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조리 토리 씨』는 옛날에 있었던 상상 이야기이고 『스위치 프로젝트』는 미래에 일어날 상상 이야기입니다.

1. 저학년을 위한 책

- 『요리조리 토리 씨』 (이진우, 107쪽)
1학년 아이들에게 읽어줬더니 반응이 폭발했다. 2학년 선생님에게 추천했더니 아이들에게 읽어주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2교시까지 내내 읽어주었다고 한다. 선생님이 완전히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주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옛이야기 14편을 썼다. 말로 전해지던 내용이라 ‘어디서 들은 것 같은 내용인데, 읽은 적은 없는 이야기’다. 14편이 서로 연결되어 이어진다. 한 편 읽어주는 데 최대 5분 정도 걸리는 분량이라 읽어주기 좋다. 우리나라 옛 이야기의 입말이 잘 살아있다. 김용철 화가가 그린 그림도 흥미를 돋운다. 아이가 책을 읽지 않는다고? 이 책을 읽어주시라.
14편 제목 : 도토리 아이, 알쏭달산 꼭대기, 배고파 호박집, 무지커 호랑이, 배 속 줄다리, 요리조리 선녀, 두근두근 뿅뿅, 발 없는 말 ?, 무시무시 오라비, 구름모래 씨름, 혼비백산 골라부부, 골라골라 수수께끼, 아홉꼬리 반짝비늘, 알콩달콩 혼례
 
 
 
 
 

2. 고학년을 위한 책
 
- 『스위치 프로젝트』 (주미, 117쪽)
할머니가 손자를 보고 싶어하자 엄마가 복제인간을 할머니 댁으로 주문한다. 이 소식을 들은 훈이는 자기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복제인간에게 대신 시키려고 배송지 주소를 집으로 바꾼다. 그리고 자기는 할머니 집에 가는데~ 훈이가 할머니 집에 가면 편하게 지낼 줄 알았다. 하지만 할머니 집에서 사는 건 생각과 다르다. 복제인간이 예의바르게 행동하자 아빠와 엄마가 잘해준다. 훈이는 불편해지고, 복제인간은 편하게 지내자 훈이 마음이 바뀐다.
앞부분을 읽으며 『바꿔!』(박상기)도 생각나고 『유령스팸』(김동환)도 생각났다. 『바꿔!』는 엄마와 딸이 바뀌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이고, 『유령스팸』은 인공 지능이 보편화된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세 권은 쉽고 재미나게 복제인간에 접근하게 해주는 이야기다. 토론하기도 좋겠다. 『스위치 프로젝트』를 읽고 『바꿔!』, 『유령스팸』를 순서대로 읽으면 된다. 인공지능에 관심이 있다면 『왜 인공지능이 문제일까?』(조성배), 『공학자의 시간 여행』(서승우), 『인공지능 시대 사람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권재원)도 추천한다.

10월에 읽은 책 11권 3059쪽 (합계 119권 27917쪽)

119.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 애쓰모글루, 제임스 로빈슨, 649) / 인문
  유럽과 북아메리카 국가는 부유하고 남아메리카, 사하라 사막 남쪽 국가들이 가난한 까닭이 있다. 아프리카에서도 보츠와나는 부유해지는데 시에라리온은 계속 가난한 이유가 있다. 포용적 정치, 경제 제도를 이룬 나라는 부유해지고, 폐쇄적 제도에 갇힌 나라는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다. 저자는 정치 제도가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포용적 제도는 창조적 파괴(기존의 권력자, 부자들에게 충격을 주는 일)를 일으켜 정권을 교체하거나 부의 지도를 바꾼다. 그러면 국민이 일할 동기가 생기고 자연스럽게 국가가 부유해진다고 주장한다. 아랍의 봄은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아서 실패했다. 아랍 권력자와 지배 계층이 창조적 파괴를 막았고, 결국 권력자 자리에 앉은 사람만 바뀌었다. 중국도 공산당 중심의 구조에 창조적 파괴가 일어나지 않는 한 발전이 멈출 거라고 한다. 흥미로웠다.
  영국,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갈 등 유럽 국가들이 약탈을 위해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를 점령하며 만든 폐쇄적 제도(소수에게 특권을 몰아주는)가 지금까지 백성을 가난과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특히 영국이 전세계에 끼친 악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좋은 작가가 무척이나 많은 나라가 그런 혜악을 끼치다니…… 영국하면 치가 떨린다.

118. 스위치 프로젝트 (주미, 117) / 4학년 이상
  할머니가 손자를 보고 싶어하자 엄마가 복제인간을 할머니 댁으로 주문한다. 이 소식을 들은 훈이는 자기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복제인간에게 대신 시키려고 배송지 주소를 집으로 바꾼다. 그리고 자기는 할머니 집에 가는데~ 훈이가 할머니 집에 가면 편하게 지낼 줄 알았다. 하지만 할머니 집에서 사는 건 생각과 다르다. 복제인간이 예의바르게 행동하자 아빠와 엄마가 잘해준다. 훈이는 불편해지고, 복제인간은 편하게 지내자 훈이 마음이 바뀐다.
  앞부분을 읽으며 바꿔!(박상기)도 생각나고 유령스팸(김동환)도 생각났다. 바꿔!는 엄마와 딸이 바뀌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이고, 유령스팸은 인공 지능이 보편화된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세 권은 쉽고 재미나게 복제인간에 접근하게 해주는 이야기다. 토론하기도 좋겠다. 스위치 프로젝트를 읽고 바꿔!, 유령스팸를 순서대로 읽으면 된다. 인공지능에 관심이 있다면 왜 인공지능이 문제일까?(조성배), 공학자의 시간 여행(서승우), 인공지능 시대 사람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권재원)도 추천한다.

117. 요리조리 토리 씨 (이진우, 107) / 1학년 이상
  1학년 아이들에게 읽어줬더니 반응이 폭발했다. 2학년 선생님에게 추천했더니 아이들에게 읽어주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2교시까지 내내 읽어주었다고 한다. 선생님이 완전히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주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옛이야기 14편을 썼다. 말로 전해지던 내용이라 어디서 들은 것 같은 내용인데, 읽은 적은 없는 이야기. 14편이 서로 연결되어 이어진다. 한 편 읽어주는 데 최대 5분 정도 걸리는 분량이라 읽어주기 좋다. 우리나라 옛 이야기의 입말이 잘 살아있다. 김용철 화가가 그린 그림도 흥미를 돋운다. 아이가 책을 읽지 않는다고? 이 책을 읽어주시라.

  14편 제목 : 도토리 아이, 알쏭달산 꼭대기, 배고파 호박집, 무지커 호랑이, 배 속 줄다리, 요리조리 선녀, 두근두근 뿅뿅
              발 없는 말 ?, 무시무시 오라비, 구름모래 씨름, 혼비백산 골라부부, 골라골라 수수께끼, 아홉꼬리 반짝비늘, 알콩달콩 혼례

116. 오두막 (윌리엄 폴 영, 446)
  2009년부터 다섯 번쯤 읽었다. 처음엔 책이 좋다는 소문이 더 컸다. 2016년이 마지막일 줄 알았는데 갑자기 읽고 싶은 마음이 들어 다시 읽었다. 이번에는 소문보다 더 많이 느꼈다. 맥이 파파, 사라유, 예수와 나누는 대화가 깊이 들어왔다. 딸의 시신을 찾기 전에 대화가 완성되어야 하는 까닭을 이해하게 되었다. 참 좋은 책이다.

