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22:6절 사울은 다윗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나타났다는 말을 들었다.

삼상 231절 다윗은,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치고, 타작한 곡식을 마구 약탈하여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윗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사울이 다윗을 쫓는다. 아히멜렉이 다윗을 도왔다는 말을 듣고는 제사장 85명과 가족까지 모두 죽인다. 사울은 소식을 듣고 무고한 이스라엘 백성 수백 명을 죽였다. 이 소식을 전한 사람은 이방인 도엑이었다.

다윗은 블레셋이 이스라엘 성읍 그일라를 공격해서 추수한 곡식을 모두 빼앗아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윗은 땀 흘려 일한 대가를 빼앗겨 억울해하는 백성의 소식을 들었다. 왕인 사울이 들어야 할 소식이다. 백성을 지키며 돌봐야 하는 게 왕의 역할 아닌가!

사람들은 자기 관심사에 관한 소식을 듣기 원한다. 자기가 잘하고, 자기가 바라는 대로 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해지길 원한다. 예수님은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 하셨다. 세리와 죄인에게 관심을 가지셨다. 로마제국의 정책, 사두개인들의 계획에 관한 소식은 듣지 않았다. 예수님은 가난한 이웃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어제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아이들을 만났다. 오랜만에 6학년을 해서 아이들이 어떤지 관찰하기만 했다. 무얼 원하는지, 어떻게 지내고 싶은지 들었다. 아이들이 “놀아요.”, “놀아요!”, “숙제 내지 말아요!”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어떤 아이는 소리를 높이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했고, 어떤 아이는 입을 다물고 표정과 몸짓으로 <내 이야기도 들어주세요.> 했다.

아이들 이야기를 두 시간 동안 들어주고 1분 동안 부탁했다.
"얘들아, 내가 너희들 의견을 들었잖아. 나도 하나 부탁해도 돼?"
"네, 뭐예요?"
"두 개야. 욕하지 말자. 그리고 친구 괴롭히지 말자."
"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피곤했다. 책 읽다 10시 전에 곯아떨어졌다. 오늘 아침에 큐티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들었다. “높고 귀한 사람이 아니라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 힘들다고 호소하는 사람의 말을 들어라!” 그래! 내가 들어야 할 말은 아이들 목소리다.

오늘 국어 시간에 <비유하는 표현>을 배웠다. 교과서는 보조 자료, 주 자료는 나와 아이들이다. 80분 동안 비유 표현으로 신나게 이야기했다. 화날 때 마음을 비유했고, 기분 좋을 때 마음을 비유했다. 나, 학교, 가족을 비유하는 문장을 썼다. 교과서 내용보다 훨씬 실감 났다. 수업 5시간하고, 점심시간에 놀아주고, 학기초 업무까지 내달렸더니 또 피곤하다.

그래도 아이들 이야기 듣는 게 재미있다. 오십이 되었는데 아직은 아이들 이야기가 들린다. 낮은 자리에서 듣자. 솔로몬도 창녀의 이야기를 듣고 재판할 때는 좋은 왕이었다. 공주들에게 둘러싸여, 공주들을 위해 살 때는 백성들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억울해하는 백성들 이야기에서 멀어질수록 나쁜 왕이 되었다. 잘 듣자.

오늘 첫 수업 시작하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누가 공부 잘하는지 알아?”
아이들이 “어쩌고 저쩌고...” 하며 여러 가지를 말했다.
“잘 듣는 사람이야. 잘 들으면 올바르게 말한단다.” 라고 말해줬다.
나는 아이들 말을, 아이들은 내 말을 잘 듣는 한 해가 되면 좋겠다.

올해도 아이들 말을 잘 듣겠습니다.
이 마음 변하지 않으려고 여기 올립니다.

김재균, 김은아, 외 2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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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경지식과 관련한 발문
1-1) 학생들이 갖고 싶어하는 신발, , 가방, 핸드폰의 상표와 제조국을 말해보자.
1-2) 그 물건들은 어느 나라에서 생산될까? 제조국과 생산국이 다른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2-1) 베트남에 대해 아는 사실을 소개해보자.
2-2) 전쟁이 끝난 나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까? 전쟁에 참전해서 나라를 위해 싸운 사람은 전쟁 뒤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3-1) 여러분이 알고 있는 각종 기념일과 데이(DAY)를 소개해보자.
3-2) 그럼 612일은 무슨 날인지 알고 있나?
3-3) 612일을 아동 노동 금지의 날로 만든 ILO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보자.

2. 텍스트의 내용과 관련한 발문
1) 신발 작업장에 있는 노동자 대부분이 소녀들과 젊은 여자들인 이유는?
2-1) 란과 타오가 신발공장에 다닐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2-2) (찬반토론) 란과 타오 아버지가 큰아버지 식구를 돌보지 않으면 둘은 신발공장에 가지 않아도 된다. 자식에게 아동 노동을 강요하면서까지 큰아버지 식구를 돌봐야 하나? 아니면 큰아버지 식구를 돌보지 않고 가족을 먼저 돌봐야 하나?
2-3) 란의 아버지가 정의란 공짜로 존재하지 않는 법이지라는 말한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3) “전쟁에선 우리가 미국인들을 무찔렀지만, 이제 그들이 우리를 무찌르고 있어가 무슨 뜻인지 대상도서 내용을 바탕으로 설명해보자.

4-1) 란이 따이를 처음 만난 과정을 설명해보자.
4-2) 따이는 빕케와 함께 공장에 갔을 때 고통 당하는 노동자들의 처지를 바꿀 수 있는 테이프를 밟아 부순다. 왜 그랬을까? 여러분이 따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4-3) 앞 내용에 대해 친구들이 말한 의견의 장점과 단점을 분석해서 이야기해보자.

5-1) 공장에서 일어난 뱀 사건을 설명해보자.
5-2) 공장에 나타난 뱀을 란이 잡아 집에 갈 때 가져가려고 한다. 뱀은 누구 소유인가? 뱀을 잡은 란인가, 원래 주인인 할아버지 박 레인가?

6) 구찌터널이 사용된 용도를 모두 말해보자.
(전쟁, 민의 피신처, 민과 란의 이동통로, 코브라들의 집, 관광객들의 관광코스)

7-1) 박 레는 빕케가 공장 현실을 공개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왜 그랬는지 변화는 안쪽에서부터 일어나야 해. 밖에서 주는 압박으로는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는 말을 바탕으로 설명해 보자.
7-2) 박 레의 결정은 지혜로운가? 만약 빕케가 공개했다면 일어날 일을 예상해보자. 예상을 바탕으로 박 레의 결정을 평가해보자.

