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선하신 권능에 싸여 (Von guten Mǟchten)

독일 여행을 하다가 시골 교회 뒷마당에 덩그러니 놓인 종에 쓰인 글씨를 봤다. 성문, 시계탑, 동상 따위에 쓰인 글이 아무리 좋아도 지나쳤지만 여기서는 종을 끌어안고 사진을 찍었다. 유명한 관광지에 적힌 글씨보다 더 궁금했다. 쓰여진 글씨를 검색하고 뜻을 찾아보았다. 그 글로 만든 찬양곡을 찾고는 여러 번 들었다. 아래쪽에 Bonhoeffer라는 이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이 찾지 않는 작은 마을, 쉴러(윌리엄 텔을 지은 독일 작가)의 고향 사람들은 본회퍼의 어떤 말을 기억하고 싶었을까?

신실하신 주님 팔에 고요히 둘러싸인 보호와 위로 놀라워라. ~ 지나간 날들 우리 마음 괴롭히며 악한 날들 무거운 짐 되어 누를지라도 주여, 간절하게 구하는 영혼에 이미 예비하신 구원을 주소서. ~ 주님의 강한 팔에 안겨 있는 놀라운 평화여! 낮이나 밤이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다가올 모든 날에도 변함없으시니 무슨 일 닥쳐올지라도 확신 있게 맞으렵니다.”

www.youtube.com/watch?v=aN7dGz6NH5M (독일어로 부르는 노래)

약혼녀 마리아 폰 베데마이어에게 보낸 편지에 적은 주님의 선하신 권능에 싸여라는 시이다. 처형 당하기 4달 전에 본회퍼가 감옥에서 썼다. 이 편지는 약혼녀와 부모님, 형제자매, 제자들에게 전한 본회퍼의 마지막 성탄인사가 되었다. 자신의 운명을 예측이라도 한 듯 본회퍼는 주님의 선하신 권능에 싸여 주님 곁으로 돌아갔다. 독일 작곡가 지크프리트 피츠가 찬양곡으로 만들어 지금도 부르고 있다.

 

제자도의 표본 본회퍼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부르실 때에는 그로 하여금 와서 죽으라고 명령하시는 것이다.” 본회퍼가 한 말이다. 독일교회가 히틀러의 뜻을 하나님 뜻으로 착각했을 때, 목숨을 내걸고 반대했다. 지하교회, 비밀리에 하는 방송으로도 모자라 히틀러 암살계획에도 가담한다. ‘부르심죽을지라도로 받아들였고 194549일 플로센뷔르크 강제수용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본회퍼는 행동하는 신앙인, 세상의 불의에 분노하고 하나님을 향한 열정에 불타는 사람에게 빛나는 별이다.

너무 멋져서 본회퍼처럼 살고 싶었다. 21살에 쓴 박사학위 논문이 성도의 교제라는 책으로 나왔다고 해서 읽었다. 어렵다. ‘나를 따르라도 어려워 에버하르트 베트케가 지은 본회퍼의 그리스도론을 읽었지만 역시 어렵다. 평신도로서 나는 본회퍼를 저 멀리 홀로 솟은 별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본회퍼를 읽고 따르고 본회퍼처럼 살 수는 없다. 너무나 강하기 때문이다. 멋모르고 존경한 영웅이다.

 

신학자 본회퍼가 아니라 연인이 쓴 편지

<옥중연서>는 본회퍼가 감옥에서 마리아와 주고받은 편지모음집이다. 편지 대부분은 본회퍼가 테겔 형무소에 있을 때 썼다. 본회퍼의 외숙 파울 폰 하제는 육군 준장으로 당시 베를린 방위군 사령관이었다.(디트리히 본회퍼-복있는사람) 덕분에 본회퍼는 편안하게 감옥생활을 했다. 감옥에서 교회를 걱정하며 편지를 쓴 바울보다는 나은 형편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연서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나님을 따르라고 강하게 썼을 거라 생각했다. 그가 쓴 책만큼이나 깊고, 어렵고, 복잡하리라 생각했다. 마리아에게 예수님을 위해 죽읍시다라고 쓸 줄 알았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본회퍼가 36살일 때 마리아는 18살이다. 김회권 목사님의 해설에 따르면 본회퍼와 마리아는 서로 알고 있었다. 본회퍼는 마리아 오빠의 견신례를 맡아 교육했고 마리아의 외할머니에게 후원을 받았다. 19428월과 10월에 마리아의 아버지와 오빠가 러시아전선에서 전사한 일도 둘이 연인으로 만나는데 영향을 주었다. 마리아는 자상한 아빠와 오빠의 빈자리를 본회퍼를 통해 위로받았다고도 한다. ‘이건 뭐지?’ 싶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제자도의 표본, 히틀러를 암살하려던 사람이 18세 연하의 아가씨와 사랑에 빠지다니…… <나를 따르라>를 쓴 사람이 한 여인에게 사랑하는 마리아, 보고 싶구려!’ 라고 쓰는 게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편지도 지극히 평범하다. 편지를 읽고 내가 생각한 본회퍼를 찾기 어려웠다. 그가 쓴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본회퍼를 전혀 몰랐다.

 

옥중연서

본회퍼와 마리아는 다정하고 편안하게 일상을 이야기한다. 무엇을 하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적는다. 서로를 그리워한다. 편지 내용만으로는 18살의 나이 차이를 찾지 못하겠다. 편지는 줄곧 곧 만날 거다, 재판은 금방 끝나고 당신을 만나러 갈 것이다라는 희망으로 넘친다. 본회퍼는 감옥에서도 즐겁고 활기찼다고 동료 죄수들이 증거한다. 감옥에 갇혔지만 별 탈 없이 석방되어 마리아와 함께 결혼할 거라 믿었다. 편지에는 결혼식에 관한 자세한 계획도 나온다. 마리아는 결혼식에 쓸 물건을 보러 다녔고 본회퍼도 그러리라 기대했다.