115. 그리그리나무 위에는 초록바다가 있다 (린 호셉, 188)
  2014년에 읽고 단번에 마음을 사로잡은 책이다. 두 번째도 좋았는데 세 번째는 감동이 조금 줄었다. 나이 든 마음이 책을 다르게 보게 한다. 린 호셉은 트리니다드 섬마을 사람이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도미니카의 아름다운 풍광과 도미니카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소개한다. 여전히 참 좋은 책이다.

114. 구멍난 벼루 (배유안, 153) / 역사동화
  정말 좋아하는 역사 동화라 몇 번 읽었는데 다시 읽었다. 소치 허련 선생이 추사 김정희를 찾아가 제자가 되는 과정을 썼다. 등장인물이 몇 명 안 되는데 내용을 흥미롭게 이끌어간다. 작가의 솜씨가 참 좋다. 조선 시대 스승과 제자의 깊은 관계를 잘 드러냈다. 그래서 아이들은 읽기 힘들어하겠다.

113. 우리는 어떻게 마음을 움직이는가 (크리스 보스, 탈 라즈, 356) / 인문
  FBI 최고 협상가가 상대(인질범, 계약 상대, 화내는 이웃 등)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을 알려준다. 상대의 말을 따라하는 미러링, 감정을 인정하고 입증하는 명명(이름 붙이기), YesNo가 아니라 교정 질문하기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상대를 설득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유용한 내용이 많다. 나한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자신을 최고 협상가라고 되풀이해서 말하는 부분이 별로였다. 내용으로 승부하지 않고 스스로 이름값을 올리는 건 좋아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은 2016년에 나와 두 달만에 5쇄를 찍고 지금까지 5쇄 그대로다. 내용을 줄이고, 자신을 덜 내세웠다면 더 팔렸을 것 같다.

112. 아빠는 왜 그렇게 살아 (김병년, 255) / 기독교
  아주 오랜만에 김병년 목사님 책을 꺼냈다. 나이 더 들어 다시 읽으니 더 좋다. 자녀에게 진솔하게 대하며 좌충우돌하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난 아이를 위해 표현을 많이 자제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잘 자랐지만, 좋은 것만은 아니다. 목사님의 솔직함, 특히 연약함을 드러내는 모습이 참 좋았다.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는 마지막 장이 자꾸 생각난다. 세월호 아이들을 생각하고, 가족들을 위하는 마음을 표현한 내용이다. 이 부분 때문에 아빠는 왜 그렇게 살아?가 많이 안 팔렸을 수도 있다.

111. 통쾌한 희망 사전 (프레드릭 뷰크너, 198) / 기독교
  17년 전 처음 읽었을 때 굉장했었다. 강의에서 가끔 인용하면 책 제목을 묻는 사람이 꼭 있었다. 뷰크너는 문장을 참 잘 쓴다. 꾸며 쓰는 능력이 좋다는 말이 아니다. 생각 자체가 다르다. 기독교에서 자주 사용하는 낱말을 사전처럼 설명했는데 내용이 탁월하다. 뷰크너가 정의한 낱말과 뜻을 찾아 420쪽 분량의 책으로 제본하기도 했다. 이 책이 팔리지 않아 절판되어 안타깝다.

110. 복음과 상황 10월호 (월간지, 157) / 기독교
  꼼꼼하게 읽는 월간지다. 이번 호 특집 우리 집내용이 좋다. 구선우의 동물기가 끝나서 아쉽다. 이한주의 책갈피, 내 인생의 한 구절, 함석헌 읽기도 참 좋았다. 책방 소개도 계속 관심을 두어 읽는다.

109. 불안 세대 (조너선 화이트, 433) / 인문
  『도둑 맞은 집중력과 결이 비슷하다. 스마트폰에 빠져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설명한다. 여학생은 SNS, 남학생은 게임과 포르노에 중독되는 원인과 결과를 자세하게 보여준다. 자녀가 어렸을 때 부모가 이 책을 읽고 대응하면 좋겠다. 이미 늦은 뒤에 후회하지 말고.

9월에 읽은 책 5권 1323쪽 (합계 108권 24858쪽)

108. 어리석은 자는 복이 있나니 (브래넌 매닝, 202) / 기독교
  날카롭고 딱딱했던 젊은 시절에 브래넌 매닝을 읽으며 많이 공감했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 생각했었는데 20년만에 다시 읽으니 공감하는 부분이 줄었다. 내용은 여전히 좋다. 내 마음이 달라졌다. 다시 읽으며 아직 나는 멀었다고 생각한다. 어리석게 살아야 하는데 참 어렵다.

107. 복음과 상황 9월호 (월간지, 173)
  꼼꼼하게 읽는 월간지다. 집을 주제로 다룬 글이 좋다. 넓은 세상에 한 몸 누이고 뒹굴 공간은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 권리다. Home sweet home. 집을 마련하는 과정, 누린 추억이 얼마나 귀한가! 이걸 값으로 바꿔버린 일부 사람 때문에 다수가 집 없이 산다. 뭐 이런 세상이 다 있는지!

106. 혼모노 (성해나, 367)
  https://bookyard.tistory.com/436

105. 최소한의 품격 (김기석, 304)
  김기석 목사님이 기고한(주로 신문) 글을 모았다. 글이 너무 좋다. 낱말의 넓이, 문장의 깊이가 다르다. 사람을 따뜻하게 보는 마음이 담겨 위로받으며 읽었다. 인용하는 책이 다양한데 어떻게 다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나도 다시 천천히 책을 읽어야겠다.

경제는 공허를 필요로 하는데 비해 감사는 충만을 계발한다.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것들은 어쩌면 가까이에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 눈길이 다른 곳을 떠돌고 있을 뿐(18).
문득 게들이 저렇게 체조를 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온전함은 완전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깨어짐을 삶의 불가피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는 자각. (파커 팔머)
휠덜린 : 군중은 시장의 가치를 좋아하고 하인은 더 강한 자를 존중할 뿐.
자기와 생각과 처지가 다른 이들에 대해 거침없이 혐오를 드러내는 세상에 평화는 없다.

