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반은 아침독서를 합니다. 2학년 우리반 아이들은 책을 가져갔다 갖다놓았다 번잡스럽게 움직이기도 합니다. 그런 장난꾸러기들마저 꼼짝 않게 만드는 독서법이 있습니다. 바로 책읽어주기입니다. 아침마다 1주일에 3번 정도 이솝이야기아빠도 읽고 자란 교과서 전래동화를 읽어주고 있습니다. 그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떤 일이 일어날까?’ 기대하며 듣습니다. 아무리 시끄러운 활동을 하는 중이라고 해도 책을 읽어주기 시작하면 금세 고요해집니다.

책읽어주기가 좋다는 걸 2009년에 알았습니다. 방과후학교 독서반을 할 때입니다. 글을 자세하게 쓰는 법을 어떻게 가르칠까 고민하면서 자세하게 쓴 예시글을 찾았습니다. 또래 아이들이 쓴 글은 많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던 경험이 있어 새로운 걸 찾았습니다. 그러다가 수준이 높은 글, 아예 아이들 눈높이를 뛰어넘어 탁월한 글, 기발하게 표현한 어른들 글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찾은 책이 로알드 달의 발칙하고 유쾌한 학교입니다.

로알드 달은 저와 제 딸들이 가장 좋아하는 동화작가입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 ‘마틸다’, ‘멋진 여우씨를 비롯한 많은 작품을 썼습니다. ‘발칙하고 유쾌한 학교로알드 달이 20세까지의 일을 동화 형식으로 쓴 자서전입니다. 로알드 달이 학교에 다닐 적 이야기 대부분은 슬프고 어둡습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훈련병처럼 취급하며 때리고 모독했으며, 선배들은 상상도 못할 방법으로 후배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런데 로알드 달 글솜씨가 얼마나 좋은지 학교 폭력이야기가 기가 막히게 재미있습니다.

저는 가끔 교사나 학부모 대상으로 강의를 합니다. 그때도 발칙하고 유쾌한 학교를 읽어줍니다. ‘죽은 쥐 소동이라는 부분을 읽다가 멈추고는 시간이 없어 여기까지만 읽어드릴게요. 알려드릴 정보가 많거든요하면 어른들이 ~ 읽던 부분 마저 읽어주세요.’ 합니다. 다 큰 어른들이 처음 만난 시골교사에게 책을 읽어달라니요. 지난 겨울 방학때도 책을 읽어주었고 이후에 몇 분은 제게 독서자료를 요청하시거나 메일로 질문을 하십니다. 대안학교인 릭스쿨 주순희 선생님은 선생님 강의를 들으면서 로알드 달을 새롭게 느끼게 됐고 <발칙하고...>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어린시절 선생님들에 대한 상처와 분노를 통쾌하게 드러낸 부분입니다. 다 이해가 되고 공감도 가는데 아이들과 수업을 할 때 이 부분을 어떻게 다루시는지? 로알드 달이 건드리는 분노와 불합리를 아이들이 실제로 어떻게 받는지? 그 부분을 어떻게 맞아내셨는지 궁금합니다.”라고 메일을 보내셨습니다.

이렇게 답했습니다. “동화는 아름다워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좋은 것만 보여줘야 한다고 하네요.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도 아이들만은 환상에서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주 중요합니다. 아이들은 선이 악을 통쾌하게 이기는 세상, 피터팬의 나라에서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로알드 달이 학교에서 무지막지하게 맞았던 이야기도 나쁘진 않습니다. 로알드 달 때문에 냉소주의나 비관주의, 어른들 세상에 대한 공격을 높이는 아이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만난 아이들은 '그래서 그렇구나!' 하면서 이해했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선배들에게 고통 당한 경험이 '작가 로알드 달'로 만들었고, 그곳에서 '마틸다''발칙하고 유쾌한 학교'가 나왔다는 걸 아이들은 이해합니다. 그 시절과 우리 시절을 비교하며 '옛날 사람들에 비하면 너희들은 행복한 줄 알아라'는 식으로 어른들이 주입하는 교훈보다는 '그래서 그렇구나!'가 더 중요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나는 그래서 이렇구나!', '나와 다른 저 아이는 그래서 그렇구나!'를 생각합니다.”

