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만남을 꽤 많이 했는데 마석훈 선생님이 최고였어요.

우리가 만난 통일, 북조선 아이책을 읽으며 거짓말 같은데 이렇게 사는 분이 있구나.’ 생각했었죠.

정작 마석훈 선생님은
우리가 만난 통일, 북조선 아이
탈북한 아이들과 20년 동안 살면서 겪은 일 중에서
가장 맑고 순수하고 절정인 느낌만 모아놓은
책이라 하세요.

추하고 부끄럽고 한심한 부분이 많은데 다 빼셨다고~

 

2시간 동안 온라인으로 얼굴 보며 이야기하면서
말을 정말 깊게 하시는구나!’ 생각했어요.

앞으로도 이런 만남은 드물 것 같아요.

이야기한 내용을 모두 글로 옮기고 싶을 정도였어요.
(방학에 정말 옮길 수도~~~)

 

“탈북한 아이들이 잘못한 게 없는데
굶주리고... 부모 잃고... 고생고생하며 힘들게 살았어요.
우리 민족의 아픔을 아이들이 짊어지고 사는 것 아닐까요?
그렇다면 아이들이 예수 아닐까요?”
하셨어요.

많이 미안했어요.

이분이 정말 훌륭한 삶을 살았는데
정작 당신은
하고자 하는 일이 다 실패해서 계속 이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하시네요.

모든 기웃거림이 실패로 끝나서 이 일을 계속하게 되었다는 말이 너무 고마웠어요.

 

고민을 준 이야기가 참 많아요.
"인간은 선택할 수 있으면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한다이 선택이 정말 좋은 선택일까?"

나를 위해 고민하며 지혜롭게 선택한 게 나를 망친다는 생각을 왜 지금까지 한 번도 못했을까요?
선택할 수 없도록 자신을 몰아세우면 어떻게 될까요?
그런 선택이 탈북한 아이들과 20년 넘게 지지고 볶고 싸우는 이 길을 가게 만들었다고 하시네요.

좋은 일은 하기 싫은데도 꾸역꾸역억지로겨우겨우 하는 거다!
저도 계속 꾸역꾸역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좋은 책이에요.

정말 좋은 분이에요.

독서모임에서 읽고 마석훈 선생님을 초대해주세요.

이분을 전국 독서모임에 소개하고 싶어요.

연락처가 필요하면 문의해주세요.

부모는 자녀가 부모님 뜻을 완벽하게 이루어주기를 바란다. 꾸짖고 타이르고, 공부하라고 시킨다. 그러나 아이가 부모님 뜻을 완벽하게 이루어줄 거라고 확신하지는 않는다. 현실은 다르니까.


모드 쥘리앵의 아버지는 완벽한 아이를 만들기 위해 자신이 원하는 아이를 찾아(가난한 집 아이) 공부를 시킨다. 아이를 완벽하게 기를 엄마로 만든다. 아이가 어른이 되자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 그 아이를 완벽한 아이로 만들기 위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가르친다.

루소가 자녀를 방치했다면(루소는 자녀 다섯을 고아원에 버렸다.), 모드 쥘리앵은 오직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생각해야 한다. 아버지가 생각한 완벽한 교육은 상상도 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아버지의 기준은 2차 대전 같은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 어떤 악조건에서도 견디는 걸 최고의 교육이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모드 쥘리앵은 쥐가 사는 지하실에서 혼자 버티기, 난방 없는 곳에서 겨울 견디기, 아버지와 어머니가 씻은 물로 목욕하기, 표정을 드러내지 않기 같은 것들. 무엇보다 아버지에게 정서적으로 감금당해 사랑하고 슬퍼하고 위로받을 자유까지 억압당하고 산다. 수용소에서 견디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집이 수용소가 돼버린 곳에서 수용소장 같은 아버지에게 순종하며 살아야 했다.

