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문장 속으로의 여행 (2009년 6월 좋은교사 책 소개글)

하나님을 향한 여정, 요단 - 프레드릭 뷰크너 
통쾌한 희망사전, 복 있는 사람- 프레드릭 뷰크너

 

원래 뜻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낱말을 읽고 싶어요.

예수님 시대에 태어났다면 저는 바리새인이 되었을 겁니다. 곧이곧대로 규정을 들이대는 면에서 그렇습니다. 지금은 하나님 은혜를 받아, 규정을 주로 제게 들이댑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다른 사람에게 그 규정을 많이 들이댔습니다. 물론, 소심하고 용기 없는 성격 탓에 다른 사람에게 버거운 짐을 지운 적은 별로 없습니다. 이런 성격은 어떤 면에서는 좋게 작용하기도 합니다. 그 중 하나가 낱말이 가진 본래 뜻에 대한 집착입니다. 낱말의 의미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집사를 살펴봅시다. 성경에서 말하는 집사와 한국 교회에서 말하는 집사는 다릅니다. 저는 지금 이 시대에서 살기 때문에 한국 교회에서 말하는 집사에 해당하는 뜻을 받아들이면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못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뜻 그대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교사도 그렇게 보고 좋은 교사도 그렇게 봅니다. 그러니 저는 집사 수준도 못 되고 좋은 교사와는 거리가 멀지요.

낱말이 가진 본래 의미를 따지다 보면 세상이 삐딱해 보입니다. 세상에 쓰이는 낱말 중에 원래 뜻을 가진 낱말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필립 얀시는 은혜(grace)’가 본래 뜻이 겨우 남아있는 몇 안 되는 낱말 중 하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은혜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내가 은혜를 받은 경험이 풍부해서가 아니라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거저 주는 선물이라는 낱말의 본래 뜻이 좋아서 그렇습니다.

이런 제 성향에 맞는 책은 낱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사용한 사람들 작품입니다. 그렇다고 딱 맞게 설명했다는 건 아닙니다. A=B라고 말하기보다는 A, B의 뜻을 정확하게 설명함으로 차이가 저절로 드러나게 하는 작품입니다. 바리새인에 대한 설명을 한다면

모세의 율법은 바리새인들의 율법이 돼버렸고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로울 수 있느냐는 질문은 안식일에 틀니를 끼는 것이 적법하냐로 바뀌어 버렸다.”

라고 쓰는 경우죠. 동시에 행간에 내용이 풍성하게 담겨 있다면 더할 나위 없지요. 이 문장은 통쾌한 희망사전이라는 책에서 메시아를 설명하는 곳에 나와 있습니다.

 

삐딱한 그리스도인을 위하여

프레드릭 뷰크너는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입니다. 관계대명사를 줄줄이 이어 글을 쓴다는데 저는 영어 실력이 안 돼서 잘 모릅니다. 여러 낱말의 뜻을 잘 살리지 않으면 그렇게 이어지는 문장을 통해 의미를 전하기 어렵겠죠. 퓰리처상을 비롯한 여러 작가상에서 수상하였거나 후보로 올랐다니 문장 실력은 대단한가 봅니다. 한글로 번역한 내용만으로도 탁월한 문장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 중에서도 한 문장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읽게 만드는 분이 있는데 뷰크너가 그렇습니다.

통쾌한 희망사전이라는 제목 앞에는 <삐딱한 그리스도인을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어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여 그분처럼 되기로 애쓰는 사람들인데 지금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부르는 낱말이 되었습니다. 뷰크너가 삐딱한 그리스도인이라 지목한 사람들은 생각이 어긋나서 삐딱한이라는 뜻이 아니라 고민하기 때문에 삐딱하게 보이는이 아닐까요? 낱말의 본래 뜻을 살아내기 위해 고민하기 때문에 생각이 삐딱하게 보이는 사람들 말입니다.

이 책은 낱말을 해설한 사전입니다. 그렇다고 A=B라고 설명하는 사전은 아닙니다. 뷰크너가 생각하는 낱말의 뜻을 자기 경험과 생각으로 풀어 쓴 사전입니다. 예를 들어 기쁨에 대한 설명은 이렇습니다.

행복은 대개 우리가 예상한 곳에서 등장한다. 멋진 결혼, 좋은 직장, 즐거운 방학 등. 한편 기쁨은, 그것을 유산으로 남긴 분을 닮아서인지 못 말릴 정도로 예측불허다.”

