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선하신 권능에 싸여 (Von guten Mǟchten)

독일 여행을 하다가 시골 교회 뒷마당에 덩그러니 놓인 종에 쓰인 글씨를 봤다. 성문, 시계탑, 동상 따위에 쓰인 글이 아무리 좋아도 지나쳤지만 여기서는 종을 끌어안고 사진을 찍었다. 유명한 관광지에 적힌 글씨보다 더 궁금했다. 쓰여진 글씨를 검색하고 뜻을 찾아보았다. 그 글로 만든 찬양곡을 찾고는 여러 번 들었다. 아래쪽에 Bonhoeffer라는 이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이 찾지 않는 작은 마을, 쉴러(윌리엄 텔을 지은 독일 작가)의 고향 사람들은 본회퍼의 어떤 말을 기억하고 싶었을까?

신실하신 주님 팔에 고요히 둘러싸인 보호와 위로 놀라워라. ~ 지나간 날들 우리 마음 괴롭히며 악한 날들 무거운 짐 되어 누를지라도 주여, 간절하게 구하는 영혼에 이미 예비하신 구원을 주소서. ~ 주님의 강한 팔에 안겨 있는 놀라운 평화여! 낮이나 밤이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다가올 모든 날에도 변함없으시니 무슨 일 닥쳐올지라도 확신 있게 맞으렵니다.”

www.youtube.com/watch?v=aN7dGz6NH5M (독일어로 부르는 노래)

약혼녀 마리아 폰 베데마이어에게 보낸 편지에 적은 주님의 선하신 권능에 싸여라는 시이다. 처형 당하기 4달 전에 본회퍼가 감옥에서 썼다. 이 편지는 약혼녀와 부모님, 형제자매, 제자들에게 전한 본회퍼의 마지막 성탄인사가 되었다. 자신의 운명을 예측이라도 한 듯 본회퍼는 주님의 선하신 권능에 싸여 주님 곁으로 돌아갔다. 독일 작곡가 지크프리트 피츠가 찬양곡으로 만들어 지금도 부르고 있다.

 

제자도의 표본 본회퍼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부르실 때에는 그로 하여금 와서 죽으라고 명령하시는 것이다.” 본회퍼가 한 말이다. 독일교회가 히틀러의 뜻을 하나님 뜻으로 착각했을 때, 목숨을 내걸고 반대했다. 지하교회, 비밀리에 하는 방송으로도 모자라 히틀러 암살계획에도 가담한다. ‘부르심죽을지라도로 받아들였고 194549일 플로센뷔르크 강제수용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본회퍼는 행동하는 신앙인, 세상의 불의에 분노하고 하나님을 향한 열정에 불타는 사람에게 빛나는 별이다.

너무 멋져서 본회퍼처럼 살고 싶었다. 21살에 쓴 박사학위 논문이 성도의 교제라는 책으로 나왔다고 해서 읽었다. 어렵다. ‘나를 따르라도 어려워 에버하르트 베트케가 지은 본회퍼의 그리스도론을 읽었지만 역시 어렵다. 평신도로서 나는 본회퍼를 저 멀리 홀로 솟은 별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본회퍼를 읽고 따르고 본회퍼처럼 살 수는 없다. 너무나 강하기 때문이다. 멋모르고 존경한 영웅이다.

 

신학자 본회퍼가 아니라 연인이 쓴 편지

<옥중연서>는 본회퍼가 감옥에서 마리아와 주고받은 편지모음집이다. 편지 대부분은 본회퍼가 테겔 형무소에 있을 때 썼다. 본회퍼의 외숙 파울 폰 하제는 육군 준장으로 당시 베를린 방위군 사령관이었다.(디트리히 본회퍼-복있는사람) 덕분에 본회퍼는 편안하게 감옥생활을 했다. 감옥에서 교회를 걱정하며 편지를 쓴 바울보다는 나은 형편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연서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나님을 따르라고 강하게 썼을 거라 생각했다. 그가 쓴 책만큼이나 깊고, 어렵고, 복잡하리라 생각했다. 마리아에게 예수님을 위해 죽읍시다라고 쓸 줄 알았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본회퍼가 36살일 때 마리아는 18살이다. 김회권 목사님의 해설에 따르면 본회퍼와 마리아는 서로 알고 있었다. 본회퍼는 마리아 오빠의 견신례를 맡아 교육했고 마리아의 외할머니에게 후원을 받았다. 19428월과 10월에 마리아의 아버지와 오빠가 러시아전선에서 전사한 일도 둘이 연인으로 만나는데 영향을 주었다. 마리아는 자상한 아빠와 오빠의 빈자리를 본회퍼를 통해 위로받았다고도 한다. ‘이건 뭐지?’ 싶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제자도의 표본, 히틀러를 암살하려던 사람이 18세 연하의 아가씨와 사랑에 빠지다니…… <나를 따르라>를 쓴 사람이 한 여인에게 사랑하는 마리아, 보고 싶구려!’ 라고 쓰는 게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편지도 지극히 평범하다. 편지를 읽고 내가 생각한 본회퍼를 찾기 어려웠다. 그가 쓴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본회퍼를 전혀 몰랐다.

 

옥중연서

본회퍼와 마리아는 다정하고 편안하게 일상을 이야기한다. 무엇을 하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적는다. 서로를 그리워한다. 편지 내용만으로는 18살의 나이 차이를 찾지 못하겠다. 편지는 줄곧 곧 만날 거다, 재판은 금방 끝나고 당신을 만나러 갈 것이다라는 희망으로 넘친다. 본회퍼는 감옥에서도 즐겁고 활기찼다고 동료 죄수들이 증거한다. 감옥에 갇혔지만 별 탈 없이 석방되어 마리아와 함께 결혼할 거라 믿었다. 편지에는 결혼식에 관한 자세한 계획도 나온다. 마리아는 결혼식에 쓸 물건을 보러 다녔고 본회퍼도 그러리라 기대했다.

편지를 주고받는 시간이 6개월을 지나면서 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마리아가 읽은 책을 말하면 본회퍼는 다른 책을 소개한다. 본회퍼는 읽고 있는 책에 대한 생각을 말하고 책을 보내달라고도 한다. 마리아는 본회퍼가 지은 책, 읽으라고 소개한 책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편지에서 본회퍼가 키르케고르의 공포와 전율’, ‘그리스도교의 훈련’, ‘죽음에 이르는 병을 읽으라고 하자(236) 마리아는 재치있게 답장을 보낸다. “이제부터 저는 무슨 일을 하기 전에 우선 수줍어하며 당신에게 물어보아야 하고, 결국 공포와 전율로 병들어 죽을 때까지 키르케고르를 읽어야 하겠군요.(248)”라고 말했다. 본회퍼의 고민이나 신학의 깊이는 마리아의 재치와 애교 앞에서 스르르 녹아내렸다.

편지를 주고 받은지 1년이 지나면서 마리아는 실망하고 힘들어한다. 금방 석방될 줄 알았던 본회퍼는 나오지 않고 주변 사람들도 본회퍼와의 관계에 의문을 제기했다. 19446월 이후에는 본회퍼의 편지만 남아있다. ‘내 사랑 마리아를 외치며 편지를 쓰고 또 썼다. 이때의 편지에는 본회퍼가 마리아를 어떻게 사랑하는지 더욱 잘 드러난다. 그리고 19441219주님의 선하신 권능에 싸여를 성탄 선물로 보내고 편지왕래가 끝난다. 히틀러 암살계획에 관한 중요한 서류가 발각되었고 편하게 편지를 주고받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본회퍼는 뛰어난 신학자, 영웅적인 행동, 제자도를 실천하는 신앙인이다. 또한 한 여인을 사랑하며 마음을 바친 남자다. 영웅을 기대하며 책을 읽다가 당황하기도 했지만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 남달랐던 사람이 한 여인을 사랑한 모습을 보여주어 더욱 좋았다.

 

사랑이란 사람이 손으로 잡을 수 있거나, 주고 싶은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에 맡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랑은 외부에서 와서, 오직 한 사람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로 가며, 그저 그 사람과 함께 머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없다면, 아무리 사랑에 빠져서 그 사람 가까이 가고 싶어도 멀리 서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나요?” - 마리아가 보낸 편지 중 일부(280)

 

'내가 읽은 책 > 기독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믿음은 행동이 증명한다.  (0) 2020.12.20
오스 기니스를 소개합니다.  (0) 2020.12.03
뜻밖의 회심  (0) 2020.09.21
멜란히톤과 그의 시대  (0) 2020.09.09
단 한 번의 여행  (0) 2020.09.09

간증집회 강사로 이만한 사람은 드물다. 극적이고 대단하다. 강력한 반전도 있다. 저자는 레즈비언이었다. 레즈비언 파트너와 살면서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트레스젠더) 권익을 위한 활동을 했다. 영문학 종신교수였고 프로이트, 마르크스, 다윈의 철학과 정치적인 세계관에 기반을 둔 19세기 문화와 문학을 가르쳤다. 특히 퀴어이론(정상적인 성 행위를 당연시하는 전제에 저항하는 이론)을 주로 연구했다. 교회에서 죄라고 부르는 음란한 행위가 정당하며, 죄라고 부르는 것이 오히려 편견이고 혐오스러운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예수라는 단어가 목구멍에 걸린 가시 같았다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회심하지 않은 상태에서 교회에 온다면 우리가 그녀를 목구멍에 걸린 가시로 볼 것이다. 음란의 화신이라며 악수도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녀는 회심했다. 예수님을 만났다. 목사와 결혼했다. 종신교수가 대학을 떠나 평범한 목사 아내로 살아가는 것도 대단한데 피부색이 다른 아이들을 입양해서 홈스쿨로 양육했다. 적의 심장부에 있던 사람이 아군으로 귀순한 경우와 같다. “예수님을 모를 때는 죄의 노예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은혜로우신 예수님이 저를 찾아오셔서 구원 받았습니다. 이젠 이전의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갑니다. 여러분, 간음하지 마세요. 음란하지 마세요……이런 식의 간증을 하면 대박나겠지만 아니다. ‘극적인 회심이 아니라 뜻밖의 회심이다. 사울이 한 방에 쓰러져서 바울이 된 것처럼 회심하지 않았다. 뭔가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우리의 간증이 크리스천들의 삶의 여정이라는 전체적인 지평을 드러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인가? 만약 내 간증이 “내가 주님을 만나기 전에 얼마나 끔찍한 죄인이었나”를 말하는 데 그친다면 그것은 의미가 없다.(마치 지금은 죄와 아무 상관없는 삶을 살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구원을 받은 후 지금 느끼는 안도의 감정이나 사람들이 내 간증을 듣고 흔히 보이는 반응을 전한다거나 내가 얼마나 훌륭한 선택을 했는지 스스로에게 공을 돌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머리말에서)

예기치 않은 회심

저자는 공공연한 레즈비언이었다.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생각하고, 합리적이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는 페미니즘 교수이다. 하나님, 성경, 기적……을 달나라 토끼처럼 생각한다. 지역신문에 PK(남성회복운동 단체)의 성차별적인 논리를 비판하는 글을 싣고 편지를 엄청나게 받는다. 상자 두 개를 준비해서 한쪽에는 증오의 편지를, 다른 쪽엔 공감의 편지를 담았다. 시러큐스 개혁장로교회 담임목사 켄 스미스가 보낸 편지도 받았다. 목사는 하나님의 임박한 진노를 외치지 않고 질문을 했다. “어떻게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되었나? 자신의 의견이 옳다는 걸 어떻게 검증할 수 있나?” 저자는 편지를 어느 통에 담아야 할지 몰라 책상 위에 두었다, 쓰레기통에 던졌다. 다시 꺼내 읽었다.

그의 질문은 내 호기심을 발동시켰다. (그의 질문은 언제나 그랬다.) (50쪽)

저자는 편지에 쓰인 대화를 나누고 싶으면 언제든 찾아오라는 말에 응해 캔을 만난다. 켄이 자신을 존중해 주었다(35)고 한다. 교회로 나오라고 하지도 않았고 간음에 대한 율법, 음욕이 불타는 것 같아 순리대로 쓰지 않고 역리대로 하는(1:26-27) 바울의 경고도 꺼내지 않았다. 대신 구속을 강의했다. 저자는 대부분의 목사들은 마치 신선한 피 냄새를 찾는 상어처럼 그 성경말씀(16:31)을 들려줄 사람, 특히 나 같은 사람을 찾아 헤매기 마련이다.(53)” 라고 생각했지만 캔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였다. 정죄하지 않고 존중하지만 할 말은 했다. 할 말은 하지만 존중했다고 해야 할까? 켄은 구약에서 십자가 사건이 어떻게 숨겨져 있는지 신약에서 어떻게 드러났는지 설명했다. 레즈비언인 저자를 받아들이지만 그런 상태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확고하게 말했다. 저자는 2년 동안 성경을 읽으며 켄과 그의 아내 플로이와 대화를 이어갔다. 켄과 플로이가 사람들을 먹이고 재워주고 도와주는 모습도 지켜봤다. 저자가 예수님께 점점 마음이 열려가는 동안 게이 공동체 친구들은 걱정하며 마음을 돌이키라고 했다.

오래도록 한국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 구원 받아야 하는 사람으로 나눴다. 이후에는 구원받은 의인, 구원받지 못한 죄인에 구도자가 더해졌다. 이 기준에 의하면 저자는 구원을 찾아가고 있는 구도자다.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저자를 어떻게 도와주어야 어리석은 생각(예수를 믿는 것)을 버리고 돌아올까 고민하는 레즈비언 파트너는 당연히 구원받지 못한 죄인이다. 그럼 목사이지만 게이로 살면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를 괴로워하는 사람은 어디에 속할까? 자기들 생각을 따르지 않는 사람을 모두 죄인 취급하는 종교인은 어디에 속할까? 책에는 더 많은 종류의 사람이 등장한다. 켄이 저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존중하는 태도로 대답을 들어준 것처럼, 이 책 역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기다린다.

저자는 합리성으로 무장했기에 질문과 대화로 하나님을 찾아갔다. 모든 사람에게 질문이라는 방식이 통하지는 않는다. 합리성보다 감정, 소속감, 기복주의가 뿌리 내린 우리나라에선 선포와 체험이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상대를 존중하며 질문하고 꾸준히 들어주는 태도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기독교를 답답하고 일방적이며 자기들만의 잔치에 빠진 사람들의 종교로 받아들이는 오늘날은 더욱 그러하다.

회심에도 과정이 있다.

19994월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았다고 적었다. 동성애 파트너와는 헤어졌고 다시 그리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나 동성애가 왜 죄인지는 몰랐다고 한다. 자만심이 죄라고 깨달아서 그것부터 시작했다. 소돔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동성애에 대한 응징보다는 자만이라는 걸 발견했다.(16:48-50, 11:23-24) 계속 성경을 묵상하면서 겉으로 드러난 행동(동성애)이 아닌 사고의 패턴에 죄가 뿌리를 내린다는 걸 깨닫는다.(78) “내 삶을 주님께 바치겠다는 결심은 단순히 철학적인 노선을 바꾸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 번에 끝날 수 있는 절차도 아니고 내 표면적인 편견들과 변하기 쉬운 충성됨을 다시 조정하는 일도 아니다. 회심은 내 삶을 조율하는 과정이 아니라 내 영혼과 인격을 샅샅이 조명하는 고되고도 치열한 과정이었다.(80)”

회심을 단번의 선택으로 받아들인 간증을 꽤 들었다. 이전에는 완전 죄인이었으나 지금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전도자가 되었다는 내용이 많았다. 단번의 회심은 멋져 보인다. 간증하기도 쉽다. 끙끙대며 몇 년씩 고민하다가 예수님 믿으면 회심의 순간을 정확하게 말하기 어렵다. 낱낱이 적어놓지 않는다면 고민한 과정을 전달하기도 어렵다. 구원파에선 이를 빌미로 구원 받은 정확한 일시를 물어온다. 사울이 바울이 된 것처럼 단번의 회심은 진짜 회심 같다. 오래도록 끙끙대며 하나님께 나아간 사람은 찜찜한 회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단번에 회심한 간증을 듣고 더 극적일수록 하나님 은혜가 크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회심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가 아니었고 어떤 상투적인 행동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침묵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
때까지 내가 들어봤던 간증들은 모두 에고와 자만이 가득한 것들이었다. 그리스도를 선택한 내가 정말 장하지 않나요?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한 내 결정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저는 내 삶을 주님께 바치기로 결단했어요. 아직 길을 발견하지 못한 저 이방인들보다 얼마나 훌륭한지 모르겠어요. 복음주의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이런 식의 생각들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들이다. 이런 식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고 만다. 나는 지독한 경험주의자이다. 나는 그리스도를 택하지 않았다. 아니, 그리스도를 선택하는 사람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택하실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멸망뿐이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부르시면 나는 응답을 해야 한다. 응답을 할 수밖에 없다. 그게 이야기의 전부이다.(165쪽)”

하나님의 선택은 단번에 이루어졌다. 우리는 이걸 단번에 깨달을 수도 있고 오래도록 깨달아 갈 수도 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하나님이 사울을 단번에 꺾으셔서 감사하다. 또한 레지비언 교수가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하나님께 돌아오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사실에 비하면 우리가 어떻게 회심의 과정을 거쳤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저자는 예수님을 믿습니까?” “” “당신은 구원받았습니다.” 이러고는 예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사는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과정을 거친다. 고민하고 돌아보고, 따져보고 끙끙대며 서서히 변해갔다. 그러면서 자신의 편견을 깨뜨리는 작업을 했다. 자기 주관성과 경험 위에 성경을 덧바르지 않고 성경이 말하는 바를 깨달을 때마다 돌이키고 또 돌이켰다. 레즈비언 교수의 간증집에 어울리지 않게(?) 성경말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많이 나온다. 교회에서 말하는 정답을 듣고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무얼 말씀하실까 고민하며 찾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라 절절하게 다가왔다. 무조건 믿으라는 말을 듣고 잘 믿어지지 않는 사람, 계속 튀어나오는 의심에 내가 믿음이 적은 건가?’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밑줄 그어가며 읽을 것이다. 이 고민은 정식 교인이 된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저자는 회심을 결단의 순간이 아니라 과정으로 겪어간다. 그러므로 의인, 죄인으로 양분하는 사람이 읽으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회심 이후의 삶도 과정이다.

