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 춘분입니다. 321일이 춘분 아니냐고요? 맞아요. 올해는 2월이 29일까지 있는 해라 1년이 366일입니다. 춘분이 하루 일찍 왔어요.

  아침에 창밖을 보니 헉~! 눈이 10cm는 왔네요. 눈이 그쳤다면 운전해서 출근하겠지만, 눈이 점점 더 많이 옵니다. 지금은 싸락눈이 쏟아져요. 함박눈은 살포시 내려서 슬며시 녹습니다. 겨울 함박눈은 많이 쌓이지만, 봄 함박눈은 그냥 녹아요. 싸락눈이 와다다다 떨어지면 바닥에 닿아도 녹지 않습니다. 싸락눈이 도로와 땅을 덮어버리면 이어서 함박눈이 내립니다. 눈으로 꽉꽉 다져서 급속도로 쌓입니다. 320일 아침이 이런 상황이었어요.

  등산화 신고 걸었습니다. 학교까지 3km, 40분쯤 걸립니다. 처음엔 차들이 저를 앞질러 갑니다. 2km쯤 가니 차들이 제 걸음과 비슷한 속도로 갑니다. 학교 앞 교차로에 오니 주차장입니다. 학교 앞이 살짝 오르막인데 차가 여기저기 미끄러지면서 오도 가도 못하네요. 아주 꽉꽉 막힙니다.

  학교 버스가 940분쯤 들어왔어요. 4명은 도로에서 한 시간 넘게 기다리다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열 명과 함께 책 읽고, 알파벳 대문자와 소문자 찾아내기 게임하고, 수학 덧셈과 뺄셈 문제를 풀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아이들과 운동장으로 나갔습니다. 남자아이들과 성을 쌓았습니다. 눈을 굴려 1m 정도 크기의 덩어리를 만들고, 덩어리 몇 개를 붙였어요. 성을 쌓으니 공격 본능이 솟구치나 봅니다. 싸울 대상을 찾아다닙니다.

  “이제 선생님이랑 말 안 할 거예요!”

여자아이가 삐쳤어요. 갑자기 무슨 일일까요?

  “? 왜 말 안 해?”
  “남자애들만 해주고, 우리 도와준다고 해놓고는~”
  “아하, 그렇구나! 이제 해주러 왔지. 그런데 진짜 말 안 할 거야?”
  “말 안 할 거예요.”
  “진짜?”
  “진짜예요.”
  “지금 나랑 말하고 있는데~”

그러자 입을 꾹 다뭅니다. 3학년 여자아이 삐침은 5분 가나요? 열심히 눈 미끄럼틀 만들어주니 재잘재잘 계속 이야기합니다.
  “, 타자. 1단계부터 3단계까지 있어. 1단계는 천천히, 2단계는 보통, 3단계는 빠른 거야. 손님 나와서 단계를 말하세요.”
  “저는 2단계요!”
  “, 손님! 2단계 갑니다.”

눈 미끄럼틀 꼭대기에 누운 아이 다리를 높이 들게 한 뒤에 양쪽 신발을 모두 잡고 아래로 확 당겼습니다.
  “우와~ 재미있다. 재미있어요. 이제 3단계 해주세요.”
  “3단계는 빨라. 위험할 수도 있어. 자 눕고, 다리를 들고, 준비, 출발!”
  “우와, 우와! 진짜 재미있어요.”

놀이터 미끄럼틀 길이의 1/3밖에 안 되는데도 이게 더 재미있습니다. 눈 미끄럼틀이니까요. 스무 번쯤 미끄럼틀 태워주니 팔이 아픕니다. 왼손으로 바꿨습니다. 왼손은 힘이 없어서 속도가 빠르지 않습니다. 다시 오른손으로 바꿔서 손님을 모십니다. 말 안 한다던 아이는 이미 제 편이 되었습니다. 그러고도 한동안 미끄럼틀에 손님을 모셨습니다. 남자아이들을 눈 산성 위에 올라가게 한 뒤에 뛰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에니메이션 캐릭터 포즈인데 저는 잘 모릅니다. 나루토 뭐라 했는데 기억이 안 납니다.)

