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 코졸은 권위에 대한 반항아입니다. 일반인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통찰과 분석으로 교육계의 촘스키로 불립니다. 미국의 차별적인 교육과 사회 불평등에 맞서 싸워온 교육자이며 미국을 대표하는 미국 비판 지성인입니다. 그는 학교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가르침이 일어나는 곳이 아니라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원하는 생각을 주입하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권위를 계속 유지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교과서를 만들었다는 증거를 밝힙니다. 학교가 진실, 아름다움, 위대한 영혼의 추구, 인간적인 가치……을 중요하게 여기는 듯 말하지만 실상은 포장만 요란하지 내용은 주는 대로 받아들이라고 주입한다는 겁니다.
미국 교과서 역시 적당한 사실만 알려주고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말라는 식으로 기술되었나 봅니다. 코졸은 올바른 가치를 위해 정부에 대항했던 인물들이 사라진 교과서를 비판합니다. 인종차별적인 생각을 가졌던 링컨의 발언은 삭제하고 정직한 에이브만 보여줍니다. 파업참가와 단식, 투옥을 마다하지 않은 도로시 데이처럼 비범한 의지를 가진 여성들은 전복적인 인물로 취급해서 교과서에 싣지 않습니다. 헬렌 켈러가 열심히 노력해서 유명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는 이야기는 실으면서 노동착취가 일어나는 빈민가를 방문하고 탐욕스러운 지도자와 기득권층에 대해 도전한 내용은 싣지 않습니다. 역사, 경제, 정치, 철학, 사회질서, 도덕적 가치 모두 취사 선택하고 적당히 편집해서 그들이 알려주고 싶은 내용만 교과서에 남습니다.
「교사로 산다는 것」이라는 책은 저자가 30년 전에 썼습니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도로시 데이나 헬렌 켈러가 교과서에 실릴 수 있지만 미국 우월주의와 사회질서 유지 위주의 내용은 바뀌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교과서로 배운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요? 히틀러의 명령을 철저히 따른 아돌프 아이히만의 순종적인 태도는 독일 공립학교에서 길러졌다고 합니다. 잘 통제된 공립학교에서 복종하는 것을 배우면, 아이히만처럼 지배자들이 요구하는 ‘낮은 사고력과 높은 애국심’을 갖춘 시민이 된다고 합니다. 코졸은 교사가 물들지 말고 올바로 가르치라고 합니다. 상처 받기 싫어 세운 보호막에서 내려와, 생각을 바꿔주는 수업을 하라고 합니다. 언제나 중도에 가까울수록 진실하다는 믿음을 버리고 올바른 것이라면 극단을 선택할 줄 아는 학생을 길러내라고 합니다. 예수님도 당시 사회에서는 극단주의자였다면서……
2. 2010년 2월에 토론하고 덧붙인 생각
『교사로 산다는 것』을 처음 읽었을 때, 들리는 메시지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9년만에 다시 읽으며 <자기만의 수업을 하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년 전부터 나라는 인격에서 나와, 아이라는 인격을 만나는 나만의 수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멋진 아이디어, 감탄을 자아내는 도구를 사용해서 아이들을 사로잡는 수업은 아닙니다. 아무 도구 없이, 온전한 나 자신에게서 나오는 수업입니다. 조금씩 배우고, 변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간단하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자기만의 수업을 방해하는 세 가지 걸림돌이 생각납니다.
시선.
전 동네 곳곳, 골목과 언덕과 개울을 다니며 수업합니다. 우리 반만 뒷산에 가고, 운동장에서 비 맞으며 수업하면 주위 분들이 한마디씩 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사람들 눈치를 받지 않습니다. 우리 반만 다달이 문집을 내고, 우리 반만 현장학습 가고, 우리 반만 책상 위에 걸터앉아 노래를 불렀습니다. 전 그게 좋아서 선배들이 주는 눈치를 이겨냈습니다. 그때 시키는 대로 했다면 제 수업의 큰 부분이 사라졌을 겁니다.
교과서.
“이상한 짓 하지 말고 교과서대로 해!” 사실 시키는 대로 하면 편합니다. 문제가 생길 때 시킨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면 됩니다. 교과서만으로 가르치면 안전합니다. 그러나 저는 코졸의 의견을 받아들였습니다. 코졸의 책을 읽기 전부터 교과서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국어 글쓰기 내용은 많이 바꿔서 가르쳤습니다. 교과서에서 제시하는 주제를 버리고, 아이들 삶에 바탕을 둔 글감을 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우리 이야기’를 쓰게 했습니다.