3. 텍스트의 내용과 관련한 인간 삶이나 사회 관련 발문

1-1) 책을 읽고 어떤 생각,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말해보자.
1-2) 아동 노동에 시달리는 25천만의 아이들을 위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2-1) 97, 이소선 여사가 돌아가셨습니다. 누구일까요? 대상도서에 나오는 신발공장 형편과 비슷한 평화시장 재봉사로 일하다가 분신한 분의 어머니입니다.
2-2) 전태일 열사가 2011, 대한민국에서 학생이나 청년으로 살아간다면 어떤 부분에서 불공정이나 모순을 발견하게 될까? 우리나라가 올바르게 발전하는 나라가 되려면 꼭 바뀌어야 하는 부분을 이야기해보자.
2-3) 역사에서 과 같은 역할을 한 분이 많다. 여러분에게 멘토가 되는 과 같은 분이 있나?

3-1) 대상도서에 나온 등장인물을 크게 고용주, 피고용주, 감독관, 기타 인물로 나눌 수 있다. 여러분은 어떤 위치에서 일하고 싶은지 대상 도서에 나오는 등장인물을 들어 말해보자.
3-2) 따이가 보여준 행동에서 모순을 찾아보자. 한국에서 살아가는 학생들(자기 자신)과 견주어서 비슷한 점을 찾아보자.

4-1) 공정무역에 대해 설명해보자. 아동 노동을 줄이고 가난한 나라를 위해 돈을 더 내고 물건을 살 마음이 있는가?
4-2) 독서토론을 끝내며 메이드 인 베트남이 준 영향과 결심을 말해보자.

강원도 동해 지역 초등학교에 근무하면서 독서 토론반을 했다. 1학기가 끝나갈 즈음 6학년 여학생이 전학 왔다. 5년 반 동안 동해의 북쪽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다니다가 마지막 한 학기를 남겨두고 남쪽에 있는 우리 학교로 왔다. 북쪽에 있는 학교에 다니면 실력이 낮다고 알려진 중학교에 가야 한다. 괜찮다고 알려진 중학교에 가기 위해 그동안 사귄 친구를 떠나 낯선 곳으로 왔다.

우리 학교에 오자마자 기말고사에서 월등한 점수로 1등을 했다. 말수가 적었다. 시간 날 때마다 공부를 했고 교육청 영재교실에 다녔다. 2학기에 독서 토론반에 들어왔을 때 공부만 하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듣지만 말은 잘 하지 않아서 원래 말수가 적은 아이구나!’ 생각했다. 1940년 열두 살 동규를 토론하면서 동규처럼 외로운 적이 있는지 물었다. 외로움을 말하는 도중에 1등 한 아이에게 물었다.

넌 어때?”

사람들이 공부 잘한다고……

첫 마디도 끝내지 못하고 울었다. 나도, 아이들도 깜짝 놀랐다. 아무 말 없이 공부만 하는 아이가 주위의 기대를 부담스러워 하며 고민하는 줄은 상상도 못했다. 독서토론 끝나고 아이에게 친구가 생겼다. 외로워 힘들어하는 다른 아이와 함께 이야기하며 걸어갔다.

학교에서 독서반을 하던 학생들이 졸업하고 나서 계속 토론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일요일에 중고등 독서 토론반을 시작했다. 딸들의 제국을 토론할 때 몇 년 동안 독서반에 꾸준히 나온 학생이 전교 2등이라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학생이 공부를 잘하는지 처음 알았다.

! 너 공부 잘하는구나. 그런데 2등이 좋다니 무슨 말이야?”

“1등은 부담스러워요. 힘든 자리예요. 2등이 더 좋아요.”

몇 년 뒤에 전교 1등하는 다른 고등학생이 독서반에 왔다. 2가 되더니 공부하기 싫다고 한다. 그냥 짜증나고 싫다고 한다. 엄마가 공부하라고 하는데 그 말을 들으면 더 하기 싫어진다고 위로를 구한다. 이 학생은 고등학생이 되면서 독서반에 들어왔다. 엄마가 논술에 도움이 된다고 보낸 모양이다. 다른 학생들이 의견을 말할 때 학생은 정답을 찾으려 했다. 1년 반쯤 지난 뒤에 갑자기 공부하기 힘들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독서반에 오래 다닌 학생들이

그거 독서반 때문이야. 여기 오면 생각을 해야 돼. 왜 공부하는지 생각하면 암기만 하는 공부가 힘들어져! 너 이제 큰 일 났다.” 하며 웃었다.

무조건 달리기만 하면 안 된다.

대한민국 학생들은 대학을 향해 달린다. 성적이라는 줄에 옭아 매여 옴짝달싹 못하고 앞만 보고 달린다. 처음에는 고등학교 3년만 아무 생각하지 말고 달리자.” 하더니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중학교 3년도 달리라고 시킨다. 좋은 중학교에 들어가려면 초등학교 6년도 달려야 하고, 결국 유치원 때부터 달려야 한다. 동화작가인 배유안이 앞만 보고 달리는 학생들에게 스프링 벅이라는 책으로 묻는다.

아프리카에 사는 스프링벅이라는 양 이야기 아니?”

스프링벅이 평소에는 작은 무리로 평화롭게 지낸다. 계속 작은 무리로 지내면 평화가 유지된다. 그러나 풀을 뜯다가 큰 무리가 되면 이상한 행동습성을 보인다. 무리가 커지면 뒤쪽에서 따라가는 양들이 뜯어 먹을 풀이 없어진다. 그러면 앞으로 나아가서 풀을 뜯으려 한다. 다른 양들이 풀을 다 뜯기 전에 먼저 풀을 먹으려 한다. 무리가 움직이면 앞서 가는 양과 뒤처지는 양이 반드시 생긴다.

뒤처진 양들이 앞으로 가려하고, 앞선 양들이 뒤처지지 않으려고 하면 무리에 이상한 기운이 감돈다. 무리 전체의 속도가 서서히 빨라진다. 앞에 있는 양, 뒤처진 양 할 것 없이 모든 양들이 앞서 가려고 뛴다. 뛰는 속도가 기준을 넘으면 풀을 뜯어 먹겠다는 생각을 잊고 오로지 다른 양보다 앞서려고 한다. 한번 뛰기 시작한 수천 마리의 양은 멈추지 못한다. 전체 무리를 멈춰 세울 만한 장애물을 만날 때까지 계속 뛰기만 한다.