특히 어머니와 아이의 관계에서 생각할 점이 많다. 어머니와 딸 모두 아버지의 폭압적인 권위에 희생당한다. 희생자 어머니가 희생자 딸을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경쟁자로 생각한다. 모드 쥘리앵은 아버지를 두려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갖다가 자책하고, 어머니에게 보호를 바라면서 실망하고~

그런데도 무너지지 않는다. 넓은 저택에 갇혀 아버지, 어머니 외에는 사람을 거의 만나지 못하면서 어떻게 견뎠을까? 말과 개, 도스토예프스키와 레미제라블, 피아노와 악기들이 위로와 사랑을 느끼게 해주었다. 모드 쥘리앵은 동물을 사랑하고, 책을 읽으며 아버지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을 갖춘다. 악기를 연주하며 위로받는다.

‘완벽한 아이’는 자녀를 어떤 존재로 바라봐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부모와 교사에게 추천한다. 정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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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난 통일, 북조선 아이

“모조리 아오지 탄광이야!”

  북한을 탈출해서 강원도 바닷가에 온 학생이 있었다. 먼저 나온 고모가 여기 살아서 아이도 **시로 왔다. 대부분 그렇듯 탈북하느라 공부를 못했기 때문에 두 살 어린 동생들과 같이 배웠다. 2 나이의 탈북학생이 초등학교 6학년으로 다녔다. 말투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생각이 완전히 다르니 어울리기 어려웠다. 학생은 말수가 적었다. 조용히 학교에 왔다가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다.

  초등학교 6학년은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시끄럽게 떠든다. 선생님이 말해도 건성으로 대답한다. 아이들이 교실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어느 날, 아이가 벌떡 일어나서 양손으로 책상을 !” 하고 내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간나 쌔끼들, 북에서 이렇게 하믄 모조리 아오지 탄광이야!”

  순간 정적이 흘렀다. 남조선 아이들 행동을 참다 참다 폭발한 모양이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남한에서는 배고프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탈출했지만, 이런 상황을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두 살 어린 동생들과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고, 예의 없고 철없는 모습을 계속 봐야 하고, 게다가 자기가 간나 쌔끼들보다 공부를 못해서 자존심 상할 줄은 예상도 못 했을 것이다.

  북한이탈주민은 북한을 떠나 험하고 어려운 길을 거쳐 우리나라에 왔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만나면 어떨까? 우리나라에 온 삼만 명의 탈북민은 남한에서 행복하게 살까? 이웃과 사이좋게 지낼까?

그룹홈 ‘우리집’

  3~12월까지 한 달에 두 편씩 글을 보내드리고 월 1만 원씩 받는 펀딩을 했다. 후원할 곳을 추천받으면서 그룹홈 우리집을 알게 되었다. 마석훈 대표가 그룹홈을 만들어 탈북청소년들과 함께 산다고 했다. 지금은 유치원부터 대학생까지 11(해마다 달라짐)과 아파트에서 함께 산다. 북한을 탈출하면서 부모를 잃거나 헤어진 아이, 부모와 함께 지내지 못하는 아이들을 돌본다고 하셨다. 죽음의 길을 지나면서 상처받은 아이들, 표현이 강해서 함께 지내기 어려운 아이들과 18년 동안 같이 살았다는 말을 듣고 정말 놀랐다.

  후원금을 보내드렸더니 책을 보내주셨다. 우리가 만난 통일, 북조선 아이라는 책이었다. 앞표지가 평범해서 자료집을 보낸 줄 알았다. 책을 뒤집었다가 뒷표지에 꽂혀버렸다. 지금까지 읽은 책 수천 권, 표지를 보았던 책 수만 권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뒷표지였다. 책을 읽으면서 뒷표지가 점점 아름다워졌다. 너무 귀한 책이다. 책벌레가 뽑은 올해의 책에 해당하는 책이다.

  책은 5부로 쓰였다. 마석훈 대표는 하나둘학교(1부. 2001, 북한이탈주민이 정착교육을 받는 하나원 안에 있는 학교), 늘푸른학교(2부. 2002, 하나원을 퇴소한 무연고 탈북청소년의 생활훈련과 자립을 돕는 공동체), 그룹홈(3부. 2003~2005, 임대빌라에서 탈북학생들과 함께 사는 집), 그룹홈 우리집’(4부. 2006~현재)에서 탈북청소년들과 살았다. 아침에 학교 보내고 저녁에 돌아오는 아이들 맞아들이는 생활이 아니다. 아침에 학생들 만나 저녁에 집으로 보내는 것도 아니다. (5부는 통일에 대한 생각을 다루었다.)

