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수업을 하려면 아이들이 책을 읽어야 합니다. 그러나 읽지 않는 아이가 꼭 있습니다. 그렇다고 독서 수업할 때마다 선생님이 책을 읽어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책을 읽지 않은 아이, 적극 참여하지 않는 아이를 빼고 나면 수업에 참여하는 아이는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럴 때 저는 ‘거꾸로 퀴즈’를 하면서 배경지식만으로 독서토론을 합니다.
‘거꾸로 퀴즈’는 아이들에게 재미있게 책을 소개하기 위해 제가 만든 방법입니다. 아이들이 한 번도 읽지 않은 책, 내용을 전혀 모르는 책을 소개할 때 거꾸로 퀴즈를 합니다. 거꾸로 퀴즈는 책을 읽기 전에 책 내용을 맞추는 활동입니다. 읽고 얼마나 아는지 알아보는 문제 풀이가 아니라서 부담이 없습니다. 어차피 책을 읽은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틀려도 괜찮습니다. 읽고도 모르면 부끄러울 수 있지만 안 읽은 책은 하나만 맞춰도 기분이 좋습니다. 거꾸로 퀴즈를 하고 책을 소개하면 아이들이 책에 굉장한 관심을 보입니다. 책을 잘 읽지 않는 아이들도 관심을 갖습니다. 책을 많이 읽은 아이와 경쟁해서 지기만 하는 대회가 아니거든요. 그렇다고 거꾸로 퀴즈가 단순히 찍기 대회는 아닙니다. 배경지식을 많이 알수록 문제를 맞추기 쉽습니다.
아버지의 편지(정약용, 한문희 엮음, 함께읽는책)는 정약용이 두 아들에게 쓴 편지를 편집한 책입니다. 특별히 ‘독서와 공부’, ‘생활과 실천’에 관한 내용을 가려 뽑았습니다. 귀양 간 아버지가 자식들을 걱정하며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입니다. 정약용 전기를 읽은 아이도 이 책은 거의 읽지 않습니다. 대부분 훈계하는 내용이고 고리타분합니다. 거꾸로 퀴즈를 하면서 관심을 갖게 하면 많은 아이들이 딱딱한 내용도 읽으려고 할 겁니다. 거꾸로 퀴즈를 해볼까요?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이해력과 통찰력이 뛰어난 아이는 아래 문제 중에 3-4문제는 맞출 수 있습니다.
1) 앞으로 우리가 읽을 책은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아들 이름은 학연, 학유입니다. ‘이분 이전에 이분만한 사상가가 없었고, 이분 이후에도 이분만한 학자가 쉽사리 나타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할 정도로 뛰어난 분입니다. 조선시대에 억울하게 귀양을 갔던 이분은 누구일까요?
아이들은 대부분 정약용을 맞췄습니다. 6-1학기 교과서에서 본 적이 있다는 아이도 있고, 귀양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아이도 있습니다. 정답을 맞춘 뒤에는 두 편으로 나눠 정약용 설명 주고받기 배틀을 합니다. 서로 주고받으며 정약용에 대해 더 이상 설명하지 못하는 편이 나올 때까지 번갈아가며 말하면 됩니다. ‘남자다’, ‘아들이 둘 있다’, ‘귀양을 갔다’는 쉬운 대답부터 ‘거중기와 수원성’을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목민심서, 경세유표’에 이어 ‘자산어보’를 지은 정약전까지 등장합니다. 재미로 시작한 퀴즈가 정약용을 이해하는 시간으로 이어집니다. 그것도 즐겁게 게임하면서 말이죠. 정약용을 잘 모르더라도 친구들이 한 말을 잘 들으면 응용해서 대답할 수도 있습니다. 이만하면 저자에 대한 배경지식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2) 독서와 공부 내용에 관한 편지의 제목입니다. ( )에 들어갈 말을 넣어주세요.
① 확고한 뜻을 세우고 (책)을 읽거라. ② 중요한 내용은 (기록)해 두거라. ③ 공부는 계획을 세워 (실천)해야 한단다. ④ (독서)는 집안을 일으키는 떳떳한 길이다. 이 문제 역시 한두 아이만 틀리고 대부분 맞추었습니다.
3) 선생님께서는 집안을 안정시키는 네 가지 근본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속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요? (4)
① 화목하고 순종함 ② 부지런하고 검소함 ③ 독서 ④ 친구 사이의 의리 ⑤ 이치를 따르는 것 4번 친구 사이의 의리는 집안을 안정시키는 일과 상관이 없습니다. 독서라고 답한 친구가 좀 많았습니다.
