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지었다. 이름을 <책뜰안애>로 지었다.
책이 있는 뜻에서 편안하게(안) 자신을 사랑하고 서로를 사랑하자는(애) 뜻이다.

2020년 8월, 몇 분과 함께 2박 3일 동안 <책뜰안애>에서 연수를 했다.
<책뜰안애>에 오신 분들 주무시는 이른 시간, 아침을 준비한다.
오이, 참외, 양배추, 부추, 방울토마토, 대추토마토, 흑토마토, 찰토마토.
농약 없이, 잘게 부순 골뱅이 껍질과 풀로 만든 퇴비를 넣어 길렀다.
허브인 ‘보리지’ 꽃을 하나씩 올리기도 했다.
아버지가 기른 도라지 끓인 물, 내가 기른 작두콩을 우린 차.
물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에 음악 들으며 먹는 아침!
<책뜰안애>에 온 분들과 함께 행복을 누린다.

점심은 현지인이 아는 동네 맛집, 저녁에는 금방 캔 감자, 따서 바로 찐 옥수수에,
제자가 파는 골뱅이 삶아 비빔면에 담았다. (면보다 골뱅이가 더 많은 이상한 요리)
깻잎 순 같이 따서 나누고, 몇 분은 대파와 가지를 가져갔다.
기념품으로 만든 화분에 다육이, 와송, 아스파라거스를 드렸다.
겨울에 오는 분들을 위해 땅콩과 고구마를 기른다.
벽난로에 고구마 구워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해야지.

책벌레가 이런 공간을 만든 까닭은, 하나님을 나누고 누리는 작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학교가 점점 사무화, 기계화된다. (사람 마음보다 매뉴얼이 앞선다.)
교회는 솔직하게 마음을 드러내면 안 되는 곳이 되었다.
(교회에 당위, 구호, 사명은 있으나 ‘나 자신’과 ‘우리’가 사라졌다.)
교회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라 목사가 되었고, 학교의 주인은 아이가 아니라 교장이 되었다.
전**은 예견된 일이다. 시골 교회 목사 중에 리틀 전**이 많다.
그들은 기회만 주어진다면 전**처럼 행동할 것이다.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골에서 버티는 목사님이 몇 분 계신다.
(하나님 나라에서 별과 같이 빛날 분들이지만 너무 적다.)
대신 중앙에서 밀려나, 어쩔 수 없이 시골로 온 사람이 많다.
사기 치고 도망 온 목사, 간음한 목사, 알코올 중독 목사… 여럿 봤다.
그들의 공통점은 ~ 뻔뻔하다. 자기를 돌아볼 줄 모른다.

빛나는 목사님과 뻔뻔한 목사 외에 보통 목사들도 많다.
성도는 그들을 의지한다. 그래서 그들이 점점 변한다.
성도가 그들을 의지할수록 그들은 점점 성도를 소유한다.
하나님의 소유 된 백성이 목사에게 소유된 교인이 된다.
목사는 그들을 놓아주지 않고, 그들은 목사만 바라본다.
스스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나아갈 생각을 못한다.

<책뜰안애> 연수를 금요일에 시작해서 주일 예배로 마쳤다.
목사 없이, 내가 설교하지 않고, 함께 말씀을 나누었다.
교회 다니지 않는 분도 함께 말씀을 나누었고, 교회 다니는 분도 스스로 말씀을 읽고 뜻을 나누었다.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고, 함께 울고 웃었다.
<책뜰안애>가 저물어 해 질 때에 모인 환자들을 받아주는 곳,
삶을 나누고 위로받으며, 때로 낫는 곳이 되길 바란다.

우린 나 자신이나 목사의 소유가 아닌, 하나님의 백성이다.
나 됨의 가치를 알고, 진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를.
Full Your Life!!

 

'나누고 싶은 글 > 문득문득 든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후배에게 쓴 글 중에서  (0) 2021.11.20
나만의 글쓰기 지도 방법  (0) 2021.11.20
새 학교에서 열흘 지내고.  (0) 2021.03.13
누구의 말을 듣는가?  (0) 2021.03.04
목사에게 바란다.  (0) 2020.02.26

아이들에게 받은 편지들 중에서 골랐습니다.