  남한은 북한과 다르다 . 이만저만 다른 게 아니다. 당장 말투가 달라 북한에서 온 줄 다 안다. 탈북청소년은 완전히 새로운 사회에 적응해야 한다. 부모와 헤어졌거나 부모가 죽기도 했다. 목숨 걸고 나오는 과정도 힘들었는데 남조선에서 살아가는 현실이 만만치 않다. 상처는 많고 가치관도 다르다. 별것 아닌 일에도 다툼이 생길 수 있다. 누군가 도와주어야 한다. 그런데 마석훈 대표 외에는 탈북청소년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것도 힘들 텐데 학교와 사회에서 적응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 과정을 이 책에 담았다. 학생들 설득하다가 다투고, 학생들이 학교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몸부림친 내용이다.

  책을 읽으며 자꾸만 멈추어야 했다. 아이들이 목숨 걸고 나온 이야기가 슬프고, 극적이고, 대단해서가 아니다. 불쌍하거나 놀라워서도 아니다. 마석훈 대표가 학생들을 대하는 모습에 너무 공감해서이다. 인간을 이렇게나 깊이 이해하다니 놀랍다. 탈북청소년들과 같이 살면서 겪은 이야기를 과장하지 않고, 동정심을 유발하지 않고, 인간으로 대하는 모습이 너무 고마웠다.

통일 하나! 가지게 되더라도 남에게 거만하지 않게 베풀고,
통일 둘! 도움 받아 살더라도 비굴하지 않게 받으며,

  그룹홈 우리집가훈은 다섯 가지다. 첫째가 가지게 되더라고 남에게 거만하지 않게 베풀자는 내용이다. 자립하자, 성공하자 하며 목표를 이루자는 내용이 아니다.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공동체에서 비굴함과 거만을 가훈으로 삼다니 대단하다. 후원금을 보냈더니 마석훈 대표가 사진 찍고 기사 내는 그런 걸 원하지 않냐고 물으셨다. 목숨 걸고 북한을 탈출한 아이들, 더구나 돌볼 사람이 없는 아이들만 지내는 곳이라 하면 사람들 반응이 딱 보인다. “아이고, 불쌍해서 어떻게 해?”, “불쌍한 아이들에게 뭐라도 줘야겠다!” 하겠지.

  불쌍해서 주는 건 좋지 않다. 아이라서 도와주고, 같은 민족이라 도와주고, 예수님 생각하며 도와주는 건 괜찮지만 상대가 불쌍해서 도와주는 건 반대한다. 도와주는 자신을 우위에 두고, 상대를 저기 아래에서 손을 내미는 하찮은 존재로 만드는 건 오만이다. 오만은 도와주는 사람, 도움받는 사람 모두를 망친다. 탈북학생들은 이런 태도를 정말 싫어한다. 마석훈 대표도 운영비 쉽게 마련하는 방법을 알지만, 방송을 이용하지 않는다. 자신이 겪은 일을 과장해서 불쌍한 척하며 후원자를 이용하는 학생들을 꾸중하고 혼낸다. 탈북학생들 내세워 비굴한 표정 지으면 돈이 생기고 편해지는데 그러지 않는다. 배짱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기 때문이다.

  “제 돈이 아니에요. 돈 받아서 전하는 사람이라 그런 거 안 합니다. 받은 돈 전달했으니 알아서 쓰세요!”
했다. 이 말을 듣는 마석훈 대표 표정에서 내 마음을 보았다. 돈 주면서 생색내는 사람들에게 질린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볼 때의 표정이었다.