학교에 오지 못한 네 아이도 즐겁게 지냈겠지요. 제 기억에 남은 눈 추억이 있어요. 군입대 신체검사를 받으러 병무청에 가기 3일 전부터 눈이 왔습니다. 병무청에 가기 전날까지 180cm나 내렸습니다. 신호등 위에 눈이 쌓여 신호등이 부러졌지요. 지붕에서 소리가 나면 자다가도 지붕에 올라가 눈을 쳤습니다. 주택, 스케이트장, 창고도 많이 무너졌습니다.

200534, 마읍분교에 부임하던 날 눈이 70cm 왔습니다. 산골짜기 한가운데 있는 분교여서 겨우 올라갔습니다. 차 한 대 다니지 않는 길을 뚫고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나왔습니다. 잠깐 입학식하고 아이들을 집에 데려다줬습니다. 2010, 모교에 근무할 때 160cm가 왔어요. 2016년 소달초등학교 졸업식하던 날 130cm 왔던 눈도 기억납니다. 소달초에 있을 때는 43일에도 눈이 왔지요. 날리는 정도가 아니라 운동장을 하얗게 덮었습니다.

눈이 오면 아이들이 신나지요. 다음날(321)도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놉니다. 2층에서 내려다보니 눈 밟은 자국이 많이 남았습니다. 운동장이 여기저기 파인 것 같아요.
  “선생님, 운동장이 바다 같아요.”
  “그래? 어떻게 바다처럼 보이지?”
  “그냥 바다 같잖아요.”
  “너희 눈에는 눈 덮인 운동장이 바다처럼 보이는구나!”

점심시간이 지나면서 눈이 많이 녹아 흙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점심 먹으려고 손 씻으러 가는데
  “선생님, 운동장이 갯벌이 됐어요!”
  “우와, 시네. 눈이 오면 운동장이 바다가 돼요. 눈이 오면 운동장이 갯벌이 돼요.~”

눈이 아이들 마음에서 시를 길어냅니다. 마읍분교 6학년 남자아이가 330일쯤 눈이 온 날에 시를 써왔습니다. 그 산골 마을이 눈에 선합니다.

 

봄눈 오는 날

6학년 배강길

아침에 일어나 눈을 떠보니

창밖으로 눈부신 햇빛이 내 얼굴을 비추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온 마을이 하얀옷으로 갈아입었다.

학교 가면서 나무를 보면 나무는

내가 보고 있는 게 부끄러운지 눈을 떨구어 버린다.

까마귀 한 마리가 눈에 젖어버린 자기 몸을

나무 꼭대기에서 파드득 떨고 있다.

까마귀는 나를 못 보았는지 이상한 짓까지 하며

자기 젖은 몸을 털고 있다.

이제야 나를 보았는지 바둥~바둥거리며 날아간다.

날아가다가 전깃줄에 앉아 젖은 몸을 다시 털고

저 산 너머로 날아간다.

갑작스러운 봄눈에 바쁜 아줌마는 열심히 일하고 있다.

인사를 해도 들은체 만체 양동이를 들고 가버린다.

아줌마 얼굴은 발갛~발갛게 얼어있다.

학교에 오니 나무들도 트리처럼 반짝거리고

창가에는 구슬비 같은 눈이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다.

반짝반짝 투명한 구슬 같다.

봄눈 오는 날엔 모두 변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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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뜰안애 찾아온 아이 중 넷이 여학생이다. 3, 4, 2, 3이다.
고등학생은 자매다. 엄마와 같이 들어왔다. 그런데 엄마가 자매를 직접 탈북학생 그룹홈에 맡겼다.

아이들을 보면 그놈생각이 나서 아이에게 해코지해요.”

엄마는 중국에서 강간당했고, 팔렸던 적도 있다고 한다두 자매 아빠는 엄마를 강간한 중국 남자다.
자매를 보면 그놈이 생각나서 자기도 모르게 해코지했다고 한다.
갑자기 달려들어 목을 조르기도 하는데 이러다가 큰일 낼 것 같아서 자매를 맡겼다.
말이 없고, 잘 먹지 않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자매에게 다가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초등학생인 두 아이는 활발하다서재를 둘러보다가 말을 건다.
저기 위에 있는 건 뭐예요?”
그건 문집 상패와 교보교육대상 상패야네가 물었으니까 너한테만 알려줄게.”
하며 귀에다 작은 목소리로 상금 액수를 알려줬다4학년이 ?” 하며 놀라는데 그걸 보고 모두 웃었다.

