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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1일, 할머니가 전화로 고맙다고 인사했다.
이 맛에 선생 한다.
1. 지혜란 무엇인가? (송민원, 244쪽)
완전히 새로운 관점으로 해설했다. 30년 전, 박영선 목사님의 책 『하나님의 열심』을 읽고 눈이 번쩍 뜨였던 때의 느낌이 다시 생각났다. 이분이 신학교 교수가 아니라 일반인을 만나는 강사로 살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참 멋지다.
잠언-욥기-전도서를 규범적 지혜와 반성적 지혜로 설명한다. 잠언은 규범적 지혜를 보여준다. 잠언을 읽는 방법과 문법을 소개하고 몇 구절에 대한 해석을 다룬다. 잠언은 전체를 읽는 관점을 찾기 어려운 책이다. 그래서 ‘히브리어 해석’ 분량이 많다.
욥기와 전도서 해설이 굉장하다. 욥기 전체를 규범적 지혜와 반성적 지혜의 대립으로 해설한다. 이것만으로도 정말 탁월하다. 특히 욥기 1~2장, 38~42장 해설이 특별하다. 책값이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이 부분 읽으며 책값 다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설명하던 방식을 완전히 뒤집는다.(궁금하면 읽어보시라!) 읽는 부분마다 좋아서 줄을 너무 많이 그었다.
전도서도 정말 탁월하다. 내 나이만큼 성경을 읽었고, 꾸준히 공부하고 묵상했는데도 ‘어떻게 이런 질문을 할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잠언과 전도서를 비교하는 부분은 상상도 못 한 내용이 계속 나와 계속 감탄하며 읽었다. 정말 최고다!
2. 우리가 몰랐던 1세기 교회 (박영호, 264쪽)
성경을 해설하는 좋은 작가가 계속 나온다. 내용이 참 좋다. 1세기 교회 상황을 설명하며 성경이 어떤 뜻인지 알려준다. 우리가 생각한 이상적인 모습으로서의 초대 교회가 아니라 실제로 그들이 모인 곳, 예배 형식, 교회의 문제, 사회에서의 영향, 당시 사회의 반응을 드러내어 밝혀준다. 서신서를 읽을 때 참고하면 도움이 많이 되는 책이다.
3. 그 틈에 서서 (박윤만, 430쪽)
누워서 설렁설렁 읽으려다가 ‘어이쿠!’ 놀라 밑줄 그으며 읽었다. 참으로 좋은 책을 만났다. 그동안 읽은 기독교 서적은 비슷한 내용에 약간씩 다른 설명이 많았다.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눈으로 성경을 설명한다. 프레드릭 뷔크너를 볼 때처럼 새로웠다. <생명이 틈으로 시작한다>는 프롤로그도 좋았고, <동터 올 나라를 기다리며>라는 제목으로 설명한 구약이 진짜 좋았다. <이미 도래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라>라는 제목의 신약도 좋았다. <이미와 아직, 그 사이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마지막 장이 그나마 보통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사실 이 부분도 좋았다. 성경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꼭 읽으라고 권해드린다.
4. 성경 지리 주석-사복음서 (배리 베이첼 편집, 451쪽)
예수님이 태어나고 자라고 다녔던 장소를 중심으로 해설한 주석이다. 지리와 역사를 바탕으로 성경을 사실에 맞게 해설하려고 노력했다. 지도와 사진이 예수님이 살던 당시 현장으로 데려가는 것 같다. 복음서 이야기가 펼쳐진 장소를 알면 예수님이 겪은 일을 사실에 가깝게 이해할 수 있다. 성경 공부에 도움이 되는 책이다. 이런 책을 읽는 평신도가 많아지면 교회가 더 건강해지리라 생각한다.