통일 셋! 누구 하나 소외됨이 없도록 늘 깨어있으며,
통일 사천만! 가난한 이웃을 섬기기 위해 내 삶을 나누고,

  누구 하나 소외하지 않고 늘 깨어, 가난한 이웃을 섬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용서하고, 보듬고, 한없이 너그러워야 할까? 현실을 모르는 사람이나 할 이야기다. 언젠가 우리의 삶이 아름다워지겠지만, 살아가는 과정은 다툼과 긴장의 연속이다. 자녀를 기르면서도 꾸중하고, 설득하고, 화를 내야 하는데 탈북한 청소년들과 함께 살면 장난 아니다. 마석훈 대표가 참고 기다린 내용, 학교에 가서 빌었던 내용도 좋았지만 학생과 싸운 내용, (어쩔 수 없이, 때론 쿨하게) 포기하는 내용도 좋았다. 그룹홈을 떠난 학생에게 어찌 내게 그럴 수 있을까, 내가 지를 어찌 키웠는데, 쌍누무 새끼.” 하는 부분이 참 좋았다. 아이를 사랑한 사람이라면 이 마음 안다.

통일 팔천만! 한반도의 평화공존을 위해 노력합니다.
우리,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함께 갑니다!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통일해야 하느냐 물으면 대부분 하지 말자고 한다. 북한이 고개 숙이고 들어오면 받아주는 통일을 원한다. 어른들도 잘사는 우리나라가 못 사는 북한을 흡수하는 통일을 원한다. 통일을 기업 인수합병처럼 생각한다. 기업에 이익이 되는지 따져보고, 대기업이 중소기업 삼키듯 북한을 먹어버리려 한다. 북조선 동포들이 그런 통일을 받아들일까? 마석훈 대표는 영토 통일, 자원 통일이 아니라 사람 통일을 말한다. 오천만 국민이 삼만 명 탈북민을 받아주지 못하면 이천오백만과 어떻게 통일하겠느냐고 묻는다. 오만하게 도와주고, 그들이 굽신거리며 고마워하는 걸 보고 싶어 하는 통일이라면 글쎄~ 과연 그게 통일일까?

이 책은 책벌레 이름을 걸고 추천한다. 꼭 사서 읽으세요. 빌리지 말고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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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운전자가 폭주 기관차를 몰며 사람들을 죽이고 있을 때는 우선 그를 기관차에서 끌어 내려야 한다.”

본 회퍼는 미친 운전자 히틀러를 암살하는 계획에 참여했다. 탁월한 신학자가 미친 운전자를 기관차에서 끌어 내려야 한다.’는 말을 암살로 실행할 줄 몰랐다. 어떤 사람은 죽어 마땅하다고 말한 셈이다. 과연 죽여도 되는 사람이 있을까, 죽여도 되는 대상을 사람이 결정해도 될까?

라스꼴리니코프는 비범한 사람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범인(凡人)에게 폭력과 살인을 저질러도 된다고 논문에 썼다. 이는 히틀러가 주장한 아리안 우월주의를 생각나게 한다. 우월한 민족과 열등한 민족이 있으며, 우월한 민족이 열등한 민족을 제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라스꼴리니코프가 전당포 노파를 죽이고도 죄책을 느끼지 못한 것도 같은 마음이다. 전당포 노파에 대한 마음은 놔두고라도, 라스꼴리니코프는 전당포 노파에게 시달림을 당하며 사는 착한 리자베따를 죽인 죄책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우월감은 고치기 어렵다. 히틀러의 마음을 어떻게 바꿀까? 검사로 대표되는 기득권 권력층의 마음을 바꾸는 방법이 있을까? 그들보다 더 큰 힘으로 눌러 뭉개버리면 힘을 더 길러 복수하려고 하거나, 상대의 우월감에 고개를 숙일 것이다. 그들 스스로 깨닫게 하는 방법을 찾기 어렵다. 그들이 가진 우월감이 교만과 사랑 없음에서 나오는 죄악임을 고백하게 만들 방법이 있을까? 더구나 히틀러가 유대인을 죽일 때 가만히 지켜본 사람들에게 나는 너희와 다르다. 너희가 죽는 건 안타깝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한 태도도 죄라고 고백하게 만들 수 있을까?

