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도서 : 15소년 표류기, 비룡소

15소년 표류기는 <80일간의 세계 일주><해저 2만리>를 지은 쥘 베른 작품입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름난 소설이어서 세계 명작 시리즈에 꼭 들어갑니다. 독서반 아이들도 이미 몇 명이 읽었다고 합니다. 원작을 읽은 아이는 얼마나 될까요? 한 명도 없습니다. 모두 출판사에서 적당히 줄여서 낸 책을 읽었습니다. 레미제라블이 영화로 나왔을 때 기대하며 보았습니다.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읽어야 했는데 원작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니 실망이 큽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줄여서 편집하지 않으면 10시간 분량이 되었을 테니까요.

원작을 줄여놓은 책은 편집자의 책입니다. 줄거리를 바꿀 수 없으니 설명과 묘사를 뺍니다. 중심 줄거리에 영향을 주지 않는 사소한 이야기도 빼야 합니다. 세부묘사가 빠진 소설은 읽는 맛이 완전히 다릅니다. 화학조미료 넣어서 흉내냈지만 구수한 맛이 사라진 음식과 같습니다. 출판사에서 원작을 줄여서 책을 내놓는 까닭은 아이들이 줄거리 중심으로 책을 읽기 때문입니다. 복선과 암시를 빼버리고 편하게 읽게 만들어야 많이 팔립니다.

독서반에서 아이들에게 토론할 질문을 스스로 만들라고 하면 저도 생각하지 못한 좋은 질문을 만듭니다. 깊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저를 놀라게 합니다. 글도 잘 씁니다. 그렇지만 책을 읽을 때는 줄거리가 우선입니다. 더 좋은 능력을 많이 갖고 있지만 줄거리를 읽어내는 수준을 뛰어넘기가 어렵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책은 내용이 마음에 들어야 끝까지 읽습니다. 내용은 줄거리입니다. 당연히 아이들은 줄거리 중심으로 글을 읽습니다. 이 습관을 고치려고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하고 글을 씁니다. 꾸준히 하면 줄거리를 읽는 수준을 넘어서리라 믿고 계속 이야기를 나눕니다.

쥘 베른이 이름난 사람이고 15소년 표류기도 명작에 이름을 올렸지만 이미 150년 전 작품입니다. 내용이 단순합니다. 토론하지 않으면 15명이 폭풍우를 만나 섬에서 2년 반 살다가 구조되는 이야기로만 기억합니다. 그러면 재미있는 책재미없는 책으로는 구분하지만 좋은 책나쁜 책, 의미 있는 책으로는 말하지 않습니다. 읽고 줄거리를 알고 끝입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하면 책을 깊이 읽습니다. 무조건 교훈을 찾으려고만 하지 않습니다. 깊이 느끼건, 날카롭게 분석하건 줄거리를 읽는 수준과는 견줄 수 없이 발전합니다. 15소년표류기를 읽고 이렇게 나눴습니다.

1. 분석 : 15소년은 폭풍우를 만났지만 아무도 안 죽습니다. 아이들은 어려운 일을 많이 만나지만 모두 잘 헤쳐 나갑니다. 제규어도 단칼에 죽이고, 바다표범을 잡아 등잔으로 쓸 기름을 만들기도 합니다. 배를 분해하고 뗏목을 만듭니다. 도르레를 설치해서 무거운 물건을 뗏목에 싣습니다. 사냥도 잘하고 긴 겨울도 아무 사고 없이 버팁니다. 대포를 쏘면 백발백중이고 해적을 만나도 아무도 안 죽습니다. 당연히 해적은 모두 죽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우연을 찾아보니 너무 많습니다. 줄거리를 읽을 때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우연이 너무 많아서 아이들이 웃습니다. 이야기를 나눈 뒤에야 이거 너무 유치한 이야기잖아라고 합니다.

2. 비교 : <영국의 기숙학교는 학생들에게 보다 많은 자율권을 주고 따라서 아이들은 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 이것이 학생들의 장래에 매우 좋은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이 철없이 지내는 시간이 더 짧아지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교양교육과 지식 교육이 함께 이루어진다.(62)>라는 문장으로 우리나라 교육제도를 토론했습니다. 로알드 달이 지은 발칙하고 유쾌한 학교에 나오는 영국 기숙학교의 모습과 견주어 보았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교육 받은 우리가 표류를 한다면 15소년처럼 할 수 있을까도 나누었습니다. 중학교에 가기 직전이라 중학교 교육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3. 인기투표 : 이 시간은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글을 쓰기 전에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려고 가장 마음에 드는 아이는 누구냐?’ 물었더니 브리앙, 고든, 도니펀, 쟈크를 말합니다. 여자 아이들에게 애인으론 누가 좋을까?’ 물었다가 토론교실이 콘서트장처럼 변해버렸습니다. ‘도니펀 잘생기지 않았니?’, ‘귀족이니까 돈도 많을 거야!’, ‘까칠한 게 멋있어하며 도니펀을 지지합니다. 몇몇은 다정하고 친절한 브리앙과 사귀는 것처럼 말합니다. 브리앙은 친절하고 다정하지만 재미는 없을걸!’ 했더니 도니펀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남자는 역시 잘생겨야 해!’하며 깔깔댑니다.

4. 새로운 상상 : 브리앙과 도니펀이 갈등을 일으키다가 도니펀이 아이 3명과 함께 떠나잖아. 쥘 베른은 아이들이 돌아와 함께 지내는 이야기로 만들었지만 실제라면 어떨까? 실제로 고집 세고 콧대 높은 도니펀이 무리에서 떠난다면 어떻게 할 것 같아?” 물었습니다. 아이들은 서로 미워하다가 총을 쏘며 싸웠을 것이다’, ‘도니펀이 브리앙을 해칠 것이다’, ‘도니펀이 해적들을 불러들여 브리앙 편에 든 아이들을 몰아낼 것이다에 이어 도니펀이 동쪽 동굴에 정착한 다음 살기 편하게 만들어서 브리앙 편에 있는 아이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것이다. 브리앙이 용서를 빌며 찾아와서 부하가 되겠다고 할 때까지 수를 쓸 것이다는 의견까지 나왔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너희들 작가다. 지금 말한 식으로 글을 써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있다고 했더니 무슨 책이냐고 묻습니다. 다음 달에는 읽자고 조른 그 책은 파리대왕입니다. ‘파리대왕은 아이들에게 어렵습니다. 그래도 계속 읽자고 합니다.

<분석>은 제가 주로 해줬습니다. 줄거리를 읽어내는 아이들은 책을 분석하지 못합니다. 제가 말해주고 나서야 비로소 , 그렇구나!’ 합니다. <비교>는 함께 나누었습니다. 로알드 달 시대 이야기는 제가 해주었고, 현재 학교 모습은 아이들이 주도했습니다. <인기투표>는 완전히 아이들 차지였습니다. 저는 그저 웃기만 했습니다. <새로운 상상>을 할 때는 질문만 했습니다. 토론하면서 아이들 마음은 우주와 같다. 잘 끌어내기만 하면 넓고 새로운 생각으로 끝없이 뻗어나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5소년 표류기로 토론하면서 파리대왕을 끌어냈으니 이렇게 생각해도 되겠지요!

700쪽이나 되는 분량이 부담스러워서 350쪽 정도의 요약판을 읽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줄거리는 알겠지만 문장과 복선, 묘사와 긴장을 제대로 읽지 못했을 겁니다. 장면을 눈앞에 떠올리기 어려웠을 테고 유치한 이야기가 되었겠죠. 위에서 인용한 62쪽 문장은 줄거리에 영향을 주지 않으니 사라졌을 겁니다. 그럼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와 비교하며 토론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인기투표 역시 불가능합니다. 700쪽 분량에는 당시 삽화를 넣었지만 350쪽에는 그렇지 못하겠지요. 도니펀이 잘생겼다는 걸 알 수 없으니 아이들 모두 브리앙을 뽑을 겁니다. <새로운 상상>도 안 됩니다.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묘사와 설명이 없는 책을 읽으면 파리대왕은 없습니다.

책을 나눠주었을 때 아이들은 이렇게 두꺼운 책은 처음이에요.’, ‘400쪽 넘는 책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는데……했습니다. 그렇지만 1주일이 지나고 다시 만났을 때는 ‘700쪽도 별 것 아니네요.’라고 합니다. 두께는 책읽기에 걸림돌이 되지 않습니다. 줄거리만 읽는 책읽기가 더 걸림돌입니다. 제대로 읽고 여럿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을 펼쳐야 합니다. 그렇게 펼쳐낸 생각들 가운데 하나를 붙들어 글을 쓰며 정리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새로운 명작을 만들지 않을까요?

