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부터 아이들 글을 모았다.
2008년부터 <월간 좋은교사>에 아이 글을 하나씩 소개했다.
아이 글에 대한 내 생각도 짧게 같이 실었다.
5년 넘게 연재한 글을 바탕으로 내가 좋아하는 아이 글을 모았다.

2016년에 1학년 담임이 되었다.
몇 번 1학년 담임을 했고, 34명과 함께 지낸 경험도 있다.
하지만 2016년에 만난 아이들은 외계인 같았다. 
집에 돌아오면 외계인 시리즈를 썼다. 아이들을 이해하려고.

- 두 가지 글을 모아 책으로 냈다.
- 그림은 제자 두 명이 그렸다.

완전 책벌레 정현욱 목사님이 경상일보에 낸 책 소개 글

저는 외계인이 있다고 믿습니다. 다른 곳에서 증거는 찾기는 힘들지만 제가 좋아하는 책에서는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오래전 지구를 강타한 한 권의 책이 있습니다. 제목은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입니다. 외계인이 있다는 걸 증명하는 책들은 또 있습니다. <어린 왕자는 외계인이었다> <십 대라는 이름의 외계인> <우리 아빠는 외계인> 심지어는 <우리는 모두 외계인이다>라는 책도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아이스크림에도 <엄마는 외계인>이란 게 있습니다. 이 정도면 외계인의 존재는 충분히 증명한 것 같습니다.

외계인들과 살기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가 필요합니다. 그들의 언어는 시시각각으로 변하기 때문에 배우기가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닙니다. 이젠 통달했다 싶으면 어느새 새로운 은하계에서 외계인들이 날아옵니다. 페르시아 천문학자인 알 수피(Abd al-Rahman al-Sufi)가 처음으로 발견한 안드로메다은하에서 온 종족도 있고, 어떤 종족은 왜소 은하인 대마젤란은하에서 넘어오고, 지구에서 7만 광년 떨어진 궁수자리 은하에서도 옵니다. 그들의 언어는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언어를 들여다보면 그들의 생각과 마음이 언어 속에 들어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언어가 다를 뿐이지, 지구인들이 겪어온 통증이 같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죠.

오늘 어떤 분의 책을 읽었습니다. 이분은 외계인이 학교에 있다하네요. 그래서 책의 제목을 <학교에서 외계인을 만나다>로 정했습니다. 이곳에는 그동안 외계인들과 나눈 수많은 사연들이 인간의 언어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책 제목을 보는 순간부터 어떻게 외계인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 외계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하고 또 궁금했습니다. 외계인들의 내밀한 언어의 세계로 들어가 봅시다.

먼저 학교에서 만난 외계인들은 느낌이 아주 좋습니다. 아니,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합니다. 전제현이란 외계인은 날씬한 엄마가 누나와 동생이 남긴 밥을 먹느라 삼겹살 배가 됐다고 하네요. 이런 어머님 어쩌나? 최호현 외계인은 보험회사도 가고 마트도 가는 엄마가 여군같다고 하네요. 김소희 외계인은 마음이 참 착한 것 같습니다. 보일러 고치는 수리 기사님에게 자신과 똑같은 나이의 아이가 있는 것을 알고는 이렇게 말하네요.

보일러 아저씨는 참 힘들겠다. / 아직도 보일러 고치니까! / ... / 아저씨 집 아이도 나처럼 아빠를 기다리겠다.

전은희 외계인은 엄마는 자는 척했다고 가짜로 화낸다.’고 하네요. 에구! 아이들이 엄마의 속셈?까지 파악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대로 말하고, 생각하는 대로 써 내려갑니다. 그런데 그들의 마음까지 어찌 맑은지 읽는 저의 마음까지 따뜻합니다.

두 번째 특징은 솔직하게 고백을 잘합니다. 이정영 외계인은 병원에 다녀온 아빠가 자신을 안아주니 빨리 나으세요. 아빠 사랑해요!’ 말하네요. 이해주 외계인은 집에 놀러 온 친구 주혜에게 다음엔 자기 집에 밥 먹으러 오면 설거지 시킨다네요. 주혜 외계인이 읽으면 아마 안 갈 것 같은데...

비평적 시각도 많아요. 김찬묵 외계인은 잘난척하는 똑똑한 사람보다 맛있는? 돼지가 낫다네요. 조성권 외계인은 투표에 대해 한 마디 하네요. 섬뜩합니다. 모두 옮겨 볼게요.

오늘 선거.
엄마, 아빠는 투표하려 간다.
누구를 뽑을지는 모른다.
누가 되는지도 모른다.

자기가 되려고 몸부림친다.

어떤가요? 결국 선거도 자신을 위해서 하는 거니 자기가 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사회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이 어찌나 예리한지 저의 마음을 들킨 것 같아 겁이 납니다. 좀 더 오래 살았다고, 힘이 더 세다고 억지 부리고 우기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탐욕만 가득한 저의 모습을 말입니다.

학교에 있는 외계인들은 참 이상하네요. 그들의 언어는 인간의 은밀한 생각을 포착해내고, 포장된 가식의 행위를 뚫고 들어옵니다. 어쩔 때는 맑은 물과 같다가도 어쩔 때는 거울처럼 있는 가식 없이 보여줍니다. 분명 학교에 있는 외계인들은 아직 어리지만 지구의 어른들보다 훨씬 높은 지능이 높고 세계를 통찰하는 뛰어난 감각을 가진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외계인들과 사는 선생님은 어떤 분인지 참 궁금합니다. 저는 한 달도 못 버티고 삼십육계 줄행랑칠 것 같은 데 말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시에 덧붙여 놓은 선생님의 설명도 읽어 보았습니다. 일하시는 할아버지를 위해 붕어빵을 사가는 김형규 외계인의 이야기를 이렇게 풀었네요.

하루에 일곱 번 오가는 버스 기다리면서 붕어빵 식을까 걱정하고, 할아버지에게 따뜻한 붕어빵 드리려고 가슴에 품는다.”(37)

가슴에 품는다. 이 표현이 제가 그런 것처럼 느껴지네요. 할머니를 욕심도 없는 아이라고 표현한 이수연 외계인에게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할머니 자신이 길러낸 자녀들이 할머니가 기른 것들을 먹으며 건강하게 자라는 걸 보는 욕심. 이 욕심 때문에 할머니는 땀 흘리면서도 힘든 줄 모르고 일하신단다.”(41)

그렇죠. 할머니도 욕심이 있답니다. 당신의 자녀들이 잘 자라기를 바라는 욕심이오. 이렇게 1부에서는 학교에서 살아가는 외계인들의 언어를 해독하더니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외계인을 알아내고 다루는 방법까지 소개하네요. .. 이 책만 읽으면 지구에 침공한 외계인들을 정복하기는 시간문제인 듯합니다. 미국인들은 독립기념일만 되면 외계인들이 침공한다며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이 책은 선물로 주고 싶네요.