104. 순수와 자유의 브로맨스 톨킨, 루이스 (박홍규, 277)
  톨킨과 루이스를 소개하고 연구한 작가들 책을 꽤 읽었다. 기독교인이 아닌 작가가 쓴 책은 처음이다. 새롭다. 1. 톨킨과 루이스의 성장기에 모르는 내용이 좀 있다. 꽤 읽었는데도 모르는 내용이 있다면 작가가 성실하게 조사했다는 증거다. 2. 우정의 본질은 자유다 이 부분이 좋았다. 잉클링스 모임이 약해진 까닭을 설명한 부분과 네 가지 사랑을 설명한 부분이 좋았다. 3~6장은 루이스와 톨킨이 쓴 작품을 소개한다. 몇 번씩이나 읽은 책인데 비기독교인이 설명해서 새로운 부분이 있다. 참 좋았다.
  “모든 나쁜 사람 중에서 종교적인 나쁜 사람이 최악이다.” 루이스

8월에 읽은 책 11권 3287쪽 (합계 103권 26822쪽)

103. 끝나지 않은 이야기 (톨킨, 712)
  톨킨이 쓴 미공개 작품을 모았다. 톨킨 마니아로서 참 재미있었다. 일반 독자는 재미없는 부분이 많겠다. 톨킨이 정말 좋아한 이야기 베렌과 루시엔은 여기 없다. 책이 비싼 편이다.

102.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예수님의 말씀 (송민원, 211) / 묵상
  송민원 교수님이 예수님 말씀을 묵상한 내용이다. 교수님 목소리로 듣는 느낌이다.

101. 톨킨, 판타지의 제왕 (마이클 화이트, 364) / 전기
  톨킨이 판타지 소설을 쓴 과정을 주제로 쓴 전기다. 어릴 때 타란툴라에게 물린 경험이 반지의 제왕에서 거미 쉴로브를 쓰게 했다는 것처럼. 루이스와의 관계도 많이 다룬다. 톨킨이 글을 워낙 치밀하고 꼼꼼하게, 오류 하나 없이 쓰는 사람인지라 루이스가 나니아 연대기를 빨리 쓰면서 마음이 멀어졌다. 호빗. 반지의 제왕, 실마릴리온등의 이면에는 톨킨의 치밀함이 만들어낸 끝없는 수정이 있었다. 나도 그렇게 써야 하는데……

100. 이름들의 인문학 (박지욱, 322) / 인문
  저자가 선정한 특정 이름의 유래를 소개한다. 1부는 의학 명칭(재왕절개, 무통분만, 내분비선 등), 3부는 우주 관련 이름, 2부는 비행을 중심으로 몇 가지 이름을 소개한다. 간단한 유래와 관련 정보를 소개하는데 간단하게 읽으면 되는 내용이다.

99. 복음과 상황 8월호 (175)
  꼼꼼하게 읽는 기독교 월간지다. 김교신, 함석헌을 소개하는 글이 좋았다. 구선우의 동물기는 여전히 재미있다. 김기현 목사님 글도 맛깔나다.

98. 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250)
  지난달 독서모임에서 읽었다. 글을 쓰려고 다시 읽었는데 느낌이 확 달라졌다.
https://bookyard.tistory.com/432

97. 잠비 (김도영, 164) / 4학년 이상
  정조(이 산)11살 때를 상상해서 쓴 이야기다. 주인공은 규안이다. 규안은 서출이라 형님들에게 멸시를 받는다. 하도 맞아서 규안이는 엄살이 심하고 눈치가 빠르다. 이 산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기억과 자신도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며 잠을 이루지 못하자 같은 나이의 아이를 곁에 두자는 의견이 나온다. 그러나 이 산은 불려온 아이마다 내치다가 규안을 만난다.
  빠져들어 읽었다. 글을 참 잘 썼다. 아버지를 잃고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인 이 산의 모습을 잘 나타냈다. 이 산이 순진한 서출 규안을 대하는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는 과정도 좋았다. 울컥하는 부분도 있었다. 참 좋은 책이다.

96. 일수의 탄생 (유은실, 123)
  독서 캠프를 위해 다시 읽었다. 열 번쯤 읽었는데도 낯선 부분이 있다. 초등 4학년, 6학년, 2학년, 1학년, 학부모까지 14명이 참석했다. 책 놀이 조금 하고, 퀴즈로 내용을 알아보고, 토론했다. 책에 나오는 문장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걸 고르라고 했는데 부모는 뭘 찾겠다고 헤매고 있지요. 지금도(119)”을 선택했다. 중학생들은 인생 별 거 아니다.”를 골랐다. 부모와 자녀가 바뀐 거 아니냐 하며 함께 웃었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의 생각을 알아서 좋았다고 했다.

95. 좋은교사 8월호 (142)
  300호 특집판이다. 평소에는 몇몇 코너 위주로 읽는데 이번에는 꼼꼼하게 다 읽었다. 특히 손봉호 교수님 인터뷰가 참 좋았다. 기독 교사나 학부모가 읽으면 좋다.

94. 코칭 바이블 (게리 콜린스, 470)
  코칭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지 소개하는 책이다. 상담은 지난 일을 돌아보고, 코칭은 앞으로 다가올 일을 바라보는 거라고 한다. 나는 과거를 돌아보며 살았다. 코칭처럼 변화를 일으키고, 리더십을 혁신하고, 목표를 설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건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앞날을 기대하며 웃으며 사는 날을 기대하는 게 필요하겠다.

93. 교회사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 (하워드 스나이더, 354) / 기독교
  교회사에서 카리스마 운동의 흐름을 소개한다. 경건주의, 모라비안주의, 웨슬리 매서디즘을 중심으로 교회 갱신운동으로 나아간다. 우리나라에도 교회를 새롭게 하는 움직임이 있다. 흐름이 거세지면 좋겠다.

7월에 읽은 책 15권 4192쪽 (합계 92권 23535쪽)

92. 기술, 선전, 정치, 혁명 (이상민, 336)
  자크 엘륄의 생각을 정리한 책이다. 대학생 때 자크 엘륄의 뒤틀려진 기독교를 읽고 엘륄에게 반했었다. 과거를 바탕으로 앞날을 내다보는 엘륄의 통찰력이 마음을 빼앗겼었다. 엘륄의 책을 몇 권 더 읽었는데 좀 어려웠다. 이 책은 엘륄의 사상을 정리해서 소개한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는지 놀랍다.

91. 맛깔스러운 관용 표현 (유영근, 159) / 3학년 이상
  재미있는 책이다. 관용 표현을 소개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만화가 있어서 아이들의 관심을 끄는 데다가 흥미로운 정보도 담았다. 3학년 국어 시간에 관용 표현을 배우는데 이 책으로 시작하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들겠다.

90. 화성으로 간 로버 이야기 (재스민 왈가, 303) / 중학생 이상
  로버는 화성 탐사를 위해 만든 로봇이다. 실제로 화성 탐사에 큐리오시티, 퍼서비어런스라는 로봇이 쓰였다. 이 책은 화성 탐사 로봇인 리질리언스(리지, 복원이나 회복을 뜻함.)가 화자다. 로봇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과학자들을 보며 인간미를 배운다. 동료가 서로를 대하는 태도, 가족과 통화할 때의 말투와 표정 등을 보며 낱말과 관계를 배운다. 마치 아이가 말을 배우고 살아가는 태도를 배우는 것처럼. 로버가 완성되고 화성으로 가는 과정에서 드론 플라이와 친구가 된다. 드론도 말을 하고 리지에게 관계맺음을 배운다. 물론 사람과 대화하지는 못한다. 화성에 착륙한 뒤에는 인공위성과도 이야기한다.
  이 책은 독특한 과학 소설이다. 로버가 인간성을 배우는 과정이 흥미롭다. 또한 화성에서 명령 코드에 따라 움직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 도전 대상을 정해 위험에 뛰어든다. 지구에 있는 과학자들이 보기에 귀중한 것을 찾아내서 자기를 지구로 다시 가져가게 하려고 말이다. 그러다가 큰 일을 겪는다. 인간의 일생을 보여주는 것 같다. 어릴 때 배우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능력을 펼치고, 죽음을 생각하는 과정 말이다. 참 좋은 책이다.

