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을 『하늘과 땅 식료품점』으로 시작했다.


새해 첫 날,『하늘과 땅 식료품점』을 읽었다.
6시간이나 걸렸다.
저녁에는 100분가량 이 책으로 독서 모임을 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 1/10밖에 못 했다.
다음 모임에 『하늘과 땅 식료품점』을 다시 나누기로 했다.

2025년에 추천하는 첫 책입니다.
『하늘과 땅 식료품점』, 읽어보세요.
대부분 좋은 책이 그렇듯이, 1/3까지는 읽기 힘들 거예요.
150쪽을 넘어서면 괜찮아지고, 300쪽 넘으면 흥미진진합니다.
이야깃거리가 아주 많은 책, 우리 삶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 정의롭지 못한 부모는 정의로움에 덫을 놓는 부당한 아이를 기르게 돼.

→ 그들은 이 땅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거든. 내 것이 아닌 땅에 살면서, 알지 못하는 걸 아는 체하면서, 더 강해 보이려고 이런 저런 규칙을 만들며 살아가는 것은 해로운 일이야. 이 땅은 지배하는 자들의 것이 아니야. 그런 것이 사람들을, 오히려 정직한 사람들을 미치게 만들지. 우리가 어디에서 왔던 우리는 우리 사람들을 지켜야 해.

포로수용소에 갇혔던 분들이 쓴 책을 좋아했다
한두 사람 때문에 죽고, 울고, 괴로워한 분들 이야기를 읽으며 인간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웠다.
이제 그런 책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2024년은 그런 책을 다시 읽어야 하나 고민하게 만들었다.

올해 17749819쪽을 읽었다(5년 동안 964259679쪽 읽었다.)
이 글을 기다리는 분이 있어 의무라 생각하며 올린다.

12월에 읽은 책 13권 5372쪽 (전체 177권 49819쪽)

177. 성경 (1771)
1년에 한 번씩 읽는다.

176. 백치 2(도스토예프스키, 554
  2권을 읽으니 1권이 이해가 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한참 읽어야 이해가 된다. 에릭 호퍼는 1권을 칭찬했는데 나는 2권이 더 좋다. 주인공인 므이쉬킨 공작은 백치처럼 착하다. 나이, 신분, 성별, 학식, 말솜씨…… 상관하지 않고 모든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나라면 적당히 듣다가 빠지거나, 모임에 가지 않거나, 어떤 사람은 멀리할 텐데 그러지 않는다. 계속 듣고, 찾아가고, 대화를 나눈다. (, 여기 나오는 사람들은 거의 일하지 않는다. 다들 모여서 먹고 마시고 떠든다. 일하는 사람은 대화에 끼지 않는다. 귀족들의 삶이라서 그런가?) 쓸데 없는 대화도 꽤 많았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진짜 아름다운 인간을 묘사하는 게 책을 쓴 주된 의도라고 했다.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인간과 기준이 다르다.

175. 랑랑별 때때롱 (권정생, 196) / 3학년 이상
  권정생 선생님이 쓴 마지막 동화다. 참 좋아하는 책이다. 우리 학교 아이들과 광성드림 아이들이 함께 독서 캠프하면서 이 책을 나눈다. 기대가 된다.

174. 창백한 푸른 점 (칼 세이건, 430) / 중학생 이상
  『코스모스에 이어서 읽었다. 세이건이 우주와 지구를 사랑한 마음이 느껴진다. 과학책을 이렇게 잘 쓰기 어렵다. 인문학으로 학문을 시작해서 문장을 잘 쓴다. 처음에는 속도가 잘 나지 않았는데 1/3정도 읽으니 속도가 붙었다. 재미있었다. 다만 우주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자원을 우주 탐구와 개발에 쏟기를 바라는 점이 무리로 다가왔다. 우주에 온 마음을 쏟는 모습이 어린아이 같으면서도 그것만 바라보는 것 같아 자기 생각에 매몰되어 보였다.

173. 그대는 한 송이 꽃 (김기석, 317) / 기독교
  대화 형식으로 쓴 글 12(200쪽 가량)과 편지로 쓴 글 11(90쪽 가량)을 모았다. 목사님이 앞에서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느낌이다. 한 편씩 천천히 읽었다. 김기석 목사님 특유의 인문학 내용이 많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반영하는 이야기를 해주신다. 일부 교단에서 목사님을 진보측 인사로 비판한다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보수주의자들이 싫어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는 참 좋았다. 목사님 생각에 동의한다.

피에르 신부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구분은 신자비신자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구분은 홀로 족한 자공감하는 자사이에, 타인들의 고통 앞에서 등을 돌리는 자와 그 고통을 함께 나누기를 받아들이는 자 사이에 있다. 어떤 신자들은 홀로 족한 자들이며 어떤 비신자들은 공감하는 자들이다.
갑자기 떨어져서 죽어가는 나비를 개미가 끌고 가는 장면 / “그렇게도 생명이 가대요~”

172. 시시 (송대선, 151) / 기독교
  대림절을 기다리며 하루에 하나씩 읽는 글모음이다. 송대선 목사님이 대림절과 부활절을 기다리며 읽는 글을 책으로 내시고, 늘 한 권씩 보내주신다. 천천히 읽었다.

171. 백치 1 (도스토예프스키, 580) / 고전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한다. 그런데 이 책은 아직 잘 모르겠다. 깔끔하게 끊어갈 이야기를 왜 이렇게 길게 늘어놓는지 모르겠다. ‘뭐가 있을 거야!’ 하며 계속 읽는다. 2권에는 정말 뭐가 있으면 좋겠다.

170. 경이라는 세계(이종태, 179) / 기독교 문학 해설
  어떤 종류로 책을 구분해야 할지 어렵다. 처음 읽었을 때는 별로였는데 다시 읽으니 괜찮다. 글의 흐름이 눈에 들어온다. 나니아 연대기를 중심으로 탈주술화 관점에서 경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전해진다. 하루 한두 장씩 천천히 읽어서 마음에 들어오는 것 같다. 코스모스를 읽고 경이를 주제로 삼았는데 이 책이 생각나서 다시 읽었다. 칼 세이건이 과학자의 마음으로 우주를 경이롭게 본 책이 코스모스이다. 경이라는 세계는 과학자가 보지 못하는 기독교인, 동화를 좋아하는 독자, 철학자가 경이를 말하는 책이다.

169. 사자와 마녀와 옷장 (C. S. 루이스, 나니아, 223)
  3학년 우리 반 아이들에게 읽어줬다. 애들이 좋아한다. 읽어주고 영화도 봤다. 애들이 읽어주는 날, 영화 보는 날을 기다렸다. 행복한 추억이었다.

168. 복음과 상황 12월호 (169)
  다달이 꼼꼼하게 읽는 월간지다.

167.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강용수, 232)
  쇼펜하우어가 유행이라고 해서 읽었다. ~ 좋은 내용이긴 한데 그냥 좋은 내용이다. 대부분 동의하고 공감한다. 그러나 이걸 몰라서 불행하고 슬픈 삶을 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책 제목이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가 아니라 <쇼펜하우어 문장으로 살기> 정도 아닐까? 꽤 괜찮은 내용이 많고, 당연한 내용도 있고, 나쁜 내용은 거의 없다. 그래도 200쇄나 팔리다니 역시 베스트셀러는 그냥 많이 팔린 책이다.

166. 짱구네 고추밭 소동 (권정생, 186) / 4학년 이상
  "동화라는 것은 쉽게 말해서 어린이들이 즐겨 읽기도 하고 듣기도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야기나 거짓말을 써서는 안 되지요."
  권정생 선생님이 겪은 일들을 거짓 없이 동화로 쓰셨다. 50년 전, 그보다 더 예전에 있었던 일이라 시대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도 아이들이 읽으면 따뜻한 마음을 가질 동화들이 실렸다. 15편 짧은 동화를 읽으며 권정생 선생님을 다시 생각한다. 참 고마운 분이다.

165. 아픔이 마중하는 세상에서 (양창모, 284) / 수기, 칼럼
  저자는 춘천에서 병원에 오지 못하는 분들을 찾아다니는 왕진 의사다. 주로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난다. 병원에 가려면 버스, 택시를 타고 꼬박 하루를 내야 한다. 약값을 내려고 물과 전기를 아끼고 겨울을 춥게 지내야 하는 분들이다. 이분들을 만나면서 환자의 처지를 이해한다. 환자 처지에서 의사와 병원을 보면서 의사가 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간다. 아름다운 사람의 아름다운 이야기만은 아니다. 의사, 병원, 의료 체계를 생각하게 한다.
  문장을 잘 쓴다. 좋은 문장이 참 많았다.

환자를 한 사람으로 보게 만든 것은 바로 그런 쓸데없는 과정이었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환자들에게서 멀어졌던 것은 너무 손쉽게 만났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속도가 돈이 되는 진료실 안에서는 가급적 빨리, 간단하게 만나야 했다. 나를 외롭게 만든 것은 바로 그 효율성이었다.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지만 어르신 한 분을 건강하게 지키는 데도 온 마을은 필요하다. 한 사람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라고 할 때 우리 사회는 이야기의 시작에는 관심이 많으나 이야기의 마무리에는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아이는 시간이 흘러 노년이 된다. 그 이야기는 결국 나의 이야기가 된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잘하는 것이다. 글은 삶을 단 한 발자국도 앞서지 못한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좋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새로운 세상은 우리가 도착하는 곳에 있지 않다. 과정 자체가 이미 새로운 세상이다. 마을이란 유토피아는 우리가 도달하는 곳이 아니다.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만들어내려고 행동하는 순간에만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다. 마을은 그런 모습으로만 있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식물이 땅 아래에서 자라나듯 희망은 이 세상의 맨 아래쪽에서 움틀 것이다.

어쩌면 사람의 외로움이, 사람의 불행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봐도 불행한 두 분이지만 그분들 앞에서 세상의 어떤 행복들은 부끄러워 고개를 숙여야 하리라.

이 세상의 귀한 것들은 여유를 갖고 기다려야만 보인다. 어둠 속에 오래 있어야만 볼 수 있는 것이 있다.

빛은 결코 가닿을 수 없는 무언가가 어두운 마음의 맨 밑바닥에 있기 때문이었다.

 

11월에 읽은 책 14권 4650쪽 (전체 164권 44447쪽)

164. 코스모스 (칼 세이건, 693) / 과학
  독서모임에서 두 번 나눠 읽었다. 과학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우주 저 너머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간절하게 담겨있다. 기대가 큰 건지, 안달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최전선에 선 사람의 간절함이 느껴졌다. 주제를 정해 자세하게 글을 쓸 생각이다.

163. 복음과 상황 11월호 (185)
  꼼꼼하게 읽는 월간지다.

162. 빌뱅이 언덕 (권정생, 371)
  권정생 선생님이 쓴 글을 모은 책이다.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이 많다. 정치, 경제, 환경뿐만 아니라 목사에게, 농약을 치는 시골 사람들에게, 풀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신다. 가난한 이웃 이야기, 정부미 받으러 가는 생활보호대상자 이야기도 있다. 슬픈 이야기가 좋았다. 비판하는 내용을 읽으면서 부끄러웠다. 권정생 선생님 책 중에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학부모 동아리에서 꼰대 어른이 하는 말 같지 않은지?” 물었더니 학부모들이 좋은 내용이라고, 공감한다고 대답했다.

161. 학교 놀이 (권정생, 74) / 2학년 이상
  <산버들나무 밑 가재 형제> 가재 형제가 같이 살다가 헤어졌다. 동생이 혼자 살아간다. <찔레꽃잎과 무지개> 찔레꽃이 떨어져 강물에 떠내려간다. 혼자. 외롭게. <학교놀이> 병아리 일곱 마리가 살아간다. 엄마 없이.
  형제와 헤어진 가재, 나무에서 혼자 떨어진 찔레꽃, 엄마를 떠난 병아리가 외로움을 견디고 꿋꿋하게 살아간다. 권정생 선생님 동화는 참 좋다.

160. 렘브란트는 바람 속에 있다 (러스 렘지, 358) / 미술
  기독교인의 시각으로 미켈란젤로, 카라바조, 렘브란트, 베르메르, 바지유, 고흐, 타너, 호퍼, 트로터를 소개하는 책이다. 이름을 알던 미켈란젤로, 카라바조, 렘브란트, 고흐, 호퍼를 자세하게 알고 싶어졌다. 바지유, 타너, 트로터도 알고 싶어졌다. 내년에는 미술가 평전을 읽고 싶다.

159. 마르크 샤갈 (인고 발터, 라이너 메츠거, 95) / 미술
  화가를 알고 싶어 샤갈부터 시작했다. 샤갈이 만든 스테인드글라스를 본 기억이 좋았다. 러시아에서 시골에서 태어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공부하고 파리, 다시 러시아, 극적으로 독일을 벗어나 미국으로 가서 살았다. 90살이 넘도록 작품을 만들었다. 젊었을 때는 그림을, 70살 넘어서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많이 만들었다. 작가 이야기를 읽으면 작품이 좀 보이려나?

