그 사람이 특별히 나빠서가 아니라 자주 보고 가까이 있기 때문에 서로 찌르고 상처를 주는 거라고 말해도 일단 짜증나게 하는 그 사람보다는 좋을 거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은 평범하게 살고 있습니까? 고흐처럼 한 가지 일에 미쳐서 살고 싶습니까?” 물으니 대부분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합니다. 고흐가 워낙 독특한 예여서 한 가지에 미친 삶을 거부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시골아이들이어서 그런지 가족들과 화목하며 평안하게 지내는 게 행복하다고 말하네요. 특별한 삶을 원한다고 말한 이가진(정라초등학교 6학년)은 이렇게 썼습니다. “고흐는 자기개성이 뚜렷한 사람이다. 한 가지에 꽂히면 미친듯이 그것에만 매달린다. 나는 그런 사람을 좋게 생각한다. ~ 사람들은 고흐의 이런 면을 이상하게 여기고,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사람들이 모두 평범하기에 그렇다. 평범하지 않고 자신의 개성이 뚜렷한 사람은 고흐를 이해해 줄 수 있다.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은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튀는 사람을 이상하게 느낀다. 그러나 지신의 세계가 따로 있는 사람은 자신처럼 개성있는 사람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잘 어울리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고흐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고흐도 그저 자신만의 세계가 있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 독서반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합니다. 가진이는 어떤 점에서 특별한 삶을 살게 될지 보고 싶습니다.

 

나는 가끔 거짓말을 한다. 다른 사람은 아니지만 동생에게 거짓말을 할 때는 안 찔린다. 다른사람에게 거짓말을 할 때는 들킬까봐 조마조마한데 동생에게 거짓말을 할 때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못 느낀다. 너무 가까이 지내다 보니까 그런 것 같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도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지 않는다.”

거짓말 학교를 읽고 전**(정라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쓴 글 첫머리입니다. 예진이는 밝고 활기차며 사랑스럽습니다. 거짓말도 잘 할 줄 모르고 사랑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동생에게 거짓말할 때는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답니다. 동생에게 해꼬지를 하거나 큰 이익을 얻기 위해 속이는 거짓말이 아니어서 이런 생각이 들겠죠. 긴장하며 만나야 하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우리는 거짓말이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도덕시험 문제에서 모두 같은 답을 합니다. ‘거짓말은 나쁘다. 하지 말아야 한다그렇지만 살아가면서 얼마나 거짓말을 많이 하는지요. 저는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을 가르치면서 끝없는 거짓말과 싸우고 있습니다. ‘내가 아니에요. 쟤가 먼저 때렸어요.’, ‘전 안 뛰었어요.’, ‘얘가 먼저 모래 뿌렸거든요.’……

거짓말했다는 사실이 밝혀져도 부끄러운 줄 모릅니다. ‘나는 무조건 옳다병에 걸린 것 같습니다. 윤구병 선생님은 아이들이 두려움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두려움과 상관없이 아이들은 저절로 거짓말을 합니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말하고 스스로를 보호하는 타고난 본성이 거짓말을 만들어 냅니다. 이때의 거짓말은 예진이가 동생에게 하는 것과는 종류가 다릅니다. 악의를 갖고, 자기 잘못을 감추며, 친구가 어떻게 되든 자기만 피해가려고 합니다.

거짓말 학교아예 대놓고 거짓말을 가르치는 학교입니다. 거짓말 학교에서는 양심의 가책 없이 거짓말을 잘 하면 우등생입니다. 거짓말 학교 교장 선생님은 거짓말을 할 때 생기는 양심의 가책이 억압된 마음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높아지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거짓말 헌장을 낭독하고 자유롭게 거짓말하는 학생을 길러내려 합니다. “~ 거짓말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여 창조적인 거짓말을 개척하는 데 온 힘을 쏟는다. 우리의 거짓말로 나라가 발전하며~” 거짓말 헌장을 날마다 외우며 거짓말을 배우는 곳, 기가 막힌 학교입니다.

아이들에게 거짓말이 필요하냐 물으니 100% 필요하다고 합니다. 사회 생활을 잘 하려면 거짓말 없이는 안 된다고 합니다. 못 생긴 사람에게 정직하게 못 생겼다고 할 수는 없다네요. 이런 것까지 비판하려는 의도는 아니겠지만 거짓말 학교를 만들어낸 작가의 상상력이 대단합니다. 무뎌지고 만성이 되어버린 거짓말 습관을 무대에 세워놓고 어떻게 할 거냐고 묻습니다.