저자는 2000년 정식 교인이 되기 위한 선서를 한다. 책에는 19998, 시러큐스 대학교 대학원 신입생 입학식 축하 강연 전문이 실려 있다. 스스로 현실적이고 무난한글이라 생각한 연설이지만 자신이 더 이상 레즈비언 공동체에 함께 하지 않는다는 선언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레즈비언 공동체의 비난은 예상했겠지만 이후의 삶 역시 순탄하지 않았다. ‘저는 죄를 떠났고 하나님은 제게 축복을 주셨습니다가 아니었다. 하나님을 만나는 과정에서 도움을 준 사람과 결혼을 약속하고 약혼했지만 결혼을 몇 주 앞두고 파혼했다. 늘 복음을 말하며 자신이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도록 도와준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교회 일을 하면서도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스스로 자신에게 속아 넘어가기 쉽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초자아는 우리의 의식 중에서도 타인들이나 단체들의 기대에 적극적으로 부응하고자 하는 부분이라고 한다. 즉 교회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보다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기 쉽다는 것이다.(113쪽)”

저자는 이미 마음이 하나님께 기울었다. 경험주의, 합리성, 패미니즘 시각, 포스트모더니즘 관점으로 해석하던 모습에서 떠났다. 세계관이 바뀌자 해석이 바뀌었다. 또한 저자에겐 삶과 기도로 에워싸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다. 정든 집과 대학을 떠나지만 하나님은 선한 사람들과 선한 공동체를 만나게 해주셨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은 뒤에 고민이 더 많아졌다. 이 고민이 <선한 사람들, 선한 공동체>라는 제목의 장에 나온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밑줄을 좍좍 그었다. 여기 50쪽 분량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가치가 있다.

성적인 존재인 내가 그리스도에게 응답을 하는(내 삶을 그리스도께 바치는) 것은 과거 이성애자였던 내게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존재로 바뀌는 것이다.(77쪽)

저자는 켄트와 결혼한다. 남성이 권위를 내세우는 낌새라도 보이면 덤벼들던 페미니즘 교수가 하나님 안에서 남자의 권위를 인정하며 가정을 이룬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정도가 아니라 인간 창조의 과정이 결혼이라는 제도가 만들어졌을 때 비로소 완성되었다(197)고 한다. 성경이 말하는 결혼과 부부의 관계가 무엇을 말하는지 밝힌다. 그리스도가 중심에 계시지 않다면 일어날 수 없는 변화이다. 개척교회로, 캠퍼스 사역을 하면서도 고민한다.

4장에서 갑자기 입양 이야기가 나온다. 피부색이 다른 아이들을 입양해서 홈스쿨로 키워간다. 고민은 사라지고 아이들을 어떻게 입양했는지 들려준다. 입양과 홈스쿨 이야기를 하면서 저자는 부모로서 아이를 기르는 일이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처럼 돌보는 게 무엇인지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결혼과 입양 이야기를 허탈하게 읽었다. 이것만으로도 강력한 간증거리지만 저자의 고민이 어떻게 드러나고 해결되는지 더 듣고 싶었다. 저자의 생각이 바뀌는 과정을 읽으며 속이 다 시원했다. 회심을 사건이 아니라 과정이 있는 이야기로 읽어가는 게 너무 좋아서이다.

뜻밖의 회심이 계속되면 좋겠다.

저자가 힘들어하며 고민해서 고맙다. 저자의 고민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내 고민이 얼마쯤은 해결됐다. ‘이 사람은 정말 고생했는데 내 고민은 사치구나!’ 라는 관점은 결코 아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하게 여겨온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려면 다른 질문과 고민이 필요하다는 걸 알려주었다. ‘하나님 모르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이상하게 보일까?’ 우리가 그들에게 다가갈 때 복음의 핵심을 놓치지 않으면서 그들이 귀 기울일만한 질문을 들고 가야 한다. 스스로 고민하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질문 말이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고 떠밀면 대화를 시작조차 하지 않을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 한국 교회엔 켄목사가 필요하다. 질문하고 고민을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준비 되지 않은 사람에게 당장 결단하세요라고 강요하지 말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질문은 켄목사가 했지만 저자는 선한 사람들과 선한 공동체로부터 대답을 들었다. <선한 사람들, 선한 공동체>가 많아져야 한다. 한국 교회가 켄의 태도를 배운다면 뜻밖의 회심은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뜻밖의 회심>은 혼란과 좌절, 갈팡질팡하는 과정이 담겨있어 귀하다. 저자는 이전 세계관으로 질문하고 생각했고, 하나님은 그 세계관을 깨뜨리고 하나님 생각을 알려줄 사람을 계속 보내셨다. 바리새인의 공동체가 아니라 고민하는 사람을 돕는 공동체가 많아진다면 뜻밖의 회심은 우리나라에서도 계속될 것이다.

 

 

'내가 읽은 책 > 기독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스 기니스를 소개합니다.  (0) 2020.12.03
옥중연서 (본 회퍼 책 소개)  (0) 2020.10.05
멜란히톤과 그의 시대  (0) 2020.09.09
단 한 번의 여행  (0) 2020.09.09
기이하고도 거룩한 은혜  (0) 2020.03.12

산둥수용소, 랭던 길키

수상한 아이가 전학 왔다, 제니 롭슨

1940년대,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뒤에 중국에 있는 백인들을 산둥지방 위현수용소에 보냈다. 일본의 포로가 되었지만 백인들은 우리 선조들과는 다른 대접을 받았다. 그들은 죽거나 고문당하거나 위안부로 보내지지 않았다. 수용소 안에 갇혀 살았지만 생명의 위협은 당하지 않았다. 물론 불편하게 지냈다. 기상시간, 취침시간이 있고 개인공간은 사라졌다. 좁은 방에 여럿이 함께 지내야 했다. 평소에 그들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던 물건 대부분을 쓰지 못했다. 좌변기는 당연히 없고 먹을 것도 부족했다.

술집 주인과 회장, 선교사와 천주교 신부, 백인과 결혼한 타국 여성이 같은 공간에서 살아야 했다.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이 점호를 받고, 똑같이 지저분한 화장실을 썼다. 대기업 회장이 결코 겪지 않을 문제를 마약중독자, 노동자와 함께 해결해야 했다. 화를 돋우는 일이 계속 일어났다. 그런데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저마다 달랐다. 누구를 화나게 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겐 아무 일도 아니었다. 자라온 환경, 개인의 성품과 기질, 사회적 지위, 지금까지 누리던 것에 따라 화를 내는 순간이 달랐다.

화장실 청소를 대하는 두 가지 태도

수용소에서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이 몇 가지 있었다. 사람들의 개인 영역을 정해주는 숙소업무는 충돌하는 이기심을 조정하는 일이어서 힘들었다. 개인 공간을 더 차지하려는 마음은 남성과 여성을 가리지 않았다. 음식, 난방도 사람들이 서로 싸우게 만들었다. 남성과 여성이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는 일도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화장실이었다. 남자 화장실 청소는 미국인 선교사와 영국인 은행가가 맡았다. 그들은 화장실에 들어오는 손님과 웃고 떠들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남자들에겐 화장실 청소가 다른 일과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여성은 달랐다. 화장실 청소를 계속 하려는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며칠씩 돌아가며 청소했다. 그런데도 자기 차례가 되면 화장실을 청소한다는 티를 냈다. “이번 주에 제가 무슨 일을 맡았는지 아세요?” 라는 식으로 크게 희생한다는 표시를 했다. 특히 영국 사업가 아내들과 두 명의 러시아 여성이 보여주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영국 사업가 부인들은 화장실 청소를 즐겁게 했다. 화장실 청소가 귀부인으로 살아온 자신들에게 지장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들은 화장실 청소를 공공 봉사로 생각했다. 화장실 청소를 피하는 것이 오히려 명예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러시아 여성들은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화장실 청소를 피했다. 러시아 여성들에게 화장실 청소는 과거 자신들의 삶을 나타내는 일이었다. 부자와 결혼해서 영국 사업가 부인들보다 지위가 높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은 여전히 과거에 매여 있었다. 화장실 청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로 자신들을 돌려보냈다. 자신들이 화장실 청소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화가 났다. 러시아 여성에게는 귀부인으로 살아온 영국 여성들처럼 공공 봉사로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백인 남성의 아내가 되기 전에 했던 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마음이 너무 컸다.

영국 여성과 러시아 여성은 화장실 청소를 다르게 판단했다. 같은 일이지만 영국 여성은 봉사의 기회로, 러시아 여성은 아랫사람이나 하는 지저분한 일로 보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청소부를 하찮게 여기고 판사는 괜찮게 여긴다. 청소부를,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직업이 아니라 못 배운 사람이 하는 하찮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고귀한(noble) 가치와는 거리가 멀다는 증거이다. 사람이 하는 일을 사람의 가치와 동일하게 여기는 태도는 차별을 불러온다. 한 사람의 진짜 가치를 올바로 보기 전에 선입견을 갖고 회피하게 만든다. 차이를 차별로 보는 태도가 쌓이면 분노가 끓어오른다.

화를 내는 까닭

강원도 영월에 있는 초등학교에 독서캠프를 하러 갔다. 첫 날 3시간 동안 수상한 아이가 전학 왔다의 내용을 알아보았다. 토미는 전학 오던 날부터 방한모를 쓰고 얼굴을 가렸다. 눈만 내놓고, 밥 먹을 때도 코 위로는 보여주지 않았다. 화상이나 흉터가 있을 거라는 추측부터 외계인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까지 떠돌았다. 그래도 토미는 방한모를 벗지 않았다. 일곱 번이나 전학을 다닌 토미는 결코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려 했다. 그럴수록 반 친구들은 더욱 궁금해했다.

아이들에게 물었다.

토미가 얼굴을 보여주기 싫어 방한모를 뒤집어쓰고 다닌다. 다음 4가지 중에서 어디까지 해도 괜찮을까?”
1) 방한모를 왜 쓰고 다니는지 묻는다.
2)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지 묻는다.
3) 얼굴을 보려고 시도한다. , 강제로 벗기지는 않는다.
4) 강제로 방한모를 벗기고 얼굴을 본다.

<주장-왜냐하면-예를 들어-다시 말해>로 한 문장씩 써서 발표하라고 했다. “(주장)방한모를 왜 쓰고 다니는지 묻는 건 괜찮다. (왜냐하면) 비밀이나 약점을 찾아내는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친구가 모자를 쓰고 올 때 왜 모자를 썼는지 묻는 건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방한모를 벗기려는 게 아니라 그저 물어보는 것이므로 상처를 받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물어보는 건 괜찮다고 생각한다.

한 모둠이 의견을 발표할 때마다 다른 모둠 아이들에게 질문하라고 했다. 다섯 모둠의 발표와 반대 질문이 비슷했다. 방한모를 쓰는 까닭과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지 묻는 질문에 토미가 대답한다면, 토미가 질문에 상처를 받지 않은 셈이다. 비록 싫다고 거절하는 대답일지라도 자신을 감추는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면, 입 다물고 가만히 있다면 상처 받은 표시일 수 있다.

사람들이 상처 받았을 때 어떤 특징을 보이는지 발표하라고 했다. 아이들 의견을 정리하면 두 가지이다. 조용히 혼자 지낸다, 시무룩한 표정을 짓거나 슬픈 표정을 한다, 화장실이나 자기 방에 가서 운다 등의 소극적인 표현을 보인다. 또한 욕한다, 다른 곳에 화풀이한다, 뒷담화를 한다, 대놓고 말한다 등의 적극적인 표현도 말한다. 상처를 받으면 침울해지며 혼자 조용히 지내기도 하지만 소리를 지르고 욕하며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억울할 때, 부당한 대접을 받을 때, 공격당할 때, 공평하지 않을 때…… 인간은 분노한다. 그 분노를 해결하지 못하면 엉뚱한 곳에서 분노를 표출한다.

알아보는 눈

상처 받은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 알아본 뒤에 아이들에게 물었다.

대상도서에서 가장 상처 받은 인물은 누구일까?”

아이들이 토미, 응포, 체리스, 벤터 선생님을 꼽는다. 토미는 얼굴을 가리고, 응포는 말을 하지 않으니 상처 받은 게 맞다. 그러나 아이들이 체리스를 상처 받은 아이로 생각해서 놀랐다. 체리스는 똑똑하고 아는 게 많다. 친구가 없기 때문이라는데 나도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다. 벤터 선생님은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기 때문에 무시당한다고 생각할 거라 한다.

러시아 여성들이 화장실 청소를 하지 않으려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러시아 여성들을 비난하면 태도를 바꿀까? 러시아 여성은 부유하다. 체리스는 공부를 잘한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가르친다. 그런데도 그들은 보기와 달리 상처가 있다. 자신들의 아픔과 약점을 드러내기 싫어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행동을 바꾸라고 강요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강제하는 건 오히려 분노만 일으킬 뿐이다. 의무, 윤리, 법규, 도덕으로 러시아 여성이 화장실을 청소하게 만들지 못한다. 토미의 방한모를 강제로 벗기면 친구가 되지 못한다.

친구들이 토미의 얼굴을 보려고 토미를 힘들게 했지만 토미가 5학년들에게 공격당할 때 지켜준다. 그때 배웠는지 모르지만, 친구들은 토미가 자연스럽게 방한모를 벗어버리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말을 하지 않고 창문 밖만 바라보기 때문에 우주 미아라는 별명이 생긴 응포가 말을 한다.

우리나라를 분노 사회라 한다. 화장실 청소하는 분들이 떳떳하게 얼굴 내놓고 다니지 못하는 사회 인식이 분노 사회를 만드는데 한 몫 했을 것이다. 상대의 아픔과 상처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뜻을 강요하는 태도가 계속되는 한 여전히 분노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분노사회에서 벗어나는지 모르겠다. 시골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눈에는, 다른 사람의 상처를 바라보자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내가 읽은 책 > 일반독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배움의 도  (0) 2020.11.08
강아지똥별 (권정생)  (0) 2020.10.05
숨겨진 이들의 역사  (0) 2020.06.28
허구의 삶, 이금이  (0) 2020.02.15
농부의 인문학  (0) 2020.01.27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에 반박문을 붙인지 500년이 지났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분기점, 평신도에게 말씀을 돌려준 전환점, 개신교의 출발점이다. 개신교회에서는 10월 마지막 주일을 종교개혁기념주일로 지킨다. 그러나 루터는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다. 반박문을 붙이면서 가톨릭이 개혁되기 원했지만 가톨릭을 떠난 다른 걸 생각하지는 않았다. 당시에 통용되던 방식으로 의견을 제시한 뒤에, 하나님께 등 떠밀려 깃발을 들었다고나 할까!

루터가 깃발 들고 앞서자 사람들이 줄 맞춰 함께 행진해서 종교개혁이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종교개혁은 교황권과 황제권의 대립, 유럽 각 나라의 상황, 지방 영주(제후) 권한, 인쇄술,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확장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교황과 지지세력이 오스만투르크 제국과 맞서는데 힘을 낭비하지 않았다면 루터와 종교개혁가들은 초기에 뿌리 뽑혔을 것이다. 영주들의 권한이 교황의 명령을 거부할 정도로 강해지지 않았다면 선제후(황제 선거권을 가진 제후)는 루터를 보호하지 못했을 것이다. 드러나지 않은 역사의 흐름과 이야기가 종교개혁을 떠받치고 있다.

 

누구를 기억하는가?

종교개혁 하면 루터와 칼뱅을 생각한다. 둘은 종교개혁의 영웅이다. 사람이 기억하는 영웅은 멋지고 장엄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보통 사람이라면 포기할 일을 해낸다. 대단한 능력, 탁월한 언변과 지도력, 굳센 의지와 끈기로 세상을 바꾼 사람을 기억한다. 강력하게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기억에 남지만 조용히 뒷정리하는 사람은 잊혀진다. 멜란히톤이 그런 사람이다.

루터는 종교개혁의 선봉에 섰다. 칼뱅은 극단적인 모습까지 보이며 개혁을 이끌었다. 멜란히톤은 중도노선을 걸었다. 당시에 백성들에게 존경 받는 중도주의자가 있었다. 천주교를 개혁하기 위해 노력한 에라스무스는 극단적인 방법을 쓰지 않았다. 에라스무스는 온건하게 개혁하기 원한 인격자이다. 온건한 개혁은 과연 가능할까? 교황이 협력하면 가능하겠지만 개혁 대상인 기득권층은 온건한 요구를 듣지 않는다. 점잖게 말할 때 듣는 사람이라면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는다. 교황권 아래에서 권력을 누리며 재물을 긁어모으던 사람들을 이기려면 과격한 방법이 필요했다. 그러나 과격한 방법은 자체 내에 모순을 갖고 있다. 폭발력이 있으나 정해진 범위를 벗어나 잘못을 일으킨 가능성도 많다. 루터에게 멜란히톤이 없었다면 너무 멀리 가버려 개혁되지 못하거나 방향이 바뀌었을 것이다.