158. 총균쇠 (제레드 다이아몬드, 733) / 인문
  난 사람들이 도시에 모여 사는 걸 싫어한다. 모이면 힘이 생기고 계급이 형성된다. 계급을 가진 사람은 힘을 과시한다. 그 힘은 내부의 평안보다 외부를 장악하는 방향으로 발산된다. 지금은 영토를 늘리고 조공을 받는 방식이 사라졌다. 대신 쓰레기장, 발전소 같은 시설을 보낸다.
  내 생각은 역사의 흐름에 역행한다. 역사에서 승자는 힘을 모아 외부로 향했다. 수렵채집을 벗어나 농사를 짓고, 야생 동물을 가축으로 길들이면서 인구가 많아졌다. 인구는 곧 힘이었고 힘을 가진 사람은 약한 사람을 속박했다. 저자의 통찰력과 지식에 감탄하면서도 인간의 역사에서 힘이 꼭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야 했는지 생각하면 안타깝다. 이해는 하되, 받아들이기 싫은 역사였다. 잘 쓰긴 정말 잘 썼다.

157.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 (김원영, 347) / 장애, 인문
  저자는 장애인으로 변호사가 되었다. 휠체어를 타도 변호사 일을 해낸다. 장애인이 평등을 말하기 어려운 영역이 어디일까? 아무래도 몸을 움직이는 영역이 아닐까? 장애인이 발레에 도전하면 어떻게 될까? 이전에 춤에 도전한 장애인은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온전히 평등한 대접을 받았을까, 지극히 차별적인 대접을 받았을까? 이 책은 춤의 역사를 통해 평등과 차별을 말한다.
  저자는 춤을 춘다. 휠체어에서 내려가 바닥을 구른다. 어떻게 보일까? 과거에는 어떻게 봤고 지금은 어떻게 볼까? 시선이 달라졌을까? 읽는 내내 내가 가진 차별의 눈을 새삼 느꼈다. 저자가 춤의 역사에서 장애인과 관련된 내용이 참 많다. 새로웠다. 또한 저자의 노력과 식견에 감사했다. 그냥, 사람과 결이 같은 책이다.

156. 뷔히너 전집 (뷔히너, 392) / 극본, 소설, 팜플렛, 강연 원고
  뷔히너는 독일이 인정하는 최고 작가 중 한 명이다. 뷔히너 문학상은 독일 최고 문학상에 꼽힌다. 책을 좋아하고, 책을 많이 쓰신 지인이 추천해서 읽었다.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글을 썼다. 당통의 죽음은 프랑스 혁명 이후 로베스피에르가 정권을 장악한 시점을 다룬다. 당통은 로베스피에르와 함께 혁명을 일으킨 인물이다. <보이체크>는 과부를 살해하고 공개 처형당한 인물을 극본으로 만들었다. <레옹스와 레나>는 아동문학가 에리히 케스트너가 극찬한 작품이다. 왕자와 공주 이야기다. <렌츠>는 괴테에 필적했던 작가로 요절했다. <헤센 지방의 전령>은 민중에게 혁명 의식을 불어넣고자 한 정치 선전물이다. <뇌신경에 관한 시범 강연>은 강의다. 고전 좋아하는 분이 읽으면 좋아할 것 같다.

155. 안녕, 하고 시를 만났다 (최인영, 222) / 글쓰기
  중학교 국어 교사가 해마다 학생들과 시를 쓴 과정을 설명하는 책이다. 이오덕 선생님 마인드에 체계적인 절차를 더했다. 주제 정하기 글감 찾기 표현하기 글 고치기 돌아보기 순서로 가르친다. 가장 중요한 건 글감을 정하는 단계라고 한다. 이 부분이 나랑 가장 비슷하다. 표현하기는 많이 달랐다. 중학교 국어 교육과정을 담아야 해서 그런가 보다. 학생들이 쓴 시는 보통이었다. 내 눈에는 우리 반 아이들이 쓴 글이 딱이다.

154. 그냥, 사람 (홍은전, 263) / 인권, 장애인, 연대
  노들장애인야학은 장애인을 돕고 가르치는 곳이다. 저자는 이곳에서 교사로 지내며 장애인을 만났다. 아프고 억울하게 지낸 분들이 많다. 문밖으로 한 발 내딛기 위해 몇 년을 싸운 분, 버스를 타려고 몇 년 투쟁한 분들이다. 장애등급제에 막혀 아무것도 못하는 분들,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지 못해 어처구니 없이 죽고 다친 분들도 있다. 읽으면서 답답하고 슬펐다.
  장애인 이동권을 위해 투쟁하는 분들을 위해 나도 후원한다. 그분들의 투쟁이 지나치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다. 글쎄다. 출근 시간 30분 늦어도 답답한데 10년 동안 집에서 못 나오고, 버스를 타지 못한 답답함이 얼마나 클까! 함께 사는 게 이렇게나 어려운 일인가 보다. <그냥, 사람>으로 사는 걸 바라는 분들에게 기쁜 날이 오면 좋겠다.

153. 소포클래스 비극 전집 (소포클래스, 555) / 고전
  그리스 3대 비극작가(아이스퀼로스, 소포클래스, 에우리피데스) 중 소포클래스의 비극을 모았다. 천병희 선생이 번역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비극을 만난다. 오이디푸스는 자기도 모르는 일에 휘말려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안티고네는 왕의 명령을 어기고 스스로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두 이야기가 가장 잘 읽혔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말싸움으로 읽혔다. 여자 포로 때문에 집안이 무너지는트라키스 여인들, 자존심을 내세우다 죽는 아이아스, 승리를 위해 거짓으로 속이는 필록테테스는 비극이었다. 엘렉트라는 비극이 아니어서 의외였다.

152. 씻는 게 귀찮을 때는 어떻게 해요? (신수현, 107) / 3학년 이상
  『빨강연필이후 13년 만에 신수현 작가가 책을 썼다. 빨강연필과 완전히 다른 책이다. ‘의외인데~’ 하며 읽다가 신수현 작가의 마음을 계속 느꼈다. 아이를 좋아하는 마음이 문장에 담겼다.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책을 만나면 괜히 좋다. 이 책이 그렇다.
  호찬이는 코를 흘린다. 연욱이는 발을 씻기 싫어한다. 민지는 비듬이 떨어진다. 연욱이는 호찬이를 좋아했다가 코 흘리는 걸 보고 멀어진다. 민지가 좋지만, 비듬이 가로막는다. 발을 씻기 싫어하는 연욱이는 어떻게 할까? 어떻게 될까?

151. 꼴뚜기 (진형민, 155) / 4이상
  진형민 작가 특유의 쿨내 나는 문체가 돋보이는 책이다. 과장을 약간 넣어서 툭툭 내뱉듯 문장을 꺼내놓는다. 재미있다. 현실을 재미나게 비유해서 보여주는 책이다. 심각한 내용도 낄낄대며 읽다가 ~’ 하고 생각하게 한다. 참 좋은 책이다.

10월에 읽은 책 16권 3702쪽 (전체 150권 39797쪽)

150. 조금만 더 조금만 (존 레이놀즈 가디너, 100) / 4 이상
  책을 고를 때부터 좋아 보였다. 100년쯤 전 이야기다. 열 살 아이가 할아버지와 산다. 할아버지가 앓아눕자 아이가 할아버지에게 희망을 주려고 한다. 혼자 감자를 수확한다. 할아버지를 돌본다. 그러다가 왜 할아버지가 희망을 잃고 누워버렸는지 안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열 살 아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1  00쇄 넘게 팔렸는데 절판됐다. 하긴 100년 전 이야기니까. 지금 10살 아이는 자기 옷도 빨지 못하고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다. 책에 나오는 아이와 너무 많이 다르다. 그렇다고 해도 이 책은 읽으면 좋겠다. 깜짝 놀랐다.

149. 시간 안에서 사는 법 (제임스 스미스, 263) / 기독교
  지인의 추천글을 읽고 읽었다. 더 천천히 읽어야 했다.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내용이 깊은데 가볍게 시작했다. 다음에 천천히 다시 읽어야 할 책이다.

148. 시누헤 이야기 (유성환, 273) / 역사
  인류 최초의 소설로 불린다. 고대 이집트 왕조에 위기가 닥칠 때 이집트를 떠났던 시누헤가 이집트로 돌아오는 과정을 쓴 소설이다. 왕조가 위기에 처했을 때 힘을 보태지 않고 도망갔기 때문에 함부로 돌아오지 못한다. 파라오의 신임을 얻어야 돌아올 수 있다. 소설보다 뒤쪽에 나오는 해설이 더 재미있었다. 소설은 각주를 계속 읽어야 해서 흐름이 끊겼다.

147. 동물의 노랫소리 (앙켈라 스퇴거, 186) / 중학생 이상
  동물 행동과 인지학은 동물의 행동을 통해 동물을 이해하는 학문이다. 저자는 동물 소리를 듣고 동물의 의사소통과 행동, 나아가 동물의 본질을 탐구한다. 사람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고 동물이 무얼 전하는지,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핀다. 놀라고 신기해하고 감탄한다.
  밭에서 일하면 새가 지저귄다. 땅강아지가 기어간다. 개구리가 뛰고 풀벌레가 소리를 낸다. 내 주위 생물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해한 적이 없다. 즐겁게 듣고 잊었다. 그런데 저자는 소리의 뜻을 찾는다. 고주파, 저주파, 초저주파를 듣는 장비로 들리지 않는 소리를 찾아낸다. 음향 카메라로 소리를 시각화한다. 동물의 노랫소리를 듣고 동물이 편안하게 지내기를 바란다. 좋은 분이다. 내용이 새로웠다.

146. 왜왜왜 동아리 (진형민, 199) / 5학년 이상
  강원도 삼척과 동해에서 일어나는 일을 진형민 작가가 동화로 옮겼다. 용해시로 표현된 동해시와 삼척시에는 화력발전소가 있다. 화력발전소 건설로 주민 의견이 나뉘었다. 이곳은 산불 피해가 크다. 산불 트라우마가 있는 곳이다. 산불 때문에 팬션이 불타고 이사한 사람도 있다. 이런 내용이 책에 나온다.
  『왜왜왜 동아리친구들은 산불 때문에 집을 떠났다. 시장님은 화력발전소를 지으려고 한다. 산불과 화력발전소의 공통점은? 환경오염이다. 환경이 오염되면 산불이 빈번해진다. 화력발전소는 환경을 오염시킨다. 왜왜왜 동아리 친구들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이유를 찾다가 화력발전소 문제에 다다른다. 환경오염과 관련된 사연을 가진 아이들이 함께 행동하는 이야기다. 좋다.

145. 클로버 (나혜림, 211) / 중학생 이상
  나혜림 작가 책을 처음 읽었다. 글을 정말 잘 쓴다. 문장이 아름답다. 내용을 이끌어가는 핵심 아이디어가 좋다. 내용 구석구석 자그마한 아이디어도 너무 좋다. 작품 곳곳에 작가가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사실 노력한 흔적이 보여서 글을 망가뜨리는 작가도 많다. 엉뚱한 곳에 힘을 쓰고, 지나쳐서 자연스러움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클로버는 처음부터 끝까지 감탄하며 읽었다. 대단한 작가다.

144. 닭인지 아닌지 생각하는 고기오 (임고을, 91) / 5학년 이상
  ‘고기오는 자신이 누군지 고민한다. 타조와 살 때는 타조인 줄 알았다. 두더지와 살 때는 두더지인 줄 알았고, 펭귄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자신이 닭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닭 무리를 찾아간다. 닭들에게 닭으로 인정받으려고 노력하면서 여러 가지 일을 겪는다.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으려고 노력하고, 정체성을 인정받은 뒤에는 자신이 어땠는지 돌아본다.
  글을 읽기는 쉬운데 내용이 무얼 말하는지는 이해하기 어려워서 5학년 이상으로 정했다. 정체성을 고민하거나 정체성이 무엇인지 배워야 하는 어린이가 읽으면 좋겠다.

143. 어머니와의 20년 소풍(황교진, 315) / 에세이
  식물인간 상태가 된 어머니를 8년 동안 집에서 혼자 간병하고, 12년 동안 요양병원에 모셔놓은 어머니를 간접 간병한 이야기다. 그냥 간병하는 게 아니라 극진히 간병한다. 모든 시간을 어머니 간병에만 쏟는다. 아무 반응도 못 하는 어머니를 위해 30대를 온전히 바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어머니 간병에만 매달리는 걸 어머니가 원할까? 등 여러 가지 질문할 수 있다. 현대의 사고는 우리의 생각을 경제 관념, 시간 절약, 비교 우위 등으로 몰고 간다. 나도 얼마 전까지는 '어머니가 원하지 않을 거다, 아들이 대단하긴 하지만 시간을 온통 어머니에게 바치는 것보다 다른 일을 하는 게 의미가 있을 거다.' 하고 생각했었다. 책을 읽으면서 '어머니가 정말 행복했겠다.'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중 누가 황교진 님처럼 할 수 있을까?

142.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강지나, 277) / 에세이
  청소년 정책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교사가 가난하게 자란 여덟 명의 청소년을 10년 동안 만나고 쓴 기록이다. 가난하건 부유하건 아이들은 자라면서 여러 어려움을 만난다. 가난한 아이들은 도움을 받지 못해서 조금씩 뒤처지고 아래로 내려간다. 우울해지고, 공부에 소홀해지고, 자신감이 낮아진다.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기도 하고, 원하는 고등학교에 가지 못한다. 대학에 가기 어려우며, 대학에 가도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공부하기 어렵다. 취직해도 어려움이 계속된다. 월급을 가족에게 쏟아 부어야 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 그래서 어떻게 하란 거냐? 작가에겐 대안이 있나?’ 물을 수도 있다. 작가는 그저 가난한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보여주기만 한다. 가난한 아이들의 실상을 드러내어 보여주는 게 목적이다. 그다음은 국가, 사회, 개인이 무언갈 해야 한다. 무얼 하라고 촉구하진 않지만, 책을 읽으면 뭐라도 해야 한다.’는 마음이 든다.
  그렇다고 가난한 아이들이 절망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여덟 명 모두 조금씩 희망을 향해 나아간다. 느리고, 시간이 걸리지만 그래도 나아지는 모습이 보인다.