<위험한 비밀편지>를 나눠주자 아이들이 첩보추리소설을 떠올리며 즐거워합니다. 그동안 제가 나눠주는 책이 꽤나 무거웠나 봅니다. 좀 가벼운 책을 읽는다 해도 아이들 삶이나 사회 현상과 연결지어 고민을 끌어내려고 했으니 무겁게 느꼈을 겁니다. 쉬운 책이건 어려운 책이건 토론하다 보면 빠져들어 즐거워하지만 새 책을 정할 때면 위험한 비밀을 다루는 내용을 기대합니다. 새 책을 정할 때마다 가볍고 편한 것을 기대하는 마음이 작동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받아갈 때 표정이 아주 밝습니다.

잔뜩 기대했던 아이들은 실망한 표정으로 모였습니다. 추리소설이 아닌 건 참을만하지만 내용이 너무 허무하답니다. 비밀편지가 계속 이어지리라 기대했는데 편지 4번 쓰고 끝이라니 황당하다고 합니다. 바로 앞서 읽은 <책벌레들의 비밀후원작전>에 나오는 영국 아이들은 아프리카까지 찾아가지만 이 책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낙제위기에 처한 애비가 낙제를 받지 않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아이와 펜팔을 하다가 허무하게 끝납니다.

아프가니스탄에 사는 사디드라는 남자아이와 미국에 사는 애비라는 여자아이가 편지를 주고받는 이야기입니다. 애비는 유급 위기에 처해 특별과제로 펜팔을 선택합니다. 애비는 아프카니스탄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숙제를 해내기 위해 편지를 보냅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마을어른들이 모여 회의를 엽니다. 적대국인 미국, 게다가 여자아이와의 편지라니요!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의 관계를 모르면 <위험한 비밀편지>는 위험도 없고 비밀도 없는 이상한 편지가 됩니다.

독서반 아이들도 두 나라에 대한 배경지식이 별로 없습니다. 이제는 뉴스에서도 아프가니스탄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책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음식점을 찾아가는 것도, 여행을 하는 것도 배경지식이 풍부할수록 제대로 맛볼 수 있습니다. 배경을 모르고 단순하게만 이해하면 토론과 적용도 단순해집니다. 그래서 배경을 이해하는 조별활동을 했습니다. ‘사디드와 애비가 사는 곳의 차이점을 최대한 많이 찾기시합입니다. 묻어가는 아이가 없도록 2-3명으로 팀을 나눠 상품도 걸었습니다. 기준도 알아서 정하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정한 기준은 종교, 전쟁상황, 기후, 경제 여건, 성차별, 정치방식, 전자기기 사용, 인구밀도, 인종, 언어, 산업, 음식, 화폐, 지형, 학교 모습입니다. 많이 찾기 시합답게 유치한 대답도 나오지만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이 얼마나 다른지 이해합니다. 편지가 위험비밀을 담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합니다.

그래도 두 나라를 멀게만 느끼기 때문에 우리 형편에 맞게 재구성했습니다. “우리가 위험비밀을 느낄만한 편지 상대를 찾아보자. 서울 아이들은 어떨까? 제주도는?” ‘북한이라고 말하면 이해할까요? 직접 북한 아이와 편지를 주고받지 않는다면 제대로 느끼지 못할 겁니다. 그래도 최대한 비슷하게 느끼는 쪽으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저는 독서토론 발문을 적용으로 이끕니다. 책에만 담겨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는 어떤 모습으로 되살아날까 묻습니다. 그래야 그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로 받아들입니다. 내 이야기가 되면 독서감상문도 내 느낌을 쓰고, 독서논술도 내가 살아가는 사회를 반영한 생각을 담아 씁니다.

이어서 세 가지 논제로 찬반토론을 했습니다. 1. 유급제도가 필요하다. 2. 사디드가 편지를 보낸 일은 정당하다. 3. 애비가 사디드에게 받은 편지를 감추고 동생 아미라의 편지만 게시판에 걸어놓는 것은 선생님과 정한 원칙에 어긋난다. 아이들이 자기 이야기로 받아들인 논제는 유급제도입니다. 제가 생각지 못한 근거를 꺼내서 설득합니다. 찬성의견이 더 많습니다. 애비는 머리는 좋지만 왜 공부해야 하는지 몰라서 안 했습니다. 그러다가 유급된다는 말에 공부를 했으니 유급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동생들과 잘 어울려 놀기 때문에 한 해 더 배워서 알고 가는 게 낫다고도 합니다. 알아야 할 내용을 모르고 올라가면 결국 좌절한다는 의견도 냅니다. 반대편은 애비가 잘하는 것을 격려하지 않고 성적으로만 평가하는 건 잘못이라고 말합니다. 오두막을 만들고 바깥놀이를 잘하는 장점을 살려주어야지 이미 아는 것을 왜 다시 해야 하는지몰라서 숙제를 하지 않은 애비를 괴롭히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유급을 두고 말한 내용은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세 시간을 하면서 우리 삶과의 적용점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글로 쓸 만큼 이야기를 충분히 나눴지만 아이들에겐 부족합니다. 정확하게 알지 못하거나, 스스로 느끼지 못하면 글을 쓰기 어렵습니다. 아이들은 제 질문에 대답은 했지만 글로 쓰는 건 다릅니다. 여러 가지 질문을 연결지어 하나의 주제로 이어내는 건 어렵습니다. 전체를 넓게 보는 눈을 가져야 쉬운데, 아이들에게는 아직 어렵습니다. 제가 그렇게 질문하는 이유, 앤드루 클레먼츠가 <위험한 비밀편지>를 쓴 이유를 깨달을 정도는 아닙니다. ‘유급제도로 독서논술을 쓰는 주제가 아니라면 적당히 쓸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까지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편지를 소개해보자고 했습니다. 주로 가장 친한 친구와 주고받은 편지를 말합니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 외국에 갔을 때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하는데 몇 아이가 맞장구를 칩니다. 아이들 눈빛이 빛납니다. 잠시지만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지낼 때 돌봐주고 마음을 나눠준 사람들을 잊지 못한답니다. 사디드와 애비가 일상을 벗어난 경험을 편지로 나눴듯이 아이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이 이런 마음을 일으키나 봅니다. ‘소중함따뜻함을 이야기하는 아이들 표정과 몸짓에 저도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아이들이 이런 느낌을 알고 있구나!’

마지막으로 빠르고 차가운 이메일, 손편지로 바꿔드려요라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이메일로 편지 내용을 보내면 손편지로 바꿔서 보내주는 서비스에 관한 기사입니다. 손으로 쓴 글씨가 더 좋다는 말을 아이들이 합니다. 독서반 아이들은 학원에 많이 다니지 않습니다. 대도시에서 사는 것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예쁜 옷과 최신 스마트폰을 원하지만 따뜻한 이웃소중한 친구아름다운 추억의 가치를 압니다. 사람들은 흥미롭고 새로운 일들을 원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을 모른다. 지금 곁에 있는 친구, 가족, 무심결에 지나친 작은 풍경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막상 자신의 곁을 떠나면 그때서야 소중함을 깨닫는다. 소중한 것인지도 모르고 부수고, 깨뜨리고, 새로 개발하고…… (중략) 그저 많은 사람들과 만나 포장된 마음만을 보여준다. 포장된 마음을 끝없이 보여주며 진심을 감추는 사람들. 그건 로봇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이가진) 아이가 쓴 글에 마음이 뭉클합니다.

<위험한 비밀편지>위험비밀에 대한 기대에서 시작해서 허무함을 지나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는 따뜻함으로 끝났습니다. 이런 이야기로 흘러올지 저도 몰랐습니다. 책을 읽고 내용파악을 위한 첫 시간 발문을 준비하면서 토론이나 글쓰기 방향을 정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제 의도와 다른 곳으로 흘러갑니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방향을 따라갑니다. 준비해간 발문지를 접어두고 아이들 흐름을 따라갈 때도 많습니다. 아이들은 저에게 배우려고 독서반에 오지만 저는 아이들에게 배우려고 독서반에 갑니다. 책을 좋아해서 저를 찾아오는 아이들을 참 좋아합니다.

 

독서감상문은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흔적을 쓴 글입니다. 책이 남긴 인상이 깊고 강할수록 글을 잘 씁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대부분 내용을 요약하거나 판에 박힌 정답을 씁니다. 책을 줄거리 위주로 이해했기 때문이고, 경험을 책과 연결 지어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책을 많이 읽는 아이들은 내용을 잘 파악합니다. 인물의 특징, 일이 일어난 순서를 물으면 대답합니다. ‘빨강 연필’(신수현 지음, 비룡소)을 읽고 재규와 민호, 수아 사이에서 일어난 일을 잘 찾습니다. 독서골든벨에서 대부분의 문제를 맞힙니다. 그러나 책과 자신을 연결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삶에서 빨강 연필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못합니다.

저는 책과 아이들을 연결시켜 주려고 독서토론을 합니다. 어떤 질문을 해야 아이들이 책을 자기 이야기로 연결시킬까 고민하며 발문합니다. 아이들 삶에서 빨강 연필이 무엇인지 찾게 하려고 배경지식, 대상도서 내용, 아이들 삶으로 이어지는 질문을 합니다. 첫 시간에는 주로 대상도서 내용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알아봅니다. 책을 이해하지 못하면 경험이나 고민과 연결하지 못하겠지요.