 

화해주의자 멜란히톤

이 책은 멜란히톤을 중심으로 종교개혁 시기에 일어난 일을 말한다. 40개의 짧은 글을 시대순으로 정리했다. 처음 글은 멜란히톤? 그게 뭐죠?’이고 마지막 글은 멜란히톤 깊이 읽기. 멜란히톤이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지만 읽을 가치가 있다고 전한다.

멜란히톤은 일곱 살 때 고향이 적군에게 포위 당한 일을 겪었다. 아버지는 전쟁 중에 오염된 물을 마시고 투병하다가 죽었다. 이런 경험이 멜란히톤을 화해주의자로 만들었다. 인문주의자들과의 만남도 영향을 주었다. 다투는 무리들 사이에서 중재와 화해를 전했다. 멜란히톤을 만난 수녀는 모든 개신교인들이 멜란히톤 같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멜란히톤은 협상 상대, 조언자, 교사와 교수로 뛰어나서 개신교도뿐만 아니라 가톨릭 측으로부터 전향 제의를 여러 번 받았다. 가톨릭 안에서의 개혁을 원하는 구교 진영 개혁가들은 멜란히톤이 자신들 편이 되면 급진적 종교개혁을 저지하여 교회 내부의 개혁이 지지를 받으리라 기대했다.(100) 루터 곁에는 화해주의자 멜란히톤이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루터는 감당하지 못할 일을 만나 갑자기 역사에서 사라졌을 지도 모른다. 멜란히톤은 자신이 루터에게 모욕을 당한 노예 신분(25)’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버텨냈다. 그에겐 개혁된 세상을 만들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언어학자, 신학자, 교사 ……

멜란히톤은 루터에게 그리스어 신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라고 요청했다. 루터보다 그리스어 실력이 좋아서 번역할 때도 참여했다. 루터 성경은 사실 루터-멜란히톤성경이다.(31) 루터보다 먼저 교리문답서를 만들었고 개신교 격언집과 개신교 신학 교과서도 최초로 저술했다.(32) 루터보다 저술을 많이 했으며 교수이자 문헌학자인 친구 카메라리우스에게 보낸 편지는 900통 이상이나 남아있다, 교육에 영향을 미쳐 독일의 스승으로 불린다. 독일을 넘어 유럽 대부분 지역의 교회사와 교육사에 관여했다. 저자는 멜란히톤이 16세기에 이미 미래 교회를 구현한 사람이라고 한다.

멜란히톤은 언어에 능했다. 또한 신학과 교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개신교 최초의 교과서인 <신학총론>을 펴냈는데 오직 은혜로 죄인을 의롭게 한다는 말씀이 핵심내용이다. ‘오직 믿음으로의롭게 된다고 루터가 말한 내용을 멜란히톤은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가톨릭과 루터파, 칼뱅파가 결론 없는 싸움을 계속한 뒤에 결국 서로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1555년에 이들은 아우구스부르크 종교 평화회의에서 하나의 원칙적인 합의를 이루었는데 ~ <2천년 동안의 정신, 폴 존슨, 살림, 393>”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톨릭이 주장하는 전통이 아니라 성경 말씀에 있다고 공개적으로 공표한 문서이다. 멜란히톤이 부드럽게 적었지만 가톨릭의 반대를 받았고, 1555년 아우구스부르크 화의를 작성하여 공표한다. 신성로마제국에서 개신교를 인정하는 문서로 불린다. 이 문서 역시 멜란히톤이 정리했다. 그러나 1530625,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이 황제와 제국 의원들 앞에서 낭독될 때 멜란히톤은 너무나 지쳐 숙소에 앉아 울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 가톨릭, 루터파, 칼뱅파 외에도 다양한 주장이 넘쳐났다. 가톨릭, 루터파, 칼뱅파 내부에서도 여러 목소리가 자기 소리를 내고 있었다. 개신교 내에서도 가톨릭을 대하는 태도, 말씀, 성찬, 세례, 자유의지, 성자 숭배, 예배 의식 등에 대한 반응이 저마다 달랐다. 루터 교회와 개혁 교회 사이의 성찬 논쟁은 1973년이 되어서야 로이엔베르크 합의로 중재가 되었다. 이 중재는 멜란히톤이 빵과 함께라는 표현으로 제시한 내용이었다. 저자는 이를 두고 멜란히톤이 프로테스탄트 내부의 기독교 통합 운동의 아버지가 되었다고 표현했다.

멜란히톤은 교사를 칭찬했고 자신도 훌륭한 교사였다. 교육이란 당대 사회에서 떠난 상아탑을 이루면 안 된다고 했으며 자신이 직접 모범을 보였다. 대학을 개혁했으며 사급 인문학 학교(고등학교)를 만들었다. 신학 교과서 <신학총론>을 쓰고 계속 개정했다. 루터는 불을 붙였고 멜란히톤은 불이 계속 타오르도록 심지를 조절하고 연료를 채웠다.

독일 브레텐, 멜란히톤(독일 발음 멜랑크톤) 생가

평신도 멜란히톤

멜란히톤은 사제도 목사도 아니다. 그리스어를 비롯한 여러 언어에 능통해서 성경을 번역하였지만 평신도이다. 1521929, 멜란히톤은 소모임에서 몇몇 대학생과 함께 빵과 포도주로 성찬식을 치렀다. 평신도 제사장직을 수행한 셈이다. 종교개혁가의 후예로 살아가는 한국 개신교회 평신도가 성찬식을 행한다면 어떤 반응이 일어날까? 멜란히톤은 그보다 더한 반대를 받았겠지만 만인제사장직을 직접 수행했다. 비텐베르크성교회 제단 왼쪽에 멜란히톤이 아이에게 세례를 주는 장면을 루카스 크라나흐가 그려놓았다. 사제도 목사도 아닌 멜란히톤이 세례를 주는 모습은 평신도 종교개혁 신학자인 멜란히톤을 잘 나타내고 있다.

멜란히톤에게도 부족한 점이 있다. 유대인에 대해서는 옹호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았지만 투르크인은 적으로 규정하고 싸우라고 했다. 헤센 방백 필리프의 중혼을 허락했고, 곤경에 처하자 개신교에 정치적도덕적으로 손실을 끼쳤다고 생각하고는 감당할 수 없어 병에 걸리고 말았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정도였다. 잘못 결정하기도 하고, 지치고 낙망하여 울었다. 그러나 줄곧 강력한 다툼의 자리에서 화해를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멜란히톤은 정이 가는 평신도이다. 기억하는 사람이 적어서 안타깝다. 앞장서서 이끌어간 지도자가 아니라서 외면하지만 멜란히톤이 없었다면 종교개혁은 더 거칠고 답답하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 책은 멜란히톤과 그의 시대를 말한다. 종교개혁 시대를 모르는 평신도가 읽기에는 조금 힘들다. 그러나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막아선 세력에 맞서 분투한 평신도 멜란히톤을 만나면 우리가 대항해야(프로테스트) 하는 장벽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막힌 담이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내가 읽은 책 > 기독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옥중연서 (본 회퍼 책 소개)  (0) 2020.10.05
뜻밖의 회심  (0) 2020.09.21
단 한 번의 여행  (0) 2020.09.09
기이하고도 거룩한 은혜  (0) 2020.03.12
성서를 읽다, 박상익  (0) 2020.01.26

사람은 인격이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관계가 틀어지면 힘들어한다. 잠깐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힘들게 하면 재수 없다고 내뱉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날마다 봐야 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해석을 해야 한다. 오래도록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이 가족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살을 파고드는 아픔을 견디며 진주로 만들고 싶어도 너무 아프다. 가족이라 더 아프다. 곁에서 봐도 힘들고 멀리 떠나도 괴롭다. 도저히 해석하지 못할 상황이라면 하나님께 해석을 들으려 한다. “왜 이러시느냐고……

아버지와 엄마

저자는 엄마의 모습에서 예수님을 가장 많이 느낀다.(268)”고 말한다. 엄마는 사랑, 희생, 따뜻함을 나타낸다.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있으나 마나 한 느낌이 많다. ‘끔찍한 괴물, 차라리 없어지면 좋을 사람일 때도 있다. 잊고 돌아서면 그만인 남남이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든 해석하려 한다. 조금 떨어져서 보면 이해한다. “힘들고 어렵게 살아서 그럴 거야!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가까이 대하면 힘들고 어렵게 산 게 무슨 대수야? 왜 나를 힘들게 하는데……한다.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가 비슷한 상황에서 살았다면 갈등이 적을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기 쉬울 테니까. 그러나 부모가 살아온 시대와 자녀가 사는 시대는 다르다. 부모세대는 가난을 몸으로 겪어냈다. 사랑을 표현하는 세대도 아니었다. 밥만 먹여줘도 좋다고 생각했다. 자녀세대는 밥이 아니라 이해와 존중을 원한다. 말로 해도 이해하는데 왜 소리 지르고 때리는지 몰라 답답해한다. 주려는 것과 받으려는 것이 다르니 다툼이 생긴다.

대화로 다툼을 해결하면 좋겠지만 아버지는 대화를 어려워한다. 가난을 몸으로 부딪쳐 이겨내며 자식을 위해 희생했는데 머리 컸다고 또박또박 말대꾸 한다고 받아들인다. 집안의 기둥에서 점점 뒷방어른으로 바뀌어 가면서 화를 낸다. 자책하다가 자녀에게 폭발한다. 자기를 무시한다고 분노한다. 세파를 견디며 묻어둔 분노를 자녀에게 쏟아버린다. 소리치고 윽박지르고 때리고 집 밖으로 쫓아낸다. 이해하려고 시작한 대화는 분노와 좌절로 끝나기 일쑤다. “하나님, 왜 이러세요?”

 

무작정 떠나다.

인생은 하나님 안에서 나를 찾아 떠나는 단 한 번의 여행이다.” 표지 귀퉁이에 적힌 말이다. 자전거 타고 세계를 돌거나 히말라야 구석진 곳을 여행하고 쓴 책 같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여행기 같기도 하지만 저자는 다른 여행을 한다. 23살 아가씨가 아버지를 피해 옷장 안에 숨었다가 들켜 두들겨 맞고 한밤중에 맨발로 쫓겨나서 시작한 여행이다. 무조건 한국을 떠나려고 비자 없이 갈 수 있는 나라 찾다가 태국에 간다. 아는 사람도, 잘 곳도 없으면서 아버지 싫다고 비행기에 오른다.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가난하고 무더운 태국에 덜컥 가서 어쩌자는 건지……

머물 곳도, 아는 사람도 없다는 말에 여행사 직원이 전화번호를 하나 준다. 비행기를 처음 타는 지라 늦게 가서 놓치고 태국에서는 전화도 안 된다. 우연히 만난 한국 사람이 저자가 가진 번호를 안다고 한다. 그렇게 찾아간 곳은 태국 우돈타니 선교사 집이다. 바쁜 여름 동안 선교사 자녀 둘을 돌봐줄 보모 겸 한국어 선생으로 지낸다. ‘우연일까? 극적인 안내원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으로 병이 낫거나 실패에서 오뚝이처럼 일어선 이야기가 아니다. 가정폭력에 시달린 아가씨가 태국으로 도망가서 버티며 지낸 이야기다. 하나님이 안내원을 보내지 않았다면 비극으로 끝났을 수도 있다. 하나님 안에서 나를 찾는 단 한 번의 여행이 맞다. ‘하나님의 놀라운 우연을 보여주기 위한 책이 아니다. 상처와 위로가 부딪치며 생각에 생각을 낳는 이야기다.

 

여행과 사람

가슴에 암덩어리가 있는 사람도 피부에 가시가 박히면 가시와 씨름하느라 암을 잊는다. 가시가 빠지면 암이 느껴진다. 저자는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는 상처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이제 더 이상 가시에 찔리지 않아도 되는 곳에 오자 암덩어리가 느껴진다. 고통스러운 지난날이 자꾸만 생각난다. 힘들어하는 엄마, 어색해진 동생이 더 큰 가시였다는 게 느껴진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단번에 막힌 담이 뚫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낫지 않는다.

여행은 한 번에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여행은 문제에서 떠나 생각하게 한다. 저자도 여행하면서 계속 아픈 상처를 떠올린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놓치고는 태어나던 때를 생각한다. 아이 지우고 아빠와 헤어지라며 병원까지 데려간 고모를 피해 도망간 엄마가 남해 어느 시골에서 방바닥을 긁으며 수 시간의 산고를 견디고 자기를 낳았다. 홍콩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미친 사람처럼 몸부림치며 운다. 태국에서 달을 보며 아빠와 가족 여행한 일을 기억한다. 행복했던 날 지나고 아빠가 사업에 망하고 쫓기고 도망하고…… 20살 되면 자살하기로 결심하고 수면제를 모았는데, 예수가 죽음을 이겼다는 말이 좋아 열심히 교회에 다녔는데, 다시 절망하고…… 아파하고 떠올리고 쏟아내고 무작정 걷고 사람을 만난다.

이보다 더한 아픔을 겪은 사람도 있다. 이만큼은 아니지만 버티고 견뎌내며 살지 않은 사람 없다. 그러나 낯선 타국,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거나 시험 받는 공간에서 완전히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저자는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과정을 기록한다. 내면의 변화 과정을 기록한 글을 만나서 반갑다.

하나님은 사람을 보내셨다. 기가 막힌 때에 만난 안내원 외에도 저자를 일으켜 세운 사람들이다. 상처와 아픔을 갖고 있으면서도 맑은 웃음을 보이며 사는 아이들! 베트남전에서 미국을 도왔다가 라오스에서 쫓겨나 태국에 난민으로 쫓겨 온 몽족 난민을 만난다. 오갈 데 없는 그들은 돌아가면 죽는 곳으로 다시 쫓겨 간다. 태국이 그들을 추방하기 때문이다. 방콕의 유명한 매춘거리에서 만난 16살 까니카! 에이즈 고아원에서 죽어가는 아이, 기차에서 만난 사람들…… 견뎌내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 밝은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일어선다. 과거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일어나 현실을 다시 직면할 용기를 얻는다. 딱 한 명을 고르라면 여행사 직원을 최고의 안내원으로 뽑겠다. 무작정 떠나는 상처 받은 영혼에게 선교사 전화번호를 줬다. 다시 돌아올 줄 알았는지 비행기 티켓도 왕복으로 끊어줬다. 저자가 돌아올 때를 딱 맞춘 6개월 오픈 티켓!

 

변화

저자는 지금 태국에서 산다. 우돈타니에 선교활동 하러 온 정환(저자의 이름처럼 가명일 것이다.)과 결혼하고 태국에 왔다. 남편은 번역하고, 저자는 인터넷 소설을 쓰고 있다. 정환과 결혼하고 아빠 곁을 도망쳐 나온 건 아니다. 한 대 칠 것 같은 분위기 견디며 싸우고 싸웠다. 아버지가 윽박지르고 소리 지르면 예전처럼 옷장에 숨지 않고 맞섰다. 또 때리면 그 길로 나가버릴 거라고도 했다. 자기 생각만 하며 안으로 가라앉을 때는 아빠에게 맞서지 않았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간 상처는 곪아 자신을 죽이고 상대에게도 악취를 풍겼다. 아버지를 무서워하지 않고 생각을 말하면서 오히려 아버지를 더 이해하게 되었다. 의견이 달라 싸우지만 미워하진 않는다. 다시는 아버지 만나지 않으면서 나는 용서했다. 안 보니 편하다하거나 나는 용서 받았다. 당신도 용서 받아라.’라고 해도 사실은 용서하지 못해서 끙끙대는 거다. 영화 밀양에서 아이를 죽이고도 태연히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셨다고 말하는 용서는 용서가 아니다. 혼자 적을 쓰러뜨리거나 적 앞에 엎드리는 용서는 용서가 아니다. 용서는 십자가를 대가로 치러진 선물이다.

이 책은 <복음과 상황>에 연재되었다. 잡지 받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읽었다. 책으로 읽을 때보다 좋았다. 다음에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 어떤 생각을 할지 두근거리며 한 달을 기다렸다. 책 한 권으로 단숨에 읽으니 긴장감이 덜하다. 저자가 오래도록 견디며 진주로 만든 고민을 단숨에 읽어서 그런가 보다. 영화 한 편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휘리릭 본 것 같다. 이 책은 천천히 읽어야 한다. 소설 읽듯 읽지 말고 나라면 어땠을까?’ ‘나도 이런 생각 하는데……’ ‘, 이랬구나!’ 하면서 읽어야 한다.

용서를 고민하는 분에게 추천한다.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는 존재에게 상처 받고 배신당하고 관계가 깨져 몸부림치는 분에게 추천한다. 맞서 싸우지 못해서 속으로 끙끙대며 괴로워하는 문제를 가진 분에게 추천한다.

글은 억울한 사람이 쓰는 거다. 무서워서 말할 수 없었던 사람, 두려워서 숨어야만 했던 사람, 감정이 체한 사람, 가슴이 곪아 고름을 품고도 뽑아내지 못했던 사람이 기어이 쓴다!’”(202-203)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건, 그가 한 일을 잊어주거나 덮어주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건 일그러졌던 관계를 다시 바로 세우는 과정이다. 포기하지 않고, 뒤돌아서지 않고, 사랑을 향해 같이 걸어가는 일이다.

