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이어 2021년에도 좋은교사 글쓰기 연수를 했다.
10월부터 1월까지 열 번 동안 만나, 글쓰기를 배우고 직접 글을 썼다.
모르는 분들이 서로 알아가며 마음을 글로 표현했다.
연수하며 쓴 글을 모아 문집을 만들었다. ---------- 표지----->
마지막 과제인 <연수 후기>를 소개한다.
나에게 글쓰기 연수는 어떤 의미를 남겼나?
전북 교사
2022년 2학기 권일한 선생님의 글쓰기 연수를 신청했다. 어릴 때부터 글쓰기란 나에게 ‘잘하고 싶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는 것’이었다. 교사가 되고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쳐야 했다. 나도 자신 없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어려웠다. 그런 글쓰기 지도에 용기를 가지고 문을 두드려 보기로 했다.
10회 동안 다양한 종류의 글쓰기 지도를 받고 난 후,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너는 이번 연수로 무엇을 배웠니?’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분명 무언가 나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었는데, 그것을 뱉어내기에는 모호했다. 적다가 그만두고, 시도를 계속하다가 제출일이 다가왔다.
“이제 어떻게든 써야 한다.”
먼저, 이번 연수를 통해 글쓰기 지도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다. 과제로 제출하기 위해 나부터 글쓰기를 시도해 보았다. 오히려 글쓰기에 대해 배우고 나니 염두에 둘 것이 많아져 글을 쓰기가 더 어려웠다. ‘더구나 이를 가르친다고?, 내가 할 수 있을까?’ 앞으로 시도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글을 쓸수록 나에게 글쓰기가 주는 여운이 진했다. 내 안에 잠깐 머물러 가는 감정과 생각을 놓치지 않고 글로 낚아 뱉어내는 순간, 진한 감동이 있었다. 글을 쓰고 난 후에도 꽤 오래 따뜻함이 마음에 머물렀다. 그 감동을 안고 살아가는 경험이 신선했다. 글쓰기 맛을 경험하고 나니 이를 가르쳐야 할 이유가 명료해졌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도 이 감동을 지니고 살아간다면 삶이 더욱 따뜻할 것 같다.
내가 글쓰기가 어려워서 좌절했던 이유는 글쓰기 지도 목적을 아이들이 쓴 글, 즉 결과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결과보다는 글을 쓰고, 함께 나누는 과정 자체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단 아이들과 함께 써보려고 한다. 그렇게 하나씩 하다 보면 나도 성장하고 아이들도 성장하겠지.
이 밖에도 연수를 들으며 ‘글쓰기’와 ‘교사의 역할’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연수를 듣기 전에는 글쓰기를 잘하려면 글을 쓰는 기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글쓰기 지도란 책을 많이 읽어서 배경지식을 얻게 하고, 글을 쓰는 기술을 가르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연수를 들으면서 내가 ‘좋은 글’이라고 느낀 글은 넓은 배경지식과 정교한 글쓰기 기술로 쓰인 글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삶 속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글’로 울림 있게 전하는 것. 이런 글을 만났을 때, ‘아! 좋다.’ 하며 마음이 동하였다.
권일한 선생님은 이런 글을 위해선 교사가 아이들 마음 문을 두드려야 한다고 하셨다. 어쩌면 교사의 역할은 글쓰기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도 모르게 닫힌 마음을 열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닐까? 내가 글쓰기 지도를 어려워했던 이유는 기술을 잘 가르칠 자신이 없어서였다. 그런데 글쓰기와 교사의 역할에 대한 생각이 변하니, 글쓰기 지도를 해보고 싶다.
교사로 발령받아 10년 6개월 교직 생활을 경험하고, 지역을 옮겨 교사 제 2막을 시작하는 나에게 이번 글쓰기 연수는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연수를 받으면서 앞으로 내가 어떤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나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져야 함을 다짐한다. 나에게 아이들을 맞추려 하지 말고, 그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두드리는 교사가 되고 싶다. ‘글’이라는 연결 고리로 아이들과 통(通)하길 시도해봐야겠다.