외계인을 알아내는 방법 10가지도 있습니다. 이곳에 보면 지구인처럼 행동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외계인들입니다. 몇 가지 특징을 알려드릴 테니 잘 살펴보십시오. 먼저 외계인은 순간을 삽니다. 내일이 없습니다. 방금 말하고 잊어버립니다. 건망증이 심하다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이들은 외계인들입니다. 외계인들은 외계인을 알아봅니다. 그러나 자신이 어느 별에서 왔는지 모릅니다. 지구의 대기로 진입하면서 급작스러운 대기압 때문에 기억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자신들끼리는 서로가 외계인 것을 금세 알아챕니다. 그리고 서로 비밀을 공유하죠. 정말 특이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 외계인들은 수렵, 채집 활동을 즐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끔 학교를 벗어나 산속을 헤매거나 길 가 밤나무 밑에서 떨어진 밤송이를 줍기도 합니다. 이것은 순전히 자신들이 외계인이 아님을 위장하기 위한 전술전략이 분명합니다. 슈퍼맨도 보세요. 어리바리하고 수줍어합니다. 그런데 슈트를 갈아입으면 천하무적이 되죠. 그런데 왜 하필이면 공중전화기 부스 안에서 갈아입는지 나 원 참! 이젠 대부분이 휴대폰을 사용해서 공중전화 부스는 찾기도 힘든데 말입니다.

책을 읽으면 글과 잘 어울리는 그림이 많습니다. 이 그림은 누가 그렸을까요? 권일한 선생님이 외계인들을 잘 길들여 지구인처럼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젠 자라나서 대학교에 들어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답니다. 외계인도 지구인처럼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하다니 놀랍네요. 저의 집에도 외계인이 몇 명 살고 있습니다. 이 외계인들은 어느 행성에서 온 지는 몰라도 자꾸 휴대폰으로 십만 광년이 훨씬 넘은 미확인 은하에 메시지를 보내곤 합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외계인들의 언어는 저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었으니 외계인 따위는 걱정도 없습니다. 감정이입하고, 마음을 나누고, 산책도 같이 하면 외계인들이 잘 길들여진다고 합니다. 이런 신기한 책을 읽다니요. 오늘부터 외계인 정복 들어갑니다. 짜잔~ 기대하시라.

2009년부터 방과후 독서토론에 참여한 아이들이 중학생이 됐다.
계속 토론하고 싶다고 해서 주말에 중등 토론반을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어려운 책을 깊이 나누었다.
초등학생일 때부터 대학 자기소개서를 같이 고칠 때까지 만났다.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이 기특해서 토론 과정을 책으로 냈다.
토론한 뒤에 집에서 3시간씩 토론 과정을 기록할 때는 힘들었지만
그 기록 덕분에 이 책이 남았다.

완전 책벌레 정현욱 목사님이 경상일보에 낸 책 소개 글

한 줄 요약 : 다독 + 독서지도사 자격증 외에 더 필요한 것?

지난 여름 독서지도사 2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일 년에 수백 권씩 읽어내는 독서광이지만 아이들에게 독서지도는 도무지 자신이 없다. 아무리 책에 대해 설명을 하고, 가르쳐도 아이들은 멍한 눈으로 바라볼 때 관심이 없다. 그러다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기를 거듭했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가르쳐도 아이들은 조금도 변화되지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남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독서지도사 자격증이었다. 한 번만 들어도 되는 동영상을 두 번 세 번씩 반복해 들었다. 그리고 만점에 가까운 성적으로 자격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 독서토론, 이번에는 지난번보다 조금 나았다. 그것이 끝이었다. 아이들은 몇 번 더 웃어주고, 하는 척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닫힌 입을 열기 위해 노력하는 몸부림이 스스로 보기에도 애처로웠다. 그리고 독서 나눔은 그걸로 끝냈다. 난 더 이상 독서지도사로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수강비와 시간을 들인 자격증은 장롱면허가 될 판이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왜 되지 않는 것일까? 고민하고 애써 웃으려 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강의 집을 다시 살피고, 독서토론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아무리 읽어도 답이 없어 보였다. 독서토론 책들과 강의 노트는 다르지 않았다. 난 스스로 내가 독서지도 능력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서평가로 활동하는 것으로 내 자리를 지키기로 했다.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독서지도란 이론만으로 불가능하다. 반강제적으로 이루어지는 학교에서는 흉내는 낼 수 있지만 진정한 독서와 토론을 이루어지지 않는다. 강제성도 띠지 않는 가정 독서지도는 어떻겠는가? 탁월한 과외 강사로 있는 어떤 분의 충고는 간단명료했다. ‘스스로 하지 말고 남에게 맡기세요.’였다. 즉 학원에 보내든지 독서지도를 잘하는 외부인에게 과외를 시키라는 것이다.

어느 날, 페이스북 친구로 있는 권일한 선생님의 담벼락에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 <10대를 위한 행복한 독서토론>이란 책이 곧 출간된다는 소식이다. 오랫동안 페이스북을 통해 권일한 선생님의 소식을 들어왔다. 그리고 이전에 이미 출간된 <책벌레 선생님의 행복한 글쓰기><책벌레 선생님의 행복한 책 이야기>를 읽은 터였다. 이 책들은 글쓰기와 책 읽기란 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독서와 생각하기, 글쓰기와 토론이 조금씩 버무려진 책들이다. 내심, 독서토론에 대한 부분을 따로 떼어 깊이 있게 다루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참에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듣고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렸다. 드디어 출간되고 책이 내 손에 들려지자 이틀 동안 급한 용무 외에는 모든 일을 뒤로 미루고 이 책을 읽어 나갔다. 그리고 내가 왜 실패했고, 실제 독서지도와 토론은 어떻게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아무리 열정이 많다 해도 요령이 없으면 결코 쉽지 않다. 이 책은 한 마디로 독서토론을 위한 실제 매뉴얼과 같은 책이다. 필자는 이제 이 책을 요약하며 저자가 말하는 독서토론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한다.

