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이어) 서찰을 전한 아이처럼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고민한 적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대답이 참 재미있습니다. 자신이 잘못해서 엄마한테 혼날 때 엄마가 너 몇 대 맞을래?’ 하면 진짜 고민이 된답니다. 한 대 맞는다고 하면 속이 들여다보이고, 맞는 횟수를 늘리면 아파서 몇 대가 적당한지 고민하는 게 중요한 결정이랍니다. ‘어떤 옷을 고를까, 무얼 먹을까도 중요한 결정입니다. 한 아이는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가 사귀자고 고백을 했답니다. 그러자고 하면 자기가 싫고, 싫다고 하면 상대방이 힘들어할 것 같아서 고민이랍니다. 더 거창한 걸 기대했지만 듣고 보니 정말 그렇겠네!’ 하는 마음이 듭니다. 아이들에게 서찰을 전하는 것은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형제와 이웃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치자는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겠지요!

미래에 정말 중요한 결정을 할 때가 언제일지 물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문과와 이과 결정할 때, 대학교에서 과를 선택할 때, 직장, 결혼대상자 등을 말하더니 결론은 입니다. 자신이 무얼 하며 살아갈지 결정하는 순간이 가장 힘들 거라고 합니다. 지금도 하는 고민이지요. ‘앞으로 나는 무얼 하며 살아갈까?’를 이야기하면서 서찰을 전한 아이가 같은 고민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찰을 전할까 말까 고민하는 것과 이 고민이 다르지 않습니다.

이어서 아버지 잃고 자기가 위험에 처하면서도 서찰을 전했지만 결국 전봉준은 죽었다. 그럼 아이가 서찰을 전하려고 고생한 건 의미가 없는 걸까?‘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반으로 의견이 나누어졌습니다.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 아이들은 아버지의 뜻이니 따라야 한다, 맡은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의견을 냅니다. 의미 없다는 아이들은 그래봐야 죽지 않았느냐? 아버지도 죽고 전봉준도 죽었는데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합니다. 그래서 다시 질문했습니다.

과정이 중요할까? 결과가 중요할까? 쉽게 말해보자. 열심히 공부했는데 시험 치는 날 상태가 안 좋아서 결과가 나쁘게 나왔다. 반대로 공부 안 하고 놀았는데 결과가 좋게 나왔다. 어떤 게 좋은가?” 반 반 정도로 나뉜 의견이 이번에는 대부분 과정이 좋다는 쪽으로 기웁니다. 어찌 되었건 성적 잘 나오면 좋다고 대답할 줄 알았는데 의외입니다. 이걸 바탕으로 서찰을 전한 아이 결정이 의미가 있느냐고 다시 물으니 멋진 이유를 말합니다. ‘서찰을 전하기 위해 여행한 과정에서 보람을 느낀다면 충분하다’, ‘전봉준 장군에게 서찰을 전해주었으니 아이는 할 일을 다 했다. 장군이 죽은 이유는 서찰에 적힌 대로 하지 않은 전봉준 장군 때문이지 아이와는 상관 없다.’ ‘아이는 서찰 전하는 책임을 다했으니 성취감을 가질 수 있어서 좋다. 자부심이 생긴다’, ‘이런 일을 겪었으니 꿋꿋하게 자라서 잘 살아갈 것이다등을 말합니다. 과정을 제대로 겪어낼 때 얻을 수 있는 유익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또 질문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열심히 노력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일을 이루지 못했다고 하자. 그래도 괜찮은가?” 아이들은 모두 괜찮다고 합니다.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에서 얻는 유익으로 다른 일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서찰을 전하는 아이를 이해한 독서반 아이들이 멋지게 보입니다. 물론, 금방 떠들고 사소한 일에 쉽게 흥분하지만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들의 삶에서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스스로 깨달았으니 이만하면 훌륭합니다.