김 선생님을 위한 추천 연수
서울 교사
김 선생님,
글쓰기 연수가 얼마 전에 끝났어요. 연수를 받으며, 종종 선생님과 함께 배우는 상상을 했어요. 좀 더 빨리 연수 소식을 전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집합 연수라는 착각만 하지 않았어도, 분명 선생님은 흔쾌히 배움에 동참했겠지요? 실시간 화상수업으로 진행된 이번 연수는 수업 후 먼 집까지 가야 하는 부담도, 엄마를 기다리다 일곱 살 아들의 목이 늘어날 걱정도 할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죠. 약 3개월간의 글쓰기 수업이 궁금했을 선생님을 위해, 나만 누려 아쉽고 미안했던 호사에 대해 몇 자 적어볼게요.
3년 전, 쓰고 싶은데 쓸 수 없어 갑갑했던 내 눈에 ***문화센터 글쓰기 강좌가 들어왔어요. 강좌명에 홀딱 사로잡혔으면서도, ‘글쓰기’를 혼자 배울 엄두가 나지 않았죠. 그때 지나가는 말로 물었는데, 단번에 함께 등록을 해줘서 얼마나 힘이 되었던지요. 첫 과제 ‘나에게 글쓰기란?’이라는 주제로 써낸 선생님의 글은, 또 얼마나 나를 자극하고 감탄케 했던지요. ******에서 뒤처진 동료를 두고 갈 수 없어 혼자 남아 기다려야 했던 30분, 점점 조여오는 조난의 공포를 감당하게 했던 건 손바닥만 한 일기장이었다고 했어요. 생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순간에 글쓰기를 선택했던 선생님, 그런 김 선생님에게 이 연수가 딱 어울려요.
글쓰기 수업의 으뜸은 권일한 선생님을 3개월 넘게 만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따님들에게 풍긴다는 ‘아빠 냄새’를 우리도 마음껏 맡을 수 있거든요. ‘책 읽고 공부할 마음이 생기게 한다는 아빠 냄새’를 말이죠. 독서 관련 연수로 권일한 선생님을 처음 뵈었을 때, 선생님을 특별하게 보이게 했던 것도 바로 이 냄새였을 거예요. 강의를 듣고 있는데, 미치도록 책이 그립게 만들던 냄새였어요. 그 후 권일한 선생님의 수업을 들을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으나 검색 능력의 부족 탓인지, 정보력이 꽝인지 통 기회가 오지 않았죠. 세상에나! 그런 제게 동학년 000 선생님은 권일한 선생님을 자석처럼 끌어다 놓으셨어요. 아~ 은혜로운 선생님! 그런데 이상도 하지요? 입도 뻥긋 한 적 없었는데 말이죠. 끌어당김의 법칙이 정말로 존재하는 모양이에요.
김 선생님, 이 연수 덕분에 나는 우리 집 서재에서 전국 각지에 계신 선생님들을 만나고 사귈 수 있었어요. 저를 포함하여 9명이 매주 또는 2주에 한 번씩 오붓하게 만났어요. 어색함은 글과 시간을 나누는 사이 사라졌고, 온라인 공간이지만 마주 보면 반가운 인연이 되었지요. 배움의 열정과 글쓰기를 향한 부지런한 사랑을 이분들로부터 배우는 시간이었어요. 물론 나는 그중 가장 게을렀지만요. 선생님과 함께 이분들을 만났다면, 그리고 이분들도 김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면 더없이 좋았겠다 싶어요.
우리가 함께 배웠던 글쓰기 수업과 이번 연수의 가장 큰 차이는 ‘아이들의 유무’에요. 다양한 종류의 글쓰기를 배우고 써보았던 ***문화센터 글쓰기 수업은 나로 가득한 시간이었다면, 좋은 교사 글쓰기 연수는 늘 ‘아이들’이 그 중심에 있었지요. 나도 몰라 대충 가르쳤던 장르의 글쓰기에 접근하는 요령을 배웠어요. 좋은 글은 형식을 가르치기에 앞서, 쓰고 싶은 마음을 끌어내는 게 중요하다는 것도 새겼구요. 글 속에 담긴 아이 마음을 읽고, 응어리를 글쓰기로 다독이고 풀어줄 수 있음을 믿게 되었어요.