모두 6부로 나누었다. 서론에 해당하는 들어가는 글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 '들어가며'는 두 개의 작은 글로 묶었다. 하나는 독서토론을 잘 이끌어 가려면과 다른 하나는 이렇게 하면 실패한다이다. 그러니까 이 개의 글은 나중에 이어질 실제적인 글 나눔의 원론과 방향제시라 할만하다. 본 글은 모두 6부로 나누었다. 필자는 이 부분을 두 개로 구분했다. 1부에서 4부까지는 독서토론에 대한 이야기이고, 뒷부분은 5부와 6부인데 논술과 글쓰기를 엮어 넣었다. 자 그럼 가장 중요한 부분인 들어가며로 가보자. 여기서는 독서토론의 원리를 제공한다. 독서토론을 잘 이끌어 가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가장 중요한 전제가 있다. 해석의 강화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즉 확증편향 이론이 말해주는 것처럼,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에 관심을 갖고 사물이나 사건 등을 획일적으로 보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독서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는다고 겸손해 지거나 안목이 넓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 생각을 강화하기 위해 내용을 마음대로 해석하게’(13) 만드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독서 토론에서 가장 먼저 염두에 두고 생각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그래서 이 편협된 시각과 좁은 시각을 깨기 위해서는 찬반을 나누어 토론하게 한다. 동전 던지기를 통해 비록 반대의 입장에서 토론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다.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다양한 해석을 갖춘 토론은 오만과 편견, 독선과 아집을 깨뜨린다.”(15)

두 번째는 부스러기 생각을 잡아야 한다. 부스러기는 떨어진 것으로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다루는 부수적인 주제를 일컫는다. 그럼 이게 왜 중요할까? 토론은 말의 향연이다. 메인 요리가 있지만, 메인 요리만으로 밥을 먹으면 맛이 없다. 토론도 마찬가지다. 토론의 여정 속에서 여러 말들이 나온다. 이 말들은 주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보게 하는 양념 역할을 하게 된다.

세 번째,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질문이다. 필자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무릎을 쳤다. 질문이 중요한지는 다 안다. 그런데 그 질문이 어떤 작용을 하고, 어떤 결과를 도출해 내는지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저자는 독서토론의 생명은 질문이다.’(19)라고 과감하게 선언한다. 실제로 독서토론이 지겨울 것인지 아니면, 즐겁고 유익할 것인지는 질문으로 결정된다. 어떤 질문을 던지고, 질문에 답을 어떻게 이끌 것인지를 잘 아는 리더가 좋은 독서토론을 만들어 낸다. 필자도 아이들과의 독서토론에서 가장 큰 오해는 아이들이 스스로 말을 할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고 명징하게 발설하는 것이 약하다. 그래서 그들의 생각을 끄집어 내기 위해서는 질문이 필요했던 것이다. 지혜로운 질문은 깊은 우물의 두레박과 같다. 두레박이 있으면 깊은 우물의 냉수를 나의 입속에 쉽게 넣어 준다. 그런 질문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1. 평소보다 천천히 읽어라.
2. 저자의 의도를 생각하라.
3. 창의적이고 열린 질문을 준비하라.
4. 쉬운 내용을 먼저 묻고 복잡하고 난해한 것은 뒤로 가져가라.
5. 토론을 책 이야기와 연결해라.
6. 리더자가 자신감을 가져라.

결국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는 배의 키를 돌리는 것과 같다. 질문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으면 배가 산으로 갈 수 있다는 말이다. 질문은 각 책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떻다라고 말하기는 모호하지만, 분명한 것은 리더자는 책의 핵심을 꿰고 있어야 하고, 토론을 어느 방향으로 끌고 갈지는 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토론에서 실패하는 이유를 몇 가지 더 들어보자. 먼저는 듣지 않으면 실패한다. 또한 준비되지 않으면 당연히 실패한다.’(33) 즉 리더 해야 할 교사들이 책을 읽지 않고 오는 경우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리더자인 자신과 참가자인 학생들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지레짐작과 지나친 자신감과 소극적인 마음도 실패의 원인으로 지적한다. 어쩌면 토론은 미묘한 감정과 권위를 사용할 수 있는 종합예술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한 가지, 그러나 너무나 의외였던 것은 바로 글쓰기다. 토론과 글쓰기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 글은 남기는 것이다. 독서토론을 아무리 잘해도 쓰지 않으면 남지 않고, 남지 않으면 자신이 생각의 변화를 읽지 못한다. 또한 글은 생각을 정리하게 도와준다.’(45)는 점에도 좋다. 토론 때에 말하지 못한 것을 글로 쓰게 되면 다시 생각하게 되고, 더 세밀한 사유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어쩌면 독서토론의 완성은 마지막 생각 정리하는 글쓰기에 있는 지도 모르겠다.

, 그럼 저자는 자신의 이론들을 어떻게 적용해 나갔는지 몇 곳을 골라 집중적으로 들어가 보자. 원론과 실제는 다를 수 있으니 획일적으로 보지 말고 상황 속에서 어떻게 다루는가를 살펴보자. 먼저 1토론으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를 들여다보자. 1부에서는 두 권의 책을 다룬다. 한 권은 중학교 2학년들이 인생의 책으로 뽑은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1930년대 흑인 차별이 유난히 심했던 미국의 상황을 담은 <앵무새 죽이기>. 두 권 모두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이다. 체로키 인디언의 이야기를 다룬 <내 영혼의 따뜻했던 날들>로 들어가 보자. 토론은 모두 4주에 걸쳐 진행된다. 첫 주는 읽고 담아둔 좋은 문장을 서로 나눈다. 둘째 주는 할아버지와 백인의 가치관의 차이를 다룬다. 셋째 주는 할아버지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우리와 어떻게 다른가를 다룬다. 넷째 주는 할아버지의 교육 방법을 살펴본다. 저자는 마지막 주에서 한국 교육과 비교하며 비판적 시각으로 글로 표현하게 한다.