1. 2009~2010년 독서반에서 만난 아이들과 헤어질 때, 아이가 교육청에 보낸 편지

2. 2009~2010년 독서반에서 만난 아이가 이듬해 스승의 날 보낸 편지

3. 2009년에 독서반에서 만난 아이가 고3 졸업하며 2019년에 보낸 편지
(2011년부터 2018년까지 일요일마다 독서반에서 만난 여학생)

4. 2010년에 독서반에서 만난 아이가 고3 졸업하며 2020년에 쓴 후기
(2011년부터 2018년까지 일요일마다 독서반에서 만난 남학생)

독서반을 돌아보며

***

독서 논술을 하기 전, 내가 논리적이며 생각이 깊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트럼펫을 부는 백조 루이'를 읽고 글을 쓰려고 펜을 잡았을 때, 무엇을 써야 할지 난감해졌다. 지금까지 내 생각을 표현해본 적도 없을뿐더러 그걸 글로 써본 경험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눈앞의 백지를 보며 난 당황했고 종이에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는 과정은 힘겨웠다. 그렇게 여하튼 글 하나를 써냈지만 쓰면서도 조잡하고 식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칭찬을 해주셨으나 나에 대한 실망은 가시지 않았다.

그 후 여러 권의 책을 읽으면서 난 예전의 내가 크나큰 착각을 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논리적이고 깊다고 믿은 생각은 사실 나의 생각이 아니었다. 난 그저 책과 텔레비전에서 들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앵무새처럼 똑같이 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이를 내 생각이라 믿고 이에 대한 굳센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반복재생에 불과한 일을 말이다.

그리고 나는 나뿐만 아니라 세상의 많은, 아니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나와 똑같은 착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정 성향의 뉴스, 인물의 발언이나 특정주의의 이론, 주장을 듣고 이를 마치 자신이 깊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인 듯 말하는 사람들. 실은 이에 대한 비판적인 사고는 하나도 없이 욕심과 분노에 따라 결론을 냈음에도 말이다.

내가 독서 논술에서 얻은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이 점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으로 남이 아닌 '나의 생각'을 시작한 것. 내 입맛에 맞는 남의 생각을 골라 듣고 이를 타당한 생각이라고 결정하는 데에서 적어도 한번은 비판적으로 고민하려고 하는 것. 이제야 나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또 이를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듣고 고민하며 나의 생각을 더 키워나갈 수 있었다.

책이란 그런 것 같다

, 소설, 수필 같은 여러 가지의 책들은 모두 작가의 생각을 넌지시 포함하고 있고 독자는 이를 책을 읽으며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다음 단계이다. 작가의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판단하는 것은 독자의 역할이다. 이 단계에서 독자는 작가의 생각과는 다른, 혹은 이를 뛰어넘는 자신의 생각을 만들 수 있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만의 특별한 생각을 말이다.

처음 글자가 생겨났을 때,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발명되었을 때, 또 정보화 혁명이 일어나고 누구나 정보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인류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것은 어쩌면 이 때문이 아닐까.

책이란 그런 것 같다.

 

4학년 때 우리 반, 글을 가르쳤는데 쏙쏙 받아들였다. 
5학년 때는 다른 선생님이 가르쳤다.
방과후에 글쓰기 반에 아이가 나왔다.
아이 글을 계속 봐서 참 좋았다.

어느날 써온 글, 2019 농어촌청소년 문예제전 대상을 받았다.
심사위원인 이경자 소설가(2019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가 아이 글에 반해 나한테 연락했다.
그분 마음이 내 마음이다.