학교에서 와니니 읽었는데 1권과 6권을 못 읽었어요.”
그래? 여기 있는 책 중에 마음에 드는 거 골라봐. 줄게!”
푸른 사자 와니니1권을 골라 읽는다.

3학년은 여자답게? 나답게!를 골랐다.
중학생이 읽는 책을 골랐네. 어려울 텐데 다른 책 고르지?”
이거 읽을 거예요.”
마음대로 해. 읽다가 어려우면 다른 책으로 바꿔!”
이 책이 마음에 든다면서 책을 읽는다.

몇 분 뒤에 초 3학년이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며 말한다.
, 남친 있어요. 100일 축하도 했어요.”
진짜?”
그런데 이제 헤어질 거예요.”
?”
전학 간대요. 간다고 했다가 안 간다고 했다가 그래요.”
그럼 전학 안 갈 것 같은데?”
정말요? 안 간다 그러더니 또 간다고 했는데.”
너희 정말 사귀는구나! 사귀는 이야기 책도 있는데.”

4학년까지 관심을 기울인다.
꼴뚜기라는 책에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라는 이야기가 있어. 둘이 사귀며 10, 20일 그런 기념일을 챙기는 이야기야와니니 책과 여자답게 책 다 읽으면 나한테 연락해. 꼴뚜기작가님 싸인해서 책을 보내줄게.”
진짜요?”
그럼. 책 다 읽으면 꼭 연락해라.”

이렇게 아이들을 꼬드겼다.

아이들이 떠날 때 학교에서 외계인을 만나다를 읽은 남학생에게
다시 와라. 여기 풀 많다. 땀 좀 흘려야지!” 하니 좋아한다. 초등 두 아이에게
잘 가~ 책 꼭 읽어라!” 했다.


고등 자매에게는 웃으며 인사만 했다. 다음에 누가 오건 두 자매가 같이 와서 쉬고 가면 좋겠다.

사진) 『학교에서 외계인을 만나다』 읽어줄 때 초등 두 아이가 나왔다.
왼쪽 아이 앞에 『여자답게? 나답게!』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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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뜰안애 온 탈북 학생 중 가장 마음에 남는 아이는 방송에 몇 번 나왔다.
부모가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는 걸 알고 7살에 북한을 떠났다고 한다.
꽃제비로 살다가 5000km를 이동해서 9살에 <우리 집 공동체>에 왔다.

<우리 집>에 왔을 때 키가 98cm였다고 한다. (2학년 남자아이는 평균 128cm이다. 2019년 기준)

“와~! 집 좋다.”
책뜰안애 들어서면서부터 몇 번이나 집 좋다고 소리쳤다.
“여기에서 살면 서울대학교 가겠어요” 한다.

아이는 어릴 때 제대로 먹지 않아 심리적인 장애가 있다. 공부를 어려워한다. 공부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탈북해서 도망다니느라 몇 년 동안 공부하지 않았고, 모든 것이 다른 나라에서 적응하느라 공부하지 못했다.
“00이가 책 읽는 거 본 적이 없는데……” 선생님 말씀에
“저도 WHY 책은 읽었어요.” 하고 대답했다.
“책뜰안애에서 WHY 책은 책이 아니야.” 했더니 웃는다.
이 방, 저 방 다녀보더니 “여기 살고 싶다.”고 한다.

집 구경한 뒤에 아이들과 함께 둘러앉았다. 아이들을 위해 말을 해달라 하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랴!
강원도 시골 아이들이 쓴 글을 읽어주었더니 좋아한다.
『학교에서 외계인을 만나다』를 꺼내 몇 편 더 읽어줬다.
아이가 좋아하기에 책에 사인해서 선물로 줬다. 엄청 좋아한다.


책 선물 받고 좋아하는 걸 보고 함께 온 분들이 깜짝 놀랐다.
“게임이 아니고 책인데 00이가 좋아하다니 우와~!”

다음날 아침, 아이 머리맡에 『학교에서 외계인을 만나다』가 있다.
깨워도 안 일어난다. 다 일어났는데 혼자 계속 잔다.
“얘가 책 읽다가 늦게 자더니 안 일어나네~” 하시는데 한참 뒤에
“어제 127쪽까지 읽었어요.” 하며 일어난다. 함께 온 분들이 기적 일어난 것처럼 놀라워한다.