대상도서 내용을 알아보기 위한 발문

1. 민호는 어느날 수아에게 말하지 못할 비밀이 생긴다. 어떤 비밀일까?
2. 빨강 연필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을 모두 찾아보자.
3. 민호네 집 형편이 어떤지 설명해 보자.
4.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민호는 일기를 쓸 때 다른 사람이 봐도 괜찮을 내용만 썼다. 정 쓸거리가 없으면 예전에 썼던 일기를 보며 내용을 조금 바꿔서 다시 써내기도 했다. 그리고 비밀 일기장을 만들었다.(33)” 민호가 이렇게 한 까닭은 무엇일까?
5. 빨강 연필이 민호 대신 써준 글이 무엇인지 설명해 보자.
6. 책에는 여러 인물들이 나온다. 핵심 인물 5명을 정하고 특징을 간단하게 적어보자.
7. 민호가 쓴 글 우리 집은 무엇이 문제인가?
8. 민호는 수아를 만나 시금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어떤 내용일까?
9. 엄마는 왜 갑자기 쿠키를 굽게 되었을까?
10. 동그라미 백일장에서 일어난 일을 설명해 보자. 백일장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20분 정도 각자 답을 찾게 합니다. 잘 찾지 못한다면 책을 안 읽어서 못 찾는지, 다 읽었지만 제대로 읽지 않아서 못 찾는지 확인합니다. 확인한 뒤에 모르는 내용을 책에서 찾아보라고 합니다. 제대로 읽지 않으면 책을 보고도 못 찾습니다. 문제를 다 푼 뒤에는 답만 맞추지 않고 관련 이야기를 나눕니다. 자꾸 물어서 연결된 책 이야기, 자기 이야기를 하게 합니다. 책 내용을 이해한 뒤에 빨강 연필을 무엇을 뜻할까? 여러분에게 빨강 연필이 무엇일까?” 묻습니다.

 

둘째 시간에는 책 내용을 깊이 나눕니다. 미리 준비한 질문을 하고 대답에 맞춰 관련 질문을 더합니다. 예를 들어 민호는 어느날 수아에게 말하지 못할 비밀이 생긴다. 어떤 비밀일까?” 물은 뒤에 민호가 감추고 있는 비밀을 모두 찾아보자.” 묻습니다. 민호는 수아의 유리 천사를 깨고도 시치미 뗍니다. 저절로 글을 써주는 빨강 연필만 믿고 친구, 선생님, 엄마를 속이고 자기 자신까지 속이는 지경에 이릅니다. 아이들이 민호의 비밀을 열심히 찾아 말할 때 대뜸 묻습니다. “비밀이 많아야 좋을까? 적어야 좋을까?” 그리고는 여러분이 가졌던 비밀이나 지금도 갖고 있는 비밀 중에 고백할 수 있는 비밀을 이야기해 보자.”고 합니다.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1. 수아의 유리천사가 없어지고 나서 아이들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갈까? 1-1) 작가가 민호의 불안한 마음을 어떻게 묘사하는지 책에서 찾아보자. 1-2) 유리천사를 찾기 위해 교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1-3) 이 사건 때문에 민호는 학교에 가기 싫어한다. 이런 이유로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게 말이 될까? 대상도서 내용을 점점 깊이 알아본 뒤에 경험과 연결합니다. 1-4) 여러분은 언제 학교에 가기 싫어졌나? 민호 같은 경우가 있었나?

대상도서에 따라 문장을 나누기도 합니다.

문장 1) “너무 오랫동안 쓰지 않았더니 이제는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 쓸 게 생각나지 않아.(76)” 정말 그럴까? (일기를 한 번 안 쓰면 계속 쓰기 싫어진다. 오랜만에 쓰면 무얼 쓸지 모른다. 글은 계속 써야 한다. 그러면 쓸 게 계속 생각난다. 쓰지 않으면 쓸 게 도무지 생각나지 않게 된다.)

문장 2) “우리 집. 우리 집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쓸 게 없었다. 아빠가 집에 없다는 것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엄마가 회사에 다녀서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면 혼자 있다는 것도 쓰기 싫었다. 물론 엄마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건 알지만, 그것만으로 우리 집을 다 채워 쓸 수는 없었다. 전에는 어디 놀러 가거나 맛있는 거 먹는 일에 대해 쓰기도 했지만, 이제 그런 걸로는 부족했다. ‘우리 집을 쓰려면 뭔가 더 있어야 했다.(79)”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보자. 감추어둔 비밀을 확 쓰는 게 속 시원하고 좋지 않을까? 아니면 자기만의 비밀로 감추고 뭔가 더 필요한 걸 찾아 속여서 써야 할까? (찬반토론 어느 편이 토론에서 이기느냐 따지지 말고 토론한 뒤에 속 시원하게 쓰자를 말합니다.)

문장 3) “‘이건 새빨간 거짓말이야!’ 민호는 심장이 떨려서 빨강 연필이 쓴 글을 제대로 읽기 힘들었다.(81)” 4-1) 민호는 왜 이렇게 생각했을까? 4-2) 여러분도 민호처럼 느낀 때가 있나?

둘째 시간을 마무리하며 재규와 민호, 재규 글과 민호 글의 차이점을 찾아보았습니다. “작가가 민호를 좋게 평가해서 우리는 재규에게 편견을 갖기 쉽다. 공정하게 평가할 때 재규와 민호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일까?” 재규는 글쓰기를 좋아하고 열심히 노력하지만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쓰지 않고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씁니다. 친구는 안중에도 없고 최고가 되기 원합니다. 민호는 글을 쓴다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고민하며 알아가는 반면에 빨강 연필로 거짓말을 썼습니다. 대상 도서는 민호가 빨강 연필을 버리고 자기만의 글을 쓰는 걸로 끝나지만 현실에서는 빨강 연필을 버리기 어렵습니다.

 

셋째 시간에는 책의 주제, 작가가 책을 쓴 까닭을 찾고 글을 씁니다.

1. “빨강 연필은 민호가 글을 잘 쓰도록 도와준다. 민호를 뛰어난 존재로 만들어 주지만 무언가 부족하다. 무엇이 부족한 걸까?” 물었습니다. 빨강 연필은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지만 민호 실력이 좋아지는 게 아닌데다가 거짓 글이어서 불안감에 시달린다고 대답합니다. 상장과 친구들의 칭찬, 엄마의 기대는 축복이 아니라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벼랑 끝에 세우는 거라고 합니다.

2. 빨강 연필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토론하고, 빨강 연필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다른 도구들을 책이나 영화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우연히 발견한 것들이 평범한 사람을 뛰어나게 만들거나 모험으로 이끄는 것들이 이야기가 의외로 많았습니다.

3. “여러분에게 빨강 연필이 주어진다면 어떤 곳에 쓰고 싶은가?” 물었습니다. 부자가 되고 싶다거나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목소리를 고치고 싶다’, ‘연예인을 만나고 싶다고 합니다. 소망을 이루게 해준다면 빨강 연필을 사용하겠다고 글을 쓰는 아이도 있습니다.

4. 둘째 시간에 나눈 재규와 민호의 차이점을 글쓰기로 발전시켰습니다. “재규는 형식을 잘 갖춘 모습, 민호는 내용을 잘 갖추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형식은 겉모습을, 내용은 속에 담은 모습을 의미한다. 형식과 내용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모두 내용이 중요하다고 대답합니다. 재규는 글을 잘 쓰지만 글을 쓰는 진짜 이유를 찾지 못할 거라고 합니다. 반면에 민호는 형식은 부족하지만 마음을 담아 쓰기 때문에 형식을 차차 배우면 진짜 좋은 글을 쓸 거라고 합니다.

민호가 쓴 글이나 다른 내용 중에서 마음에 드는 글이 있어?” 민호가 마음에서 솟구치는 생각을 쓴 글이 책에 나옵니다. 아이들 마음에 들 겁니다. 글을 어떻게 쓰는지 알아가면서 민호가 생각하는 내용도 좋습니다. “뾰록? 쀼위익? 저 새소리는 뭐라 적어야 할까. 새소리는 책에서 배운 낱말과는 달리 소리마디가 분명하지 않았다. 민호는 자신의 귀에 들리는 대로 적고 싶었다. 소리에 집중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쓰뷱, ? 속이 간질간질하니 웃음이 새어 나왔다. 글자로 옮길 수 없는 오묘한 소리였다. 새로운 힘이 자신의 내부에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츠와아아아. 도로를 달리는 타이어 마찰음. 소리에 촉촉한 물기가 있었다. 간밤에 이슬이라도 내렸나 보다. 먼 곳에서 버스가 정차하는 소리도 들렸다. 취위이이이쉿. 또 웃음이 나왔다. 낮이라면 다른 소음에 묻혀 들리지 않았을 소리다. (133-134)”

아이들이 좋아하는 글을 골라 읽게 하고 말합니다. “관심을 가지면 들린다. 자세히 보면 보인다. 글은 이렇게 쓰는 거다.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 걸 보고 듣지 못한 걸 듣고 생각하지 못한 걸 생각하는 거다. 뻔히 눈에 보이고 들리는 데도 표현하지 못한 걸 쓰려고 귀를 기울이는 거다.” “달리고 싶었다. 소리치고 싶었다. 울음을 토해 내고 싶었다. 지금 당장 뭐라도 쓰지 않으면 온몸이 다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178)” 이 마음을 써야 한다고 말해줍니다.