편지를 주고받는 시간이 6개월을 지나면서 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마리아가 읽은 책을 말하면 본회퍼는 다른 책을 소개한다. 본회퍼는 읽고 있는 책에 대한 생각을 말하고 책을 보내달라고도 한다. 마리아는 본회퍼가 지은 책, 읽으라고 소개한 책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편지에서 본회퍼가 키르케고르의 공포와 전율’, ‘그리스도교의 훈련’, ‘죽음에 이르는 병을 읽으라고 하자(236) 마리아는 재치있게 답장을 보낸다. “이제부터 저는 무슨 일을 하기 전에 우선 수줍어하며 당신에게 물어보아야 하고, 결국 공포와 전율로 병들어 죽을 때까지 키르케고르를 읽어야 하겠군요.(248)”라고 말했다. 본회퍼의 고민이나 신학의 깊이는 마리아의 재치와 애교 앞에서 스르르 녹아내렸다.

편지를 주고 받은지 1년이 지나면서 마리아는 실망하고 힘들어한다. 금방 석방될 줄 알았던 본회퍼는 나오지 않고 주변 사람들도 본회퍼와의 관계에 의문을 제기했다. 19446월 이후에는 본회퍼의 편지만 남아있다. ‘내 사랑 마리아를 외치며 편지를 쓰고 또 썼다. 이때의 편지에는 본회퍼가 마리아를 어떻게 사랑하는지 더욱 잘 드러난다. 그리고 19441219주님의 선하신 권능에 싸여를 성탄 선물로 보내고 편지왕래가 끝난다. 히틀러 암살계획에 관한 중요한 서류가 발각되었고 편하게 편지를 주고받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본회퍼는 뛰어난 신학자, 영웅적인 행동, 제자도를 실천하는 신앙인이다. 또한 한 여인을 사랑하며 마음을 바친 남자다. 영웅을 기대하며 책을 읽다가 당황하기도 했지만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 남달랐던 사람이 한 여인을 사랑한 모습을 보여주어 더욱 좋았다.

 

사랑이란 사람이 손으로 잡을 수 있거나, 주고 싶은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에 맡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랑은 외부에서 와서, 오직 한 사람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로 가며, 그저 그 사람과 함께 머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없다면, 아무리 사랑에 빠져서 그 사람 가까이 가고 싶어도 멀리 서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나요?” - 마리아가 보낸 편지 중 일부(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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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를 기르려면 한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그럼 아이를 가르치는 사람이 마을을 모르면 안 되겠지.
지금 근무하는 학교에 온 지 4년! 마을 구석구석 안 다닌 데가 없다. 어디에 어떤 나무가 있는지 훤하다.

이틀 동안 점심시간에 애들 데리고 가서 밤을 주웠다. 1주일 숙성하기를 기다렸다가 커피 포트에 삶았다.
일찍 열리는 밤인데, 정말 달다. 애들이 달라붙어 밤 까먹는 모습이 꼭 제비 새끼 같다.


“태풍이 와서 밤이 많이 떨어졌을 거야. 오늘 주우러 가자.”
“지난번에는 손으로 주워서 힘들었지? 이번엔 집게 가져가자!”

그런데 밤이 별로 없다. 어? 밤이 다 어디 갔지?
아줌마 두 분이 가방을 메고 내려와서 차를 타고 간다.
‘아, 저분들이 아이들 먹을 밤을 다 가져갔네!’
이 마을 분들이 아니다. 시내에서 밤 주우러 여기까지 원정 온 사람들이다.

이 마을 분들은 아이들 먹는 거 가져가지 않는다. 아이들이 가면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어보라 한다.
으이구~! 차까지 타고 와서 애들 먹을 밤 가져가다니~

그래도 괜찮다. 아직 밤나무 하나, 대추나무 여러 개가 남았다. 밭 가장자리에 있으니 못 가져가겠지!
우리 애들은 그거 먹어도 된다. 마을 분들이 뭐라 하지 않으니까.
흥칫뽕이다. 

3학년 수학, (몇십 몇) X (몇십 몇), 2차시 분량

1. 목요일, 40분 분량의 내용을 100분 동안 가르쳤다. 끝까지 남은 아이가 자랑스레 말했다.
"얘들아, 내가 선생님한테 몇 번 간 줄 알아? 32번이야~!"

똑같은 걸 32번이나 설명했다. 침착하게, 웃으며... '너도 답답하지? 너도 힘들겠다.' 생각하며...
이렇게 생각해야 견딘다. 안 그러면 화를 내게 된다.

2. 금요일, 40분 분량을 다시 100분 동안 가르쳤다. 시골 아이들, 수학 때문에 미치려고 한다.
'나는 미치지 말아야지. 애들 때문에 정신을 잃지 말아야지!'

이틀 동안 똑같은 내용을 여러 가지 쑈를 해가며 200분 동안 되풀이했다.
한 아이에게 60번이나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다른 아이에게 '넌 그냥 포기하는 게 낫겠다' 하지 않고 참았다. 
가르치고 또 가르쳤더니 이젠 안다. (주말 지나면 또 잊을까? ㅠㅠ)

내 마음이 임계점에 다다르는 것 같아, 애들 데리고 강으로 나갔다.
"너네도 수학 때문에 힘들지? 힐링하러 가자."
태풍이 강 모습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풀밭이 자갈밭으로 변했다. 보기만 해도 좋다.
애들과 물에 들어갔더니 곱셈 스트레스가 풀린다. 애들이 애들다운 모습을 보면 나도 힘이 난다.

다음주에 또 곱셈을 해야 한다. 아이가 또 32번 물어보면, 장난을 핑계 삼아 '이놈'을 물에 던져버려야겠다.
그리고 나도 시원하게 물에 빠져서 웃고는 잊어야겠다.
어쩔 뻔 했어? 강물 없었으면 곱셈 어떻게 하냐구?
'도시 애들은 강이 없어서 곱셈을 그냥 잘하나 보다.' 으이구 진짜~

동영상 첨부하려다 실패했다. 카카오 로그인을 하라는데... 난 카카오 회원이 아니다.
첨부할까 말까 고민 중이다.

