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알아야 이해하는 책이 있다.
당시 문화와 어휘를 모르면 명작도 단순한 줄거리만 남는다.
기독교인이 성경을 읽지 않는다고 한다.
소선지서는 성경을 읽는 사람도 뒤로 미뤄두는 부분이다.
즉 소선지서를 읽고 묵상하는 사람이 아주아주 적다는 뜻이겠지.
소선지서를 읽지 않는 마음이 이해가 된다.
시대를 모른 채 읽으려면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소선지서는 그런 문장이 별로 없다.
십일조 내라고 말라기 일부, 교회 건물 지을 때 학개 일부를 인용하는 정도다.
미가와 하박국과 요엘 일부가 노래로 만들어져 약간 친해졌지만
선지자들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모른다.
그들이 왕족인지, 몰락한 귀족인지, 가난한 농부인지 모르니까.
체념해서 망하라고 외쳤는지, 망할 리 없다고 확신하며 외쳤는지 모르니까.
그래서 요나만 남았다. 요나가 ‘바로 나’인 ‘요~ 나’라고.
『성서를 읽다』의 부제, ‘역사학자가 구약성서를 공부하는 법’이
그동안 내가 성서를 묵상한 방식이다.
난 말씀을 들었던 당대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했는지 알고 싶었다.
역사를 잘 아는 학자가 선지서를 보면 역사를 바탕으로 읽는다.
선지서 전체를 50번 넘게 읽었고, 꾸준히 묵상했고
선지서를 해설하는 책도 읽었지만
『성서를 읽다』에서 소선지서를 새롭게 만났다.
소선지서 해설에 앞서 소개하는 출애굽기와 민수기 내용도 좋고
부록으로 넣은 김교신 선생 이야기도 좋다.
(저자가 김교신 선생을 무척이나 존경하나 보다.
어울리지 않는 내용인 줄 알면서도 부록으로 넣은 걸 보면...)
추천한다. 소선지서를 이해하는데 빛을 비춰주는 책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한 권으로 꿰뚫는 소예언서
(소선지서 전체를 교차대구로 분석해서 소개하는 책이다.)
→ 시인과 평론가, 두 사람 중 누가 시의 본질을 제대로 읽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물론 독자의 몫입니다. 하지만 같은 사물을 각자의 내적 성향에 따라 다른 의미로 읽어 낸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그래서 미국 역사가 칼 베커는 이렇게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들의 사상을 명료하게 밝혀 주는 책, 그들의 동기를 잘 표현해 주는 책, 그들의 마음이 이미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던 바로 그 사상을 그들에게 제시해 주는 책에 영향을 받는다.” (11-12)
→ 민중의 예언자 미가는 수도 예루살렘 주민보다 시골 사람들에게 더 큰 애정을 보였다. 시골 출신인 그는 고향 마을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했다. 예언자 이사야가 주로 도시와 궁정의 타락과 음모를 풍자․비판한 데 비해, 미가는 농민을 학대한 지주들의 탐욕과 불의를 꾸짖었습니다. 그는 상인 집단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38)
→ 자연보호 사상을 설파한 예언자 하박국의 사상 또한 대단히 현대적입니다. 그는 레바논 숲을 마구잡이로 벌목해 각종 건축 재료로 사용한 바빌로니아인을 비판합니다. ~ 하박국은 자연을 고갈시킨 바빌로니아인을 규탄하며, 숲이나 짐승 같은 자연계마저 일정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현대의 환경론자, 생태주의자들이 귀감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는 주장입니다.(39-40)
→ 기독교 신앙은 이 땅의 ‘터줏대감’을 버리고 서아시아 ‘모래밭의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신’을 떠나 ‘역사의 신’을 향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한반도에서 서아시아로의 지리적․수평적 이동이 아니라 자연종교에서 역사종교로의 수직적 비약입니다.(61)
→ 존 로크의 경험주의 철학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왜’라는 질문을 포기하고, 오로지 ‘어떻게’라는 문제에만 집착하는 특징을 갖습니다. 현대의 교육과 학문은 대부분이 같은 경험주의와 실증주의의 틀 속에서 행해지고 있으며, 정규교육을 받은 오늘날 교양인들의 의식 역시 그 같은 사고의 틀에 의해 규제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현대의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선뜻 기독교적 관점에 접근하기 어려운 이유는 최근 300년 동안 세계를 지배해 온 이 같은 사고에 있지 않을까요. (78)
→ 만일 그들이 어떤 사건을 경이롭고 의미심장하게 느꼈다면, 그 이유는 “그 사건이 자연법칙을 깨뜨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 신이 임재하고 활동하고 있음이 그 사건을 통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81)
→ 『구약성서』 저자가 민족 형성 당시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적 동요 또는 철저한 불신을 대단히 솔직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모세마저 불신에 빠진 나머지 약속의 땅에 들어감을 허락받지 못했다고 전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기 민족의 첫 출발이 보잘것없음을 이토록 솔직하게 털어놓은 민족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야훼의 백성이요, 종교 민족으로 자처하는 이들에게 조상들이 품은 불신은 인간적으로 커다란 수치였을 겁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민족적 자긍심을 크게 손상시키는 일이었을 테지요. (87-88)