빨강 연필을 쓸 때 민호가 느낀 불안감, 재규의 경쟁심, ‘나만의 비밀’, ‘빨강 연필의 의미’, ‘형식과 내용’, ‘소망중에서 하나를 골라 글을 썼습니다. 넷째 시간에는 친구들 앞에서 자기 글을 읽고 생각을 나눈 뒤에 고쳐 썼습니다. 전예진(정라초등학교 6학년)이 쓴 글입니다.

나는 가끔 불안하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나를 뭐든지 잘하는 아이로 본다. 하지만 솔직히 그렇지도 않다. 친구들은 잘 알고 있을 테지만 나는 무엇이든 잘하는 아이가 아니다. 사람인데, 사람은 완벽하지 않은데 친구 엄마들은 나를 뭐든 잘하는 아이로 본다. 가끔 선생님도 그러실 때가 있다. 어려운 것은 나를 시킨다. 엄마도, 친구들도, 선생님도 나에게 불안감을 심어준다. 내가 시험을 못 보면 친구들은 예진이가 시험 못 봤대!” 이런 식으로 말하고 엄마와 선생님도 예진이가 잘하다가 왜 이럴까? 무슨 일 있냐?” 하신다. 그럴 때마다 나는 , 나는 공부를 항상 잘해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에 불안하다. 불안을 친구들과 부모님에 대한 짜증으로 표출한다. 짜증을 낼 때는 모르겠는데 짜증내고 돌아보면 내가 왜 그랬지? 정말 미안하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날 몰랐는데 크면서 거의 다 나를 알게 되었다. 내가 외향적이어서 그런 것 같다. 나를 아는 주위 사람들 때문에 더 잘할 수밖에, 잘하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이런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다. 보통 학생들처럼 눈길을 받지 않고 못해도, 잘해도 그냥 못 본 척, 모르는 척, 그냥 그런 척 지나갔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나를 알게 된 이상 계속 나에 대한 지적을 할 것이고 수군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충고는 받아들이고 수군댐과 헛소문은 그냥 못 들은 척하고 지내는 게 좋을 것 같다.

민호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빨강 연필을 썼습니다. 예진이는 자신을 향한 다른 사람들의 기대로 글을 썼습니다. 예진이는 재규와 민호를 지나친 기대에 힘들어하는 아이로 읽었습니다. 같은 문제로 고민하기 때문입니다. 아이 마음에서 제가 모르는 고민을 보게 해주어서 좋은 글입니다. 책을 읽으며 자기 마음을 돌아볼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입니다.

저는 책 한 권을 90분씩 4주 동안 나눕니다. 책 한 권을 이해하고 글을 쓰기 위해 정한 최소한의 시간입니다. 한 권으로 1년 내내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책 한 권으로 한 학년 국어수업을 다 해내는 선생님도 있습니다. 한 권을 백 번 읽는 것이 백 권을 한 번씩 읽는 것보다 좋습니다. 되풀이해서 읽으면 책을 깊이 이해합니다. 책 끝부분에서 송지아 작가가 민호를 날아라 학교에 초대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용기가 있어. 자신을 돌아보고 고민하며 글을 쓸 용기오래도록 책을 읽는 이유가 이것 아닐까요? 자신을 돌아보며 고민하는 것. 한 가지 더한다면 책이 지독하게 재미있다는 것!

 

이 수업을 한 지 거의 10년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빨강 연필>로 교사 연수를 합니다.
어쩌면 평생 '글을 쓰는 마음'을 이 책으로 설명할 것 같습니다.

독서수업을 하려면 아이들이 책을 읽어야 합니다. 그러나 읽지 않는 아이가 꼭 있습니다. 그렇다고 독서 수업할 때마다 선생님이 책을 읽어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책을 읽지 않은 아이, 적극 참여하지 않는 아이를 빼고 나면 수업에 참여하는 아이는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럴 때 저는 거꾸로 퀴즈를 하면서 배경지식만으로 독서토론을 합니다.

거꾸로 퀴즈는 아이들에게 재미있게 책을 소개하기 위해 제가 만든 방법입니다. 아이들이 한 번도 읽지 않은 책, 내용을 전혀 모르는 책을 소개할 때 거꾸로 퀴즈를 합니다. 거꾸로 퀴즈는 책을 읽기 전에 책 내용을 맞추는 활동입니다. 읽고 얼마나 아는지 알아보는 문제 풀이가 아니라서 부담이 없습니다. 어차피 책을 읽은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틀려도 괜찮습니다. 읽고도 모르면 부끄러울 수 있지만 안 읽은 책은 하나만 맞춰도 기분이 좋습니다. 거꾸로 퀴즈를 하고 책을 소개하면 아이들이 책에 굉장한 관심을 보입니다. 책을 잘 읽지 않는 아이들도 관심을 갖습니다. 책을 많이 읽은 아이와 경쟁해서 지기만 하는 대회가 아니거든요. 그렇다고 거꾸로 퀴즈가 단순히 찍기 대회는 아닙니다. 배경지식을 많이 알수록 문제를 맞추기 쉽습니다.

아버지의 편지(정약용, 한문희 엮음, 함께읽는책)는 정약용이 두 아들에게 쓴 편지를 편집한 책입니다. 특별히 독서와 공부’, ‘생활과 실천에 관한 내용을 가려 뽑았습니다. 귀양 간 아버지가 자식들을 걱정하며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입니다. 정약용 전기를 읽은 아이도 이 책은 거의 읽지 않습니다. 대부분 훈계하는 내용이고 고리타분합니다. 거꾸로 퀴즈를 하면서 관심을 갖게 하면 많은 아이들이 딱딱한 내용도 읽으려고 할 겁니다. 거꾸로 퀴즈를 해볼까요?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이해력과 통찰력이 뛰어난 아이는 아래 문제 중에 3-4문제는 맞출 수 있습니다.

1) 앞으로 우리가 읽을 책은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아들 이름은 학연, 학유입니다. ‘이분 이전에 이분만한 사상가가 없었고, 이분 이후에도 이분만한 학자가 쉽사리 나타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할 정도로 뛰어난 분입니다. 조선시대에 억울하게 귀양을 갔던 이분은 누구일까요?
  아이들은 대부분 정약용을 맞췄습니다. 6-1학기 교과서에서 본 적이 있다는 아이도 있고, 귀양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아이도 있습니다. 정답을 맞춘 뒤에는 두 편으로 나눠 정약용 설명 주고받기 배틀을 합니다. 서로 주고받으며 정약용에 대해 더 이상 설명하지 못하는 편이 나올 때까지 번갈아가며 말하면 됩니다. ‘남자다’, ‘아들이 둘 있다’, ‘귀양을 갔다는 쉬운 대답부터 거중기와 수원성을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목민심서, 경세유표에 이어 자산어보를 지은 정약전까지 등장합니다. 재미로 시작한 퀴즈가 정약용을 이해하는 시간으로 이어집니다. 그것도 즐겁게 게임하면서 말이죠. 정약용을 잘 모르더라도 친구들이 한 말을 잘 들으면 응용해서 대답할 수도 있습니다. 이만하면 저자에 대한 배경지식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2) 독서와 공부 내용에 관한 편지의 제목입니다. ( )에 들어갈 말을 넣어주세요.
확고한 뜻을 세우고 ()을 읽거라. 중요한 내용은 (기록)해 두거라. 공부는 계획을 세워 (실천)해야 한단다. (독서)는 집안을 일으키는 떳떳한 길이다. 이 문제 역시 한두 아이만 틀리고 대부분 맞추었습니다.

3) 선생님께서는 집안을 안정시키는 네 가지 근본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속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요? (4)
화목하고 순종함 부지런하고 검소함 독서 친구 사이의 의리 이치를 따르는 것 4번 친구 사이의 의리는 집안을 안정시키는 일과 상관이 없습니다. 독서라고 답한 친구가 좀 많았습니다.

4) 선생님은 편지에서 두 아들에게 어떤 가축을 키우는 방법을 자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자주 먹는 이 가축은 무엇일까요?
여기서는 혼자 문제를 풀지 않고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정답은 닭인 것 같은데 왠지 함정이 있는 것 같다고 합니다. 소나 돼지 정도 되어야 키우는 방법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고도 합니다. 정답을 맞추고 그 자리에서 책을 펴서 내용을 찾았습니다. 함께 읽고 어떻게 키우라는 건지 알아보았습니다. 정약용 선생님은 이 가축에 관한 책을 읽어보라고 권합니다. 색깔, 키우는 방법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조사해보라고도 합니다. 가축을 그냥 키우지 말고 연구를 해서 개량시키라는 뜻입니다. 이 부분을 통해 정약용 선생님이 무엇을 하건 대충 하지 말고 연구하는 자세로 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500권이나 되는 책을 지으셨겠죠. 더불어 자산어보역시 같은 마음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떤 가축인지는 여러분이 찾아보세요.)