아버지와 씨름한 만큼 나도 변했다. 우리 사이에 억눌린 분노가 서로를 괴물로 만들었다면, 상처를 이야기하고, 아프고 화난 만큼 울어버리고, 다시 사랑하고 싶다고 말한 순간들이 서로의 가슴 안에 박혔던 독기와 가시를 하나씩 빼주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버지도 나도 고집스럽고 한심한 인간들이다.” (249)

 

'내가 읽은 책 > 기독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옥중연서 (본 회퍼 책 소개)  (0) 2020.10.05
뜻밖의 회심  (0) 2020.09.21
멜란히톤과 그의 시대  (0) 2020.09.09
기이하고도 거룩한 은혜  (0) 2020.03.12
성서를 읽다, 박상익  (0) 2020.01.26

6월에 읽은 책 쪽 3544쪽 (2020년 24113쪽)

92. 강승숙 선생님의 행복한 온작품읽기 (강승숙, 345쪽) / 교육
따뜻하다. 책을 읽은 마음이 따뜻하다. 선생님이 한 수업이 따뜻하다. 내가 읽은 <한 학기 한 권 읽기> 책 중에 최고다. 선생님이 수업한 책으로, 선생님 소개한 방법으로 나도 수업하고 싶다. 정말 좋은 책이 나왔다.

91.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 (래리 크랩, 306쪽) / 기독교
역시 래리 크랩이다. 프레드릭 비크너 책과 더불어 올해 최고의 기독교 책으로 꼽겠다. 요나에 대한 묵상이 너무 좋다. 하박국의 외침을 방임하시는 하나님으로 이야기한다. 일이 잘 될 거라느니, 기도하면 낫는다느니 하는 이야기와는 차원이 다른 깊이다. 깊고 깊고 깊다. 방학 동안 다시 읽고 글을 써야겠다.
추강력 슈퍼울트라 파워로 추천한다.

90. 여우의 전화박스 (도다 가즈요, 87쪽) / 3학년 이상
아빠 여우는 병으로 죽고, 엄마가 아기 여우를 기른다. 아기 여우도 죽는다. 이런! 엄마만 남아서 무얼 하지? 그런데 한 아이가 외딴 전화박스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아빠는 죽은 것 같고, 엄마는 병원에 있다. 아이가 엄마를 그리워하며 전화한다. 여우는 아기 여우가 전화하는 느낌을 받는다. 가족을 잃은 상처로 소망을 잃어가는 사람에게 빛이 되어주는 책이다.
난 아픔과 상처를 가진 아이에게 관심이 많다. 아이가 글을 쓰면서 상처를 풀기를 바란다. 글이 전화박스 같은 역할을 한다. <글쓰기 동아리>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싶다.

89. 아모스와 보리스 (윌리엄 스타이그, 32쪽) / 그림책
따뜻한 그림책.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싶은 그림책이다.

88. 어머니 (막심 고리끼, 621쪽) / 소설
가난한 살림살이에 때리는 남편, 한 여인이 일상에 짓눌려 힘겹게 살아간다. 배우지 못하고 상처받아 주눅 든 어머니는 아들만 바라본다. 아들이 자기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기 바란다. 이웃의 고통에 슬퍼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에는 아들뿐이다. 그러나 아들은 어머니를 힘들게 만든 사회 구조를 생각한다. 짜르 시대, 압박당하는 농민과 노동자를 일으켜 세우기 원한다. 토론하고, 불법 인쇄물을 만들고, 노동자와 농민을 찾아다니며 가르친다.
참 좋은 책을 만났다. 어머니가 변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도대체 결론을 어떻게 맺을까 계속 궁금해하며 읽었는데, 역시 작가의 이름값에 걸맞은 결론이다.
→ 모든 사람들은 가까이에 있는 것을 사랑하는 법입니다. 하지만 마음이 넓은 사람에게는 먼 것도 가까워지지요. 어머닌 많은 걸 사랑하실 수 있어요. 어머니의 모성애는 위대한 것이니… (152쪽)
→ 삶이란 건 달리는 말과 달라서 채찍질할 수 없는 거야! (188쪽)
→ 원래 가슴 안에 불꽃이 희미하게 타오르고 있으면 그을음이 많이 쌓이는 법이지요. (189쪽)
→ 선함 속에 거대한 힘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87. 빨간 여우의 북극 바캉스 (오주영, 118쪽) / 초 3 이상
일에 지친 여우가 가게 문을 닫고 북극으로 바캉스를 떠난다. 북극 생태를 연구하는 배에 몰래 타고, 환경오염이 북극에 일으킨 변화와 어려움을 조금씩 알아간다. 이야기 전개가 단순하고 간단해서 읽기 쉽다. 환경 이야기를 동화로 썼기 때문에 환경에 대한 책이라기보다 동물들의 이야기책 같다. 간단한 내용이라 나는 좋아하지 않지만, 아이들은 좋아하겠다.

86. 오레스테이아 (아이스킬로스, 321쪽) / 그리스 비극
3대 비극작가로 꼽히는 아이스킬로스가 썼다.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데리고 트로이로 달아난다.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는 아내를 되찾기 위해 형 아가멤논의 도움을 요청한다. 트로이의 목마가 등장하기까지 10년 동안 전쟁이 이어진다. 이 전쟁은 그리스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오레스테이아>는 집으로 돌아와 살해당하는 아가멤논(1부),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가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를 살해하는 코이포로이(2부), 오레스테스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어머니를 죽인 게 죄인지 아닌지 가리는 에우메니데스(3부) 이야기이다. 비슷한 때에 일어난 일을 다룬 소설로,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호메로스가 <오디세이아>에 썼다.
시로 쓰인 문체에, 그리스 신들의 이야기가 복잡해서 앞부분을 읽기 어렵다. 50쪽 정도 지나가면 그때부터는 내용에 빠져든다. 남성과 여성에 대한 편견이 강한 옛날, 전쟁터에 얽힌, 스파르타의 영향이 진한 이야기라 여성이 읽으면 불편하다. 그래도 ‘한 가족을 무너뜨리는 원한과 저주’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살피며 읽으면 아주 재미있다.

85-86. 모조사회 (도선우, 355쪽+410쪽) / 소설
우리가 사는 곳은 실체일까? 혹시 실체가 따로 있고 우리는 그림자로 사는 건 아닐까? 우리의 실존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 사람들은 옛날부터 궁금해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와 현실을 놓고 다투었다. 지금은 영화와 소설에서 실체와 그림자를 다룬다. <모조사회>는 도선우 작가가 실체와 그림자를 다룬 소설이다. 진짜 사회와 모조 사회를 두고 벌이는 실체 찾기 게임이다. 앞부분이 약간 이해하기 어렵지만 조금만 더 읽으면 빠져든다.
이런 소설을 몇 권 읽었는데 결론이 다르다. 색다른 결론인데, 지금의 현실을 두고 볼 때 가능성이 높은 결말이다. 결말이 핵심이라 알려주지는 못하겠다.

84. 해리엇 (한윤섭, 156쪽) / 초 5 이상
갈라파고스에 살다가 잡혀 비글호에 실린 거북이, 다윈이 해리엇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동물원에 갇혀 살면서 동물들을 지혜로 인도한다. 175살, 죽을 때가 되자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이 고마움을 표현한다. 어릴 때 잡혀 와 동물원에서 자란 원숭이 찰리는 색다른 선물을 주려 하는데… 생태, 환경, 동물 보호 등에 대해 토론하면 좋겠다.

83. 토뚜기가 뛴다. (윤미경, 99쪽) / 초등 아무나
아이들이 등교하기 전에 1주일에 한 번씩 책을 나눠주었다. 많이는 30권, 적게는 20권 읽은 책 중에 이 책이 가장 재미있다고 했다. 재미있다. 토론거리와 감동도 있다. '아이들이 뽑은 책이 괜찮네!'

82. 시원탕 옆 기억사진관 (박현숙, 135쪽) / 초 4이상
오랫동안 사람들이 이웃으로 함께 사는 곳이 얼마나 될까? 정겨운 곳이 사람들 입소문을 타면서 마을에 새로운 가게가 생긴다. 건물 주인이 바뀌고 임대료가 올라간다. 오랫동안 터 잡고 살던 사람이 떠난다. 요구르트를 주던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가던 목욕탕이 사라진다. 사진관도, 미용실도 주인이 바뀌고 가게가 바뀐다. 아이가 바라보는 ~단길 이야기이다.

81. 멈출 수 없는 사람들 (이용주, 253쪽) / 긴급구호 수기
이용주는 아프리카에서 Father Lee로 불린다. 물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물을 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갈 수 없는 곳, 돌아오기 어려운 곳, 도와주러 가지만 도움을 받지 못하는 곳에도 가기 때문이다.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아버지처럼 아프리카 사람들을 돕는다. 펌프를 설치하고, 수로를 만들고, 어떻게 해서든 물을 공급하려고 노력한다. 이 책은 죽음의 위험도 멈추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직접 겪은 이야기이다.

80. 우리들의 행복 놀이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107쪽) / 초 4 이상
부모의 강요로 주눅 든 아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변화가 일어난다. 한 사람을 만나, 조금씩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친구가 생기고, 삶의 범위가 넓어진다. 살아있는 관계가 많아질수록 상상의 세계, 환상으로 만든 세계는 줄어든다. 한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이 좋다

77-79. 역사의 한 순간 1~3편 (김기정, 각 66쪽) / 4학년 이상
1인 출판사 <한권의책>에서 펴낸 역사 시리즈이다. 1, 수상한 글자를 만나다 2, 거대한 줄다리기 3, 네 발의 총소리. 주인공 ‘이돌’이 우연히 시간여행을 하면서 세종대왕, 이순신, 김구를 만난다. 세 위인의 일생을 다루지는 않는다. 역사의 한순간에 이돌이 뛰어들어 자세하게 관찰하고 돌아온다. 위인의 전체 일생을 다루는 것도 의미 있지만 한순간을 바라보는 것도 뜻깊다. 초등학생에게는 오히려 한순간을 살피고 토론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림이 멋스럽다.


5월에 읽은 책 쪽 3518쪽 (2020년 20569쪽)

76. 위대한 사상들 (윌 듀런트, 205쪽) / 역사
20세기를 대표하는 역사학자 윌 듀런트가 인간의 역사에서 위대한 사상가 10명, 위대한 시인 10명을 소개한다. 인류 진보의 최고봉 10가지, 세계사의 결정적인 연도 12가지를 소개한다. 인류 문명사, 사상사를 사건이 아니라 인물 중심으로 요약한다. 재미있기 한데, 책을 쓴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저자는 역사를 천재들이 기여한 업적에 있다고 본다. 위대한 사람들이 역사를 일구었지, 평범한 사람들이 역사를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위대한 인물들을 소개하는데 난 다르게 생각한다.

75. 일상 부활을 살다 (유진 피터슨, 156쪽) / 기독교
일상에서 실천하는 영성이 곧 부활을 사는 것이라 설명한다. 유진 피터슨의 글을 참 좋아하는데 이 책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읽다 말다 그랬다. 등교 개학 때문인지, 요즘 책에 대한 집중력이 줄었다. 다시 읽어야겠다.

74. 날개옷을 훔쳐 간 나무꾼은 어떻게 됐을까? (이향안, 102쪽) / 3학년 이상
<서울시 여성정책담당관>에서 기획한 책이다. 수동적인 여성의 모습을 새롭게 바꿔 썼다. 날개옷을 빼앗긴 막내 선녀를 위해 언니들이 나선다. 백설공주는 왕자와 결혼하지 않는다. 콩쥐와 팥쥐는 아빠를 바꾸려는 계획을 세운다. 새롭게 고쳐 쓴 옛 이야기가 더 재미있고 좋다. 토론하면 좋겠다.

73. 드리나 강의 다리 (이보 안드리치, 486쪽) / 소설
1961년에 이반 안드리치에게 노벨상을 받게 해준 작품이다. 주인공이 사람이 아니라 드리나 강의 다리다. 다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 다리에 얽힌 400년 동안의 사연을 보여준다. 다리를 만들 때부터 다리가 파괴될 때까지. 500년 시대 흐름을 절묘하게 보여준다. 다리는 그대로인데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조금씩 바뀐다. 독특한 형식의 책인데, 읽을수록 역사에 무엇이 남는지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살던 시대에는 무엇이 남을까?’

72. 하나님, 이웃, 제국 (월터 브루그만, 300쪽) / 기독교
읽으면서 『제국과 천국』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제국에 맞서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라는 이야기다. 『하나님, 이웃, 제국』에서도 제국에 맞서 정의를 행하라 한다. 하나님은 정의로, 은혜로, 율법으로 일하신다. 셋은 함께 해야 한다. 이때의 율법, 은혜, 정의는 기존의 정의와 다르다. 예를 들어, 율법에 대해 저자는 “성경의 율법을 마치 메대와 페르시아가 손수 써 내려간 법처럼 여기지 말라.”는 논지를(295쪽) 내세운다. 인상적이다. 동시에 율법이 신뢰, 충성, 성실을 바탕으로 관계를 구현한다는 핵심을 무시하는 현실을 비판한다. 전에는 이런 책이 재미없었는데 이젠 눈에 들어온다.

71. 아이들의 왕 야누시 코르차크 (베티 진 리프턴, 566쪽) / 전기
야누시 코르차크 전기문이다. 코르차크는 의사, 교사, 작가, 방송인으로 활약한 유명인사였다. 폴란드에서 유대인 고아원을 운영했다. 아이를 관찰하고,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들이 온전한 존재로 자라도록 도왔다. 아이가 이미 온전한 존재라 생각했다. 재판을 어린이에게 맡기고, 캠프를 운영하고, 아이를 존중하며 아이만의 왕국을 만든 셈이다. 독일군이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낼 때 아이들과 함께 기차에 올랐다. 코르차크는 기차에 오르지 않아도 되었지만 아이들을 홀로 보내지 못했다.
동화책과 그림책으로 코르차크를 15년 전부터 알았다. 코르착이 어떻게 아이들을 사랑하고 돌봤는지 자세하게 알려주어 좋았다. 낙천적이고, 아이를 위해 무엇이든 한다는 사실은 예상했지만 행정가를 비롯한 많은 사람에게 고집불통으로 보인 점이 새로웠다. 아이에 대한 사실과 관찰 내용을 기록한 점도. 재미난 이야기로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도 귀 기울이게 만든 건 방정환 선생님과 비슷하다. 두 분 모두 감옥에서 이야기로 죄수들을 울렸다고 한다.
아이들을 만나야 하는 분들 모두 읽으면 좋겠다. 특히 교장, 교육청과 교육부 직원들 필독도서로 정하면 좋겠다.
→ 새로 온 아이 20명을 알기 힘든 언어로 쓰인 책 20권처럼 해독해야 했네. 아이들은 군데군데 파손되고 책장이 뜯겨나간 책이자, 수수께끼이자 퍼즐이었지.

70. 나는 설탕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은재, 185쪽) / 6학년 이상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지만 엄마가 시키는 게 싫다. 엄마는 부모님의 돌봄을 받지 못한 한을 아들에게 보상받으려 한다. 학원 가는 시간, 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까지 통제한다. 마음에서 괴물이 스물스물 올라오는 6학년! 이 괴물이 선생님께 대들 용기, 엄마에게 덤빌 용기를 심어준다. 과연 설탕으로 만든 것처럼 쉽게 부서질까, 아니면 엄마와 선생님을 부숴버릴까? 『짝짝이 양말』의 남학생 버전 같다. 참 좋은 책이다.

69. 영원한 사람 (G. K. 체스터튼, 483쪽) / 기독교
체스터튼은 너무 어렵다. 『오소독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이번 책은 다를 줄 알았다. 1장. <동굴 속의 사람>이 정말 좋았다. 2장. <교수들과 선사시대의 사람들>도 좋았다. 여러 책이 연결되며 생각이 휘몰아쳤다. 3장을 지나며 『오소독시』 읽을 때로 돌아갔다. 8장까지 억지로 읽었는데 2부는 그나마 이해가 되었다. 독서 토론하면서 함께 이야기하면 이해할 수 있으려나? 힘들었다.

68. 짝짝이 양말 (황지영, 183쪽) / 5학년 이상
작가의 다른 책을 읽고 싶다. 내용이 참 좋다. 여학생들의 갈등을 다룬 글 중에 갈등을 이렇게 풀어가는 책이 드물다.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라’는 점을 관계 회복의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들면서. 고학년 맡으면 한 학기 한 권 읽기 해보고 싶다.

67. 우리들이 개를 지키려는 이유 (문경민, 221쪽) / 4학년 이상
곧 출간될 책이다. 떠돌이 개를 지키려는 아이들 이야기이다. 지구아파트에 사는 남자아이 셋과 꽃대울 마을에 사는 여자아이 셋이 개를 차지하려고 시합을 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시합 내용에 따뜻한 의미를 담았다. 작가 후기가 멋지다. 전에도 느꼈지만 문경민은 진짜 작가다.

66. 서양 고전읽기 특강 (안정진, 445쪽) / 고전, 기독교
길가메쉬 서사시, 함무라비 법전, 아이네이스 등의 내용과 저자를 설명한다. 작품의 배경이 된 시대, 저자가 작품을 쓴 시대를 해설하고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알려준다. 기독교 관점에서 쓰인 책이다. 성경과 고전을 함께 읽는 마음이었다. 참 좋은 책이다. 이 책의 도움을 받아 고전 몇 권을 독서 모임에서 나누고 싶다.

65. 일곱 문장으로 읽는 신약 (게리 버지, 186쪽) / 기독교
신약 성서를 성취, 하나님 나라, 십자가, 은혜, 언약, 성령, 완성으로 설명한다. 예언을 성취하는 메시아를 읽으면서 다음 주제를 예상했다. 순서는 조금 달랐지만 각각의 주제는 비슷했다. 물론 주제별 내용은 이 책이 더 깊다. 저자의 핵심 주장을 하나로 요약한다면 전체를 보라는 것이다. 작은 부분을 이해하려면 전체가 어떤 모양인지 살피라 한다. 우리나라 교인들에게 꼭 필요한 내용이다.