막연한 생각.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교과서를 무시하면 무얼 할까요? 무너뜨리기는 쉬워도 세우기는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 수업을 분석하고 비판할 점을 찾기는 쉽지만 나만의 수업을 만드는 건 어렵습니다. 막연한 생각은 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할지 찾는 건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게 힘들었습니다. 지금도 계속 찾습니다.
교사로 산다는 건, 아이들이 자기만의 길을 걷도록 안내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정해진 길, 사람들이 성공이라 부르는 길만을 따르게 하는 교육이라면
학원에만 다녀도 되지 않을까요?
3. 2011-11월 좋은교사 소개 글 중의 한 문단
저자는 “학생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 수업은 공책에 필기한 내용도 아니고, 교과서에 인쇄된 궁색한 문장도 아니다. 그것은 수업하는 내내 교사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메시지다.” 라고 말합니다. 정말 공감합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교사가 수업 시간에 눈빛으로 메시지를 뿜어내지 않는다면 학생들은 기존 질서를 유지하며 금권을 독점한 지배세력에게 순응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교사가 이런 모습으로 가르치고 있으면 안 되겠지요.
인터넷 서점 두 곳에서 어린이책 베스트셀러를 검색했다. 50위 중에 만화가 30권이 넘는다. 동화는 세 권뿐이다.『푸른 사자 와니니』, 『스무고개 탐정』, 그리고 『만복이네 떡집』이다. 『만복이네 떡집』은 아이들이 참 좋아한다. 교과서에 실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단순한 소재에 좋은 내용을 담았기 때문이다. 김리리 작가가 쓴 책 중에 가장 많이 팔렸지만 작가는 이 책을 몇 시간 만에 썼다고 한다. 『나의 달타냥』이 더 마음에 든다고 했다. 작가의 마음과 독자의 마음이 다르며, 어떤 책이 사랑을 받는 건 운명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생각이기도 하고 내 생각이기도 하다.
김리리 작가를 초청하기 한 달 전부터 아이들과 작가의 책을 읽었다. 세 권을 소개한다.
『검정 연필 선생님』 (143쪽)
단편 세 편이 실렸다. <이불 속에서 크르륵>은 무거운 짐을 진 느낌으로 살아가는 첫째 딸의 고민을 담았다. <검정 연필 선생님>은 공부를 짐으로 짊어진 아이가 주인공이다. <할머니를 훔쳐 간 고양이>는 할머니의 잔소리에 지친 아이의 고민을 다루었다. 도깨비가 첫째 딸의 고민을, 검정 연필이 공부에 힘들어하는 아이의 걱정을, 고양이가 할머니의 잔소리 문제를 해결한다.
그러나 한 가지가 이루어지면, 문제만 바라볼 때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어려움이 생기기 마련이다. 고양이가 할머니의 기억을 가져가서 잔소리를 듣지 않게 되었지만 할머니의 다른 기억도 사라진다. ‘치매’에 걸려 소중한 기억까지 잃어버린 셈이다. 치매를 이렇게 묘사하다니 대단하다! 검정 연필을 쓰면 성적이 좋아지지만 그럴수록 걱정이 함께 커진다. 주인공 이름이 바름이다. 바름이가 정직하게 바른 길로 갈 것인가? 토론 거리가 많다. 구박받는 첫째 딸 수민이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가족이지만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니 더 힘들다. 도깨비는 수민이 소원만 들어줄까, 수민이가 가족과 화해하게 도와줄까?
읽으면 알겠지요!!
『우리 사부님이 되어 주세요』(92쪽)
고재미, 오재강, 마주왕은 축구를 잘한다. 자기들보다 축구를 못하던 친구들이 축구 클럽에 들어가면서 분위기가 달라진다. 선수 출신 코치에게 축구를 배우는 세 친구가 ‘하이에나 팀’을 만들어 도전한다. 위기를 느낀 아이들이 코치를 찾아 나선다. 그래서 찾아낸 사부가 마주왕의 형이고, 아빠다. 형과 아빠는 과연 훌륭한 사부일까?
축구 시합날이 다가오는데 사부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합에 지긴 싫고, 코치를 구하지도 못한다. 할 수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사부가 되기로 한다. 각자 잘하는 기술을 가르치면서 자신감이 높아지고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생긴다. 서로가 서로를 가르치다니, 참 좋은 생각이다. 결말이 따뜻하다. 남자아이들이 좋아하겠다. 참, 축구 시합 결과가 어떻게 되었느냐고? 읽어보시라.