변다인 (미로초 5학년)

오늘 왜 이 일기를 쓰냐 하면 알단 시작부터 말해야겠다. 처음에 마당에서 물총 싸움한 걸 쓰려고 했다. 아주 과격한 물총 싸움을. 솔직히 물총 싸움이 아니라 그냥 물총 통에 물 받아서 통째로 뿌리는 싸움이었다. 그러다가 유준이가 춥다면서 먼저 들어가고, 나랑 송인이랑 같이 놀다가 들어가려는데, 우리 집 계단 구석에 커~다란 뱀이 뙇! 있어서 집 청소하는 엄마를 크게 부르고 뱀이 있다고 소리를 꽥꽥 질렀다.
"엄마! !!! !!! ! ! ! !!!!“

하고 소리를 엄청 질렀다. 그랬더니 엄마가 빗자루를 들고, "어디!?" 라고 했다. 내가 더 잘 잡는 아빠를 안 부른 이유가 아빠는 일하고 있어서 집에 아직 안 들어왔다. 그래서 엄마를 그렇게 불렀다. 엄마가 빗자루를 들고 와서 뱀 머리를 막 때렸다. 막 머리에 피가 막 나는데도 꿈틀거리고…… , 진짜 더럽게 안 죽네. 내가 계속
"엄마! , 더 때려!! ! ! 더 때려!!“

막 이랬다. , 진짜 머리에 피 많이 났는데. 진짜 더럽게 안 죽네. 그러다가 뱀이 엄마한테 공격 자세를 취했다. 엄마가 그냥 무시하고 머리 엄청 때렸는데 뱀은 안 죽고, 꿈틀거리기만 하고……

집에 들어갔다. 엄마가 하는 말이
"뱀 때문에 놀란 게 아니라, 다인이 너 때문에 놀랐어!“ 그랬더니 동생이
"맞아. 언니, 언니보다 뱀이 더 놀랐겠다.“
아 놔 진짜. “00~ 언니가 구석에 있던 뱀 발견 안 했으면 너 물렸을지도 몰라~”

하하하! 엄마가 아빠 오면, 깜짝 놀랄 거라고 했다. 엄마가 뱀만 잡고, 안 치워놔서 아빠가 깜짝 놀랄 만도 하다. 그리고 예상은 맞았다. 아빠가 한 두 시간 뒤에 들어와서 엄마가 뱀을 잡았다고 하니 아빠가 놀라서
"어디! 저거 뭐야!“
라고 했다. 엄마가 아직 더 죽여야 한다고, 아직 살아 있다고 해서 아빠가 쇠막대기를 들고 와서 머리를 때렸다. 아빠가 쇠막대기로 뱀을 들어서 버리러 가는데, 엄청 맞았는데 뱀은 아직 안 죽었나 보다. 뱀 버리러 가다가 때리는 소리가 났다. 진짜 안 죽네. 하긴, 두시간 동안 꿈틀거린 녀석이…… 아빠가 독사는 아니고 밀뱀이라고 했다. 엄청 큰 녀석이~ 아무튼 이렇게 뱀 사건이 지나갔다. 아빠한테 어디다 버렸냐고 물어봤는데 도랑에 흘려보냈다고 한다.

진짜 내가 설마설마 했던 일이 알아났다. 우리 집 근처에도 뱀이 많다. 유준이는 자전거 타다가 꽃뱀을 보고. 어렸을 댄 물뱀이 도랑에서 짝짓기하는 모습도 봤다. 그땐 뱀이 별로 안 무서웠는데, 오늘 뱀의 생명력이 아주…… 어렸을 땐 귀엽고 신기했는데 지금은~ 그래서 난, 오늘부터 뱀을 무서워하기로 했다!

정말로 우리 집은 없는 게 없다. 처음에는 벌레가 나오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벌레도 나오고, 심지어 독벌레 같은 거도 나왔다. 개구리도 나오고, 길고양이도 우리 집에 많이 오고, 심지어 고양이가 우리 집 축사에 새끼를 낳았다. 그 새끼 고양이가 우리 집 창고에 똥 싸고, 돌아다니고…… , 이제 하다하다 뱀까지 나왔다. 뱀은 또 얼마나 큰지. 진짜……

그런데 정말로 나보다 뱀이 더 놀랐을 것 같다.

'나누고 싶은 글 > 내가 만난 아이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8회 국민편지쓰기대회 초등부 금상작  (0) 2022.02.27
2020. 청소년문예제전 우수상  (0) 2020.11.01
아이들에게 받은 편지  (0) 2020.08.01
잔디 인형  (0) 2020.07.26
새알 찾기  (0) 2020.03.15

허예은 (미로초 6)

과학의 날에 잔디인형에 잔디를 심었다.
심은 지 며칠 만에 잔디가 자라났다.
애들은 신기해하며 서로서로의 잔디 인형을 비교한다.