141. 복음과 상황 (170) / 기독교
  다달이 꼼꼼하게 읽는 월간지다.

140. 유령스펨 (김동환, 192) / 1 이상
  『날마다 한일전저자가 쓴 책이라 반가웠다. 날마다 한일전저자라면 문장, 글의 흐름, 주제 모두 기대할 만하다. 유령스팸20451010~12일까지 일어난 사건을 다룬다. 스펨은 2045년에 작동하는 인공지능 로봇을 일컫는다. 청소하고 심부름하는 것부터 차를 만들고 위험한 일까지 해낸다. 사람이 할 일을 로봇이 빼앗아간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시위를 벌인다. 그러나 일자리와 시위는 책의 배경일 뿐, 핵심 내용이 아니다.
  스펨을 부리는 사람들은 도심부에 산다. 스펨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사람들은 주변부로 밀려난다. 주변부는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된 곳처럼 사람들이 떠나고 생활이 어려워진다. 이때 주변부 건물이 붕괴하는 사고가 잇따라 일어난다. 유령 스펨은 주변부에 남은 학생들이 주인공이다. 성구는 자율주행차가 일으킨 교통사고로 엄마가 돌아가셨다. 신우는 할아버지와 다투던 아빠가 죽는 일을 겪었다. 할아버지는 도심부에 산다. 신우는 할아버지 곁에 가기 힘들어한다. 정연은 성구 엄마가 사고를 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동혁도 스펨과 연관된 묘한 경험을 하면서 생각이 바뀐다.
  작가가 시간을 이용해서 내용을 이끌어간다. 1장과 2장은 시간이 반대로 되었다. 2장이 1장보다 시간이 앞선다. 4,5장부터는 시간이 제 순서이다. 3의 배수로 된 장은 1년 전 이야기다. 암에 걸린 유이와 주인을 떠난 로봇 이야기다. 3, 6, 9……을 먼저 읽고 다른 장을 순서대로 읽어도 좋다. 처음부터 차례로 읽으려면 차례에 나오는 시간 순서를 확인하며 읽어야 한다.
  1년 전 이야기가 중요하다. 주인을 떠난 로봇이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유이에게 계속 질문한다. 유이는 로봇에게 일삼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질문에 대답한다. 둘의 대화가 1년 뒤, 성구와 친구들이 겪는 일의 배경이다. 유이와 일삼이 없다면 상구와 친구들은 폭발 사고에서~ (더 말해주면 책이 재미없어지겠지!)
  인간이 무엇인지, 인공지능 로봇이 미래에 어떤 모습일지 보여주는 좋은 책이다. 청소년과 토론하기에 좋다.

139. 이것도 하나님 말씀인가 (재클린 랩슬리, 230) / 기독교  
  여성 패미니스트 성경학자가 속삭이듯 들리는 여성의 목소리를 찾아내 들려준다. 라헬의 목소리는 아버지 라반의 뜻에 맞서는 적극적인 목소리로 들린다. 사사기 19~21장에서는 자기만 생각하는 레위인 남자의 목소리에 가려진 여성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1~4장에서는 산파, 공주, 요게벳과 미리암의 목소리를 내세워 모세 이야기를 다시 들려준다. 룻기에서는 고통을 겪는 욥과 비교하여 과부 나오미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생각지도 못한 목소리를 들으며 깜짝 놀랐다. 내가 들었어야 할 목소리를 무심하게 지나쳤음을 깨달았다. 책이 쉽지는 않다. 논증하듯, 비평하듯 썼다. 1장과 5장이 조금 어렵다.

138. 한 권으로 꿰뚫는 소예언서 (김창대, 410) / 기독교
  소예언서 12권을 자세하게 해설한 책이다. 소예언서 전체를 교차대구로 설명하고, 각 예언서도 교차대구로 구조를 설명하고, 본문을 해설하고, 주제를 다시 설명한다. 성경을 공부하는 평신도에게 추천한다.

137. 한 송이 이름 없는 들꽃으로 (이현주, 486)
  이현주 목사님 칠순 기념으로 목사님이 쓴 동화, , 소설, 수필, 에세이, 단상을 모았다. 참 좋다. 권정생 선생님 느낌이 난다. 동화는 익숙했다. 다시 읽어도 참 좋다. 소설도 좋았다. 예전에 <육촌 형>이 좋았는데 다시 읽어도 좋다. 에세이, 수필, 생활단상, 편지도 좋았다. 특히 아브라함 요수아 혜셸을 소개한 글을 읽으며 혜셰를 잘 이해하게 되었다. 마지막 90쪽은 생활 단상이 가장 좋았다. ‘소리를 내는 놈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는 <악마대가리좀나방을 경계하라>는 새로웠다. ‘너무너무란 말을 제대로 쓰라는 <너무너무>, 자신을 돌아보는 글 <이 집에 벙어리 살지 않소?>도 정말 좋다. 이런 글이 계속 나온다. 추천한다.

136. 금단 현상 (이금이, 128) / 4학년 이상
  이금이 작가님이 쓴 단편 다섯 편을 모았다. 아이보다 어른이 좋아하겠다.

135. 동물농장 (조지 오웰, 171) / 소설
  조지 오웰 책을 네 권 읽었다. 나는 르포소설(위건 부두로 가는 길, 카탈로니아 찬가)보다 그냥 소설(동물농장, 1984) 취향이다. 현실을 비유하건(동물농장), 미래를 내다보건(1984) 조지 오웰은 최고다. 동물농장은 분량이 짧고 동물이 주인공이라 읽기 편하다.

9월에 읽은 책 15권 3655쪽 (전체 134권 36095쪽)

134. 복음과 상황 9월호 (158) / 기독교
  다달이 읽는 월간지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는다.

 

133. 세상 모든 책들의 도서관 (남유하 외, 180) / 4학년 이상
  작가 다섯 명이 책과 도서관을 주제로 단편을 썼다. 환상, 마법, 귀신 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로 책과 도서관을 돋보이게 만든다. 아이디어가 상큼하다. 책과 도서관을 소중하게 여겨서 더 좋다. 심심할 때 읽기 딱이다.

132. 옷산 수색대(김두경, 209) / 4학년 이상
  출판사에서 토론지를 요청해서 읽었다. 참 재미있다. 유행을 따르고, 패션 산업을 내세워 옷을 너무 많이 산다. 그리고 많이 버린다. 버려진 옷은 가난한 나라에 버려진다. 거기에 옷산이 만들어진다. 옷산 수색대는 캐릭터가 옷산에 버려진 옷을 찾아 입고 사진을 찍어 을 맏는 게임이다. 게임 유저가 시키면 캐릭터가 옷산에서 옷을 찾는다. 단순한 내용인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아니다. 반전에 반전이 이어진다. 오염, 노동 착취, 방송의 속성,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까지 잘 담았다. 좋은 책이다.

131. 리처드 로아 묵상 선집 (리처드 로아, 465) / 기독교
  몇 년 전에 추천받아 읽었는데 별로였다. 요즘 이현주 목사님 책을 읽는데 이현주 목사님이 리처드 로아 책을 번역해서 읽었다. 이현주 목사님 책을 몇 권 읽어서 그런가 리처드 로아 책이 좋아진다. 특히 1부가 정말 좋았다. 다시 읽을 책이다.

130. 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150) / 소설
  아침은 태어남, 저녁은 죽음을 뜻하는 것 같다. 어부 요한네스가 태어나는 순간과 죽는 순간을 썼다. 회상과 현실이 섞여있다. 죽은 사람과 살아있는 사람의 경계도 분명하지 않다. 마침표가 없고 대화에 따옴표도 쓰지 않았다. 경계를 무너뜨리려고 일부러 이렇게 쓴 것 같다. 삶이 죽음으로 이어지고, 죽음이 또한 다른 곳으로 이어진다고 말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소설을 싫어했다. '노벨문학상을 받는 작품은 이렇게 써야 하나? 도대체 뭘 말하는 거야?' 했을 텐데. 나이가 들고 죽음을 생각할 기회가 늘어나다 보니 이 소설도 괜찮게 읽혔다. 궁금해진다. 죽음이 뭔지.

129.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외, 305) / 불교 수행
  10, 20년 전에 읽었으면 비판을 많이 했을 책이다. 책을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현주 목사님 책을 읽어서 그런지 이런 책도 끝까지 읽는다. 스웨덴 사람이 직장 생활을 하다가 부름의 음성을 듣고 불교 수행자가 된다. 숲속에서 수행하는 <숲속 수행 승려>가 되어 17년 동안 수행했다. 하루 한 끼 먹고,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살았다. 밤샘 수행이 가장 어려웠다고 한다. 줄면서 버틴 나날이 지나 엄격한 계율이 편안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리고 승복을 벗고 고향 스웨덴으로 돌아갔다. 1년 반 뒤에 강의를 시작해서 방송에도 자주 나가게 되었다. 방송에 나간 게 마음에 썩 들지 않았다. 숲속에서 계속 수행했다면 '혼자 평안을 찾았구나!' 했을 텐데 여러 사람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니 '그러지 말았어야지' 하는 마음이 생긴다. 내 태도는 불교 수행자에게만을 향한 게 아니다. 기독교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나에게도 이런 기준을 적용하려고 한다. 그래서 고민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 고민하며 내게 질문하는 분들이 있다. 열심히 살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이 말이 좋았다.
  "우리가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맺는 온갖 관계 중에서 단 하나만이 진정으로 평생 이어집니다. 바로 우리 자신과 맺는 관계입니다. 그 관계가 연민과 온정으로 이루어진, 사소한 실수는 용서하고 또 털어버릴 수 있는 관계라면 어떨까요? 자기 자신을 다정하고 온화한 시선으로 발라보고 제 단점에 대해 웃어버릴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와 같은 마음으로 우리 아이들과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거리낌 없이 보살핀다면 또 어떨까요? 그렇게만 된다면 세상 전체가 반드시 좀 더 좋은 곳이 될 것입니다. 우리 안의 고귀한 마음가짐이 흘러넘칠 것입니다.
  저자는 루게릭 병을 진단 받고 20221월 돌아가셨다. 책 제목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는 동의한다. 이 태도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28. 사랑 아니면 두려움 (이현주, 285) / 수행 안내서
  이현주 목사님은 바보 온달을 쓴 목사님이다. 유불선을 넘나들며 기독교의 경계를 넘어선다. 올해 이현주 목사님 책을 집중해서 읽는다. 목사님이 번역한 불교 수행서는 이해가 안 됐다. 이번 수행 안내서는 이해가 됐다. 1. 마음 공부, 어떻게 할 것인가 - 지금 여기에서 자신을 찾으라는 내용을 읽으며 Full your life가 생각났다. 2부 동굴 문답을 읽으며 천천히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3부는 목사님이 꾼 꿈을 말한다. 꿈을 빌어 삶의 지혜를 알려주신다. 조금은 이해하겠지만, 아직은 모르겠다. 유불선이 통한다는 걸 인정하지만 장로교에서 배운 신앙에서는 좀 고민이 됐다. 몇 번 읽으면 알겠지.

127. 앤서 (문경민, 307) / 소설
  『앤서를 읽었다. 2년 전에는 쉘터 3부작이었다. 지난해에 한 권으로 줄이더니 드디어 책이 나왔다. 글 잘 쓰는 작가가 이게 뭐냐?” 소리 듣고도 히죽 웃으며 아이, .” 해놓고는 열심히 고쳐 쓴다.
  『앤서는 훌륭했다. 과거 이야기와 현재 이야기를 절묘하게 배치했다. 권력자들의 욕심, 그들 곁에서 단물을 빨아먹는 사람들, 얄팍하게 판단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꼭 현실 같았다. “이게 뭐냐?” 했던 이야기가 이렇게 바뀌다니 놀랍다. 역시 작가는 다르다.
  『앤서의 대답을 들으며 질문이 생겼다. 지루한 설득과 토론, 기다림과 인내로는 변화가 어려울까? 마음에 드는 문장을 두 개 골랐는데 지금 보니 어둡다. 왜 우울하고, 허탈하다는 문장이 좋았을까? 작가는 잘 살아가자고 했는데 말이다.

33/ 그리움은 해소할 없는 갈증 같아서 빠져들고 나면 매번 우울감에 젖어 들곤 했다.
42/ 발버둥 쳐도 결국 마주하게 되는 건 벽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영혼이 말라버리는 것처럼 허탈했다.

126. 우주 학교 (김동식, 161) / 5학년 이상
  김동식 작가가 장편 동화를 썼다. 짧은 글만 쓰던 분이라 단순한 이야기로 쓸 것 같아서 좀 걱정스러웠다. 단순한 이야기이긴 하다. 다만 김동식 작가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인간이 외계인인 꼬뿌, 차찻 종족과 한 학교에서 지낸다. 우주 통합을 위해 만들어진 학교에서 과연 세 종족이 친구로 지낼 수 있을까? 문화와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단순한 내용이라 요즘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겠다.