독서모임 첫 시간에 내용을 파악하며 하얀 거짓말게임을 했습니다. 하얀 거짓말 게임은 협동학습에서 자기 소개를 할 때 주로 사용합니다. 자신이 겪은 일을 문장으로 만들어 자신을 소개하는데 네 문장은 참말, 한 문장은 거짓말로 만듭니다. 듣는 사람은 어떤 문장이 거짓말인지 찾아야 합니다. 친구를 잘 알지 못하면 찾을 수 없습니다. 식상한 자기소개가 흥미진진한 거짓말 찾기 게임으로 변합니다. 이걸 하면서 아이들이 서로에 대해 모르는 부분을 많이 알았습니다. 아이들보다 경험을 훨씬 많이 한 제가 보기에도 대단하다 할만한 경험을 한 아이도 여럿 있었습니다. 서로를 알아가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토론을 했습니다. 주인공인 인애와 나영이는 거짓말 학교 학생답게 이익을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합니다. 하지만 교장선생님이라는 공동의 적에 맞서기 위해 힘을 합치고 서서히 우정이 자랍니다. 우정이 깨질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둘은 서로 싸웁니다. 서로 의심하고, 의심을 떨쳐내려고 또 발버둥을 칩니다. 비난하고 싸우고 울고 그러면서도 또 친구 방을 찾아갑니다. 이 부분을 말하면서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책에 나오는 두 친구는 이기적인 목적으로 친구가 된다. 이기적인 목적으로 다가갔다면 갈등이 생길 때 친구를 버리면 그만이다. 그런데 왜 울면서 옆방에 자꾸 찾아가 귀찮게 하는 걸까?”

서로 이기기 위해 만난 사이라고 해도 힘겹고 어려운 일을 함께 겪으면 친구가 됩니다. 나영이와 인애는 함께 시간을 보냈고 어려움을 헤쳐 나갔습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랐지만 불편한 과거의 아픔을 서로에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물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친구가 있습니까?” **이는 이렇게 글을 마무리합니다.

“~이 책의 인애와 나영이는 교장선생님이 스파이를 찾아오라는 쪽지를 받고 서로를 의심했었다. 하지만 나중에 서로가 스파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밤에 서로의 방을 찾아간다. 나도 인애와 나영이처럼 계속 ○○이의 방을 찾아가서 되묻고 되물었을 것이다. 만약 ○○이가 나에 대하여 오해를 했으면 어떻게 했을지 궁금하다. 나처럼 계속 찾아왔을지 아니면 확 잘라 버렸을지 말이다. 아마 ○○이는 나를 진정한 친구로 생각한다고 나는 믿고 있기 때문에 나처럼 찾아왔을 것 같다.

예전에 따돌리고 놀았다는 오해를 서로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속의 비밀까지 털어 놓을 수 있는 사이이기 때문에 비록 오해가 생기더라도 차근차근 풀 수 있었다. 요즘 사람들은 돈을 꿔주는 것이 우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무엇이든지 함께 해 주는 것을 우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우정은 지금의 ○○이와 나처럼 서로의 고민을 털어 놓고 해결해 주는 것이 진정한 친구, 우정인 것 같다.”

우리는 글을 쓴 뒤에 꼭 글고치기를 합니다. 예진이 글을 읽고 서로 질문할 때 친구 사이에 있던 오해를 자세하게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말에 울기만 합니다. “그걸 쓰려면 마음이 너무 아파서 쓸 수가 없는 거구나!” 했더니 고개를 끄덕입니다. 예진이가 겪었던 오해 사건에도 거짓말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겁니다. 거짓말은 친구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상처를 내고 믿음을 단번에 무너뜨립니다. 유명한 사람이나 공직에 있는 사람이 거짓말을 할 경우, 그동안 쌓은 것을 한번에 잃는 걸 보면 정직이 얼마나 좋은지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날마다 거짓말을 합니다. 우리나라 재판의 절반 이상이 거짓말을 밝혀내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형사재판이건 민사재판이건 거짓말이 얽히지 않은 재판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상합니다. 거짓말이 나쁜 줄 알지만 거짓말을 안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실제로 날마다 거짓말을 합니다.

제대로 겪어보지 않고 활자화된 규범으로만 지나치게 들은 건 아닐까요? 그래서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분리된 건 아닐까요? ‘거짓말 학교는 거짓말을 장려하는 학교를 만들어 놓고 어때? 거짓말 제대로 해볼래? 어떻게 되는지?’ 하고 묻습니다. 아이들은 솔직히 거짓말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거짓말로 눈앞의 이익을 찾기보다는 신뢰를 쌓은 친구와의 우정, 거짓에 속지 않는 분별이 더 중요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진이에게는 글을 쓰면서 마음이 치유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이가 어떻게 글을 고쳐올지 기대가 됩니다.

 

우리반은 아침독서를 합니다. 2학년 우리반 아이들은 책을 가져갔다 갖다놓았다 번잡스럽게 움직이기도 합니다. 그런 장난꾸러기들마저 꼼짝 않게 만드는 독서법이 있습니다. 바로 책읽어주기입니다. 아침마다 1주일에 3번 정도 이솝이야기아빠도 읽고 자란 교과서 전래동화를 읽어주고 있습니다. 그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떤 일이 일어날까?’ 기대하며 듣습니다. 아무리 시끄러운 활동을 하는 중이라고 해도 책을 읽어주기 시작하면 금세 고요해집니다.