 4월에 읽은 책 4129쪽 (2020년 17051쪽)

 

64. 울프 와일더 (캐서린 런델, 286) / 중등 이상

러시아 귀족은 야생 늑대 새끼를 데려와서 애완동물로 기른다. 야생성이 드러나거나 하는 이유로 기르지 못하게 되면 울프 와일더에게 보낸다. 울프 와일더는 늑대가 야생에 적응하도록 돕는다. 제정러시아에서 황제의 무능을 틈타 라코프 장군이 제멋대로 백성을 괴롭힌다. 라코프 장군이 늑대와 울프 라이더를 잡으려 한다. 울프 라이더인 페오의 엄마는 잡혀가고 페오는 늑대들과 야생지대로 도망간다. 페오는 엄마를 구할 수 있을까? 늑대 이야기를 예상하고 읽다가 혁명 이야기를 만났다. 흥미로운 책이다.

어떤 고통은 무시해도 괜찮아. 하지만 무시하면 안 되는 고통도 있어. (253)

어른들은 저희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항상 조심하라고 말씀하시죠. 하지만 우리에게는 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위해 싸울 권리가 있어요. 그 누구도 우리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그게 더 안전하다고 말할 권리가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 모두, 나가서 싸웁시다.” (274)

 

63. 화해하기 보고서 (심윤경, 84) / 전학년

작가의 말에 따르면, 현실을 담은 동화를 만나고 싶다고 한다. 현실 아이들이 주인공인 동화. 너무 착한 아이, 현실성 없는 마법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아이가 실제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야기. 엄마가 혼내고 아이는 말을 안 들어서 화해하기 보고서라도 써야 하는 현실 이야기. 그래서 쓴 동화라 한다. 재미있다.

 

62. 내 맘대로 학교 (송언, 87) / 전학년

'만세'는 학교가 재미없다고 생각한다. 조회부터 공부시간, 체육시간도 재미없다. 어떻게 하면 학교가 재미있어질까? 송언 작가가 교사여서 학교의 모습을 잘 담았다. 간단한 아이디어로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학교를 만들었다. 재미있다.

 

61. 폭탄 파티 (그레이엄 그린, 211) / 소설

프레드릭 비크너가 칭찬한 작가여서 읽기 시작했다. 작가의 발상이 뛰어나다. 인간의 탐욕과 경멸을 표현하기 위해 재미난 아이디어를 선보인다. 굉장한 부자가 적당한 부자들을 조종한다. 식은 죽을 먹게 하고 경멸 가득한 말을 내뱉는다. 그래도 적당한 부자들은 경멸을 고스란히 참는다. 굉장한 부자가 선물을 주기 때문이다. 보석, , 스포츠카를 받으려면 경멸을 참아야 한다. 1980년도 노벨상 후보작이라는데 읽을 가치가 있다.

 

60.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파커 팔머, 305)

사람의 마음에서 민주주의를 이끌어내다니 굉장하다. 역시 파커 팔머다. 보통 사람이 접근하는 방식과 다르다. 자기만의 관점으로 교육, 정치, 종교 등을 바라보는 수준이라니. 내게도 이런 눈이 생길까?

 

59. 엄마, 나 그리고 엄마 (마야 안젤루, 253) / 자서전

이번 달에 마야 안젤루의 책을 세 권 읽었다. 이 책을 먼저 읽었다면 이해하기 쉬웠겠다.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는 문장력이 뛰어나고 생각하게 만든다. 엄마, 나 그리고 엄마는 안젤루가 엄마를 중심에 두고 쓴 자서전이다. 굉장한 엄마다. 우리나라 엄마들과는 정반대로 행동한다. 엄마들이 읽고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할지이야기하면 좋겠다.

 

58. 창세기로 예배하다 (홍인식, 271)

창세기를 예배 형식으로 해설했다. 본문, 묵상, 기도, 행함으로 나아가도록 구성했다. 내용은 아주 쉽다. 창세기 전체 내용을 차례차례 해설한다. 읽기 불편한 문장이 보인다.

 

57. 시간의 서 (위스춘, 399)

24절기를 하나씩 풀어 설명한다. 땅에 일어나는 기운, 동물과 식물의 변화, 사람들이 변화를 받아들이는 모습, 이를 표현하는 시와 글까지 자세하게 풀었다. 농사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책이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다만 중국 저자가 중국 문화와 역사를 바탕으로 썼기 때문에 거리감이 있다. 우리 이야기라면 더 재미있었을 것이다.

 

56. 열한 살의 아빠의 엄마를 만나다 (케빈 헹크스, 163) / 5학년 이상

죽음은 우리나라 동화 작가들이 잘 다루지 않는 주제이다. 아이와 부모가 잘 읽지도 않는다. 그러나 내가 겪은 바로는 아이들도 죽음을 느낀다. 이 책은 할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기억하는 이야기이다. 우리나라는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갑작스런 장례식과 짧은 이별로 마무리하는 경향이 크다. 천천히, 함께 기억하며 가족의 죽음을 기리면 좋겠다.

 

55.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마여 엔젤루, 404)

오프라 윈프리와 더불어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 여성으로 꼽히는 마여 엔젤루가 쓴 자서전이. 퓰리처상, 전미도서상을 받은 실력답게 문장과 짜임이 무척 뛰어나다. 흑인 차별에 대한 분위기를 바탕에 깔고, 새장에 갇힌 새가 새장 밖으로 날아오르는 과정을 썼다. 역경과 고난 가운데(‘고난을 이겨내고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다.) 자기 목소리로 노래하는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나는 플라워즈 부인을 그리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부인이 평생토록 내 시중을 들어줄 요정을 불러내는 비밀 주문을 나에게 알려줬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책이었다. (264)

 

54. 손도끼의 겨울 이야기(게리 폴슨, 164) / 중학생 이상

손도끼를 읽은 독자가 하루 이백 통의 편지를 보냈다. 브라이언이 구조되지 않고 겨울을 나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달라는 내용이 많았다. 그래서 게리 폴슨이 이야기를 또 선물한다. 어려움을 이겨내는 모험담이면서 동시에 주위를 둘러보고 살펴보며 준비하는 과정이 아름다움을 알려주는 이야기이다. 자연의 균형을 생각하게도 한다. 좋은 책이다.

 

53. 손도끼(게리 폴슨, 186) / 중학생 이상

13살 소년이 혼자 숲에 떨어진다. 아무도 없는 야생지대이다. 가진 건 손도끼 하나. 13살 소년이 살기 위해 몸부림친다. 이곳에서 자연을 읽으며 주위의 생명을 보는 눈을 기른다. <파리대왕>은 추락으로 섬에 갇힌 아이들이 인간의 잔인성을 드러내는 이야기이다. <손도끼>는 똑같이 비행기 추락으로 숲에 갇힌 한 아이가 인간의 고귀함을 드러내는 이야기이다. 뉴베리상 수상작이다. 모험의 측면보다 주인공의 마음이 더 크게 보이는 책이다.

 

52. 호통판사 천종호의 변명 (천종호, 272)

천종호 판사가 소년법, 학교폭력, 회복에 대해 말한다. 소년법을 처벌 강화로 개정해야 하는지, 청소년범죄와 학교폭력을 어떻게 볼 것인지, 회복을 위해 무얼 할지 말한다. 청소년범죄와 관련된 기사나 의견을 보면 정말 그들을 위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데, 이분은 처벌을 말할 때도 청소년을 사랑하는 분이구나!’ 하는 게 느껴진다. 학생들을 만나고, 가르치는 분들이 모두 읽으면 좋겠다.

 

51. 딸에게 보내는 편지 (마야 안젤루, 160) /

마야 안젤루는 미국의 흑인 여성 인권 운동가이다. 작가, 가수, 극작가이기도 하다. 부모 이혼으로 할머니 집에서 자랐고, 여덟 살 때 엄마의 남자친구에게 강간을 당해 실어증을 겪었다. 열 여섯 살에 미혼모가 되어 홀로 아들을 키웠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데 편지보다는 수필에 가깝다. 저자의 삶에 비해 책 내용이 잔잔하다. 이 책보다는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가 훨씬 좋다.

 

50. 십자가 처형 (마르틴 헹엘, 184) / 기독교

십자가가 유대인에게 거리끼는 것이고 이방인들에게 미련한 것이라는 말씀(고전 1:23)이 무엇인지 밝힌다. 십자가 처형과 관련된 온갖 자료를 찾아내어 당시 사람들이 십자가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알려준다. 나는 로마사를 읽어서 그나마 흐름이 이해가 되었다. 로마사나 고대 문학을 모르면 어렵게 느껴질 책이다.

 

49. 엄마 사용 설명서 (이토 미쿠, 131) / 3학년 이상

나는 이토 미쿠의 책을 좋아한다. 어쩌다 보니 영웅, 진짜 가족을 소개했었다. 단순한 사용 설명서가 아니라 엄마를 이해하는 책이다. 사람이 저마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있음을 재미나게 보여준다. 좋은 책이다.

 

48. 학교 가기 싫은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송미경, 143) / 4학년 이상

송미경 작가는 상상력이 뛰어나다. 학교 가기 싫은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라~ 늦게 일어나고, 게임만 하고, 아무도 잔소리하지 않고, 숙제도 없고, 하고 싶은 것 다 하며 사는 곳이라니~! 백준녕의 빵점 도전기가 자기를 찾는 이야기라면, 이곳에서는 자기를 잃어간다. 이 학교에 전학 온 아이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좋은 책이다.

 

47. 백준녕의 빵점 도전기 (정연철, 117) / 3학년 이상

단편 세 편이 실렸다. 가난하고,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아이 미지를 친구들이 싫어한다. 공부를 못하고 몸에서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우리반에서는 미지 같은 아이들이 어깨 펴고 살기를 바랐다. 책에서는 내가 바라던 일이 일어난다. 참 좋다.

<암호명 땅콩>, <백준녕의 빵점 도전기>는 부모의 관심과 기대에 짓눌린 아이가 잠깐의 일탈로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이것도 좋다.

 

46. 시 정신 유희 정신 (이오덕, 509) / 어린이문학 평론

초등학교 다니며 글짓기를 했다. 내가 교사가 될 때까지 아이들이 글짓기를 했다. 현실과 상관없이 얼마나 아름답게 미화하는지 겨루었다. 그때 이오덕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의 삶을 담은 글을 써야 한다는 가르침을 따랐다. 그래서 아이들의 글을 만났다.

이 책은 당대 어린이문학을 비판하고 아이들의 삶을 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변하지 않는 아동 문학가들에 맞서 글을 발표하고, 그들의 반박에 다시 반박한다. 그들이 말장난을 해도 이오덕 선생님은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시정신을 주장한다. 1977년에 이런 책이 나왔다니 믿기지 않는다. 그 어두운 시대에 빛을 비춘 분이다.

다만 선생님이 말하는 문학가들 대부분 1970년대 활동한 사람들이라 우리가 모른다. 예로 드는 시와 글도 낯설어 읽기 힘들 수도 있다. 그래도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

 

3월에 읽은 책 3725쪽 (12922쪽)

45. 진짜 가족 (이토 미쿠, 186) / 5학년 이상

엄마 아이코는 딸 하요리가 싫다.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냥 싫다. 하요리는 엄마의 사랑을 바라지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빠는 아내와 딸 사이에서 피해다닌다. 저자 이토 미쿠가 쓴 어쩌다 보니 영웅이 참 좋아서 추천했는데 진짜 가족도 못지않게 좋다. 가족 때문에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 상대를 깊이 파고들려면 자신도 상대에게 속내를 드러낼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10)

* 부로마서 상처 주는 일도 있는 거라구요. 남이라면 상관없는 것도 부모라서 상처받기도 한다구요. (157)

 

44. 초등 한 학기 한 권 읽기 (전국학교도서관 경남모임 학생사모, 302) / 독서교육

내가 읽은 한 학기 한 권 읽기 책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직접 수업한 사례를 소개한다. 내용도 참 좋다. 아이들에게 책을 전해주는 선생님들 마음이 참 따뜻하다. 내가 못하는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올해는 책에 나온 연극 활동을 해봐야겠다. 아주 좋은 책이다.

 

43. 하나님은 누구를 사랑하실까? (필 비셔, 48) / 그림책

노먼은 능력이 뛰어나다. 자신감이 넘친다. 일을 잘한다.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산다. 훌륭하다. 시드니는 노먼과 반대다. 노력하지만 약속 시간에 늦는다. 노먼처럼 깔끔해지고 싶지만 안 된다. 하나님이 노먼과 시드니에게 초대장을 보낸다. 하나님이 노먼과 시드니에게 무얼 말씀하실까? 참 좋은 책이다.

 

42. 공동체로 사는 이유 (에버하르트 아놀드, 171)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가 쓴 책을 좋아해서, 브루더호프 설립자인 요한 아놀드의 할아버지 에버하르트 아놀드의 책을 샀다. 모르겠다. 별로다. 토머스 머튼의 해설 분량이 꽤 많은데, 난 머튼의 글이 별로였다.(머튼 책은 다섯 권 정도 읽었다.) 이 책을 누구에게 줘야 하나?

 

41. 전하지 않은 설교 (조지 맥도널드, 291) / 기독교

C. S. 루이스의 스승으로 알려진 조지 맥도널드가 쓴 설교 원고이다. 뛰어나다는 말보다는 남다르다, 색다르다는 말이 맞겠다. 감정에 호소하는 내용 없이 논리로만 말하는데 빨려든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형식의 설교다. 두 번째 설교 <소멸하는 불>이 정말 좋다. 설교가 시리즈처럼 이어지기 때문에 이전 글을 이해하지 못하면 다음 설교도 읽기 어렵다. 천천히 읽어야 할 책이다.

 

40. 조미아, 지배받지 않는 사람들 (제임스 스콧, 589) / 역사

동남아시아 산악지대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높고, 깊고, 험하고, 열악한 곳에서 살아가는 까닭이 있다. 이곳 사람들은 문자 없이, 역사를 기록하지 않으며, 권위를 싫어하고, 옮겨 다니며 산다. 한 국가에 소속되어 넓은 들판에서 살기 싫어, 일부러 산을 찾은 사람들이다. 지배받지 않는 사람들과 그들의 땅을 조미아라고 부른다.

중앙유라시아 세계사와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이다.

 

39. 주목할 만한 일상 (프레드릭 비크너, 160) / 기독교

지난달부터 비크너 선집을 읽는다. 진리를 말하다, 주목할 만한 일상, 기이하고도 거룩한 은혜모두 끝내준다. 비크너는 우리와 눈이 다르다. 비크너가 보는 모습이 낯설다. 머리를 한 대 때리고(카프카의 말처럼 책이 정말 도끼다.) 마음을 시원하게 하며 눈을 밝게 한다. 당분간 해마다 비크너를 읽겠다.

 

38.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 (로버트 뱅크스, 75) / 기독교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나 고민하며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보다 고민이 깊어졌다. 정말 예배가 고민이다.

 

37. 21세기 청소년 인문학 (김고연주 외, 267+267) / 중고등

청소년에게 좋은 말을 해주고 싶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들을 모았다. 전문 분야가 다른 14(2권에서는 15)이 각자 걸어온 길을 이야기한다. 학자, PD, 번역가, 수학자, 과학자, 엔지니어, 디자이너 젠더 자문관(청소년 성매매 관련 글을 쓴 분)이 쓴 글을 모았다. 1권은 진로를 안내하는 책 같고 2권은 인문학 책 색깔이 강하다. 무엇보다 이 시대를 잘 이해하고 그에 맞는 길을 가라는 안내서이다. 청소년이 단번에 읽을 글도 있고, 힘겹게 읽을 글도 있다. 추천한다.

 

35-36. 장미의 이름 상, (움베르토 에코, 906) / 대학 이상

장미의 이름을 읽고 멜크 수도원에 찾아갔다. 39도 찌는 더위에 지쳐 장서각에 들어갔는데 와우~!’ 시원하고 서늘했다. 더운 여름날 한줄기 소나기 같았다.

책을 읽고, 필사하고, 책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생각을 앞세우며 다투는 추리소설이다. 진리를 보존하기 위해 단단한 벽을 둘러치는 사람과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쫓고 쫓기는 이야기다. 진리를 다루기 때문에 이단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래서 어떤 분에게는 아주 재미있고, 어떤 분에게는 어렵다. 구백 쪽 분량이라 만만치 않다. 신천지가 매체에 오르내리는 지금이 이 책을 읽을 때라 생각한다.

 

34. 햄릿과 나 (송미경, 111) / 4학년 이상

송미경 작가의 책을 좋아한다. 이 책도 참 좋다. 돌 씹어먹는 아이가 톡톡 튄다면 이 책은 차분하게 토닥인다. 햄스터 햄릿과 주인공 는 연결고리가 있다. 그저 보기 좋게, 잘 이해하고 살자 하기엔 무거운 연결고리인데 너무 잘 표현했다. 한 아이가 조건 없는 사랑으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깊게 보여준다. 무조건 읽어보시라.

엄마가 그러는데 우리가 눈물을 흘리면 마음의 슬픔이 빠져 나간댔어요. (28)

 

33. 우투리 하나린 (문경민, 189) / 4학년 이상

우투리와 용마 전설을 지금 이야기로 바꿔 써서 방정환문학생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우투리의 후손과 우투리를 이용하려는 선악의 대결 구도라 아이들이 좋아하겠다. 누가 나쁜 편인지 찾아가는 과정도 재미있다. 시리즈 1편만 나왔기 때문에 재미가 있어지는데 끝나버린다는 아쉬움이 있다. 2편은 언제 나오나?