<올해 들은 최고의 칭찬>

곱셈을 힘들어해서 방과후에 다 남았다.
끙끙대며 열심히 공부하는데 4학년 셋이 놀러 왔다.
“너네도 곱셈 풀어라.” 하며 다섯 문제를 내주었다.
문제 풀고, 4학년 것 채점하고 ~ 어쩌고 하다가 4학년이 우리반 아이들에게 공부 못하면 혼난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희가 틀릴 때 내가 화낸 적 있어? 선생님이 어떻게 해?”
“선생님은 우리가 틀려도 화내지 않아요. 친절하게 다시 알려줘요.”
순간 뭉클했다.

아이가 모를 때 화를 내던 때가 있었다. 화내고 후회를 많이 했다. ‘얘도 몰라서 힘들 텐데 괜히 화를 냈네!’ 했다.
그러고도 또 화를 냈다. 내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알아듣지도_못하게_설명해놓고_화까지_내다니_나쁘다.
그런데 이제는 아이들이 틀려도 친절하게 다시 알려주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 애들은 내가 기침하면 깜짝 놀란다. 자가진단에 기침 표시하면 출근 못하는 줄 알고 걱정한다.
다른 선생님 오면 안 되니까, 아프지 말라 한다.
‘캬, 화만 참아도 좋은 교사가 된다.’
‘190일 참으면 얘들이 평생 나를 좋은 교사로 기억한다.’
#와_이거야말로_남는_장사

 


사진> 쉬는 시간, 칠판에 어몽어스 캐릭터 그리며 논다. 
며칠 동안 작은 칠판을 애들이 차지해서 못 쓴다. 그래도 귀엽다. 화면이 아니라 직접 보니 너무 좋다.

<<책놀이를 해보세요.>>

온라인 수업하기 힘드시죠?
애들 깨우고, 억지로 자리 앉히고, 붙들어 공부시키고~
가끔 학교에 오면 부족한 공부 보충하느라 안달하다가 애들도 불쌍하고, 선생님 자신도 안 됐다 싶을 거예요.

아이들이 학교 오는 날, 도서관에 가서 책 놀이를 해보세요아이들이 학교 오는 기쁨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선생님도 아이들과 재미있고 신나는 걸 하면 좀 회복될 거예요.

오늘 3학년 아이들과 3~4교시(80)에 책 놀이를 했어요.
1. 모둠(우린 7모둠)을 나누고 모둠 이름을 정해요.

2. 책 놀이 방법을 설명해요.
 - 선생님이 설명하는 책을 모둠에서 한 권 가져오기
 - 책을 가져온 곳 꼭 기억하기

3. 이제 책놀이를 할까요?

1) 갯벌을 보여주는 책 가져오기 (국어)
- 국어책에 갯벌을 설명하는 글이 나와요. 애들이 갯벌을 모른대요. 그래서 찾아오라 했어요.
- 놀이 끝나면 책을 제자리에 갖다 놓아요.

2) 우리나라 자연환경을 나타내는 책 가져와 설명하기 (사회)
- 어라, 갯벌 책을 다시 가져온 아이가 있어요.
- 설명 :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가면서 만들었기 때문에 자연현상이지요.

3) 다른 나라 인문환경을 나타내는 책 가져와 설명하기
- 모나리자, 미국 요리사 전기문, 이집트 미라 등을 가져왔네요.

4) 기온을 설명하는 책 가져와 설명하기
- 기온, 태양 온도, 절대온도 등을 설명하는 책을 찾아왔네요.

5) 강수량 설명하는 책 가져와 설명하기
- 어려웠나 봐요. 몇 모둠만 찾았어요.

6) 농촌, 어촌, 산지촌, 광산촌, 도시를 보여주는 책 찾아, 문제 내기
- 자기가 가져온 그림이나 사진을 보며 설명해요.
- 다른 모둠 친구들은 어떤 지역을 설명하는지 맞춰요.
- 각 지역을 자기 말로 설명해서 잘 이해하네요.

7) 의식주를 나타내는 책을 가져와요.
- 선생님이 가져온 책과 같은 내용을 설명하는 책을 가져오면 점수를 받아요.
- 선생님이 가져온 책이 의를 설명하면 를 가져온 아이가 1
- 한 아이는 의식주 모두를 설명하는 책을 가져왔어요. 지혜롭네요.

4. 아이들 반응
1) 재미있다고 난리가 났지요. 또 하자고 하네요.
2) “점심 먹고 책 빌려야지!” 하네요.
3) “, 이 책이 여기 있구나!” 어디에 어떤 책이 있는지 알아요.
4) 사회 공부할 때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알아요.

자세한 설명을 보고 싶거나, 다른 놀이를 하고 싶으면 책벌레 선생님의 행복한 책놀이를 보세요.

 

간증집회 강사로 이만한 사람은 드물다. 극적이고 대단하다. 강력한 반전도 있다. 저자는 레즈비언이었다. 레즈비언 파트너와 살면서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트레스젠더) 권익을 위한 활동을 했다. 영문학 종신교수였고 프로이트, 마르크스, 다윈의 철학과 정치적인 세계관에 기반을 둔 19세기 문화와 문학을 가르쳤다. 특히 퀴어이론(정상적인 성 행위를 당연시하는 전제에 저항하는 이론)을 주로 연구했다. 교회에서 죄라고 부르는 음란한 행위가 정당하며, 죄라고 부르는 것이 오히려 편견이고 혐오스러운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예수라는 단어가 목구멍에 걸린 가시 같았다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회심하지 않은 상태에서 교회에 온다면 우리가 그녀를 목구멍에 걸린 가시로 볼 것이다. 음란의 화신이라며 악수도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녀는 회심했다. 예수님을 만났다. 목사와 결혼했다. 종신교수가 대학을 떠나 평범한 목사 아내로 살아가는 것도 대단한데 피부색이 다른 아이들을 입양해서 홈스쿨로 양육했다. 적의 심장부에 있던 사람이 아군으로 귀순한 경우와 같다. “예수님을 모를 때는 죄의 노예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은혜로우신 예수님이 저를 찾아오셔서 구원 받았습니다. 이젠 이전의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갑니다. 여러분, 간음하지 마세요. 음란하지 마세요……이런 식의 간증을 하면 대박나겠지만 아니다. ‘극적인 회심이 아니라 뜻밖의 회심이다. 사울이 한 방에 쓰러져서 바울이 된 것처럼 회심하지 않았다. 뭔가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우리의 간증이 크리스천들의 삶의 여정이라는 전체적인 지평을 드러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인가? 만약 내 간증이 “내가 주님을 만나기 전에 얼마나 끔찍한 죄인이었나”를 말하는 데 그친다면 그것은 의미가 없다.(마치 지금은 죄와 아무 상관없는 삶을 살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구원을 받은 후 지금 느끼는 안도의 감정이나 사람들이 내 간증을 듣고 흔히 보이는 반응을 전한다거나 내가 얼마나 훌륭한 선택을 했는지 스스로에게 공을 돌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머리말에서)