책읽어주기가 좋다는 걸 2009년에 알았습니다. 방과후학교 독서반을 할 때입니다. 글을 자세하게 쓰는 법을 어떻게 가르칠까 고민하면서 자세하게 쓴 예시글을 찾았습니다. 또래 아이들이 쓴 글은 많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던 경험이 있어 새로운 걸 찾았습니다. 그러다가 수준이 높은 글, 아예 아이들 눈높이를 뛰어넘어 탁월한 글, 기발하게 표현한 어른들 글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찾은 책이 로알드 달의 발칙하고 유쾌한 학교입니다.

로알드 달은 저와 제 딸들이 가장 좋아하는 동화작가입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 ‘마틸다’, ‘멋진 여우씨를 비롯한 많은 작품을 썼습니다. ‘발칙하고 유쾌한 학교로알드 달이 20세까지의 일을 동화 형식으로 쓴 자서전입니다. 로알드 달이 학교에 다닐 적 이야기 대부분은 슬프고 어둡습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훈련병처럼 취급하며 때리고 모독했으며, 선배들은 상상도 못할 방법으로 후배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런데 로알드 달 글솜씨가 얼마나 좋은지 학교 폭력이야기가 기가 막히게 재미있습니다.

저는 가끔 교사나 학부모 대상으로 강의를 합니다. 그때도 발칙하고 유쾌한 학교를 읽어줍니다. ‘죽은 쥐 소동이라는 부분을 읽다가 멈추고는 시간이 없어 여기까지만 읽어드릴게요. 알려드릴 정보가 많거든요하면 어른들이 ~ 읽던 부분 마저 읽어주세요.’ 합니다. 다 큰 어른들이 처음 만난 시골교사에게 책을 읽어달라니요. 지난 겨울 방학때도 책을 읽어주었고 이후에 몇 분은 제게 독서자료를 요청하시거나 메일로 질문을 하십니다. 대안학교인 릭스쿨 주순희 선생님은 선생님 강의를 들으면서 로알드 달을 새롭게 느끼게 됐고 <발칙하고...>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어린시절 선생님들에 대한 상처와 분노를 통쾌하게 드러낸 부분입니다. 다 이해가 되고 공감도 가는데 아이들과 수업을 할 때 이 부분을 어떻게 다루시는지? 로알드 달이 건드리는 분노와 불합리를 아이들이 실제로 어떻게 받는지? 그 부분을 어떻게 맞아내셨는지 궁금합니다.”라고 메일을 보내셨습니다.

이렇게 답했습니다. “동화는 아름다워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좋은 것만 보여줘야 한다고 하네요.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도 아이들만은 환상에서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주 중요합니다. 아이들은 선이 악을 통쾌하게 이기는 세상, 피터팬의 나라에서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로알드 달이 학교에서 무지막지하게 맞았던 이야기도 나쁘진 않습니다. 로알드 달 때문에 냉소주의나 비관주의, 어른들 세상에 대한 공격을 높이는 아이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만난 아이들은 '그래서 그렇구나!' 하면서 이해했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선배들에게 고통 당한 경험이 '작가 로알드 달'로 만들었고, 그곳에서 '마틸다''발칙하고 유쾌한 학교'가 나왔다는 걸 아이들은 이해합니다. 그 시절과 우리 시절을 비교하며 '옛날 사람들에 비하면 너희들은 행복한 줄 알아라'는 식으로 어른들이 주입하는 교훈보다는 '그래서 그렇구나!'가 더 중요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나는 그래서 이렇구나!', '나와 다른 저 아이는 그래서 그렇구나!'를 생각합니다.”

이런 답장과 함께 발칙하고 유쾌한 학교4주 동안 토론한 발문 중에 2주 분량을 보내드렸습니다. 얼마 뒤에 제 내면에 로알드가 드러낸 분노에 공감하면서, 제가 교사로 있으니 이 충돌을 어찌할까 하는 우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개학과 함께 초등 고학년 아이들과 "발칙하고 유쾌한 학교", 중학생과는 "수요일의 전쟁"을 읽고 있습니다. 정말 대~단한 책이고 아이들이 즐겁게 읽을 뿐 아니라 아이들의 내면이 건드려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만들어 주신 학습지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로알드 달의 책이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기억을 맘껏 꺼내 올리게 해 주고 비슷한 "비리"를 고백(?)할 수 있는 자유로움과 용기를 주는 것이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너무 감사드립니다.” 라도 다시 답장이 왔습니다.

학교폭력이 아이들을 힘들게 합니다. 괴롭힌 친구는 진짜 나쁜 가해자, 괴롭힘 당한 친구는 억울한 피해자로 몰아붙입니다. 아이들을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누는 이분법은 두 아이들 모두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깁니다. 이런 태도는 괴롭힌 아이와 괴롭힘 당한 아이 모두를 방어적으로 만듭니다. 어떻게 해서든 자기에게 유리하게만 말하고 상대방에게 잘못을 떠넘깁니다. 친구 사이가 회복된다거나 이해하는 마음은 고사하고, 오히려 더 멀어지기 일쑤입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읽어주기만 하는 것으론 부족합니다. 독서토론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학급 아이들과 독서활동을 하려면 모두 책을 읽어야 합니다. 이게 어렵다면 시간을 정해 선생님이 꾸준히 읽어주세요. 1주일에 한두 번 읽어주면 한두 달이면 다 읽습니다. 다 읽은 뒤에 첫 주에는 책 내용을 파악하세요. 독서퀴즈나 골든벨을 하면 됩니다. 자칫 똑똑한 아이들만의 잔치가 되는 분위기라면 약간 어렵게 × 퀴즈를 해보세요. 잘 찍어서 1등하는 아이가 나오게 하세요. 이런 분위기가 아니라면 조별로 의논해서 답하는 협동퀴즈를 해도 좋습니다. 재미는 없고 경쟁만 있는 내용파악을 피하고 시험 치는 분위기가 아니네하는 마음을 주세요.