125. 하루 만나, 그 사계절 이야기 (김진호, 206) / 기독교
  강원도 영월, 평창에 가까운 산골 도천리에서 사역하는 목사님이 썼다. 목사가 쓰는 이야기가 아니라 시인의 마음을 가진 시골 사람의 글이다. 시골에서 겪은 일을 계절에 맞춰 편집한 것 같다. 도천 교회는 토박이 어른들과 주말에 오는 귀농인들이 모인다. 교인이 적고 건물은 오래됐다. 어려움이 많은 곳에서 사람들과 친해지고 섬기려 한다. 작은 호의에 감사하고 겸손하게 섬긴다. 소박한 마음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작고 소박한 이야기가 좋았다.

124. 역사의 그늘에 서서(딘 스트라우드 편집, 239) / 기독교
  히틀러 치하 독일 신학자들의 설교를 모았다. 편자의 역사적 배경 설명이 절반이고, 본회퍼, 바르트, 골비처, 에벨링, 불트만의 설교를 한 편씩 소개한다. 다섯 분은 당대 최고의 신학자였다.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말씀으로 맞섰다. 예수님은 유대인이며, 가장 약한 사람에게 한 일이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고 외쳤다. 그건 유대인을 도와주는 일이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분들이 계셨고, 지금 우리는 그분들 덕분에 더 좋은 세상에서 살아간다. 시대에 맞서는 그리스도인으로 나는 제대로 살고 있나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123. 마음 공부에 관하여 (초걈 트롱파, 295) / 불교
  이현주 목사님이 번역해서 읽었다. 불교에서 마음 공부와 영적 수행을 어떻게 하는지 알려준다. 읽긴 하는데 내용을 잘 모르겠다. 예를 들어 바탕을 지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는데 이걸 바탕으로 이어지는 설명을 모르겠다. 자기를 활짝 열라는 게 뭔지, 바탕이 건강해지는 게 뭔지 도대체? 에고 형성의 단계는 더 모르겠다. 이현주 목사님은 무얼 생각하며 이 책을 번역했을까?

122. 언제나 다정죽집 (우신영, 139) / 4학년 이상
  할머니의 팥죽집이 곧 문을 닫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할머니 혼자 일해야 하고, 이젠 팥죽을 사먹는 사람도 적다. 팥죽을 만드는 데 쓰이는 주걱, 가마솥, 홍두깨, 인두가 가게를 살리기 위해 무얼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이때 고양이가 종이를 가져온다. 여기까지 읽을 때는 이게 황금도깨비상을 받았다고?’ 했다. ‘고양이가 가져다준 비법을 따라서 가게를 살리는 이야기는 평범하지 않나?’ 생각했다. 고양이 비법대로 빵을 만들었는데 내 예상과 달리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냥 평범한 하루가 지나가고 드디어 가게를 넘겨주어야 할 날이 다가왔다. 이때 변화가 일어난다. 뒤늦게 일어나는 변화라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난다. 뒷부분을 읽으면서 , 이래서 황금도깨비상을 받았구나!’ 하고 수긍했다. 이야기에 힘이 있다.

121. 우주는 당신의 느낌을 듣는다 (이현주 옮김, 222) / 심리 상담
  이현주 목사님이 번역했기 때문에 읽었다. 우주의 기운을 받으라는 내용으로 읽혔다. ‘아브라함이라고 부르는 비물질의 영적 존재에게 가르침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대담한 이야기다. 근원에 공명하라느니 하는 이야기가 뉴에이지나 허황된 자기계발 내용처럼 들렸다. 영적인 치료로 백혈병이 나았다느니 근원과 긍정적인 연결을 말하는 부분은 더 허황됐다. 이현주 목사님이 왜 이런 책을 번역했는지 모르겠다.

120. 선생 박주정과 707명의 아이들 (박주정, 334) / 수기
  『곁에서를 읽고 어떤 분이 위인전 같아서 부담스럽다고 했다. 위인전 같다고? 나는 그 일을 그냥 겪었다. 그런 일을 다시 겪어야 한다면 더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고생하는 길이 아니라 내가 가야 할 길이라 생각한다. 박주정 선생님도 같은 마음인 것 같다. 이상 행동을 보이는 아이는 가정에 원인이 있으니 그걸 알아내서 도와주자고……
  박주정 선생님은 정말 위인전 같은 삶을 살았다. 밤이고 낮이고, 가정이 없는 사람처럼 학생들을 돌봤다. ‘이제 그만이 없었다. ‘힘들다. 쉬고 싶다.’ 하는 마음도 보이지 않았다. 또한 아이들을 돌보기만 한 게 아니다. 학교를 떠난 학생을 도와주려고 새로운 학교를 만들었다. 관련 기관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조직과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분이 간 길은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겠다. 정말 위인전 읽는 느낌이었다.
  학교가 점점 사무적으로 바뀐다. 아이를 좋아해서 아이에게 장난을 치면 생각지도 못한 일로 힘들어질 수 있다. 동료 교사를 도와주거나 도움을 받는 일도 줄어들었다. 우리 반 아이가 아니라고,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굳이 이걸 해야 하느냐고…… 이런 말이 많아졌다. 우리 반이건 아니건 아이를 돕고 가르쳐야 하지 않나? 내 일이 아니라고 해도 해야 할 때가 있지 않나? 업무를 최소한으로 하는 게 교사로 살아가는 기준은 아니지 않나?
  나는 아이와 장난을 친다. 그래도 부모가 뭐라 하지 않는다. 내가 아이를 사랑하며 잘 가르치려고 노력한다는 걸 안다. 신뢰가 있다. 나는 2학년을 돕는다. 4학년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한다. 젊은 교사에게 컴퓨터를 봐달라고 한다. 2년 동안 업무를 도와주었던 총각 선생이다. 교사들 사이에도 신뢰가 있다. 우리는 모두 아이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교사와 학부모, 교사와 교사 사이에 신뢰가 무너질 위기에 처한 지금이야말로 박주정 선생님 같은 분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생 박주정과 707명의 아이들은 내가 받은 상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지쳤다고, 나이가 들어서 힘들다고 늘어지는 중인데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진짜 스승을 만났다. 꼭 읽어보시라고 권한다.

8월에 읽은 책 16권 5772쪽 (전체 119권 32440쪽)

119. 카탈로니아 찬가(조지 오웰, 398) / 소설
  조지 오웰이 쓴 르포르타주(직접 겪은 일을 쓴 고발 소설). 조지 오웰이 쓴 다른 르포르타주 소설 위건 부두로 가는 길보다 훨씬 재미있다. 스페인은 왕정이 무너진 뒤에(1931) 실시한 선거에서 농민과 노동자 편이 승리하며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그러자 군부지도자인 프랑코가 부유한 계층의 지지를 받으며 내전을 일으켰다. 헤밍웨이를 비롯한 4만 명 이상의 외국인이 파시스트(프랑코 정권)에 대항하려고 스페인에 갔다. 조지 오웰은 카탈로니야(스페인 북동부 지역)에서 정부군에 맞서 싸웠다.
  정부군은 프랑코에 맞서 싸워야 했으나 내부 갈등으로 의용군을 탄압했다. 복잡한 정치 양상을 설명하기 어렵지만, 핵심 내용은 순수한 열정으로 전쟁에 뛰어든 사람들이(스페인 농민과 노동자이건 외국에서 스페인으로 간 사람이건) 누가 내린지 모르는 명령에 따라 감옥에 갇혀 죽어갔다는 점이다. 전쟁은 정치 싸움이며, 언론은 사실이 아니라 정치적 의도에 따라 움직인다고 고발한다. 그래서 의용군이 추위와 배고픔에 떨며 싸울 동안 사람들은 전쟁과 상관없이 지내며, 어느날 갑자기 의용군을 적과 내통한 놈들이라고 잡아가는 일이 일어난다. 조지 오웰은 이런 현실에 분노하며 카탈로니아 찬가를 썼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이 더러운 세상!” 이다.

118. 네모 돼지 (김태호, 117) / 4학년 이상
  김태호 작가는 독특한 상상으로 글을 쓴다. 김태호 작가가 쓴 책은 다 좋았다. 이 책은 동물의 눈으로 사람을 바라본다. 일곱 단편 모두 재미나다.

117. 신약 성경과 그 세계 (1378) / 기독교
  신약 성경이 이루어진 과정과 담은 내용을 체계적으로 설명했다. 부록까지 하면 1500쪽이 넘는다. 신약 성경 안내서라고 말하기엔 전문 자료가 너무 많다. 역사적 배경과 논쟁점, 성경이 형성되는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25시간 정도 읽은 것 같다. 신약 성경을 공부한다면 이 책을 읽으면 된다. 저자는 입문서라고 소개하는데 전문성을 갖춘 입문서이다.

116. 미소의 여왕 (김남중, 140) / 4학년 이상
  김남중 작가가 쓴 책을 좋아한다.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다. 이 책도 그렇다. 단편 4편을 실었다. 네 편 모두 따뜻하고 좋다. 생각하게 만든다.

115. 고백의 언어들 (김기석, 359) / 기독교
  김기석 목사님이 VIEW에서 했던 강의 5편을 책으로 냈다. 인문학 강의로 느끼는 독자도 있다. 시와 소설을 자주 언급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말하고(1), 인간이 하나님 안에서 태어나(2),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고(3),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고는(4) 존재라고 설명한 뒤에 나의 인생, 나의 하나님(5)’을 고백한다. 흐름을 이해해야 각 장의 내용을 알게 된다. 그러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해도 마음이 머무르게 되는 좋은 문장과 문단이 많아서 좋다.

114. 작은 예배자 (민호기, 293) / 기독교
  민호기 목사가 13년 전에 쓴 책이다. 어머니가 아주 좋다고 주셨다. 10년 전에 고민하고 생각하던 내용이라 그냥 읽었다. 곡을 쓴 과정에 사역자의 마음가짐을 썼다. 사역자들이 읽으면 좋겠다. 다만, 고민하며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역자는 이미 아는 내용이고, 하나님 이름을 내세워 자기 만족에 빠진 사역자는 읽지 않을 것 같다.

113. 기억 전달자 (로이스 로리, 310) / 중학생 이상
  중 2학년 36명과 9시간 동안 독서 토론했다. 참 좋은 책이고, 토론하면 더 좋은 책이다. 어른, 학생, 소집단, 대집단에서 다양하게 나누었다. 그래도 읽을 때마다 좋다.

112. 한밤의 아이들 1 (살만 루슈디, 496) / 소설
  인도가 독립하던 날(1947815) 태어난 아이들을 한밤의 아이들이라 부른다.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갈라진 날이다. 이날 태어난 살림 시나이가 같은 날 태어난 아이들을 찾게 된 이야기다.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특히 살림 시나이 외할아버지 이야기는 무슨 내용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과장과 위트가 곳곳에 드러난다. ‘살림 시나이가 태어날 때 부자와 가난한 집 아이가 바뀐다. 살림 시나이는 자기도 모른 채 부잣집 아이가 되어 살아간다. 부자이지만, 힌두교 사회에서 무슬림으로 살아가는 집이다. 종교 때문에 나라가 갈라지는 상황에서 말이다. 두 아이를 통해 인도와 파키스탄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러나 참 읽기 어렵다. 2편을 언제 읽을지는 모르겠다.

111. 달과 6펜스 (서머싯 몸, 363) / 소설
  현실과 이상, 합리성과 예술성의 세계는 반대로 표현된다. 고흐가 바라본 세상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고갱이 예술가가 아니었다면 이해하기 어렵겠지. 젊었을 때 읽었다면 주인공 스트릭랜드에게 분노했을 것이다. 예의가 없고 상식을 뒤집어엎는 뻔뻔한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무언가에 미친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엉뚱하게 살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살아가니까. 고전은 역시 고전이다. 참 잘 썼다.

110. 복음과 상황 8월호 (163)
  꼼꼼하게 읽는 월간지다.

109. 수런수런 숲 이야기(고대마리 루이, 88) / 4학년 이상
  엄마가 이탈리아로 일하러 간다고 하자 마이가 반대한다. 아빠와 함께 허드슨 강을 지나 숲에 사는 고모네 집에서 열흘 동안 지낸다. 숲에서 수런수런 들리는 소리를 듣고 시간을 보내며 엄마를 보내주기로 한다. 이런 가족도 있고, 저런 가족도 있다고 깨닫는다. 조용하고 잔잔한 내용이다. <가족의 종류>를 가르칠 때 읽어줘야겠다.