5. 오늘을 위한 레위기 (김근주, 639쪽)
김근주 교수가 쓴 레위기 해설이다. 구조를 분석하고, 성경학자들의 의견을 정리하고 반박하며, 원어의 뜻을 풀이하여 설명한다. 레위기를 공부하기에 정말 좋은 책이지만, 꼼꼼하게 해설한 책을 읽지 않았던 분들에겐 힘들 수 있다. 이런 책을 읽는 그리스도인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동안 내가 알던 레위기가 다르게 다가왔다. 이미 끝나버린 제사 제도를 써놓은 책이 아니라 오늘도 영향을 주는 은혜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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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학교에 가서 ‘샬롯의 거미줄’로 토론 수업을 보여주었다. 수학이나 과학처럼 정답 찾는 수업도 부담스러운데, 처음 만나는 아이들과 토론하는 모험을 했다. 토론은 상호작용이 잘 일어나야 한다. 담임교사가 “그분 오시면 발표 잘하고 적극 참여해라” 한다고 되지 않는다. 내용 이해 활동만 하다 끝날 수도 있다. ‘정답 맞추기 그만하고 아이들과 이야기하라’고 외치고 싶어서 모험을 했다.
두 편으로 나눠 번갈아가며 윌버와 관련된 내용 말하기 시합을 했다. 토론해도 될 정도로 대답을 잘한다. 긴장이 풀리며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샬롯은 윌버에게 소중한 친구다. 샬롯이 윌버를 소중하게 대하지 않았다면 윌버는 살지 못했을 거다. 윌버는 펀에게 소중한 돼지다. 펀이 윌버를 살리려 애쓰지 않았다면 윌버는 틀림없이 죽었다. 어려움에 처한 누군가에게 친구가 되어주는 일이 얼마나 귀한지 보여주려고 E. B. 화이트가 ‘샬롯의 거미줄’을 썼다고 생각한다. ‘소중한 것’을 이야기해야겠다.
펀이 윌버를 어떻게 만났는지 물었다. 아빠가 죽이려는 무녀리를 펀이 살려주었다고 대답한다. 무녀리를 살려야 하느냐 물으니 다 살리겠다고 한다. “모두 살려야 한다고 말하니 내가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겠다. 너희들 모두 다 덤벼라. 내 의견을 꺾어봐라.” 했다. 논리에 맞는지 따지지 않고 덤벼든다. 독서토론을 해보지 않은 아이들이라 동네싸움 하듯 따진다. 이렇게 두면 계속 가벼운 논리에 감정만 실어 소리를 높이겠구나 싶어 다른 질문을 했다. 이쪽 길은 막혔으니 돌아가는 길을 찾아야지.
“펀은 버스 안에 있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 창밖만 내다보며 세상이 너무 아름답고 ( )를 혼자 차지하게 되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했다.(16쪽)” ( )에 들어갈 내용을 물어보니 윌버라고 한다. “맞아. 윌버지. 이게 너희들 이야기라고 생각해보자. 너희는 무얼 차지하면 세상이 아름답게 보일까?” 했더니 허황된 답을 말한다. “세상을 다 갖고 싶다. 학교를 갖고 싶다.” 한다. “아니,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 현실에서 가능한 걸 말해보자” 했더니 “최신 핸드폰, 죽은 고양이 나비가 다시 살아오면 좋겠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한다. 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아이가 많다.
죽은 고양이 대답을 듣고 준비한 질문 순서를 바꾸었다. 토론을 처음 하면 준비한 질문을 그대로 하는 실수를 한다. 초보는 준비한 과정에서 벗어나기 어려워한다. 예외가 생기면 어떻게 감당할지 모른다. 아이들이 관심 가지는 내용으로 자연스럽게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생님이 정답을 유도하는 것처럼 느낀다. 자기들이 관심을 두는 이야기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억지로 정답만 말하게 된다. 토론을 잘하려면 아이들 대답에 맞게 물 흐르듯이 토론을 이끌어야 한다.