내용을 파악한 뒤에 이야기식 독서토론을 합니다. 저는 90분 동안 토론할 질문을 미리 준비해서 인쇄해 줍니다. 아이들은 의견을 요약하거나 상대방 이야기를 적어가며 토론합니다. 다음은 두 번째 시간에 한 질문 중 일부입니다. 1. 로알드 달의 아버지에게 일어난 일은 무엇인가? 2. 2012년에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3. 로알드 달이 기억하는 유치원 때 최고의 사건은 무엇인가? 4. 여러분이 유치원 다닐 때 가장 기억나는 사건은 무엇인지 소개해 보자.

셋째 주에는 찬반으로 나눌 수 있는 쟁점을 골라 토론을 했습니다. 1. 로알드 달은 취미 수준을 넘어 두 가지 일에 전문가(운동, 사진 찍기)가 되었다. 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게 좋을까?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게 좋을까? 2. 여러분이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 3. 로알드 달의 고향인 노르웨이에서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리지 않는다. 영국 학교에서 종아리를 맞고 온 로알드 달을 대하는 엄마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반면에 영국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심하게 때린다. 로알드 달은 영국의 모든 학교에서 매를 맞아야 했다. 영국처럼 지나치게 때리는 경우가 아니라면, 매는 학교에서 허용해야 하나?

토론은 아이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성적으로 줄세우지 않고 아이들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발칙하고 유쾌한 학교로 토론해보세요. 피해자와 가해자가 함께 느낄만한 공감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로알드 달이 겪은 일을 통해 방어벽을 쌓지 않으면서 자기 이야기를 꺼낼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방어벽을 무너뜨리고 네가 그랬구나!’하면서 다가갈 겁니다.

 

추가) 로알드 달이 지은 책을 소개합니다. 뒤로 갈수록 수준이 높아집니다. (거꾸로 목사님 - 멍청씨 부부 이야기 - 멋진 여우씨 - 창문닦이 삼총사 -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 - 조지, 마법의 약을 만들다. - 찰리와 초콜릿 공장 - 찰리와 거대한 유리 엘리베이터 - 마틸다 - 마녀를 잡아라 - 발칙하고 유쾌한 학교)

 

바보 온달을 아시죠? 평강공주를 만나 똑똑해지더니 급기야 나라를 구하는 영웅이 된 사람입니다. 멋진 왕자를 만나 행복해진 공주들 이야기는 참 많지만 온달처럼 여자를 잘 만나 성공한 남자이야기는 적습니다. 남자를 바보라고 표현하고 싶지 않았던 옛날 사람들 생각 때문이겠지요.

바보 온달이 평강공주를 만난 건 좋은 일일까요? 바보 온달이 똑똑하고 용감한 장군이 되어 이름을 떨친 게 산에서 짐승들과 어울리며 바보처럼 사는 것보다 더 훌륭한 삶이냐는 겁니다. “그럼 좋은 대학 나와서 유명해지며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면 좋지. 산에서 농사 지으며 조용히 사는 게 더 낫단 말입니까?”하고 반박할 수 있겠네요. 진짜 그런지 생각해보도록 안내하는 책이 있습니다. 이현주 작가가 쓴 바보 온달(우리교육)’은 평강공주가 바보 온달을 멋진 남자로 바꾼 게 정말 잘한 일인지 묻습니다.

이현주 작가가 쓴 바보 온달은 좀 다릅니다. 내용 앞과 뒤에 짧은 이야기가 붙어있습니다. 고장난 별을 고치는 어린 영혼이 고칠 별이 없다고 투덜대자 꼬마별이 일거리를 소개합니다. 밤마다 별에게 돌을 던지는 아이가 있으니 좀 고쳐달라고 합니다. 돌을 던지는 건 반항과 분노의 표현이므로 고쳐야겠지요. 그래서 어린 영혼은 돌을 던지는 바보 온달을 고치려고 평강 공주를 보냅니다. 바보 온달 이야기가 끝나고 부록처럼 붙은 뒷부분에서 어린 영혼은 난 완전히 실패한 거예요라고 말합니다. 아이가 병든 게 아닌데 병들었다고 생각해서 고치려 든 게 잘못이라고 말합니다. 별을 고치듯 사람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한 게 탈이라고 고백하며 별을 고칠 때 쓰는 도구를 던져버립니다.