첫 주, 문장을 나눈다. 그런데 감동적인 문장이 없다는 말에 조금 놀랬다. 그들은 우리 아이들과 조금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었는지 모른다. 한편으로 다행이다. 우리 아이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저자는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알려 준다.
“마음에 드는 문장이 없다고 한다. 학생들은 문장을 읽을 줄 모른다. 책에서 줄거리만 읽으면 다 읽은 줄 안다. 그러면 문장이 보이지 않는다.”(54쪽)
아이들은 문장을 모른다. 삶의 경륜이 없기 때문이다. 문장은 삶을 꿰뚫고 통찰하는 안목이다. 아이들이 문장에 감동을 받고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저자는 문장을 쓰고 그 중간 괄호를 넣어 찾아 넣기를 한다. 이렇게 하면 책을 자세히 읽도록 돕는다. 그리고 그 문장의 의미를 묻고 다시 설명해 준다. 그 문장의 예를 보여주는 다른 글을 찾게 하고, 문장의 가치를 설명해 준다. 그다음은 자신의 이야기로 선회한다. 그들의 삶 속에서 문장과 비슷한 일이 없는지를 묻는다. 타인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가 된다. 책을 남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로 읽고 자세히 읽으라고 당부한 후 집을 돌로 보낸다. 이렇게 한 주가 마무리된다.

둘째 주, 책을 다시 읽었다. 역시 아이들은 전주보다 좀 더 세세하게 읽는다. 전에는 보지 못한 늑대별이야기를 한참 나누었다. 책에 나오는 늑대별은 할아버지와 작은 나무를 이어주는 끈’(58)의 역할을 한다. 원주민과 백인의 사고방식 차이를 토론했다. 땅에 대한 원주민의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사냥 방법과 금주법, 교육 방법들을 토론하고 정리한다. 이렇게 함으로 책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한다. 원주민은 존재방식으로 생각하고, 백인들은 소유 방식으로 산다.’(61) 것도 짚어 준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로 마무리한다.

셋째 주, 사람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를 다룬다. 선물을 줄 때,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한다.’(65) 즉 넌 소중하다는 가치를 가르치고, 은혜를 공짜를 받지 않고 노력해 얻도록 한다. 가난하지만 할 수 있다는 것, 넌 가치 있는 존재임을 알려 준다. 필자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마음에 가책을 느꼈다. 난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쳤는가? 게으르다고, 공부 안 한다고 야단만 쳤지 진정한 존재 가치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셋째 주, 선생님과 학생들은 할아버지의 지혜를 배웠다. 그리고 나도 이 책을 읽고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넷째 주, 마지막 시간은 글쓰기다. 아이들의 글을 읽으니 마음이 따듯해진다. 권민하라는 중1 여학생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사랑한다는 표현 대신 이해한다고 하신다. 이해하면 서로 사랑하게 되기 때문’(68)으로 썼다. 2의 이가진 학생은 자신의 학교생활과 할아버지의 교육 방식을 비교하면서 진정한 가르침의 방법을 서술해 나간다. 작은 나무(주인공)에게 할아버지가 병든 소를 사는 것을 내버려 둔 이야기를 꺼내며, 실수도 배움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렇다. 권위적 지식만이 전부가 아니다. 실수도 공부다.

모든 책을 이렇게 다루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한 권의 책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지를 보여준다. 한 권의 책을 몇 주에 걸쳐 나누는 것도 대단해 보였지만, 리더자인 선생님이 얼마나 준비되느냐에 따라 토론의 깊이가 달라지는 것도 알았다. 선생님이 책을 사랑하면 아이들도 책을 사랑하게 된다. 선생님이 참여자인 아이들을 잘 이해하면 학생들도 즐겁게 동참하게 된다는 것도 느껴진다. 필자가 정말 궁금했던 부분은 5,6부의 글쓰기다. 독서토론과 글쓰기는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 호기심을 가지고 자세히 읽어 나갔다.

논술(論述)은 말 그대로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진술 또는 주장하는 것이다. 가장 궁금했던 것이 중고등학생이 어느 정도의 논술이 가능할까였다. 루이스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시의 기이한 사례>란 책으로 세 주를 했다. 첫 주는 ‘듣는 게 목표’(255)라고 한다. 내용을 묻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설명해 준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다시 읽어 오도록 요구한다. 쓰기에 전에 내용을 확실히 알았는지, 책 속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주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도 토론한다. 둘째 주는 지킬이 하이드로 변하는 과정과 결과를 나타내는 문장을 골라 인간의 이중성에 초점을 맞춰 토론했다.’(262) 문장 찾기는 논지와 직결된 저자의 생각을 찾는 것이다. 전에 읽었던 책 중에서 비슷한 내용을 골라 참고하는 것도 소개한다. ‘성실했기 때문에 유대인을 육백만 명을 죽였다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 아이히만>까지 소개할 정도라면 대단하다 싶다.

지킬 박사 속의 하이드는 보통 사람 속에 잠재된 악의 실체다.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극단적 나눔보다 인간이 가지는 양면성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토론 수업이 고등학생이 아니라 중학생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세 번째 주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책을 쓴 까닭’(267)를 묻는다. 이렇게 하며 자신이 주장하는 한 주제를 논리를 제시하며 한 편의 글로 완성한다. 저자는 독서 감상문과 논술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논술을 논술답게 쓰기까지 오래 걸렸다.’(271)고 말한다. 그만큼 제대로 된 글쓰기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독서토론을 통해 사고(思考) 하는 능력을 키워 둔다면 글쓰기는 서서히 늘게 될 것이다. 독서 감상문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좋다’ ‘나쁘다’ ‘멋지다등의 표현으로 한다. 그에 비해 논술은 사실에 입각해 논리적으로 이다’ ‘틀렸다라고 논박해야 한다. 저자는 학생들에게 독서 감상문은 지킬 박사, 논술은 하이드 씨가 되어 쓰라고’(271) 했단다.

나가면서

독서토론은 종합예술이 맞다. 창의적 읽기에서, 비판적 안목으로 주장하기, 인도자의 교감 능력 등이 충분하지 않다면 자칫 배가 산으로 갈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수고는 충분히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다. 어쩌면 독서토론은 저자가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깊이 읽기로 보인다. 한 권을 3-4주 동안 토론하고 글까지 써 마무리 하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초등학생들과 시작한 독서 모임이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즐겁게 동참했다. 이 책은 독서모임의 첫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을 읽기 전 <책벌에 선생님의 행복한 책 이야기>와 초등학교 독서토론을 다룬 <책벌레 선생님의 행복한 독서토론>을 미리 읽는다면 이 책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더 많이 알게 되리라 확신한다. 한 번 읽어 될 일이 아니다. 독서 토론을 지도할 생각이 있다면 서너 번 반복해서 읽는다면 분명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2009년부터 학교에서 방과후 시간에 독서토론을 했다.
2011년부터는 주말마다 아이들과 독서토론을 했다.
책을 읽고, 토론하고, 글을 쓰고, 고쳤다.
그 과정을 3년 동안 아침독서신문에 냈고, 일부를 새롭게 썼다.
책을 깊이 읽고, 아이들 이야기를 듣는 내용이다.

