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에 공부를 어려워하는 아이가 있다. 3월에는 받아올림이 있는 덧셈, 받아내림이 있는 뺄셈을 힘들어했다. 아침 시간,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 계속 가르쳤다. 한 달 동안 되풀이해서 가르친 뒤에 겨우 덧셈과 뺄셈을 익혔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교육청에 추가 지도를 신청했다. 아이 상황을 알고 싶어 지난 담임교사에게 아이가 어떤지 물었다.

아이는 예쁘지요. 엄마가 아이를 가르치지 말라고 했어요. 아이 스트레스 받는다고. 숙제도 내지 말고, 잘 몰라도 그냥 두라고 했어요. 뭘 좀 하려고 하면 스트레스 받게 하지 말라고 하는 통에 아이가 모르는 게 많아요.”

그래? 그럼 안 될 텐데. 아이가 배워야 할 때 배워야지. 나중에 더 스트레스 받을 텐데.”

점심 먹을 때도 스트레스 받으니까 김치고 나물이고 하나도 먹이지 말라고 했어요.”

그래? 어쩐지. 김치를 못 먹더라. 나물도 안 먹고. 엄마가 안 먹였구나!”

맞아요. 엄마가 대놓고 항의하며 말해서 안 먹였지요.”

나는 급식 시간에 반찬을 골고루 먹으라고 한다. 안 먹겠다고 해도 먹인다. 골고루 먹어야 한다고, 조금이라도 먹으라고, 정말 먹기 힘들면 하나라도 먹으라고 한다. 김치 하나를 살살 꼬드겨 먹였다.

선생님, 김치 처음 먹었어요.”

정말? 평생 김치를 한 번도 안 먹었어?”

그렇다고 한다. 깍두기가 나왔다. 하나를 먹였다.

선생님, 깍두기 처음 먹었어요.”

시금치, 오이, 깻잎, 버섯, 피망이 나왔다.

선생님, 시금치 처음 먹어요. 오이 처음 먹어요. 깻잎 처음 먹어요. …… 처음 먹어요!”

아이는 점심 먹을 때마다 물었다.

선생님, 깍두기 먹어야 해요?”

이거 뭐예요?”

선생님, 안 먹으면 안 돼요?”

그냥 먹였다. 하나만 먹으라고 했다. 나물은 더 먹으라고 했다. 가끔 다 먹으라고 했다. 아이는 힘들어했다. 늦게까지 남아 눈치 보며 겨우 하나 먹었다.

하루, 이틀, 한 달, 한 학기가 지나자 조금 나아졌다. 그래도 깍두기를 마지막까지 미뤄두고, 먹을 때마다 머뭇거렸다.

반찬을 다 먹으라고 하진 않지만, 최소한 하나는 먹으라고 한다. 때로 더 먹인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만 이러는 게 아니다. 지난해에 3학년을 가르쳤다. 우리 학교는 학생이 적어 3,4학년이 같이 하는 활동이 있다. 그래서 4학년을 잘 안다. 행사할 때마다 만나서 친해졌다. 4학년도 우리 반처럼 편식이 심하다. 4학년 아이가 나물 반찬에 손도 대지 않고 버리려고 했다. 식판을 들고 내 옆을 지나갈 때 통곡했다.

엉엉~ 아이고, 엉엉! 00이가 나물을 하나도 안 먹고 다 남기네. 아이고, 이를 어쩐다. 00이가 나물을 안 먹다니~”

엄청 큰 소리로, 예고도 없이, 막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급식소에서 일하는 분들이 깜짝 놀라서 쳐다봤다. 식사하던 아이들과 교사들도 무슨 일인가 하고 쳐다봤다. 그러건 말건

어떻게 나물을 하나도 안 먹냐? 건강하게 자라라고 영양 생각하며 만들어줬는데 하나도 안 먹고 다 남기다니~ 어떻게 00이가 그럴 수 있냐?”