아이들이 책을 읽었다고 말할 때는 줄거리를 기억한다는 뜻입니다. “책 다 읽었어요라는 말에 선생님이나 부모님은 그래, 어떤 내용이야?”하고 묻습니다. 줄거리를 잘 말하면 책을 다 읽었다고 인정합니다. 독서퀴즈나 골든벨 문제 역시 줄거리를 알면 대부분 맞출 수 있는 수준에서 문제를 냅니다. ‘온달이 평강공주 만나서 글도 배우고 무술도 배워 훌륭한 장군이 되었다. 나라를 구해내고 장렬하게 죽는다.’를 알면 바보 온달을 읽었다고 합니다.

줄거리만 아는 정도의 책읽기를 한다면 바보 온달 이야기는 다 똑같습니다. 그러면 평강공주처럼 다른 사람을 도와주어야겠다를 뛰어넘기 어렵습니다. 독서반에서 바보 온달을 읽고 첫 시간에 줄거리와 내용 파악을 했습니다. 둘째 시간에는 앞뒤에 나온 별과 어린 영혼의 대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책에서 네 문장을 골라 무엇을 뜻하는지 이야기했습니다. 눈이 이토록 맑게 빛날 때가 있다 곰같이 둔한 녀석은 그냥 버티고 서서 (장군은)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고, 반대로 (온달은) 누군가를 쫓고 있는 사람같이 보였던 것이다. 끝없이 상처를 입으며, 그러나 그 상처를 스스로 훌륭하게 치료하며, 그리하여 그 상처를 자랑하며 언제나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아이들은 마음에 드는 문장을 골라 한 문단씩 글을 썼습니다. 김예은(6)눈이 이토록 밝게 빛날 때가 있다는 사실을 인용해서 글을 썼습니다. “사람이 눈이 빛날 수 있다면 뭔가 관심 가는 것, 흥미로운 것을 봤을 때나 어떤 일을 열성적으로 할 때가 아닐까? 나도 그럴 때가 있다.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읽을 때나 블로그카페에서 글 쓸 때, 친구들이랑 놀 때…… 그럼 반대로 눈이 빛나기는 커녕 빛이 사라질 때도 있다. 왠지 엄마 잔소리 들을 때의 눈빛이 빛이 사라진 눈빛과 같다. 흐리멍텅하게 구름 낀 것 같이 초점을 잃은…… 자신이 싫어하는 일을 했을 때의 눈빛일 것이다. 내 생활을 바라보면 눈빛이 사라질 때가 조금 더 많은 것 같다.”

어린 영혼은 성급하게 바보 온달을 바보라고 단정짓고 고치려 들었습니다. 온달은 똑똑해지고 이름을 떨치게 되지만 본래의 자신을 잃어버립니다. 자기가 가는 길을 가로막았다는 이유만으로 온달을 때리던 고승장군과 똑같은 모습으로 변해서 누구든지 밟고 지나가려 합니다. 현대 사회의 어린 영혼이 보낸 또다른 평강공주 때문에 예은이가 눈빛이 사라질 때가 조금 더 많다고 쓴 건 아닐까요! 바우와 함께 산과 들에서 즐겁게 뛰어놀며 어우러져 살아갈 바보 온달 모습이 보기 싫다고 교육을 시킨 건 아닐까요?

셋째 시간에는 온달이 바보처럼 사는 게 나았는지, 장군으로 사는 게 나았는지 토론했습니다. 이현주 작가 마음처럼 자기 모습 그대로 살아야 한다는 아이도 있고, 현대사회에 잘 적응해서 멋진 고승장군이 되면 된다는 아이도 있습니다. 마지막 시간에는 독서감상문을 썼습니다. 박아영은(6) 바보 온달을 이렇게 읽어냅니다. “결코 온달은 바보가 될 수 없다. 바보란 두 가지 뜻이 있는데 하나는 어리석고 못나게 구는 사람을 얕잡거나 비난하여 이르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지능이 부족하고 어리석어서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책 앞쪽에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어리석음의 기준은 무엇이지? 온달은 자기 자신에게 어리석고 못나게 굴었던가! 자신이 할 일을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였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보라면 온달같은 바보가 이 세상에 많았으면 좋겠다. 고승장군에게 맞으면서도 빌거나 도망가지 않고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는 온달같은 사람들이 많다면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라는 말처럼 육체적 풍요로움보다 정신적인 풍요로움이 넘쳐날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고승장군같은 행동을 너무 많이 했다. (……) 마지막 장면에 온달이 죽게 되어 관에 시신을 넣고 가지고 산을 내려 가려고 했는데 관이 움직이지 않았다. 소식을 듣고 평강이 산으로 올라가 온달을 고승장군처럼 만든 것을 용서해 달라고 하자 관이 움직였다. 이것은 지난 날의 오만했던 온달 자신의 죄를 뉘우침과 동시에 자신을 그렇게 만든 평강을 용서하고 오만함에 빠져 죽이게 된 유일한 친구인 바우에게 미안함을 표하는 행동인 것 같다.“

정신적 풍요를 더 귀하게 여기는 아이를 만나는 즐거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학원에서 하듯 문제를 풀지도 않고, 족집게 강의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책을 읽고 이야기나누고 글을 쓰러 오는 아이들을 보면 힘이 불끈 솟습니다. 아이들이 쓴 글이 너무 좋아서 몇 번이고 읽어봅니다. 세상에 대한 불만을 거칠게 표현하지만 글에 드러난 아이다움에 감탄합니다. 지치고 힘들 때면 아이들이 쓴 글을 읽고 힘을 냅니다. 이 맛이 너무 좋아서 줄거리로만 멈추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정답을 맞추지 말고 생각을 나누자고 독려합니다. 그렇게 해서 맺은 열매는 발버둥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습니다.