『뻥이오, 뻥』 (91쪽)
순덕이는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다. 말귀를 알아먹는 구멍이 조그마하게 뚫려서이다. 말이 제대로 드나들지 않아서 뜻을 엉뚱하게 받아들인다. 장갑을 가져오라 하면 장화를 가져오고, 텃밭에서 가지를 따오라 하면 나뭇가지를 꺾어 온다. 순덕이는 친구들에게 ‘바보, 멍텅구리’라는 말을 듣는다. 말이 드나드는 구멍을 뻥 크게 뚫으면 어떻게 될까? 너무 잘 알아듣는다면, 상대가 말하기 전에 이미 안다면? 그러면 순덕이는 친구들에게 사랑을 받을까?
이번에는 순덕이 귓구멍이 뻥 뚫린다. 어찌나 잘 들리는지 사람이 듣지 못하는 말까지 다 들린다. 동물들 소리가 막 들린다. 청개구리가 물가에 무덤을 만든 까닭, 토끼가 달리기 시합에서 진 사연, 고양이와 비교해서 차별하지 말라는 강아지의 부탁을 듣는다. 동물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말하면 친구들이 ‘바보, 멍텅구리’라는 별명을 바꿔줄까? 바꿔준다. 순덕이가 듣기 싫어하는 다른 것으로.
재미있는 책이다. 쉬운 말도 못 알아듣는 아이가, 동물들 말까지 잘 듣는 아이가 되더니 이야기꾼으로 바뀐다. 김리리 작가는 어릴 적 자신의 경험을 썼다고 했다. 말귀를 못 알아듣고 공부를 못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달라졌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책이 멋진 이야기꾼을 만들어냈다는 말인데, 고맙고 기쁘다. 특히 옛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하는 내용이 마음에 든다. 좋은 책이다.
저작권 문제
김리리 작가는 글을 쉽고 재미나게 쓴다. 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도 편하게 읽는다. 그렇다고 작가가 편하게 글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글은 작가가 마음으로 낳은 자식과 같다. 저작권은 자녀를 지키는 마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6학년 아이가 김리리 작가에게 질문했다. MBC 드라마 <반지의 여왕>(2017년 방영)이 김리리 작가가 쓴 『감정종합선물세트』(2014년 출간)를 표절했다는 의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작품의 플롯은 물론 반전, 소재, 마법 설정까지 똑같아서 MBC에 항의를 했고 다툼이 오갔다는 대답을 해주셨다. 순간 『빨강 연필』이 생각났다. 검정 연필이 오답을 찾아준다면 빨강 연필은 글을 써준다. 우연히 연필을 갖게 된 아이가 연필을 사용하고, 고민하고, 연필을 의지하는 마음에서 벗어난다는 구성이 비슷하다.
물론 다른 점이 더 많다. 검정 연필이 혼자만의 고민이라면 빨강 연필은 글 잘 쓰는 친구와의 갈등이 이야기를 끌어간다. 빨강 연필은 검정 연필과 달리 장편이라 더 복잡하고 묘사도 많다. 김리리 작가와 둘이 있을 때 『빨강 연필』을 아는지 물어보았다. 신수현 작가와 『빨강 연필』에 대해 조심스럽게 대답해주셨다. (참고 : 『검정 연필 선생님』 2006년, 『빨강 연필』 2011년 출간)
책에 대한 저작권을 말하면 『구름빵』이 빠지지 않는다. 굉장히 많이 팔렸지만 저자인 백희나 작가는 저작권료를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졌다. 사람들이 출판사 사장을 나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림책 병관이 시리즈를 쓴 고대영 작가는 다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고대영 작가가 출판사 직원으로 일했기 때문에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내가 한쪽만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학기에 유은실 작가가 우리 학교에 왔다. 유은실 작가가 아이들에게 “글을 잘 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라고 물었다. 권정생 선생님을 좋아한다며, 권정생 선생님 말씀으로 대답했다. “글을 잘 쓰려면 착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김리리 작가도 권정생 선생님을 소개했다. 유은실 작가와 똑같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좋아한다고 했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같은 책을 쓰고 싶다고 했다. 두 분이 권정생 선생님과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저작권을 침해할까? 그분들처럼 쓰고 싶어 하니 그대로 따라 할까?