108. 결국엔 사랑 (손동연, 342) / 기독교
  손양원 목사 막내딸이 썼다. 저자는 막내딸로 손양원 목사에게 무척이나 사랑을 받았다. 목마를 태워주고 사랑을 표현하던 아빠가 4살에 죽었다. 사람들은 순교자라고 했지만, 저자는 두 오빠도 데려가고 아빠도 데려간 하나님을 용서할 수 없었다. 정양순 사모님은 남편 손양원 목사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사는 것보다 순교하는 걸 바랐다. 타협하지 않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손양원 목사님이 돌아가신 뒤에 교회 일에도 타협하지 않았다. 아이를 돌보는 것보다 교회를 세우는 일에 마음을 더 쏟았다.
  광복하고 나서 신사참배를 두고 교회가 분열되었다. 신사참배하지 않고 고통당한 분들이 신사참배한 사람들을 비난하며 교회로 인정하지 않았다. 정양순 사모님은 신사참배하지 않은 소수 고려파에 속했다. 옳은 길을 따르다 고통을 당한 소수가 가는 길이 편할 리가 없다. 저자는 엄마와 같이 살지 못하고 친척 집, 친구 집에서 지내야 했다. 저자는 하나님께서 아빠와 오빠를 데려가고, 엄마까지 빼앗아갔다고 생각했다. 절망감, 상실감을 피아노에 쏟아부었으나 마음의 상처는 치료되지 않았다.
  책은 3부로 쓰였다. 1부는 저자가 본 가족들 모습이다. 손양원 목사님과 두 오빠의 죽음을 지켜본 분들을 만나면서 완성한 기록이다. 2부는 어머니 정양순의 삶을 소개한다. 아버지가 죽음으로 순교했고, 어머니는 삶으로 순교했다. 지금 시대에는 이해할 수 없는 믿음이다. 3부는 저자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썼다. 치유가 없었다면 이 책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내용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점점 힘을 빼고 산다. 중요하게 여기는 게 줄어든다. 여유가 많아져서 좋다. 그러나 믿음에도 힘이 빠진다. 그래서 온 힘을 다해 믿었던 분들 이야기를 읽으면 심란해진다.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지?’가 아니라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생각한다. 책 내용이 1940~70년대 일어난 일이라 지금 시대와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그러나 부모의 헌신 때문에 상처 받은 자녀, 상처가 준 결핍을 다른 것으로 채우려고 발버둥치는 모습, 하나님 은혜로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은 똑같다. 우리의 삶은 결국 사랑을 찾는 발버둥 아니던가!

107. 사랑으로 길을 내다 (윤상혁, 261) / 북한
  사랑이라는 말을 하기 어려운 곳이 어디일까? 길을 내기 어려운 곳이 어디일까? 있던 길도 끊어진 곳이라면 북한이 생각난다. 사랑으로 북한에 길을 낼 수 있을까? 윤상혁 선생님이 정말 사랑으로 북한에 길을 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난독증으로 공부를 포기한 학생이 하나님 은혜를 느끼고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의사가 되었다. 미국인 아내와 함께 북한에서 치료한다. 북한 최초 외국인 의학박사가 되었고, 병원을 설립하고 사람들을 치료한다. 그가 북한에서 일하게 된 과정, 북한에서 만난 사람들을 말한다. 북한을 가난하고 불쌍한 나라로 규정하지 않아서 좋았다. 북한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점도 말하지만,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임을 말한다. 무엇보다 그들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함께 말한다. 참 좋은 책이다. 우리가 만난 통일, 북조선 아이와 함께 강력하게 추천한다.

106. 이현주와 만난 사람들(이정배 외, 309) / 전기
  『바보 온달을 읽고 이현주 목사님을 알았다.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이 쓴 예언자들번역자가 이현주 목사님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 동화 작가가 유대 랍비 책을 번역한다고? 찾아보니 이현주 목사님이 쓰고 번역한 책이 100권이 넘었다. 기독교를 중심으로 불교와 도교, 노자와 장자 등 다양한 주제로 책을 내셨다.
  이 책은 이현주 목사님을 만난 분들이 80세 기념으로 낸 책이다. 한 사람을 알기 위해 주위 사람을 살펴보는 방법이 있다. 이분들은 이현주 목사님을 넓고 깊은 분이라고 극찬한다. 바보 온달은 새로운 상상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다. 이현주와 만난 사람들도 서로 다른 책과 경험에서 이현주 목사님을 만났다. 다들 새롭고 깊다고 말한다. 이현주 목사님이 쓴 책들을 읽어야겠다.

105. 교회, 경계를 걷는 공동체 (최종원, 258)
  경계는 불안하다. 안쪽이건 바깥쪽이건 경계는 뭔가 아슬아슬하다. 경계에서 멀어질수록 안전함을 느낀다. 예수님 말씀은 아슬아슬했다. 사람들 사이에 불안을 일으켰다. 경계를 벗어나 안전해졌던 시대에 교회는 오히려 교회답지 못했다. 지켜야 할 게 많아졌고 본질에서 멀어졌다.
  『교회, 경계를 걷는 공동체는 경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인은 침묵, 순례, 영성, 지성, 복종이 그 모습이다. 우리가 추구하지 않는 모습이다. 교회는 평등, 연대, 성찬, 구원, 순결이 그런 모습이다. 역시 교회에서 말하지 않는 내용이다. 교회가 다시 경계를 걷는 공동체가 되면 좋겠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104.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 475) / 동화
  톨스토이가 쓴 민화(동화) 모음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두 노인>, <바보 이반>, <대자> 등 잘 아는 이야기가 많았다. 아이가 읽기 참 좋은 글을 모아놓았다. 아이들은 착한 마음을 건드리는 글을 읽어야 한다. 톨스토이는 이런 면에서 제격이다. 요즘은 양보하라고, 착하게 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 손해 본다고, 바보가 된다고 한다. 글쎄~ 양보를 배운다고 바보가 되진 않는다. , 좀 바보가 되면 어떤가? 친구에게 양보하는 인격을 갖게 되는데 말이다. 또한 어릴 때 양보한다고 계속 양보하는 것도 아니다.
  때리고 죽이는 게임이 아이의 마음을 무디게 할수록 톨스토이의 책을 읽어야 한다. 적어도 아이만은 착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배워야 한다. 어릴 때 가진 마음이 기초가 되어 한 사람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 것이다. 주위 사람들도 같이 아름다워질 것이다.

 

7월에 읽은 책 11권 2568쪽 (전체 103권 26668쪽)

103. 변두리 (유은실, 227) / 소설
  1980년대 서울 변두리, 돼지와 소 도축장 주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다루었다. 당시 사람들은 가난해서 직장이 필요했다. 직장이 있어도 끝이 아니다. 도축장에서 일하는 사람, 도축 부산물로 살아가는 사람은 사람들 손가락질을 받아야 한다. 주인공 수원은 아빠가 다쳐서 가난해졌다. 통을 들고 선지를 사러 가야 한다. 선지를 사오다가 친구를 만나면서 일이 시작된다. 가난하고 슬펐던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청소년들이 읽으면 부모 세대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유은실 작가의 마음을 잘 담은 책이다.

102. 귀서각 (보린, 283) / 5학년 이상
  귀신을 소재로 책의 소중함을 알려주고, 자신의 상처와 약점을 이겨내는 이야기다. 우리나라 고유의 귀신 특징을 잘 살려 이야기를 만들었다. 아이들이 좋아하겠다. 다만 귀신만 잔뜩 나와서 몰입에 방해가 되었다.

101. 복음과 상황 7월호 (167)
  꼼꼼하게 읽는 월간지, 변화산에 있었던 세 사람(모세, 엘리야, 예수님)의 공통점을 소개하며 쓴 글이 놀라웠다. 시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

100. 만 년 동안 살았던 아이 (나가노 하루, 279)
  '하루'는 조현병 엄마를 돌본다. 8살 아이가 지하철에 널부러진 엄마를 일으켜 기차 밖으로 데려간다. 마을에서 엄마가 소란을 피우면 말린다. 경찰이 오거나 엄마가 경찰서에 잡혀가면 보호자 노릇을 한다. 우울증인 언니와 엄마를 한꺼번에 돌봐야 할 때도 있다. 하루는 아픈 가족을 돌보면서 계속 사람을 살핀다. 그게 몸에 달라붙어 자라면서 계속 사람 눈치를 본다. 친구, 직장 상사뿐만 아니라 잠깐 만나는 사람이 불편하지 않게 하려고 발버둥친다. 그래서 하루는 자신을 만 년 동안 살았던 아이라고 부른다. 조현병 엄마를 돌보면서 자신은 신이 되어야 했다고 말한다.
  학부모 독서 동아리에서 읽었다. 자신이 어렸을 때 받았던 상처가 어떻게 드러나는지 나누었다. 지금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 떠올리는지 나누었다.

99. 우리 동네 전설은 (한윤섭, 140) / 5학년 이상
  준영은 도시에서 시골로 이사한다. 바쁘게 학원 다니던 준영은 시골이 낯설다. 시골 아이들이 귀신 이야기를 하자 색다른 방법으로 텃세를 부린다고 생각한다. 시골 아이들이 말한 귀신 이야기는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이를 잡아간다거나 하는 이야기다. 믿지 못한다고 생각해도 왠지 오싹하다. 그러다가 마을 할아버지, 할머니를 한 명씩 알아간다. 그렇게 만난 분들은~ 시골에서 마주하는 계절의 변화 모습과 함께 시골에 사는 분들의 나이 드는 모습이 잔잔하게 다가온다. 내 취향에 맞는 책이다.

98. 라면 먹는 개 (김유, 71) / 3학년 이상
  라면과 친구로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

97. 산복 빨래방 (김준용, 이상배, 247)
  부산일보 기자와 PD가 산복마을에 빨래방을 냈다. 산복마을은 오래된 언덕 마을로 좁은 골목이 많아 차가 다니기 어려운 곳이다. 기자들은 빨래를 해주고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책은 빨래방을 내는 과정, 만난 사람, 일어난 일, 마을 사람들에게 일어난 영향과 기자들에게 일어난 영향까지 소개한다. 기자가 마을에 들어가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함께 지내는 모습이 참 좋았다. 사건과 사고를 찾아다니는 일도 기자가 해야겠지만,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내보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런 일을 해보고 싶었는데 지금은 지쳐서 잘 모르겠다. 아무튼 젊은 기자들이 한 일은 참 좋다.

96. 뜻밖의 것의 단순한 아름다움 (마르셀로 글레이서, 259)
  저자는 뛰어난 물리학자다. 초청을 받아 강의하러 갈 때마다 플라이낚시를 한다. 안내자를 구해서 플라이낚시를 배운다. 강의보다 자연을 살피고 느끼는 걸 더 좋아한다. 그러면서 뜻밖에 만나는 단순한 아름다움에 놀라고 즐거워한다. 저자는 자신의 연구도 이렇게 생각한다. 뜻밖에 만나는 단순한 것이 과학 발전에 기여한다고 믿는다. 그는 잡은 물고기 크기를 자랑하고 물고기를 괴롭히고 죽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낚시 기술은 자연을 느끼고 자연의 일부가 되어 함께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과학도 정복하고 해부하는 게 아니라 무지의 세상에서 우리의 연약함과 불완전함을 깨닫는 도구라고 말한다.
  쉬운 책은 아니다. 낚시 이야기는 이해하기 쉬우나, 과학 이야기는 어려운 부분도 많다. 과학을 절대적인 도구로 삼지 않은 점은 마음에 드나, 지나치게 상대주의적인 관점은 나랑 맞지 않았다. 그래도 좋았다. 글을 잘 쓴다.

95. 플레이볼 (이현, 203) / 5학년 이상
  야구를 좋아하는 엄마가 야구장에서 아빠를 만나 동구가 태어났다. 동구도 야구를 좋아해서 야구 선수를 꿈꾼다. 초등학교 야구부 투수 겸 4번 타자다. 그런데 엄마가 응원하러 오지 못한다. 야구할 때마다 일이 생긴다. 주로 동생 민구가 갑자기 아프다. 사실 민구는 야구장에서 트라우마가 생겼다. 야구하는 형이 싫다. 아빠가 엄마와 헤어져서 아무도 동구를 보러 야구장에 오지 않는다. 여기에 친구 관계가 얽힌다. 같이 야구를 시작한 친구 푸른이는 야구를 잘 못한다. 뒤늦게 들어온 영민이는 야구를 잘한다. 더구나 최선이 아니라 최고를 말하는 감독이 결과를 강조한다. 참 좋은 책이다. 승부에 집착하는 남자아이들과 읽으면 좋겠다.

94. 마음에 이는 물결 (어슬러 르 귄, 492) /
  <작가, 독자, 상상력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있다. 다양한 글을 모았다. 르 귄의 글은 쉽지 않다. 상상과 현실이 겹치는 내용이 많다. 내용이 새로워서 낯설다. 사고의 흐름도 독특해서 몇 번 읽어야 이해할 글도 있다. 그래도 르 귄의 글은 참 좋다. 특히 <허클베리 핀>을 분석한 내용은 압권이다. 깊이 생각하고, 끈질기게 쓰는 참 좋은 작가다. 혼자 읽기엔 어렵고 아깝다. 여럿이 같이 읽으면 좋다.

93. 브릿지 (000, 200) / 청소년 소설
  작가 요청으로 미출간 원고를 읽었다. 미출간 원고를 평가해달라고 해서 솔직하게 말해줬다. 솔직하게 말하면서 관계를 유지하는 게 부담스럽다. 그래도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원고를 보내는 거라 생각해서 솔직하게 말한다. 원고가 어떻게 바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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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를 느끼는 마음

권일한

스바 여왕은 솔로몬이 이룩한 것들을 보고 숨을 쉴 수 없었다(왕상 10:5). 이때 숨은 루아흐(רוּחַ)로 보통 하나님의 영(숨결)을 말한다. 스바 여왕은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경이로움에 빠졌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국의 여왕을 전율하게 했던 솔로몬의 모든 영광이 꽃 하나보다 못하다고(6:29, 12:27) 말씀하셨다. 위대하고 찬란한 대상을 작고 연약한 것에 견주어 가치를 뒤집어버렸다. 광대함을 작은 것과 견주고, 위대한 것을 소박함에 견주어 허망함을 드러내고 생각의 전환을 꾀한다.