계속 뛰어. 계속. 여기가 어딘지도 몰라. 풀 같은 건 생각지도 않아. 그냥 뛰어야 해.(47)”

우리 아이들 이야기이다. 힘들고 지쳐 쉬고 싶어도 뒤처지지 않기 위해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대한민국의 아이들이 바로 스프링 벅이다. 앞서 가는 양은 따라잡히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뒤따르는 양은 앞으로 치고 나가려고 발버둥치는 이상한 경쟁에 떠밀려 날마다 열두 시간 넘게 의자에 앉아 문제만 푸는 아이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면서 무얼 하고 싶을까? 뚜렷한 목표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학생들은

공부 잘해?”

그 성적으로 대학 가겠어?”는 당연하고

넌 꿈이 뭐야?”도 듣기 싫어한다. 학생들이 꿈을 꾸지 않는다. 꿈이 없어서 부모가 시키는 꿈을 쫓아간다. 돈 많이 벌기만 하면 꿈같은 건 없어도 된다고 한다. 꿈이 없는데도 자기소개서에는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이러저러하게 노력했다고 쓴다.

강원도 시골 학생들이 도움 받을 곳이 없어 나한테 자기소개서를 갖고 왔다. 독서반 학생을 빼고 모두 그냥 열심히 했다고, 뽑아만 주면 열심히 하겠다고 썼다. 어떤 꿈을 꾸고, 꿈을 이루기 위해 무얼 했느냐 물으니 그런 거 없다고 한다. 그냥 시키는 대로 공부만 했다고 대답한다. 안타깝다. 학생들은 왜 꿈을 꾸지 못했을까?

 

경쟁에서 이기려고만 하지 말고 자기 이유를 찾아라.

경쟁에서 이기려고 쉼 없이 달리면 꿈을 꾸기 어렵다. 다른 사람보다 앞서려는 목적으로 앞만 보고 달리면 꿈이 보이지 않는다. 꿈을 꾸려면 쉬어야 한다. 잠에 깊이 빠져들면 꿈을 꾼다. 쉬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해야 한다. 무얼 할 때 기쁜지, 무엇에 가슴이 뛰는지 알아야 꿈을 꾼다. 앞서 간다고 꿈에 한 발 가까이 가는 건 아니다.

독서반 학생들은 꿈을 이루려고 노력한다. 독서, 토론과 거리가 먼 꿈을 꾸면서도 일요일 아침마다 독서반에 나온다. 친구들이 문제를 풀 동안 책을 읽고 생각을 가다듬어 글을 썼다. 왜 사는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곳에서 자신이 무얼 할 수 있는지 토론했다. 친구들이 스프링 벅 무리에 섞여 앞만 보고 달리는 동안 왜 뛰어야 할까? 뛰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어디로 방향을 바꾸어야 할까? 지식이 아니라 지혜를 추구하면 어떨까?’를 고민했다.

내 딸이 고등학생이 되고 모의고사를 봤다. 전국에 있는 고1 학생들을 열 개의 등급으로 나눠 과목별로 몇 등급인지 적어놓았다. 모의고사 끝난 뒤에는 중간고사가 다가왔다. 마음이 점점 복잡해졌다. 지금까지는 시험 기간에 편히 쉬며 놀았다. 그런데 이젠 그럴 수 없다. 좋은 대학에 가려면 친구를 이겨야 한다. 자유롭게 살아온 새를 새장에 가두고 “3년 동안은 어쩔 수 없다. 지금까지 부르던 노래 그만 두고 새로운 노래를 부르도록 연습하자.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참아야 한다.” 라고 말해야 할까 고민하는 처지가 되었다.

아이를 닦달하며 공부시키는 건 내 가치를 거스르는 행동이다. 지금까지 아이와 함께 추억을 쌓고 생각을 나누며 살아온 과정을 뒤집어야 한다. 대학이라는 필요는 아이를 기르면서 유지한 가치를 무시하고 내가 싫어하는 길을 가라고 강요한다. 한 번도 억지로 공부를 시키지 않았는데 이제부터는 공부해야 한다고 말하며, 아이가 공부하기 원하는 대한민국의 학부모가 되었다.

딸은 자기 속도로 공부하기 원했다. 친구들을 한 줄로 세우고 더 좋은 등급을 받기 위해 공부하는 건 싫다고 했다. 모의고사는 학교 석차를 알려주지 않아서 그나마 편안했지만 중간고사, 기말고사는 힘들어했다. 그래서 아이가 공부하기를 원하면서도 겉으로는 괜찮은 척, 공부 적당히 하라고 말했다. 시험 잘 치라고 스트레스 주지 않았지만 아이는 시험이라는 말만 들어도 싫어했다. 친구를 이겨야 하는 시험이라니~

뛰어, 뛰어. 정신없이 뛰어.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해안 절벽에 다다르면…… , 절벽! 하지만 못 서지. 수천 마리의 양 떼는 굉장한 속도로 달려왔기 때문에 앞에 바다가 나타났다고 해서 곧바로 멈출 수가 없는 거야. 가속도, 알지? 설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모두 바다에 뛰어들게 되는 거지. 그렇게 해서 한 번에 수천 마리의 양이 익사하는 사태도 발생한다니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 아니니?(47-48)”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은 계속 꿈을 꾼다. 어제는 요리사가 되겠다던 아이가 오늘은 기술자가 되고 싶다고 한다. 농부, 선생님, 디자이너도 넘본다. 계속 꿈을 꾸는 게 귀엽고 멋지다. 얘들은 운동장에서 실컷 뛰고 나면 또 새로운 꿈을 꾼다. 경쟁하지 말고 누군 천천히, 누군 빨리, 자기만의 속도로 꿈을 꾸며 제 길을 걸어가면 좋겠다. 꿈이 계속 바뀌는 초등학생을 응원한다. 방황하는 중학생, 지친 고등학생도 응원한다. 모두 함께 쉬고 이야기하며 천천히 꿈을 꾸는 날을 기대한다.

임원초등학교 도서관 리모델링을 할 때 조언을 해주었다. 공사가 끝난 뒤에 도서관을 살펴보러 갔더니 임원초 선생님이 독서 수업을 해달라 하셨다. 도서관이 바뀌어도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며 걱정하시기에 책 놀이 수업을 약속했다. 도서관에 있는 책을 찾고, 만지고, 놀이하면서 책에 관심이 생기기를 바랐다.