제가 독서모임을 하는 이유는 지친 아이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쓰면서 마음을 털어내면 얼마나 좋은지 알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죠. 이런 과정을 힘들어하고 지치기도 할 겁니다. 그렇지만 슬픈 마음을 슬프다고 표현하고, 아픈 상처를 꺼내놓고 아파요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치유가 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줄거리만 보지 말고 책이 삶을 이야기하게 하자고 꼬드깁니다. 한 문장을 쓰면서 이걸 하건, 중심이 되는 한 낱말을 찾아 글을 쓰면서 찾아가건, 토론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주건 이게 목적입니다.

3월입니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달입니다. 책을 꺼내든 아이들, 독서지도를 하려는 선생님들 모두 줄거리를 뛰어넘어 책으로 자신을 읽어내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학교에서 방과후 독서반을 운영하며, 교회에서 초등, 중등 독서반에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다달이 책 한 권을 읽고 토론하고 글을 씁니다. 10명 내외의 아이들과 매주 100분 정도 함께 합니다. 첫 주에는 배경지식을 알아보고 내용을 파악합니다. 둘째 주에는 이야기식 독서토론을 합니다. 책 내용, 아이들이 고민해야 하는 내용, 지난 시대나 현재에 이슈가 되는 내용으로 발문을 준비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셋째 주에는 핵심 쟁점을 서너 개 정해서 찬반토론이나 교차쟁점식 독서토론을 합니다. 마지막 주에는 배운 내용을 정리하고 글을 씁니다. 대상도서에 따라, 아이들 마음가짐이나 사회 이슈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대체로 이렇게 공부합니다.

아이들은 책을 집중해서 읽지 않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라도 줄거리와 내용파악을 넘지 못합니다. 독서반을 시작할 때는 한 달 동안 한 권으로 공부한다고 하면 지루할 거라 생각합니다. 책 읽기도 힘들고, 읽어도 할 말이 없어 참 많은 것을 느꼈다외에는 달리 표현하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직접 해보면 책 한 권으로 할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중학교 독서반에서 송혁(3) 학생이 미하엘 엔데가 쓴 모모2011년 최고의 책으로 소개하며 “(전략) 처음 모모를 독서모임에서 하자고 했을 때 재미있고 읽기 쉬운 책이어서 그렇게 하자고 한 거였다. 하지만 단순한 재미가 아니라 속에 담겨있는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책을 읽고 혼자였다면 몰랐을 여러 가지가 나에게 다가왔다. 모모는 반드시 읽고 나눠야할 책이다. 혼자만 알고 있으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은 책이다. (후략)”라고 썼습니다. 한 달 동안 대상도서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아이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이 책이 이런 책인 줄 몰랐어요.”

겉핥기로 줄거리만 읽기엔 너무나 아까운 책 중에 하나가 <1940년 열두 살 동규>입니다. 북삼초등학교 독서반에서 <1940년 열두 살 동규> 내용을 파악하고 일제 강점기가 어떤 시대였는지 나누었습니다. 두 번째 시간에 물었습니다. “동규가 겪었던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일까?” 아이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죽음’, ‘일본 선생의 차별’, ‘죽은 동포 아이들의 시체를 본 일등을 말합니다.

너희들은 지금 무엇이 가장 힘들어?” 저는 배경설명 없이 대뜸 이런 질문을 합니다. 일부러 분위기를 만들지 않고 물어보면 썰렁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책에 빠졌기 때문인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포장을 벗겨낸 것처럼 속을 내보입니다. 아이들은 대부분 성적, 차별, 비교를 말합니다. 공부를 워낙 잘해서 다른 세상에서 온 대접 받는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넌 뭐가 힘들어?” “사람들이 공부 잘한다고……그러더니 고개를 숙이고 얼굴 근육이 일그러지며 웁니다. 함께 앉은 친구들이 당황해 합니다. 그러고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 아이를 다시 봅니다. 공부 잘하는 게 부럽기만 했지 기대가 부담이라는 걸 몰랐을 테죠. 하지만 이젠 공감합니다. 아이는 글을 이렇게 마무리했습니다. “(생략)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하는 외로움을 해결하는 방법은 기댈 누군가를 찾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사람을 찾으려면 지금 겪는 외로움을 설명해야 하고, 그걸 설명하는 과정은 너무 많은 용기를 요구한다.