 

내가 책을 읽은 건 성경 덕분이다.
성경을 이해하려고 이 책, 저 책 읽다가 책벌레가 되었다.
성경만큼 재미있는 책이 없다.
그런데 사람들이 읽지 않는다.
읽기 힘들고 읽어도 이해가 안 된다고 한다.
성경을 읽는 방법을 다룬 책을 소개했지만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평신도가 이해하는 수준의 책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원고의 40%가 잘려나가고 이 책이 나왔다.
여전히 사람들은 스스로 성경을 읽지 않는다.

독자후기
원문주소 : http://blog.yes24.com/blog/blogMain.aspx?blogid=jimmyul&artSeqNo=7997167

#1. 성경은 맛있다!성경에 대해 흥미를 가져 본 적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그 맛을 보았을 때는 그 깊이가 너무 깊어서 풍덩 빠져들지 않았던가! 하지만 또한 얕게 첨벙거려도 괜찮지 않은가! 저자는 성경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일러준다. "성경은 '어린 양이 발목을 적시며 건널 수 있는 시냇물이며, 고래가 평생 헤엄쳐 다닐 수 있는 큰 바다다'"(24쪽) 하지만 이내 사그라든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뭘 이렇게 열심히 하나 하는 이유 때문은 아닌가! 그렇게 성경에 대해서 열심을 내다가도 우리는 수그러들기 일쑤이다. 이 책은 우리가 왜 성경을 가볍게 여기게 되었는지부터 다룬다. 그것은 우리가 사탄의 전략대로 성경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저자는 1장에 그 이유를 7가지 들어서 하나하나 이 세대가 왜 성경과 멀어지게 되었는지를 말씀 속에서 유심히 살핀다. 그 이유는 성경은 우리에게 순종과 믿음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변증이 아니라 순종하는 제자를 요구한다"(37쪽), 또한 "기독교의 절대 진리는 말씀을 읽고 행하는 제자의 삶을 통해 드러난다"(51쪽) 이를 통해 신앙의 정의를 분명하게 해준다. "복음은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인 예수 그리스도다. 우리 죄를 담당하신 예수님이 복음이다. 믿음은 인간으로서는 하나님께로 갈 수 없다는 깨달음, 예수님만이 우리를 의롭게 하신다는 고백이다. 영성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고백을 일상에서 살아 내는 것이다."(40쪽)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잘 소화해야한다. "씹어 삼켜 소화하는 과정을 묵상이라고 한다.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 죄악의 뿌리가 건드려진다. 날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 하나님께 민감해질 것이다."(41쪽) 그렇다. 이 책은 성경을 맛본 사람의 영광스러운(!) 기쁨을 전달해준다. 
#2. 이 책은 팁을 주는 책이다.우리가 성경을 다시 찾아오기 위한 팁을 제시해준다. 그것은 큰 흐름을 읽는 것이다. 그 흐름을 한마디로 하면 '언약'임을 두번째 장에서 일러준다. 두번째 장이 하나님이 들려주신 언약이야기이다. 모세오경과 복음서, 역사서와 사도행전, 시가서와 서신서, 선지서와 예언 및 요한계시록 이렇게 네 묶음으로 신약과 구약을 묶어서 풀어낸다. 이 부분이 새롭다. 구약 따로 다 훑고, 신약 따로 훑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는 이야기로, 역사는 역사로 그렇게 엮어낸다. 그래서 구약과 신약을 교차해가면서 풀어낸다. 이를 통해서 성경 전체를 조망하게 해준다. 너무 성경공부하듯이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사변적인 이야기만 있지 않은 짧지만 굵다. 
#3. 성경을 잘 읽는 비법이 있을까?이렇게 저자가 성경을 언약이라는 큰 물줄기로 읽어낼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 저자는 3장을 통해서 일러준다. 성경은 이렇게 읽어라는 저자의 조언을 들을 수 있다. "직접 읽고 묵상하라,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라, 자기 관점으로 읽지 마라, 질문하며 읽어라, ... , 하나님의 성품으로 적용하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라" 등 구체적인 지침들을 제시한다. "창세기는 내용에 따라 끊어 읽는 것이 좋지만, 서신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에 읽는 것이 좋다."(135쪽)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그의 삶 전체(창12-25장)를 보아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141쪽) 그 뿐 아니라 저자의 인문학적 소양이 성경에 대한 적용에서도 빛을 발한다. "성호 이익은 "자신을 새롭게 하려면 모름지기 훌륭한 스승을 만나야 하고, 스승을 만나려면 모름지기 묻기를 좋아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의 가장 훌륭한 스승은 성령님이다.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계속 성령님께 물어야 한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말씀을 들려주신다."(129쪽) "교육 선진국에서는 하나씩 가르친다. '신발 앞코가 보이게 놓기'를 1년 내내 훈련한다. 그 다음 해에는 '줄 바르게 서기'를 훈련한다. ... 나는 10년간 다른 사람을 비판하려는 마음과 싸웠다. ...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않게 되자, 나를 자랑하려는 마음이 덮쳐 왔다. ... 지금도 날마다 눈앞의 적과 치열하게 싸우는 중이다"(143-144쪽). 저자의 솔직한 나눔에 은혜가 깃든다. 
#4. 성경은 공동체적이다.개인의 영역에서 적용으로 그치지 않고 저자는 공동체적인 나눔의 귀함 또한 도전한다. 그의 시각이 균형 잡혀 있음을 볼 수 있다. "개인이 깨달은 말씀은 반드시 공동체에서 나누고 검증받아야 한다."(153쪽) 그리고 그는 가정에서의 신앙 교육으로서 말씀의 공동체를 짚고 넘어간다. "가정에서 하는 부모의 신앙교육이 중요하다. 함께 밥을 먹고, 수다를 떨며, 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라. 자녀에게 무조건 믿으라고 강요하지 말고 기도하며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라. 가정이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역사하는 공동체가 되도록 힘쓰라."(165-166쪽) "하나님 나라는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진다.", "믿음의 공동체에서 말씀을 서로 나눠야 건강해진다."(168쪽) , "진정한 권위는 밖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흘러나온다."(170쪽), "하나님의 자녀는 홀로 말씀 앞에 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172쪽) 저자의 속이 꽉 찬 말들이 마음을 두드린다.  그런 이후에 부록처럼 서선서 형식, 이야기 형식, 시 형식의 성경 읽기의 방법을 찬찬히 가르쳐준다. 옆집 아저씨 같이, 한편으로 과외 선생님처럼~! 그 애정이 고맙고 감사하다. 
#5. 찰지다.성경에 대한 묵상이야기이지만 맛이 있다. 잘 묵혀두었고, 잘 요리해두었다. 제목 <성경을 돌려드립니다> 또한 재미있다. 원래 위치로 바로잡다는 의중이, 성경의 주인이 우리 모두라는, 종교개혁의 정신이 담겨 있다. 성경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식상하지 않으며 지루하지 않다. 번뜩이는 재치와 속깊은 묵상이 보석처럼 박혀있다. 성경의 본래 맛을 맛보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맛을 돌려주겠다고 한다. 평신도이지만 성경에 대한 맛을 본 깊이를, 또한 어떻게 지속적으로 내것으로 삼을 수 있는지를 도전하고 알려준다. 내공이 있는 책이다. 