어쩌면 아이가 제대로 읽은 첫 책일 수도 있다.
『학교에서 외계인을 만나다』가 탈북 학생 코드에 맞아서 다행이다.
강원도 시골 아이들 글이 탈북 아이에게 무언가 말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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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뜰안애>에 귀한 손님들이 왔다. 북한을 떠난 아이 다섯 명.
꽃제비였던 학생도 있고 중국으로 팔려 간 북한 여성이 낳은 학생도 있다.
가슴 아픈 사연의 주인공들에게 무얼 해주어야 할까?
 
한 방송 관계자는 가끔 꽃제비였던 학생에게 명품을 사준다고 한다.
초등학생과 고등학생에게 명품이 도움이 될까?
좋은 호텔, 비싼 음식, 안타깝고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 별로다.
아이들의 고생을 떠받드는 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고생스런 과거에 아이를 붙들어두는 짓이라 생각한다.
 
<책뜰안애> 불 밝히고 학생들을 맞았다.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 우리 반 아이들 보듯 다정하게 인사했다.
집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학생들 마음이 열렸다.
서재에 둘러앉아 강원도 시골 아이들이 쓴 글을 읽어주었다.
책을 보여주고, 책을 소개하고, 책 이야기를 해주었다.
책이라곤 <WHY> 외엔 모르는 학생들을 살살 꼬드겼다.
아이들이 책을 만지고, 꺼내고, 읽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아이들을 책으로 꼬드기는 건 참 잘해!' 생각했다.
 
잠자리 마련해주고 잘 자라고 인사했다.
아침 8시~9시까지 일을 시켰다.
여학생은 고추 따기, 수확한 생각 뿌리 떼기, 단호박 수확하기.
남학생들은 괭이로 풀을 쳐내는 일을 시켰다.
불쌍하다고 공주왕자처럼 떠받드는 건 멍청한 짓이다.
같이 먹고, 이야기하고, 자고, 땀 흘릴 기회를 주는 게 훨씬 좋다.
북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책뜰안애에서 자면 방명록을 써야 해.” 했더니 한 줄씩 써줬다.
집이 좋다. - 고등 2학년, 꽃제비였던 학생
사랑이 많다. - 초등 4학년
농사하는 게 재미있다. - 초등 3학년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 고등 2학년
맛있는 공기, 맛있는 노동, 진짜 많은 책
– 20년 동안 탈북아동공동체를 섬기는 마석훈 님
(여고생 두 명이 쓴 글은 사진을 찍지 않았다.)
 
작가, 선교사, 목사, 교사, 친구 여럿이 방명록을 써주셨다.
그중엔 이름난 분도 있다. 멋지고 귀한 문장을 써주셨다.
그러나 그 어떤 글보다 아이들이 쓴 글이 마음에 든다.
내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하거니와,
이 아이들이 책뜰안애를 만든 내 마음을 가장 잘 아는 것 같다.
 
<책뜰안애>에서 살고 싶다고 하기에 또 오라고 했다.
‘다음에 오면 일도 시키고 글쓰기도 시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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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를 캤다. “우와, 진짜 크다.” 하며 연방 소리를 지른다이렇게 큰 고구마가 나올 줄 몰랐을 거다.

애들은 고구마 순을 넣고 열흘쯤 지나서 관심이 사라졌다.
고구마 뿌리 내리고 싹이 나올 때 다시 관심을 약간~
한 아이만 계속 고구마에 물을 줬다.
꾸준한 아이다. 공부도 잘하고, 뭐든 잘하려고 한다.

잘하는 아이가 급하면 어떻게 될까? 결과를 빨리 보려고 한다면?

어느날 왜 자기만 물을 주냐며 불만스럽게 말하기에 혼자 물을 줘서 화가 났구나!~” 이야기하다가
그건 좋아서 하는 일이어야 해. 즐겁게 해. 화가 나면 하지 마!” 했다.

아이는 계속 물을 줬고, 계속 화가 났다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샘을 내면서 열심히 했다.
선생님이 누구를 더 좋아해요.’ 하는 말을 했던 유일한 아이다.
당장 결과를 보고 싶었기에, 작은 일에 계속 마음이 흔들렸다.
마음이 흔들리면 세상을 흔들어서라도 안정을 찾으려 한다.