5) 다음은 생활과 실천의 장에 쓴 편지 제목입니다. 편지에 없는 제목은 무엇일까요?(3)
눈앞의 이익을 쫓기보다 옳은 일을 하자꾸나 사람이란 목숨보다 의리를 따라야 하는 것이다.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 공부의 근본이다. 삼가고 조심해서 행동하거라. 채소밭을 가꿀 때에는
질문이 생활과 실천의 장에 관한 것이므로 공부의 근본을 설명한 3번이 정답이 아닙니다. 이 다섯 문제만으로도 저자와 책 내용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퀴즈를 하면서 궁금증이 생겼고, 읽으면서 퀴즈한 내용도 나오니 책을 더 즐겁게 읽습니다. 그럼 아버지의 편지처럼 교훈만 들어있는 딱딱한 책도 읽어냅니다.

거꾸로 퀴즈를 하고 나서 문장쓰기를 했습니다. ‘책은 ( )이다를 쓰고 설명을 썼습니다. ‘나와 책의 관계는 ( )이다.’를 쓰고 역시 설명을 썼습니다. ‘아버지의 편지에서 정약용 선생이 독서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기 때문에 을 주제로 정했습니다. 다른 책으로 거꾸로 퀴즈를 한다면 선생님이 정한 주제로 문장쓰기를 하면 됩니다. 거꾸로 퀴즈는 내용에 관심을 갖게 합니다. 문장 쓰기는 아이가 책 읽기 전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려 줍니다.

두 가지 활동을 하고 진짜 독서토론을 예고합니다. 그래도 책을 읽지 않고 오는 아이가 있습니다. 독서토론을 할 때 책을 읽지 않은 아이가 끼어 있으면 난감합니다. 책을 읽지 않은 몇몇 아이들은 구경꾼이 되고, 결국 떠들면서 방해꾼이 됩니다. 그 아이들에게만 다른 걸 시키기도 하지만 역시 방해가 됩니다. 이럴 때는 책을 읽은 아이들이 대답하기 전에 읽지 않은 아이들에게 상상하여대답해보라고 먼저 시킵니다. 읽지 않은 아이들이 거꾸로 퀴즈로 책에 있을 법한 대답을 예측하여 말하고, 읽은 아이들이 정답 여부를 확인하는 겁니다. 신기하게도 정답을 맞추는 아이가 있습니다. 작가가 이끌어가는 이야기 그대로 예측해서 책을 읽고 온 친구들을 놀라게 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비록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책 내용을 맞히는 아이에게 , 작가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구나! 네가 쓰기만 하면 작가가 되겠네!’라고 해줍니다. 그러면 아이는 자기가 모르는 내용을 친구들이 말할 때에 관심을 갖고 듣습니다. 책 때문에 꾸중 듣지 않고, 선생님이 시킨 다른 활동 하면서 소외되지 않고, 칭찬까지 듣습니다. 그러면 다음에는 책을 읽고 옵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고, 책을 읽지 않은 아이가 독서토론에 집중하게도 만듭니다. ‘넌 읽었고, 넌 잘했고, 넌 왜 그러니?’식의 평가는 책에서 멀어지는 아이를 만듭니다. 모두 함께 책벌레가 되도록 칭찬하고 격려해주세요.

 

(지난 호에 이어) 서찰을 전한 아이처럼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고민한 적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대답이 참 재미있습니다. 자신이 잘못해서 엄마한테 혼날 때 엄마가 너 몇 대 맞을래?’ 하면 진짜 고민이 된답니다. 한 대 맞는다고 하면 속이 들여다보이고, 맞는 횟수를 늘리면 아파서 몇 대가 적당한지 고민하는 게 중요한 결정이랍니다. ‘어떤 옷을 고를까, 무얼 먹을까도 중요한 결정입니다. 한 아이는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가 사귀자고 고백을 했답니다. 그러자고 하면 자기가 싫고, 싫다고 하면 상대방이 힘들어할 것 같아서 고민이랍니다. 더 거창한 걸 기대했지만 듣고 보니 정말 그렇겠네!’ 하는 마음이 듭니다. 아이들에게 서찰을 전하는 것은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형제와 이웃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치자는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겠지요!

미래에 정말 중요한 결정을 할 때가 언제일지 물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문과와 이과 결정할 때, 대학교에서 과를 선택할 때, 직장, 결혼대상자 등을 말하더니 결론은 입니다. 자신이 무얼 하며 살아갈지 결정하는 순간이 가장 힘들 거라고 합니다. 지금도 하는 고민이지요. ‘앞으로 나는 무얼 하며 살아갈까?’를 이야기하면서 서찰을 전한 아이가 같은 고민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찰을 전할까 말까 고민하는 것과 이 고민이 다르지 않습니다.

이어서 아버지 잃고 자기가 위험에 처하면서도 서찰을 전했지만 결국 전봉준은 죽었다. 그럼 아이가 서찰을 전하려고 고생한 건 의미가 없는 걸까?‘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반으로 의견이 나누어졌습니다.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 아이들은 아버지의 뜻이니 따라야 한다, 맡은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의견을 냅니다. 의미 없다는 아이들은 그래봐야 죽지 않았느냐? 아버지도 죽고 전봉준도 죽었는데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합니다. 그래서 다시 질문했습니다.

과정이 중요할까? 결과가 중요할까? 쉽게 말해보자. 열심히 공부했는데 시험 치는 날 상태가 안 좋아서 결과가 나쁘게 나왔다. 반대로 공부 안 하고 놀았는데 결과가 좋게 나왔다. 어떤 게 좋은가?” 반 반 정도로 나뉜 의견이 이번에는 대부분 과정이 좋다는 쪽으로 기웁니다. 어찌 되었건 성적 잘 나오면 좋다고 대답할 줄 알았는데 의외입니다. 이걸 바탕으로 서찰을 전한 아이 결정이 의미가 있느냐고 다시 물으니 멋진 이유를 말합니다. ‘서찰을 전하기 위해 여행한 과정에서 보람을 느낀다면 충분하다’, ‘전봉준 장군에게 서찰을 전해주었으니 아이는 할 일을 다 했다. 장군이 죽은 이유는 서찰에 적힌 대로 하지 않은 전봉준 장군 때문이지 아이와는 상관 없다.’ ‘아이는 서찰 전하는 책임을 다했으니 성취감을 가질 수 있어서 좋다. 자부심이 생긴다’, ‘이런 일을 겪었으니 꿋꿋하게 자라서 잘 살아갈 것이다등을 말합니다. 과정을 제대로 겪어낼 때 얻을 수 있는 유익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또 질문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열심히 노력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일을 이루지 못했다고 하자. 그래도 괜찮은가?” 아이들은 모두 괜찮다고 합니다.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에서 얻는 유익으로 다른 일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서찰을 전하는 아이를 이해한 독서반 아이들이 멋지게 보입니다. 물론, 금방 떠들고 사소한 일에 쉽게 흥분하지만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들의 삶에서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스스로 깨달았으니 이만하면 훌륭합니다.

독서토론 마지막 시간에는 글을 씁니다. 토론하지 않고 각자에게 맡기면 참 재미있습니다. 나도 아이처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씁니다. 마음에서 생각을 길어내지 않고 표면만 적시다 끝납니다. 토론하고 이야기를 나누면 뻔한 주제에서 벗어납니다. 차별 당하는 경험을 떠올리며 분노를 터트렸으니 차별로 쓰면 좋겠지요. 우리 아이들은 중요한 결정과정이냐 결론이냐라면 쓸 말이 많습니다.

그럼, 글을 써볼까요. 글을 제대로 쓰려면 세 가지를 갖추어야 합니다. 무엇을 쓸지 정해야 하고, 정한 주제에 맞는 내용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생각한 내용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용을 생각하고 표현하는 능력이 글을 쓰기 위한 조건이라는 건 대부분 인정합니다. 좋은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면 진짜 좋은 글이 나오겠지요. ‘생각 좀 하고 잘 좀 써라는 잔소리도 같은 말입니다.

백일장이나 글쓰기 행사에서는 정해진 주제에 따라 글을 씁니다. 주제는 무엇을 쓸지 정한다고 할 때의 무엇입니다. 이때는 주제에 맞는 내용을 생각해서 표현하면 됩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른 사람이 주제를 정해주지 않은 곳에서 글을 씁니다. 책을 읽고 독서감상문을 쓸 때 아이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무엇입니다. 일기를 쓸 때도 무얼 쓸지 몰라 끙끙댑니다. 책을 읽고도 글로 써낼만한 주제를 찾지 못합니다. 주제만 잡아줘도 내용을 생각하고 표현하는데 이걸 못합니다. 생각과 표현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들은 어른들은 무얼 쓸지 뭐 그리 고민하느냐?’ 하며 쓸거리는 대충 정하고, 글이나 잘 쓰라고 합니다.

