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6 솔로몬이 말하였다. “당신이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주와 함께 성실과 공의(째다카)와 정직한 마음으로 행하였기 때문이다. 주께서 그를 위하여 이렇게 큰 은혜를 주셔서 지금처럼 저의 위에 앉을 아들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영어를 직역함)

솔로몬은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성실, 공의, 정직으로 행하였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했다. faithfulness(에흐메쓰)는 성경에 127회 쓰였다. 확고함, 충실함을 뜻한다. righteousness(쩨다카)157회 쓰였다. 의를 말한다. uprightness(강직함)는 한 번만 쓰였다. 여호와께서 다윗을 충실하고, 의롭고, 강직하다고 하셨다. 솔로몬은 다윗의 잘못을 몰랐을까? 아니면 의례로 하는 말일까?

솔로몬은 다윗이 올바로 행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은혜를 베풀었다고 했다. 사람이 올바로 행하면 여호와께서 은혜를 베푸신다. 그러나 그 은혜는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만 나타나지는 않는다. 올바로 행해도 나쁜 일이 생긴다. 올바로 행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을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전도서가 괜히 쓰이지 않았다.

물론 솔로몬은 자신에게 안정된 나라를 물려준 아버지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해야 했겠지. 나라를 새롭게 시작하면서 다윗의 삶을 아름답게 정리하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면 다윗처럼 올바로 행동해야 하는데 솔로몬은 그러지 않았다. 하나님께 제사하고 기도할 때는 괜찮았지만, 외교 관계에서는 이방 여인을 데려왔다. 군사력을 위해 말과 전차를 사들였고, 외국에 팔기도 했다.

솔로몬은 종교 행위(제사, 기도)는 하나님 백성처럼 했으나 왕의 역할은 이방인처럼 했다. 지금 신자들 같다. 교회에서는 하나님 백성이지만, 회사와 가정에서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지 않는다. 다윗은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으며 사는 동안 하나님을 찾고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나날이 위기였으니 순간순간 하나님을 찾았다. 솔로몬은 아도니야 외에는 위기가 없었다. 아도니야도 다윗이 겪은 문제다.

3월에 교사는 힘들다. 처음 만나는 아이들과 관계를 시작해야 한다. 달라진 분위기에 적응하면서 아이들이 다투고 갈등한다. 선생님 기준과 스타일에 맞추느라, 새로운 친구들과 관계를 시작하면서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상담해야 한다. 몇 시간 수업에 녹초가 된다. 자다가도 깨어 기도하게 된다. 평안한 날을 달라고 기도한다. 사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생각하는 이때가 복된 날 아닐까? 하나님 은혜로 평안한 나날을 보내는 건 축복이다. 하지만 절박하게 하나님을 찾는 마음도 복되지 않나?

물질적 풍요와 번영만이 하나님의 축복은 아니다. 축복은 하나님을 누리는 삶이다. 돈과 권력은 하나님을 누리는 삶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돈과 권력을 하나님의 축복이라 생각한다면 솔로몬의 길을 따르는 셈이다. 한국 교회가 솔로몬의 지혜와 부를 부러워하며 구했기 때문에 예배와 기도 따로, 가정과 직장에서의 모습 따로가 되었다.

나는 돈과 권력을 바라지 않는다.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평안하게 지내면 좋겠다. 교사로 30년 지내며 많이 닳았다는 생각이 커진다. 나를 소모하며 가르쳤다. 사람들을 떠나 나무를 돌보며 지내는 삶을 기대하는 게 하나님 뜻에서 멀어진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생각이 나를 높이는 죄악 아닐까? 다윗이 이루어놓은 것을 솔로몬처럼 누리려고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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