89. 복음과 상황 7월호 (165) / 기독 월간지
  꼼꼼하게 읽는 기독교 월간지다. 이번 호는 참 좋았다. 김영준 민들레 교회 목사님이 쓰는 광주 이야기는 오자마자 읽는다. 7월호의 <황금동 콜박스 레드마리아>는 사람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 구선우의 동물기가 끝나서 아쉬웠다. 홍익문고 소개도 좋았다. 특히 <철학자 목수들을 길러내는 학교>가 참 좋았다. 김기현 목사님 글도, 원주 IVF 홍순영 간사님 소개도 좋았다. 이번 7월호는 따로 놔두고 다시 읽을 기사가 많았다.

88. 또 다른 바람 (어슬러 르귄, 389) / 중학생 이상
  어스시의 마법사 마지막이다. 1권에서 게드는 죽음의 담 너머에 있는 존재(그림자)를 불러낸다. 그림자로부터 도망치다가 생각을 바꾸어서 그림자를 쫓는다. 3권에서 게드는 죽음의 담 안쪽, 갈라진 틈에서 어둠을 뿜어내는 존재와 싸운다. 마지막 6권은 용들이 일으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까지 등장한 인물들이 나선다. (게드가 3권에서 동행한 왕자가 왕이 되었다.)이 테나(2권에서 게드가 구한 무녀), 테하누(4권의 여자아이), 로크의 마법사 몇 명이 죽음의 담을 허문다. 마지막까지 르 귄은 절묘하다.

87. 어스시의 이야기들 (어슬러 르귄, 542) / 중학생 이상
  어스시의 마법사 5권이다. 어스시 이야기 스핀오프 같다. 마법사를 경멸하고 찾아 죽이던 시대 이야기, 애달픈 사랑 이야기, 게드의 스승 오지언이 곤트에서 지진을 막은 이야기, 로크 마법 학교에 처음으로 여성이 간 이야기다. 르 귄은 참 글을 잘 쓴다.

86. 인공 지능과 살아남을 준비 (김태권, 172) / 중학생 이상
  대한민국 독서대회 중학생 토론 심사 덕분에 좋은 책을 읽었다. 인공지능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용하는지, 인공지능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알려준다. 특히 인공지능이 사회의 편견을 배우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저자는 인공지능이 진실에 가까운 사실이 아니라 사람들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을 알려준다는 게 양날의 칼이라고 소개했다. 또한 인공지능에게 미래를 부탁해도 되는지 물으며 정보 접근성의 차별성과 민주주의를 설명하는 방식도 흥미로웠다. 토론 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은 인공지능을 쓴 경험이 있었으며, 장단점을 잘 알고 있었다. 찬반토론에서는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활용과 가능성, 의존성과 위험성을 이야기했다. 학생들이 토론하기 좋은 책이다.

83. 테하누 (어슬러 르귄, 388) / 중학생 이상
  어스시의 마법사 4권이다. 1~3권의 주인공인 게드가 능력을 상실하고 평범한 사람이 된다. 세상의 어둠을 잠재우고, 왕을 세운 사람에게 기대하는 바가 큰데 게드는 염소치기로 살아간다. 미래를 준비하거나 현실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지혜를 나누어주는 사람이 아니다. 완벽하게 평범한 사람이 되어 조용히 살아간다. 영웅은 이렇게 퇴장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계속 이름이 불리고 사람들의 박수갈채 소리가 여운을 남기는 일이 없다. 게드의 변신에 사람들의 반응이 다양하다. 왕은 대관식에 게드를 초청하려고 사람을 보내지만, 게드가 피한다. 게드가 세상에 평화를 가져온 줄 전혀 모르는 사람도 많다. 게드는 테나에게도 잘 다가가지 않는다.
  그리고 새로운 이가 나타난다. 얼굴이 불에 짓이겨져서 한쪽 눈이 보이지 않고 심한 흉터가 남은 자그마한 여자아이다.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사람들을 겁내는 아이가 테나(2, 게드가 아투안의 무덤에서 데려온 무녀)를 만난다. 르 귄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낯설다. 새롭다. 참 좋다.

84 편의점을 털어라, (정경원, 189) / 4학년 이상
  편의점에서 게임하듯 문제를 풀면서 수학을 알려준다. 가볍고 재미있는데 수학 내용은 충실하게 다룬다. 재미있다.

83 머나먼 바닷가 (어슬러 르귄, 358) / 중학생 이상
  어스시의 마법사 3권이다. 자신을 직면하고(1), 한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구해낸(2) 뒤에 무얼 할까? 게드는 왕자를 데리고 모험을 떠난다. 세상에 스며든 어둠을 물리치기 위해 적을 찾아 나선다. 남쪽 바다 끝까지 갔다가 다시 서쪽 바다 끝까지. 세상 끝까지 쫓아가서 인간의 근원적 본능(사실은 근원적 불안)을 자극해서 자신의 왕국을 세우려는(사실은 자신의 두려움을 잠재우려는) 대적을 만난다.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붓고 왕자를 의지해서 돌아올 길을 찾는다.
  →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섣부르게 택하지 말도록 해라. 어렸을 때 나는 존재하는 삶과 행위하는 삶 사이에서 선택해야 했단다. 그러곤 송어가 파리를 물 듯 덥석 행위의 삶을 택했지. 그러나 사람이 한 일 하나하나, 그 한 동작 한 동작이 그 사람을 그 행위에 묶고 그로 인해 빚어진 결과에 묶어버린단다. 그리하여 계속 또 행동하도록 만드는 거다. 그러면 지금처럼 행동과 행동 사이의 빈틈에 다다르기란 정말로 어려워지지. 행동을 멈추고 그저 존재할 시간, 자신이 대체 누굴까를 궁금해할 기회를 가질 수 없는 거다.”

천진함 속에는 악에 맞설 힘이 없지.”

82. 아투안의 무덤 (어슬러 르귄, 252) / 중학생 이상
  어스시의 마법사 2권이다. 1권에서 자신을 직면한 주인공 게드가 이제 무얼 할까? 세상을 구할까? 영웅적인 모험이나 전투를 할까? 그렇지 않다. 아투안의 무덤에 가서 한 사람을 구해낸다. 게드는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곳,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곳에 찾아간다. 더구나 아투안의 미궁에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이 없다. 게드조차 힘을 잃고 무기력하게 구원의 손길을 기다려야 했다.
  1권에서 자신을 직면하라는 메시지를 보낸 뒤에 어슬러 르 귄은 한 사람을 구하는 이야기를 썼다.