저는 독서토론을 하면서 책을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발문합니다. 서찰을 전하는 아이를 시대적 배경으로, 거래라는 면으로, 갈등으로, 편견으로, 중요한 결정 앞에서의 고민, 과정과 결과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가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 가지 주제로 책에 경계를 긋지 않고 온갖 생각을 하도록 부추깁니다. 마지막 시간에 우리가 나눈 주제들을 늘어놓고 자신이 꼭 써보고 싶은 주제를 고르라고 합니다. 한 가지 주제를 주고 무조건 이걸로 써라하면 아이들이 더 편하게 생각합니다. 어떻게든 그 주제로 쓰면 되니까요. 그래도 아이들에게 여러 주제를 놓고 선택하게 합니다. 무엇을 쓸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이미 내용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쓸만한 내용을 담은 주제가 무엇일까?’ 고민합니다.

한 아이가 글을 이렇게 마무리 지었습니다. “~ 중요한 결정은 내 생각으로, 내 의지로 선택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사소한 일도 중요한 것이라 생각하고 신중하게 선택하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 더없이 필요한 세상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더 가르칩니다. ‘우리는 주로 책과 나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것도 굉장히 중요하고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글에 담아야 한다. , 나와 책과 세상을 연결지어 글을 써야 한다. 특히 논술할 때는 내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사회를 말해야 한다.’라고 합니다. 이걸 이해하려면 또 토론해야 합니다. 말로만 가르치면 아이들이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표현은 세 가지를 말합니다. ‘이어주는 말을 쓰지 말아라’, ‘문장을 짧게 써라.’, ‘주어와 서술어가 어울리게 써라세 가지를 자연스럽게 해내려면 몇 년이 걸립니다. ‘그리고그래서를 수백 번 쓴 뒤에 이어주는 말을 줄입니다. ‘~했는데, ~해서, ~ 했다가를 이어 한 문장을 대여섯 줄 넘도록 수도 없이 쓴 뒤에 짧게 씁니다. 앞뒤 이야기가 맞지 않는 비문을 수없이 쓰고 나서 고칩니다.

주제 정하기, 내용 생각하기, 알맞은 문장으로 표현하기 모두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주 쓰고 고치는 겁니다. 아이들이 지겨운 이 과정을 즐기게 하려면 독서토론이 재미있어야 합니다. 결국,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좋은 글은 나오지 않습니다. 한 발, 한 발씩 나가다 보면 내가 가야 할 산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느낄 날이 올 것입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는 **초등학교에서 뒤늦게 독서반을 열었습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재잘거리는지 깜짝 놀랐습니다. 한 학년에 반이 두 개밖에 없는 작은 학교라 아이들이 저를 이미 알고 있었지만 처음 만난 어색함은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 것 전혀 없습니다. 말하기 좋아하는 아이들이니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독서모임을 처음 하는 아이들이라 읽기 쉬운 책을 골랐습니다. ‘서찰을 전하는 아이는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던 1894년 전후 이야기입니다. 분량이 적당하고 내용이 흥미진진합니다. 책이 어땠느냐고 물으니 재미있다고 합니다. 5학년 아이는 두 번 읽었고 6학년들은 한 번 읽고 대충 다시 한 번 보았다고 합니다. 다 읽었다고 해도 내용을 잘 모릅니다. 독서반을 오래 하다보니 아이들이 말하는 잘 읽었다와 제가 원하는 잘 읽었다가 다르다는 걸 압니다. 그래서 늘 정말 잘 읽었는지 확인을 합니다.

제대로 읽었는지 확인하려고 내용을 확인하는 문제 14개를 내줬습니다. 대충 읽어도 맞출 수 있는 문제 5, 한 번 읽으면 찾을 수 있는 문제 5, 집중해서 읽어야 맞출 수 있는 문제 5개를 주관식으로 냈습니다. 저는 항상 첫 시간에는 내용 확인 문제 풀이를 합니다. 문제의 2/3이상을 모른다면 그날은 내용 확인에 관한 이야기만 계속 나눕니다. 책 내용을 제대로 모르면 책에 바탕을 두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합니다. 아무리 수준이 낮아도 책 내용에 바탕을 두고 말하면 독서토론입니다. 반면에 아무리 대화 수준이 높아도 책 내용과 상관 없으면 독서토론이 아닙니다.

문제를 풀어보니 한 아이만 제대로 읽었습니다. 그래서 독서모임 시간 100분 동안 내용 확인만 했습니다. 문제와 관련된 내용을 물으며 앞뒤 내용을 연결지었습니다. 도중에 아이들 경험과 연결지어 이야기를 나누면서 책 내용을 파악했습니다. 책을 다시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문장이나 문단에 줄을 그어오라고 숙제를 냈습니다.

두 번째 시간에는 자기가 골라온 내용을 소개하며 시작했습니다. 제가 먼저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를 말했더니 책에 이렇게 좋은 내용이 있었나?’합니다. 왜 이걸 골랐는지 말하고 아이들 의견을 들었습니다. ‘한 사람을 구하고 때로는 세상을 구하는 일이라는 겉표지 문장을 말한 아이도 있습니다. 줄거리를 아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한 문장을 남길 수 있는 책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이어서 찬반토론을 했습니다. 다른 독서반을 할 때는 두 번째 시간에 이야기식 독서토론을 하고 세 번째 시간에 찬반토론을 합니다. 올해는 워낙 말하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라 찬반토론을 먼저 했습니다. 세 가지 토론주제로 발문지를 만들었는데 너무 열심히 토론해서 두 가지 주제로 토론을 하고 나니 100분이 다 지났습니다. 첫 번째 토론 주제는 아버지는 아들과 자신에게 나쁜 일이 생길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봉준 장군을 찾아가려고 한다. 한 사람을 살리려다가 두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여러분이 아버지라면 서찰을 전하러 가겠는가? 안 가겠는가?”입니다.

독서모임을 처음 하는 아이들은 근거를 말하지 않고 간다, 안 간다라고만 말합니다. 가고 안 가는 이유를 물어도 아주 간단한 대답만 합니다. 배경을 충분하게 이끌어내지 않으면 단답형으로 말합니다. 자세하게 근거를 들어가며 토론하려면 쉬운 이야기부터 끌어내야 합니다. 토론을 하기 전에 토론을 이끌어내는 질문을 몇 가지 던져주었습니다. 두 번째 질문입니다.

1) 아이는 서찰에 쓰인 글 뜻을 알아내기 위해 네 번 돈을 지불한다. 누구를 만나 얼마를 내고 알아내는가?
  (
아이들 대답을 들었습니다.)
2)
가난해 보이는 아이가 글씨를 묻는데 돈을 받고 알려준 사람들 행동을 어떻게 봐야 하나? 받아들일 수 있나? 지나친
   요구인가
? (서로의 필요를 위해 거래한 것이므로 돈을 받는 게 정당하다고 대답했습니다.)
3)
가장 돈을 많이 쓴 때는 언제인가? (처음 거래할 때) 4) 아산에서 아이는 김진사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두 냥씩 받았다.
   글씨를 알아내기 위해 쓴 돈과 비교할 때 노래를 불러주고 두 냥을 받은 것은 합당한가? 아닌가?
   (
김진사가 부자이기 때문에 합당하다는 의견과 노래 하나에 두 냥은 비싸다는 의견으로 나누어졌습니다.)

네 가지 질문을 하면서 아이가 한 거래에 초점을 맞추고 마지막 질문을 던졌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거래 중에서 가장 합리적인 거래는 무엇인가? 이유를 들어 말해보자.” 아산 도련님이 글씨를 알려주고, 아이가 노래를 불러준 거래가 가장 합리적이라고 말합니다. 가장 나쁜 거래는 오호두 글씨를 알려주면서 두 냥을 받은 장사꾼이라고 대답합니다.

세 번째 시간에는 차별을 중심으로 발문했습니다.
1)
아산에서 아이는 양반댁 아이를 어떻게 대하는가?
2)
당시 사회의 신분제도를 설명해 보자.
3)
요즘에도 높은 사람, 낮은 사람, 귀하고 천한 사람으로 나누는가?
4)
정당하지 못한 이유로 차별을 받아본 경험이 있다면 이야기해보자.
5)
아직도 없어지지 않은 가장 큰 차별은 무엇인가?
6)
차별이 없는 세상이 가능할까?
7)
차별을 없애기 위해 일하고 있는 단체를 소개해 보자.

4번 질문에서 아이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열을 냅니다. 엄마가 성적으로 차별하고, 할머니가 남자인 오빠만 좋아하고, 언니만 좋아하고…… 성토대회를 하는 것 같습니다. ‘분노폭발하거나 울어버릴 것 같아 말려야 했습니다. 자신들이 당하는 차별에 아이들은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차별은 잘 모릅니다. 아직 그 정도까지 생각하지 않았겠지요. 조선시대 신분차별과 남녀차별은 들은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자신이 겪은 차별은 실제입니다. 실제는 머리에 있는 생각을 가슴으로 끌어내립니다. 느끼고 표현하게 만듭니다.

