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좋은교사> 책소개 119번째

《중앙 유라시아 세계사》, 크리스토퍼 백위드
《조미아, 지배받지 않는 사람들》, 제임스 스콧

학부모 문학 기행에서 김용철 작가 작업실에 가기 전에 선사박물관에 들렀다. 학부모와 아이들은 선사시대 사람들을 우가우가외치는, 유인원과 우리 사이 어디쯤의 생명체라 생각한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선사시대 사람들이 우리보다 능력이 많았을 거라고 썼다. 집 짓기, 짐승 잡기, 곡식 기르기, 도구 만들기 등 온갖 일을 손수 다 했으니 더 능력이 많다는 주장에 동의가 되었다. 컴퓨터 고치고 핸드폰 칩을 다루는 능력이 야외에서 생존하는 능력보다 낫다는 말을, 왜 그대로 받아들였을까?

박물관 들어가기 전에 유발 하라리의 설명을 알려줬다. 학부모와 아이들 견학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우가우가와는 먼, 실제 능력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패자로도 기록되지 않았던 사람들의 역사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한다. 승자는 역사를 왜곡한다. 자신들의 정당성을 내세우고 패자를 나쁘게 기록한다. 영국이 신사의 나라로 알려졌지만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한 짓은 신사와 거리가 멀다. 미국 영화에 비친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은 사실과 너무 달라 전체를 다 바꾸어야 할 지경이다. 패자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역사를 쓴다. 일본이 자신들을 피해국가라고 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똑똑하다는 이야기처럼, 우리가 잘못 아는 역사가 얼마나 많을까? 의심조차 하지 못한 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이

모든 국가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역사를 기록한다면 반드시 피해자가 생긴다.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공동체가 있다. 중국이 주장하는 동북공정, 일본의 역사 왜곡에서 우리가 피해를 입는다. 피해자는 억울하다. 가해와 피해의 범위가 어찌나 넓은지, 역사 기록의 가해자와 피해자 목록을 작성한다면 역사에 등장했던 모든 나라 이름이 기록될 것이다. 이 중에서 우리가 기억하지 않는 나라도 많다.

난 책을 좋아한다. 역사책을 꽤 읽었다. 그런데도 중앙유라시아 지역과 동남아시아 산악지역 역사는 전혀 몰랐다. “돌궐, 말갈, 여진이라는 오랑캐가 살았대!” 정도만 안다. 동남아시아 산악지역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들의 역사가 기록으로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 남은 기록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변방 중의 변방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류 국가에서 변방일 뿐만 아니라, 역사를 기록하면 안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주류와 생각이 달랐다.

유목민은 야만 오랑캐가 아니다.

실크로드 하면 유럽과 중국을 오가던 대상들이 만든 길을 떠올린다. 이 길을 만든 사람, 다닌 사람은 누구일까? 누가 중국과 유럽을 오가며 물건을 실어날랐을까? 농경민이 다녔을까, 유목민이 다녔을까? 중국은 말이 살찌면 야만적인 유목민들이 몰려와서 곡식을 빼앗아 간다고 가르쳤다. 글씨를 모르고, 야만적이고, 거친 사람들이라 상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우리도 그렇게 배웠다.

그러나 이는 정착 국가들이 만들어낸 거짓말이다. 침략해서 빼앗고 파괴하는 건 오히려 정착 국가인 중국, 러시아, 로마가 유목민에 대해 한 짓이다. 아틸라, 칭기스칸, 티무르가 얼마나 야만적인지 기록했지만 사실 그리스-로마, 페르시아, 중국이 더한 만행을 저질렀다.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은 로마와 중국이었고 자국에게 유리한 기록만 남겼다.

중앙유라시아에 속한 돌궐, 선비, 몽고, 여진, 거란, 훈족 등에 대해 우리는 야만족, 문화가 없고 남의 것을 약탈하는 떠돌이 민족이라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 중국은 문화 수준이 높고 이방 민족을 침략하지 않는데 오랑캐 야만족들이 쳐들어왔을까? 그래서 중국이 만리장성을 쌓았을까? 저자는 이런 생각이 중국의 기록에 의존한 역사의 오류라고 말한다.

유목민은 이곳저곳을 다니며 문화를 전파한다. 실제로 중앙유라시아 유목민은 실크로드를 통해 가는 곳마다 문화가 꽃피게 했다. 반면 정착 민족은 한곳에 정착해서 자기들 문화 안에 갇힌다. 정착민은 유목민이 교류를 위해 다가오면 공격으로 받아들였다. 문화교류가 고유의 정체성을 무너뜨릴 거라는 두려움이 더해지면 아예 문을 닫아버렸다. 정복하고 지배하려고만 했지 교류하며 배우려 하지 않았다. 저자는 만리장성 역시 오랑캐로부터의 위협을 막는 방벽이 아니라 중국에서 세금 내다 지친 농민들이 탈출하지 않게 하기 위한 벽이며, 외부의 이민족을 공격하기 위한 전초기지 같은 역할이었다고 설명한다.

지배받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곳, 조미아!

조미아는 동남아시아 산악지역을 일컫는 낱말이다. 넓은 평지, 농사짓기 좋은 곳을 두고 이곳을 찾아온 사람들은 누구일까? 옛이야기에서 이런 곳은 산적, 반란군, 도망자들이 살았다. 인근 국가의 지배자들은 이런 곳을 싫어했다. 경계하고 토벌하려 했다. 글을 모르는 무식한, 문화를 만들지 못하는, 싸그리 없애버려야 하는 사람들이 산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무식한 놈들, 산적과 반란자들이었을까?

역사를 배울 때, 수렵과 채집하던 사람들이 정착해서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문화가 더욱 발전했다고 한다. 조미아~의 저자는 수렵과 채집하던 사람들이 안정을 찾아 농사를 지은 게 아니라 주장한다. 산악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정착 민족의 억압을 피해, 쉽게 말하면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변방으로 이주했다고 주장한다. 위계질서를 싫어하고, 체제와 법률에 매이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이 자유를 찾아간 변방이 산악지대였다고 한다. 그들은 권력을 가진 지도자를 세우지 않았다. 고정된 역사도, 사당도, 유적도, 기억해야 하는 이야기도 없었다. 심지어 자신들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지도 않았다. 그들은 기억대신 현재를 유연하게 살아내는 걸 더 중요하게 여겼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내가 읽고 배운 역사는 국가의 지배구조 아래에서 만들어졌다. 착실하게 세금을 내어 국가를 운영하는데 도움이 되는 신민을 양성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내용이다. 이 역사는 우리는 우수한 문화 민족이고, 산에 숨어 지내는 사람들은 야만적이다.’라고 말했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갇혀 사는 사람이고, 그들이 자유로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무식하고 짐승 수준이어서 산속에 들어간 게 아니다. 변방이 인간의 자유를 보장해 주기 때문에 그곳에 갔다.

역사에는 탐관오리가 백성을 수탈해서 백성이 신음하는 이야기가 많다. 세금 때문에 부모를 죽이고, 자식까지 팔아먹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를 견디지 못해 도망한 사람들은 어디에 갔을까? 산으로 도망갔다면 그곳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조금만 생각하면 역사의 기록을 다시 생각했을 텐데, 왜 역사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였는지 모르겠다. 저자는 정주 국가와 이동하는 민족은 선후 관계가 아니라 함께 공존했다고 주장한다. 책의 부제가 <동남아시아 산악지대 아나키즘의 역사>이다. 주류에 맞선, 무정부주의자들의 선택지가 산악지대였다.

두 권 모두 새로운 눈으로 역사를 보게 해주어서 좋다.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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