코스모스가 백만 부 이상 팔린 까닭이 뭘까? 일상에 도움이 되는 실용서가 아니다. 투자를 돕거나 마음을 돌보는 책도 아니다. 합리적이지 않고 위로를 주지도 않는다면, 잠깐의 재미와 호기심을 주는 운세나 사주를 읽는 게 낫지 않을까? 코스모스는 과학자를 소개하고 별과 은하를 설명하며 인간의 업적과 한계를 말한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코스모스에 매료되었을까?

칼 세이건이 <경이>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최고 수준의 과학자가 우주를 보며 느낀 경이를 독자가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코스모스는 과학 지식을 알려주는 책이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안에 경이를 펼쳐놓았다. 유스터스처럼 차가운 태도로 별이 거대한 가스 덩어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세이건이 원자와 전자를 말하지만, 환원주의에 갇히지 않는다. 거대한 가스 덩어리가 모인 은하, 광대한 은하에서 작고 작은 한 부분을 차지하는 우리 인간, 미미한 존재인 인간이 광대한 은하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세이건은 인간의 놀라움과 보잘것없음을 동시에 말한다. 인간은 솔로몬의 영광을 이룬 존재이며 동시에 작은 꽃과 같다. 인간은 우연히 만들어진 세포로 시작해서 우주를 탐사하는 존재가 되었다. 칼과 창을 휘두르며 죽고 죽이던 시대에 막대기 하나로 지구 둘레의 길이를 재다니! 에라토스테네스의 실험 결과, 콜럼버스가 망망대해 너머 육지가 있다고 믿었으니 얼마나 놀라운가! 전기가 없던 시대, 손발로 일하던 시대에 기하학, 물리학, 천문학……의 기초를 놓은 사람이 있었다니 굉장하다. 달에 발을 내딛고,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 연구한다. 수백, 수천 광년 멀리 떨어진 곳에 전파를 쏘아 보내 지구와의 거리, 질량, 대기 상태를 알다니 인간의 지식이 얼마나 대단한가!

인간은 예측불허의 세상에 집을 짓고 문화를 일구었다. 지구를 벗어나 태양계를 탐사하고 우주로 나섰다. 인간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말하는 데 그쳤다면 코스모스의 경이는 오래 가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의 광기가 일으킨 지옥이 얼마나 넓고 깊던가! 그러나 세이건은 지구가 우주에서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하며 인간이 알아낸 지식이 얼마나 티끌 같은지도 말한다. 인간의 탐사 계획과 실행 과정의 놀라움을 말하면서 우리가 하는 일이 얼마나 사소한지 느끼게 한다. 인간이 찾아낸 별과 별을 품은 우주는 얼마나 놀라운가! 오늘 우리가 고민하는 걸 모두 먼지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혜성, 태양의 변화, 광대한 우주의 알수없음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가! 솔로몬의 영광 앞에 있는 한 송이 꽃처럼.

세이건은 과학자다. 과학자는 과학의 대상이 되는 것만이 실재한다고 생각한다. 코스모스는 과학자가 호기심으로 살핀 우주의 실재다. 우리가 모르는 내용을 밝히고, 칼 세이건의 문장이 더해져서 독자가 경이를 느끼게 한다. 우주를 알면 알수록 더욱 경이를 느낀다는 과학주의에서 바라보는 우주 말이다. 세이건은 우주 개발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주 개발에 쓰일 비용이 국방비에 들어가는 걸 안타까워한다. 지나칠 정도로 말이다.

이종태 목사는 경이라는 세계에서 신기한 대상을 찾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두리번거리는 눈, 그 대상을 파악해서 장악하려는 눈을 호기심이라고 설명한다. 이와 달리 경이는 상대의 신비를 가만히 응시하는 눈이다. 세이건의 눈은 호기심에 가깝다.

새벽출정호의 항해에서 유스터스는 섬에서 라만두에게 우리 세계에서 별은 활활 타고 있는 거대한 가스 덩어리예요.” 하고 말한다. 그러자 라만두는 얘야, 너희 세계에서도 별은 그런 것이 아니란다. 그것으로 만들어졌을 뿐이지.” 대답한다. 은퇴한 별인 라만두는 별을 재료가 아니라 존재로 말한다. 별은 자기 자신이다. 경이로운 대상이다. 과학 지식으로 별을 분석한 유스터스에게는 모든 것이 과학적 지식의 대상일 뿐이다.

유스터스는 별과 자연에서 경이를 느끼지 못한다. 라만두는 실재할까? 별이 나이가 들어 은퇴하고 나니아의 섬에서 노인으로 살아갈까? 루이스를 좋아하는 나는 은퇴한 별을 만나는 장면에서 경이를 느낀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라만두를 물의 요정 나이아스나 타로 카드에 나오는 점술사로 받아들인다. 세이건은 유스터스 쪽에 가깝다. 이 시대 사람들도 유스터스 쪽에 가깝다. 과학주의 자체를 보여주는 유스터스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과학주의에 빠진 사람이라도 유스터스는 지나쳐 보이니까.

나우엔은 날마다의 삶에는 놀라움이 있다고 했다. 우리 삶에도 경이가 흐른다. 어린아이 눈으로 보면 세상은 얼마나 경이로운가! 아이들은 작은 일에 호들갑을 떤다. 달팽이를 보느라 수업 시간에 늦었다. 소방차가 오면 뛰쳐나간다. 운동장에 내린 서리를 밟으며 뛰어다닌다. 우리 반 아이들은 내가 32000살이라는 말을 믿었다. 경험이 적고 모르는 게 많아서 그럴 수도 있다. 과학적으로 불합리해 보이더라도 경이를 느끼며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1960년대 미국인들은 ‘what a wonderful world.’에 열광했다. 장미가 꽃 피우는 걸 보고 ‘what a wonderful world.’를 노래했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무지개, 지나가는 사람들 얼굴, 인사하는 모습, 아이가 울고 자라는 모습에 경의를 표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것에서 경이를 느끼는 사람이 줄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책을 좋아하는 것 같다. 잃어버린 경이를 되찾고 싶어서. 광대한 우주 끝 한 점에 불과한 지구에서 살아가는 작고 작은 인물이지만, 경이로운 세계의 한 부분이라고 뿌듯해하며 감격하고 싶은 마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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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2026년 2년 동안 매일성경에 글을 냅니다.
첫 글을 소개합니다. (매일성경에는 글이 조금 줄어서 나왔습니다.)
다음 글부터는 매일성경을 구독해서 읽어주세요.

성서유니온선교회 출판

 

성서유니온선교회 출판

1년 : 27,000원 2년 : 54,000원

sup.su.or.kr:8888

 

성전에서 시작하고 광야에서 마치다

세례 요한의 이야기는 성전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요한은 성전에 머무르지 않았다. 성전을 떠나 살았다. 성전을 등지고 광야에서 외치다가 감옥에서 죽었다.

아이 없는 제사장 가문

세례 요한은 부모가 모두 아론 자손이며 제사장 집안이었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이다. 아비야는 아론의 후손으로 다윗 시대에 제8반차의 수석 제사장이었다(대상 24:10). 아내 엘리사벳도 아론 자손이었다. 두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의인으로 인정받았다.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였다(1:6).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칭찬받는 사람이었다. 요한은 진골 출신인 셈이다.

두 사람에겐 아이가 없었다.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127:5)이라고 솔로몬이 성전에 올라가면서 노래했다. 아론 지파 제사장, 의인, 흠이 없는 사람들에게 자녀가 없다니. 우리는 요한이 태어난 걸 안다. ‘세례 요한하면 태어난 뒤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그러나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요한이 태어날 줄 몰랐다. 요한이 태어나기 전에 마음이 어땠을까? 자기들이 잘못해서 자녀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더 열심히 섬기면 여호와께서 자녀를 주실 거로 믿었을까?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지 않았다. 누구에게 원인이 있는지 알아보지 못한다. 사가랴는 남편과 아내 중 누구에게 문제가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은 아예 없었다. 시험관 시술을 권하면 이방 종교의식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니, 귀신 들렸다고 생각하겠지. 차라리 대리모를 이해하기 쉽겠다.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을 낳아준 하갈이 그나마 대리모에 가까우니까. 이것저것 생각할 것 없다. 길이 하나뿐일 때 오히려 결정하기 쉽다. 받아들이기도 편하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하나님을 흠 없이 섬기는 경건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길은 하나뿐이다. 주 우리 하나님께 간절히 구했다. 사라의 하나님, 한나의 하나님, ‘마노아의 아내의 하나님을 불렀는지 모르겠지만, 여호와께서 아이를 주시리라 믿었다. 정말 천사가 나타났다. 하나님이 간구를 들으셨고 아이를 주겠다고 하셨다. 이름까지 정해주셨다. 태어나기 전에 이름을 정해준 사람은 다섯 명뿐이다. 이삭, 이스마엘, 이스르엘(1:4), 요한, 그리고 예수.

 

아이 얻은 기쁨이 아이 없는 상처를 모두 치유할까?

후배 부부가 유산했다. 당황하고 힘들어하며 하나님을 붙들었는데 다시 유산의 고통을 겪었다. 직장에서도 이기적인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온갖 잡무를 붙들고 고생했다. 후배의 슬픔을 듣고 양혜원님이 자녀를 잃은 슬픔을 쓴 글을 줬더니 쪽지를 보내왔다.

(남편) “글을 읽으며 내 맘 깊은 곳에서 가라앉아 있던 슬픔과 고통이 밀려왔어요. 아내를 병원 수술실에 보내곤, 태어나서 처음으로 서럽게 울었던 기억들. 이상한 거 같다고 이야기하던 아내의 얼굴에 스쳐 지나가는 두려움과 불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일까 고민했던 시간들. 하지만 고통스러웠던 그 시간. 친구들의 출산 이야기, 둘째 이야기…… 모든 것이 부러웠던 시간이었는데.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 나보다 더 아플 아내가 있어 내색하지 못했던 것들…… 양혜원 씨가 표현한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어요.”

() “난 그 아픔을 잘 몰라서 말할 수가 없지만, 하나님 뜻에 포함되어 있다고 단정 짓기도 어려워. 내 아이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하나님은 죽어가는 모든 아이에게 느끼실 테니, 다른 아이에 대해 내 아이와 같은 마음을 품지 못하는 나는 하나님 뜻이 어떠하다 말할 수가 없지! ~” (중략)

(남편) “하나님이 어떻게 느끼실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 조금은 두렵기도 했어요. 그런데도 교회에서는 아내와 나에게 성가대며 일을 해야 한다고 권유했어요. 어떤 사람은 임신 마지막 달까지 성가대 지휘를 했다느니, 교회 일 열심히 하면 다 될 거라느니 이런 이야기들이. 상처…… 그렇게 표현하기에도 속상한 말이었어요. 양혜원 씨의 글, 오늘 선생님께서 주신 글이 내 맘 깊이 남네요.”

교회에서 잘 섬기고 봉사하면 하나님께서 소원을 들어주실까?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성전에서 충성하고 여호와를 잘 섬겨서 아들이 태어났을까? 후배도 교회에서 일을 열심히 하면 다 잘 될까? 아이를 낳으면 이전에 느꼈던 아픔과 상처가 나을까? 깨끗하게 치유될까?

 

성전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사가랴는 성전에서 섬기는 제사장이었다. 사가랴의 삶은 성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누가복음 1장을 살펴보자. 사가랴는 성전에서 제사장 직무를 행하다가 분향단 오른쪽에 선 주의 사자를 만났다. 아들을 낳을 거라며 요한이라고 부르라는 예언을 들었다. 아이가 큰 자가 되고(15),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15), 이스라엘 자손을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고(16), 엘리야의 능력으로 ~ 백성을 준비한다(17)는 내용이다. “아멘, 할렐루야!” 외칠 만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사가랴가 믿기 어려웠다고 한다. 아이를 달라고 기도해놓고는 아이를 준다고 하시니 믿기 어려웠다(18). 사가랴의 간구를 여호와께서 듣고(13) 아들을 준다고 했는데 정작 당사자는 믿지 못했다. 그럼 하나님께서 사가랴의 믿음을 잘못 보셨을까? 이제라도 아들 주겠다는 약속을 취소하실까?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사가랴가 한동안 말을 못 하게 했지만(20), 아들을 주겠다는 약속을 취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사가랴가 믿지 못해서 말을 못 하는 게 백성에게는 증거가 되었다. 성전 밖에서 기다리던 백성들은 사가랴가 말을 못 하자 환상을 보았다고 믿었다. 말을 못 하는 상태로 성전에서 직무를 마쳤다(22~23) 천사의 말이 이루어져서 엘리사벳이 요한을 임신했다. 여섯 달 뒤에는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찾아갔다. 엘리사벳이 임신했다는 소식을 가브리엘이 말하자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찾아왔다. 마리아의 문안을 듣고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찬양했다(1:41~45). 이에 마리아는 <마리아의 찬가>로 알려진 찬양을 했다. 사가랴가 말을 못 하는 것을 제외하면 복된 일이 계속 이어진다. 간증이 넘쳐난다. 얼마나 귀한가!