독서토론이 생소한 사람은 눈앞에 있는 질문에만 집중해서 아이들을 어디로 이끌고 가야할지 모른다. 그러면 어떤 날은 굉장히 좋다가 다른 날에는 토론 망쳤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 대답이 다른 가치를 따라갈 때, 그걸 존중하고 발문 자체를 그쪽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은 아이들이 어떻게 대답해도 계속 ‘무녀리를 살려야 하나?’ 물을 것이다. 아이들이 어디로 빠지더라도 ‘무엇 때문에 살아갈 가치가 있나?’를 물을 것이다. 토론을 처음 하는 아이들은 가벼운 생각을 계속 늘어놓는다. 다 받아주면 즐거운 시간 보내고 끝이다. ‘깊이’를 맛보게 하려면 한 가지를 깊이 나누어야 한다.
죽은 고양이 나비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게 소중한 것’을 제대로 토론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질문을 바꾸었다. “정말 소중하게 여기는 것, 그걸 위해서라면 위험한 일이라도 할 마음이 있는 대상을 소개해 보자.” 키우고 있거나 키워본 애완동물을 주로 말한다. 아파서 죽은 동물, 처음부터 약하게 태어나서 죽어간 동물도 있다. “좋아하는 동물이 힘들어하고 고통당하는 걸 봤잖아. 마음이 힘들었지? 그럼 태어날 때 죽는 게 낫지 않았을까? 동물도 고통당하지 않고 너도 힘들지 않잖아!” 하니 그것도 괜찮겠다고 한다. “약하게 태어나서 고통당할 거라면 죽이는 게 낫지 않을까?”를 다시 물었다. 3/4이 찬성한다.
아이들이 ‘죽는 게 낫다’고 말하도록 유도하지 않았다. 그건 나쁜 태도이다. 윌버를 당연히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왜 그래야 하는지, 죽는 게 나은 건 아닌지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죽여야 한다’고 말했다면 반대로 ‘살려야 할 이유’를 생각하도록 계속 자극했을 것이다. 무조건 옳다는 생각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토론은 누가 더 조리 있게 내세우는지 알아보는 시합이 아니다. 토론은 생각하는 공간을 제공한다. 토론해서 생각이 바뀐다면 정말 좋은 토론이다. ‘설득’이 아니라 ‘이해와 경청, 용납’이 더 중요하다. 나는 계속 ‘어떨까? 아닐까? 그럴까?’ 하며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도록 물었다.
“우린 ‘아프고 고통당하며 힘들어할 거라면 죽는 게 나을까? 아프고 힘들더라도 추억을 나누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게 나을까?’를 생각했어. 처음에 너희는 살리는 게 당연하다 말했지. 그러다가 자기가 키운 애완동물이 죽은 경험을 말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어. 생각이 바뀌었다는 점이 중요해. 우린 펀의 아버지 입장에서 죽이느냐 살리느냐를 고민한 거야. ‘샬롯의 거미줄’을 쓴 작가는 죽여야 할 돼지를 살리기 위한 대안이 있었어. 그게 뭐지?”
“힘들고 어려워도 친구가 도와주면 이겨낼 수 있다는 거예요.” “누가 어떻게 도와줬어?” “펀은 아빠가 윌버를 죽이려 할 때 살려줬어요.” “어떻게 살려줬는지 과정을 말해봐.” “죽이지 말라고 말했어요.” “아빠를 설득하려 했구나! 또? 말만 했어?” “아빠 도끼 붙들고 못 죽이게 말렸어요.” “그래, 행동도 했구나! 말만 하지 않고 행동도 했단 말이지! 다른 의견은 없을까?” “샬롯은 거미줄을 만들어줬어요. 동물들이 윌버를 위해 회의를 했어요.~”
독서토론이 잘되면 물이 바다로 흘러가듯 저절로 어떤 결론을 향해 흘러간다. 나는 토론이 이렇게 흘러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발문도 이렇게 하지 않았다. 내가 준비한 마지막 발문은 ‘일찍 일어나는 사람에게 어떤 행운이 생겼나?’ 이다. 다분히 교사다운, 열심히 하자는 대답을 이끌어내는 질문이다. 물론 토론할 때는 이 질문을 하지 않았다. 독서토론이 ‘삶에서 무엇이 소중한가? 한 존재의 삶을 귀하게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로 흘러가는데 ‘일찍 일어나는 사람’ 꺼내는 건 말도 안 되는 짓이다.