4) 선생님은 편지에서 두 아들에게 어떤 가축을 키우는 방법을 자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자주 먹는 이 가축은 무엇일까요?
여기서는 혼자 문제를 풀지 않고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정답은 닭인 것 같은데 왠지 함정이 있는 것 같다고 합니다. 소나 돼지 정도 되어야 키우는 방법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고도 합니다. 정답을 맞추고 그 자리에서 책을 펴서 내용을 찾았습니다. 함께 읽고 어떻게 키우라는 건지 알아보았습니다. 정약용 선생님은 이 가축에 관한 책을 읽어보라고 권합니다. 색깔, 키우는 방법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조사해보라고도 합니다. 가축을 그냥 키우지 말고 연구를 해서 개량시키라는 뜻입니다. 이 부분을 통해 정약용 선생님이 무엇을 하건 대충 하지 말고 연구하는 자세로 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500권이나 되는 책을 지으셨겠죠. 더불어 ‘자산어보’ 역시 같은 마음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떤 가축인지는 여러분이 찾아보세요.)
5) 다음은 생활과 실천의 장에 쓴 편지 제목입니다. 편지에 없는 제목은 무엇일까요?(3)
① 눈앞의 이익을 쫓기보다 옳은 일을 하자꾸나 ② 사람이란 목숨보다 의리를 따라야 하는 것이다. ③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 공부의 근본이다. ④ 삼가고 조심해서 행동하거라. ⑤ 채소밭을 가꿀 때에는
질문이 ‘생활과 실천의 장’에 관한 것이므로 공부의 근본을 설명한 3번이 정답이 아닙니다. 이 다섯 문제만으로도 저자와 책 내용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퀴즈를 하면서 궁금증이 생겼고, 읽으면서 퀴즈한 내용도 나오니 책을 더 즐겁게 읽습니다. 그럼 ‘아버지의 편지’처럼 교훈만 들어있는 딱딱한 책도 읽어냅니다.
‘거꾸로 퀴즈’를 하고 나서 문장쓰기를 했습니다. ‘책은 ( )이다’를 쓰고 설명을 썼습니다. ‘나와 책의 관계는 ( )이다.’를 쓰고 역시 설명을 썼습니다. ‘아버지의 편지’에서 정약용 선생이 독서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기 때문에 ‘책’을 주제로 정했습니다. 다른 책으로 거꾸로 퀴즈를 한다면 선생님이 정한 주제로 문장쓰기를 하면 됩니다. 거꾸로 퀴즈는 내용에 관심을 갖게 합니다. 문장 쓰기는 아이가 책 읽기 전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려 줍니다.
두 가지 활동을 하고 진짜 독서토론을 예고합니다. 그래도 책을 읽지 않고 오는 아이가 있습니다. 독서토론을 할 때 책을 읽지 않은 아이가 끼어 있으면 난감합니다. 책을 읽지 않은 몇몇 아이들은 구경꾼이 되고, 결국 떠들면서 방해꾼이 됩니다. 그 아이들에게만 다른 걸 시키기도 하지만 역시 방해가 됩니다. 이럴 때는 책을 읽은 아이들이 대답하기 전에 읽지 않은 아이들에게 ‘상상하여’ 대답해보라고 먼저 시킵니다. 읽지 않은 아이들이 ‘거꾸로 퀴즈’로 책에 있을 법한 대답을 예측하여 말하고, 읽은 아이들이 정답 여부를 확인하는 겁니다. 신기하게도 정답을 맞추는 아이가 있습니다. 작가가 이끌어가는 이야기 그대로 예측해서 책을 읽고 온 친구들을 놀라게 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비록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책 내용을 맞히는 아이에게 ‘너, 작가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구나! 네가 쓰기만 하면 작가가 되겠네!’라고 해줍니다. 그러면 아이는 자기가 모르는 내용을 친구들이 말할 때에 관심을 갖고 듣습니다. 책 때문에 꾸중 듣지 않고, 선생님이 시킨 다른 활동 하면서 소외되지 않고, 칭찬까지 듣습니다. 그러면 다음에는 책을 읽고 옵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고, 책을 읽지 않은 아이가 독서토론에 집중하게도 만듭니다. ‘넌 읽었고, 넌 잘했고, 넌 왜 그러니?’식의 평가는 책에서 멀어지는 아이를 만듭니다. 모두 함께 책벌레가 되도록 칭찬하고 격려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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