리모델링하기 전 모습

얼마 뒤에 임원초에 다시 가서 책 놀이 수업을 했다. 전교생 23명을 6모둠으로 나누었다. 책을 찾고, 책 내용을 짐작하고, 각자에게 어울리는 책을 알아내고, 책 무게를 재고, 책을 쌓았다. 아이들이 참 좋아했다. 3시간 동안 책 놀이를 하고 나오는데 독서 수업을 더 하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겨울방학 며칠 전에 독서 수업을 하러 갔다. 다만 독서토론 수업은 책 내용을 이해해야 하므로 3~6학년 아이들만 참여했다. 망나니 공주처럼을 꼭 읽어야 한다고 부탁했다. 3~6학년 17명 중 16명이 책을 읽었고, 6학년 한 아이는 조금만 읽었다. 4시간 동안 수업했다.

리모델링 후 모습

책 놀이로 5개 모둠을 만들었다. 2시간 동안 내용을 알아보는 놀이를 하면서 의견을 나눌 준비가 되었는지보았다. 놀이를 즐거워하지만 흐름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아이들이 놀이에 빠져 정답 찾기에 매달렸다. 놀이만 계속해도 비슷한 분위기겠고, 그렇다고 토의 활동을 하려니 준비가 되지 않아 보였다. ‘아이들에게 이 질문이 통할까?’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아이들이 준비되진 않았지만, 왠지 슬픔을 나누고 싶었다. <슬픔>을 주제로 질문을 몇 가지 했다.

1) 홀쭉이 왕이 왕국을 내팽개치고 돌보지 않은 까닭은?

아이들 모두 <왕비가 죽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서>라고 썼다.

2) 너희들은 언제 슬퍼? 지금까지 가장 슬펐던 일은 뭐야?

그야말로 들어가는 질문을 던져놓고 모둠에서 의논하라고 했다. 모둠에서 한 명이 나와서 발표했다. 아이들이 진짜 슬펐던 일을 내놓았다. 독서 수업하면 가끔 이런 일이 일어나는데 까닭을 모르겠다. 한 모둠씩 발표할 때마다 내 생각을 말해주었다.


이어지는 내용을 읽고 싶으면 강원도교육청 블로그를 찾아보세요.
blog.naver.com/ssam-tong/222204819007

 

망나니 공주처럼 독서수업(대면 수업)

#슬픔을_표현하는_방법나누기 ​임원초등학교 도서관 리모델링을 할 때 조언을 해주었다. 공사가 끝난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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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나니 공주처럼>으로 비대면 수업한 내용이 곧 소개될 예정입니다.

대학 4학년 때 학과 친구들 모두 지능검사를 했다. 우리나라 사람 몇이 모이면 IQ가 높아서 천재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 하나쯤은 나온다. 우리가 IQ 검사에 대한 추억을 내놓으며 설레발을 치자 교수님이 이 검사는 평균이 100 나온다. 너희도 평균 100 나올 거야. 검사 끝난 뒤에 보자.” 하셨다. ‘교육대학 학생이면 IQ가 꽤 높은데 평균 100이라니~’ 생각했다.

검사 결과가 나왔다. 20명 평균이 거의 100이었다. 가장 높은 친구가 118이었고, 가장 낮은 친구가 82였다. IQ가 가장 높은 친구와 가장 낮은 친구가 고등학교 동창이고, 같은 하숙집에 살아서 더 재미있었다. 둘이 같이 다녀야 IQ 100이라며 놀려댔다. 졸업할 때 학점은 IQ 82인 친구가 더 높았다. IQ 118인 친구는 지금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고, IQ 82인 친구는 교감으로 성실하게 교사들을 도와주고 있다. IQ는 그저 숫자에 불과했다.

중간만 하면 될까?

IQ학습준비도 검사이다. 고정된 학습 능력을 측정하는 도구가 아니다. 지능 이론의 대표 학자는 비네와 웩슬러이다. 두 사람은 지능을 다르게 정의했다. 사실 지능검사가 일반화된 건 미국이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쟁에 참여할 정도의 인식 능력을 가진 사람을 가려내기 위해 검사하면서부터이다. 한 사람이 얼마나 인식 능력이 있는지, 창의적인지, 합리적으로 선택하는지 등을 재는 건 처음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지능검사가 한 사람의 능력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되어갔다.

일단 검사를 실시하면 평균을 계산한다. 우리나라는 상대평가의 기반이 견고해서 평균을 따질 일이 많다. 평균보다 낮으면 무언가 해서 평균에 이르려 한다. 평균보다 높으면 평균으로 내려가지 않으려 한다. 평균은 되어야 하고, 기왕이면 평균보다 높아야 하고, 결국 평균 수준의 사람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정도가 되고 싶어 한다. 평균에 만족하는 사람이 적다. 지능의 획일성, 단순성을 깨뜨린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 이론조차 학원 광고에 이용할 정도로 뛰어나고 싶은 욕망이 크다. 이런 사회에서 평균은 중간이 아니라 최소한의 기준이 된다. 그럼 평균 이하의 사람을 무시하거나 얕보는 분위기가 커진다.

평균은 이용하기 편하다. 평균에 맞추면 일을 빠르고 편하게 한다. 평균 치수의 물건을 준비하면 조금 크거나 작아도 적당히 맞춰 쓴다. 각 개인에게 맞추려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서 효율성이 떨어진다. 군대에 갔다 온 사람은 동의하는 내용이다. 오죽하면 군대 가면 중간만 해라.”는 말이 있을까! 그렇다면 과연 평균(중간)만 하면 될까? 중간만 하면 된다는 말이 옳을까?

평균은 기준이 아니다.

평균의 종말은 평균이 허상이라고 주장한다. 재미난 사례가 나온다. 미국 라이트공군기지에서 4063명의 조종사를 대상으로 140개 항목의 치수를 측정해서 평균 치수를 산출했다. 이를 바탕으로 조종석을 설계했다. 평균 치수로 조종석을 만들면 대부분(적어도 다수)의 조종사가 정상분포 내에 포함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니얼스 중위가 키, 가슴둘레, 팔 길이 등 조종석 설계상 가장 연관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10개 항목의 평균값을 냈다. 평균값과의 편차를 30%로 넓게 잡은 뒤 평균과 조종사 개인 수치를 대조했다. 10개 항목 전체에서 평균 범위에 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0명이었다. 10개 항목 가운데 임의로 3개를 골라 평균치에 드는 조종사를 찾아봐도 3.5%밖에 안 됐다. 평균에 맞는 조종석은 아무에게도 맞지 않는 조종석이었다. 지금 비행기 조종석은 조종사 각자에게 맞추어 제작된다고 한다.

