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했을까, 교묘해졌을까?
권일한

  웜우드는 초보 악마다. 인간을 얕본다. 논증으로 이기려고 덤벼든다. 눈에 보이는 결과를 얻으려 한다. 환자가 교회에 가는 걸 막고 기도를 방해한다. 악마 웜우드는 눈앞의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덤벼든다. 웜우드는 <미래에 잔뜩 가위눌려 있는 인간, 이 땅에 금방이라도 천국이나 지옥이 임할지 모른다는 환상에 사로잡힌 인간, 그래서 천국을 얻을 수 있다거나 지옥을 피할 수 있다는 생각을 불어넣기만 하면 지금이라도 당장 원수의 계명을 깨뜨릴 준비가 되어 있는 인간(91)>과 비슷하다.

  경험 많은 스크류테이프는 신중하게 생각하고 조심하라고 조언한다. 성경 읽기, 교회, 기도를 거부하지 않는다. 환자가 교회에 드나들며 성찬에 참여해도 반긴다. 환자가 느끼기만 하고 행동하지 않게 만들라고 한다. 기본적인 의무는 등한히 한 채 가장 어렵고 영적인 의무에만 마음 쓰게 만들라고(27) 말한다. 걱정이나 불안이건, 기쁨이나 행복이건, 뿌듯함이건 상관없이 환자가 자기만 생각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무얼 하건, 어디에서 누굴 만나건 우리가 자기만 생각하면 성공하는 줄 알 정도로 지혜롭다.

  단단한 결심, 진지한 노력, 높은 사명감을 깨뜨리는 데 강력한 무기가 필요하지 않다. 일상에서 신경을 건드리는 사소한 말과 태도가 사람을 무너뜨린다. 스크류테이프는 말투와 표정 때문에 어머니를 싫어하게 만들라고 조언했다. 교회에 가는 걸 말리기보다 교회에 가서 신경을 거스르는 것들(지저분한 건물, 경박한 이웃)에 마음을 빼앗기게 하라고 했다. 회개했다면 재빨리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86) 기도한다는 만족감에 빠져 교만하게 만들라고 한다. 교회에 가는 걸 막지 못한다면 교회를 찾아다니는 비평가로 만들라고 말이다.


  청년 권일한은 높은 이상을 품었다
. 순교자의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해 살겠다고 다짐했다. “하나님을 위해 큰일을 계획하십시오. 그 일을 실행하십시오!” 말했던 윌리엄 캐리를 좋아했다. 뛰어들어서 열심히 살았던 때를 돌아보면 허둥지둥 헤맨 시간이 많았다. 열심히 산 만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비난했다. 산꼭대기에 올랐다가 갑자기 골짜기로 추락했다. <원수가 인간 영혼 하나를 제 것으로 확보하기 위해 꼭대기보다 골짜기에 더 의존한다는(53)>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나는 웜우드처럼 어렸다. 이상을 내세워 미련하게 고집을 부렸다. 초보이면서 능숙한 줄 알았다.

  3년 전에 1학년 아이가 나를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얼마 뒤에 내 나이를 묻는 아이에게 37000살이라고 말했다. 이순신 장군도 나보다 어리고, 단군 할아버지도 나한테는 애기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지금 나는 걸음이 느려졌다. 생각도 느려졌고 기억력이 점점 떨어진다. 아이에게 발끈 화를 내지 않는다. 학교 문제를 학교에 두고 온다. 안달하는 아이, 엉엉 우는 아이를 차분하게 달랜다. 때론 무시하고, 때론 그만 울고 스스로 이겨내라고 말한다. 나는 성숙했을까, 교묘해진 걸까?

  웜우드가 규칙이나 방법, 형식과 내용을 고집할 때 스크류테이프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한다. 뿔 달린 악마가 아니라 때론 유쾌한 친구로, 점잖은 조언자로, 상담자로, 심지어 목사와 교사 같다. 나는 웜우드를 지나 스크류테이프를 닮아간다. 힘으로 옷을 벗기려 했던 바람이 아니라 조용히 빛을 비추어 나그네가 스스로 옷을 벗게 만든 해의 방식을 사용한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고 믿는다. 목소리 큰 사람이 뜻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 강한 사람은 상대를 부드럽게 타이른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악마에게도 성숙이 통할까?

  스크류테이프가 부드러운 유혹자의 모습만 가진 것은 아니다. 웜우드한테는 엄격하게 대하며 화를 내지만, 환자에 대해서는 원형경기장으로 보내 버리고 싶어 하면서도(127) 그렇게 하지 않는다. 효과가 없다는 걸 안다. 환자를 차지하기 위해 이쪽저쪽 능수능란하게 움직이며, 마치 중용을 지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스크류테이프는 하나님을 믿는 일에 있어서 환자가 중용을 지키게 만들려고 한다. “중용을 지키는 종교란 무교나 마찬가지, 무교보다 훨씬 더 즐겁다고(60) 한다. 교묘하다.


  서문에서 루이스는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를 비교했다. 파우스트는 집요하고 병적으로 자아에 집착하는 반면, 악마는 유머 있고 세련되며 지각 있고 융통성 있다고 썼다. 악마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는 환상을 강화하는데 기여한다고 루이스가 쓸 정도로 메피스토펠레스는 매력이 넘쳤다. 그에 견주면 파우스트는 고집 세고 자기밖에 모르는 안하무인이었다. 그런데도 괴테는 파우스트에게 새로운 삶을 선사했다. 파우스트는 영악하지 않았다. 교묘하게 상대를 유혹하지 않았고, 마음을 훔치지도 않았다. 파우스트는 순진했다.

  나는 조금씩 성숙했다. 웜우드의 모습을 버리고 스크류테이프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심각해지지 않으려고, 웃으며 넘기려고 했다. 아이들이 나를 좋아한다. 학부모와 교사들도 나쁘게 보지 않는다. 이런 내 모습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경험 많은 악마 스크류테이프를 닮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 작은 일에 기뻐하고 새로운 일에 덤벼드는 순진함을 보기 어려워졌다. 간절함이 줄어들었다. 사람에 대해서는 물론 하나님에 대해서도 무뎌졌다. 세상의 가치에 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뭔가 적당히 교묘해진 것 같기도 하다.

  성숙해졌는지, 교묘해졌는지 모르겠다. 성숙했다고 생각하면서 교묘해지고, 교묘해졌다고 생각하면서 성숙해질 것 같기도 하다. 글쎄~ 다시 순진해지진 않을 것 같다. 부드러워진 태도가 다시 단단해지지도 않을 것이다. 단단해진다면 고집이 세지는 쪽이겠지. 교묘한 악마의 태도에서 멀어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가 짙고, 해가 높을수록 그림자가 짧으며, 저녁이 다가오면 그림자가 길어진다는 걸 계속 기억하는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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