 

32. 그 애가 나를 보고 웃다 (김리리, 163) / 4학년 이상

여우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진정한 친구를 만나면 인간이 되어 당당하게 살 수 있다. 약하고 순진한 아이의 친구가 되어 힘이 되어준다. 그러나 약하고 순진한 아이는 여우 사람 덕에 조금씩 강해지면서 변한다. 진정한 친구가 아니라 여우를 이용하는 사람으로. 진정한 친구를 찾으려면 도와주지 말아야 하는데 그럼 친구가 되기 어렵다. 김리리 작가의 다른 책에 비해 이야기 구조가 단순하다. 내용이 어떨지 뻔히 보인다. 아이들은 좋아하려나? 잘 모르겠다.

 

2월에 읽은 책 - 17권 3584쪽 (9086쪽)

 

31. 아홉 살 독서 수업 (한미화, 275) / 학부모, 교사

내가 생각한 내용, 강의하는 내용, 책벌레 선생님의 행복한 책이야기에 쓴 내용과 많이 겹친다. 나보다 짜임새 있게, 간결하게 설명한다. 사례로 드는 책이 맛깔나다. 자녀 독서 교육의 기본을 담은 책이다. 참 좋다. 추천한다. 다만 부록에 실린 추천도서가 나이에 견주어 살짝 어렵다.(도시 아이들 수준인가?)

 

30. 문제아 (제리 스피넬리, 246) / 중등 이상, 교사 추천

하늘을 달리는 아이를 쓴 제리 스피넬리의 책이다. 무조건 읽어야 하는 책이다. 징코프는 글씨를 이상하게 쓴다. 달리기를 못한다. 눈치가 없다. 공부도 못한다. 그런데도 늘 웃는다. 주눅 들지 않는다. 자신이 못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밝고 착하고 웃는 아이다. 저학년 때는 괜찮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문제아가 된다. 징코프는 늘 똑같은데 사람들이 다른 걸 기대하기 때문이다. 과연 징코프는 문제아일까? 교사들이 징코프 같은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생각하면 좋겠다. , 징코프의 부모는 최고다!! 징코프, 넌 루저가 아니야를 먼저 읽으면 좋다.

 

 

29. 삐딱하거나 멋지거나 (세브린 비달, 마뉘 코스, 238) / 청소년 소설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함께 생활하는 통합교육반 친구들 이야기다. 장애 학생이 감독이 되어 영화를 찍고, 비장애 학생이 장애 학생과 싸우고 사랑하며 지내는 일상을 다루었다. 우리 학생들도 싸우고, 좋아하고, 과제를 함께 할까 궁금하다. 강원도 시골에서는 비슷했는데 도시는 어떨지?

장애 관련 소설 : 13층의 슈퍼히어로, 안녕, 내 뻐끔거리는 단어들, 사랑스런 아이

 

28. 너의 꿈을 들려줘 (탁영민, 245) / 청소년

저자는 학생들이 진로를 찾도록 도와주는 일을 한다. 대학생 멘토를 만나게 하고, 외국인 유학생을 학교로 초대해서 이야기를 듣는다. ‘한 사람이 한 권의 책이다라며 휴먼북 교육 여행(사람을 만나는 여행)을 진행한다. 무얼 해야 할지 모르는 학생들이 대학생, 외국 학생, 직업인을 만나면서 무얼 할지 생각한다.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에서 꿈을 꾸며, 꿈을 이루어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학생들도 꿈을 꾼다. 직접 만나고, 겪고, 해보는 활동이라 좋다. 학교에서 이런 활동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학생들이 우리가 원하는 게 이거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비용이 많이 드는 활동이라 많은 학생이 누리기는 어렵겠다.

 

27. 쉬지 않는 기도 (김석년, 319) / 기독교

사도신경, 십계명, 주기도를 기도로 설명한다. 사도신경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을 소개하며 아침의 기도로 안내한다. 십계명은, 우리가 날마다 지켜야 할 계명으로 소개하며 정오의 기도로 안내한다. 주기도는,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길로 소개하며 밤의 기도로 안내한다. 해설과 기도를 함께 안내하는 책이다.

난 조용함, 진지함, 성서를 읽고 묵상하기를 좋아한다. 소리 지르며 감정을 토로하는 걸 어색하게 생각한다. 기도할 때도 하나님께 조용히, 진지하게 묻는다. 그래서 기도를 못한다. 삶이 기도라는 말을 좋아하는 까닭은, 제대로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쉬지 않는 기도라? 저자는 쉬지 않는 기도를 해보라고 초대한다. 사도신경으로 드리는 아침기도, 십계명으로 드리는 정오 기도, 주기도로 드리는 밤의 기도를 소개하고 실천해보라 한다. 지금까지 기도란 무엇인가?’를 다룬 책을 주로 읽었다. ‘어떻게 하면 응답을 받을까?’는 읽지 않았다. 이 책은 기도란 무엇인가에 가깝다. 여기에 더해, 아침 기도, 정오 기도, 단숨 기도를 소개한다. 이 책을 추천할 만한지는 기도하는 사람이 판단해야겠다. 난 기도는 잘 모르겠다.

101쪽 믿음은 눈에 보이는 사실(fact) 너머에 있는, 눈으로 다 헤아릴 수 없는 진실(truth)을 추구한다.

 

26. 청소년에게 심리학이 뭔 소용이람? (이남석, 240) / 청소년

사람(자신, 타인, 자신과 타인의 관계)를 알면 올바른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책은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심리학을 설명한다.

이남석 작가는 청소년을 위한 글을 쓴다. 심리학을 전공한 학자이며 청소년에게 관심이 많은 작가로서 청소년에게 심리학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성격으로 시작해서(1) 뇌와 정서를 연결하고(2) 한 사람의 성장 과정을 자존감으로 설명한다.(3) 호기심을 일으키는 질문으로 각 장을 시작한다. ‘인터넷 심리검사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우린 정말 뇌의 10%밖에 못 쓸까? 같은 질문은 청소년들이 궁금해할 내용이다. 이어지는 내용도 모두 질문을 던지고 대답한다. 동기(하기 싫은 걸 꼭 해야 할까?), 기억, 학습 효과, 정신 건강, 사회를 주제로 설명하고 기타 몇 가지를 덧붙인다.

 

25. 이제 좀 느긋하게 지내볼까 합니다. (히로세 유코, 207) / 수필

살아가면서 주변을 둘러보고 생각한 글을 모아놓은 수필집이다. 4쪽 정도의 글 50여 개가 들었다. 쉬엄쉬엄 여유롭게 살자는 뜻으로 썼다고 한다. 난 이런 글을 읽어도 덤덤하다. 가볍고 단순한 내용은 잘 공감되지 않는다. 가볍고 편한 글을 좋아하는 분들은 마음에 들어할 것 같다.

 

24. 허구의 삶 (이금이, 255) / 3 이상

내 삶을 가로지르는 기둥이 있다면 과거를 끌어안는 일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어린 권일한이 받았던 상처를 어루만지는 일이다. 그때의 상처가 지금의 내 모습이, 나 자신이 되게 했다. 지금까지 나는 상처로부터 달아나며, 영원히 달아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그만 달아나는 길을 찾으며 살았다. 고통, 상처, 인간이란 누구인가, 심리에 대한 책을 읽은 까닭은 상처받는 마음을 이해하고, 이겨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상처를 보여주는 책이 참 많았다. 책을 읽으며 사람들이 상처를 다루는 다양한 모습을 알았다. 평범한 인물의 이야기 속에서도, 밑바탕에 숨겨진 상처를 보았다. 상처받은 마음을 알아주고, 어설픈 동정이나 위로를 내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울면서 글을 쓰고, 상처 가득한 글을 내게 내보인 것 같다.

상처는 우리의 삶을 허구로 만든다. 상처는 아무 곳에도 뿌리내리지 못한 채 허구의 세계를 떠돌게 한다. 거짓으로 다진 반석 위에 뿌리를 내리려고 안간힘을 쓰게 만든다. 허구의 삶은 상처받은 두 아이 이야기다. 주인공 상만은 사람들이 다 아는 상처를 갖고 산다. 그걸 말하기 싫어 거짓으로 반석을 놓고 거짓 뿌리를 내린다. 다른 주인공 허구(이름)은 사람들이 모르는 상처를 갖고 산다. 자신이 뿌리내려야 할 세상을 등지고 허구라는 이름답게 거짓의 세상을 살아간다. 허구의 삶은 상처받은 우리들 이야기다.

나를 돌아보게 하는 책을 써주셔서 이금이 작가님에게 참 고맙다. 상처 많은 분들과, 책뜰안애에서, 이 책을 토론하고 싶다. 혼자 울지 말고 함께 울기를 바라면서.

 

23. 일곱 문장으로 읽는 구약 (크리스토퍼 라이트, 220쪽 예상 곧 출간) / 기독교

우린 성경을 조각으로 읽습니다. 다윗에게 일어난 사건들, 다윗에 대한 말씀들, 다윗이 남긴 시편을 조각으로 나눠 읽고 다윗을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창조도, 아브라함도, 출애굽도, 시와 예언과 설교도 나누고 뜯어서 설명하고 설교합니다. 전체를 쭉 연결해서 보면 어떨까요? 창조부터 아브라함과 다윗을 지나 예언자들까지 연결해서 읽으면 하나님의 뜻이 강물처럼 흘러가는 모습을 보겠지요. 이렇게 보려면 커다란 사건과 한 사람의 인생을 꿰뚫어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일곱 문장으로 읽는 구약은 구약을 일곱 문장으로 꿰뚫습니다. 전체 이야기의 흐름을 보여줍니다. 창조에서 아브라함으로, 출애굽과 다윗으로, 예언을 지나 복음으로 길을 엽니다. 읽어보세요. 구약이 어떤 이야기인지 보일 겁니다.

 

22. 교사로 산다는 것 (조너선 코졸, 179) / 교육

교사로 산다는 것을 처음 읽었을 때, 들리는 메시지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자고 다짐했다. 9년만에 다시 읽으며 <자기만의 수업을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20년 전부터 나라는 인격에서 나와, 아이라는 인격을 만나는 나만의 수업을 하고 싶었다. 멋진 아이디어, 감탄을 자아내는 도구를 사용해서 아이들을 사로잡는 수업은 아니다. 아무 도구 없이, 온전한 나 자신에게서 나오는 수업아다. 조금씩 배우고, 변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간단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자기만의 수업을 방해하는 세 가지 걸림돌이 생각난다.

 

시선.

전 동네 곳곳, 골목과 언덕과 개울을 다니며 수업합니다. 우리 반만 뒷산에 가고, 운동장에서 비 맞으며 수업하면 주위 분들이 한마디씩 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사람들 눈치를 받지 않습니다. 우리 반만 다달이 문집을 내고, 우리 반만 현장학습 가고, 우리 반만 책상 위에 걸터앉아 노래를 불렀습니다. 전 그게 좋아서 선배들이 주는 눈치를 이겨냈습니다. 그때 시키는 대로 했다면 제 수업의 큰 부분이 사라졌을 겁니다.

 

교과서.

이상한 짓 하지 말고 교과서대로 해!” 사실 시키는 대로 하면 편합니다. 문제가 생길 때 시킨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면 됩니다. 교과서만으로 가르치면 안전합니다. 그러나 저는 코졸의 의견을 받아들였습니다. 코졸의 책을 읽기 전부터 교과서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국어 글쓰기 내용은 많이 바꿔서 가르쳤습니다. 교과서에서 제시하는 주제를 버리고, 아이들 삶에 바탕을 둔 글감을 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우리 이야기를 쓰게 했습니다.

 

막연한 생각.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교과서를 무시하면 무얼 할까요? 무너뜨리기는 쉬워도 세우기는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 수업을 분석하고 비판할 점을 찾기는 쉽지만 나만의 수업을 만드는 건 어렵습니다. 막연한 생각은 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할지 찾는 건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게 힘들었습니다. 지금도 계속 찾습니다.

 

교사로 산다는 건, 아이들이 자기만의 길을 걷도록 안내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정해진 길, 사람들이 성공이라 부르는 길만을 따르게 하는 교육이라면 학원에만 다녀도 되지 않을까요?

 

21. 동래성에 부는 바람 (박미경, 200) / 5 이상

임진왜란 때 동래성에서 있었던 일을 쓴 역사동화다. 동래성에 살던 덕순이가 일본에 잡혀갔다가 돌아오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왜놈이 쳐들어오기 전의 앞부분은 특별한 게 없다. 이미 동래성이 무너지고, 부사 송상현이 죽고, 백성들 대부분 죽거나 노예로 팔려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은, 부사 송상현의 둘째 부인과 덕순이가 어떻게 일본에서 살아 돌아오는가이다.

이 책의 가치는 동래성이 무너지고 일본에 잡혀간 부인과 덕순이가 돌아오게 되는 과정을 다룬 뒷부분에 있다. 대마도 도주에 대한 묘사가 마음에 든다. 또한 부인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나면서 일어나는 일이 흥미롭다. 임진왜란 때 잡혀간 조상들이 일본에게 도자기와 기술 외에 정말 귀한 것을 전해주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20. 너도 아웃(이선이, 180쪽 예상) / 중등 이상

미출간 소설 원고를 읽었다. 난 밥 먹다가도 화가 난다가 분노하는 남학생 이야기라면, 이번 책은 관계에 매달리는 여학생 이야기이다. 여학생의 성격, 드러나지 않은 마음,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는 모습을 잘 묘사했다. 여학생들의 밀고 당기는 관계를 이해하기에 좋은 책이다. 빨리 출간되면 좋겠다.

 

19. 아이들은 한 명 한 명 빛나야 한다 (앨런 코커릴, 270) / 교육

호주 교사 앨런 코커릴이 소련 시절 교육자 수호믈린스키를 소개한다. 상부의 지시대로 움직여야 하는 냉전 시대 소련에 이런 사람이 있었다니 놀랍다. 자신의 전부를 아이들에게 바친 사람을 구소련 시절에서 만나다니~! 자연을 누리고, 일하며 배우고, 예술 감각을 일깨우는 교육을 받으며, 무엇보다 사랑으로 아이를 가르친다. 본이 되는 분을 만났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분이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되었는지에 대한 소개가 없다. 시대 분위기를 거스르는 남다른 가치관을 가진 과정, 구소련 당국의 억압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알고 싶다.

수호믈린스키의 엄청난 에너지는 슬픔과 분노를 교육적 과업으로 승화시킨 것이었다.

당신이 가르치는 학문 영역에서, 교과서에 담겨 있는 지식은 일차적인 것이 돼야 한다. 당신이 학생에게 가르치는 교과서의 기초 지식은 당신의 학문 지식이라는 큰 바다 속에 있는 작은 물방울이 돼야 한다.

수호믈린스키가 어느 행성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었을 때 아이들은 그것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요?”라고 재차 질문했는데, 수호믈린스키는 이 질문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고백했다. 소련이 미국보다 먼저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것은 학교에서부터 계획적으로 과학교육을 강조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수호믈린스키의 과학교육방법은 철저하게 아이들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는 이러한 자연스러운 접근만이 아이들에게서 자연에 대한 호기심, 우주의 작동원리에 대한 호기심을 유지시키는 방법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18. 기이하고도 거룩한 은혜 (프레드릭 비크너, 191) / 기독교

행복한수업만들기 선생님들과 온라인 토론했다. 주제는 고통! 비크너는 어릴 때 아빠가 자살했다. 고통의 좋은 청지기로 살아온 비크너가 고통을 기억하는 저마다의 모습을 소개한다. 할머니, 어머니, 동생이 아버지가 자살한 기억과 고투하며 살아온 과정을 보여준다. 비크너는 독특하게 글을 쓴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읽을수록 깊은 샘물 맛이 난다.

 

17. 진리를 말하다 (프레드릭 비크너, 160) / 기독교

역시 비크너다. 예상하지 못하는 목차다. 1장 진리를 말하다. 2장 비극으로서의 복음. 3장 희극으로서의 복음. 4장 동화로서의 복음. 복음을 비극으로, 희극으로, 동화로 이야기한다. 진리인 복음을 비극, 희극, 동화로 이야기하다니 굉장하다. 리어왕으로 비극을, 사라와 아브라함의 웃음으로 희극을, 여러 동화책으로 동화를 말한다. 아이들과 글을 써서 그런가, 난 동화 부분이 가장 좋았다. 정말 좋은 책이다.

 

내가 아는 한, 동화를 만들어 내지 않은 시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당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126)

동화에서는 절대 모든 등장인물들이 다 영원히 행복하게 살지는 않으며,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이들은 자기 안에 있는 최상의 모습으로 변모하는 이들이다. (131)

 

세상의 벽 너머에 있는, 슬픔보다 통렬한 기쁨이라니.

교회에서도 이 기쁨을 얼핏 보게 될 때가 있다.

비록 우리가 교회에서 기쁨을 너무 열심히 찾고 있는 탓에 오히려

교회가 도무지 기쁨을 누릴 수 있을 법하지 않은 곳이 되긴 하지만 말이다. (138)

 

16. 성경을 해석하는 원칙 (윗트니스 리, 70) / 기독교

<지방교회>라는 이름의 단체는 거의 워치만 니와 위트리스 리가 쓴 책만 읽는다. <한국복음서원>에서 주로 책을 낸다. <지방교회>에 빠진 대학 동기가 준 책을 다시 읽었다. 저항감으로 읽어서일까, 그때는 그저 그랬다. 다시 읽어보니 꽤 괜찮다. 성경 기초 해설서인데 쉽다. 성경 저자와 기록 연대에 대한 보수 의견을 따른다. 다른 점이라면 안식교를 반대하며, 영을 조금 더 강조한다.