예기치 않은 회심

저자는 공공연한 레즈비언이었다.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생각하고, 합리적이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는 페미니즘 교수이다. 하나님, 성경, 기적……을 달나라 토끼처럼 생각한다. 지역신문에 PK(남성회복운동 단체)의 성차별적인 논리를 비판하는 글을 싣고 편지를 엄청나게 받는다. 상자 두 개를 준비해서 한쪽에는 증오의 편지를, 다른 쪽엔 공감의 편지를 담았다. 시러큐스 개혁장로교회 담임목사 켄 스미스가 보낸 편지도 받았다. 목사는 하나님의 임박한 진노를 외치지 않고 질문을 했다. “어떻게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되었나? 자신의 의견이 옳다는 걸 어떻게 검증할 수 있나?” 저자는 편지를 어느 통에 담아야 할지 몰라 책상 위에 두었다, 쓰레기통에 던졌다. 다시 꺼내 읽었다.

그의 질문은 내 호기심을 발동시켰다. (그의 질문은 언제나 그랬다.) (50쪽)

저자는 편지에 쓰인 대화를 나누고 싶으면 언제든 찾아오라는 말에 응해 캔을 만난다. 켄이 자신을 존중해 주었다(35)고 한다. 교회로 나오라고 하지도 않았고 간음에 대한 율법, 음욕이 불타는 것 같아 순리대로 쓰지 않고 역리대로 하는(1:26-27) 바울의 경고도 꺼내지 않았다. 대신 구속을 강의했다. 저자는 대부분의 목사들은 마치 신선한 피 냄새를 찾는 상어처럼 그 성경말씀(16:31)을 들려줄 사람, 특히 나 같은 사람을 찾아 헤매기 마련이다.(53)” 라고 생각했지만 캔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였다. 정죄하지 않고 존중하지만 할 말은 했다. 할 말은 하지만 존중했다고 해야 할까? 켄은 구약에서 십자가 사건이 어떻게 숨겨져 있는지 신약에서 어떻게 드러났는지 설명했다. 레즈비언인 저자를 받아들이지만 그런 상태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확고하게 말했다. 저자는 2년 동안 성경을 읽으며 켄과 그의 아내 플로이와 대화를 이어갔다. 켄과 플로이가 사람들을 먹이고 재워주고 도와주는 모습도 지켜봤다. 저자가 예수님께 점점 마음이 열려가는 동안 게이 공동체 친구들은 걱정하며 마음을 돌이키라고 했다.

오래도록 한국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 구원 받아야 하는 사람으로 나눴다. 이후에는 구원받은 의인, 구원받지 못한 죄인에 구도자가 더해졌다. 이 기준에 의하면 저자는 구원을 찾아가고 있는 구도자다.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저자를 어떻게 도와주어야 어리석은 생각(예수를 믿는 것)을 버리고 돌아올까 고민하는 레즈비언 파트너는 당연히 구원받지 못한 죄인이다. 그럼 목사이지만 게이로 살면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를 괴로워하는 사람은 어디에 속할까? 자기들 생각을 따르지 않는 사람을 모두 죄인 취급하는 종교인은 어디에 속할까? 책에는 더 많은 종류의 사람이 등장한다. 켄이 저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존중하는 태도로 대답을 들어준 것처럼, 이 책 역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기다린다.

저자는 합리성으로 무장했기에 질문과 대화로 하나님을 찾아갔다. 모든 사람에게 질문이라는 방식이 통하지는 않는다. 합리성보다 감정, 소속감, 기복주의가 뿌리 내린 우리나라에선 선포와 체험이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상대를 존중하며 질문하고 꾸준히 들어주는 태도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기독교를 답답하고 일방적이며 자기들만의 잔치에 빠진 사람들의 종교로 받아들이는 오늘날은 더욱 그러하다.

회심에도 과정이 있다.

19994월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았다고 적었다. 동성애 파트너와는 헤어졌고 다시 그리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나 동성애가 왜 죄인지는 몰랐다고 한다. 자만심이 죄라고 깨달아서 그것부터 시작했다. 소돔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동성애에 대한 응징보다는 자만이라는 걸 발견했다.(16:48-50, 11:23-24) 계속 성경을 묵상하면서 겉으로 드러난 행동(동성애)이 아닌 사고의 패턴에 죄가 뿌리를 내린다는 걸 깨닫는다.(78) “내 삶을 주님께 바치겠다는 결심은 단순히 철학적인 노선을 바꾸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 번에 끝날 수 있는 절차도 아니고 내 표면적인 편견들과 변하기 쉬운 충성됨을 다시 조정하는 일도 아니다. 회심은 내 삶을 조율하는 과정이 아니라 내 영혼과 인격을 샅샅이 조명하는 고되고도 치열한 과정이었다.(80)”