세상은 아름답고 환하고 쾌적한 곳이지만, 그게 다는 아니오. 세상은 또한 끔찍하고 어둡고 잔혹하기도 해요. 푸른 풀밭에선 토끼가 단발마의 비명을 내지르오. 산들은 그 거대한 손아귀에 온통 화염을 숨겨 쥐고 있소. 바다에는 상어가 헤엄치고, 사람들의 눈 속엔 잔인성이 깃들어 있소. 그리고 사람들이 이러한 것들을 숭배하고 그 앞에서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존재로 여긴다면 바로 거기에서 악이 자라난다오.

81. 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250) / 소설
  이름난 소설가의 책은 좀 어렵다. 남자인 내 눈에는 외로운 사람이 보였다. 독서모임 여성분들의 눈에도 외로움이 보였지만, 동시에 다른 여자를 만나 외로움을 해결하려는 모습이 계속 보였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모습이다. 나도 남성 중심으로 생각하나 보다. 책을 읽으며 스토너가 생각났는데 스토너 역시 남성 중심으로 읽기 쉬운 책이다. 방학 동안 글을 써야 하는데 바움가트너에 공감하는 글을 쓰기 어려워졌다. 무얼 쓰게 될까?

70. 어스시의 마법사 1 (어슬러 르귄, 296) / 중학생 이상
  르귄의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처음 읽었을 때보다 좋다. 어스시(EARTHSEA, 지구 바다)에서는 존재의 이름이 중요하다. 이름을 알면 존재를 안다. 이름을 알면 상대를 재압한다. 이름을 알려준다는 건 목숨을 맡기는 것과 같다. 이름은 존재를 나타낸다. 주인공 새매(로크)가 실수로 어둠의 세계에서 자신의 그림자(존재의 어두운 모습)를 불러온다. 처음에는 그림자를 피해 도망가지만, 어느 순간 그림자에 맞선다. 그리고 그림자를 쫓아간다. 자신의 그림자를 해결하지 않으면 결국 그림자가 자신을 집어삼킬 줄 안다. 로크가 그림자를 무찌를까? 로크가 그림자를 해결하는 방식이 곧 어슬러 르귄의 세계관이다.
  1권은 정직하게 자신을 직면하는 이야기다.

69. 페다고지 (프레이리, 256)
  독서 모임에서 읽었다. 페다고지는 교육, 교육화, 안내를 뜻한다. 민중을 가르치고, 학생을 가르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교수 방법이나 수업 이론이 아니라 교육이 무엇인지 말한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교육은 교사가 가르치고 학생이 배우는 은행 저금식 교육이다. 프레이리는 기존 체제를 유지하는 은행 저금식 교육이 아니라 문제제기식 교육을 주장한다. 지식을 받아들여 체제에 순응하는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 체제에 변화를 가져오는 사람을 기르는 교육 말이다.
  프레이리는 중산층 가정에서 살다가 대공황을 맞아 극심한 가난을 겪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폈다. 순응, 회피, 반항, 좌절, 대리 만족 등의 태도를 설명하며 어떤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지 말한다. 프레이리가 살던 시대는 기득권층으로 불리는 사람들에 대항하는 교육을 말했다면, 지금은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체제에 맞서야 한다. 그런데 이 체제는 바뀔 것 같지 않다.
  조금 어렵지만, 교사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라 생각한다.

68. 최재천의 동물 대탐험 1 (황혜영, 175) / 3학년 이상
  최재천 교수 이름이 있지만, 황혜영 작가가 쓴 글이다. 동물이 주위 환경과 비슷하게 몸을 숨기는 의태를 설명한다. 내용은 대부분 가벼운 상상이며, 의태는 책 마지막에 만화로 설명했다. 가볍고 쉽게 의태를 이해하도록 해준다.

진짜와 가짜

정보가 이동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어린 시절에 미국은 먼 나라였고, 대통령은 높은 사람이었다. 서울과 놀이공원은 수학여행으로 가는 곳이었다. 지금은 트럼프를 욕하고, 캄보디아를 주시하고, 이탈리아 돌로미티 숙소를 알아본다. 이름만 알던 곳, 뉴스에서나 보던 사람은 물론, 한 번도 보지 못한 외국 사람까지 가까워졌다. 거리가 먼 인물이나 장소가 가까워지자 몰두하고 빠져들어 고향이나 가족처럼 느낀다. 알아가는 시간이 추억처럼 쌓여 사랑하게 된다.

이 과정이 지나치면 본질을 잃는다. 관심과 열정이 지나쳐서 선을 넘는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잃어버리고 대상을 왜곡한다. 너무 깊이 빠져들어 <미저리, 1991>를 현실로 만드는 사람이 생긴다. 특정 유튜브가 전하는 소식이 진짜라고 믿고 총을 난사한다. 성조기에 이스라엘 국기까지 흔들며 자기들이 하나님 뜻을 외친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에 집착해서 스토킹하면서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이 사람들은 자신만이 진실을 본다고 확신한다. 너무나 진짜라고 생각해서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성해나 작가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옳은지 확인해야 하는 시대적 필요를 일곱 가지 단편에 담았다. 덕후 수준을 넘어서서 극성팬(빠돌이와 빠순이라는 이름이 생길 정도로)으로 불리는 사람들은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가 자기 이야기인 줄 모른다. <스무드>에서 듀이가 만난 사람들, 아주 좋은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하게 해준 친절한 사람들이 극우인 줄 모른다.

작가는 <혼모노>에서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이 신애기인지, 문수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신애기는 장수할멈이 자기에게 왔다고 확신한다. 문수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정말 신들린 모습이다. 그러자 문수는 칼에 베여 피가 흐르는데도 신애기가 흉내만 낸다고 확신하며 칼을 탄다. 30년 세월은 문수가 흉내를 내는지, 신애기가 흉내만 내는지 모르게 이끌었다. 작가에게 물으면 누가 진짜인지 자기도 모른다고 할 것 같다.

여제화는 갈월동 98번지에 세운 건물이 사람들을 고문하며 인간성을 짓밟고 무너뜨리는 용도인 줄 알았다. 자신이 명성을 얻기 위해 설계를 맡았고 야망을 쫓는 거라는 생각도 했다. 온 마음을 다해 설계하는 구보승을 만나지 않았다면 호랑이 만지기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구보승의 지나친 모습이 여제화를 멈칫하게 만들었다. <구의 집:갈월동 98번지>에 인간을 위한 공간이라니! 구보승의 도를 넘어선 모습 앞에서 비로소 자기를 돌아본다. 그렇지 않다면 구의 집이 아니라 여의 집이 되었을 것이다.