이런 식으로 160여 개 낱말에 관한 생각을 적어놓았습니다. 찬양이 무엇인지 창조는 어떤 의미인지, 하나님은 누구이고 목사는 무얼 하는 사람인지 고민한 분이라면 이 책이 정말 재미있을 겁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자주 웃었습니다. 동의한다는 뜻이죠. 같은 고민을 이렇게 풀어놓은 분께 대한 존경이죠. 웃음이 존경일 수 있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자주 느꼈습니다. 또한 몇 번이나 같은 문장을 읽게 만드는 재주가 있습니다.

 

책을 읽다가 웃은 문장 중에서

뷰크너, 즉 이름” -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당신의 이름이 여호와라고 말씀하신다. 그 후로 하나님은 마음 편할 날이 없으셨다.

성경” - 성경을 문학으로 읽는 것은 모비딕을 고래잡이 지침서로 읽거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구두법 때문에 읽는 것이나 다름없다.

되풀이해서 읽은 문장 중에서

우상숭배” - 우상숭배는 상대적 가치를 지닌 대상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다.

탐식” - 탐식하는 자는 영적인 영양실조를 치료하기 위해 냉장고를 덮치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향한 여정

뷰크너의 또다른 책으로 하나님을 향한 여정이 있습니다.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진실을 의심하지 마시오. 왜냐하면 세상은 경이로움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여정을 이끌어가는 중심문장입니다. 이 문장에서 경이로움은 어떤 사실을 말할까요? 대단한 영적 체험은 당연히 경이로움이지요.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거나 병을 고치는 것도 경이로움일 겁니다.

그러나 삐딱한 그리스도인에 속하는 저는 그런 것을 보면서 경이롭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치유 집회에 가면 저는 치유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관찰자가 됩니다. ‘하나님이 고쳐주셨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분이 있다면 며칠, 몇 달을 두고 관찰합니다. 정말 하나님이 고쳐주셨는지! 이런 모습에는 경이로움이 없습니다. 경이로움을 느낀 그분들이 몇 달이 지나지 않아 하나님이 고쳐주신 그 암으로 죽는 걸 여러 번 봤기 때문입니다.

뷰크너가 말하는 경이로움은 당연히 급하고 강하게 일어나는 변화를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은혜’, ‘놀라움’, ‘기적을 정확하게 적은 카드를 보여주는 걸 경이로움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뷰크너는 자기 삶에 편만한 하나님의 모음, 흔적을 세어보았고 그걸 적었습니다.

히브리어에는 모음이 없습니다. 원래 없었는지 없어졌는지 모르지만 자음뿐입니다. 하나님이 자음만을 주신 까닭은 자음이 정확한 뜻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모음을 우리가 연결해야 하기 때문이랍니다. 뷰크너는 이것을 은혜의 알파벳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뜻은 정확하게 낱말 뜻을 알려주는 설명처럼 드러나지 않고 우리 삶과 어우러져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은혜의 알파벳은 모음이 없어서 언제나 장막에 싸여있고 신비하고 비밀스럽답니다. 우리가 모든 믿음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의미를 탐구하고 모음을 채워야 한답니다. 하나님은 늘 이런 식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모음을 채워넣는 수고를 하는 사람만 그 은혜를 알 수 있겠죠.

하나님을 향한 여정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자음이 어떻게 뷰크너에게 모음을 채워 넣은 온전한 낱말로 다가왔는지 설명합니다. 이 책은 세 장으로 되어있습니다. ‘시간 이전, 시간 이후, 시간 너머입니다. 한 번 읽는 것으로 뷰크너의 책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아직 시간 이전과 이후, 너머의 의미를 정확하게는 모릅니다. 다만 뷰크너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떠올리는 모든 사건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음이라고 합니다. 적절하게 자신이 모음을 채워 넣어 하나님 뜻으로 받아들인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지요.

아버지가 자살하고 삼촌이 자살한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는 것을 사실적인 묘사로 써도 은혜가 되겠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글을 써냅니다. ‘내가 겪은 모든 일은 하나님이 주관하신 것이었고 은혜였다는 쉬운 결론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읽은 책과는 전혀 다른 맛입니다. 문장과 낱말을 사용하는 방식이 전혀 달라 읽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습니다. 이 맛을 설명하기엔 제 설명력에 한계가 있습니다. 서혜미 선생님께 이 책을 소개했더니

소개해주신 책, 주님의 은혜가 강물 되어 흐르네요!”라고 문자를 보내셨습니다. 제게도 그랬습니다. 여러분도 같은 경험을 하고 싶으시다면 읽어보세요. 책 소개만 읽지 마시고 책을 읽어보세요.

이 글을 소개한 뒤에 나온 세 권도 너무너무 좋습니다.
얇지만 묵직~~~~~한 책입니다.

1. 주목할만한 일상
2. 기이하고도 거룩한 은혜
3. 일상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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