“그럼 작가는 윌버를 왜 살렸을까? 무얼 말하고 싶었을까?” “친구들이 도와주면 윌버도 살 수 있어요.” 그래, 이게 핵심이다. 고통, 상실이 크더라도 함께 추억을 나누고, 위로하며, 행복한 기억을 갖게 해준다면 죽이는 게 나았다는 생각 자체가 의미 없어진다. 결론은 중요하지 않다. 토론이 아이에게서 무엇을 끌어내는지가 중요하다. 토론한지 30분 만에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말한다. “만약 왕따 같은 일로 고통당하는 아이가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할 때 어떻게 하지?” 망설임 없이, 곧바로 “샬롯처럼 친구가 되어주면 된다.”고 대답한다. 상처와 상실을 추억과 기쁨으로 바꿔주면 윌버는 살아난다.
모르는 아이들과 독서토론 한다고 했을 때 걱정했다. 토론이 잘되지 않으면 ‘아이들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토론이 안 됐다.’고 말하겠다고 변명까지 생각해뒀다. 그러나 토론하면서 독서토론이 얼마나 좋은지 더 확신했다. 마지막 질문을 했다. “너희는 1학년부터 계속 같은 반이었잖아. 서로 싸우기도 하고 화해도 하고 좋아졌다 싫어졌다 하며 지내왔지?” 모두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 “그럼 우리, 서로에게 고백해볼까? 샬롯이 윌버에게 '대단한 돼지, 겸허한 돼지'라고 말한 것처럼 친구에게 ( ) 친구라고 말해보자 했더니 “우리반을 즐겁게 만드는 ○○○ , 비밀을 지켜주는 ○○○, 청소를 잘 도와주는 ○○○ ”이라고 칭찬한다. 칭찬이 사랑 고백처럼 이어진다. 정말 따뜻한 시간이었다.
원고 23. 우리 모두 틀림없이 다르다 (0) | 2021.1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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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22. 트럼펫을 부는 백조 루이 (0) | 2021.12.26 |
원고 21. 이누이트가 되어라. (0) | 2021.12.26 |
원고 20. 창경궁 동무 (0) | 2021.12.26 |
원고 19. 학급문고 (0) | 2020.11.01 |
인권을 다룬 책이다. 1장. 인권이 뭐예요? 2장. 세상을 바꾼 인권의 역사, 3장. 세계 인권 선언, 4장. 희망을 만들어 가는 우리 이웃 이야기, 제목만 봐도 딱딱하다. 부모와 함께 의식주 걱정 없이 사는 아이들에겐 우리와 상관없는, 책에나 나오는 이야기이다.
독서반 아이들 모두 한 번씩 읽어왔다. 동화책은 두세 번 읽기도 했지만 인권 책은 재미없겠지. 똑같이 한 번 읽었으니 평소 책 읽는 습관을 알아볼 기회다. 내용 파악 문제 14개를 줬다. 1. 결손 가족이라는 말에 대해 저자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2. 우리 주위에서 인권과 관련된 현상을 찾아보자. (예: 왕따) …… 10. ‘잊힌 죄수들’을 기억하자는 뜻으로 시작된 세계 최대 인권 단체는 무엇인가? 11. 세계 인권 선언은 2차 대전에서 일어난 일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어떤 일인가?