<우호적 감정><잉태기>는 누가 우호적인 감정을 가진 사람인지 묻는다. 우호적인 감정을 주고받던 수잔은 떠나고 진이 남았다. 처세에 능하다고 봐야 할지, 사람을 잘 조정한다고 봐야 할지 모르겠지만 진짜가 사라지고 가짜가 진짜 자리를 차지했다. <잉태기>도 비슷하다. 음흉하게 표현하건, 대놓고 표현하건 진은 맥스를, 시부는 서진을 조정한다. 가스라이팅하듯이. 서진은 시부에게 빠져들어 엄마 말을 듣지 않는다. 딸이 미국에서 아이를 낳게 하려는 엄마와 이걸 말리는 시부 모두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누가 정말 서진을 위하는지 결정하기 어렵다.

 

<메탈>을 꿈꾸던 세 친구는 저마다 방향을 바꾸었다. 조현은 대학으로 멀어진 뒤에 공기업 취업했다. 시우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아기상어를 부른다. 마지막까지 메탈을 놓지 않던 우림도 숙박업이 기울자 새로운 길을 찾아 형이 있는 남해로 간다. 젊음을 바쳐 몰두했던 것도 시간이 흐르자 한때의 치기 어린 추억도 아닌, 어리석은 장난처럼 돼버렸다. 진짜 꿈꾸던 세상이 무엇이었는지 세 친구도 모른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듀이는 짧은 경험을 일반화했다. 문수는 오랜 시간 함께한 경험을 절대 근거로 내세웠다. 시부와 엄마는 욕심에 눈이 멀어 서진을 끌고 가려고 했다. 시간, 장소, 관계가 판단의 절대 근거가 아니다. 듀이는 한나절 경험이 전부가 아닌 줄 알아야 했다. 문수는 장수 할멈을 선물처럼 받았다. 거저 받았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보낼 줄도 알아야 했다. 그러나 30년 동안 장수 할멈을 독점하면서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부와 엄마도 자신의 경험, 장소, 관계에 매여 자기 생각만 내세웠다.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를 알아도 실제로 코끼리 다리를 만질 때는 맹인이 되는 경우를 누구나 겪는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는 줄 알면서도 실제로 받아들이는 건 참 어렵다. 신념이 강할수록 오류도 커진다. 극우와 기독교가 만나게 하고, 팬과 스토킹이 만나게 한다. 상식, 규범, 사회의 통념에 물들어서 우리도 이럴 가능성이 있다.

실체를 알아챈 사람도 있다. ‘에겐 호랑이가, 여제화에겐 구보승이, 알렉스에겐 수잔이 있었다. 발톱과 이빨이 빼버리고 관람객에게 내보인 호랑이를 만나지 않았다면, 자신이 하는 일에 몰두해서 인간성을 상실한 구보승이 없었다면, 너무 애쓰지 말라고 말한 수잔이 없었다면 더 오랫동안 코끼리 다리 만지기를 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계속. 결국 거짓 세상에 빠져버린 사람을 구하는 것도 결국은 사람이다.

 

얼마 전 스바냐 강해를 들었다. 교차 대구 구조로 썼고, 하나님의 심판이 창조 세계의 대변혁을 가져오며, 창조 순서의 역전을 보여준다고 했다. 히브리어 원문을 정교하고 세밀하게 설명했다. 스바냐 저자가 고른 낱말이 얼마나 신중한지, 문장 순서가 얼마나 정교하게 구조화되었는지, 창조의 원리를 하나하나 생각하며 역전을 일으킨 작품이라고 했다. 이렇게 분석하려고 얼마나 공부했을지 생각하면 강해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다만 한 가지 궁금했다.

저자가 정말 그렇게 의도하고 썼을까요? 아니면 영화감독이 우연히 놓은 물건에 관객이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렇게 성경을 분석한 건 아닐까요?”

제가 배운 방식이 원문을 분석하고 구조를 살피는 거라 이렇게 설명했어요.”

하며 분석하고 꼬치꼬치 캐묻는 식의 강해가 어쩌면 헛짓일 수 있다고 강사가 대답했다. 자신의 연구가 헛짓일 수 있다고 해서 진짜 박사로 보였다. 구약학 박사처럼 자신의 특징과 한계를 안다면 맹점에서 빠져나오기 쉬워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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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글을 잘 쓰게 하는 방법이 뭘까?
글쓰기 지도 방법을 안다고 아이가 글을 쓰는 게 아니다.
글은 관계에서 나온다.
아이가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는 바탕이 관계다.
가족과 지내고 친구와 노는 것도 관계다.
아이가 글을 쓰도록 교사가 꼬드기는 것도 관계다.
이 관계가 드러나도록 써야 한다.
그러므로 기법을 내세우기 전에, 아이와 글을 잘 연결해야 한다.
무엇보다 가르치는 사람이 아이와 마음이 맞아야 한다.
그러면 글 쓰는 ‘분위기’가 생긴다.
올해 만난 1학년은 글 쓰는 분위기가 좋다.
초등학교 1학년은 글 쓰는 기법을 배우지 않았다.
어설픈 교과서에 물들기 전에 책벌레를 만나 글을 썼다.
난 애들이 모두 작가라고 생각한다.
4월엔 최작가가 나섰고, 5월엔 이작가가 나섰다.
지금은 김작가, 신작가가 나선다.
최작가, 이작가도 계속 글쓰기에 빠졌다.
가을바람이 불어오니 온통 ‘글’이다.
지난주에 나눈 대화를 소개한다.
대화 1.
“선생님, 글 써요.”
“국어 시간이라 국어 공부해야 하는데.”
“싫어요. 그냥 글 써요. 제발~”
“국어 공부하면 안 돼?”
“글쓰기가 더 좋아요. 네, 제발요.”
대화 2.
“국어 시간에 열심히 공부해서 빨리 끝나면 글 쓴다.”
“우와~”
첫 시간에 집중해서 두 시간 분량을 다 배우고 두 번째 시간이 시작되었다.
“선생님, 이제 글 쓰죠?”
“그래. 공부 열심히 했으니 글 써야지!”
“와~ 글 쓴다!”
대화 3.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두 아이가 나눈 대화를 옆반 선생님이 들었다.
한 아이가 투덜거리자 친구가 묻는다.
“기분이 안 좋아?”
“응. 기분이 안 좋아.”
“그럼. 글을 써. 속상한 걸 다 쓰면 시원해져.”
“그래. 글 써야겠다.”
대화 4.
“오늘 글쓰기 숙제 내줄 거예요?”
“응.”
“오 예~”
“연휴 동안 글 한 편만 쓰면 돼.”
“더 써도 돼요?”
“그럼. 더 써도 되지.”
“난 열 개 쓸 거야~”
대화 5.
애들이 떠든다. 말을 안 듣는다.
“너희들 자꾸 말 안 들으면 글 안 쓴다.”
“선생님, 조용히 할게요. 글 써요. 제발요.”
이 분위기를 겨울까지 이어가는 게 내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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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동안 강원도 시골 아이들과 지냈다.
자녀에게 신경 쓰지 않는 부모가 많았다.
신경 안 써도 괜찮으니 부모가 있기만 하면 좋을 아이도 있었다.

교사 역할은 물론, 때론 부모 역할도 했다.

똑같은 걸 수십 번 가르쳤고, 집에도 꽤 찾아갔다.