독서토론 마지막 시간에는 글을 씁니다. 토론하지 않고 각자에게 맡기면 참 재미있습니다. 나도 아이처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씁니다. 마음에서 생각을 길어내지 않고 표면만 적시다 끝납니다. 토론하고 이야기를 나누면 뻔한 주제에서 벗어납니다. 차별 당하는 경험을 떠올리며 분노를 터트렸으니 차별로 쓰면 좋겠지요. 우리 아이들은 중요한 결정과정이냐 결론이냐라면 쓸 말이 많습니다.

그럼, 글을 써볼까요. 글을 제대로 쓰려면 세 가지를 갖추어야 합니다. 무엇을 쓸지 정해야 하고, 정한 주제에 맞는 내용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생각한 내용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용을 생각하고 표현하는 능력이 글을 쓰기 위한 조건이라는 건 대부분 인정합니다. 좋은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면 진짜 좋은 글이 나오겠지요. ‘생각 좀 하고 잘 좀 써라는 잔소리도 같은 말입니다.

백일장이나 글쓰기 행사에서는 정해진 주제에 따라 글을 씁니다. 주제는 무엇을 쓸지 정한다고 할 때의 무엇입니다. 이때는 주제에 맞는 내용을 생각해서 표현하면 됩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른 사람이 주제를 정해주지 않은 곳에서 글을 씁니다. 책을 읽고 독서감상문을 쓸 때 아이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무엇입니다. 일기를 쓸 때도 무얼 쓸지 몰라 끙끙댑니다. 책을 읽고도 글로 써낼만한 주제를 찾지 못합니다. 주제만 잡아줘도 내용을 생각하고 표현하는데 이걸 못합니다. 생각과 표현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들은 어른들은 무얼 쓸지 뭐 그리 고민하느냐?’ 하며 쓸거리는 대충 정하고, 글이나 잘 쓰라고 합니다.

저는 독서토론을 하면서 책을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발문합니다. 서찰을 전하는 아이를 시대적 배경으로, 거래라는 면으로, 갈등으로, 편견으로, 중요한 결정 앞에서의 고민, 과정과 결과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가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 가지 주제로 책에 경계를 긋지 않고 온갖 생각을 하도록 부추깁니다. 마지막 시간에 우리가 나눈 주제들을 늘어놓고 자신이 꼭 써보고 싶은 주제를 고르라고 합니다. 한 가지 주제를 주고 무조건 이걸로 써라하면 아이들이 더 편하게 생각합니다. 어떻게든 그 주제로 쓰면 되니까요. 그래도 아이들에게 여러 주제를 놓고 선택하게 합니다. 무엇을 쓸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이미 내용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쓸만한 내용을 담은 주제가 무엇일까?’ 고민합니다.

한 아이가 글을 이렇게 마무리 지었습니다. “~ 중요한 결정은 내 생각으로, 내 의지로 선택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사소한 일도 중요한 것이라 생각하고 신중하게 선택하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 더없이 필요한 세상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더 가르칩니다. ‘우리는 주로 책과 나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것도 굉장히 중요하고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글에 담아야 한다. , 나와 책과 세상을 연결지어 글을 써야 한다. 특히 논술할 때는 내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사회를 말해야 한다.’라고 합니다. 이걸 이해하려면 또 토론해야 합니다. 말로만 가르치면 아이들이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표현은 세 가지를 말합니다. ‘이어주는 말을 쓰지 말아라’, ‘문장을 짧게 써라.’, ‘주어와 서술어가 어울리게 써라세 가지를 자연스럽게 해내려면 몇 년이 걸립니다. ‘그리고그래서를 수백 번 쓴 뒤에 이어주는 말을 줄입니다. ‘~했는데, ~해서, ~ 했다가를 이어 한 문장을 대여섯 줄 넘도록 수도 없이 쓴 뒤에 짧게 씁니다. 앞뒤 이야기가 맞지 않는 비문을 수없이 쓰고 나서 고칩니다.

주제 정하기, 내용 생각하기, 알맞은 문장으로 표현하기 모두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주 쓰고 고치는 겁니다. 아이들이 지겨운 이 과정을 즐기게 하려면 독서토론이 재미있어야 합니다. 결국,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좋은 글은 나오지 않습니다. 한 발, 한 발씩 나가다 보면 내가 가야 할 산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느낄 날이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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