“반만 맞춰도 대단하다”고 말하고 시작했지만 실망이다. 책 좀 읽는다는 아이들이 3-4문제 맞췄다. 엄마에게 등 떠밀려 온 다섯은 1-2문제 외엔 다 모른다. 무슨 말인지 모르면서 억지로 읽었다. 평소에 책을 다양하게 읽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6학년 한 아이만 12 문제 맞췄다. 아이는 평소에 인권에 관심을 가진 것도 아닌데 내용을 대부분 기억한다. 불법 체류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왜 참는지, 님비현상이 무엇인지 안다. 전제정치와 왕권신수설도 알고 두 나라가 싸울 때 상대 국가 물건 불매운동을 벌이는 이유도 안다. 로자 파크스와 세계 인권선언도 안다. 책에 나오는 ‘사직동 그 가게’가 티베트 사람을 위해 일하는지도 안다. 한 번 읽고 이 정도 알다니 놀랍다.
“한 번 읽고 어떻게 내용을 다 알까?” 물었더니 친구들이 “얘는 똑똑하잖아요.”, “평소에 책을 많이 읽어서 그렇겠죠.” 라고 대답한다. 당사자는 “별 생각 없이 읽었는데 그냥 기억이 나요.” 한다. “얘는 책 한 번 읽고도 내용을 잘 알고 있어. 비법을 알려줄까? 한 번만 읽고도 기억하면 좋잖아?” 하니 궁금해 한다. “최신 음악을 한 시간 동안 듣는다고 해보자. 나, 너희, 작곡가나 가수가 들으면 얼마나 기억할까?” 나는 최신 음악을 거의 모르기 때문에 “쟤들 왜 저래?” 할 거라고 한다. 자기들은 나보다 많이 기억하겠지만 작곡가나 가수보다는 모를 거라 한다.
음악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은 음악에 대해 풍부한 배경지식을 갖고 있다. 같은 노래를 들어도 배경지식이 풍부한 사람은 많이 보고 많이 느낀다. 책을 한 번 읽고도 잘 아는 까닭은 배경지식을 많이 알기 때문이다. 어려운 내용을 읽어도 관련된 이야기와 내용 즉 배경지식이 떠오르면 쉽게 이해하고 오래 기억한다. 배경지식을 많이 알면 쉽고 빠르게 배운다. 책을 많이 읽더라도 한 종류만 읽지 말고 여러 분야를 골고루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겪어본 걸 하면 생소한 걸 할 때보다 잘하기 마련이다.
연세 드신 분들은 튀김을 먹을 때 “몸에 나쁘다고 하지만 그래도 튀김은 역시 식용유에 튀겨야 제맛이지!” 한다. 식용유에 튀긴 음식이 맛있다기보다는 오래도록 식용유에 튀긴 음식을 먹어 입맛이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고향’하면 떠올리는 풍경도 사람마다 다르다. 자기가 겪은 고향을 생각한다. 책은 온갖 이야기를 접하게 한다. 배경지식이 있으면 처음 만나는 내용에서도 구수한 고향 맛이 떠오르게 한다. 이해하지 못할 어려운 이야기가 전에 먹어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이건 굉장한 보물이다. 내가 독서반을 하는 까닭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친구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이다.
아이들이 인권 내용을 어려워해서 둘째 시간에도 내용을 파악했다. 1장, 인권차별 사례를 내용에 따라 정리했다. 신분제도, 결손가족, 학교폭력, 여성 차별, 종교, 불법체류자, 장애인 관련 차별 사례를 찾아 이야기했다. 사례들의 공통점을 찾아 인권 침해의 원인을 알아봤다. 영국, 미국, 프랑스, 한국, 러시아의 인권 역사는 어려워해서 아이들이 질문하고 내가 대답했다. “너희가 묻지 않으면 내가 묻고 너희가 대답해야 한다.” 했더니 잘 묻는다. 그래도 모르는 내용은 아이들이 알고 있는 배경지식에서 답을 찾아가도록 인도했다. 질문을 쉽게 바꿔서 묻고, 관련 내용을 묻고, 질문을 이해하도록 다른 내용을 연결해서 물었다. 이렇게 하면서 저절로 책 내용을 이해하게 도와주었다.