반찬 갖다주고 형광등 갈아주고

돈도 주고 관심도 주고 사랑도 줬다.

퇴직하는 날까지 이렇게 살 줄 알았다.

 

올해 강릉으로 옮겼다. 학교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다 새롭다. 부모도, 아이도, 학교도.

부모 관심이 뜨겁다. 아이들도 예민하다.

아이의 예민함이 낯설고 부모의 예민한 반응도 낯설다.

 

1학기엔 꽤 힘들었는데 이젠 아이들과 마음이 맞는다.

부모들 반응도 적대가 아니라 따뜻한 관심인 걸 알게 됐다.

아이들이 글쓰기를 너무 좋아한다.

문집도 다섯 번이나 냈다. 250쪽이나 된다.
아이들 글이 너무 좋아서 5호 문집은 목차를 바꾸었다.
시 느낌이 나는 글, 글감이 좋은 글, 친구 이야기 쓴 글, 그 외 이야기

오늘 아침에 아이가 물었다.

선생님은 왜 똑같은 옷만 입어요?”

난 옷에 관심이 없어. 옷이 몇 벌 없어. 아무거나 입지.”

그래요?”
"옷 많으면 환경이 오염된다고 했잖아. 그래서 안 입는다고 그랬는데 기억하니?"
"네."

옷이 중요하니?”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뭐라 대답했을까?

.

.

.

아니오. 삶이 중요하지요.”
정확하게 이렇게 말했다. 삶이 중요하다고.

지금까지 아이들을 돌보고 나눠주며 살았는데

여기에선 아이에게 삶이 중요하다는 말을 듣는다.


그래, 삶이 중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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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글 쓰고 싶어요. 글 써도 돼요?”
“선생님, 글 쓸 게 생겼어요.”
요즘 자주 듣는 소리다.
1학년 아이들이 글쓰기에 빠져들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축구, 게임, 놀이공원 같은 걸 쓰지 않는다.
순간을 잡아낸다.
개학하고 쓴 글 제목이 이렇다.
(엄마의 추억 화장실, 내가 분리 수면을 못 하게 된 이유, 소고기는 할머니 냄새, 비구름아 강릉으로 가줘…… 캬, 쥑인다!! 1학년이 이런 제목으로 글을 쓰다니~)
준후의 성격, 발냄새, 선생님의 기침, 엄마 없을 때, 내 라면, 곤충 잡기, 9월, 비둘기의 전쟁, 엄마의 옛날 학교, 신맛, 매운 날, 열이 펄펄, 동생 관찰기, 청소의 달인, 태국 사람들 하루, 장화, ?!멍!, 내가 분리 수면을 못 하게 된 이유, 과자 봉다리, 엄마의 추억 화장실, 가뭄, 소고기는 할머니 냄새, 쫄깃한 포도, 또 부러졌다. 민물 게, 숲, 비 오는 하루, 아빠의 옛날 이야기, 송충이의 하루, 엄마의 옛날 공부, 세상은 이렇게 넓다. 여름, 자전거, 기분 나쁜 000, 잔소리 동생, 친구들 공부하는 모습, 마음이 두근두근, 밥 먹는 친구들, 시끄러운 우리 반, 비구름아 강릉으로 가줘. 지우개의 하루......
내가 정해준 제목이 아니다.
아이들이 ‘아, 이거 쓰면 되겠네!’ 하며 스스로 썼다.
글쓰기 방법을 많이 아는 게 중요하지 않다.
아이는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다.
아이 마음을 사로잡아야 아이들이 글을 쓴다.
제목 : ***(아이 이름)
내 이름은 ***이다.
내 특기는 글쓰기다.
어느 정도냐 하면
***은 양치하면서 글을 쓴다.
왼손은 양치하고 오른손은 글을 쓴다.
그게 다가 아니다.
밥을 먹으면서 글을 쓴다.
그냥 글 쓰는 게 좋다.
아이 마음을 사로잡으면 양치하면서 글을 쓰고 밥 먹으면서 글을 쓴다.
얘만 이런 게 아니다. 나한테 글씨 배운 아이도 잘 쓴다.
남자 아이들도 시인이고 작가다.
주말이 지나면 아이들이 어떤 글을 써오려나?
월요일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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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거기 두고 쓰던 물건(볼펜, , ……) 위치를 바꾸었다. 손을 뻗었는데 없다. ‘, 왜 여기 없지?’ 하다가 , 자리를 바꿨지!’ 한다. 잠시 뒤에 같은 일을 되풀이하며 , 자리를 바꿨는데 참~’ 하며 멋쩍게 웃는다. 화가 나기도 한다. 생각이 몸을 움직이는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몸이 생각을 움직인다. 우린 의지보다 습관에 따라 산다. 운동선수들은 몸이 기억할 때까지 연습한다. 그러면 생각할 겨를이 없는 찰나에도 몸이 반응한다. 습관이 의지를 이긴다.

팔다리가 절단된 뒤에도 환자는 팔다리에서 통증을 느낀다. 늘 거기 있던 팔다리가 사라진 걸 실제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없어진 팔다리가 가렵고 따갑고 아프다. 늘 곁에 있던 사람이 없어져도 비슷하다. 목소리가 들린다. “왔어?” 하며 반겨주는 사람이 없어서 아픈데, 인사를 들은 느낌이 나서 더 아프다. 며칠 전에 가지치기하고 쉬다가 문득 내가 먼저 죽으면 여긴 어떻게 될까? 나무와 풀을 볼 때마다 내 빈자리가 보일 테고, 가족이 환지통 비슷한 아픔을 느끼겠지!’ 생각했다. 작은 물건 하나 자리만 바뀌어도 몸이 착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면 얼마나 힘들까!

바움가트너는 애나와 헤어진 뒤에 주디스를 만났다. 주디스는 바움가트너와 달리 결혼할 마음이 없다. 바움가트너는 애나와 같은 집에 함께 살면서 둘 다 자유와 자기실현을 찾아낸 반면, 주디스는 신랄하고 허세가 심한 조 때문에 숨이 막히는 느낌으로 살았다(125). 주디스는 결혼에 환지통을 느낀다. 조와 지낸 결혼은 답답하고 고통스러웠다. 바움가트너는 결혼하고도 행복과 자유를 느끼겠지만, 주디스는 다르다. 주디스에게 결혼은 잘라낸 팔다리와 같다. 주디스는 결혼 생활을 행복하게 했던 바움가트너를 만나 조와 보낸 세월에 입은 상처를 치유하는 걸로 만족한다. 그래도 결혼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습관이 의지를 이긴다.

바움가트너는 사고로 시작해서 사고로 끝난다. 두 사고는 다르다.