김 선생님, 좋은 교사 글쓰기 연수에 참여할 기회는 1년에 한 번 오나 봐요. 그 기회가 왔을 때, 선생님의 일상이 평안하여 망설임 없이 잡을 수 있길 바랍니다. 참, 가끔 성경을 들려주시는데 문외한인 저에게도 와닿는 구절이 종종 있었어요. 아…… 선생님은 종교가 있었던가요……? 그러고 보니, 4년을 만나며 서로의 종교에 대해 아는 바가 없군요. 우리 더 알아가기로 해요. 여러모로! ^^
연수를 마치며
서울 교사
이번 글쓰기 연수에 참여한 건 오로지 ‘권일한 샘께 직접 배우고 싶다’였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다. 권샘의 진짜 비결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고, 우리 반 애들도 신나는 글쓰기의 여정에 초대하였으며, 글쓰기를 전혀 하지 않던 나 또한 글쓰기의 매력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재미도 느끼고, 참여한 분들의 생각도 나누면서 글쓰기를 실제적으로 배웠다. 때로는 동료들에 비해 생각이 얕은 내 모습이 드러날까 봐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주어진 과제를 하기 위해 새로운 글쓰기를 학급 아이들과 시도해보면서 조금씩 내 것으로 소화했다. 과제가 모인 문집을 매번 받아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결과물을 안겨줘야 애들도 기쁘고 더 잘 쓰려는 마음이 들겠구나’를 직접 경험했다. 반 아이들이 써낸 글을 직접 읽고 타자로 작성하면서 내 마음도 점점 아이들과 가까워졌다. 게다가 반 아이들의 ‘부족해 보이는 글’이 점점 좋아졌다. 연수를 통해 ‘아이들의 마음을 여는 비결’을 조금은 알게 됐다. 권샘처럼 아이의 처지와 마음을 알아주고 있는 그대로 아이의 삶을 받아주어야 한다.
이제 거대한 양이 된 문집. 하나, 둘 보이는 선생님들의 글에서 위로를 받는다. 글로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 주셔서 글솜씨에 감탄도 연발하면서 샘들과 친해진 듯한 마음이 든다. 글쓰기는 분명 힘들지만, 글을 쓰면서 자신의 아픔이 치유될뿐더러 읽는 이에게도 같은 마음을 줄 수 있다.
연수 내내 잔잔한 강원도 억양으로 즐거움과 깊은 내용을 전해주신 권 선생님께 참 감사드린다. 선생님의 삶을 연수로 녹여 보여주셔서 더욱 감사하다.
<연수후기>
경기 교사
계절이 바뀔 때 느끼는 뒤숭숭함, 학년초와 학년말의 싱숭생숭함과 허전함, 간혹 기분이 착 가라앉을 때 나는 꽃을 사거나, 화려하게 꽃바구니를 만들어 내게 배달을 시켰다. 꽃을 보며 기분 전환을 하는 호사를 누린 것이고, 그 이면에는 ’나 이 정도의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야.‘ 티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듯하다.
“어……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는데?”
몇 달 만에 만나는 팀원들이 이 말을 할 때, 사진을 찍어준 후 사진을 보여주며,
“봐봐. 확실히 달라졌다니까. 분위기랑 표정이 달라졌어.”
라고 할 땐, 인사치레라고 생각하며 적당히 맞장구를 쳤었다.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문득, 요즘 내게 꽃 선물을 안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혼자 왜일까 생각하다가 몇 가지 이유를 찾았고, 그것을 팀원들과 나누었다.
가장 큰 것은 사람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졌다. 사람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지니 사람에 대해 실망할 것도, 기대하다가 맘 다치는 일도 적어졌다. ’그럴 수 있어. 당연하지 뭐.‘가 되니, 마음을 다스릴 수 있고, 힘들고 불편한 관계를 억지로 끌고 가려는 욕심도 내려놓게 되어 고민 끝에 모임도 정리를 했다. 이러는 도중 만난 것이 글쓰기 연수를 통해 만난 『산둥 수용소』였다. 극한 상황에서 적나라하게 자신의 이기적인 본성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보며 처음엔 충격이었지만 그럴 수 있고, 그것은 당연함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인생 책이라고 하고, 정말 좋은 책이라고 하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귀가 팔랑거려 구입하였는데 이제는 이 책을 나도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 나누고, 책 모임 사람들과 작년 11월 함께 읽고 나누면서 한 번 더 ’사람‘에 대해, ’삶‘에 대해,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글쓰기‘.