『빨강 연필』을 쓴 신수현 작가와 몇 달 전에 메일을 주고받았다. 신수현 작가는 조심스럽게, 신중하게 행동하는 분 같았다. MBC가 김리리 작가의 저작권 침해에 대해 어떻게 대응했는지 모른다. 다만 신수현 작가처럼 신중하게, 김리리 작가와 유은실 작가처럼 존경하는 마음으로 상대를 마주한다면 ‘침해’라는 낱말이 나오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저작권 침해 문제로, 작가들이 고민하는 시간을 빼앗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다.
첫째의 추천으로 <책뜰안애 독서모임>에서 토론하려고 읽었다. 뇌가 하는 일을 세밀하게 소개한다. 기존의 뇌과학 책과 다르다. TV 프로그램(6부작)으로 만들어져서 독자 친화적이다. 사진이 많고 새롭다. 인간이 누구인지, 어떻게 의미를 만드는지, 어떤 존재가 될지 등의 문제를 ‘뇌’로 풀어간다.
함께 읽은 분들은 저자의 견해에 놀라면서도 반대 의견을 냈다. 나도 반대한다. 실험 사례가 극단적(병에 걸리거나 특이 현상을 겪는 사람)이거나 과학으로 검증할 수 있는 것들이다. (방송으로 제작했기 때문에 호기심을 끄는 사례를 많이 보여준 것 같다.) 과학이 아니라 다른 길로 접근해서 균형을 잡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자도 이를 의식했는지 철학의 문제를 꺼낸다. 그러나 우리의 뇌가 우리를 결정한다는 주장에 대한 증거로 과학만을 내세운다. 아쉽지만 굉장한, 굉장하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는 책이다.
→ 당신의 정체성은 움직이는 표적과도 같다. 당신의 정체성은 절대로 종착점이 이르지 않는다. (12)
→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뇌와 몸은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조금씩(시계의 시침이 움직이는 것처럼) 변화한다. 예컨대 당신의 적혈구들은 4개월마다, 피부세포들은 몇 주마다 완전히 교체된다. 약 7년이 지나면, 당신의 몸을 이루는 모든 원자가 다른 원자로 교체될 것이다. 물리학적으로 보면, 당신은 끊임없이 새로운 당신이다. 다행스럽게도 다양한 당신의 버전들 모두를 연결해주는 상수가 하나 있다. 바로 기억이다. 어쩌면 기억은 당신을 당신으로 만드는 연속적인 실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억은 당신의 정체성의 핵심에 자리를 잡고 단일하며 연속적인 자아감을 제공한다. (34-35)
→ 기억의 적은 시간이 아니라 다른 기억들이다. (38)
→ 당신은 대상들을 있느 그대로 지각하지 않는다. 당신은 대상들을 당신답게 지각한다. (52)
→ 우리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는 미완성 작품이다. (52)
→ 의식은 무수한 세포들이 자신들을 통일된 전체로서 보는 한 방식, 복잡한 시스템이 자신을 거울에 비추는 한 방식이다. (132)
→ 더 나은 결정을 하려면, 당신 자신을 아는 것뿐 아니라 다양한 당신 자신들을 모두 아는 것이 중요하다. (174)
책뜰안애 서재 앞마당에 작은 텃밭을 일구었다. 닭똥거름 뿌리고 삽으로 뒤집었다. 감자를 심었는데 절반가량이 호두 크기다. 달걀만 하면 큰 편이다. 감자 캔 자리에 배추를 심었다. 자리공 열매로 제초제 만들어 뿌리고 손으로 벌레를 잡았다. 농약과 비료를 자주 뿌린 옆집 배추와 비슷하게 커서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한 주일 안 간 사이에 진딧물이 배추를 맛나게 먹었다. 뒤늦게 농약을 한 번 뿌렸지만 소용없었다. 지구를 살리겠다고 풀을 뽑고, 비료와 농약을 거의 쓰지 않은 결과 작은 배추를 얻었다.
조금씩 나아지겠지만 농사는 힘들다. 지구를 살리겠다고 거름 만들고, 약을 치지 않으면 더 힘들다. 『농부의 인문학』은 농부의 생각을 담은 책이다. 좋은 결과를 만들어주고, 유행으로 오르내리는 뜻에서의 인문학과는 거리가 멀다. 사람이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을 생각하고, 자연에서 얻은 지혜를 말하는 인문학이다. 인용하는 책이 많지 않고, 이름난 책도 아니어서 ‘그런 인문학’을 생각하고 읽으면 안 된다.