죄와 벌이 우리가 생각하는 범죄와 그에 따른 죄책감을 말하는 줄 알았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생각한 죄와 벌은 범죄 행위와 죄책감이 아니다. 죄악의 근원에 가까운 우월감 즉 교만을 말한다. 교만은 내가 너보다 낫다는 마음에서 나온다. 이는 판단 기준을 자신에게 두어야 가능하다. 교만은 잘난 척을 말하지 않는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교만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유리한 기준이 있다. 사회에서 하찮은 대접을 받는 사람도 잘하는 게 있다. 그것만으로 판단하면 누구나(비록 사람들이 하찮게 여김 받는 사람이라도) 우월감을 가질 수 있다. 라스꼴리니코프는 노파를 죽여도 되는 존재라고 보았다. 노파 역시 라스꼴리니코프를 한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노파는 돈을 쥐는 방식으로, 라스꼴리니코프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내주는 방식으로 우월함을 드러냈다.

죄와 벌에는 다양한 사람이 나온다. 귀족과 평민, 부자와 빈자, 부모와 자녀, 남성과 여성, 어른과 아이…… 귀족의 허세와 이기적인 마음이 평민의 무절제와 충동적인 마음과 대조된다. 부자의 정돈된 모습과 욕심이 빈자의 무질서한 모습과 방탕에 대조된다. 부모가 자녀를 윤택하게 기르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녀의 안쓰러운 모습이 대조된다. 생활비를 술로 탕진하고 어머니와 여동생이 아껴 모은 돈을 생각 없이 써버리는 남성이, 아빠와 오빠가 써버린 생활비를 위해 희생하는 여성이 대조된다. 이웃과 가족을 힘들게 하는 사람의 공통점은 우월감이다. 이기적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우월감을 가진 사람이 갈등을 일으킨다.

죄와 벌에서 귀족은 평민보다, 부자는 빈자보다, 남성은 여성보다, 어른은 아이보다 우위를 차지한다. 부자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돈으로 여성을 사고 괴롭힌다. 귀족 루쥔은 결혼마저 자신을 높이는 도구로 이용한다. 아빠 마르멜라도프는 딸 소냐를 창녀가 되게 만든다. 그들 중 아무도 자신이 죄를 지었으며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죄를 더할 뿐, 용서와 회개와 화해에 다가가지 못한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난한 이웃, 여성, 아이가 죄의 결과를 감당하며 죄인의 마음을 움직인다. 소냐는 몸을 팔아서 가족을 돌본다. 두냐와 엄마는 생활비를 아껴 오빠에게 보낸다. 리자베따의 죽음은 라스꼴리니코프의 마음을 흔든다.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자신의 죄에 대한 벌을 깨달은 것도 라스꼴리니코프가 소냐에게 한 고백을 들은 뒤였다. 사랑과 연민에는 희생과 헌신이 따른다. 사랑과 헌신은 우월감과 교만이 만들어낸 상처를 치료한다.

1994년 르완다 후투족과 투치족 사이의 종족 갈등으로 100만 명이 학살당했다. 1992년 유고 코소보 지역에서 세르비아가 코소보 지역 주민을 학살했다. 이슬람이 기독교와, 이슬람 수니파가 시아파와 서로를 죽인다. 중국, 인도, 터키, 미얀마, 브라질, 아프리카 곳곳에서 종족이나 종교가 다르다고 서로를 죽인다. 사람을 죽이는 사람들의 논리는 모두 똑같다. “우리가 옳다. 너희가 잘못했다.” 때론 타협의 여지마저 없앴다. “너희 존재 자체가 잘못이다!”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더 교묘하게 얼굴을 바꿔 등장할 뿐이다. 겸손한 태도를 보이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비교하고 평가하며 사람을 내려다본다. 술자리에서 국민을 개돼지라고 표현한 교육부 관리, 아이를 두고 싹수가 노랗다고 말하는 교장과 교사의 마음에는 우월감이 자리한다. 아이에게서 아빠를 빼앗고 아이를 조부모에게 맡긴 엄마가 뒤늦게 아이를 데려가서는 이렇게 말한다.

장애인이 아니면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엄마가 백 번, 천 번을 말해도 안 듣잖아. 다음부터 안 한다고 하면 또 하고, 그게 몇 번째야? 다음부터 하지 마! 다음에 또 한다? 그러면 넌 집에서 쫓아낼 거야. 진짜야. 이젠 안 봐줄 거야. 그런 줄 알아. 알았어? 대답!”