글쓰기를 많이 시키고, 나름 글을 쓴다고 생각했었는데 주제별로
숙제 글을 쓰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글은 사람을 나타낸다. 글을 읽으면 글 속에 숨겨진 그 사람이 보인다.’고 입버릇처럼 말한 나인지라 글 쓰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 그리고……강의를 들을수록 권일한 선생님께 글을 보인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나를 드러내는 것 같아 미룰 수 있는 만큼 미루고, 버틸 만금 버티기도 했다.
이런 글쓰기 ’작업‘을 통해 내 생각, 내 삶과 교육의 지향점 등을 돌아보며 군더더기를 덜어내듯 아주 조금이지만 생각 정리도 되었다. 지금도 ’정리 작업 중‘이기에 덜어내기가 끝나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겠지만, 글쓰기 연수가 그동안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나‘를 보게 하고, ’나‘를 좀 더 따뜻하게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으니 여유있게 ’작업‘을 이어가려 한다.
책 모임을 위해 요즘 읽고 있는 책 중에서 얻은 황금 문장이 있다.
"인생은 'B' birth와 'D' death 사이의 'C' choice다." (장 폴 사르트르)
멋있다 생각하여 언젠가 써먹기 위해 기억해두었던 문장인데 이 글에서 처음 사용한다.
삶이 선택이라면, ’글쓰기 연수‘는 나의 탁월한 선택이었고, 이 연수를 통해 나를 긍정적으로 돌아보게 된 것 또한 나의 탁월한 선택이었다. 선택에 탁월한 안목이 있는 나를 칭찬한다. 앞으로 또 수많은 선택에 당면할 것이지만 사려깊게 선택할 것이고,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보다는 감사하며 내 맘을 지키고 나를 지켜갈 것이다.
자기 부인의 시작
부산 교사
글쓰기에 목마름이 있었다. 글쓰기 연수 시작 한 달 전에 *** 프로그램 ‘작은책반’을 끝냈던 차였다. 책을 쓰면서 머릿속에 있던 것들을 풀어냈지만, 문장이나 구성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글에 부족함이 느껴졌다. 문장을 매끄럽게 쓰고 싶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논리정연하게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책을 쓰기 전까지는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썼다. 문장이 매끄럽지 않기도 했고, 뒤죽박죽된 생각들이 논리의 순서와 상관없이 나열되기도 했다. 퇴고하며 글을 다듬을 수 있었지만, 책 쓰기 전까지는 그마저도 잘 하지 않았다. 책을 쓴 이후로, 글을 잘 쓰고 싶었다. 내가 잘 쓰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거 같았다.
연수를 들으며, 글쓰기를 ‘가르치는’ 것이 오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르친다’는 말의 늬앙스에 이미 힘의 구조가 느껴진다. 가르치는 사람이 위에 있고, 배우는 사람이 아래에 있다. 통제의 욕구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모든 ‘가르침’이 그렇겠지만, 통제 아래에서는 제대로 배울 수 없다. 형식과 방법은 배울 수 있어도, 마음은 배우지 못한다. 나와 너가 분리되고, 공동체는 사라진다. 나는, 힘의 구조 위에서 군림하며 ‘가르치기’에 급급했던 것은 아닐까? 마음이 드러나는 글은 ‘가르침’에서 오지 않는 거 같다.
나는 글쓰기 연수에서 무엇을 얻고자 했던 걸까? 솔직히, 아이들의 마음보다 아이들 글 자체에 관심이 많았다. 내면보다 외양에 치중했다. 나는 안전한 상황이 아니면 내 감정을 무시하기에, 아이들의 감정도 쉽게 넘겼다. 감정이 드러나는 게 두려웠다. 아이들의 글에 드러나는 감정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서, 글쓰기를 제대로 가르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아이들 글에 드러나는 아이들의 감정을 덮어두고 싶어서, 아이들의 글을 외면했던 건 아닐까?