회심을 단번의 선택으로 받아들인 간증을 꽤 들었다. 이전에는 완전 죄인이었으나 지금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전도자가 되었다는 내용이 많았다. 단번의 회심은 멋져 보인다. 간증하기도 쉽다. 끙끙대며 몇 년씩 고민하다가 예수님 믿으면 회심의 순간을 정확하게 말하기 어렵다. 낱낱이 적어놓지 않는다면 고민한 과정을 전달하기도 어렵다. 구원파에선 이를 빌미로 구원 받은 정확한 일시를 물어온다. 사울이 바울이 된 것처럼 단번의 회심은 진짜 회심 같다. 오래도록 끙끙대며 하나님께 나아간 사람은 찜찜한 회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단번에 회심한 간증을 듣고 더 극적일수록 하나님 은혜가 크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회심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가 아니었고 어떤 상투적인 행동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침묵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
때까지 내가 들어봤던 간증들은 모두 에고와 자만이 가득한 것들이었다. 그리스도를 선택한 내가 정말 장하지 않나요?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한 내 결정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저는 내 삶을 주님께 바치기로 결단했어요. 아직 길을 발견하지 못한 저 이방인들보다 얼마나 훌륭한지 모르겠어요. 복음주의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이런 식의 생각들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들이다. 이런 식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고 만다. 나는 지독한 경험주의자이다. 나는 그리스도를 택하지 않았다. 아니, 그리스도를 선택하는 사람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택하실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멸망뿐이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부르시면 나는 응답을 해야 한다. 응답을 할 수밖에 없다. 그게 이야기의 전부이다.(165쪽)”

하나님의 선택은 단번에 이루어졌다. 우리는 이걸 단번에 깨달을 수도 있고 오래도록 깨달아 갈 수도 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하나님이 사울을 단번에 꺾으셔서 감사하다. 또한 레지비언 교수가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하나님께 돌아오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사실에 비하면 우리가 어떻게 회심의 과정을 거쳤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저자는 예수님을 믿습니까?” “” “당신은 구원받았습니다.” 이러고는 예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사는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과정을 거친다. 고민하고 돌아보고, 따져보고 끙끙대며 서서히 변해갔다. 그러면서 자신의 편견을 깨뜨리는 작업을 했다. 자기 주관성과 경험 위에 성경을 덧바르지 않고 성경이 말하는 바를 깨달을 때마다 돌이키고 또 돌이켰다. 레즈비언 교수의 간증집에 어울리지 않게(?) 성경말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많이 나온다. 교회에서 말하는 정답을 듣고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무얼 말씀하실까 고민하며 찾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라 절절하게 다가왔다. 무조건 믿으라는 말을 듣고 잘 믿어지지 않는 사람, 계속 튀어나오는 의심에 내가 믿음이 적은 건가?’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밑줄 그어가며 읽을 것이다. 이 고민은 정식 교인이 된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저자는 회심을 결단의 순간이 아니라 과정으로 겪어간다. 그러므로 의인, 죄인으로 양분하는 사람이 읽으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회심 이후의 삶도 과정이다.

저자는 2000년 정식 교인이 되기 위한 선서를 한다. 책에는 19998, 시러큐스 대학교 대학원 신입생 입학식 축하 강연 전문이 실려 있다. 스스로 현실적이고 무난한글이라 생각한 연설이지만 자신이 더 이상 레즈비언 공동체에 함께 하지 않는다는 선언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레즈비언 공동체의 비난은 예상했겠지만 이후의 삶 역시 순탄하지 않았다. ‘저는 죄를 떠났고 하나님은 제게 축복을 주셨습니다가 아니었다. 하나님을 만나는 과정에서 도움을 준 사람과 결혼을 약속하고 약혼했지만 결혼을 몇 주 앞두고 파혼했다. 늘 복음을 말하며 자신이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도록 도와준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교회 일을 하면서도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스스로 자신에게 속아 넘어가기 쉽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초자아는 우리의 의식 중에서도 타인들이나 단체들의 기대에 적극적으로 부응하고자 하는 부분이라고 한다. 즉 교회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보다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기 쉽다는 것이다.(113쪽)”

저자는 이미 마음이 하나님께 기울었다. 경험주의, 합리성, 패미니즘 시각, 포스트모더니즘 관점으로 해석하던 모습에서 떠났다. 세계관이 바뀌자 해석이 바뀌었다. 또한 저자에겐 삶과 기도로 에워싸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다. 정든 집과 대학을 떠나지만 하나님은 선한 사람들과 선한 공동체를 만나게 해주셨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은 뒤에 고민이 더 많아졌다. 이 고민이 <선한 사람들, 선한 공동체>라는 제목의 장에 나온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밑줄을 좍좍 그었다. 여기 50쪽 분량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가치가 있다.

성적인 존재인 내가 그리스도에게 응답을 하는(내 삶을 그리스도께 바치는) 것은 과거 이성애자였던 내게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존재로 바뀌는 것이다.(77쪽)

저자는 켄트와 결혼한다. 남성이 권위를 내세우는 낌새라도 보이면 덤벼들던 페미니즘 교수가 하나님 안에서 남자의 권위를 인정하며 가정을 이룬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정도가 아니라 인간 창조의 과정이 결혼이라는 제도가 만들어졌을 때 비로소 완성되었다(197)고 한다. 성경이 말하는 결혼과 부부의 관계가 무엇을 말하는지 밝힌다. 그리스도가 중심에 계시지 않다면 일어날 수 없는 변화이다. 개척교회로, 캠퍼스 사역을 하면서도 고민한다.

4장에서 갑자기 입양 이야기가 나온다. 피부색이 다른 아이들을 입양해서 홈스쿨로 키워간다. 고민은 사라지고 아이들을 어떻게 입양했는지 들려준다. 입양과 홈스쿨 이야기를 하면서 저자는 부모로서 아이를 기르는 일이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처럼 돌보는 게 무엇인지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결혼과 입양 이야기를 허탈하게 읽었다. 이것만으로도 강력한 간증거리지만 저자의 고민이 어떻게 드러나고 해결되는지 더 듣고 싶었다. 저자의 생각이 바뀌는 과정을 읽으며 속이 다 시원했다. 회심을 사건이 아니라 과정이 있는 이야기로 읽어가는 게 너무 좋아서이다.

뜻밖의 회심이 계속되면 좋겠다.