→ 야곱의 아들들과 함께 이집트로 들어가지 않은 많은 수의 히브리인이 있었으며, 출애굽 사건이 일어나기 오래전부터 이미 상당수의 히브리인이 모세의 영도를 받지 않고 이집트를 빠져나왔다는 사실입니다. 모세의 영도하에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바네아의 오아시스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그곳에서 다른 경로를 통해 이집트에서 먼저 빠져나온 히브리인들 그리고 오래전부터 이미 그 지역에 체류하고 있던 다른 히브리인 집단을 만나게 됩니다. 모세 영도하의 이스라엘 백성이 가진 ‘야훼 신앙’은 도망 나온 히브리 노예들과 아무런 사회적 기반 없는 부랑 집단에게 강한 흡입력을 발휘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신앙은 그들이 이전에 누리지 못했던 공동체적 유대감과 동질성을 느끼게 해 주었을 겁니다. 그 결과 새로운 신앙으로 개종해 모세 휘하에 들어가는 자가 속출하게 됩니다. (113-114)
→ 뽕나무 재배 농민 아모스 : 뽕나무는 해발 300미터 이상에서는 생장하지 않습니다. 이를 통해 뽕나무 밭이 그의 거주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25)
→ 아모스는 거의 모든 주변 민족의 역사와 지리에 대해 완벽한 지식을 과시합니다. 이렇게 보면 아모스는 토머스 칼라일이 말한 ‘거룩한 농부’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손에 괭이를 들었으되 마음에 우주의 진리를 품은 사람이란 뜻이지요.(133)
→ 고난이 인간을 위대하게 만든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 아모스를 비롯해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등 구약의 예언자는 대부분 척박한 유다 땅에서 배출되었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북왕국 이스라엘이 산출한 비중 있는 예언자로는 호세아 한 사람밖에 들 수 없으니, 인물 배출이란 점에서 보면 북방이 단연 남방보다 열세에 놓인 셈이지요. 나다나엘은 빌립에게 “나사렛(북왕국)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 라고 질문했는데, 이 말에는 은연중 이스라엘에 대한 경멸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곳 이스라엘에서 예수그리스도가 태어나고 베드로, 요한, 야곱 등 대사도가 출현했으니 이것이야말로 경박한 인간의 의표를 찌르는 신의 섭리라 할 것입니다. (160-161)
→ 아모스는 여로보암이 사망하기 5년 전(기원전 746), 늦어도 기원전 752년경에 예언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가 앗시리아에 의해 함락되기 직전까지 계속 활동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이 멸망으로 치닫던 위난의 시기에 그는 거의 30년이란 세월 동안 야훼의 예언자로서 조국의 멸망을 선포해야 했습니다. (163)
→ 가난한 농민들 틈에 섞여 살았던 미가는 이웃 농민들이 당한 어려움과 고초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을 괴롭힌 세력가들에게 누구보다 큰 분노를 느꼈습니다. (201)
→ 스바냐가 예루살렘에 살았다는 증거 : (미 1:10-11) ‘물고기 문’에서는 곡성이, ‘둘째 구역’에서는 울부짖는 소리가, 산 위의 마을에서는 무너지는 소리가 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막데스에 사는 너희는 슬피 울어라. 장사하는 백성은 다 망하고, 돈을 거래하는 자들은 끊어졌다.
- 둘째 구역은 예루살렘 부유층 거주 지역을, 막데스는 상인 구역을 가리킨다. 예언자가 수도 예루살렘의 지리는 물론, 주민 각 계층의 생활을 세세하게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예루살렘 주민들이 행한 종교적․사회적 관행을 상세히 묘사한 부분(1:4-8, 1:12)은 예언자가 예루살렘에 살며 주민들의 생활을 직접 목격하고 관찰했음을 드러냅니다. (218)
→ 스바냐가 왕족이라는 증거는 그가 이방 풍습을 모방하는 왕족들을 비판한 것이나(1:8), 그 하인들의 모모한 횡포를 꾸짖은 점에서도(1:9)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설명하겠지만 스바냐는 요시야를 도와 개혁에 참여한 예언자이기도 합니다. 전반적으로 스바냐는 돈과 권력을 가진 유한계급을 질타했으나 결코 빈민의 입장에는 서지 않았고, 아모스나 미가처럼 빈민의 고통에 동정을 표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같은 경향은 스바냐가 왕실 가문에 속했기 때문에 가난을 경험하지 못한 데서 기인했다고 설명하면 쉽사리 납득할 수 있습니다. (220-221)
→ 학개가 예언을 시작한 것은 어느 가을날이었습니다. 1장 1절에는 6월이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6월은 오늘날의 8월 말, 9월 초에 해당합니다. 백성이 생활고에 시달리며 빈약한 수확을 거두어들이던 때였습니다. (287)
→ 말라기의 예언 방식은 대단히 특이한데, 이를 그의 개인적인 특징이라고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는 마치 교사 같은 태도를 취합니다. 스바냐에 의해 예언이 묵시적 성격을 취했고, 하박국에 의해 예언이 지혜서의 성격을 취했다면, 이제 말라기에 이르러 예언은 교육적・논증적 형태를 취하게 된 것입니다. (317)
→ 앞서 요나는 니느웨가 멸망하지 않았기 때문에 화를 냈지만 이번에는 박 넝쿨이 멸망했기 때문에 화를 낸 것입니다. (361)
'내가 읽은 책 > 기독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옥중연서 (본 회퍼 책 소개) (0) | 2020.10.05 |
---|---|
뜻밖의 회심 (0) | 2020.09.21 |
멜란히톤과 그의 시대 (0) | 2020.09.09 |
단 한 번의 여행 (0) | 2020.09.09 |
기이하고도 거룩한 은혜 (0) | 2020.0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