대학원에서 상담을 공부하며 감정을 폭발적으로(?) 드러냈다. 대학원 졸업 후 후유증이 너무 심했다. 감당하기 힘든 일이 있기도 했고, 상담을 자체적으로 쉬었다. 학급에 상담이 필요한 아이가 있었는데, 외면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도닥여줄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감정의 힘을 알아차려서인지, 내 감정이 날뛰는 것을 혼자서는 제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이성의 힘을 빌렸다. 감정을 이성으로 풀려고 했다.
어떤 선생님은 글쓰기의 자양분이 되는 자신의 슬픔을 사랑한다고 했지만, 나는 내 슬픔이 버겁기만 하다. 시나브로 흘려보내려고 감정일기를 쓰고 있지만, 알아차리지 못하게 흘려보내는 것으로 감당할 수 있는 양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을 담는 말은 보이는 재주와는 다르다. 말로 꽉 채우지 않고, 사람이 머물 공간을 비워둘 수 있어야 한다. 말 자체가 빛나기보다는 사람을 돋보이게 해야 한다.’(『말 그릇』, 207쪽-전자책을 소장하고 있어서 종이책으로 쪽수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내가 빛나고 싶어서 말을 잘하고 싶은 걸까, 상대방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말을 잘하고 싶은 걸까?’ 이 생각은 글쓰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듯하다. ‘내가 빛나고 싶어서 글을 잘 쓰고 싶은 걸까, 아이들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글을 잘 쓰고 싶은 걸까?’ 교사의 영광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질 답이다. 자기 부인은, 아이들의 글을 제대로 마주하면서 시작되는 건지도 모른다.
<연수후기>
전북 교사
어색한 첫 만남으로 시작한 연수. 이미지만으로 다른 이가 좋아하는 책을 찾는 활동, 모둠 이름 만들기, 글 맛보기 활동 등, 책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은 어색함을 기대감으로 바꾸는 데 충분했다. 글감 글쓰기는 무엇을 써야할 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너무나 유용한 글쓰기였는데, 다양한 글감을 찾아보고 그 중에 하나를 가지고 글을 쓰니 재미있게 글을 쓸 수 있었다. 1분 글쓰기는 그 1분을 생각하는 것으로도 흥미진진했고, 글을 그렇게 즐거워하며 써본 경험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즐겁고 자세하게 묘사하며 글을 써볼 수 있었다. 줌으로 가능할까 생각하며 활동했던 탐정 글쓰기는 가장 짜릿하게 참가했던 시간이었다. 매시간 선생님 강의는 너무 재미있었고, 배우는 기쁨이 가득했다. 빨리 학교 현장에 다시 돌아가서 아이들과 책놀이를 하고, 글을 쓰는 기쁨을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연수를 받으며 큰아이에게 나를 소개하는 글을 쓰게 하였다. 친구 문제로 괴로워하는 줄은 알았지만, 글에서 아이의 목소리로 너무나 외로웠다는 감정이 전해지니 부모로서 아무것도 못 해주는 상황이 너무 마음이 아프고 미안했다. 그 글을 쓴 이후로 아이는 신기하게 뭔가 마음이 편해졌다는 표현을 썼고, 기적적으로 몇 개월간 쌩까고 지낸 무리의 아이들과 다시 친해지고 다니던 학교를 잘 졸업하였다.
권일한 선생님 글쓰기 연수를 듣기 전 글쓰기에 대한 마음이 어땠을까 찬찬히 생각해 보았다. 교사인 내가 글을 쓰는 능력을 기르고, 아이들에게도 그 능력을 길러주게 하고 싶다가 중요한 목표였다. 그러나 연수가 진행될수록, 내 자녀의 글쓰기를 통한 회복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에게 삶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선물 같은 일이 될까 생각하였다. 상담 글쓰기에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특별한 노하우가 아닌, 아이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 그 마음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생각하였다. 아이들에게 글을 통해 아픈 마음을 표현할 수 있고, 그 마음을 글과 글을 읽은 내가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힘이 되지 않을까. 그게 함께 살아가는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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