평균의 종말이 시작되었다.

평균의 종말3부로 쓰였다. 1부에서 평균이 기준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보여준다. 케틀레가 평균적 인간이라는 개념을 착안했고, 테일러가 표준화 시스템을 만들었다. 기업이 공장식으로 바뀌었고 학교도 평균 수준의 산업 일꾼을 길러내는 시스템의 일부가 되었다. 표준화 시스템은 기업에 이익을 가져다주었고 소비자들은 상품을 저렴하게 구입했다. 그 결과 평균을 바탕으로 한 표준화 시스템은 절대 불변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졌다.

평균의 시대는 두 가지 가정 위에 세워졌다. 첫째, 평균이 이상적이라면 개개인은 오류이다.(케틀레의 신념) 둘째, 한 가지 일에 탁월한 사람은 대다수의 일에서 탁월성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골턴의 신념) 평균주의 과학자로 오랜 기간 활동하며 업적을 쌓은 몰레나도 두 가정을 믿었다. 그러나 갑자기 떠맡은 강의 <지능검사의 이론과 방법을 주제로 한 토론식 수업>에서 삶의 방향을 바꿔놓을 순간이자 사회학의 토대를 흔들어놓게 될 순간을 체험한다. 이 체험은 평균주의가 실용적이고 효과적이기 때문에 수용되었지, 옳기 때문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주었다. 몰레나는 개개인을, 가장 중시되는 인간 자질에 따라 살피는 평가 도구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2장은 교육 혁명을 위한 개개인성의 원칙을 설명한다. 평균주의는 개인을 평균에 맞추어 개개인성을 평균으로 가둔다. 이는 다차원적인 인간의 재능을 단순하게 판단하고 측정한다. 저자는 들쭉날쭉의 원리, 맥락의 원칙, 경로의 원칙을 들어 이를 비판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구글의 인재채용법을 증거로 제시하는데 재미있다. 궁금하면 읽어보시라.

3부는 <평균 없는 세상>이라는 제목으로 개개인성을 바탕에 둔 기업을 소개한다. 월마트는 직원이 200만 명이 넘는 거대기업이지만 이직률이 50%에 달한다. 테일러주의식 효율성으로 기업을 운영하기 때문에 해마다 100만 명의 직원이 바뀌어도 신입 직원이 빈자리를 채운다. 코스트코는 2014일하기 좋은 최고 기업4년 연속으로 뽑혔고 구글에 이어 급여 및 직원 혜택 부문 최고 기업’ 2위에 올랐다. 직원의 88%는 회사가 지원해주는 의료보험에 가입해 있다. 급여는 월마트보다 75% 정도 더 높다. 그런데도 회사가 이익을 남긴다.

코스트코는 월마트와 반대로 개개인성에 관심을 갖고 회사를 운영한다. 직원을 찍어내는 게 아니라 정중하게 대우하고 공정하게 경력을 쌓도록 길을 열어준다. 그러면 뛰어난 성과가 따른다고 한다. 이는 시대가 변한다는 증거이다. 대장간에서 만든 호미가 외국 정원사들에게 팔려나가는 것만 봐도 증명된다. 이제는 테일러주의식 효율성을 앞세운 대량생산이 아니라 한 분야에 능통한 장인이 개성 넘치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시대로 바뀔 것이다.

교육은 바뀔까?

평균은 우리나라 교육에서 핵심 위치에 있는 개념이다. 우리나라 교육이 등급 매기기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이는 학생에게 평균, 즉 다른 모든 학생과 똑같이 하되 더 뛰어나야 한다고 강요한다. 평균으로 보여줄 수 있는 획일적인 영역에서 다른 학생보다 뛰어난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치르지만 정작 개인의 성장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학위 시스템 혁신, 성적 시스템 혁신, 자율 결정형 교육, 새 시대의 교육모델을 제시한다. 평균의 종말은 이 부분에서 아쉽다. 간단하게 슬쩍 이야기하다가 끝난다. 개개인성을 인정하자는 주장이 사회에서 꽃을 피우게 해주는 후속작이 나오면 좋겠다.

 

어느 시대, 어떤 집단을 막론하고 지도자의 중요성은 말할 나위가 없다. 지도자의 수준은 집단의 수준을 보여준다. 부패한 지도자가 많으면 시대가 암울해진다. 종교 지도자가 부패했던 중세 시대는 당연히 암흑기였다. 부패한 왕조는 무너졌으며 무능한 지도자는 백성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과학과 첨단기술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해도 지도자가 부패하면 백성은 고통 당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을 목자로 나타내신다. 여호와는 참된 목자이고 이스라엘은 양이다. 하나님은 지도자를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맡기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에서 선한 목자보다는 악한 목자가 더 많았다. 선지자들은 양떼를 파멸의 구덩이로 몰고 가는 지도자를 꾸짖고 질책하며 참된 목자이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외쳤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내 목장의 양 떼를 멸하며 흩어지게 하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23:1) 말씀하셨다. 양을 먹이고 돌보며 풍성하게 해야 하는 이스라엘 왕과 종교 지도자들은 자기 배를 불리며 양떼를 고통에 빠뜨렸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삯꾼이었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10:12)“

절판되었다. 안타깝다.

목자는 고상하지 않다.

목자는 양을 돌보는 사람이다. 우리는 목자를 아침에 양떼 데리고 풀밭에 나갔다가 저녁에 우리로 데려오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초록빛 풀밭에 양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맑은 물이 흐르는 냇가 나무 아래에서 하프를 타는 모습을 떠올린다. 이렇게 양을 돌보는 목자도 있다. 미국에선 넓은 풀밭에 울타리를 하고 양들이 자유롭게 노닌다. 목자가 편안하게 기타 치며 쉴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선 이렇게 하지 못한다. 이스라엘과 주변 지역에서 목자는 전혀 고상하지 않다.