독서모임 첫 시간에 조선 후기 관리들과 농민들의 관계에서 차별이 어느 정도였는지 말해도 그런가?’했습니다. 자신이 당하는 차별까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점점 그럴 수 있겠다’, ‘나라도 그렇게 했겠다로 바뀌었습니다. 역사를 배우지만 누가, 언제, 어떤 일을 했는지만 알면 역사의식이 생기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동학농민운동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시험 끝나면 곧바로 잊습니다. 중국과 일본 군대가 왜 개입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반일감정이 들끓습니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일본을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그런 일을 겪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여기까지 가진 못했지만 서찰을 전하는 아이가 한 걸음 더 내딛게 했을 거라 믿습니다.

아이들은 차별이 없는 세상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차별 없는 세상을 소망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전봉준이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 질문은 이겁니다. “아이가 서찰을 전해주어 김경천을 조심하라고 말했는데도 전봉준은 나와 함께한 동지도 믿지 못한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하며 잡힌다. 전봉준은 죽을 줄 알면서 왜 피노리에 갔을까?” 이 질문은 어려운지 대답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을 말해주었습니다. 자기 때문에 동료들이 계속 잡혀가는 걸 참을 수 없어서,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서, 자신이 희생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생각해서……

(서찰을 전하는 아이, 2편 원고로 이어집니다.)

2학년 담임으로 학부모 공개수업을 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책을 직접 고르며 책과 친해지는 기회를 주고 싶었고, 부모님들에게는 책 때문에 즐거워하는 아이들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도서실에서 수업을 했습니다. 도서실 책상을 ㄷ자로 만들고 부모님들이 뒤에 앉으셨습니다.

쓰기책에 푸른꿈 도서관이라는 글이 나옵니다. 도서실에서 책 고르는 방법, 책을 빌리는 방법, 도서실에서 주의할 점이 주된 내용입니다. 교과서를 읽고 퀴즈로 내용을 알아보았습니다. 영상매체와 인터넷 매체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문단이 무엇인지 알려줄 때는 색지를 잘라서 칠판에 붙였습니다. 책을 고르고 빌리는 방법을 배우고 로알드 달이 지은 책을 알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2학년은 아직 작가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 책 참 재미있다말하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우리 반은 로알드 달을 알고 있습니다. 가끔 로알드 달 책을 소개하고 인용했더니 한 아이가 <멋진 여우씨>를 말합니다. 멋진 여우씨를 읽은 아이들도 2/5가량 됩니다.

주문한 학급문고가 들어오던 날, 아이들에게 멋진 여우씨를 간단하게 소개했습니다. “여우를 잡으려는 사냥꾼 세 명이 있어. 평소에는 여우를 쉽게 잡는데 이번에 만난 여우는 멋진 여우씨야. 멋진 여우씨는 아주 똑똑한 여우야. 어떻게 될까?” 그랬더니 학급문고에서 멋진 여우씨를 가져가려고 쟁탈전이 붙었습니다. 며칠 그러더니 금세 시들해집니다. 오늘 멋진 여우씨를 말하면 아이들이 또 읽으려고 할 겁니다. 며칠 지나 시들해지면 또 말해줄 겁니다. 선생님이 책이야기를 자주 하면 그만큼 아이들이 책을 더 읽겠지요.

독서토론을 하려면 책을 읽어야 합니다. ‘이 책으로 독서토론을 할 겁니다. 꼭 읽으세요라고 하면 2학년은 물론이고 고학년이라고 해도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만 읽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선생님이 책을 읽어주는 겁니다. 저는 1주일에 두 번 정도 아침활동 시간에 책을 읽어줍니다. 지금 읽어주는 책은 사자와 마녀와 옷장입니다. 네 번째로 읽어주고 있는 책인데 아이들이 참 좋아합니다. 전체 아이들이 모두 듣기 때문에 책으로 이야기를 나눌 때 좋습니다.

수업 후반에 도서실에서 책 찾기 시합을 했습니다. 2학년은 시합을 너무 좋아합니다. 멋진 여우씨를 지은 로알드 달작품 찾기를 했더니 이 책, 저 책 뒤지며 다닙니다. 오늘 배운 도서관에서 주의할 점을 지켜가며 찾아야 합니다. 하루 전에 미리 로알드 달이 지은 책을 여러 곳에 골고루 숨겨두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들은 과학, 역사, 위인, 경제…… 온갖 종류의 책을 만지고 제목을 읽으며 찾아다닙니다. 다음에 도서실에 오면 멋진 여우씨를 찾으려다가 눈에 익은 책이 또 보일 테고 그러면 읽으려는 마음이 더 생기겠죠!

로알드 달 책 찾기를 한 뒤에는 가장 읽고 싶은 책을 골라오라고 했습니다. 너무 쉬운 책을 골라오면 내용을 설명하며 바꿔줍니다. 아이에게 맞는 책을 추천하고 칭찬하고 격려하며 모두 책을 한 권씩 가져옵니다. 부모님들은 그걸 보며 흐뭇해 합니다. 오늘 아이들은 책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읽고 싶은 책을 골라와서 또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워합니다. 혜영이뿐만 아니라 모두 깔깔 웃으며, 도서실을 좋은 곳으로 생각합니다.

<오늘은 학교에 부모님들께서 오셨다. 그래서 특별히 도서실에서 수업을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선생님께서 발표를 시키셨다. 도서관에서 부모님과 공부하는 소감을 물으셨다. 그때 예현이가 손 들었는데 부모님들이 뒤에 계셔서 좀 그래요.” “그래, 뒤통수가 뜨끔뜨끔선생님 말씀에 모두 웃었다. ‘하하! 까르르르그런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도 좋으셨지만 학부모님이 오시니 더 좋아지신 것 같은데?‘ 그래도 너무 재미있고 행복한 하루였다.>(원**-2학년)

 

지구상에 있는 어떤 민족보다 유대인들에 관한 책이 많습니다.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박해와 위협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노벨상을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전세계 인구의 2%가 안 되지만 노벨상은 10배나 많이 받습니다. 유대인들 교육의 핵심은 독서와 토론입니다. 유대인들은 듣고 말하고 의견을 나눕니다. 도서관에서도 토론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고, 교실에서도 토론으로 수업합니다. 묻고 답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우리나라는 교사의 설명을 학생들이 잘 듣고 이해해서 외웁니다. 이해하지 못해도 외우다 보면 이해가 될 거라고 합니다. 자기 의견은 사라지고 정답 찾기만 남습니다.

독서교육이라고 해도 독해력, 이해력, 독서퀴즈, 독서감상문 대회 따위를 생각합니다. 독서감상문을 쓰려면 글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의견을 내세우고 다른 사람 의견을 듣는 토론은 초등학교 고학년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논리적으로 주장을 내세워 상대방 의견을 이기는 게 토론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토론 규칙을 배우고 토론 순서에 따라 연습합니다. 그래서 토론은 어렵고 딱딱하다 생각합니다. 규칙과 절차에 맞는 토론도 해야 합니다. 독서감상문도 써야 합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독서교육은 이야기 나누기입니다. 이야기 나누기는 토론과 토의의 차이점을 몰라도 할 수 있습니다. 유치원 아이와 할아버지가 함께 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많이 해야할 독서활동은 이야기나누기입니다.

로알드 달을 소개하면서, 동물 이야기를 하다가, 어떻게 하건 상관없이 여우 이야기가 나오면 멋진 여우씨를 말할 수 있습니다. 2학년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책이야기를 자주 하면 아이들이 책을 더 보게 되고, 줄거리를 넘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나중에는 자기 생각을 담습니다. 이걸 글로 쓰면 좋은 독서감상문이 됩니다.

우리반 00이는 농장 주인이 부자여서 좋겠다고 합니다. 꼭 이웃을 도와주어야겠다고 쓰지 않아도 됩니다. ‘여우를 다 죽여버리고 싶다는 표현이라면 상담을 해야겠지만 아이들이 가진 저마다의 생각은 받아주어야 합니다. &&이는 세 사냥꾼은 너무한 것 같아요. 가축 몇 개 잡은 건 이해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해를 해줘야 인기가 많아지고 인기가 많으면 너무 자랑스럽단 생각이 들 거예요. @@한테 쫓겼을 때 난 여자화장실에, @@가 나한테 쫓길 때 남자화장실에 영리하게 숨었어요. @@는 남자고 나는 여자거든요. 내 생일파티에 초대한 안**이 덥다는 이유로 안 와서 안** 걱정한 게 헛수고라는 생각이 들고 여우한테 속은 사냥꾼이 된 것 같았어요. 여우 같은 영리한 친구가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멋진 여우씨에서 배운 건 영리함은 욕심을 이긴다는 것이에요.”라고 썼습니다.