초등 3학년의 세상은 친구뿐이라 친구를 계속 흔들었다.
내가 좋아한다는 그 아이는 한쪽 귀가 들리지 않아 발달이 느렸고 그래서 내가 도와주어야 하는 아이다.

<대한민국 독서토론대회>에 참가하려고 방과후에 준비했다.
아이는 하는 게 많아서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다.
자기가 더 잘하는데~ 자기보다 부족한 친구들이 논술 연습하는 거 보며 샘이 났다.

엄마가 상담하러 왔다가 전학 얘기를 꺼낸다.
우리 학교는 전교생이 50명이라 학부모가 전학을 무기로 쓴다. 이거 안 해주면 전학 갈 겁니다.” 한다.
아이를 위해 전학 가야지요. 집 가까운 00학교 좋아요.” 했더니 엄마가 당황했다.
“00이는 친구 많은 곳에서 생활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전학 가세요!”

6월 초에 아이가 전학 갔다.
그리고 힘들다고, 학교로 다시 보내달라고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2학기가 되면서 소식이 점점 줄어드는데 우리 반 아이가 전국대회 상을 받았다.
시골 학교에서 <대한민국 독서토론/논술 대회> 상이라니~ 현수막을 붙였다소식을 듣고 동문회에서도 현수막을 붙였다.
그 아이와 부모도 현수막을 봤다. 자기보다 못한 아이가 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그리고 10월에 고구마를 캤다.
큰 고구마가 나오자 애들이 전학 간 친구 얘기를 한다.
“00이가 물 줘서 이렇게 큰 고구마가 나왔나 봐~” 한다.
“00이에게 고맙다고 사진 보내야지.” 한다.
기다렸으면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었을 텐데 너무 급해서 친구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지 못하고 전학을 가버렸다.
아이들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친구에게 보냈다. 고맙다고.
하지만 아이는 기쁘기보다는 씁쓸했을 것 같다. 고구마 캐는 자리에 없어서.

여름 더울 때 고구마 줄기들을 들썩들썩 해줬다난 선생이니까 왜 나만 해요?’ 생각하지 않았다.
이거 해줘야 고구마가 잘 큰다.’ 하는 생각만 했다.
가을 생각하며 봄에 고구마 심었고, 여름에 고구마 순을 들어주었다.

~게 보고 느긋하게 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3학년 남자
  오늘은 5교시 고구마 캐기를 했다. 다들 자기 자신이 심었던 고구마 앞에 서있었다. 선생님이 지나가시면서 삽으로 고구마를 캐기 쉽게 해주셨다. 그러자 우리는 장갑 낀 손으로 흙을 팠다. 흙을 열심히 파다 고구마가 보였다. 잡아당겼는데 너무 크다. 우리가 사먹는 고구마의 3배다. 고구마가 한 개만 있는 게 아니어서 더 캤다. 한 개 더 큰 게 나왔다. 처음에 캔 거만큼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가 사먹은 고구마의 2배 정도다. 나머지 고구마도 캤는데 양파가 나왔다. 양파 모양 고구마가 나왔다. 별의별 고구마가 다 있네. 다른 건 신기하지도 않고 크지도 않았다. 선생님께서 캔 고구마 중에 가장 큰 건 집에 가져가도 된다 하셨다. 고구마 중에서 큰 게 나와서 기분이 좋았다.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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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열 형제(수사)를 만났다. 떼제 공동체에서 30년 동안 지내며 섬긴 분이다.
 
 
떼제 공동체 역사와 정신을 들은 것도 좋았지만,
“사람 때문에 실망한 적이 있는지, 어떻게 이겨내는지?” 에 답해주시는 게 더 좋았다.

강의 끝나고 <책뜰안애>에 모셨다.

강영안 교수님이 한 달 전에 딴 와인을 드렸더니 와인을 따고 시간이 좀 지나지 않았느냐 물으셨다.
와인 시음, 프랑스에서 와인을 나누는 의미를 알려주셨다.
12시 다 될 때까지 공동체, 책, 사람, 우리나라를 이야기했다.

골뱅이, 케일, 고추, 부추로 아침을 차려드렸다.
식사 기도해달라고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떼제에서 부르는 찬양을 부르셨다.
찬양하고 밥 먹는 거 참 좋았다.