저자가 힘들어하며 고민해서 고맙다. 저자의 고민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내 고민이 얼마쯤은 해결됐다. ‘이 사람은 정말 고생했는데 내 고민은 사치구나!’ 라는 관점은 결코 아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하게 여겨온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려면 다른 질문과 고민이 필요하다는 걸 알려주었다. ‘하나님 모르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이상하게 보일까?’ 우리가 그들에게 다가갈 때 복음의 핵심을 놓치지 않으면서 그들이 귀 기울일만한 질문을 들고 가야 한다. 스스로 고민하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질문 말이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고 떠밀면 대화를 시작조차 하지 않을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 한국 교회엔 켄목사가 필요하다. 질문하고 고민을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준비 되지 않은 사람에게 당장 결단하세요라고 강요하지 말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질문은 켄목사가 했지만 저자는 선한 사람들과 선한 공동체로부터 대답을 들었다. <선한 사람들, 선한 공동체>가 많아져야 한다. 한국 교회가 켄의 태도를 배운다면 뜻밖의 회심은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뜻밖의 회심>은 혼란과 좌절, 갈팡질팡하는 과정이 담겨있어 귀하다. 저자는 이전 세계관으로 질문하고 생각했고, 하나님은 그 세계관을 깨뜨리고 하나님 생각을 알려줄 사람을 계속 보내셨다. 바리새인의 공동체가 아니라 고민하는 사람을 돕는 공동체가 많아진다면 뜻밖의 회심은 우리나라에서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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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의 전쟁, 좀 길지만 기가 막힌 책입니다. 저는 수요일의 전쟁을 읽으며 열 번 정도 낄낄거리고 다섯 번 정도 눈물을 글썽입니다. 책 좋아하는 자녀 둘도 몇 번씩 울고 웃습니다. 누구나 이렇지는 않습니다. 책과 친하지 않은 선생님 몇 분께 추천했더니 한두 번 웃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고 합니다. 수요일의 전쟁은 책벌레를 위한 책입니다. 책벌레들을 웃기고 울립니다. 2년 반 동안 1주일에 한 번씩 만난 독서반 아이들이 뽑은 최고의 책 5위에 듭니다.

저는 토론할 때 발문지를 만듭니다. 발문이 토론에 주는 영향을 압니다. 수요일의 전쟁을 나눌 때는 작가가 책을 쓴 까닭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질문을 준비했습니다. 주인공 홀링 후드후드는 수요일마다 돌봐줄 사람이 없어 선생님과 단둘이서 세익스피어 작품을 읽습니다. 세익스피어라니! 처음에는 끔찍한 고문으로 생각했지만 점점 세익스피어에 빠져듭니다. 작품에 나오는 욕을 배워 써먹고 세익스피어 작품으로 연극을 합니다. 저자는 홀링이 겪는 상황 곳곳에 세익스피어 작품을 녹여냅니다. 솜씨가 기가 막힙니다.

게리 슈미트는 영어과 교수입니다. 대학생들과 세익스피어 작품을 나누겠죠! 학생들이 세익스피어를 읽을까요? 깊이가 얼마나 될까요? 언젠가 <완득이>를 읽고 웃지 않는 고등학생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완득이를 교과서와 문제집처럼 읽으면 재미가 없습니다. 웃지 않지요. 우리나라 고전 50선이나 ○○대학 선정 도서 100권을 다 읽어도 저자가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모릅니다. 게리 슈미트도 이런 일을 겪지 않았을까요? 영어과에 입학한 대학생이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지만 스스로 읽지 않은 건 아닐까요? 그래서 세익스피어 작품이 곳곳에 녹아든 책을 쓴 건 아닐까요? 독서반 아이들은 게리 슈미트가 책 안 읽는 입학생을 위해 세익스피어 작품이 얼마나 재미난지 보여주려고 책을 썼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아이들은 책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합니다. 재미로 읽고, 자기가 관심 두는 내용만 찾습니다. 다른 책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토론을 해도 늘 아는 이야기만 하고, 말꼬투리 잡고 이기려고만 합니다. 그러면 배우지 못합니다. 그래서 발문을 준비해야 합니다.

책을 읽어도 발문이 생각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아이들 말을 들으면서 토론거리를 찾습니다. 수요일의 전쟁도 첫 시간에 게리 슈미트가 책을 쓴 의도를 찾는 도중에 , 책 내용을 이야기하며 독서감상문 쓰는 방법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섯 종류 질문을 만들어 두 번째 시간 내내 나누었습니다.

홀링이 겪은 일은 모두 작가의 경험에서 나왔습니다. “만약 우리가 책을 쓴다면 어떤 경험을 포함시키고 싶을까?” 가족과, 친구와, 혼자 겪은 일을 말합니다. 유치원 때, 몇 년 전에, 올해 겪은 일도 말합니다. 홀링이 겪은 일을 보면서 작가에게 소중한 기억을 생각하고 내게 아름다운 순간을 떠올립니다.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독서감상문에 쓰면 어떨까? 홀링이 겪은 일과 저자를 연결하고 내 기억을 글로 표현하면 좋은 독서감상문일까?” 하니 그렇다고 합니다.

아빠와 누나는 격렬하게 대립한다. 누구 편을 들고 싶은가? 가장 마음에 드는 선생님은 누구인가? 여러분이 겪은 선생님과 견주어 보자.” 내용을 이야기한 뒤에 우리는 등장인물과 사건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했다. 이걸 쓰면 된다. 독서감상문엔 인물과 사건에 대한 자기 생각을 쓴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을 물어보니 여러 아이들이 베이커 선생님은 나를 보았다. 나는 알았다. 선생님이 혼자 있으려고 나를 교장실로 보내지 않으리라는 것을. 함께 촛불을 켠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은 없는 법이다.(350)”를 뽑았습니다. “독서감상문에 좋은 문장, 감동을 주는 부분을 써도 될까?” 하니 좋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홀링에게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고 독서감상문을 써오라고 합니다. 그때 홀링은 여자친구에게 배신을 당한 뒤라 이렇게 씁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세익스피어가 인간다움에 대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것이다. ~ 만약 줄리엣을 만나지 않았다면 로미오는 아무 탈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주 받은 운명 때문에 로미오는 줄리엣을 만났으며, 줄리엣이 온갖 계획을 서슴없이 털어놓는 바람에 로미오는 결국 독약을 마시고 죽어가게 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생의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된다.(229)”