기댈 사람 찾기 힘들다고 썼지만 우리는 압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이 눈물을 본 친구들은 이해하고 서로 손을 내민다는 걸. 덕분에 우리는 마음에 쌓인 울분을 토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비교하는 엄마’, ‘차별하는 엄마가 주로 공격 당했습니다. 흥분해서 얼굴 벌게지는 아이, 눈물 글썽이는 아이, 어느 때보다 신나게 이야기하며 속을 털어냈습니다. 그리고 글을 썼습니다. 한 문장, 두 문장…… 한쪽을 넘고 두 쪽을 채우도록 씁니다.

세 번째 시간에 왕따,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더 나누고 다시 글을 썼습니다. 아픈 글이 너무 많았습니다. 심예빈이 쓴 글을 읽으며 위의 아이와 바꿔 읽으면 굳이 위로하는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글로 위로를 받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로의 동의를 얻어 글을 바꿔 읽게 했더니 둘이 얼굴을 쳐다보며 너도 그러니?” 하고는 껴안습니다. 독서반이 끝난 뒤에 두 아이가 손을 잡고 이야기하며 걸어가는 모습을 창문 너머로 보면서 너무 좋았습니다.

심예빈

지금 나와 내 친구들은 서로 다른 어려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내겐 그렇게 큰 어려움은 없다. 단지 공부하는 것이 조금 버거울 뿐이다. 그렇다고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동규는 많은 모욕감과 차별을 받고 동규 나름대로 힘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동규가 힘든 상황에서 살았다고 해서 내가 꼭 동규를 본받아서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도 그 시대에 태어났으면 나도 똑같이 힘들었을 것이다. 항상 일본사람들을 위해야 했고, 조선인이라서 일본 친구들과 차별된 대우를 받으며 공부를 해야 했을 것이다. 만일 동규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지금의 나와 똑같이 공부를 하고, 평범한 생활을 했을 것이다. 또 나처럼 공부가 힘들다고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항상 공부가 힘들다, 어렵다, 하기 싫다. 말하지만 실제로 내 인생에서 공부가 가장 힘든 건 아니다. 잘 생각해 보면 공부 말고도 힘든 일이 많다. 친구들간의 관계도 그렇고. 나는 지금 사춘기다. 그래서 모든 일을 다 하기 싫어하고 부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중략) 공부를 잘하는 아이도 그만큼의 부담감이 있어 힘들 것이고 공부를 못하는 아이도 어려운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로 힘들 것이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쯤의 아이도 '나는 뭐지?' 방황하며 제자리를 잘 찾지 못하여 힘들 것이다. (후략)

예빈이는 다른 글에서 외로움이 기댈 수 있는 곳이 없는 것이라고 썼습니다. 한 명이라도 진심을 알아주었다면 외롭지 않았을 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기댈만한 곳이 없었다네요. 그래서 외로움이 더 컸다고 합니다. 대구나 광주에서 친구에게 괴롭힘 당하다가 자살한 아이들은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그 아이들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미안할 따름입니다.

<1940년 열두 살 동규>는 외로움을 꺼내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나는 이렇게 힘들다. 너는 어떠냐?’ 묻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친구들이 나도 이렇게 힘들다. 너도 그랬구나대답합니다. 독서퀴즈하고 골든벨을 하는 정도로는 알 수 없었겠지요. 책으로 이야기를 나누세요. 하고 싶은 말, 속 시원히 털어놓고 싶은 생각은 강요하지 않아도 씁니다. 아이들이 쓴 글을 읽고 왜 이렇게 썼느냐?’고 나쁘게 평가하지 않는다면 더 깊고 멋진 글을 쓸 것입니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기회를 주세요.

함께 읽으면 좋은 책
1. 죽음의 수용소에서(빅터 프랭클/청아출판사) : 고통과 외로움을 겪는 사람에게 무엇이 이겨낼 힘을 주는가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대상-일반)
2.
엄마가 떠난 뒤에(킴벌리 윌리스 홀트/우리교육) : 엄마를 잃은 아이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따뜻하게 드러납니다. (대상-6 이상)

 

책을 읽으면 낱말을 많이 알게 됩니다. 문장을 이해하는 능력도 자라고, 분석하고 요약하고 숨은 의도를 꿰뚫는 능력도 생깁니다. 이 모두를 과정에서 겪어내면 독서가 나의 힘이 됩니다. 책을 읽는 진짜 이유는 즐겁기 때문이고 자신을 알아가기 때문이고 !’하는 깨달음 때문입니다. 그런데 힘이 되는 이 좋은 독서를 강요하면 어떻게 될까요?

책을 많이 읽으면 공부를 잘한다고 억지로 책을 읽게 하는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학교에서도 독서지도가 꼭 해야만 하는 짐으로 다가옵니다. 독서를 공부실적에 두고 책을 도구로 삼는 거지요.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사람을 만나면 어떻습니까? 나를 이용해서 자기 목적을 이루려는 사람과는 진짜 사귐을 가질 수 없습니다. 속을 내비치고 싶은 사람은 내 허물과 부족함을 알면서도 나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책도 같습니다. 책은 정보를 담은 덩어리가 아닙니다. 책은 내 부족함을 깨닫게 해줘서 좋고, 고개를 끄덕이는 이야기를 만나서 좋고, 그냥 기분 좋아서 읽습니다. 정보를 얻는 수단으로만 쓰이고 난 뒤,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지 못한 채 폐기처분 되는 책이 가장 불쌍한 책입니다.

