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면 낱말을 많이 알게 됩니다. 문장을 이해하는 능력도 자라고, 분석하고 요약하고 숨은 의도를 꿰뚫는 능력도 생깁니다. 이 모두를 과정에서 겪어내면 독서가 나의 힘이 됩니다. 책을 읽는 진짜 이유는 즐겁기 때문이고 자신을 알아가기 때문이고 !’하는 깨달음 때문입니다. 그런데 힘이 되는 이 좋은 독서를 강요하면 어떻게 될까요?

책을 많이 읽으면 공부를 잘한다고 억지로 책을 읽게 하는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학교에서도 독서지도가 꼭 해야만 하는 짐으로 다가옵니다. 독서를 공부실적에 두고 책을 도구로 삼는 거지요.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사람을 만나면 어떻습니까? 나를 이용해서 자기 목적을 이루려는 사람과는 진짜 사귐을 가질 수 없습니다. 속을 내비치고 싶은 사람은 내 허물과 부족함을 알면서도 나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책도 같습니다. 책은 정보를 담은 덩어리가 아닙니다. 책은 내 부족함을 깨닫게 해줘서 좋고, 고개를 끄덕이는 이야기를 만나서 좋고, 그냥 기분 좋아서 읽습니다. 정보를 얻는 수단으로만 쓰이고 난 뒤,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지 못한 채 폐기처분 되는 책이 가장 불쌍한 책입니다.

독서에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책을 읽을수록 종류에 따라 읽는 방식을 달리 해야 한다는 걸 압니다. 여유가 있을 때 읽는 책과 급할 때 읽는 책을 구분합니다. 훑어보기만 해도 되는 책이 있고 몇 번이고 곱씹어야 하는 책도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하지만 결과만을 위해 찾는 기술은 으로 끝나버리지 이 되지 않습니다. 독서 기술에 정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독서를 살아내면서과정을 거치고 있는 사람입니다.

방학이 다가옵니다. 선생님들이 방학숙제를 냅니다. 독서가 힘이라 생각해서 책읽기를 결과로 요구하시나요? 아이들은 책읽기 방학숙제를 싫어합니다. 책을 읽었다는 증거를 만드는 게 싫어서 그럽니다. 열 권을 읽으면 독서감상문 열 편을 써야 합니다. 대부분 개학을 앞두고 며칠 동안 인터넷 검색해서 줄거리만 잔뜩 쓰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문장을 끼워 넣습니다. 느낌 없는 글씨를 옮겨 쓰기만 하니 지겨울 수밖에 없습니다. 과정 없이 숙제로 독서를 요구하면 아이들은 독서의 힘을 깨닫기 전에 책을 싫어하게 됩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늘 책이야기를 하고, 책으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수업 시간에 독서토론을 하고 학급 일로 의견을 나눌 때도 토론 과정을 거칩니다. ‘우리반 책을 정해서 함께 읽고 내용 말하고, 좋아하는 장면 이야기하고, ‘거기 참 좋았지합니다. 평소에 이런 과정을 거치며 책과 친하게 해주면 책읽기 숙제를 어려워하지 않습니다. 평소에 책을 대할 때 제 눈빛을 아는 아이들은 진짜 책이 좋은가봐! 한 번 읽어볼까?’ 합니다. 책이 얼마나 좋은지 눈빛을 통해 독서의 힘을 자주 만났고요, 독서감상문을 쓰면서 지겹고 힘들지 않다는 걸 압니다. 그래서 방학 동안 30, 50, 100권 읽습니다.

조너선 코졸은 교사로 산다는 것에서 학생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 수업은 공책에 필기한 내용도 아니고, 교과서에 인쇄된 궁색한 문장도 아니다. 그것은 수업하는 내내 교사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메시지다.” 라고 말합니다. 독서를 말할 때 교사의 눈빛에서 학생들이 불꽃을 본다면 책을 읽습니다. 책 읽는 숙제를 50권이라도 해냅니다. 하지만 그걸 숙제로 내면 숙제 하듯이 해버립니다. 평소에 책과 멀리 지내다가 갑자기 책읽기를 하라고 하면 숙제로, 압박으로 받습니다.

독서는 나의 힘이지만 독서가 힘이라고 강요하진 않습니다. 독서의 힘을 모르면서 말로만 떠들지도 않습니다. 아이들은 직접 겪고 느낀 사람이 하는 말인지, 책 읽지 않는 사람이 말만 읊어대는지 압니다. 독서를 힘으로 삼은 사람 곁에 있으면 듣습니다. 책 읽는 게 좋다는 걸 몰라서 안 읽는 게 아니잖습니까! 독서감상문을 두려워한다면, 읽은 책으로 가족이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걸 일기로 쓰라고 하세요. 책이야기도 있을 테고, 친구 이야기도 있는 소박한 독서감상문을 즐겁게 써올 겁니다. 독서감상문 때문에 책을 싫어하지 않도록 해야겠죠. 독서가 힘이 되려면 독서에 발을 내밀 때까지 부담 주지 말고 기다리며 눈빛을 보내야 합니다.

제가 가르친 아이들 중에도 책을 안 읽는 아이가 있습니다. 책이라면 죽은 쥐 보듯 징그럽게 여기며 피해가는 아이들이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 아이들도 제가 책을 읽어주면 귀 기울여 듣습니다. 본인이 책을 거의 읽지 않기 때문에 제가 들려주는 책이 더 기억날 겁니다. 들어서라도 읽은 책이 그것밖에 없는 경우도 있을 테니까요.

방학이 다가오면 시간 날 때마다 책을 읽어주세요. 로알드 달의 발칙하고 유쾌한 학교에서 죽은 쥐 소동한 부분을 읽어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제가 이걸 읽어준 뒤에 도서관에서 로알드 달 책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게일 카슨 레빈이 쓴 행복한 글쓰기에서 세부묘사 하는 방법을 설명한 부분을 읽어줘도 아이들이 좋아합니다. 이야기가 아닌, 글쓰기 방법 설명이지만 귀 기울여 듣습니다. 중학생이라면 운수 좋은 날에서 앞부분만 읽어줘도 됩니다. 그러면 책에 흥미를 느끼고 방학 동안 한국 문학 단편을 뒤적이며 메밀꽃 필 무렵에 빠질 지도 모릅니다. 그럼 저절로 독서의 힘을 알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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