1994년 교사가 되던 해에 <콧구멍>이란 일기를 받았다.
평생 아이들 글을 사랑하며 살리라 마음 먹었다.
아이들 마음에 있는 글을 읽고 싶어 글쓰기를 계속했다.
2005년에 최고의 글쟁이를 만났고,
2007년에 글쓰기가 아이들을 회복시키는 모습을 보았다.
이런 경험이면 책을 쓰겠다는 마음이 생겨 책을 썼다.

첫 책을 내고 너무너무 좋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내 글이 부끄러워졌다.
출판사에 400권 정도 책이 남았을 때 다 사고는 절판시켰다.  
저자권료보다 두 배나 책값이 더 들었지만 괜찮았다.
책은 강의하면서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모두 나눠주었다.

<책벌레 선생님의 행복한 책이야기>를 내면서 고치고 또 고쳤다.
수십 번 고친 뒤에야 비로소 내용이 마음에 들었다.
<글쓰기가 좋아졌어요>를 다시 고쳐 썼다.
내용을 절반 이상 바꾸고, 문장을 수십 번 고쳤다.
2년 동안 50번 정도 고친 뒤에 출판사에 보냈다.
갈래별 글쓰기 내용이 많지만
책 읽은 분들은 글 쓰는 마음가짐을 배웠다고 한다.
나도 글을 쓰는 가치관을 전하려고 했다.

<글쓰기가 좋아졌어요>라는 책을 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끄러웠다.
책 내고 싶은 욕심 때문에 내지 말아야 할 책을 냈다고 생각했다.
고민하다가 출판사에 연락해서 책을 절판시켰다.
팔리지 않은 책은 내가 다 사들였다. 
받은 인세보다 책값이 더 비쌌다.
책은 강의할 때마다 선물로 나눠주었다.

'다시는 이런 책을 쓰지 말아야겠다.' 생각하고 글을 썼다.
초안을 쓰고 읽고 고치고, 다시 읽고 고치고, 또 읽고 고쳤다.
2년 동안 80번이나 고치고 나서 출판사에 보냈다.
<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지금의 세종도서)>로 뽑혔다.

자녀를 책으로 기른 과정+학교에서 독서지도한 내용을 담았다.
추천사를 소개한다.

송인수
(교육의 봄 공동대표)

권일한 선생님의 책은 스스로가 책 읽기를 좋아하면서
그 좋아하는 독서를 아이들도 좋아하게 만드는지혜를 담은 책이다.
단순한 팁 정보가 아니라 아이들을 붙들고 씨름하다가 변화시킨 생생한 지혜와 전략이 가득 차 있다.
우리 아들 녀석이 이런 선생님을 만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런 선생님으로 사는 것은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상념도 찾아왔다.
이 책을 읽는 순간, 독서지도에 대한 뜨거움이 훅 내 속에 들어오는 느낌이다.
, 나도 이렇게 아이들을 만나면 되겠구나라는 의욕도 생긴다.
아마 나만이 아닐 것이다.

백화현, <책으로 크는 아이들> 저자

저자 권일한 선생님은 이덕무보다 더 ‘책만 보는 바보’ 같습니다.
복도에서도 책을 보고 교실 창틀에 앉아서도 책을 봅니다. 그리고 매일매일 아이들에게 재미난 내용을 들려줍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뜨겁게 빛나는 눈빛에 물들어가며 책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자아를 만납니다.
미쳐야 미친다. 권일한 선생님에게 꼭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책과 아이들에게 푹 빠져 산 지 17년.
그는 어떤 아이에게 어떤 책을 어떻게 권해야 하는지, 어떤 책은 누구와 어떻게 이야기 나눠야 하는지,
어떤 책 어떤 아이에게 어떠한 보물이 숨겨져 있는지, 이제 환~히 다 아는 듯합니다.
진정으로 내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주고 싶은 부모님, 제자들을 진짜 책으로 이끌고 싶은 선생님,
아이들에게 읽힐 만한 책에 대한 정보와 책을 읽은 후 함께 할 만한 구체적인 독후활동과 독서토론의 방법들을 알고 싶은 수많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저자의 몸과 마음으로 쓴 이 책에서 분명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땐 그랬지!”

그땐 그랬지!” 하면 어떤 추억이 떠오를까? 625나 가난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테고, 중요한 시험에 합격한 순간이나 성공한 기억, 어릴 적 친구들과 놀던 일을 떠올리기도 하겠다. 2016년을 맞이하는 대한민국 학생들은 무얼 추억으로 떠올릴까?

지난해 10월에 학부모와 함께 울릉도에 현장체험학습을 다녀왔다. 전교생 10명이 엄마, 아빠, 선생님과 울릉도에 가서 시내버스 타고 다녔다. 내수산 전망대에서 삼선암 쪽으로 3시간 동안 걷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 지나가는 봉고차를 얻어 탔는데 어쩌다 보니 봉고차 한 대에 22명이 가득 탔다. 봉고차 안에 쭈그리고, 허리 숙이고, 끌어안고 낑낑대면서도 다들 웃었다.

다음날에 지나가는 시내버스를 히치하이킹으로 세웠다.

아니, 내가 손을 들면 한 번도 차가 서지 않던데 선생님은 손만 들면 차가 서네요.”