이럴 때면
우리집 아이와 다른 아이를 비교하는 엄마들 같다.
옆집 애는 수학 100점 맞았다더라.”
엄마 친구 아들은 벌써 고등학교 공부를 한다더라.”
이런 말 때문에 더 상처를 받는다.

생명은
비교하라고 있는 게 아닌데……

 

2005년 4월 29일, 산골 마을 아이가 글을 썼다.
동생과 개울 따라가다가 새알을 보고 쓴 일기다.
전국대회에 보냈는데 초등부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 학교는 벽지 나급지인 산골이다. (나급지는 아주 산골이란 뜻이다.)
뒷문으로 나가 스무 발 거리에 까치독서와 불독서가 일광욕을 한다.
겨울, 퇴근할 때는 부엉이가 다리 난간에 앉은 모습이 보인다.
이런 곳에서 형과 동생이 개울 따라 집에 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이듬해에는 동생 강길이가 초등부 우수상을 받았다.

강 따라 집에 가는데
땅강아지 잡아
사람들이 버린 종이컵에 넣고 오다가
동생 강길이가 갑자기 멈칫했다.
밑에 보니 새알 4개가 있다.
“빨리 가자!”
“형, 새알 한 개만 가지고 가자!”
“안 된다.”

조금 가다가 강길이가 새알 한 번만 더 보고 가자고 했다.
새알 있던 곳으로 갔다.
그런데 새알이 없다.
자갈이 많아서 찾아내기 힘들었다.
새알이 없다고 가자 하는데 강길이는 새알을 계속 찾았다.

강길이는 가는 척하다가 다시 가서 찾아보았다.
그리고 집에 갔다.
강길이는 가면서 자꾸 뒤돌아보았다.

해를 보니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예전에 다닌 교회에서 한 분이 신천지에 기웃거렸다.
교회에서 직책도 있고 맡은 일도 있는 분이었다.
아마 이런 마음이었을 거다.
‘이곳에서 채워지지 않는 걸 그곳에서는 채워줄까?’
이렇게 생각하는 건 자연스럽다. 우린 사람이니까.
이곳에서 만족하지 못하면 다른 곳을 찾아다니기 마련이니까.

 

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그분을 슬쩍 언급하며 뭐라 하셨다.
그분이 신천지에 발을 끊은 뒤라 씁쓸한 기억 정도로 지나갔다.
그러나 신천지에서 무얼 배우는지, 어떻게 잘못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냥 거긴 이상하니 가지 말라고만 했다.
미리 알려줬다면 기웃거리며 안달하지도 않았을 텐데
그거 공부하는 게 그리 힘들었을까? 잠깐이면 될 텐데 말이다.
더구나 이곳에서 채워지지 않는 게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또 다른 신천지가 나오면 아마 몇몇은 그리로 갈 거다.
‘아무리 기다려도 채워지지 않는데, 혹시라도 거긴 어떨까?’ 하면서.

 

한때, 나보다 먼저 그 교회에 있던 사람들이 그 교회를 떠났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 교회에 다니던 사람들도 다른 곳을 찾아다녔다.
이유는 간단했다.
성경을 알고 싶은데 교회에서는 알려주지 않으니 떠날 수밖에.
우리끼리 모여서 성경을 공부하면 목사들이 못하게 한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가르쳐주지도 않는다.

 

난 성서를 읽다가 책에 빠졌다.
읽고 묵상하고, 쓰고 또 읽고 또 묵상한다.
목사가 알려주기만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함께 공부하자고 주장한다.
그래서 『성경을 돌려드립니다』를 썼다.

하나님 말씀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을 목사들이 알아주면 좋겠다.
신자들이 성경을 공부하도록 도와주면 좋겠다.
직접 가르치거나, 스스로 공부하게 놔두면 좋겠다.
그러면 신천지 같은 곳에 덜 기웃거릴 것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