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업 시간에 영상 매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아이스크림, 인디스쿨은 전혀 쓰지 않는다. 내 경험, 내가 아이들을 만난 시간, 아이들이 남긴 글, 내가 읽은 책과 고민하면서 얻은 통찰로 가르친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관찰하면서 생긴 안목, 책을 읽고 토론하며 생긴 인간에 대한 이해가 내 수업을 떠받친다.

수업하면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많이 한다. 묻고 대답을 듣고, 다시 묻고 또 듣는다. 내 수업을 본 선생님들이 스토리 텔링수업이라고 한다. 나는 수다 떨기 수업이라고 한다. 아이들과 계속 이야기하면서 가르친다. 아이들은 듣고 말하며 배운다.

도덕 시간에 공부하다가 엄마, 아빠 이야기로 흘러갔다.

얘들아, 정답이 없는 유치한 질문 하나 해볼게. 꼭 대답해야 하는 건 아니야. 정말 유치한 질문이거든. 너희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와글와글 시끌벅적~~~”

손 들어 볼까? 꼭 한 번만 손 드는 건 아니야. 엄마가 좋은 사람?”

아이들 대부분 손을 든다.

아빠가 좋은 사람?”

대부분 손을 든다.

그렇구나. 엄마,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좋지! 그럼 반대로 생각해볼까? 아빠가 싫은 사람?”

한두 명이 손을 든다. 아빠가 너무 일만 해서 싫다고 한다. 내가 지켜본 아이는 손을 들지 않았다. 3월 초에 아이가 엄마와 저녁 먹으러 갔던 일을 써왔다. 댓글로 그때 아빠는 무얼 하셨어?” 하고 물었다. 얼마 뒤에 학부모 상담 시간에 엄마가 학교에 오셨다. 9개월째 아빠와 별거 중이라 하시며 그 댓글을 말씀하셨다. 실수라고 말씀드렸던 적이 있어서 지켜봤는데 아빠가 싫다고 하지 않았다. 어린이날에는 아빠가 선물을 사줬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엄마가 싫은 사람을 물었다. 우리 반에는 엄마 없는 아이가 셋 있다. 한 아이는 이혼한 사실을 아빠가 말하지 않았다. 엄마가 일본에 갔다고 말했고 아이는 그대로 믿었다. 아빠 말로는 엄마가 한국에 사는 것 같았다. 엄마가 베트남으로 돌아간 사실을 아는 아이도 있다. 이 아이는 주중에는 고모가, 주말에는 아빠와 할머니가 돌본다. 또 한 아이는 4~5살 때 부모가 이혼했다.

엄마가 싫은 사람?”

몇 명이 손을 드는데 잔소리를 해서 싫다고 한다. 일본 엄마, 베트남 엄마가 싫다고 하지는 않았다. 둘 다 마음을 감출 정도로 자라진 않았는데 엄마가 싫다고 하지 않아서 다행으로 생각했다.

선생님, 우리 엄마는 일본에 갔어요.”

우리 엄마는 베트남에 갔어요.”

두 아이는 구김살 없는 해맑은 표정으로 엄마가 없다고 말한다. 어버이날 편지를 쓸 때도 밝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고모한테 쓸게요.”

하며 엄마 대신 자기를 길러준 고모에게 고맙다고 했다.

엄마가 일본에 가버렸다고 말해도 친구들은 반응하지 않는다.

엄마가 과자 사줬어.” 또는 어제 자장면 먹었다.”처럼 듣는다. 엄마가 없어서 고모가 엄마 대신 학교 행사에 오고, 어버이날 고모에게 편지하고, 부모님 이야기 대신 고모 이야기를 해도 똑같다. 아이들은 신경쓰지 않는다. 그냥 그렇구나!’ 한다.

 

2018년에 면 지역에서 4학년 8명을 가르쳤다. 세 아이 엄마가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온 캄보디아와 베트남 분이었다. 2020년에는 8명 중 4명 엄마가 네팔과 베트남에서 왔다. 2022년에 6학년 8명을 가르쳤는데 4명이 베트남에 외가를 두었다. 강원도 시골에는 다른 나라에서 온 엄마가 많다. 그런데 아무도 놀리지 않는다. 신경도 쓰지 않는다.

선생님, 누나 둘이 집에서 베트남 말로 너무 시끄럽게 떠들어요. 결혼식이 있어서 누나가 따라가는데 행운이에요. 행운!”

해도 자연스럽게 듣는다. 엄마가 베트남에서 두 딸을 데리고 강원도 시골에 와서 나이 든 아빠와 재혼하고 자기를 낳았는데도 괜찮게 생각한다. 시골 학교는 다문화라고, 엄마나 아빠가 없다고, 고모가 기른다고, 아빠가 할아버지처럼 나이가 많다고 놀리지 않는다. 옛날 드라마에 나오는 집에 살아도, 냄새가 나도, 자폐 친구가 옷을 벗어도 비난하거나 놀리지 않는다. 더 친한 친구, 덜 친한 친구는 있어도 나와 다르다고왕따시키는 아이는 없다.

산과 들, 강과 새를 보고 살면서도 편견을 가진 사람이 있다. 공부를 많이 하고, 돈이 많다고 편견이 없는 것도 아니다. 엄마가 한국말을 제대로 못 하고, 엄마가 없어서 고모나 아빠가 아이를 기르고, 공부를 못하는데 아무도 공격하거나 무시하지 않는 까닭이 뭘까? 그건 시골 학교의 특별한 매력이다. 교사가 아이를 알고 정성껏 가르친다. 마을 사람들이 아이를 알고 이름을 부른다. 아이들은 6년 내내 같은 반 친구로 지낸다. 때로 다투고 싸우고 울기도 하지만 사람의 처지를 공격하진 않는다. 그리 많지 않은 사람이 서로 어우러져 함께 살아야 한다는 걸 자연스레 아는 것 같다.

'나누고 싶은 글 > 아이들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학년도를 마치며  (0) 2025.01.05
급식 반찬 먹이기 작전  (0) 2024.10.09
우는 아이  (4) 2024.10.09
학부모 상담  (1) 2024.09.05
자전거 태워줄게.  (0) 2024.06.2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