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독서모임에서 『기이하고도 거룩한 은혜』를 나누고 쓴 글이다.
쓰지 않으려고 버티다가, 어제 30분만에 휘리릭 썼다.
빨리 썼기 때문에 내 마음을 더 잘 담은 것 같다. 오늘 아침에 몇 문장 고쳤다.
난 인생이_무거운_짐이라_생각한다. 삶이란 저만치 보이는 수렁으로 빠져들어 가는 거다. 얽매이고 얽매여 어찌하지 못한 채 견디는 게 인생이다. 즐거움도 있다. 기쁨도 있다. 좋은 사람도 만나고 웃는 날도 많다. 돌아보면 감사가 넘친다. 지금도 나쁘지 않다. 앞으로 즐거운 기억을 만들며 괜찮은 삶을 살 거라 기대한다. 그래도 삶은 무겁다. 죽음의 순간이 기다려지는 건, 인생의 무거운 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죽을 때 고통스럽지 않으면 참 기쁠 것 같다.
삶을_가볍게_대하는_사람을_보면_답답하다. 고민이 없나? 걱정되지 않나? 생각은 할까 싶다. 단순해서 잘못 선택하고, 한쪽 면만 보고 판단해서 일을 그르친다. 그런데 부럽다. 그들은 인생의 짐을 가볍게 진다. 잘 웃고 얼굴이 환하다. 상처를 덜 받고, 아픈 기억을 남겨두지 않는다. 지금 겪는 고통이 오래가지 않으며, 과거의 고통을 어두운 기억으로 붙잡아 놓지도 않는다. 과거보다 지금이 중요하며, 미래를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난 아니다.
비크너는_고통의_좋은_청지기로_살았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면서. 기쁨과 감사를 잃으면 쉼을 누리지 못한다. 그러면 좋은 청지기가 아니다. 인생을 고통이라 생각하면서도 이웃에게 쉼을 주고, 그만치 고통을 겪었지만 위로하고 치유한다. 고통을 되새기고 되새기고 되새기다 씁쓸함을 즐기게 놔두지 않는다. 고통을 달란트 삼아 제대로 열매가 맺히게 한다. 인생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삶을 즐긴다고 생각한다. 벼랑 사이에 난 좁은 길을 제대로 가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책에 나온 문장 3개 간접 인용함)
난_안다. 고통이 하는 일, 고통을 다루는 방식, 고통을 당한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 그들이 하나님에 대해 하는 말 … 내 기억이 남겨놓은 것, 내가 넘어서야 할 기억도 안다. 고통에 대한 책을 닥치는 대로 읽으며 배웠다. 내가 왜 인생을 짐이라 생각하는지 이해했고, 고통에 갇힌 사람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런데도 난 여전히 기억에 갇혀, 과거를 만날까 봐 현재에 매달린다. ‘그래, 알아! 나도 알아.’ 하며 기억을 수면 아래 그대로 잠기게 하지만 불쑥불쑥 올라와 나를 불안하게 한다.
“행여나 과거를 만날까 봐 현재에 매달립니다.
수면 아래 숨어 있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수면 위로 나온 것에 매달립니다. (본문 85쪽)”
기억을_치유하는_사람(『주목할 만한 일상』에 나오는 표현)이 되고 싶었다. 지금도 그렇다. 가끔 치유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내 반응에 위로를 받는다고 한다. 난 돈보다, 인기보다 한두 사람의 기억을 치유하는 게 더 좋다. 아이들이 글을 쓰다 울면, 나도 울면서 기뻐한다. 내 일을 잘 해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여전히 내 기억은 치유되지 않는다. 인생이 무거운 짐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짐을 지듯 일을 한다. 목표를 정하고 열심히. 주로 책 읽기, 문집 만들기였다. 지금은 정원 만들기, 나무 심기가 더해지면서 글쓰기가 줄었다.
다행인_건_책이_내_기억을_꽤_치유해주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살피면서 나를 살피고, 고통받는 이웃을 살피게 해주었다. 아이들이 글을 통해 기억을 치유하기 바랐다. 아픈 기억이 상처를 남기듯, 아이들을 돌보고 치유한 기억이 독특한 나이테를 만든 모양이다. 아이들이 내게 아픔을 내보였다. 글을 쓰며 울었고 독서 활동하면서 울었다. 그럴 때면 고통의 청지기가 된 것 같았다. 그렇게 살았고, 앞으로도 같은 일을 하며 살려고 준비한다. 1문단에 쓴 무거운 짐의 무게가 10년 전, 20년 전보다는 가벼워졌다. 책 덕분이고, 아이들 덕분이고, 가족 덕분이다.
다만_한_가지_걱정이_된다.
내 기억을 치유하기 위해 열심히 사느라 지쳐버리는 건 아닌지,
어느 순간 한꺼번에 무너져내리지는 않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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