이렇게 말하는 아빠는 얼굴이 무섭게 생겼다. 뭐라 말하기 어려워서 그러게요.’ 하며 웃었다. 관광업체와 계약하지 않고 다녔기 때문에 많이 걷고, 지루하게 시내버스 기다리기도 했다. 땀 흘리고 헉헉대면서 이럴 줄 알았으면 따라오지 않는 건데……하던 학부모들이 돌아오는 길에 내년에 다시 가자고 한다. 고생 많이 해도 하루만 지나면 추억이 되나 보다. 힘들었기 때문에 더 소중한 추억!!

도시에 사는 아이들은 무얼 추억으로 간직할까? 30년 뒤에 무얼 떠올리며 그땐 그랬지!”라 할까? “그땐 ○○○ 게임을 했지!”라고 하진 않겠지! 학원에서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았다고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도시 아이들이 무얼 추억으로 간직할지 모르겠다.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 사는데도 도시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텔레비전을 보지 않기 때문일까?

지금은 안 그래요.”

공간의 차이가 생각의 차이를 만든다. 사는 곳이 다르면 생각이 다르다. 시골에 사는 아이와 도시에 사는 아이는 생각이 다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은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공간의 차이가 줄어들었다. 옛날에는 서울 가면 코 베어간다고 했지만 지금은 시골 사람이 더 약았다고 한다. 시골에서도 인터넷 활용해서 공간의 차이를 뛰어넘는다.

그렇다면 시간의 차이는 어떨까? 30년 전을 추억으로 간직한 부모와 지금을 추억으로 간직할 자녀가 서로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30년이라는 시간이 만들어낸 생각의 차이를 좁힐 수 있을까? 어렵다. 변화가 느린 시대, 부모와 자녀가 비슷하게 살았던 고대 사회에도 세대 차이가 존재했다. 기원전 1700년 경 수메르 시대에 쓰인 점토판에 요즘 젊은 것들 버릇이 없다.” 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사람은 자신이 겪은 일을 기준으로 판단하기 마련이다. 부모는 그때겪은 일, 30년 전에 생긴 가치관으로 판단한다. ‘그때를 모르는 자녀는 지금은 안 그래요.” 라고 말한다. 당연히 차이가 생긴다. 부모는 자녀가 철이 없다, 버릇이 없다고 한다. 자녀들은 부모 세대를 고리타분하다, 말이 안 통한다고 한다. “그땐 그랬지.”지금은 안 그래요.”의 차이가 어찌나 큰지 부모와 자녀가 서로에게 으르렁대게 만든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사랑하는 아들에게라고 편지를 시작하면 어떤 내용을 쓸까? 공부 열심히 하고 건강해라, 항상 최선을 다하고 행복해라, 게임 그만하고 성공하라고 쓸까? 부모는 자녀가 건강하고 행복하고 성공하기 원한다. 이를 위해 게임 그만하고 공부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자녀는 부모 말을 듣지 않는다. 건강에 좋지 않은 것들을 즐긴다. 미래보다 현재의 즐거움을 더 좋아한다.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 지금 행복하기 원한다. 부모 속을 긁어댄다. 그래서 부모가 자녀를 이해하기 힘들다.

룽잉타이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1986-1999) 독일에 갔다. 대만 문화국장 일을 하기 위해 독일을 떠날 때 아들 안드레아는 14살이었다. 문화국장 일을 끝내고 홍콩에 건너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안드레아는 18살이 되었다. 4년 동안 떨어져 지낸 아들은 와인 잔을 들고 차갑게엄마를 바라보았다. 아들은 담배를 피우고, 엄마의 물음에 심드렁하게 대답하며, 자기는 엄마의 사랑스런 아들 안안(어릴 때 부르던 이름)이 아니라고 말했다.

엄마 룽잉타이는 안안을 잃어버린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아들 안드레아를 영영 잃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들과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아들을 알아가려면 잘 지내니? 밥은 먹었니?”만 물을 수는 없다. 엄마가 어릴 때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내세워서, 아들을 엄마의 그림자에 가두어도 안 된다. 서로를 이해하려면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서 해야 한다.

사랑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만큼 불편한 상대가 어디 있으랴! 사랑하지만 미워하고, 사랑하지만 오해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더 미워하기 싫어서, 더 멀어지지 않으려고, 가까이 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가까이 하지 않는다. 또 실망하고 더 미워하게 될까 두려워한다. 서로에게 남긴 상처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민감한 이야기를 피하고, 서로의 솔직한 생각을 알면 감당하지 못할까 두려워한다. 진실한 사랑만이 두려움을 이긴다. 그래서 어렵다.

천천히 생각을 나누면서

편지는 느린 방식이다. 세상이 빠르게 변해가면서 편지가 그땐 그랬지의 대상이 돼버렸다. 전화하거나 만나면 될 일을 굳이 편지로 쓰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빠르게 지나가면 깊이 보지 못한다. 한 번 해버린 말은 신중하게 다시 생각하기 어렵다. 나태주 시인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가까이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했다. 말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면 조금씩 덧붙여져서 뜻이 바뀌기 쉽다. 편지는 내용이 그대로 남는다. 오해하지는 않았는지, 편지 쓴 사람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다시 읽으면서 생각할 수 있다.

편지를 쓰는 자체도 어렵지만 30년간의 시간 차이도 부모와 자녀를 가로막는다. 부모와 자녀가 안부편지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편지를 쓴다니 얼마나 힘들까! 편지에는 감정 대립, 논리 싸움이 계속 이어진다. 그래도 룽잉타이와 안드레아는 3년 동안 꾸준히 편지를 썼다. 신문에 칼럼을 내면서 원고료를 주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부모와 아들이 3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사실도 귀하지만 둘이 편지에서 나눈 내용이 더 귀하다. 개인 일상이야 당연히 나누겠지만 홍콩, 대만, 독일, 싱가포르에서 일어난 이슈로 논리 싸움을 벌인다.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 시작한 편지가 가치관, 문화, 취미, 인생의 목표에 대한 대화로 이어진다. 그러면서 부모와 자녀의 세대 차이, 독일에서 자란 사람과 대만에서 자란 사람의 문화 차이,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극복해간다. 우리나라 18살이 이런 생각을 할까 싶다. 교수이며 문화부 장관이었던 사람의 생각이 깊은 거야 당연하다 생각하지만 18, 여전히 부모를 의지하는 나이인데도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통찰을 보여준다. 감탄하고 부러워하며 읽었다.

둘은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는 기쁨을 느꼈을 것이다. 룽잉타이와 안드레아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상대의 생각을 확인하고 이해한다. 아들이 엄마처럼, 엄마가 아들처럼 되지는 않지만 어느 부분에서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하며 받아들인다. 게다가 신문에 낸 칼럼을 읽고 독자들이 보낸 편지가 균형을 더한다. 대만과 독일의 차이를 넘어서서 세계적인 시각으로 균형을 잡아가게 돕는다.