“골치 아픈 집안 문제에다 자식까지 속을 썩여 몇 해째 잠을 못 자고 날마다 죽고 싶은 생각뿐인 어머니 한 분이 찾아왔습니다. 지나가는 자동차만 보면 뛰어들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는 그 어머니를 위해 아내와 나(서정홍 선생님)는 직접 농사지은 녹두로 빈대떡을 부치고, 된장찌개와 감자볶음을 하여 소박한 밥상을 차려 드렸습니다.~ 며칠 뒤에 전화가 왔습니다.(109쪽) ” “몇 해째 수면제 안 먹고는 잠을 못 잤는데, 이젠 수면제 안 먹고도 잠을 잘 수 있습니다. 그때 차려 주신 밥상 덕분입니다. 내내 잊지 않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빨리 읽으면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천천히 읽으면 깊은 이야기를 담았다.
사람을 살리고 땅을 살리는 농부의 생각이 소박하면서 아름답다. 아내와 땅을 사고, 집을 짓고, 정원을 만들고, 텃밭을 일구며 꿈을 꾸었다. “자급자족하자!” 서정홍 선생님처럼 하긴 어렵겠지만 조금씩 따라 할 생각이다. 책뜰안애에 오는 분들에게 깨끗한 야채로 밥상 차려 주고, 깊은 문장으로 마음을 어루만지는 꿈을 꾼다.
- 지난번에 읽었을 때보다 인물들의 행동, 행동 이면에 담긴 감정이 전해진다. 민호가 자신을 이겨내는 과정이 반갑다.
-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좋아할 내용만 쓰게 되었다.’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은 행동들을 하고 싶었던 ‘나’에서 내가 원하는 것,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봅니다.
- 오롯이 나에 대해 생각했다. 내 글에는 얼마나 진실이 있는지? 나는 아이들 글을 대할 때 어떤 프레임에 갇혀 좋은 글, 나쁜 글을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지? 아이들 책을 읽고 나에 대해 생각하고, 부끄럽고 반성이 되기는 처음이다.
민호가 글쓰기를 하면서 마음 깊이 느끼는 감정을 쏟아내며 자유로운 감정을 느끼는 것에 공감하고 빨강 연필을 불태우는 용기에서 ‘과연 나는 그럴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 ‘빨강 연필’이라는 소재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풀어내고 있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 아이들만이 아닌 어른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고, 일기 쓰기나 독서록 지도에 관한 생각을 다시 하게 해주었습니다.
- 사람은 누구에게나 유혹이 있고, 그 유혹으로부터 실수할 수 있다는 것, 실수했을 때 필요한 것은 자기를 믿어주는 사람과 용기라는 것 등을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
- 부모는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자 세상으로 나가는 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부모와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는 아이들은 양치기 소년이다. 혼자서는 너무 외로워서, 양이 아니라 사람이 보고 싶어서,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하게 되는.
- 집중하지 못하고 수업 내내 까불어 친구들조차도 한 마디 하게 하는 아이, 별 말을 하지 않았는데 쌍심지를 켜는 아이, 어울리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한 쪽에 쭈그려 있는 아이, 오로지 게임에 빠져 있는 아이, 친구들 사이를 오가며 뒷 담화하고 이간질 하는 아이들이 그런 양치기 소년이 아닐까?
그런 양치기 소년의 외로움을 알아주고, 그의 말을 귀담아 주는 사람이 부모이고 형제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렇지 못한 경우라면 그 역할을 누가 해주어야 할까? 아이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하는 선생님이었을까?
★ 연수 후기
- 더디고 실수하더라도 조금씩 해보겠습니다.
-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아이들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농촌지역에서 근무하면서 상처 많은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습니다.
- 연수 내내 내가 선생님의 학생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열심히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연수 내내 새로운 사실들과 관점들을 끊임없이 발견했다. 오랜 세월 아이들과 함께 하며 쌓여진 선생님의 내공에 감탄과 존경이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어줍잖게 아이들에게 독서지도 한다고 꽤 잘난 척 한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아이들은 얼마나 재미없었을까? 글쓰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견디어 준 아이들이 오히려 고마웠다. 앞으로 아이들과 글을 쓰는 시간이 조금은 변할 것 같다. 그리고 끊임없이 고민할 것 같다. 아이들 마음을 읽으며 노력하는 첫걸음이 될 것 같다.