우리는 단순한 영이 아니라 사람이다. 만약 우리가 단순한 영이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의 영만 주고 성경은 줄 필요가 없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한 영이 아니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에게 성경도 주셔야만 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적 유산은 보이지 않는 영과 보이는 성경이다. 우리 속에는 성령이 있고 바깥에는 성경이 있다. 합당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양면 즉 외부의 성경과 내부의 성령이 완전히 균형 잡혀야 한다~ 내적인 영만 있고 외적인 성경이 없이는 쉽게 실수하며, 바깥의 성경은 있지만 속의 성령이 부족하다면 극심한 사망 안에 있게 되고 생명도 활기도 없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기차와 같다. 내부에는 힘을 일으키는 연료가 필요하지만 바깥에는 철로가 필요하다. ~ 바깥에서는 통제하는 제도가 있어야 하고 속에는 에너지를 공급하는 연료가 있어야 한다. (8)

생각에 대한 필요와 영에 대한 필요가 있다. (10)

성경에 있는 각 단어가 나타내는 숫자는 모두 7로 나누어질 수 있다. (11)

(내 생각 : 게마트리아에서 베드로는 153이다. 7로 나누어지지 않는다.)

성경을 잘 읽기 위하여 우리 생각을 훈련해야 하고 더욱더 우리 영을 사용해야 한다. (11)

우리의 생각으로 성경을 이해하는 것과 우리의 영으로 그것을 접촉하고 만지는 것은 별개의 것이다. (12)

디모데 후서 316절에서 영감은 호흡을 의미한다.

역대 상하 역시 히브리 성경에는 한 권이었다. 이 책 역시 70인역에서 나뉘어졌으며 일반적으로 에스라가 기록했다고 믿고 있다. 역대기의 마지막을 에스라서의 처음과 비교하면 형식과 문법, 구절들이 매우 비슷해서 똑같은 저자에 의해서 쓰여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에스라가 역대기를 기록했다고 생각되어 왔다. (32)

단 한 구절이 진리 전체를 나타낼 수 없지만 성경의 매구절은 모든 진리를 포함하고 있다. 한 면으로는 단 한 구절이 진리 전체를 포함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의 진리를 이해하려면 한 구절에만 의존할 수 없고 다른 많은 구절들도 고려해야 한다. 또 다른 면으로는 어떤 진지를 결정할 때 모든 구절을 고려해야 한다. 성경 각각의 구절은 모든 진리를 포함한다. (64)

 

15. 더 브레인 (데이비드 이글먼, 296) / 과학, 고등 이상

첫째의 추천으로 <책뜰안애 독서모임>에서 토론하려고 읽었다. 뇌가 하는 일을 세밀하게 소개한다. 기존의 뇌과학 책과 다르다. TV 프로그램(6부작)으로 만들어져서 독자 친화적이다. 사진이 많고 새롭다. 인간이 누구인지, 어떻게 의미를 만드는지, 어떤 존재가 될지 등의 문제를 로 풀어간다.

함께 읽은 분들은 저자의 견해에 놀라면서도 반대 의견을 냈다. 나도 반대한다. 실험 사례가 극단적(병에 걸리거나 특이 현상을 겪는 사람)이거나 과학으로 검증할 수 있는 것들이다. (방송으로 제작했기 때문에 호기심을 끄는 사례를 많이 보여준 것 같다.) 과학이 아니라 다른 길로 접근해서 균형을 잡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자도 이를 의식했는지 철학의 문제를 꺼낸다. 그러나 우리의 뇌가 우리를 결정한다는 주장에 대한 증거로 과학만을 내세운다. 아쉽지만 굉장한, 굉장하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는 책이다.

당신의 정체성은 움직이는 표적과도 같다. 당신의 정체성은 절대로 종착점이 이르지 않는다. (12)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뇌와 몸은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조금씩(시계의 시침이 움직이는 것처럼) 변화한다. 예컨대 당신의 적혈구들은 4개월마다, 피부세포들은 몇 주마다 완전히 교체된다. 7년이 지나면, 당신의 몸을 이루는 모든 원자가 다른 원자로 교체될 것이다. 물리학적으로 보면, 당신은 끊임없이 새로운 당신이다. 다행스럽게도 다양한 당신의 버전들 모두를 연결해주는 상수가 하나 있다. 바로 기억이다. 어쩌면 기억은 당신을 당신으로 만드는 연속적인 실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억은 당신의 정체성의 핵심에 자리를 잡고 단일하며 연속적인 자아감을 제공한다. (34-35)

기억의 적은 시간이 아니라 다른 기억들이다. (38)

당신은 대상들을 있느 그대로 지각하지 않는다. 당신은 대상들을 당신답게 지각한다. (52)

우리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는 미완성 작품이다. (52)

의식은 무수한 세포들이 자신들을 통일된 전체로서 보는 한 방식, 복잡한 시스템이 자신을 거울에 비추는 한 방식이다. (132)

더 나은 결정을 하려면, 당신 자신을 아는 것뿐 아니라 다양한 당신 자신들을 모두 아는 것이 중요하다. (174)

자아는 진공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208)

인공지능 로봇에 대해 (고통 없는 습득이 인식이 될까?)

 

1월에 읽은 책 - 14권 (5502쪽)

 

14. 삶이 메시지다 (김기석, 307) / 기독교

오래 묵은 장맛을 생각나게 하는 문장과 내용으로 산상수훈을 설명한다. 문학과 철학, 역사와 사상이 자연스레 스며든 내용이 마음을 울린다. 고민 없이, 가볍게, 자기 점검 없이 얄팍하게 쓴 책들 사이에서 김기석 목사님은 기독교에 무게와 깊이를 더한다. 참 좋은 책이다.

 

13. 농부의 인문학 (서정홍, 176) / +수필

책뜰안애 서재 앞마당에 작은 텃밭을 일구었다. 닭똥거름 뿌리고 삽으로 뒤집었다. 감자를 심었는데 절반가량이 호두 크기다. 달걀만 하면 큰 편이다. 감자 캔 자리에 배추를 심었다. 자리공 열매로 제초제 만들어 뿌리고 손으로 벌레를 잡았다. 농약과 비료를 자주 뿌린 옆집 배추와 비슷하게 커서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한 주일 안 간 사이에 진딧물이 배추를 맛나게 먹었다. 뒤늦게 농약을 한 번 뿌렸지만 소용없었다. 지구를 살리겠다고 풀을 뽑고, 비료와 농약을 거의 쓰지 않은 결과 작은 배추를 얻었다.

조금씩 나아지겠지만 농사는 힘들다. 지구를 살리겠다고 거름 만들고, 약을 치지 않으면 더 힘들다. 농부의 인문학은 농부의 생각을 담은 책이다. 좋은 결과를 만들어주고, 유행으로 오르내리는 뜻에서의 인문학과는 거리가 멀다. 사람이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을 생각하고, 자연에서 얻은 지혜를 말하는 인문학이다. 인용하는 책이 많지 않고, 이름난 책도 아니어서 그런 인문학을 생각하고 읽으면 안 된다.

골치 아픈 집안 문제에다 자식까지 속을 썩여 몇 해째 잠을 못 자고 날마다 죽고 싶은 생각뿐인 어머니 한 분이 찾아왔습니다. 지나가는 자동차만 보면 뛰어들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는 그 어머니를 위해 아내와 나(서정홍 선생님)는 직접 농사지은 녹두로 빈대떡을 부치고, 된장찌개와 감자볶음을 하여 소박한 밥상을 차려 드렸습니다.~ 며칠 뒤에 전화가 왔습니다.(109) ” “몇 해째 수면제 안 먹고는 잠을 못 잤는데, 이젠 수면제 안 먹고도 잠을 잘 수 있습니다. 그때 차려 주신 밥상 덕분입니다. 내내 잊지 않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사람을 살리고 땅을 살리는 농부의 생각이 소박하면서 아름답다. 아내와 땅을 사고, 집을 짓고, 정원을 만들고, 텃밭을 일구며 꿈을 꾸었다. “자급자족하자!” 서정홍 선생님처럼 하긴 어렵겠지만 조금씩 따라 할 생각이다. 책뜰안애에 오는 분들에게 깨끗한 야채로 밥상 차려 주고, 깊은 문장으로 마음을 어루만지는 꿈을 꾼다.

 

10-12. 시월의 말 1-3(콜린 매컬로, 535, 525, 285) / 역사소설

갈리아를 정복하고 돌아온 카이사르가 원로원 공화파의 반대에 맞서는 내용이다.

1: 폼페이우스가 패배한 소식을 듣고 공화파가 이집트와 아프리카로 피한다. 카이사르가 이집트와 소아시아 문제를 해결할 동안 공화파의 수장인 카토가 1만 명을 이끌고 2000km 이상의 험난한 길을 행군한다. 카이사르를 이기진 못하지만 외골수 카토가 마음에 들었다.

2: 뛰어난 사람은 보통 사람과는 다른 짐을 진다. 사람들은 뛰어난 사람의 고민을 모른다. 자기 수준에서 생각하고 판단한다. 카이사르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약간의 거절감, 사소한 손실 때문에 카이사르를 죽인다. 카이사르의 권력과 돈이 자기들에게 떨어지리라 기대하며. 그러나 카이사르는 유언장에서 아무도 예상치 않았던 옥타비우스를 입양해서 상속자로 정한다. 더구나 카이사르를 죽인 브루투스에게도 유산을 남겼다.

3: 20세 정도인 옥타비우스가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이다. 안토니우스와 맞서기 위해 군단병을 회유하고, 공화파에 맞서기 위해 안토니우스, 레피두스와 연합하여 삼두정치를 편다. 공화파를 이긴 뒤에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를 이기고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로 황제가 된다.

 

9. 성서를 읽다 (박상익, 391) / 기독교

시대를 알아야 이해하는 책이 있다. 당시 문화와 어휘를 모르면 명작도 단순한 줄거리만 남는다.

기독교인이 성경을 읽지 않는다고 한다. 소선지서는 성경을 읽는 사람도 뒤로 미뤄두는 부분이다. 즉 소선지서를 읽고 묵상하는 사람이 아주아주 적다는 뜻이겠지.

소선지서를 읽지 않는 마음이 이해가 된다. 시대를 모른 채 읽으려면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소선지서는 그런 문장이 별로 없다. 십일조 내라고 말라기 일부, 교회 건물 지을 때 학개 일부를 인용하는 정도다. 미가와 하박국과 요엘 일부가 노래로 만들어져 약간 친해졌지만 선지자들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모른다. 그들이 왕족인지, 몰락한 귀족인지, 가난한 농부인지 모르니까. 체념해서 망하라고 외쳤는지, 망할 리 없다고 확신하며 외쳤는지 모르니까. 그래서 요나만 남았다. 요나가 바로 나~ 라고.

성서를 읽다의 부제, ‘역사학자가 구약성서를 공부하는 법이 그동안 내가 성서를 묵상한 방식이다. 난 말씀을 들었던 당대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했는지 알고 싶었다. 역사를 잘 아는 학자가 선지서를 보면 역사를 바탕으로 읽는다. 선지서 전체를 50번 넘게 읽었고, 꾸준히 묵상했고 선지서를 해설하는 책도 읽었지만 성서를 읽다에서 소선지서를 새롭게 만났다.

소선지서 해설에 앞서 소개하는 출애굽기와 민수기 내용도 좋고 부록으로 넣은 김교신 선생 이야기도 좋다. (저자가 김교신 선생을 무척이나 존경하나 보다. 어울리지 않는 내용인 줄 알면서도 부록으로 넣은 걸 보면...)

추천한다. 소선지서를 이해하는데 빛을 비춰주는 책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한 권으로 꿰뚫는 소예언서

(소선지서 전체를 교차대구로 분석해서 소개하는 책이다.)

 

6-8. 포르투나의 선택 (콜린 매컬로, 479, 601, 430) / 역사소설

로마 역사를 소설로 쓴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 중 제 3부이다.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는 이 시리즈에 견주면 초라한 책이 되고 만다. 술라는 원로원을 중요하게 여기는 귀족이다. 마리우스는 평민의 정치 참여를 중요하게 여기는 원로원 반대파다. 마리우스가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때 술라는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드디어 기회가 찾아오자 술라는 로마로 진군한다. <포르투나>는 행운의 여신으로 1권에서는 포르투나의 선택을 받는 사람이 승승장구한다.

1권은 술라가 로마의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카이사르가 우연한 기회로 속박을 벗어난다.) 포르투나가 술라, 카이사르를 선택한 셈이다.

2권은 술라가 로마의 법령을 원로원 중심으로 바꾸는 이야기, 메텔루스 피우스와 폼페이우스가 세르토리우스(마리우스를 지지하면서 가까운 히스파니아를 점령한 로마 장군)와 싸우는 이야기이다.

3권은 술라가 독재관으로 군림하다 몰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카이사르가 마리우스의 족쇄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나온다. 포르투나(행운의 신)이 선택한 사람이 누군지 보여준다. 특히 3권에서는 스파르타쿠스의 반란 이야기가 자세하게 묘사된다. 스파르타쿠스가 해적에게 속지 않고 배를 탔다면 역사가 어떻게 되었을지 참 궁금하다.

 

5.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207) / 4학년 이상

린드그렌이 쓴 동화 모음이다. 린드그렌은 아이들 마음을 잘 드러낸다. 할머니가 이야기해주는 재미난 이야기 같다. 크리스마스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따뜻하고 시원하고 재미있다. <귀염둥이>가 가장 마음에 든다. “지옥에나 떨어져. 모두 다!”라는 말로 끝난다. 속이 다 시원하다. 누구에게 이 말을 하고 싶은지 아이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언젠가 독서 수업에 써야겠다.

 

4. 랩 걸(호프 자런, 409) / 고등 이상

여성 과학자가 자기 이야기를 썼다. 여성 과학자가 실험실을 갖고, 같이 일하는 동료(이자 직원)에게 월급을 주기 위해 애쓰고 애쓴 이야기이다. 호프 자런은 글을 쓰고, 식물을 찾아다니고, 연구비를 구하러 다닌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문체다. 식물에 대한 이야기도 듣지 못한 것 투성이다. 연구비를 구하려고 이렇게까지 하는지 몰랐다. 게다가 찰스 디킨스를 비롯해서 문학 작품에 쓰인 문장을 갖고 논다. 다음에 어떤 말을 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일을 제대로 하려면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 느꼈다. 또한 일을 사랑하려면 이 정도까지 해야 하는구나!’ 느꼈다. 다시 읽을 책이다.

내 실험실은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한 죄책감이 내가 해내고 있는 일들로 대체되는 곳이다. (35)

(식물이 경화 과정을 통해 겨울을 나는 과정을 설명하며) 식물들은 세상이 급속도로 변화할 때 항상 신뢰할 수 있는 한 가지 요소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 사람을 생각나게 하는 문장이어서 좋다.)

 

3. 베네딕트 옵션 (로드 드레허, 408) / 기독교

미국에서 동성애 커플의 웨딩 케이크 주문을 신앙 양심상 거절했다는 이유로 1억이 넘는 벌금을 내는 바람에 빵집 문들 닫은 사건이 뉴스에 났다. 이런 일을 겪는 사람들이 벌금을 내도록 후원하는 뉴스도 있다. 우리가 기독교 국가로 아는 미국에서 차별금지법 같은 법률이 신앙을 드러내는 행동을 불법으로 선언한다. 베네딕트 옵션은 미국이 탈기독교국가라 선언한다.

이 책은 미국이 탈기독교 국가가 된 원인을 형이상학적 실재론이 유명론에 패배함으로써 초월적 세계와 물질세계를 잇는 핵심이 제거되었기 때문(배덕만 교수 해설)이라 진단한다. LGBT의 권리를 앞세워 기독교 가치를 무너뜨리는 위기에서 베네딕트 옵션(탈기독교 시대에서 기독교인들이 지향해야 할 삶의 방향과 가치)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질서, 기도, , 금욕주의, 안정성, 공동체, 환대, 균형, 예전 등의 대안에 대해 이미 고민하고 알던 내용이라 어렵지는 않았다. 동의하는 부분도 많다. 그러나 사회와 문화 안으로 뛰어들어 행하는 모습을 빼고 말해서 아쉽다.

기독교의 범위를 몰몬교, 여호와의 증인 등까지 포함하는 것 같아서 의아했다. 혼자 정리하기에는 범위가 넓고, 예배와 일상을 망라하기 때문에 함께 토론하며 읽으면 좋겠다.

 

2. 특강 욥기 (권지성, 358) / 성경 강해

욥기를 참 좋아한다. 욥기를 오래 묵상했고, 욥기 강해도 몇 권 읽었다. 특강 욥기는 읽을만하다. 내가 읽은 다른 강해서와 내용이 다르다. 저자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설명한다. 새로운 내용이 꽤 많았다. 특히 엘리후에 대해.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장에 맞지 않게 읽어서 내용을 올바로 요약할 자신이 없다. 다음에 다시 읽고 소개해야겠다.

참된 믿음은 때때로 하나님과 갈등을 일으킨다. 하나님을 향해 질문하고 씨름하는 것,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무신론자의 회의와 같지 않다. 욥과 같이 소리치며 왜 자신을 죽게 내버려 두지 않느냐고 항변한다고 해서 그가 믿음이 없는 거짓 신자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장 자랑하고 싶어 하신 인간이 욥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여호와에 대한 욥의 믿음은 반감되지 않았으며, 욥은 이 모든 진실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직면하고 싶어 한다.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그가 마치 죽은 것과 같이 엎드려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그 어느 순간보다 하나님의 임재를 강하게 경험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지키심과 권징과 단련하심을 체험하고 있다.(7:18) (114-115)

여호와의 연설에는 정의와 고통의 문제에 대한 언급이 전무하다. ~ 긴 침묵 후 여호와께서 욥에게 시작한 말이 질문이라는 사실은 정의에 대한 토론을 넘어 다른 차원의 문제를 다루려는 의도가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278)

 

수요일의 전쟁 (게리 슈미트, 391) / 중등 소설(미국에선 동화로 분류)

우리 가족이 사랑하는 책, 너덜너덜하게 낡아버린 책이다. 1960년대 후반 미국 분위기를 이해해야 책의 진짜 가치를 느낀다.(책벌레 자녀는 이걸 몰라도 느꼈지만) 가볍게 툭툭 내뱉는 문체를 아주 잘 번역한 것 같다. 유쾌하면서 감동을 주는 소설이다. 이 책은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다.”(책에 나온 표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10번쯤 낄낄거리고, 다섯 번쯤 울었다. 다섯 번쯤 읽은 지금도 몇 번 낄낄거리고 한두 번 눈물이 찔끔 났다. 그만큼 내가 좋아하는 책이다. 독서반에서 토론할 때 번쩍 떠오른 생각 하나,

영문학과 교수인 저자가 왜 세익스피어에 대한 내용을 잔뜩 넣어서 소설을 썼을까?”