정확한 형식을 따지면 부족함이 있겠지만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쓴 글로는 굉장하지 않습니까! 영리함이 욕심을 이긴다는 걸 자연스럽게 느끼고 마음에 새긴다면 무엇보다도 귀한 배움입니다. 책을 읽은 뒤에 아무 것도 말하지 못하고 독서감상문 한 편 쓰고 마치면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깊은 생각을 길어내지 못합니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써야 깊이 남습니다.

1학기에 멋진 여우씨를 소개했으니 2학기에는 아이들이 책 먹는 여우와 만나게 할 겁니다. 근처에 여우를 볼 수 있는 동물원이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저는 미술시간을 싫어했습니다. 그림은 고통을 주는 괴물이었습니다. 좋아하는 미술가는 없었고 미술 관련 위인이나 책은 한 권도 안 읽었습니다. 교사가 된 뒤에도 변하지 않아서 미술은 정말 가르치기 어려웠습니다. ‘그려라외에는 할 말이 없어서 편하고도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감상이 힘들었습니다. 느끼지 못하면서 이 그림이 어쩌고 저쩌고하면 한숨만 나옵니다. 아이들이 그림을 보며 감탄한다면 저도 태도를 고쳤겠지만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시골 촌놈들답게 사진과 가장 비슷하게 그려야 잘 그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날,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고 처음으로 느낌을 받았습니다. 램브란트는 그림을 5분 이상 들여다보게 만들었고, 저도 놀랐습니다. 네덜란드에 가서 풍차나 튤립이 아니라 미술관에서 원작을 보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얼마 뒤에는 하버드 교수직을 내던지고 데이브레이크 공동체에서 중증장애인을 돌본 헨리 누엔이 탕자의 귀향을 몇 시간이고 들여다 보았다는 말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림에 대한 관심이 생긴 뒤로 가장 눈에 들어온 화가가 고흐입니다. 3-4학년들과 해바라기를 사랑한 고흐(김미진, 파랑새어린이), 5-6학년들과 태양을 훔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염명순, 아이세움)‘을 토론했습니다. 저는 따로 안녕 내 친구 빈센트 반 고흐(김유리, 교학사)‘반 고흐, 영혼의 편지(반 고흐 지음, 예담)‘을 읽었습니다. 모르면 지나치지만 알면 보게 되고, 그러면 사랑하게 된다고 합니다. 고흐는 정말 멋집니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고흐가 그린 그림 중에 가장 기억에 나는 작품을 소개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제가 어렸을 때와 달리 느낌을 풍성하게 나눕니다. 풍부한 표정을 담은 가셰의사를 좋아하는 아이, 붉은 수염이 인상깊이 남아있는 자화상을 좋아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서로 겹치는 그림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그림을 말합니다. 고흐가 가졌던 마음처럼 자신에게 와닿는 그림을 골라냈습니다.

가셰 의사의 집 뒤뜰에서 찍은 사진

 

고흐에게 좋은 영향을 준 일과 나쁜 영향을 준 일을 많이 찾는 시합도 했습니다. 찾은 내용 중에 3가지를 골랐습니다. 조카 이름을 빈센트 반 고흐로 지은 일, 동생 테오, 탕기영감을 만난 일, 고갱과의 만남, 의사 가셰를 만난 일이 좋은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고갱과의 만남, 청혼 실패, 가난, 정신병을 나쁜 일로 뽑았습니다.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들을 만난 것이 좋았고, 이해하지 못하고 밀쳐낸 사람들을 만난 것이 나쁜 영향을 주었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화가라고 해도 고흐 역시 사람이었고 사랑과 이해에 목마른 영혼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했습니다. 사람들이 고흐를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고흐가 더욱 그림에 매달렸다고 생각합니다.

고흐를 읽고 우리나라 위인전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하고 물었습니다. ‘우리나라 위인은 어려서부터 뭐든지 잘하고 뛰어나지만 고흐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합니다. 위인전의 기본 법칙은 용꿈이나 호랑이 꿈을 꾸고 기대를 한몸에 품고 태어난 아이가 어려서부터 비범한 능력을 보이다가 성공하는 것입니다. 장군은 호랑이를 잡은 이야기를 가져야 하고, 학자는 어린 나이에 어려운 책을 좔좔 읊어야 합니다. 자기 허벅지 살이라도 떼어주어야 효자가 됩니다.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고흐는 아이들이 보기에도 딱합니다. 되지도 않는 사랑에 목을 메고, 뒤늦게 그림에 빠져 세월만 낭비합니다. 돈이 되는 그림은 그리지 않고 고집 부리다가 인정받지 못하고 죽습니다.

그래서 좋은 위인전입니다. 좌절하고 실망하고, 고민하고 애쓰는 보통 사람들과는 너무나 다른, 로봇 같은 대단한 사람들을 소개하는 위인전은 좋지 않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서며 애쓴 위인이 훨씬 좋습니다. 고흐는 그런 사람입니다. 게다가 고흐는 이상한 편집증까지 갖고 있습니다. 위대한 그림 뒤에는 고흐의 고뇌와 아픔이 들어있습니다.

마지막 시간에 고흐를 평가했습니다. 가족 관계, 이웃 관계, 친구 관계, 직장 생활, 이성 교제, 경제 자립, 그림 실력은 제가 정한 기준입니다. 아이들도 따로 기준을 정해서 성격, 지위를 평가항목으로 넣었습니다. 방송의 영향을 많이 받은 세대답게 외모도 평가하자고 해서 함께 평가했습니다. 그림 실력은 점수를 좋게 주었지만 다른 기준은 들쭉날쭉입니다. 고흐가 잘생겼다고 10점 준 아이도 있고, 반대로 1점 준 아이도 있습니다. 테오를 생각해서 가족 관계를 9점 준 아이가 있는 반면에 부모를 힘들게 해서 낮은 점수를 준 아이도 많습니다. 늘 평가 받다가 다른 사람을 평가하니 재미있는지 연신 웃습니다.

한 항목씩 평가 결과를 발표하며 토론을 했습니다.
1.
고흐는 부모가 원하는 일은 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일을 했다. 여러분이라면 부모님 뜻을 따를까?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까
? (2명을 제외하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겠다고 합니다.)
2.
고흐 같은 아이가 전학 온다면 친하게 지낼까? 거리를 둘까? (한 명만 친하게 지내겠답니다. 고흐처럼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아이가 멋있다고 생각하며 고흐의 외모에
10점을 준 아이입니다.)
3.
여러분이 사장이라면 고흐 같은 직원을 붙들어둘까? 해고할까? (모두 해고하겠다고 합니다. 고흐의 태도를 이해하면
   서도 돈을 버는 일에는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압니다
.)
4.
고흐 같은 방식으로 사랑을 고백해오는 사람이 있다면 받아줄까? 거절할까? (혼자만의 생각으로 자해소동을 벌이는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는 없었습니다
. 모두 거절한다고 말합니다. 고흐가 지금 태어나도 친구를 얻기는 어렵겠습니다.)

고흐의 가족관계를 이야기하며 네 가족 관계는 어때?’ 묻습니다. ‘누구와 가장 갈등이 심해?’ 남자아이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가족 중에 한 사람과 갈등이 심하다고 말합니다. 함께 사는 형제, 자매, 부모 중에 한 명이 자신을 힘들게 한답니다. ‘짜증나게해서 미치겠답니다. ‘그럼 너희들이 괜찮게 생각하는 한 사람과 함께 산다면 어떨까?’ 물으니 좋겠다고 팔짝팔짝 뜁니다. 힘들게 하는 그 사람이 특별히 나빠서가 아니라 자주 보고 가까이 있기 때문에 서로 찌르고 상처를 주는 거라고 말해도 일단 짜증나게 하는 그 사람보다는 좋을 거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은 평범하게 살고 있습니까? 고흐처럼 한 가지 일에 미쳐서 살고 싶습니까?” 물으니 대부분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합니다. 고흐가 워낙 독특한 예여서 한 가지에 미친 삶을 거부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시골아이들이어서 그런지 가족들과 화목하며 평안하게 지내는 게 행복하다고 말하네요. 특별한 삶을 원한다고 말한 이가진(정라초등학교 6학년)은 이렇게 썼습니다. “고흐는 자기개성이 뚜렷한 사람이다. 한 가지에 꽂히면 미친듯이 그것에만 매달린다. 나는 그런 사람을 좋게 생각한다. ~ 사람들은 고흐의 이런 면을 이상하게 여기고,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사람들이 모두 평범하기에 그렇다. 평범하지 않고 자신의 개성이 뚜렷한 사람은 고흐를 이해해 줄 수 있다.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은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튀는 사람을 이상하게 느낀다. 그러나 지신의 세계가 따로 있는 사람은 자신처럼 개성있는 사람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잘 어울리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고흐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고흐도 그저 자신만의 세계가 있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 독서반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합니다. 가진이는 어떤 점에서 특별한 삶을 살게 될지 보고 싶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