사가랴는 벙어리로 지내다가 요한이 태어날 때 입이 열렸다. 다시 말하게 되자마자 하나님을 찬송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67) 찬송하며 예언했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는 없다. 아브라함은 나이 들어 부름을 받았다. 모세의 아버지가 누군지(아므람)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요한은 제사장의 자녀로, 가브리엘의 방문을 받아, 태어날 때부터 능력을 받았다. 기드온과 삼손, 엘리야와 엘리사 모두 적어도 태어날 때는 요한과 견줄 수가 없었다.

제사장, 의인, 흠이 없음, 천사, 큰 자, 성령 충만, 엘리야의 능력, 찬가, 그리고 성전. 요한은 이런 낱말로 삶을 시작했다. 아버지 사가랴는 가브리엘을 만났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각각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다는 말씀이 이어진다. 요한은 이스라엘에서 영적인 금수저였다. 뿐만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스라엘 자손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사람이라고 했다. 요한은 엘리야에 필적하는, 놀라운 일을 할 것이다(1:11~17). 이 모든 이야기가 성전에서 시작되었다. 사가랴가 성전에서 봉사할 때 말이다.

 

성전을 떠나 광야에서

성전과 관련된 요한의 이야기는 이것뿐이다. 요한은 더 이상 성전에 나타나지 않는다.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을 싫어한 것처럼 보인다. 부모의 반차를 따라 제사장의 자격을 가진 사람이라면 성전에서 일해야 한다. 누군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제사를 드려서 속죄해야 한다. 당시에는 속죄할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사가랴가 했던 제사와 성전 예배를 요한이 드렸다는 기록이 없다. 오히려 요한은 성전이 없는 곳, 광야에서 회개하라고 외쳤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이야기를 광야에서 시작한다. 영적인 금수저로 보였던 요한은 성전을 떠나 광야로 갔다.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 산당이 있는 벧엘이나 단, 조상의 기억이 남은 실로나 헤브론이 아니었다. 광야라니! 희생 제물을 갖고 성전에 제사하러 오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느끼며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요한을 찾아 광야에 갔던 사람들은 한바탕 욕을 들었다. 세례받으러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욕을 해대다니(3:7) 이상하지 않은가!

회개하러 돌아다니지 말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만약 사가랴가 요한을 지켜봤다면 뭐라 했을까? 제사장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제사장이 하지 말아야 할 욕을 해대며, 성전을 떠나 광야에서 외치는 아들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아들을 잘못 가르쳤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가브리엘이 축복하며 말했던 예언이 이렇게 이루어졌다고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아들이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요한은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를 요구하지 않았다. 요한이 말한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성전과 전혀 관련이 없었다. “옷 두 벌 있는 자는 나눠주라, 세리는 세금을 똑바로 받아라, 군인은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말아라(3:11~14).” 일상에서 이웃에게 잘해라, 맡은 일을 정직하게 하라는 내용이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이었다. 요한에게 성전은 어떤 곳이었을까? 아버지 사가랴는 성전에서 제사장으로 일했는데 아들 요한은 왜 성전을 멀리 떠났을까?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이웃에게 잘했을 것이다. 좋은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요한이 사가랴처럼 성전 테두리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면 되지 않았을까? 성전에서 섬기며 이웃을 사랑할 수도 있었다. 사가랴는 사람들이 성전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했다. 성전을 떠나 하나님을 만나고 섬기는 건 상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요한은 왜 성전에서 시작한 자신의 삶을 광야로 가져갔을까? 성전에 문제가 있다면 성전 개혁을 외쳐도 됐을 텐데 왜 성전을 부정하는 듯 광야에서 사역을 시작할까?

 

성전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성전이란?

유산 자체만으로도 후배는 아프고 힘들었다. 그런데 교회에 가면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이 더 아프게 했다. 도와주려고 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도움과 위로가 상처를 쑤셔댔다. 예수님께서 내쫓은 돈 바꾸는 사람들도(21:12~13) 성전 예배에 꼭 필요했다. 로마 황제의 초상이 새겨진 동전을 성전에서 쓰면 십계명 제1계명을 범하게 되었다. 모세가 받은 계명에는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20:4) 말씀이 있었다. 그러므로 데나리온을 바치면 안 된다. 세겔로 바꾸어야 한다.

당시 유대인들은 일상에서 쓰는 돈을 가져와서 성전에서 쓰는 돈으로 바꾸었다. 돈을 바꾸려면 환전상이 필요했다. 그들이 환율을 마음대로 바꾸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 불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환전상들은 환율을 조정해서 폭리를 취했다. 사람들은 불합리한 환율을 감당하지 못했다. 별일 없이 사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는 말이 아프고 힘든 사람에겐 감당하기 어려운 상처가 된다. 후배가 그랬다. 교회 일 열심히 하면 잘 될 거라는 말이 누구에겐 덕담이지만, 누구에겐 상처가 된다.

레위기 규정(5:1~13)에 따르면 속죄 제물로 양이나 염소를 바쳐야 한다. 양과 염소를 살 형편이 안 되면 비둘기를 바쳐도 된다. 당시 비둘기가 얼마일까? 환전상의 손을 거치면 비둘기가 9~10만원이 되었다. 성전 밖에서 파는 비둘기보다 몇 배나 비쌌다. 속죄제를 드리려면 10만원이 있어야 하는데 가난한 과부에겐 두 렙돈밖에 없었다. 과부가 가진 모든 것, 생활비 전부가 겨우 두 렙돈이었다. 천원, 이천 원밖에 안 되는 돈으로는 속죄제를 드릴 제물을 사지 못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12:43~44).”

정성껏 헌금하라는 말이 아니다. 생활비 전부를 털어도 속죄 제물로 드릴 비둘기 한 마리도 구하지 못하는 가난한 과부의 처지를 보라는 말이다. 가난한 과부가 속죄 제물을 바치지 못하는 성전 현실을 보라는 말씀이었다. 과부는 성전이 불편했을 것이다. 광야에서 회개하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으면서 기뻐했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백성이 교회, 예배, 봉사, 헌신, 성가대, 직분이 없는 곳에서 마음이 편하다면 그들 곁에 있는 성전은 어떤 곳일까?

 

광야에 사람이 모여든다.

성전 구조에서는 들리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고아와 과부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성전에 가기 어려웠다. 성전에 가려면 제물이 있어야 했다. 예물이라도 가져가야 했다. 렙돈으로는 어림없다. 사가랴도 고아와 과부를 돌보았을 것이다. 성경에서 의로운 사람이라고 했으니 도와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전 체제에서는 한계가 있었다. 성전에서 제사하고 옷 두 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도 두 렙돈을 바치는 과부가 계속 생겼다. 성전에 제물을 바칠 여유가 있는 사람도 성전 체제의 한계에 갇혔다.

세리와 군인은 성전에 가지 못했을 것이다. 로마에 충성하는 변절자들이 성전에 나타나면 거룩을 중요하게 여기는 유대인들이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성전은 자격을 갖춘 사람이 가는 곳이었다. 세리는 안 된다. 군인도 안 된다. 가난한 과부는 제물이 없으니 제사하지 못한다. 이 사람도, 저 사람도 안 된다. 성전에서는 정해진 절차와 형식에 따라야 했다. 절차와 형식을 따르기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아야 했다. 우리 교회는 어떨까?

이제 성전에서 하는 일이 교회에서 하는 일로 바뀌었다. 교회도 자격을 갖춘 사람이 가는 곳인가? 정해진 절차와 형식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인가? 그런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을 것이다. 학교는 어떨까? 학교는 자격을 갖춘 사람이 가는 곳이다. 정해진 형식과 절차가 있다. 학교가 해야 할 공식적인 일을 먼저 해야 한다. 초등학교는 학생이 190일 이상 공부하도록 교육 과정을 짜야 한다. 1000시간 내외로 정해진 시간을 수업해야 한다. 각 과목마다 정해진 시간을 이수해야 한다. 엄격한 체계가 있다.

그러나 학교에서 정해진 날짜, 수업 시간 준수를 강조하면 떠나는 아이가 생긴다. 수업하는 190일 중 100일 넘게 지각한 아이가 있다. 초등학교 3학년인데 말이다. 아이에게 지각하지 말라는 말이 필요할까? 받아쓰기에서 하나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아이가 있었다. 수십 번 연속으로 0점을 받았다. 부모가 싸우면서 이혼한다는 말을 듣고 학교에 온 아이에게 규칙과 체계를 강조해야 할까? 광야 같은 삶을 사는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에게는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6살 때 집에 불이 났다. 그때 집에서 자고 있었는데 삼촌께서 날 구하셨다. 삼촌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도 있지 못했을 것이다. 7살에는 생각이 나지 않고 8살에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너무 슬펐다. 할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잘 챙겨주시고 유치원에 갈 때 먹을 것을 사주셨다. 그런데 이제는 그러지 못해서 너무 슬프다. 9살 때는 내가 교통사고를 당했고 ~ 12살 때는 할머니께서 돌아가셨고 13살에는 학교 문제가 어려워 기분이 나쁘다.”

사랑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빠는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 엄마는 조현병에 걸렸다. 이 아이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광야에서 만난 아이들

기대를 한몸에 입고 태어난 요한의 이야기는 어떻게 이어질까? 로마에 대항하여 제 2의 마카비가 될까? 불병거와 마차를 타고 하늘로 올라갈까? 아니다. 요한은 광야에서 외쳤다.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3:5~6).”

산은 높고 골짜기는 낮다. 골짜기가 메워지고 산이 낮아지면 높이가 같아진다. 그럼 길이 곧아진다. 내가 사는 강원도 산길은 구불구불하다. 터널과 다리를 놓지 않으면 평평하게 길을 만들지 못한다. 땅이 평평해져야 길이 곧아진다. 산이 높을수록, 길이 험할수록 길이 구불구불하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에는 구불구불한 길이 있다. 권력자와 약자도 곧바로 만나지 못한다. 한참 돌고 돌아야 한다. 산이 낮아지고 골짜기가 높아져야 둘이 만난다. 부자와 빈자가 같이 평탄한 길을 걸으면, 그러면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본다.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특히 교회에서는 성공한 이야기, 믿음으로 승리한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우리 삶이 그런 이야기로 채워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강원도 시골에서 부모 없는 아이를 많이 만났다. 부모 노릇을 하는 사람이 없는 집에서 끙끙대는 아이도 만났다. 가난한 아이, 아픈 아이, 선생인 나보다 먼저 죽어간 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들 이야기가 내 삶에서 메아리를 울린다. 즐거운 일도 많았지만, 글을 쓸 때는 슬프고 아픈 이야기가 들린다. 골짜기가 메워지고 산이 낮아지면 좋겠다. 아이들도, 우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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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면서부터 교인, 신자, 성도로 살았다. 교회는 놀이터였고 추억의 공간이었다. 내가 잘 아는 사람들, 나를 아끼는 사람들,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였다. 학교보다 교회가 더 좋았다. 어린 시절의 추억은 대부분 교회가 배경이다. 나는 교회에서 먹고 놀고 자랐다. 교회는 늘 좋고, 목사는 늘 옳고, 나는 계속 교회 품에서 지낼 줄 알았다.

대학생일 때 중고등부 교사를 했다. 그때 교회 내부 문제로 청년부 회장이 목사에게 대들었다. 목사가 청년부 회장을 고소했다. 교회가 둘로 갈라졌다. 돈 문제가 얽히고 비난과 협박이 오가는 모습을 보며 환상이 깨졌다. 그즈음 폴 스티븐스가 쓴 책을 읽었다. 참으로 해방된 평신도, 평신도가 사라진 교회, 21세기를 위한 평신도 신학을 읽고 목사를 의지하지 않는 신앙을 생각했다.

성경 말씀을 붙들고 씨름하며 묵상했다. 20년 동안 중고등부 교사로 지내며 말씀을 나누었다. 내가 고민하며 끙끙댔던 말씀, 몇 시간 지내는 주일날 교회가 아니라 아이들과 지내며 적용하려고 했던 말씀이었다. 학생들과 말씀을 나누는 시간이 좋았다. 그럴수록 목사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예배가 예배로 다가오지 않았다.

5년 전에 제도 교회를 떠났다. 평신도 공부 모임에 참여했다. 같이 책을 읽고 신자가 누구인지, 목회자 없이 교회를 이룰 수 없는 건지, 평신도 교회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함께 나누었다. 송인수 선생님은 책을 꼼꼼하게 읽고 평신도 모임에 온 마음을 쏟았다. 치열하게 사는 분인지라 평신도 교회에 대한 고민도 치열하게 다루었다.

송인수 선생님이 교회와 신자에 관해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 평신도 교회가 온다가 나왔다. 폴 스티븐스 이후에 평신도 신학을 다룬 책을 다시 만났다. 특히 3(부모가 아이 앞에서 성경을 들어야 한다)가 가장 좋았다. 선생님은 교사였다. 입시와 학업 성적 때문에 고민하는 학생들을 위해 학교를 떠났으나 선생님 마음에는 늘 아이(학생)가 있다. 이 책에서도 아이를 교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자라는 모습을 소개한다.

한국 교회가 욕을 많이 먹지만,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기존 교회와는 다른 교회도 생겨나기를 기대한다. 작은 모임들이 교회됨을 기뻐하며 각 가정마다 교회로 살아가는 때가 올 것이다. 이 책이 그런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 교회를 이루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방향을 보여주며, 선생이 되리라 생각한다.