식사 끝나고 같이 청소했다. 난 설거지, 수사님은 청소기
고추도 따달라고 했더니 재미있다며 즐겁게 일하셨다. 가지까지 따고 나서 또 이야기를 나누었다.
떼제에서 했던 사역을 한국에서 하신다는 말씀, 번역비, 강사비 등으로 생활하신다는 말씀,
김대건 신부에 얽힌 이야기, 에릭 수사 이야기…… 아이들 글, 책, 슬픔, 교사들의 마음, 연대……

에릭 수사(1925~2007)가 만든 유리화를 보여주셨다. 둘 중 하나를 고르라 하셨다. 
아내와 딸에게 사진을 보내고 하나 고르라고 했는데 막내가 “그림은 왼쪽, 색채는 오른쪽” 이라고 답을 했다.
막내 말을 전했더니 두 작품 모두 책뜰안애에 걸어놓으라 하셨다.
(에릭 수사는 프랑스, 독일, 스위스, 벨기에, 이탈리아, 알제리, 미국, 캐나다 등지에
많은 그림과 유리화, 십자가와 조소 작품을 남겼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간직한 작품인데 둘 다 주셨다.

올해 우리 반 아이들과 학부모는 나를 힘들게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자꾸 마음이 어두워지고 힘들었다.
교사들이 힘들어서 ‘집단우울증’ 같은 증상을 보인다고 했더니 국회의사당 앞에서 집회하는 모습을 직접 보았다고 하셨다.집회 모습을 보면서 느낀 마음을 이야기하는데 마음이 힘들었다.

떼제 공동체의 정신을 책으로만 읽었는데
수사님과 이야기하며(주로 들으며) 위로를 받았다.

힘들고 아픈 교사들을 위해 영상으로 한 말씀 해달라고 했더니
당신이 그럴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사양하셨다.

그래서 더 좋았다.
함부로 말하지 않아서.
비록 아픈 사람을 돕는 일이라 할지라도.

 

1. 우리 반 보석이가 

우리 반 보석이가 국어 단원평가 85점을 받았다.
보석이는 3월 초에 떠듬떠듬 글을 읽었던 아이다. 지금은 꽤 읽는다.
쓰기는 안 된다. 띄어쓰기 없고, 받침도 많이 틀린다.
두루마기를 몰라 <두루마기를><두루마><기를>로 읽기도 하지만.

이 아이가 힌트 없이, 간섭받지 않고 스스로 읽고 받은 점수여서 놀랍다.
보석이는 교육청 학습클리닉 선생님과 2시간씩 공부한다지난주부터는 학습 심리-정서 지원을 받아 치료센터에 다닌다.
여러 가지 검사를 했는데 특수학급 대상이라고 판정이 났다.
그럴 만도 하다. 보석이는 가르치면 아는 듯하다가 하루 지나면 잊고주말이 지나면 많이 잊었다.
어느 날은 완벽하게 계산하다가, 다음 날은 엉뚱하게 했다.
자주 잊고, 맥락을 모르고, 또래보다 느리다. 알파벳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보석이가 특수학급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말도 잘하고, 읽기도 좀 한다다만 쓰기가 안 된다. 또한 읽기 집중력이 약하다.
10초쯤 읽다가 눈이 글씨를 떠난다.
무서운 아빠, 한없이 너그러운 엄마의 양육 태도 영향이 크다.

2. 85점을 받았다.

국어 85. 우리 반 1등이다. 깜짝 놀랐다. (아이에게 너무나 많은)글씨를 어떻게 다 읽고 문제를 풀었을까?
시험 전날, 주말 과제를 하지 않아 꾸중했다. 평소엔 그러면 안 된다고 부드럽게 말하는데 이번에는 많이 혼냈다.
쉬는 시간에 과제를 다 해내더니 시험도 잘 봤다.

우리 반 아이들이 다음 학년이 되면 국어를 잘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난 국어에 집중하지 않는다. 수업 준비도 잠깐 교과서를 보는 정도로 한다.
오히려 수학 시간에 집중한다주말마다 수학 시험지를 한 장씩 나눠준다. 단원평가도 꼬박꼬박 본다.
국어는 시험지를 풀지 않는다. 시험지 과제는 내준 적이 없다.
어제는 한 아이가 결석해서 진도를 나가지 않으려고 시험지를 줬다.
보석이는 어떻게 85점을 받았을까?