-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 목표인데 내가 좋아하는 책 외에 다양한 수준과 취향에 대해 잘 몰라서 아이들에게 다양하게 권해주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 글 읽기를 좋아하지 않는 남자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하면 좋을지, 어떤 책이 좋은지에 대해 많이 배우고 싶어요.
- 연수를 받으며 집에서도 ‘국어 교사’ 노릇하던 저를 반성하게 되었어요. 책을 좋아하고 표현하는 것도 좋아하는 아이들인데 저 또한 재규 엄마처럼 ‘더 잘’ 쓰도록 너무 많은 ‘빨강 연필’을 들이대진 않았는가 반성하게 되었답니다. 선생님과 더 길게 토론하고 아이들이 글까지 써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또한 학교에서 수업할 때 글감을 찾게 하는 방법 등에 대한 팁을 얻게 되어 좋습니다.
- 독서활동이 없는 책 읽기는 그냥 글자를 읽어 내려가는 행동이었습니다. 독서활동을 하면서 그 내용과 생각, 나의 삶을 함께 놓아보며 힘을 얻었습니다. 즐거운 시간, 단단한 마음을 갖게 해주는 수업이었습니다.
- 『빨강 연필』을 통해 글쓰기에 대해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책을 읽고, 질문을 만들고, 활동을 디자인하는 선생님의 통찰력이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연수 중에 들려주시는 강원도 아이들의 삶과 글이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다시 독서와 글쓰기 수업을 시작할 힘을 얻고 갑니다.
- 갖은 유흥거리가 넘치고 세상이 바빠지면서 가족 간에도 얼굴을 맞대고 밥 한 끼 먹기 어려워지는 세태이다. 가족이 함께 모여야 할 저녁 시간에도 돌봄이나 지역아동센터에 아이를 맡길 수 있게 하는 정책이 환영을 받는다. ‘저녁 시간은 가족과 함께’여야 하는데. 이런 속에서 아이들이 점점 더 고민하면서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을 잃어가는 것만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아이들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도록, 또 가족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하려고 했는데……. 나는 아이가 조금이나마 자신의 마음을 열어놓을 수 있는 선생님인가?
저는 이번 연수가 지금까지 들었던 독서 관련 연수 중에 제일 좋았어요. 기술과 기법이 아닌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글쓰기를 하는 이유를 저 스스로 깨닫게 해주셨어요. 제 자신이 정리가 되어 확신이될 때 아이들에게 좋으니 같이 해보자 할 수 있는 거라는 것도요.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스스로 생각하고 찾게 해주셨어요. 온전히 선생님이 살아오신 삶으로요.
표현하지 않으심에도… 저는 들을 수 있었고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하시고 곁에 계셨는지
시공간을 넘어흐르고 마음에도닿아연결되고 알 수 있었습니다.
짧아서 아쉬웠구요 ~ 다음에 있을 글쓰기 연수와독서연수 때도 뵙고계속나오게될앞으로의 책을 통해 항상 지지와 응원 하겠습니다~^^
2. 고등학교 교사
웃음과 감동, 눈물과 콧물이 있었던 연수였습니다. 아이들이 쓴 글을 보면서 진솔하게 자신을 들여다보고 상처와 마주하고 현실을 바라보는 문장들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아이들의 삶이 그 가운데 담겨 있어 그런가 봅니다.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도 이제 가짜 글은 그만 쓰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려면 저부터 가짜 글을 버려야겠지요. 많은 도전과 숙제를 안겨준 연수입니다. 선생님의 연수가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면 또 듣고 싶고, 갖게 된 생각대로 살아내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3. 학부모(방송 작가)
우리가 아이가 된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정말 책을 깊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좀더 빨리 이런 시간을 가져 보았다면 책을 대하는 마음도, 아이와 함께 책을 읽는 태도도 달랐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아이들이나 독서동아리 회원들과 하면서 어서 적용해 보고 싶은 마음이 커졌습니다.
가장 좋았던 순간은 역시 선생님께서 아이들이 실제 쓴 글을 읽어주시고 그 아이들의 스토리를 들려주실 때였습니다. 그 생생한 이야기, 아이들의 상황, 그 아이들을 품어주시는 선생님 마음이 합쳐지면서 함께 웃고 울었던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우리 학교 현장에 권일한 선생님과 같은 분이 계셔서 안심이 됩니다. 그리고 권일한 선생님으로부터 배우고 싶은 많은 선생님들이 계시다는 것도 참 다행스러웠습니다. 제가 있는 곳에서 저도 역시 좋은 글꽃, 독서동아리 모임의 꽃을 피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들은 연수나 세미나 중 최고의 시간이었습니다.