한 달에 한 번, 책뜰안애 서재에서 독서 모임을 합니다.
며칠 전 토요일에 40대 남자(교사 아님, 소달초 학부모)가 말했어요.
“제가 선생님 책을 다 읽었어요.
독서토론 질문 만드는 법을 샅샅이 살펴서
선생님이 어떤 걸 질문할지 알 것 같아요. ~
선생님 가르침을 모아놓으면 딱 이렇게 돼요.”
하며 딸을 가리킨다. (딸은 고2 때부터 모임에 참여했다.)
딸이 쓴 글 읽으려고 독서 모임에 나오는 분위기도 좀 있습니다.

제 비법을 알려고 책벌레가 쓴 책을 다 읽지 않아도 됩니다.
이 책을 읽으면 됩니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고 책으로 기른 과정을 모았습니다.
“내가 너희를 어떻게 가르쳤는지 써봐라!”
해서 받은 글을 읽다가 반해버렸습니다.
첫째는 첫째다운 글을 썼고, 둘째는 둘째다운 글을 썼습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네 글을 써라!"


출판사와 편집자가 책 내용에 손을 대지 않아서
저도 표지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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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으로 현장학습 가는 버스에서 엄마와 떨어져서 사는 세 아이와 번갈아 이야기했다. 민감한 내용이라 세 아이를 A, B, C로 소개한다.
A 옆에 앉았다. 늘 같이 앉는 친구가 의아해한다.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망설여졌다. 현장학습 가서 좋은지, 과자 사왔는지 하는 가벼운 이야기부터 시작해도 되지만, 결국 엄마 없이 사는 게 어떤지 물어야 한다면 대놓고 시작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연락해?”

A는 이혼한 뒤에 엄마를 한 번도 못 봤다. 아예 연락이 끊어졌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멀어진 건 아빠인데 왜 자식에게도 연락을 끊었을까 생각하는데 의외의 대답이다.
. 카톡 해요.”

A는 엄마와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깜짝 놀랐다. 고마웠다. 자주 하는 건 아니지만, 소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엄마와 메시지 주고받는 걸 아빠도 안다고 한다. 엄마 보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사진으로 본다고 한다. 아이 모습에서 그늘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성격이 밝아서 그렇게 보이기도 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사랑받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아빠가 잘 길러서인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엄마가 아이를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가 엄마를 더 생각할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아이를 위해 엄마가 만나러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엄마와 아예 연락하지 않으면 이런 어쩌면들을 혼자 생각하며 슬픔에 빠져들 시간이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엄마와 연락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궁금할 때 물어볼 수 있으니까. 다행이다.

 

B는 엄마가 외국에 산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있는 나라로 돌아갔다. 두 분이 하시는 일이 많아서 엄마가 도와주어야 한다. 아이를 보러 오지 못하는 게 미안해서 엄마가 이렇게 말한 것 같기도 하다. B는 엄마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얼마 전부터 라인이라는 앱으로 엄마와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엄마가 사진을 보내줘서 엄마 얼굴을 본다고 했다. 엄마가 한국말을 잘해서 메시지를 자주 한다.
엄마 보고 싶지 않아?”

메시지를 자주 주고받기 때문에 괜찮다고 한다. 엄마가 바빠서 자기를 보러 오지 않는 걸 이해한다.
그럼 어떻게 해? 엄마를 언제 볼 수 있을까?”
대학생 되면 엄마 만나러 갈 거예요.”
그래. 대학생 되면 엄마 만나러 가야지. 만날 수 있을 거야.”

아이 얼굴은 슬퍼 보였지만, 마음에는 엄마를 만날 날을 기대하는 희망이 있었다. 아이와 엄마 이야기를 하기 잘했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아이 핸드폰에 있고, 핸드폰을 통해 아이 마음에도 있으니까.

 

C는 엄마를 본 적이 없다. 엄마 이름도 모른다. 엄마가 국내에 있었는데 C는 엄마 나라로 가버린 줄 알았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 소송이 이루어져서 아빠 가족이 엄마를 싫어했다. 아예 잊기를 바란 것 같다. 그래도 아이는 엄마를 계속 생각했다. 1학년 <가족>을 배울 때 교실에서 엄마를 불렀다. 겉으로는 밝아 보였지만, 사실 많이 힘들어했다. 1학년 때 하루는 갑자기 아팠다. 아이 뜻과 상관없이 전학을 가야 했다. 그 소식을 듣고 열이 나서 늘어졌다. 선생님이 아이를 돌보는 아빠 가족에게 엄마 이름이라도 알려줘야 하지 않느냐고 했지만 듣지 않았다.

그 이야기가 아빠 가족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엄마 만나러 갔어요.”
그래? 엄마가 우리나라에 계셔?”
, 00(경기도)에서 일해요.”

C는 엄마를 몇 번 만났다. 아빠가 3시간 운전해서 엄마가 사는 곳에 아이를 데려갔다. 같이 밥 먹고, 엄마가 C를 안고 침대에서 잔다. 아빠는 침대 아래에서 잔다. 아침을 같이 먹고 다시 3시간 차를 타고 돌아온다. 엄마가 아빠에게 속았다고 생각하고 헤어지자고 했는데 왜 아빠를 방에 다시 들였을까? 아이 때문이겠지.

C가 이런 상황을 이해하는지는 모르겠다. 아빠와 엄마가 왜 떨어져서 사는지 이해하지 못하겠지. 그래도 받아들이는 것 같다. 지난 주말(629)에는 엄마가 친구들과 삼척에 왔다. 호텔에 방을 잡고 아이를 불렀다. 맛있는 걸 사주고 같이 지냈다. 그 이야기를 써서 내게 보여주었다.

엄마에 관해 묻지 않았다면 엄마가 외국에 살아서 아이를 만나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설프게 동정하진 않았겠지만, 섣불리 판단했을 수도 있다. 아이는 사랑하는 엄마와 함께 지내지 못했다. 과거에 엄마는 아이를 떠났다. C는 아빠와 살지도 못했다. C를 돌보던 어른들이 계속 바뀌었다. 한 사람에게 오랫동안 사랑받는 경험을 하지 못했다. 엄마에 관해 묻지 않았다면, 아이가 엄마를 만나는 줄 몰랐다면 난 이걸 마음에 품고 난 너를 떠나지 않아하며 힘주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1년 가르치는 교사가 아이를 오랫동안 책임질 것처럼 다가갔을 수도 있다. 글쎄~ 이건 사랑이 아니라 선을 넘는 오버일 수도 있다.

점심시간이 되면 손을 씻으러 간다. A는 큰 목소리로 친구와 떠든다. B는 옆에 와서 슬며시 손을 잡는다.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였는데 이제는 먼저 손을 내민다. C는 친한 친구와 느릿느릿 움직인다. 갑자기 안기기도 한다. 다같이 식당에 앉아 밥을 먹는다. 사랑스럽다. 떠드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슬며시 손잡는 아이가 사랑스럽다. 친구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데 눈치 없이 늦게 와서 안기는 아이도 사랑스럽다. 세 아이가 행복하면 좋겠다.

오늘 아침에 교감 선생님이 아들과 대화를 들려줬다. 고등학생 아들이 밤에 학교에서 돌아오는데 어제는 교감 선생님이 태워줬다. 달빛 독서 캠프하느라 초과근무하다가 아들 하교 시간과 맞았다.

엄마, 오늘은 어떻게 데리러 왔어요?”
초과근무 했어.”
초과근무는 왜요?”
달빛 독서 캠프했거든.”
요즘도 독서캠프 하는 학교가 있어요?”
“책벌레 선생님이 캠프 하는데 도와준 거야.”
“책벌레 선생님은 아직도 그러고 계시는구나! ~~~”

2013년부터 독서캠프를 했다. 우리 학교만, 다른 학교와, 경기도 학교와, 학부모와 책을 읽고 놀았다. 2017년부터 새로운 독서캠프인 달빛 독서캠프를 시작했다. <달빛 독서캠프>는 자정까지 책을 읽고 도서관에서 자는 추억 만들기다. 지난 학교에서는 자정을 지나 2시까지 책을 읽었다. 교감 선생님 아들이 그때 독서캠프에 참석했다. 아들은 독서 활동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었다.

이번 학교 아이들은 책과 친하지 않다. 처음 달빛 독서캠프 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 지난 학교 아이들은 책을 정말 좋아했고, 이번 아이들은 책을 싫어했다. 두 학교 차이가 컸다. 캠프라고 하면 논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3년 동안 분위기를 조금씩 끌어올렸다. 올해 첫 독서캠프는 920분까지 계획했다.

4~6: 책 읽기 (아이들이 진지하게 열심히 읽었다.)
6~7: 저녁 식사 (김밥, 컵라면, 음료수)
7~820: 계속 책 읽기
820~8:40 : 간식 (아이스크림)
8:40~9:20 : 후기 쓰고 귀가

우리반은 12명이 참석했다. 도움반 친구 1, 가족체험학습을 신청한 친구 1명 빼고 모두 참석했다. 조부모와 사는 아이는 데려갈 사람이 없어서 내가 데려다주기로 했다.
넌 나릿골 후배야. 선생님도 나릿골에 살았거든. 그러니까 내가 데려다줄게.”

신청서를 내지 않은 한 아이는 달빛 독서캠프 하는 날(516, 어제) 몇 번이나 와쳤다.
달빛 독서캠프 하고 싶어요. 달빛 독서 하고 싶은데~”
달빛 독서캠프 하고 싶지? 내가 집에 데려다줄 테니 엄마한테 전화해라.”
했더니 입이 귀에 걸렸다.

책벌레 독서법

책벌레 독서법이 있다. 책을 어떻게 읽으면 잘 기억하는지, 많이 읽는지 그런 게 아니다. 아이를 책으로 꼬드기는 방법이다. 책벌레 독서법이라고 하면 뭔가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는 줄 안다. 아니다. 책을 읽을 기회를 주고 곁에서 같이 읽는 거다.
애들이 학교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10시까지 책만 읽는다고?”

한 학부모가 달빛 독서캠프에서 무얼 하는지 묻기에 그냥 책만 읽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구체적인 일정이 어떻게 돼요?”
책 읽다가 저녁 되면 밥 먹고, 다시 읽다가 간식 먹고, 다시 읽는 겁니다.”
하니 영 미덥잖게 생각한다. 아이들도 묻는다.
진짜 책만 읽어요?”
, 책만 읽어!”

안 해본 사람은 뭔가 더 있을 거야!’ 생각한다. 괜찮다. 직접 해보면 다르다. 달빛 독서캠프에 처음 참여한 아이 중에 이렇게 말하는 아이가 꼭 있다.
정말 책만 읽었네요. 선생님 말이 진짜였어요.”

가끔은 시스템을 거부해야 한다. ‘아이가 몇 시간 동안 책만 보는 건 불가능하다고?’ 이런 생각을 깨뜨려야 한다. 독서와 글쓰기는 1단계에서 2단계로, 다시 3단계로 실력이 늘지 않는다. 1단계에서 4단계로 건너뛴다. 5분만 지나도 몸을 비틀던 아이가 분위기에 취하면 한 시간씩 읽는다. ‘적당히 눈치 보면서 놀아도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참여한다고? 안 된다. 떠들지 말고 조용히 책을 읽어야 한다.

규칙을 설명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규칙은 간단하다. 그림책과 만화책을 읽어도 되지만 읽은 책 목록에 쓰지는 않는다. 그림책과 만화책 중에 좋은 책이 많지만, 오늘은 글밥이 많은 책을 읽는 날이다. 그림책과 만화책은 빨리 읽기 때문에 자꾸 책을 찾으러 다녀야 한다. 그러면 산만해진다. 책을 고르면 진득하게 읽어야 한다. 그래서 그림책과 만화책을 제외했다. 한 권만 읽어도 되니까 내용이 긴 책을 읽으면 정말 훌륭하다고 했다.

처음 5분이 중요하다. 무조건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때 엄한 말투를 좀 쓴다. 책 읽으라고, 떠들지 말라고, 돌아다니지 말라고, 계속 읽어보자고 한다. 조용히 읽기 시작한 아이가 있으면 칭찬한다. 훌륭하다고, 책벌레처럼 읽는다고 칭찬한다. 가장 중요한 비법은 이거다.
오늘 달빛 독서캠프는 920분까지다. 오늘 잘하면 다음 독서캠프는 학교에서 잔다.”
! 책 읽어야지.”

5분 정도 지나면 조용해진다. 10분이 지나면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릴 정도가 된다. 그럼 아이들이 어떤 책을 읽는지 살핀다.
우와, 좋은 책을 읽네. 이 책을 고르다니 대단한 걸~”
이렇게 긴 책을 읽으려고 도전하는 거야? 오늘 이 책 한 권만 읽어도 성공이야!”

가끔 떠들고 돌아다니는 아이도 있다. 그 아이 곁에 앉아 책을 읽으면 잠깐 중얼거리다가 책을 읽는다. 한 시간 지나면 시간을 알려준다.
~ 한 시간 동안 조용히 책만 읽었네. 잘하고 있어.”
선생님, 언제까지 읽어요?”
달빛 독서캠프잖아. 달이 보일 때까지 읽어야지.”

4시부터 6시까지 책 읽고 학교 야외 데크에서 저녁을 먹었다. 애들이 전부 하늘을 보며 소리를 질러댔다.
선생님, 달이에요. 저기 달이 떴어요.”

~ 낮달이 뜨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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