3. 왜 점수가 올랐을까?

우리나라 초등교사 대부분은 특정 사이트를 이용해서 가르친다그 사이트는 학습 내용을 절차에 따라 가르친다.
학습 목표를 제시하고, 학습 내용을 설명하고, 평가를 제공한다.
학습 내용은 동영상 같은 자료를 보여주고, 정리해준다. 클릭하며 약간의 설명만 덧붙이면 되므로 교사들이 애용한다.
내가 보기에는 다른 교과서가 더 좋은데도이 사이트 연계 교과서가 점유율 1등이다.
과학만 2등이다. 과학은 실험해야 하므로 온라인 사이트 의존률이 낮다.
우리나라 초등학생 90% 이상이 같은 방식으로 배운다.
많은 아이가 똑같은 방식으로 배운다면 앞으로 문제가 생길 거라 본다.

난 영어와 음악 시간에만 텔레비전을 켠다. 사회 시간에 관련 사진이나 영상을 조금 보여주기도 한다.
국어와 수학은 99% 이상, 사회도 90% 이상 대화하며 가르친다.
국어, 사회, 도덕 시간에는 계속 아이들과 말을 주고받는다.
묻고 답하고, 듣고 말하고,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수다 떨며 노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 수업을 본 분들이스토리텔링수업이라 하지만 글쎄좋게 보면 토론이고, 제대로 보면 그냥 수다 떨기 수업이다.

4. 수다 떨기 수업

그런데 이 수업이 효과가 좋다.
대부분 아이는 사이트 안내를 따라 정해진 걸 보고, 따라 쓴다. 학원에서는 같은 내용을 듣고 문제를 풀이한다.
배울 학()은 있지만 익힐 습()이 없는 공부다한 마디로 떠먹여주기 공부. 떠주는 걸 계속 삼키는 공부다.
수다 떨기 수업은 아이들이 말한다. 듣고 반응한다.
엉뚱한 수다에 빠져 정말 수다를 떨기도 한다이때마다 적절하게 끊고, 다시 주제로 돌아오게 안내한다.
이게 내 역할이다. 한 방향을 바라보고 수다를 떨게 하는 것!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형식과 체계는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 보고 듣고 느끼게 하려고 노력한다.
친구들 글을 많이 읽고, 계속 쓰도록 안내한다그래서 보석이가 85점을 받았다.
물론 암기 내용이 많은 단원은 60점으로 내려갈 수도 있다.
그렇다고 문제 풀이에 몰두하거나 닦달하진 않을 거다.
보석이는 국어 시간에 말하느라 바쁜 아이니까.
자기가 공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즐겁게 이야기하니까.

그러니까 국어 공부 잘하는 방법은 아이와 대화를 많이 하는 거다.
일방적인 대화가 아니라 여러 가지 주제로 수다를 떠는 대화!
여기에 책을 읽으면 금상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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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교감 선생님이 오셔서 아이들과 만나 인사했다.

인사가 끝난 뒤에 교장 선생님이 수상 소식을 알렸다.

우리 반 아이가 제22회 대한민국 독서토론/논술대회 장려상 받았다고.
체육관 뒤에 아무 생각 없이 섰는데 교장 선생님 안내를 듣고 우리 반 아이들이 열렬히 소리쳤다.
 
소리를 지르고 박수하며 폴짝폴짝 뛰었다.
열흘 전에 친구가 상 받았다는 말을 듣고
 
“난 꼴찌 했을 거야. 틀림없이 꼴찌야!” 한 아이도
 
“내년에는 대회 안 나갈 거야. 절대 안 가!” 한 아이도
 
정말 열렬히 박수하며 환호했다. 우리 반 환호 분위기에 취해 전교생이 같이 축하했다.
교실에서 들은 수상 소식은 친구를 승자로, 자신을 패자로 느끼게 했다.
 
“얘는 상 받고 나는 못 받아서 기분 나쁘다!” 하는 마음이었다.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들은 수상 소식은 ‘우리 반이 상을 받았다. 너희는 없지!’ 하는 마음이었나 보다.
우리나라에서 경쟁을 피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똑같은 결과를 받고도 ‘내가 졌다.’가 아니라 ‘우리가 이겼다’ 하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
 
어떻게 해야 이렇게 될까?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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