하고 소리쳤다. 그랬더니 식판을 들고 자리로 돌아가서 나물을 먹었다. 놀란 아이들에게 눈을 찡긋하며 씩 웃었다. 밥을 다 먹고 나가면서 급식소 직원들에게 나물 먹이려고 일부러 그랬다고, 다음에 또 그럴 거라고 했다.

선생님, 저희야 고맙죠. 건강 생각해서 만들었는데 먹기만 하면 좋죠!”

했다. 아이들과 친해서 이렇게 했다.

어린이회장이 버섯을 남기네. 아이고 슬퍼서 어떡하냐?”

삼척시 육상대표 선수가 피망을 남기다니~ 무려 삼척시 대표선수인데~”

하며 너스레를 떤다. 그러면 아이들이 김치와 나물을 먹는다. 크면 자연스럽게 먹을 수도 있다. 그래도 어릴 때 야채를 먹고 자라기를 바랐다. 받아줄 만한 아이에게만 이렇게 한다. 친하지 않은 아이, 소심한 아이에겐 이러지 않는다. 반찬 하나 먹이자고 상처를 주면 안 되니까.

2학기 학부모 상담을 했다. 아이 스트레스 받게 하지 말라고 했던 엄마와 통화했다. 반찬 얘기를 꺼낸다.

우리 00이가 집에 와서 김치 먹은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올 게 왔구나!’ 생각했다. 살짝 걱정하며 어떻게 말할까 고민하는데

“00이가 처음 깍두기 먹었다고 했어요. 오이도 처음 먹었다고 자랑했어요. 나물도 먹어보니 괜찮다고 해요.”

그래요? 먹기 힘들어했는데.”

먹기 힘들지만, 그래도 먹었다고 집에 와서 자랑해요.”

그래요? 제가 실실 웃기며 꼬드깁니다. 하나라도 먹으라고 강요하기도 합니다. 억지로 먹일 때도 있어요. 어떻게 해서든 먹이려고 합니다.”

“00이가 김치와 오이 먹어서 깜짝 놀랐어요. 계속 먹으라고 해주세요. 자기도 깍두기와 오이 먹을 수 있다고 뿌듯해했어요.”

내가 놀랐다. 억지로 먹는 줄 알았는데 집에 가서 자랑하다니 말이다. 엄마는 또 웬일이래?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우리 학교는 2학년과 3학년이 시끄럽다. 말 많고 활발하고 들썩들썩한다. 며칠 전에 급식 먹다가 갑자기 장난기가 끓어올랐다.

얘들아, 오늘은 2학년과 3학년 반찬 먹기 시합이다. 지면 청소다. 3학년이 지면 2학년 청소하고, 2학년이 지면 3학년 청소하기야!”

이번 작전은 완전 성공이다. 추임새 몇 번으로 반찬이 사라졌다.

우와, 3학년은 세 명이나 다 먹었네!”

“2학년이 역전하나요. 00이가 이렇게나 잘 먹었어?”

“00, 제발 먹지 마. 김치 맵잖아. 남겨도 돼. 나물은 안 먹을 거지. 제발~”

이러면 애들이 더 먹는다. 2학년 선생님도 재미가 붙었다.

우리 2학년은 벌써 다섯 명이나 다 먹었다. 00이도 다 먹을 거야. 우리가 이겨!”

올해 처음으로 우리 반 14명이 남김없이 다 먹었다. 2학년은 한 명 빼고 12명이 다 먹었다. 애들이 다음에 또 하자고 한다. 글쎄~ 우리 반한테는 좋은데 2학년 때문에 고민이다. 2학년이 반찬 남겨서 지기 때문일까? 아니다. 반찬 다 먹기 시합 끝나고 2학년 애들이 선생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선생님, 우리가 졌으니까 3학년 청소하러 가요. 3학년 청소하러 가고 싶어요.”

또 시합하면 2학년 아이들이 일부러 지겠다고 하려나? ‘다음이 되면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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