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 반 보석이가 

우리 반 보석이가 국어 단원평가 85점을 받았다.
보석이는 3월 초에 떠듬떠듬 글을 읽었던 아이다. 지금은 꽤 읽는다.
쓰기는 안 된다. 띄어쓰기 없고, 받침도 많이 틀린다.
두루마기를 몰라 <두루마기를><두루마><기를>로 읽기도 하지만.

이 아이가 힌트 없이, 간섭받지 않고 스스로 읽고 받은 점수여서 놀랍다.
보석이는 교육청 학습클리닉 선생님과 2시간씩 공부한다지난주부터는 학습 심리-정서 지원을 받아 치료센터에 다닌다.
여러 가지 검사를 했는데 특수학급 대상이라고 판정이 났다.
그럴 만도 하다. 보석이는 가르치면 아는 듯하다가 하루 지나면 잊고주말이 지나면 많이 잊었다.
어느 날은 완벽하게 계산하다가, 다음 날은 엉뚱하게 했다.
자주 잊고, 맥락을 모르고, 또래보다 느리다. 알파벳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보석이가 특수학급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말도 잘하고, 읽기도 좀 한다다만 쓰기가 안 된다. 또한 읽기 집중력이 약하다.
10초쯤 읽다가 눈이 글씨를 떠난다.
무서운 아빠, 한없이 너그러운 엄마의 양육 태도 영향이 크다.

2. 85점을 받았다.

국어 85. 우리 반 1등이다. 깜짝 놀랐다. (아이에게 너무나 많은)글씨를 어떻게 다 읽고 문제를 풀었을까?
시험 전날, 주말 과제를 하지 않아 꾸중했다. 평소엔 그러면 안 된다고 부드럽게 말하는데 이번에는 많이 혼냈다.
쉬는 시간에 과제를 다 해내더니 시험도 잘 봤다.

우리 반 아이들이 다음 학년이 되면 국어를 잘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난 국어에 집중하지 않는다. 수업 준비도 잠깐 교과서를 보는 정도로 한다.
오히려 수학 시간에 집중한다주말마다 수학 시험지를 한 장씩 나눠준다. 단원평가도 꼬박꼬박 본다.
국어는 시험지를 풀지 않는다. 시험지 과제는 내준 적이 없다.
어제는 한 아이가 결석해서 진도를 나가지 않으려고 시험지를 줬다.
보석이는 어떻게 85점을 받았을까?

3. 왜 점수가 올랐을까?

우리나라 초등교사 대부분은 특정 사이트를 이용해서 가르친다그 사이트는 학습 내용을 절차에 따라 가르친다.
학습 목표를 제시하고, 학습 내용을 설명하고, 평가를 제공한다.
학습 내용은 동영상 같은 자료를 보여주고, 정리해준다. 클릭하며 약간의 설명만 덧붙이면 되므로 교사들이 애용한다.
내가 보기에는 다른 교과서가 더 좋은데도이 사이트 연계 교과서가 점유율 1등이다.
과학만 2등이다. 과학은 실험해야 하므로 온라인 사이트 의존률이 낮다.
우리나라 초등학생 90% 이상이 같은 방식으로 배운다.
많은 아이가 똑같은 방식으로 배운다면 앞으로 문제가 생길 거라 본다.

난 영어와 음악 시간에만 텔레비전을 켠다. 사회 시간에 관련 사진이나 영상을 조금 보여주기도 한다.
국어와 수학은 99% 이상, 사회도 90% 이상 대화하며 가르친다.
국어, 사회, 도덕 시간에는 계속 아이들과 말을 주고받는다.
묻고 답하고, 듣고 말하고,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수다 떨며 노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 수업을 본 분들이스토리텔링수업이라 하지만 글쎄좋게 보면 토론이고, 제대로 보면 그냥 수다 떨기 수업이다.

4. 수다 떨기 수업

그런데 이 수업이 효과가 좋다.
대부분 아이는 사이트 안내를 따라 정해진 걸 보고, 따라 쓴다. 학원에서는 같은 내용을 듣고 문제를 풀이한다.
배울 학()은 있지만 익힐 습()이 없는 공부다한 마디로 떠먹여주기 공부. 떠주는 걸 계속 삼키는 공부다.
수다 떨기 수업은 아이들이 말한다. 듣고 반응한다.
엉뚱한 수다에 빠져 정말 수다를 떨기도 한다이때마다 적절하게 끊고, 다시 주제로 돌아오게 안내한다.
이게 내 역할이다. 한 방향을 바라보고 수다를 떨게 하는 것!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형식과 체계는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 보고 듣고 느끼게 하려고 노력한다.
친구들 글을 많이 읽고, 계속 쓰도록 안내한다그래서 보석이가 85점을 받았다.
물론 암기 내용이 많은 단원은 60점으로 내려갈 수도 있다.
그렇다고 문제 풀이에 몰두하거나 닦달하진 않을 거다.
보석이는 국어 시간에 말하느라 바쁜 아이니까.
자기가 공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즐겁게 이야기하니까.

그러니까 국어 공부 잘하는 방법은 아이와 대화를 많이 하는 거다.
일방적인 대화가 아니라 여러 가지 주제로 수다를 떠는 대화!
여기에 책을 읽으면 금상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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