이런 답장과 함께 발칙하고 유쾌한 학교4주 동안 토론한 발문 중에 2주 분량을 보내드렸습니다. 얼마 뒤에 제 내면에 로알드가 드러낸 분노에 공감하면서, 제가 교사로 있으니 이 충돌을 어찌할까 하는 우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개학과 함께 초등 고학년 아이들과 "발칙하고 유쾌한 학교", 중학생과는 "수요일의 전쟁"을 읽고 있습니다. 정말 대~단한 책이고 아이들이 즐겁게 읽을 뿐 아니라 아이들의 내면이 건드려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만들어 주신 학습지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로알드 달의 책이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기억을 맘껏 꺼내 올리게 해 주고 비슷한 "비리"를 고백(?)할 수 있는 자유로움과 용기를 주는 것이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너무 감사드립니다.” 라도 다시 답장이 왔습니다.

학교폭력이 아이들을 힘들게 합니다. 괴롭힌 친구는 진짜 나쁜 가해자, 괴롭힘 당한 친구는 억울한 피해자로 몰아붙입니다. 아이들을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누는 이분법은 두 아이들 모두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깁니다. 이런 태도는 괴롭힌 아이와 괴롭힘 당한 아이 모두를 방어적으로 만듭니다. 어떻게 해서든 자기에게 유리하게만 말하고 상대방에게 잘못을 떠넘깁니다. 친구 사이가 회복된다거나 이해하는 마음은 고사하고, 오히려 더 멀어지기 일쑤입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읽어주기만 하는 것으론 부족합니다. 독서토론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학급 아이들과 독서활동을 하려면 모두 책을 읽어야 합니다. 이게 어렵다면 시간을 정해 선생님이 꾸준히 읽어주세요. 1주일에 한두 번 읽어주면 한두 달이면 다 읽습니다. 다 읽은 뒤에 첫 주에는 책 내용을 파악하세요. 독서퀴즈나 골든벨을 하면 됩니다. 자칫 똑똑한 아이들만의 잔치가 되는 분위기라면 약간 어렵게 × 퀴즈를 해보세요. 잘 찍어서 1등하는 아이가 나오게 하세요. 이런 분위기가 아니라면 조별로 의논해서 답하는 협동퀴즈를 해도 좋습니다. 재미는 없고 경쟁만 있는 내용파악을 피하고 시험 치는 분위기가 아니네하는 마음을 주세요.

내용을 파악한 뒤에 이야기식 독서토론을 합니다. 저는 90분 동안 토론할 질문을 미리 준비해서 인쇄해 줍니다. 아이들은 의견을 요약하거나 상대방 이야기를 적어가며 토론합니다. 다음은 두 번째 시간에 한 질문 중 일부입니다. 1. 로알드 달의 아버지에게 일어난 일은 무엇인가? 2. 2012년에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3. 로알드 달이 기억하는 유치원 때 최고의 사건은 무엇인가? 4. 여러분이 유치원 다닐 때 가장 기억나는 사건은 무엇인지 소개해 보자.

셋째 주에는 찬반으로 나눌 수 있는 쟁점을 골라 토론을 했습니다. 1. 로알드 달은 취미 수준을 넘어 두 가지 일에 전문가(운동, 사진 찍기)가 되었다. 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게 좋을까?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게 좋을까? 2. 여러분이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 3. 로알드 달의 고향인 노르웨이에서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리지 않는다. 영국 학교에서 종아리를 맞고 온 로알드 달을 대하는 엄마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반면에 영국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심하게 때린다. 로알드 달은 영국의 모든 학교에서 매를 맞아야 했다. 영국처럼 지나치게 때리는 경우가 아니라면, 매는 학교에서 허용해야 하나?

토론은 아이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성적으로 줄세우지 않고 아이들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발칙하고 유쾌한 학교로 토론해보세요. 피해자와 가해자가 함께 느낄만한 공감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로알드 달이 겪은 일을 통해 방어벽을 쌓지 않으면서 자기 이야기를 꺼낼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방어벽을 무너뜨리고 네가 그랬구나!’하면서 다가갈 겁니다.

 

추가) 로알드 달이 지은 책을 소개합니다. 뒤로 갈수록 수준이 높아집니다. (거꾸로 목사님 - 멍청씨 부부 이야기 - 멋진 여우씨 - 창문닦이 삼총사 -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 - 조지, 마법의 약을 만들다. - 찰리와 초콜릿 공장 - 찰리와 거대한 유리 엘리베이터 - 마틸다 - 마녀를 잡아라 - 발칙하고 유쾌한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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