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지내면 웃을 일이 많아집니다. 제가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았다면 다른 얼굴을 했을 거예요. 아이들을 보내고 나면 웃을 일이 확 줄어듭니다. 학교에서 저는 더 밝고 활기찬 표정을 짓습니다. 힘들고 지칠 때도 많지만, 아이들이 있어서 많이 웃습니다. 아이들과 1주일만 지내보면 아실 거예요.

세상이 이렇게 밝은 것은, 즐거운 노래로 가득한 것은
집집마다 어린 해가 자라고 있어서다. 그해가 노래이기 때문이다

<에피소드 1>

점심 먹으려고 아이들 데리고 손 씻으러 가는데 아이가 말을 걸어요.

"선생님, 1학년 애들이 선생님을 뭐라 하는지 알아요?”
뭐라 할까? 책벌레 선생님? 할아버지 선생님?”
아니오, <걸레 선생님>이라고 해요.”
뭐라고? 벌레 선생님?”
아니요, 걸레 선생님이요!”
걸레 선생님? 내가 왜 걸레 선생님이야?"
"책벌레 선생님을 책걸레 선생님이라고 해요."

"~ 벌레가 걸레로 들렸구나!"
"책벌레~" 하면 "책걸레~" 라고 해요.

하하하~~~ 1학년에게 저는 걸레 선생님입니다. 지난해엔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아이도 있었는데 이젠 걸레가 되었습니다.

 

<에피소드 2>

3학년 국어 3단원, 높임 표현을 배웁니다.
  상대방을 높일 때는 습니다’, ‘를 넣거나 높임 표현 낱말(진지, 잡수세요)을 쓴다고 배워요. 내용이 쉬워서 아이들 표정이 밝네요. 시간도 좀 남았어요. 그래서 왕을 높이는 표현(용안, 용상)을 알려주려고 물었습니다.

왕은 높은 분이라서 특별히 더 높은 표현을 사용했어, 뭔지 알아?”
몰라요.”
“‘이라는 말을 많이 했대.”

평어에 습니다’, ‘를 덧붙이면 된다고 배워서일까요? ‘을 갖다 붙입니다.
일어나셨어용?”
임금님, 계세용?”
점심 드셨어용?”

이라는 말을 문장 끝에다 붙이면 높임 표현인가요? 애들이 사방에서 용용하는 거 들으며 웃었습니다.

용안, 용상을 알려주다가 우리반 용찬이가 눈에 들어왔어요.
임금님 얼굴이 용안, 임금님 의자는 용상, 그럼 임금님 반찬은?”
애들이 용찬이를 바라보며 말합니다.
용찬? ! 용찬아, 넌 임금님 반찬이야!”
용찬이가 아주 좋아하네요.

<에피소드 3>

점심시간에 <남자:여자>로 몰려다니며 다툽니다. 3학년은 남녀로 나눠 다툴 때죠. 교실에 들어오니 남자들이 어쩌고, 여자들이 저쩌고 하며 시끄러워요.

5~6교시에 미술을 해요. 사람, 캐릭터, 동물, 이야기 주인공 등을 생각하며 얼굴을 만들어요. 찰흙을 나눠줬더니 애들이 조용해졌어요. 말랑말랑한 흙을 만지며 즐거워하네요. 남자 한 아이만 계속 여자가 어쩌고 하며 씩씩댑니다. 그러더니 여자 귀신을 만들겠다며 얼굴은 없고 머리카락만 잔뜩 만듭니다.
“00, 너 지금 여자 생각하고 있지? 누군지 이름을 말하지 말고 대답해봐.”
. 여자 생각해요.”
그렇구나. 미술 시간에 그녀를 생각하는구나!”
맞아요, 여자 귀신 만들고 있어요.”
집에 가도 그 여자아이가 생각나겠지?”
그럴 거예요.”
꿈에도 그녀가 나오는 거 아니냐?”

.” 하는데 친구들이 킥킥거리며 웃어요.
얘들아, 그녀가 누군지 알아도 절대 말하지 마라. 비밀을 지켜줘야 한다.”
하고는 00이가 만드는 걸 지켜봤어요. 분이 풀리지 않아서 씩씩대네요. 그래서 00이에게 계속 물었어요.

지금도 그녀를 생각하는 거야?”
, 그 여자 생각해요.”
아까도 여자 생각하더니 계속 그녀를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지?”
, 계속 생각해요.”
가만히 있어도 그녀가 저절로 생각나는 거지?”

애들이 킥킥대고, 선생님이 계속 그녀를 생각하냐고 물으니까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나 봐요.
계속 그녀를 생각할 거야? 그래서 그녀를 만드는 거야?”
여자들이 먼저 우리한테 뭐라 하고 ~~~”
, 지금도 그녀를 생각하는구나!”

이걸 몇 번 더 했더니 만드는 대상을 바꾸네요. 그녀의 귀신 머리카락을 해파리 촉수로 바꾸었어요.
이제 그녀를 만들지 않는 거야?”
해파리 만들 거예요.”
진짜? 그녀는 잊어버리는 거야?”
, 해파리를 만들 거예요.”

이렇게 남자 대 여자 싸움은 끝이 나버렸어요. 물론 모든 아이에게 이렇게 하진 않아요. 00이는 밝고 명랑하거든요. 소심한 아이, 벌컥 성질내는 아이에겐 심각한 일로 장난치면 안 되니까요.

 

<에피소드 4>

국어 시간에 맨 앞에 앉은 아이가 꼼지락거리며 쪽지에 뭔가를 써요. 낙서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계속 쓰네요.
공부 시간에 무얼 자꾸 쓰는 거야? 이리 줘.”

손을 뒤로 빼며 쪽지를 감추네요.
공부도 안 하고, 이제 선생님 말도 안 듣는 거야? 쪽지 이리 줘!”

그래도 안 주려고 해요.
선생님이 이야기하면 , 선생님!’ 하는 거야. 쪽지 이리 줘!”

했더니 겨우 손을 내밉니다.
“00 오빠야, 나랑 사기자.~”

사귀자가 아니고 사기자네요. 우리반 남자아이들은 싸워야 할 적으로 보이지만, 4학년 오빠는 멋진 남자로 보이나 봐요. 이 사랑을 지켜줘야겠죠.

이거 비밀로 해줄게. 그래도 공부 시간에는 쪽지 쓰면 안 된다.”
~”

아이들과 지내는 순간순간이 새롭습니다. 애들 정말 예측불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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