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와 가짜

정보가 이동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어린 시절에 미국은 먼 나라였고, 대통령은 높은 사람이었다. 서울과 놀이공원은 수학여행으로 가는 곳이었다. 지금은 트럼프를 욕하고, 캄보디아를 주시하고, 이탈리아 돌로미티 숙소를 알아본다. 이름만 알던 곳, 뉴스에서나 보던 사람은 물론, 한 번도 보지 못한 외국 사람까지 가까워졌다. 거리가 먼 인물이나 장소가 가까워지자 몰두하고 빠져들어 고향이나 가족처럼 느낀다. 알아가는 시간이 추억처럼 쌓여 사랑하게 된다.

이 과정이 지나치면 본질을 잃는다. 관심과 열정이 지나쳐서 선을 넘는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잃어버리고 대상을 왜곡한다. 너무 깊이 빠져들어 <미저리, 1991>를 현실로 만드는 사람이 생긴다. 특정 유튜브가 전하는 소식이 진짜라고 믿고 총을 난사한다. 성조기에 이스라엘 국기까지 흔들며 자기들이 하나님 뜻을 외친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에 집착해서 스토킹하면서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이 사람들은 자신만이 진실을 본다고 확신한다. 너무나 진짜라고 생각해서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성해나 작가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옳은지 확인해야 하는 시대적 필요를 일곱 가지 단편에 담았다. 덕후 수준을 넘어서서 극성팬(빠돌이와 빠순이라는 이름이 생길 정도로)으로 불리는 사람들은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가 자기 이야기인 줄 모른다. <스무드>에서 듀이가 만난 사람들, 아주 좋은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하게 해준 친절한 사람들이 극우인 줄 모른다.

작가는 <혼모노>에서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이 신애기인지, 문수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신애기는 장수할멈이 자기에게 왔다고 확신한다. 문수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정말 신들린 모습이다. 그러자 문수는 칼에 베여 피가 흐르는데도 신애기가 흉내만 낸다고 확신하며 칼을 탄다. 30년 세월은 문수가 흉내를 내는지, 신애기가 흉내만 내는지 모르게 이끌었다. 작가에게 물으면 누가 진짜인지 자기도 모른다고 할 것 같다.

여제화는 갈월동 98번지에 세운 건물이 사람들을 고문하며 인간성을 짓밟고 무너뜨리는 용도인 줄 알았다. 자신이 명성을 얻기 위해 설계를 맡았고 야망을 쫓는 거라는 생각도 했다. 온 마음을 다해 설계하는 구보승을 만나지 않았다면 호랑이 만지기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구보승의 지나친 모습이 여제화를 멈칫하게 만들었다. <구의 집:갈월동 98번지>에 인간을 위한 공간이라니! 구보승의 도를 넘어선 모습 앞에서 비로소 자기를 돌아본다. 그렇지 않다면 구의 집이 아니라 여의 집이 되었을 것이다.

<우호적 감정><잉태기>는 누가 우호적인 감정을 가진 사람인지 묻는다. 우호적인 감정을 주고받던 수잔은 떠나고 진이 남았다. 처세에 능하다고 봐야 할지, 사람을 잘 조정한다고 봐야 할지 모르겠지만 진짜가 사라지고 가짜가 진짜 자리를 차지했다. <잉태기>도 비슷하다. 음흉하게 표현하건, 대놓고 표현하건 진은 맥스를, 시부는 서진을 조정한다. 가스라이팅하듯이. 서진은 시부에게 빠져들어 엄마 말을 듣지 않는다. 딸이 미국에서 아이를 낳게 하려는 엄마와 이걸 말리는 시부 모두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누가 정말 서진을 위하는지 결정하기 어렵다.

 

<메탈>을 꿈꾸던 세 친구는 저마다 방향을 바꾸었다. 조현은 대학으로 멀어진 뒤에 공기업 취업했다. 시우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아기상어를 부른다. 마지막까지 메탈을 놓지 않던 우림도 숙박업이 기울자 새로운 길을 찾아 형이 있는 남해로 간다. 젊음을 바쳐 몰두했던 것도 시간이 흐르자 한때의 치기 어린 추억도 아닌, 어리석은 장난처럼 돼버렸다. 진짜 꿈꾸던 세상이 무엇이었는지 세 친구도 모른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듀이는 짧은 경험을 일반화했다. 문수는 오랜 시간 함께한 경험을 절대 근거로 내세웠다. 시부와 엄마는 욕심에 눈이 멀어 서진을 끌고 가려고 했다. 시간, 장소, 관계가 판단의 절대 근거가 아니다. 듀이는 한나절 경험이 전부가 아닌 줄 알아야 했다. 문수는 장수 할멈을 선물처럼 받았다. 거저 받았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보낼 줄도 알아야 했다. 그러나 30년 동안 장수 할멈을 독점하면서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부와 엄마도 자신의 경험, 장소, 관계에 매여 자기 생각만 내세웠다.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를 알아도 실제로 코끼리 다리를 만질 때는 맹인이 되는 경우를 누구나 겪는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는 줄 알면서도 실제로 받아들이는 건 참 어렵다. 신념이 강할수록 오류도 커진다. 극우와 기독교가 만나게 하고, 팬과 스토킹이 만나게 한다. 상식, 규범, 사회의 통념에 물들어서 우리도 이럴 가능성이 있다.

실체를 알아챈 사람도 있다. ‘에겐 호랑이가, 여제화에겐 구보승이, 알렉스에겐 수잔이 있었다. 발톱과 이빨이 빼버리고 관람객에게 내보인 호랑이를 만나지 않았다면, 자신이 하는 일에 몰두해서 인간성을 상실한 구보승이 없었다면, 너무 애쓰지 말라고 말한 수잔이 없었다면 더 오랫동안 코끼리 다리 만지기를 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계속. 결국 거짓 세상에 빠져버린 사람을 구하는 것도 결국은 사람이다.

 

얼마 전 스바냐 강해를 들었다. 교차 대구 구조로 썼고, 하나님의 심판이 창조 세계의 대변혁을 가져오며, 창조 순서의 역전을 보여준다고 했다. 히브리어 원문을 정교하고 세밀하게 설명했다. 스바냐 저자가 고른 낱말이 얼마나 신중한지, 문장 순서가 얼마나 정교하게 구조화되었는지, 창조의 원리를 하나하나 생각하며 역전을 일으킨 작품이라고 했다. 이렇게 분석하려고 얼마나 공부했을지 생각하면 강해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다만 한 가지 궁금했다.

저자가 정말 그렇게 의도하고 썼을까요? 아니면 영화감독이 우연히 놓은 물건에 관객이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렇게 성경을 분석한 건 아닐까요?”

제가 배운 방식이 원문을 분석하고 구조를 살피는 거라 이렇게 설명했어요.”

하며 분석하고 꼬치꼬치 캐묻는 식의 강해가 어쩌면 헛짓일 수 있다고 강사가 대답했다. 자신의 연구가 헛짓일 수 있다고 해서 진짜 박사로 보였다. 구약학 박사처럼 자신의 특징과 한계를 안다면 맹점에서 빠져나오기 쉬워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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