유다 광야와 주변 지역에서 양과 염소를 치는 목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미지가 아니다. 우기에만 잠깐 흐르는 와디는 평소에는 말라 버린다. 비가 쏟아지면 홍수가 난 듯 물이 흐르지만 잠시뿐이다. 광야는 그야말로 광야다. 목자는 양떼를 이끌고 풀을 찾아 계속 움직인다. 푸른 초장을 찾아 떠도는 목자는 해마다 2400km를 옮겨다니기도(94) 한다.

광야에는 이리와 늑대가 호시탐탐 양을 노린다. 목자는 밤에도 깨어 가축을 지켜야 한다. 울타리 없는 광야 한가운데에서 약탈자들에 맞서 싸워야 한다. 목자가 잠들면 이리와 늑대뿐만 아니라 도둑도 양을 훔쳐간다. 저자는 목자가 애써 기른 양떼를 한꺼번에 훔쳐간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려준다. 저자가 만난 80여 세 된 예멘 목자 모쉐는 도둑들이 개들을 독살하고 양떼를 세 번이나 훔쳐 갔다고 말했다.(202) 그중 한 번은 250마리를 한꺼번에 도난당했다. 사법체계가 작동하는 현대사회에서도 이렇다면 성경이 쓰여지던 당시에는 얼마나 더했을까!

목자를 알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지도자를 목자로 설명하는 까닭을 안다. 진짜 목자가 어떤지 모르고 함부로 상상하면 잘못된 지도자상을 갖게 된다. 홀로 앞서가는 독단을 추진력과 리더십으로 착각하면 양떼는 흩어진다. 잘못된 지도자를 뽑으면 못된 짐승과 도둑이 올 때 양떼는 도적질당하고 죽고 멸망당한다(10:10)

목자가 되는데 필요한 자격조건은 무엇인가?

디모데 래니액은 하나님이 말하는 진짜 목자는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고 목자를 직접 찾아 나섰다. 21세기를 이끈 지도자에게 있는 자질을 찾아 <양떼를 잘 이끄는 목자의 7가지 특징>을 말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요르단, 팔레스타인 주변 지역에서 베두인 목자를 만나 목자에게 필요한 자격조건을 묻는다. 양떼를 몰고 사막과 광야를 오가며 이리와 맞서고 푸른 초장을 찾아다니는 진짜 목자를 만난다.

우리는 양떼를 보지 못한다. 대관령 양떼목장이나 삼양목장에서 방목하는 양떼와 소떼를 본다고 해도 실제를 알지 못한다. 사진에 담을만한 멋진 풍경의 일부로 양떼를 보고 올 뿐이다. 저자는 광야에서 꼴을 찾아다니며 온갖 위험을 이겨내는 진짜 목자를 만난다. 그만큼 당시 문화에 충실하다. 요르단 목자 아부-자말은 목자가 되는데 가장 필요한 자격조건은 목양을 위한 마음을 지니는 것이라고 한다. 저자의 아들이 양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걸 보고는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여기(광야)에 남겨 두라고 요청한다. 자기가 양 200마리와 아내를 주겠다며(64). 이야기를 들으면 모세가 이드로의 양떼를 치는 모습이 이해가 된다. 이드로는 모세에게서 목양을 위한 마음을 보았던 모양이다.

양은 시력이 나빠서 9-13m정도밖에 보지 못한다. 길을 잃으면 스스로 주인을 찾지 못한다. 불가능하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현장 경험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광야에서 우물의 중요성을 말하고 지팡이, 막대기, 양떼를 지키는 목양견, 이름을 붙인다는 의미, 약탈자와의 맞대결, 주무시지 않는다는 의미……을 말해준다. 읽으며 , 그랬구나. 이런 뜻이구나!’ 하는 이야기가 많다.

교과서로 배우지 않고 직접 겪어내는 사람이 목자다.

저자는 실제를 경험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추위를 견디며, 굶주린 이리 떼와 싸우며, 졸음을 떨쳐내고 양떼를 지키는 목자를 생생하게 전해준다. 교회 운영 매뉴얼, 지도자 자격시험이나 지도자 양육 프로그램이 아니라 목자를 말한다. 양떼를 이끄는 원리나 지도자가 되는 비결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목자가 어떻게 양떼를 이끄는지 읽으면서 지도자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깨닫게 해준다.

저자는 목자를 찾아 나섰다가 고대 암몬과 모압 지경을 나누는 산등성이 근처에서 양떼를 찾아냈다. 그때 만난 목자 아부-야스민에게 목양에 관해 배우기 원한다며 내가 댁의 양 일부를 구입하기 원하며 그래서 양떼를 돌보는 데 알아야 할 모든 것을 가르쳐달라고 질문하면~”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아부-야스민은 저자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통역사와 판매 흥정을 시작했다. 저자가 자기 입장을 설명해도 목자는 저자가 무얼 원하는지 몰랐다. 이때의 깨달음을 아부-야스민의 세계에서 사람은 목자로서 자라납니다. 베두인은 교과서를 쓰지 않습니다. 그들은 필요가 발생하는 대로, 그리고 저녁 화롯가에서 그들의 풍부한 교훈 가운데서 목양 기술을 전수합니다. 가르쳐 배우기보다는 터득하는 것입니다.(323)” 라고 적었다.

양떼를 이끌고 가르는 기술은 직접 양떼를 기르면서 배운다. 이 책 역시 양떼 기르는 기술을 말하지 않는다.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직접 양을 기르며 목자로서의 마음을 보여준 사람을 말한다. 광야에서 박사학위를 보고 목자를 선택하는 어리석은 주인은 없다. 진짜 목자는 양떼를 돌보는 모습을 통해서 자신을 증명한다. 지도자가 되는 비법이나 기술은 전혀 말하지 않지만 책을 읽으면서 참된 목자가 양떼를 이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 교회 지도자를 생각하며 읽자.

이 책은 40개의 장(chapter)으로 되어있다. 이스라엘과 근동 지역에서 양떼를 치는 목자를 찾아다닌 저자가 목자의 모습을 통해 성경이 말하는 지도자를 보여준다. 목자 지도자는 편하고 돈 많이 벌고 박수 받는 자리가 아니라 위험을 무릅쓰고 힘겹게 일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양을 사랑하고 함께 하는 귀한 사람이다.