며칠 뒤에 배신이 오해였음을 알고 홀링은 독서감상문을 다시 씁니다. “세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인간다움에 대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동시에 두 가지를 좋아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몬태규 가문도 좋아하고 줄리엣도 좋아하기는 힘들다. ~ 만약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예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두 사람은 아직도 살아있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있다 하더라도 그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는 것이 세익스피어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이다.(231-232)”

홀링은 독서감상문 내용을 왜 이렇게 바꾸었나? 이 질문을 통해 볼 때 좋은 독서감상문은 어떻게 쓰는 걸까?” 물었습니다. 홀링이 겪은 일이 독서감상문 내용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나 같은 내용을 써내는 정답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쏟아낸 글입니다. 아이들에게 독서감상문은 줄거리가 아니라 자신을 써야한다고 계속 말해도 바뀌지 않았는데 독서토론을 하면서 독서감상문을 배운 뒤에는 글이 바뀝니다. 독서감상문을 쓰는 것도 과정을 겪어내야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교육을 가르침으로 생각합니다. 잘 가르치는 좋은 선생을 찾아다닙니다. 좋은 문제집 찾으면, 좋은 강사 만나면, 좋은 방법을 알면 아이가 잘 배운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는 맞지만 교육은 가르침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가르침과 배움은 다릅니다. 엉터리로 가르쳐도 배우는 아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지점에서도 아이들은 배웁니다. 잘 가르쳐야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배우는 아이들입니다. 아이를 알아야 합니다.

저는 시를 잘 쓰는 아이를 여럿 만났습니다. 아이들과 나눈 방법을 선생님들께 알려드렸습니다. 한분이 제가 알려준 방법 그대로 시 수업을 하고는 영상으로 찍었습니다. 영상에서 선생님은 제가 보여준 시를 보여주고, 제가 한 활동을 그대로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 반응이 선생님 기대와 다릅니다. 아이들 반응에 따라 질문을 바꾸고 대응해야 하는데 계속 제 방법을 따라갔습니다. 수업 끝나고 선생님이 내가 원하는 목표를 향해 가다가 아이들 반응을 놓쳤다고 합니다. 제가 만든 발문지 그대로 가져다가 다른 아이들과 토론하면 전혀 다른 반응이 나옵니다.

시를 가르치건, 독서토론을 하건, 무엇을 가르치던지 좋은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방법만을 매뉴얼로 내세우다가 아이를 놓치면 안 됩니다. 아이 수준에 따라, 반응에 따라, 준비도에 따라, 관심에 따라 방향이 달라집니다. 2년 동안 독서모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독서모임을 하려면 좋은 책을 골라야 합니다. 발문을 잘 해야 합니다. 글쓰기 지도도 해야 하고 쓴 글을 고쳐주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아이들입니다. 아이가 가장 중요합니다. 아이 눈을 바라보세요. 눈을 보고 말하세요. 아이 눈을 반짝이게 하는 걸 찾으세요. ‘이건 중요하다. 네가 꼭 알아야 한다고 선생님 눈빛을 반짝여도 아이가 그게 뭐가 중요해요?’하면 방향을 바꾸세요. 아이에게 맞추세요. 제 글을 읽는 여러분 모두 아이들과 책을 나누며 함께 배우는 즐거움을 누리기 바랍니다.

글 쓰다 보니 수요일의 전쟁, 또 읽고 싶어집니다. ~ 이 맛을 알면 여러분도 책벌레입니다.

 

산둥수용소, 랭던 길키

수상한 아이가 전학 왔다, 제니 롭슨

1940년대,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뒤에 중국에 있는 백인들을 산둥지방 위현수용소에 보냈다. 일본의 포로가 되었지만 백인들은 우리 선조들과는 다른 대접을 받았다. 그들은 죽거나 고문당하거나 위안부로 보내지지 않았다. 수용소 안에 갇혀 살았지만 생명의 위협은 당하지 않았다. 물론 불편하게 지냈다. 기상시간, 취침시간이 있고 개인공간은 사라졌다. 좁은 방에 여럿이 함께 지내야 했다. 평소에 그들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던 물건 대부분을 쓰지 못했다. 좌변기는 당연히 없고 먹을 것도 부족했다.

술집 주인과 회장, 선교사와 천주교 신부, 백인과 결혼한 타국 여성이 같은 공간에서 살아야 했다.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이 점호를 받고, 똑같이 지저분한 화장실을 썼다. 대기업 회장이 결코 겪지 않을 문제를 마약중독자, 노동자와 함께 해결해야 했다. 화를 돋우는 일이 계속 일어났다. 그런데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저마다 달랐다. 누구를 화나게 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겐 아무 일도 아니었다. 자라온 환경, 개인의 성품과 기질, 사회적 지위, 지금까지 누리던 것에 따라 화를 내는 순간이 달랐다.

화장실 청소를 대하는 두 가지 태도

수용소에서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이 몇 가지 있었다. 사람들의 개인 영역을 정해주는 숙소업무는 충돌하는 이기심을 조정하는 일이어서 힘들었다. 개인 공간을 더 차지하려는 마음은 남성과 여성을 가리지 않았다. 음식, 난방도 사람들이 서로 싸우게 만들었다. 남성과 여성이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는 일도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화장실이었다. 남자 화장실 청소는 미국인 선교사와 영국인 은행가가 맡았다. 그들은 화장실에 들어오는 손님과 웃고 떠들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남자들에겐 화장실 청소가 다른 일과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여성은 달랐다. 화장실 청소를 계속 하려는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며칠씩 돌아가며 청소했다. 그런데도 자기 차례가 되면 화장실을 청소한다는 티를 냈다. “이번 주에 제가 무슨 일을 맡았는지 아세요?” 라는 식으로 크게 희생한다는 표시를 했다. 특히 영국 사업가 아내들과 두 명의 러시아 여성이 보여주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영국 사업가 부인들은 화장실 청소를 즐겁게 했다. 화장실 청소가 귀부인으로 살아온 자신들에게 지장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들은 화장실 청소를 공공 봉사로 생각했다. 화장실 청소를 피하는 것이 오히려 명예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러시아 여성들은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화장실 청소를 피했다. 러시아 여성들에게 화장실 청소는 과거 자신들의 삶을 나타내는 일이었다. 부자와 결혼해서 영국 사업가 부인들보다 지위가 높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은 여전히 과거에 매여 있었다. 화장실 청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로 자신들을 돌려보냈다. 자신들이 화장실 청소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화가 났다. 러시아 여성에게는 귀부인으로 살아온 영국 여성들처럼 공공 봉사로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백인 남성의 아내가 되기 전에 했던 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마음이 너무 컸다.