대학생과 이야기할 내용인, 세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맥베스, 템페스트> 등에서 인간다움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굳이 동화에 넣은 까닭이 뭘까? 독서반 아이들과 이걸 이야기하며 참 좋았다. 그래서 책벌레 선생님의 행복한 책이야기에 그 내용을 실었다. 이 책은 다시 읽어도 재미있다.

 

《짝짝이 양말》, 황지영
《나는 설탕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은재

동화책은 단순한 내용이 많습니다. 동화책을 어느 정도 읽은 사람에겐 뒷부분이 예상됩니다. 예상이 맞을 때가 많습니다. 예상한 내용이 나오면 재미가 덜합니다. 그런데 짝짝이 양말나는 설탕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예상을 빗나갔습니다. 내용뿐만 아니라 작가의 문장력도 좋네요. 글을 잘 쓴 작가 덕분에 감정이 끓어올라 아이고, 그냥 확!” 하는 생각도 듭니다. 내용이 새롭고, 책에 빨려들어 감정이 일렁이는데, 대사마저 색다릅니다. 이야기에 쏙 빠져 고개를 끄덕이다 보니 벌써 마지막 장입니다. 책이 이끌어가는 방향도 좋네요. 확 폭발하는 게 아니라 회복하고 치유하는 방향입니다.

이해하기 힘든 아이들
사람도 책과 같습니다. 읽기 쉬운 책이 있고 어려운 책이 있습니다. 사람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말이 없거나 남다르게 행동하면 어떤 사람인지 알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또한 사람은 관계에 따라 다르게 읽힙니다. 똑같은 사람이 누구에겐 쉬운 책이고, 누구에겐 어렵습니다. 한 사람과 다른 사람이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다르게 읽히기 때문입니다. 조금 단순하긴 하지만 아이를 읽어내기 위해서도 노력이 필요합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하면 마음을 달랠지 알아내면 관계 맺기가 쉬워집니다. 어떻게 행동할지 예상이 되면 아이를 대하기 편합니다. 저는 남학생이 편했습니다. 왜 그러는지, 어떻게 하면 마음을 가라앉힐지 보였습니다. 제가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겠죠. 반면, 여학생은 어려웠습니다. 4학년까지는 이해하기 쉬웠는데 5학년이 되면 어려워집니다. 사춘기 여학생은 해석하기 어려운 암호문처럼 느껴집니다. 여교사들은 남학생을 대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을 꽤 들었습니다. 대신 여학생은 대하기 편하다고 합니다. 여교사들이 여학생 시절을 겪었기 때문이겠지요.

남교사인 제게는 남자아이가 편했지만 남자아이 마음을 잘 알고, 올바로 대하지는 못했습니다. 여교사도 여자아이와 관계에서 어려움이 생깁니다. 이럴 때 도움이 되는 책을 소개합니다. 난 밥 먹다가도 화가 난다는 남자아이를 이해하는 데 좋습니다. 여자아이를 이해하는 데는 짝짝이 양말나는 설탕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가 좋습니다.

짝짝이 양말, 내 짝은 어디에 있을까?
책을 읽은 여교사가 SNS에 이렇게 썼습니다.
사춘기 소녀들이 관계에서 겪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의 결을 너무나 잘 살린다. 읽으면서 팔에 소름이 돋았다. 여자아이들 사이에 오가는 질투, 동경, 소외의 순간을 이리도 생생하게 포착하다니! 뿐만 아니라 결말 또한 맞춤하다. 너무 이상적이지 않게, 아이 스스로 길을 찾아가도록 이끈다.

읽으면서 떠오르는 아이들이 있었고, 마음 한 켠이 찌릿하며 아파 왔다. 이 책을 미리 읽었다면 그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눴을 텐데. 아이들은 책에서 자신을 닮은 아이를 만나 실컷 울고 조금은 후련해질 수 있었을 텐데.

저도 SNS짝짝이 양말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짝짝이 양말은 정말 최고다. 5~6학년 여자 친구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 고학년 여자아이들은 단짝이 없으면 너무 불행하고, 단짝을 잃을까 불안해한다. 함께 어울리는 친구가 홀수가 되면 아이들 사이에는 불안하고 날카로운 기류가 흐른다. 어른이 잘못 끼어들면 엄청난 혼돈으로 빠져드는, 예민한 순간들이 이어진다. 이 책은 여자아이들 사이의 관계를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칼날 위에 서 있는 듯 위태로운 순간을 이야기에 잘 담았다. 단짝에 집착하는 행동의 이면을 짚어주고, 관계에서 받은 상처를 품고 진정한 나로 성장하는 길도 잘 보여준다.

짝짝이 양말을 읽고, 작가의 다른 책을 읽고 싶었습니다. 여학생들의 갈등을 다룬 책 중에 갈등을 이렇게 잘 풀어가는 책이 드뭅니다. 결말에 이르러서는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라는 점을 관계 회복의 해결책으로 제시합니다. 5~6학년 아이들과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해보고 싶은 책입니다. 남자아이들은 답답해하겠지만 여자아이들은 이야기에 빠져들 겁니다. 몇몇은 새로운 실마리를 찾기도 할 거예요.

설탕으로 만들면 부서진다.
설탕을 녹여 달고나를 만들어봤지요? 설탕이 녹아 말랑말랑해지면 원하는 모양을 만들 수 있어요. 딱딱하게 굳어도 녹이기만 하면 다른 모양을 만들지요. 내가 원하는 모양대로 만들어지는 게 재미있어요.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만들면 어떨까요? 공부 잘하는 아이로 만들고, 엄마 말을 잘 듣는 아이로 만드는 거예요. 엄마는 결혼 십 년 만에 태어난 기적(주인공 이름)이를 자기 마음대로 해요. 엄마가 부모님의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자랐는데, 이를 아들에게 보상받으려 하죠. 기적이는 엄마를 기쁘게 하는 설탕 과자가 될까요?

제목이 색다릅니다. 설탕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고요? 그럼 엄마 뜻대로 되지 않는 내용이네요. 설탕으로 만들면 쉽게 부서집니다. 부모의 기대가 클수록 자녀는 힘듭니다. 견디기 어려워지면 부모를 피하거나 속이지요. 그럼 부모와 자녀 사이가 멀어지고 관계가 어긋납니다. 아이 마음을 살피지 않고 부모의 욕심을 내세우면, 사랑에서 나온 행동이라 해도 폭력이에요. 폭력으로는 아이를 올바로 기르지 못합니다.

기적이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지만 엄마가 시키는 게 싫습니다. 학원 가는 시간, 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까지 통제하면 견디기 어렵지요. 더구나 6학년은 마음에서 괴물이 스물스물 올라오는 때입니다. 이 괴물이 선생님께 대들 용기, 엄마에게 덤빌 용기를 깨웁니다. 지금까지는 엄마가 원하는 모양으로 설탕 과자를 만들었는데 갑자기 아들이 딱딱하게 변하면 어떻게 될까요? 쉽게 부서질까요, 아니면 엄마와 선생님을 부숴버릴까요?

20대 교사일 때 저는 아이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30대가 되었을 때 아이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남자아이들은 쉬웠는데 여자아이들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딸을 기르면서 알게 됐지요. 제가 여자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요. 잘 몰라서 준 상처가 많습니다. 그때 짝짝이 양말이나 나는 설탕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가 있었다면 실수를 덜 했을 텐데 아쉽습니다. 그때는 이런 책이 없었거든요. 남자아이, 여자아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읽어보세요.

'내가 읽은 책 > 아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험을 다룬 초등 고학년 책 목록  (2) 2022.01.28
방학에 읽어야 할 책  (2) 2021.12.11
진짜 가족, 이토 미쿠 지음  (0) 2020.03.29
가장 아끼는 동화  (0) 2020.03.11
개학 연기, 참으로 독서할 때!  (0) 2020.03.08

우리는 아이들에게 모두 빚진 사람들이다./ 송인수 / 우리학교

강원도 시골에서 교사로 지내면서 답답했다. 생각을 나눌만한 사람이 너무 적었다. 학교를 하나님이 주신 사역지로 생각하는 사람은커녕 교회 다니는 교사도 드물었다. 교회에서 집사, 장로인 교사도 학교에서는 그냥 교사였다. 일반 교사 중에 좋은 사람 많았지만 자꾸만 나쁜 교사가 눈에 들어왔다. 초보로 허덕이며 존경할만한 선배를 보내주세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학교를 사역지로 생각하며 아이에게 삶을 쏟는 교사를 만나게 해주세요.” 기도했다. 책에 나오는 인물이 아니라 나와 똑같은 살과 피를 가지고 살아가는 교사 중에 존경할만한 사람을 보내달라고 기도했다. 내 곁에도 좋은 교사가 있었지만 존경이라는 말을 쓸 정도는 아니었다. 내 기도제목은 기독교사대회에 참가하면서 응답 받았다.

가치 있는 일에 자신을 쏟아 붓는 사람

기독교사단체 연합모임인 <() 좋은교사운동>에서 2년마다 한 번씩 기독교사대회를 한다. 처음 참가한 기독교사대회에서 송인수 선생님을 만났다. 좋은교사운동 대표로 섬기던 선생님은 기독교사대회 마지막 날 우리에게 후원금 증액을 요청했다. 지금도 좋은교사운동은 교사들의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앉아있는 1800여 교사들은 돈을 내는 위치였고 선생님은 후원을 요청하는 위치다. 뭐라 해야 할까? 귀한 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에 후원해 달라고 부탁해야겠지.

고통당하는 아이들 사진을 보여주거나 효과가 많은 사역이라고 홍보하면 후원금이 늘어난다. 동정심을 유발하거나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설득해도 늘어난다. 헌금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설득한다. 예배당 짓는 걸 성전 건축이라고 해야 헌금이 늘어난다. 헌금 많이 하면 복이 올 거라고 말하면 역시 헌금이 늘어난다. 하나님 나라에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해도 늘어나겠지만 다른 방법보다 후원금이 많아지진 않을 것이다.

선생님은 당당하게 요구했다. 우리나라 교육을 살리는 일인데 후원금 조금 내고 만족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돈 내놓으라는 소리 듣고 찔렸다. 교회에서 가난한 성도에게 이런 말 하면 안 된다. 선생님도 안다. 그러나 우린 교사다. 아이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이를 위한 일에 후원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나! 미안해하며 증액했다. 후원 더 해달라는 소리를 그렇게 떳떳하게 말하는 분은 처음 봤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모두 빚진 사람들이다>에서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후원을 요청한다는 것은 가치 있는 일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요청한 자가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나는 늘 당당하게 요구하려 한다. 만일 내가 타인에게 운동에 초대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면, 그것은 상대에게도 미안한 일이다. 아니 그 이전에, 자신에게 더더욱 미안한 일이다. 그런 일은 당장 중지해야 한다. 자신에게나 남에게 미안한 일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 일에 자신을 밀어 넣을 만큼 가치를 확신할 때 우리는 타인에게 스스럼없이 돈과 시간을 요구할 수 있다.(102-103)”

교회에서 동정심, 성전 건축,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라는 가치, 예수 그리스도가 원한 일이라는 가치를 외치며 헌금하자는 소리를 듣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모한 운동가

송인수 선생님은 구로고등학교에서 13년 동안 교사로 생활하다 2003년 사직했다. 기독교사모임인 좋은교사운동을 섬기기 위해 안정된 직장을 포기했다. ‘안정을 포기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아이들 곁을 떠나는 게 힘들었다고 한다. 강의 중에 선생님은 자살한 고등학생의 시를 읽으며 아이를 위해 자신을 내던져 헌신하라고 울부짖었다. 함께 울었다. 더 높은 가치, 고귀한 목표를 위해 교사인 우리가 더 낮아지고 고생하자고 외쳤다. 돈 많이 벌지 말고 고생하자는 말에 박수를 쳤다.

5년 동안 좋은교사운동 대표로 섬긴 뒤에 우리나라 사교육 문제와 맞서 싸우겠다며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시작했다. 무모하다. 사교육 걱정을 없애겠다니 가당키나 한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골치 아픈 곳이 교육부장관 자리다. 무얼 해도 욕먹는다. 아이를 생각하면 이익집단에 욕먹고 학부모 생각하면 관료가 욕한다. 교사를 생각하면 학부모가 욕한다. 사교육 문제는 논란의 핵심에 있다. 모두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 오기를 원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느냐?’ 물으면 저마다 말이 다르다. 국민 전체의 생각을 바꾸어야 하는 문제다.

선생님은 학생들이 사교육에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꿈을 꾸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교육이라는 철옹성에 온몸을 부딪칩니다. 사교육업체에 고발당하고 위협도 받지만 가치에 투자한 이상 맞서 싸웁니다. 무모한 출발에 놀랐는데 치밀한 정책, 꼼꼼한 추진력, 성실한 태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학생을 향한 사랑에 감격한다.

선생님은 지독하게 가난한 시절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았다. 원하는 고등학교에 다닐 형편이 되지 않아 당시 대통령에게 호소하는 편지 보냈다가 고생도 했다. 문제집 팔아주고 받은 돈으로 회식하는 문화에 반대해서 왕따를 당하며 괴로운 시절을 보냈다. 그런 삶이 있어서 물러설 수 없는 희망에 대하여(책의 부제)’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었겠지요. <우리는 아이들에게 모두 빚진 사람들이다>는 선생님이 틈날 때마다 쓴 생각 모음(일기, 에세이)입니다.

 

빚진 자로 사는 삶

선생님은 기록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생각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페이스북에 글을 자주 올립니다. ‘아깝다 영어 헛고생을 출판한 출판사에서 여러 번 요청해서 나온 책입니다. 틈날 때마다 올린 글이라 한 가지 주제로 정리하지 못한다. 책을 내려고 글을 쓴 글이 아니라 주제로 내용을 구분하기 어렵다. 가족(아들, 아내, 어머니), 소소한 일상(날씨, 전철에서 만난 제자), 묵직한 운동(시민운동을 하는 이유, 운동의 품격, 운동을 하는 자세와 방향), 미래에 대한 소망과 헌신에 관한 이야기가 얽혀있다.

가족 이야기를 읽으며 안타깝다’, ‘멋지다생각한다. 아이들에게 빚진 자로 분투하며 가족에게 빚을 지는 마음을 안타깝게 읽었다. 그러면서도 아내를 위해 가정일을 나누고, 아들과 단둘이 텐트 꾸려 여행을 다니며, 환경을 위해 여전히 선풍기로만 버티는 모습이 멋졌다. 한 발 물러서기가 얼마나 쉬운 줄 알기 때문에 이 악물고 서서 버티는 모습에 마음이 짠했다. 다음 세대를 위해 힘든 길을 선택한 남편과 아버지를 존중하며 함께 가는 가족이 멋집니다.

책에서 가족만큼이나 중요한 내용은 운동입니다. 운동가로서의 기질과 성품을 갖지 못한 저로선 시민단체를 이끌어가는 리더십에 그저 놀랄 뿐입니다. 운동을 왜 하는지, 누구와 어떻게 하는지 이렇게나 고민해야 하는지 몰랐다. 언젠가 조선소 회장이 수십 억의 후원금을 제안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절박하게 필요하고 고민하고 아파하고 기도할 때 들어온 돈이 아니어서 거절했다고 한다. “절박하게 운동하다가 적절할 때 들어오는 거액은 거액이 아니다. ‘사명의 규모후원금보다 큰 조직이 되어야지, 후원금의 규모가 사명보다 큰 조직은 위태하다.(124)” 저는 이런 생각 못한다. 운동의 효과만 생각하고 감사하게 썼을 겁니다.

길은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다. 모순에 자신을 던지는 사람이 바로 길입니다. 그렇게 던지면 없던 길이 생깁니다.(39)” 모순은 해결할 방법이 없는 문제라 피해가라는 뜻 아닌가요? 모순이기 때문에 자신을 던져 길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사교육이라는 거대한 모순에 구멍을 뚫고 돌을 깨며 조금씩 길을 만드는 걸 보면 정말 길이 생기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하나님 앞에서 산다.

선생님께는 삶이 곧 글입니다. 지금 겪어내는 일상과 앞으로 만들어갈 일상의 바탕에는 빚진 자라는 마음이 엿보입니다. 현실에 바탕을 두되, 미래를 바라보며, 깊은 절망과 아픔을 딛고 서는 모습을 써낸 글이라서 귀한다. 천천히 두고두고 읽어야겠다.

“‘이 있어야만 직면할 수 있는 강물과 계곡이 우리 각자에겐 얼마나 많은가. 한 번 건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닌, 생이 끝날 때까지 반복되는 삶의 숙제 앞에 우리는 겸손하게 을 구하며, 얻어진 답에 우리 생을 실어야 한다. 그것만이 가장 안정된 선택이다. 진정으로 용감한 선택이다.(23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