각 장은 관찰-탐구-적용으로 되어있다. 현장에서 관찰한 내용을 성경에서 더 깊이 탐구하도록 이끈다. 성경이 말하는 목자의 뜻과 역할, 하나님이 원하는 목자, 선지자들을 통해 질책하는 목자의 모습……을 말한다. 정확한 관찰에서 나온 탐구내용이어서 깊이 다가온다. 현실을 바르게 이해하고 말씀을 탐구한 뒤에 적용을 실천으로 이어간다. 당장 무엇을 하자는 내용은 아니다. 목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목양을 위한 마음을 지니는 것이라고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행동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내용이다. 현장에서 직접 찍은 사진도 참 좋다.

한국 교회 지도자는 광야에서 진짜 양떼를 이끄는 목자를 닮지 않았다. 그럼 책을 읽으며 한국교회 지도자를 비판하거나 한탄만 해야 할까? 저자는 목자를 담임목사로 한정하지 않는다. 목사, 전도사, 사역팀장에게 멋진 지도자가 되라는 말은 전혀 없다. 우리 모두 목자의 마음을 알라고,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돌보신다는 걸 알려주려고 하지 않았을까! 또한 우리가 누군가를 목자의 마음으로 돌보고 사랑하라고 책을 쓰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책을 읽으며 한국 교회 지도자가 이런 모습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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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인격이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관계가 틀어지면 힘들어한다. 잠깐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힘들게 하면 재수 없다고 내뱉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날마다 봐야 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해석을 해야 한다. 오래도록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이 가족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살을 파고드는 아픔을 견디며 진주로 만들고 싶어도 너무 아프다. 가족이라 더 아프다. 곁에서 봐도 힘들고 멀리 떠나도 괴롭다. 도저히 해석하지 못할 상황이라면 하나님께 해석을 들으려 한다. “왜 이러시느냐고……

아버지와 엄마

저자는 엄마의 모습에서 예수님을 가장 많이 느낀다.(268)”고 말한다. 엄마는 사랑, 희생, 따뜻함을 나타낸다.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있으나 마나 한 느낌이 많다. ‘끔찍한 괴물, 차라리 없어지면 좋을 사람일 때도 있다. 잊고 돌아서면 그만인 남남이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든 해석하려 한다. 조금 떨어져서 보면 이해한다. “힘들고 어렵게 살아서 그럴 거야!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가까이 대하면 힘들고 어렵게 산 게 무슨 대수야? 왜 나를 힘들게 하는데……한다.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가 비슷한 상황에서 살았다면 갈등이 적을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기 쉬울 테니까. 그러나 부모가 살아온 시대와 자녀가 사는 시대는 다르다. 부모세대는 가난을 몸으로 겪어냈다. 사랑을 표현하는 세대도 아니었다. 밥만 먹여줘도 좋다고 생각했다. 자녀세대는 밥이 아니라 이해와 존중을 원한다. 말로 해도 이해하는데 왜 소리 지르고 때리는지 몰라 답답해한다. 주려는 것과 받으려는 것이 다르니 다툼이 생긴다.

대화로 다툼을 해결하면 좋겠지만 아버지는 대화를 어려워한다. 가난을 몸으로 부딪쳐 이겨내며 자식을 위해 희생했는데 머리 컸다고 또박또박 말대꾸 한다고 받아들인다. 집안의 기둥에서 점점 뒷방어른으로 바뀌어 가면서 화를 낸다. 자책하다가 자녀에게 폭발한다. 자기를 무시한다고 분노한다. 세파를 견디며 묻어둔 분노를 자녀에게 쏟아버린다. 소리치고 윽박지르고 때리고 집 밖으로 쫓아낸다. 이해하려고 시작한 대화는 분노와 좌절로 끝나기 일쑤다. “하나님, 왜 이러세요?”

무작정 떠나다.

인생은 하나님 안에서 나를 찾아 떠나는 단 한 번의 여행이다.” 표지 귀퉁이에 적힌 말이다. 자전거 타고 세계를 돌거나 히말라야 구석진 곳을 여행하고 쓴 책 같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여행기 같기도 하지만 저자는 다른 여행을 한다. 23살 아가씨가 아버지를 피해 옷장 안에 숨었다가 들켜 두들겨 맞고 한밤중에 맨발로 쫓겨나서 시작한 여행이다. 무조건 한국을 떠나려고 비자 없이 갈 수 있는 나라 찾다가 태국에 간다. 아는 사람도, 잘 곳도 없으면서 아버지 싫다고 비행기에 오른다.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가난하고 무더운 태국에 덜컥 가서 어쩌자는 건지……

머물 곳도, 아는 사람도 없다는 말에 여행사 직원이 전화번호를 하나 준다. 비행기를 처음 타는 지라 늦게 가서 놓치고 태국에서는 전화도 안 된다. 우연히 만난 한국 사람이 저자가 가진 번호를 안다고 한다. 그렇게 찾아간 곳은 태국 우돈타니 선교사 집이다. 바쁜 여름 동안 선교사 자녀 둘을 돌봐줄 보모 겸 한국어 선생으로 지낸다. ‘우연일까? 극적인 안내원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으로 병이 낫거나 실패에서 오뚝이처럼 일어선 이야기가 아니다. 가정폭력에 시달린 아가씨가 태국으로 도망가서 버티며 지낸 이야기다. 하나님이 안내원을 보내지 않았다면 비극으로 끝났을 수도 있다. 하나님 안에서 나를 찾는 단 한 번의 여행이 맞다. ‘하나님의 놀라운 우연을 보여주기 위한 책이 아니다. 상처와 위로가 부딪치며 생각에 생각을 낳는 이야기다.

여행과 사람

가슴에 암덩어리가 있는 사람도 피부에 가시가 박히면 가시와 씨름하느라 암을 잊는다. 가시가 빠지면 암이 느껴진다. 저자는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는 상처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이제 더 이상 가시에 찔리지 않아도 되는 곳에 오자 암덩어리가 느껴진다. 고통스러운 지난날이 자꾸만 생각난다. 힘들어하는 엄마, 어색해진 동생과의 관계를 되짚는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단번에 막힌 담이 뚫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낫지 않는다.

여행은 한 번에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문제에서 떠나 생각하게 한다. 여행하면서 계속 아픈 상처를 떠올린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놓치고는 태어나던 때를 생각한다. 아이 지우고 아빠와 헤어지라며 병원까지 데려간 고모를 피해 도망간 엄마가 남해 어느 시골에서 방바닥을 긁으며 수 시간의 산고를 견디고 자기를 낳았다. 홍콩 게스트하우스에서 미친 사람처럼 몸부림치며 운다. 태국에서 달을 보며 아빠와 가족 여행한 일을 기억한다. 행복했던 날 지나고 아빠가 사업에 망하고 쫓기고 도망하고…… 20살 되면 자살하기로 결심하고 수면제를 모았는데, 예수가 죽음을 이겼다는 말이 좋아 열심히 교회에 다녔는데, 다시 절망하고…… 아파하고 떠올리고 쏟아내고 무작정 걷고 사람을 만난다.