독서에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책을 읽을수록 종류에 따라 읽는 방식을 달리 해야 한다는 걸 압니다. 여유가 있을 때 읽는 책과 급할 때 읽는 책을 구분합니다. 훑어보기만 해도 되는 책이 있고 몇 번이고 곱씹어야 하는 책도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하지만 결과만을 위해 찾는 기술은 으로 끝나버리지 이 되지 않습니다. 독서 기술에 정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독서를 살아내면서과정을 거치고 있는 사람입니다.

방학이 다가옵니다. 선생님들이 방학숙제를 냅니다. 독서가 힘이라 생각해서 책읽기를 결과로 요구하시나요? 아이들은 책읽기 방학숙제를 싫어합니다. 책을 읽었다는 증거를 만드는 게 싫어서 그럽니다. 열 권을 읽으면 독서감상문 열 편을 써야 합니다. 대부분 개학을 앞두고 며칠 동안 인터넷 검색해서 줄거리만 잔뜩 쓰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문장을 끼워 넣습니다. 느낌 없는 글씨를 옮겨 쓰기만 하니 지겨울 수밖에 없습니다. 과정 없이 숙제로 독서를 요구하면 아이들은 독서의 힘을 깨닫기 전에 책을 싫어하게 됩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늘 책이야기를 하고, 책으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수업 시간에 독서토론을 하고 학급 일로 의견을 나눌 때도 토론 과정을 거칩니다. ‘우리반 책을 정해서 함께 읽고 내용 말하고, 좋아하는 장면 이야기하고, ‘거기 참 좋았지합니다. 평소에 이런 과정을 거치며 책과 친하게 해주면 책읽기 숙제를 어려워하지 않습니다. 평소에 책을 대할 때 제 눈빛을 아는 아이들은 진짜 책이 좋은가봐! 한 번 읽어볼까?’ 합니다. 책이 얼마나 좋은지 눈빛을 통해 독서의 힘을 자주 만났고요, 독서감상문을 쓰면서 지겹고 힘들지 않다는 걸 압니다. 그래서 방학 동안 30, 50, 100권 읽습니다.

조너선 코졸은 교사로 산다는 것에서 학생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 수업은 공책에 필기한 내용도 아니고, 교과서에 인쇄된 궁색한 문장도 아니다. 그것은 수업하는 내내 교사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메시지다.” 라고 말합니다. 독서를 말할 때 교사의 눈빛에서 학생들이 불꽃을 본다면 책을 읽습니다. 책 읽는 숙제를 50권이라도 해냅니다. 하지만 그걸 숙제로 내면 숙제 하듯이 해버립니다. 평소에 책과 멀리 지내다가 갑자기 책읽기를 하라고 하면 숙제로, 압박으로 받습니다.

독서는 나의 힘이지만 독서가 힘이라고 강요하진 않습니다. 독서의 힘을 모르면서 말로만 떠들지도 않습니다. 아이들은 직접 겪고 느낀 사람이 하는 말인지, 책 읽지 않는 사람이 말만 읊어대는지 압니다. 독서를 힘으로 삼은 사람 곁에 있으면 듣습니다. 책 읽는 게 좋다는 걸 몰라서 안 읽는 게 아니잖습니까! 독서감상문을 두려워한다면, 읽은 책으로 가족이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걸 일기로 쓰라고 하세요. 책이야기도 있을 테고, 친구 이야기도 있는 소박한 독서감상문을 즐겁게 써올 겁니다. 독서감상문 때문에 책을 싫어하지 않도록 해야겠죠. 독서가 힘이 되려면 독서에 발을 내밀 때까지 부담 주지 말고 기다리며 눈빛을 보내야 합니다.

제가 가르친 아이들 중에도 책을 안 읽는 아이가 있습니다. 책이라면 죽은 쥐 보듯 징그럽게 여기며 피해가는 아이들이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 아이들도 제가 책을 읽어주면 귀 기울여 듣습니다. 본인이 책을 거의 읽지 않기 때문에 제가 들려주는 책이 더 기억날 겁니다. 들어서라도 읽은 책이 그것밖에 없는 경우도 있을 테니까요.

방학이 다가오면 시간 날 때마다 책을 읽어주세요. 로알드 달의 발칙하고 유쾌한 학교에서 죽은 쥐 소동한 부분을 읽어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제가 이걸 읽어준 뒤에 도서관에서 로알드 달 책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게일 카슨 레빈이 쓴 행복한 글쓰기에서 세부묘사 하는 방법을 설명한 부분을 읽어줘도 아이들이 좋아합니다. 이야기가 아닌, 글쓰기 방법 설명이지만 귀 기울여 듣습니다. 중학생이라면 운수 좋은 날에서 앞부분만 읽어줘도 됩니다. 그러면 책에 흥미를 느끼고 방학 동안 한국 문학 단편을 뒤적이며 메밀꽃 필 무렵에 빠질 지도 모릅니다. 그럼 저절로 독서의 힘을 알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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