영국 여성과 러시아 여성은 화장실 청소를 다르게 판단했다. 같은 일이지만 영국 여성은 봉사의 기회로, 러시아 여성은 아랫사람이나 하는 지저분한 일로 보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청소부를 하찮게 여기고 판사는 괜찮게 여긴다. 청소부를,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직업이 아니라 못 배운 사람이 하는 하찮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고귀한(noble) 가치와는 거리가 멀다는 증거이다. 사람이 하는 일을 사람의 가치와 동일하게 여기는 태도는 차별을 불러온다. 한 사람의 진짜 가치를 올바로 보기 전에 선입견을 갖고 회피하게 만든다. 차이를 차별로 보는 태도가 쌓이면 분노가 끓어오른다.

화를 내는 까닭

강원도 영월에 있는 초등학교에 독서캠프를 하러 갔다. 첫 날 3시간 동안 수상한 아이가 전학 왔다의 내용을 알아보았다. 토미는 전학 오던 날부터 방한모를 쓰고 얼굴을 가렸다. 눈만 내놓고, 밥 먹을 때도 코 위로는 보여주지 않았다. 화상이나 흉터가 있을 거라는 추측부터 외계인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까지 떠돌았다. 그래도 토미는 방한모를 벗지 않았다. 일곱 번이나 전학을 다닌 토미는 결코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려 했다. 그럴수록 반 친구들은 더욱 궁금해했다.

아이들에게 물었다.

토미가 얼굴을 보여주기 싫어 방한모를 뒤집어쓰고 다닌다. 다음 4가지 중에서 어디까지 해도 괜찮을까?”
1) 방한모를 왜 쓰고 다니는지 묻는다.
2)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지 묻는다.
3) 얼굴을 보려고 시도한다. , 강제로 벗기지는 않는다.
4) 강제로 방한모를 벗기고 얼굴을 본다.

<주장-왜냐하면-예를 들어-다시 말해>로 한 문장씩 써서 발표하라고 했다. “(주장)방한모를 왜 쓰고 다니는지 묻는 건 괜찮다. (왜냐하면) 비밀이나 약점을 찾아내는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친구가 모자를 쓰고 올 때 왜 모자를 썼는지 묻는 건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방한모를 벗기려는 게 아니라 그저 물어보는 것이므로 상처를 받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물어보는 건 괜찮다고 생각한다.

한 모둠이 의견을 발표할 때마다 다른 모둠 아이들에게 질문하라고 했다. 다섯 모둠의 발표와 반대 질문이 비슷했다. 방한모를 쓰는 까닭과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지 묻는 질문에 토미가 대답한다면, 토미가 질문에 상처를 받지 않은 셈이다. 비록 싫다고 거절하는 대답일지라도 자신을 감추는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면, 입 다물고 가만히 있다면 상처 받은 표시일 수 있다.

사람들이 상처 받았을 때 어떤 특징을 보이는지 발표하라고 했다. 아이들 의견을 정리하면 두 가지이다. 조용히 혼자 지낸다, 시무룩한 표정을 짓거나 슬픈 표정을 한다, 화장실이나 자기 방에 가서 운다 등의 소극적인 표현을 보인다. 또한 욕한다, 다른 곳에 화풀이한다, 뒷담화를 한다, 대놓고 말한다 등의 적극적인 표현도 말한다. 상처를 받으면 침울해지며 혼자 조용히 지내기도 하지만 소리를 지르고 욕하며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억울할 때, 부당한 대접을 받을 때, 공격당할 때, 공평하지 않을 때…… 인간은 분노한다. 그 분노를 해결하지 못하면 엉뚱한 곳에서 분노를 표출한다.

알아보는 눈

상처 받은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 알아본 뒤에 아이들에게 물었다.

대상도서에서 가장 상처 받은 인물은 누구일까?”

아이들이 토미, 응포, 체리스, 벤터 선생님을 꼽는다. 토미는 얼굴을 가리고, 응포는 말을 하지 않으니 상처 받은 게 맞다. 그러나 아이들이 체리스를 상처 받은 아이로 생각해서 놀랐다. 체리스는 똑똑하고 아는 게 많다. 친구가 없기 때문이라는데 나도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다. 벤터 선생님은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기 때문에 무시당한다고 생각할 거라 한다.

러시아 여성들이 화장실 청소를 하지 않으려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러시아 여성들을 비난하면 태도를 바꿀까? 러시아 여성은 부유하다. 체리스는 공부를 잘한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가르친다. 그런데도 그들은 보기와 달리 상처가 있다. 자신들의 아픔과 약점을 드러내기 싫어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행동을 바꾸라고 강요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강제하는 건 오히려 분노만 일으킬 뿐이다. 의무, 윤리, 법규, 도덕으로 러시아 여성이 화장실을 청소하게 만들지 못한다. 토미의 방한모를 강제로 벗기면 친구가 되지 못한다.

친구들이 토미의 얼굴을 보려고 토미를 힘들게 했지만 토미가 5학년들에게 공격당할 때 지켜준다. 그때 배웠는지 모르지만, 친구들은 토미가 자연스럽게 방한모를 벗어버리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말을 하지 않고 창문 밖만 바라보기 때문에 우주 미아라는 별명이 생긴 응포가 말을 한다.

우리나라를 분노 사회라 한다. 화장실 청소하는 분들이 떳떳하게 얼굴 내놓고 다니지 못하는 사회 인식이 분노 사회를 만드는데 한 몫 했을 것이다. 상대의 아픔과 상처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뜻을 강요하는 태도가 계속되는 한 여전히 분노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분노사회에서 벗어나는지 모르겠다. 시골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눈에는, 다른 사람의 상처를 바라보자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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