이보다 더한 아픔을 겪은 사람도 있다. 이만큼은 아니지만 버티고 견뎌내며 살지 않은 사람 없다. 그러나 낯선 타국,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거나 시험 받는 공간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저자는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과정을 기록한다. 내면의 변화 과정을 기록한 글을 만나서 반갑다.

하나님은 사람을 보내셨다. 기가 막힌 때에 만난 안내원 외에도 저자를 일으켜 세운 사람들이다. 상처와 아픔을 갖고 있으면서도 맑은 웃음을 보이며 사는 아이들! 베트남전에서 미국을 도왔다가 라오스에서 쫓겨나 태국에 난민으로 쫓겨 온 몽족 난민을 만난다. 오갈 데 없는 그들은 돌아가면 죽는 곳으로 다시 쫓겨 간다. 태국이 그들을 추방하기 때문이다. 방콕의 유명한 매춘거리에서 만난 16살 까니카! 에이즈 고아원에서 죽어가는 아이, 기차에서 만난 사람들…… 견뎌내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 밝은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일어선다. 과거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일어나 현실을 직면할 용기를 얻는다. 딱 한 명을 고르라면 여행사 직원을 최고의 안내원으로 뽑겠다. 무작정 떠나는 상처 받은 영혼에게 선교사 전화번호를 줬다. 다시 돌아올 줄 알았는지 비행기 티켓도 왕복으로 끊어줬다. 저자가 돌아올 때를 딱 맞춘 6개월 오픈 티켓!

변화

저자는 지금 태국에서 산다. 우돈타니에 선교활동 하러 온 정환(저자의 이름처럼 가명일 것이다.)과 결혼하고 태국에 왔다. 남편은 번역하고, 저자는 인터넷 소설을 쓰고 있다. 정환과 결혼하고 아빠 곁을 도망쳐 나온 건 아니다. 한 대 칠 것 같은 분위기 견디며 싸우고 싸웠다. 아버지가 윽박지르고 소리 지르면 예전처럼 옷장에 숨지 않고 맞섰다. 또 때리면 그 길로 나가버릴 거라고도 했다. 자기 생각만 하며 안으로 가라앉을 때는 아빠에게 맞서지 않았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간 상처는 곪아 자신을 죽이고 상대에게도 악취를 풍겼다. 아버지를 무서워하지 않고 생각을 말하면서 오히려 아버지를 더 이해하게 되었다. 의견이 달라 싸우지만 미워하진 않는다. 다시는 아버지 만나지 않으면서 나는 용서했다. 안 보니 편하다하거나 나는 용서 받았다. 당신도 용서 받아라.’라고 해도 사실은 용서하지 못해서 끙끙대는 거다. 영화 밀양에서 아이를 죽이고도 태연히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셨다고 말하는 용서는 용서가 아니다. 혼자 적을 쓰러뜨리거나 적 앞에 엎드리는 용서는 용서가 아니다. 용서는 십자가를 대가로 치러진 선물이다.

이 책은 <복음과 상황>에 연재되었다. 잡지 받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읽었다. 책으로 읽을 때보다 좋았다. 다음에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 어떤 생각을 할지 두근거리며 한 달을 기다렸다. 책 한 권으로 단숨에 읽으니 긴장감이 덜하다. 저자가 오래도록 견디며 진주로 만든 고민을 단숨에 읽어서 그런가 보다. 영화 한 편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휘리릭 본 것 같다. 천천히 읽어야 한다. 소설 읽듯 읽지 말고 나라면 어땠을까?’ ‘나도 이런 생각 하는데……’ ‘, 이랬구나!’ 하면서 읽어야 한다.

용서를 고민하는 분에게 추천한다.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는 존재에게 상처 받고 배신당하고 관계가 깨져 몸부림치는 분에게 추천한다. 맞서 싸우지 못해서 속으로 끙끙대며 괴로워하는 문제를 가진 분에게 추천한다.

글은 억울한 사람이 쓰는 거다. 무서워서 말할 수 없었던 사람, 두려워서 숨어야만 했던 사람, 감정이 체한 사람, 가슴이 곪아 고름을 품고도 뽑아내지 못했던 사람이 기어이 쓴다!’”(202-203)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건, 그가 한 일을 잊어주거나 덮어주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건 일그러졌던 관계를 다시 바로 세우는 과정이다. 포기하지 않고, 뒤돌아서지 않고, 사랑을 향해 같이 걸어가는 일이다.

아버지와 씨름한 만큼 나도 변했다. 우리 사이에 억눌린 분노가 서로를 괴물로 만들었다면, 상처를 이야기하고, 아프고 화난 만큼 울어버리고, 다시 사랑하고 싶다고 말한 순간들이 서로의 가슴 안에 박혔던 독기와 가시를 하나씩 빼주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버지도 나도 고집스럽고 한심한 인간들이다.”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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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받지 않고 무보수로 10년 동안 주말 독서 모임을 운영했다.
수능 시험 날, 독서 모임에 나온 학생 둘에게 문자를 보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흔들리기 마련이다. 
파우스트에 나온 문장이다.
지금까지 성실하게 노력했지!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가 따를 거야.
응원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다고 했어.
하늘의 평안이 함께 할 거야.
오늘 힘내라.>>

2020년 2월, 고3이 되는 독서반 학생들에게 밥을 사주었는데 
자기 용돈 모아 샀다며 홍삼 제품을 가져온 학생이 있다.
그 학생이 오늘 새해 인사를 문자로 보내왔다.
“그래, 이 맛에 아이들 가르친다. 이게 보상이지!”
학생에게 전화해서 대학 가기 전에 밥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숙제를 내줬다.
“나와 함께 한 독서 모임이 어땠는지 쓰고 대학 가라!”

2년 전에 평생 간직할 편지를 받았다.
지난해에도 고등학교 졸업하는 학생에게 귀한 글을 받았다.
이 학생은 어떤 글을 써줄까?

내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큰 즐거움 중 하나다.
글에 대한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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