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뜰안애>에 귀한 손님들이 왔다. 북한을 떠난 아이 다섯 명.
꽃제비였던 학생도 있고 중국으로 팔려 간 북한 여성이 낳은 학생도 있다.
가슴 아픈 사연의 주인공들에게 무얼 해주어야 할까?
 
한 방송 관계자는 가끔 꽃제비였던 학생에게 명품을 사준다고 한다.
초등학생과 고등학생에게 명품이 도움이 될까?
좋은 호텔, 비싼 음식, 안타깝고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 별로다.
아이들의 고생을 떠받드는 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고생스런 과거에 아이를 붙들어두는 짓이라 생각한다.
 
<책뜰안애> 불 밝히고 학생들을 맞았다.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 우리 반 아이들 보듯 다정하게 인사했다.
집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학생들 마음이 열렸다.
서재에 둘러앉아 강원도 시골 아이들이 쓴 글을 읽어주었다.
책을 보여주고, 책을 소개하고, 책 이야기를 해주었다.
책이라곤 <WHY> 외엔 모르는 학생들을 살살 꼬드겼다.
아이들이 책을 만지고, 꺼내고, 읽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아이들을 책으로 꼬드기는 건 참 잘해!' 생각했다.
 
잠자리 마련해주고 잘 자라고 인사했다.
아침 8시~9시까지 일을 시켰다.
여학생은 고추 따기, 수확한 생각 뿌리 떼기, 단호박 수확하기.
남학생들은 괭이로 풀을 쳐내는 일을 시켰다.
불쌍하다고 공주왕자처럼 떠받드는 건 멍청한 짓이다.
같이 먹고, 이야기하고, 자고, 땀 흘릴 기회를 주는 게 훨씬 좋다.
북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책뜰안애에서 자면 방명록을 써야 해.” 했더니 한 줄씩 써줬다.
집이 좋다. - 고등 2학년, 꽃제비였던 학생
사랑이 많다. - 초등 4학년
농사하는 게 재미있다. - 초등 3학년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 고등 2학년
맛있는 공기, 맛있는 노동, 진짜 많은 책
– 20년 동안 탈북아동공동체를 섬기는 마석훈 님
(여고생 두 명이 쓴 글은 사진을 찍지 않았다.)
 
작가, 선교사, 목사, 교사, 친구 여럿이 방명록을 써주셨다.
그중엔 이름난 분도 있다. 멋지고 귀한 문장을 써주셨다.
그러나 그 어떤 글보다 아이들이 쓴 글이 마음에 든다.
내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하거니와,
이 아이들이 책뜰안애를 만든 내 마음을 가장 잘 아는 것 같다.
 
<책뜰안애>에서 살고 싶다고 하기에 또 오라고 했다.
‘다음에 오면 일도 시키고 글쓰기도 시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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