부모와 자녀 세대가 지금처럼 멀어진 적이 있을까! 앞으로는 얼마나 더 멀어질까!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 자녀가 부모를 좋아하는 마음만큼 서로를 이해하면 삶이 얼마나 풍성해질까! 부모와 자녀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같은 길을 가면서 이야기하면 좋겠다. 정치 색깔이 다르다고 비난하지 말고,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며 대화하는 국민이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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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이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을 썼다. 박진영은 똑똑하게 타고났고, 한 번 꽂히면 미친 듯이 열중했다. 타고난 성격이다. 이성에 대해서도 자신이 온몸과 마음으로 사랑할 대상을 찾아다녔다. 또한 자신이 누리는 게 자기 실력만으로 된 것이 아니라 운인 줄 알 정도로 통찰력과 겸손함을 갖추었다. 돈이나 권력에 집착하지 않고 진리를 찾아다녔다.

책의 60%는 하나님과 성경 내용이다. 한 번 꽂히면 끝장을 보는 성격인지라, 2년 동안 날마다 열 시간 이상씩 성경을 붙들고 씨름했다.(고 썼다.) 두 달 동안 핸드폰을 꺼놓고 이스라엘 박물관, 도서관, 현장을 찾아다니며 성경 내용과 역사 자료를 비교했다. 그리고 복음을 받아들이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한다.

자신이 거듭났으며, 거듭남을 올바로 가르치는 교회가 적다고 썼다. ‘나는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다는 투는 아니다. 물론, 자신이 깨달은 진리가 진짜 성경이 말하는 바라고 되풀이해서 주장하며, 자신의 설명을 듣고 거듭난 사람도 여러 차례 묘사한다. 교회, 거듭남과 구원, 믿음, 참교회를 설명하면서도 자신이 깨달은 바가 옳다고 주장한다. 워낙 열정 넘치고 확신이 강한 사람인지라 존 파이퍼 목사에게 자신이 깨달은 바를 설명하는 편지도 썼다. 존 파이퍼 목사가 악의 근원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한 영상을 보고 악은 어둠에서 온다고 썼다. 어둠은 상징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존하는 힘이라 설명한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이사야 457)”를 인용하며 어둠이 사탄과 연결된 힘이라 한다. 이 말이 맞다면, 하나님이 왜 어둠을 만드셨는지도 설명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진 않는다.

교회가 욕먹는다. 정치에 이어 코로나19도 교회의 민낯을 드러냈다. 그동안 교회가 복음을 설명하고, 하나님 말씀이 뜻하는 바를 알려주는 일에 소홀했다. 그저 사교모임, 인맥을 쌓는 곳, 하나님 이름을 빙자하여 자신의 감정을 해소하는 곳, 하나님을 노래한다면서 자기들이 즐기는 곳으로 만들었다. 오랫동안 교회에 다녔으나 그리스도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신자를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복음을 적당히 알고 믿는다. 복음과 십자가를 제대로 설명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목사들 비리가 방송을 덮는 까닭 중 하나는, 그들 곁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복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목사만 바라봤기 때문이다. 그러자 박진영 같은 사람이 나온다.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복음이 진짜 무엇일까 찾는 사람들. 나도 목사 수준에 갇힌 신도가 되기 싫어 읽고, 찾고, 고민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중심성이 강하다. 박진영이 설명하는 복음과 성경도 그런 면이 있다.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는 근거로 성경 구절을 드는데, 맥락 없이 문장만 골라냈다. 교회에 다닌다 해도 온전히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면서 예레미야 614절 말씀을 든다. “그들이 내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예레미야 614)” 상처를 가볍게 여기며 평강을 말하는 사람은 당시 선지자와 제사장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평화는 거짓이며, 바벨론에게 잡혀간다는 내용이다. 이런 내용을 설명하지 않고 진짜 믿음을 갖지 못하면 평강을 누리지 못한다고 말한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시편 13916)”를 들어, 예수님은 나란 사람이 언제 태어날지, 그리고 평생 어떤 죄들을 지을지 다 알고 계셨다(174)고 주장한다. 운명론이나 결정론이 아니라 우리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은 옳다. 그러나 시인의 표현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오류를 범했다. 우리는 도종환 시인이 쓴 담쟁이를 읽으며, 담장을 절망의 벽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시에서는 비유와 상징, 과장과 은유를 사실로 읽으면 안 된다. 해석해서 뜻을 찾아야 하지 않나?

그래도 이 책을 읽으라고 추천한다. 책 내용에 반대하는 주장을 썼지만, 박진영이 지나치게 나간 건 아니다. 목사들 설교보다 나은 면이 많다. 구원받았음을 한 순간의 변화만으로 한정하는 게 불편하지만 복음을 확실하게 믿는 마음이 귀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박진영의 설명을 들으려고 그가 시작한 교회에 가겠지. 신천지와는 전혀 다르며, 구원파와도 다르다. 구원받았으니 편안하게 살라고 하지 않는다. 올바른 행실로 모범을 보이라 말한다.

한 가지가 걱정스럽다. 박진영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사랑을 찾아다녔다. 소확행이 아니라 완영행(완전하고 영원한 행복)’을 추구했다. 4학년 때 첫사랑, 6학년 때 짝사랑, 중고등학교 때 바라본 누나에 이어 저 여자라면 평생을 같이 살아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여성과 결혼했다. 그녀는 박진영이 생각한 것보다 더 훌륭했고, 더 겸손했고, 더 고귀한 인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완영행을 채워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혼했다. 첫사랑에 열병을 앓고, 짝사랑에 몸부림치고, 그 여성을 만났을 때 박진영은 완전하고 영원한 행복을 이루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뒤에 이혼했다. 시간이 얼마 지난 뒤에, 무엇을 위해 살죠?에서 말한 내용이 완영행을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말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이런 패턴으로 살았는데 또 그러지 않을까 이게 걱정이다.

신중한 사람은 실수가 적으나 크게 이루지 못한다. 열정 넘치는 사람은 실수가 많으나 크게 이룬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자신의 전부를 불살라야 하겠지만, 자신의 관심사에 자신의 전부를 쏟아부었다가 이게 아닌가봐!’ 할까 두렵다. 박진영이 끝까지 하나님을 잘 믿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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