→ 시인과 평론가, 두 사람 중 누가 시의 본질을 제대로 읽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물론 독자의 몫입니다. 하지만 같은 사물을 각자의 내적 성향에 따라 다른 의미로 읽어 낸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그래서 미국 역사가 칼 베커는 이렇게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들의 사상을 명료하게 밝혀 주는 책, 그들의 동기를 잘 표현해 주는 책, 그들의 마음이 이미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던 바로 그 사상을 그들에게 제시해 주는 책에 영향을 받는다.” (11-12)
→ 민중의 예언자 미가는 수도 예루살렘 주민보다 시골 사람들에게 더 큰 애정을 보였다. 시골 출신인 그는 고향 마을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했다. 예언자 이사야가 주로 도시와 궁정의 타락과 음모를 풍자․비판한 데 비해, 미가는 농민을 학대한 지주들의 탐욕과 불의를 꾸짖었습니다. 그는 상인 집단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38)
→ 자연보호 사상을 설파한 예언자 하박국의 사상 또한 대단히 현대적입니다. 그는 레바논 숲을 마구잡이로 벌목해 각종 건축 재료로 사용한 바빌로니아인을 비판합니다. ~ 하박국은 자연을 고갈시킨 바빌로니아인을 규탄하며, 숲이나 짐승 같은 자연계마저 일정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현대의 환경론자, 생태주의자들이 귀감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는 주장입니다.(39-40)
→ 기독교 신앙은 이 땅의 ‘터줏대감’을 버리고 서아시아 ‘모래밭의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신’을 떠나 ‘역사의 신’을 향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한반도에서 서아시아로의 지리적․수평적 이동이 아니라 자연종교에서 역사종교로의 수직적 비약입니다.(61)
→ 존 로크의 경험주의 철학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왜’라는 질문을 포기하고, 오로지 ‘어떻게’라는 문제에만 집착하는 특징을 갖습니다. 현대의 교육과 학문은 대부분이 같은 경험주의와 실증주의의 틀 속에서 행해지고 있으며, 정규교육을 받은 오늘날 교양인들의 의식 역시 그 같은 사고의 틀에 의해 규제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현대의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선뜻 기독교적 관점에 접근하기 어려운 이유는 최근 300년 동안 세계를 지배해 온 이 같은 사고에 있지 않을까요. (78)
→ 만일 그들이 어떤 사건을 경이롭고 의미심장하게 느꼈다면, 그 이유는 “그 사건이 자연법칙을 깨뜨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 신이 임재하고 활동하고 있음이 그 사건을 통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81)
→ 『구약성서』 저자가 민족 형성 당시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적 동요 또는 철저한 불신을 대단히 솔직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모세마저 불신에 빠진 나머지 약속의 땅에 들어감을 허락받지 못했다고 전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기 민족의 첫 출발이 보잘것없음을 이토록 솔직하게 털어놓은 민족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야훼의 백성이요, 종교 민족으로 자처하는 이들에게 조상들이 품은 불신은 인간적으로 커다란 수치였을 겁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민족적 자긍심을 크게 손상시키는 일이었을 테지요. (87-88)
→ 야곱의 아들들과 함께 이집트로 들어가지 않은 많은 수의 히브리인이 있었으며, 출애굽 사건이 일어나기 오래전부터 이미 상당수의 히브리인이 모세의 영도를 받지 않고 이집트를 빠져나왔다는 사실입니다. 모세의 영도하에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바네아의 오아시스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그곳에서 다른 경로를 통해 이집트에서 먼저 빠져나온 히브리인들 그리고 오래전부터 이미 그 지역에 체류하고 있던 다른 히브리인 집단을 만나게 됩니다. 모세 영도하의 이스라엘 백성이 가진 ‘야훼 신앙’은 도망 나온 히브리 노예들과 아무런 사회적 기반 없는 부랑 집단에게 강한 흡입력을 발휘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신앙은 그들이 이전에 누리지 못했던 공동체적 유대감과 동질성을 느끼게 해 주었을 겁니다. 그 결과 새로운 신앙으로 개종해 모세 휘하에 들어가는 자가 속출하게 됩니다. (113-114)