1장의 사고는 혼란스럽다. 애나를 잃고 혼란에 빠진 바움가트너는 일을 제대로 못 한다. 약속을 잊어서 전화를 안 하고, 약속을 기억해도 정신이 없어서 전화를 못 한다. 냄비를 태우고, 그 냄비에 손을 덴다. 약간 불그스름해질 뿐이었는데 마치 손가락이 잘린 듯한 분위기다. 지하실로 내려가다가 떨어진다. 정원은 엉망이다. 플로렌스 부인이 잘 정리하고 청소한 상태보다 바닥에 떨어진 냄비가 크게 보인다. 1장은 혼란 그 자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이렇게 된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그대로인데 그대로가 아니다. 크게 데지 않은 손가락이 마치 잘린 것처럼 일상이 고통스럽다. 바움가트너는 플로렌스 부인을 시켜 아내 물건을 그대로 유지한다. 애나의 옷을 꺼내 개고, 다시 넣기를 되풀이한다. 어린 시절 자신의 대역으로 보았기 때문에 열차에 탄 아이(엄마와 딸, 아버지와 아들)들이 긴 세월 자신을 쫓아다닌 것처럼(149) 애나를 곁에 둔다. 그럴 수밖에 없다. 40(?)년 동안 사랑하며 함께 산 사람의 죽음을 툭 털어버릴 순 없다.

5장에는 타버린 냄비에 덴 것보다 큰 사고가 일어난다. 집에서 30km 정도 떨어진 숲길에서 차가 나무를 들이받았다. 에어백이 터지지 않아 이마를 다쳤다.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바움가트너는 이마에서 피가 계속 흐르는 채로 얼굴에 바람을 맞으며 춥고 외딴곳에서 도움을 찾아 걷는다. 냄비에 손을 뎄을 때는 호들갑을 떨며 3~4분 동안 찬물에 손을 대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흐르는 피를 쓱 닦고는, 통증도 느끼지 않고, 별일 아닌 것처럼 걷는다. 책은 마무리되었고, 집은 정리되었고, 지하실 계단도 멀쩡해졌다. 정원도 11년 전 모습으로 돌아갔다.

4장이 전환점이다. 1장의 혼란은 2장의 환지통으로 드러난다. 3장에서 주디스를 만나면서 13개월이 지나는 동안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일으킨 참사에서 구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무엇이든 구해 내기 위해서라도, 억지로라도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그 빌어먹을 것을 그냥 내버려둬야 하며, 그러다 보면 마침내 그게 자신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가 거리감이 생기고, 그때 용기를 내 다시 집어 들면 마치 처음 마주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202).”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 거기 매몰되어 그것만 생각하면 늪이 돼버린다.

바움가트너는 글을 쓰다가 과거를 떠올린다. 가족 여행을 떠올리고 여동생을 생각한다. 아버지의 편지를 기억하고, 아버지가 미국에 정착한 과정을 생각한다. 할머니가 엄마를 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처지를 이해한다. 엄마의 삶을 생각하고 <스타니슬라프의 이리들>을 처리하고 나서야 다시 살게 된 마을을 생각한다. 또한 애나의 글을 정리하고 출판하면서 애나를 다시 마주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모두 서로 의지하고 있고 어떤 사람도, 심지어 가장 고립된 사람이라 해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171).” 하는 사실을 깨닫는다.

바움가트너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이 환지통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처음 읽을 때는 재미없네. 너무 질질 끌잖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빨리 말하고 끝내지!’ 했다. 두 번째 읽을 때는 책에 빠져들었다. 문장도 많이 보이고, 작가가 이끌어가는 구조도 보인다.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두 번 읽었기 때문이 아니다. 방학 동안 학교에서 물러나 거리를 두고 지내면서 내 처지가 달라졌다. 처음 읽었을 때 삼척 환지통을 앓았다. 시골 아이들이 그리웠다. 강릉지역, 학부모가 자녀를 위해 고른 학교, 1학년에겐 슬픔이 보이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힘들어서 책을 읽기도 힘들었다.

바움가트너는 아팠다. 주디스도 아팠다. 바움가트너의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 팔다리 하나씩 끊어낸 채로 살았다. 고향, , 희망이 끊어졌고 가족을 끊어낸 사람도 있다. 너무 아플 때는 다른 사람의 아픔이 보이지 않는다. 방학 동안 쉬었다. 계속 쉬었다. 마음이 편안해지자 등장인물들의 아픔이 보였다.


<책 내용 요약>

1. 혼란 : 전화 약속 잊음. 냄비 태우고 손 뎀. 애나 물건 그대로 둠. 계단에서 떨어짐 검침원 상사에게 전화할 생각을 머릿속에 둠. 정원은 엉망.

2. 환지통 : <환지통> 에세이 쓰기 시작. 애나를 회상함. 애도 상담사에게 비참 토로 애나의 친구 프랭크 보일. 마호가니 책상, 타자기, 옷을 개고 다시 넣기, 전화 소리 꿈.

3. 애나와 주디스 : 주디스 이야기 바움가트너에, 애나가 바움가트너와 결혼한 과정 글 <자연 발화>. 애나와 주디스 떠올림. 주디스가 바움가트너와 결혼하지 않는 이유

4. 뿌리 찾기 : 13개월 뒤, 글 쓰다가 과거를 기억함. 가족 여행과 여동생, 지하철에서 아빠에게 맞은 아이, 아버지의 편지, 아버지 정착기, 어머니와 할머니. 여행기 <스타니슬라프의 이리들>

5. 변화 : 책 마무리, 비어트릭스 코언. 책 정리, 집 고치기(지하실 계단), 정원 정리, 애나 작품 출판 계획. <운전대의 신비> 소개.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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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남자아이가 쓴 글 두 편 소개합니다.
<소풍>은 2004년에, <아이스크림의 맛>은 2025년에 썼다.
남자아이가 글을 쓴다고?
책벌레를 만나면 다 씁니다.
2년만에 글쓰기 연수합니다.
 
소풍
김**(1학년 남자)
쉰움산으로 소풍을 갔다. 산에 가다가 절에서 물을 먹었다. 그리고 올라가는데 재미있었다. 꼭대기에 가서 내려오는데 물가에서 선생님이 놀라고 그랬다. 나는 가재 같은 거를 잡았는데 선생님이 잠자리 애벌래라고 했다. 나는 다섯 마리를 잡았다. 그리고 올챙이도 잡을라 그랬는데 안 보여서 잠자리 애벌레 밖에 못 잡았다. 내려오는데 다섯 번 넘어졌다. ***은 재미있게 넘어졌다. 나도 재미있게 넘어지면 좋겠는데 아프게 넘어졌다.
아이스크림의 맛
이**(1학년 남자)
사르르 사르르 입에서 녹는다.
와삭봐는 와삭와삭 소리가 난다.
쌍쌍바는 두 개로 똑 떨어진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구구콘이다.
한 입 먹으면 입에서 공작새가 나는 것 같아.
한 입 더 먹으면 케이크 위에서 스케이트 타는 느낌이다.
눈사람이 녹는 것처럼 아이스크림이 녹는다.
녹기 전에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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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 글쓰기 연수

교실에서 아이들과 글을 쓰는 과정을 알려드립니다. 온라인으로 배우고, 교실에서 실습해야 합니다. 글도 써서 보내주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쓴 글로 문집을 만들어 보내드립니다. 1. 주제 :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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