셋째 시간에는 인물을 중심으로 토론했다. 마틴 루터 킹, 로자 파크스, 넬슨 만델라, 왕가리 마타이, 파키스탄의 아이 이크발이 겪은 일을 살펴보았다. 넬슨 만델라가 감옥에 갇혀 지낸 모습을 이야기하면서 “여러분에게 진짜 자유를 준다면 무얼 하고 싶어?” 물었다. “잠자고 싶다. 그냥 가만히 있고 싶다. 놀고 싶다. 텔레비전 실컷 보고 싶다.”고 한다. 강원도 아이들이 이 정도라면 서울과 대도시 아이들은 어떨까?
44쪽에 가수 데프콘이 부른 <힙합 유치원>이라는 노래 가사가 실려 있다. 경쟁에 시달리며 자유롭게 지내지 못하는 가사가 자기들 이야기 같다고 공감한다. 당장 자기 마음을 둘 곳을 찾기 어렵다면 대단한 이야기를 읽어도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로 읽을 것이다. 인권을 배우면서도 인권을 누리지 못하는 아이, 인권책을 읽으면서 자기 이야기로 받아들일 생각조차 못하는 아이가 얼마나 많을까! 인권의 역사만큼 ‘지금 내가 누리는 인권’이 중요하지만 느낄 기회를 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인권을 모른다.
만델라는 ‘나는 내 영혼의 선장’이라고 외치며 감옥에서 인권을 빼앗긴 채 소망 없이 지내는 시절을 견뎌냈다.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나누고 “너는 네 영혼의 선장이니? 누가 네 영혼의 선장이야?” 물었다. 지금 우리는 아이를 인권이 아니라 돈과 성적, 운동 실력 따위로 평가한다. 평가는 다른 사람을 깔보게 만들고, 자신을 비하하게 만들었다. 저마다의 배를 이끌어 대양을 향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지 못하도록 짓누른다. 그래서 ‘네가 나가고 싶은 대양을 생각해보라’는 뜻으로 물었다. 스스로 영혼의 선장이라고 외치는 아이는 없었지만 자신의 영혼을 누가 이끌어 가는지 고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영국은 명예혁명으로, 프랑스도 혁명으로 자유를 누렸다. 그렇게 얻은 자유로 약한 나라의 자유를 빼앗았다. 인권을 소중하게 여긴 역사를 가진 나라가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힘으로 밀어붙이고 차별했다. 지금도 국제 관계, 외교 관계는 만델라를 감옥에 가둔 힘의 논리가 앞선다. 강자는 자기 이익을 위해 세운 기준을 내세워 차별한다. 약자, 소수, 남과 다른 특징을 가진 사람은 괴롭힘을 당한다. 그래서 모두 다수, 강자에 끼기 원한다. ‘나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한다. 만델라는 나만의 자유가 아니라 ‘나와 너가 함께 누리는’ 자유를 원했다. 우리나라에는 다툼과 분열이 많다. 그러기에 더욱 나와 네가 함께 누리는 자유를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인권’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예상대로 인물의 일대기를 요약하는 글이 많았다. 그러나 평소에 마음을 내보이지 않던 두 아이가 마음을 털어놓았다. “어린이는 어른들의 꼭두각시이고 어른들은 어린이들을 조종하는 리모컨 같다. 우리 어린이들도 인권이 있고 권리가 있는데……(최윤정, 정라초 5),” “어른들도 어린이의 말을 좀 들어주면 좋겠다. 어른들도 한때는 우리처럼 어린이였을 때가 있었다. 어른들이 어린이일 때도 지금의 우리처럼 같은 생각을 한 번씩은 해봤을 것이다. 이 상황을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라고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김해인, 정라초 6)” 두 아이 글을 읽고 어렵지만 인권 책을 나누기 잘했다고 생각했다. 부모와 교사가 아이들을 ‘모두 틀림없이 다른 독특한 존재’로 바라본다면 두 아이처럼 생각하는 아이가 줄어들겠지. 자기 문제를 뛰어넘어 아이들이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날이 가까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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