→ 뽕나무 재배 농민 아모스 : 뽕나무는 해발 300미터 이상에서는 생장하지 않습니다. 이를 통해 뽕나무 밭이 그의 거주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25)
→ 아모스는 거의 모든 주변 민족의 역사와 지리에 대해 완벽한 지식을 과시합니다. 이렇게 보면 아모스는 토머스 칼라일이 말한 ‘거룩한 농부’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손에 괭이를 들었으되 마음에 우주의 진리를 품은 사람이란 뜻이지요.(133)
→ 고난이 인간을 위대하게 만든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 아모스를 비롯해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등 구약의 예언자는 대부분 척박한 유다 땅에서 배출되었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북왕국 이스라엘이 산출한 비중 있는 예언자로는 호세아 한 사람밖에 들 수 없으니, 인물 배출이란 점에서 보면 북방이 단연 남방보다 열세에 놓인 셈이지요. 나다나엘은 빌립에게 “나사렛(북왕국)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 라고 질문했는데, 이 말에는 은연중 이스라엘에 대한 경멸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곳 이스라엘에서 예수그리스도가 태어나고 베드로, 요한, 야곱 등 대사도가 출현했으니 이것이야말로 경박한 인간의 의표를 찌르는 신의 섭리라 할 것입니다. (160-161)
→ 아모스는 여로보암이 사망하기 5년 전(기원전 746), 늦어도 기원전 752년경에 예언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가 앗시리아에 의해 함락되기 직전까지 계속 활동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이 멸망으로 치닫던 위난의 시기에 그는 거의 30년이란 세월 동안 야훼의 예언자로서 조국의 멸망을 선포해야 했습니다. (163)
→ 가난한 농민들 틈에 섞여 살았던 미가는 이웃 농민들이 당한 어려움과 고초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을 괴롭힌 세력가들에게 누구보다 큰 분노를 느꼈습니다. (201)
→ 스바냐가 예루살렘에 살았다는 증거 : (미 1:10-11) ‘물고기 문’에서는 곡성이, ‘둘째 구역’에서는 울부짖는 소리가, 산 위의 마을에서는 무너지는 소리가 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막데스에 사는 너희는 슬피 울어라. 장사하는 백성은 다 망하고, 돈을 거래하는 자들은 끊어졌다.
- 둘째 구역은 예루살렘 부유층 거주 지역을, 막데스는 상인 구역을 가리킨다. 예언자가 수도 예루살렘의 지리는 물론, 주민 각 계층의 생활을 세세하게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예루살렘 주민들이 행한 종교적․사회적 관행을 상세히 묘사한 부분(1:4-8, 1:12)은 예언자가 예루살렘에 살며 주민들의 생활을 직접 목격하고 관찰했음을 드러냅니다. (218)
→ 스바냐가 왕족이라는 증거는 그가 이방 풍습을 모방하는 왕족들을 비판한 것이나(1:8), 그 하인들의 모모한 횡포를 꾸짖은 점에서도(1:9)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설명하겠지만 스바냐는 요시야를 도와 개혁에 참여한 예언자이기도 합니다. 전반적으로 스바냐는 돈과 권력을 가진 유한계급을 질타했으나 결코 빈민의 입장에는 서지 않았고, 아모스나 미가처럼 빈민의 고통에 동정을 표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같은 경향은 스바냐가 왕실 가문에 속했기 때문에 가난을 경험하지 못한 데서 기인했다고 설명하면 쉽사리 납득할 수 있습니다. (220-221)
→ 학개가 예언을 시작한 것은 어느 가을날이었습니다. 1장 1절에는 6월이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6월은 오늘날의 8월 말, 9월 초에 해당합니다. 백성이 생활고에 시달리며 빈약한 수확을 거두어들이던 때였습니다. (287)
→ 말라기의 예언 방식은 대단히 특이한데, 이를 그의 개인적인 특징이라고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는 마치 교사 같은 태도를 취합니다. 스바냐에 의해 예언이 묵시적 성격을 취했고, 하박국에 의해 예언이 지혜서의 성격을 취했다면, 이제 말라기에 이르러 예언은 교육적・논증적 형태를 취하게 된 것입니다. (317)
→ 앞서 요나는 니느웨가 멸망하지 않았기 때문에 화를 냈지만 이번에는 박 넝쿨이 멸망했기 때문에 화를 낸 것입니다. (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