이 또한 우월감이다. 자신이 옳다는 마음, 상대가 자기에게 맞추어야 한다는 마음이 죄다. 장애인을 비하하는 줄 모르는 이 엄마의 마음에는 우월감이 자리한다. 우월감은 차이를 만든다. 구별은 차별의 전제조건이다. 조선 시대가 신분제 사회였음을 나타내는 증거로 과거시험 응시 자격이나 재산 규모를 따지지 않아도 된다. 옷차림만 봐도 차별이 충분히 드러난다. 다름은 쉽게 틀림으로 변질된다.

교만과 우월감에는 벌이 따른다. 감옥이나 벌금이 아니다. 교만과 우월감은 평화를 깨뜨린다.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 분노하게 만든다. 자신 또한 화 난 상태로 살아가게 한다. 라스꼴리니코프가 자백하고 소냐와 결혼한 뒤에 평화를 얻었다. 두 사람을 살해하고도 당시로선 가벼운 벌을 받았다. 교만과 우월감을 드러냈다면 훨씬 큰 대가를 치렀을 것이다.

한때 내가 잘한다고 생각했다. 좋은 아빠, 좋은 교사, 좋은 시민으로 사는 걸 잘남의 증거로 생각했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힐수록 분노했다. 분노하며 비난했고, 비난하며 우쭐했다. 사실 운이 좋았을 뿐이다. 독서를 대접하는 시대에 사는 건 혜택이다. 아이들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한 건 내 과거와 성향을 사용하신 하나님 은혜 덕분이다. 토론을 이끄는 능력도 무조건 당신이 옳다고 생각한 아버지에 대한 반발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사람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배웠고, 아이들 글을 보면서 겉으로만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알았고, 토론하면서 다른 의견이 귀하며 다양성이 축복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노파를 죽이거나 이웃을 해하지 않는다 해도 우월감에 사로잡혀 산다면 라스꼴리니코프는 시베리아로 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을 것이다. 라스꼴리니코프는 운이 좋았다. 하나님 은혜이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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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 달이 된 오누이>가 호랑이에게 쫓겨 나무 위로 도망친다. 호랑이가 올라올수록 오누이는 더 위로 도망친다. 동아줄이 내려오지 않으면 오누이는 죽는다.

30년 전 사회책에는 대구 사과를 소개했다. 이후 사과 주산지는 청송을 지나 태백까지 올라왔다. 대구는 더워서 사과가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지구온난화로 강원도 영동지방에서도 바나나를 기르기 시작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자생 식물이 사라지기도 한다. 구상나무가 한꺼번에 고사한다.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나는 지구온난화, 기후 위기에 관심이 많다. 책도 꽤 읽었다. 그러나 기후 위기로 동물들이 생활 터전을 옮겨야 한다는 생각은 못 했다. 펭귄이 죽는다는 소식을 들었고, 북극곰이 굶주린다는 소식도 들었지만 많은 동물이 온난화를 피해 서식지를 옮겨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벤야민 폰 브라켈은 피난하는 자연에서 동물들이 도망칠 피난처를 마련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온이 올라가면 동물은 거처를 옮겨야 한다. 실제로 동물은 서식지를 옮긴다. 나비와 벌과 모기 같은 곤충부터 파충류, 조류, 포유류까지 모두 살아가기 적당한 곳(지금 서식지보다 시원한 곳)으로 옮겨야 한다. 산호와 다시마, 대구와 고래까지. 고위도(북극과 남극)로 옮기면 살아남겠지만, 서식지를 옮기는 게 어렵다. 인간이 가로막기 때문이다. 도로와 도시, 경작지가 곳곳에서 동물의 이동을 막는다.

침입종, 외래종의 위협은 각 나라에서 주요 뉴스로 다룬다. 저자는 침입종이 지구온난화를 피해 새로운 서식지를 찾는 과정이라고 한다. 침입종을 모두 없애야 한다는 기존 논리에 맞서 새로운 종이 새로운 보금자리에 적응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동식물이 대륙을 옮겨 생태계를 교란하는 건 막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무조건 퇴치하는 태도에는 반대한다. 온도가 올라가면 구상나무는 죽기 마련이고, 지구 온도를 낮추지 않는 한 구상나무를 살릴 방법이 없다는 논리다. 아프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말이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높은 산 아래에 살던 동물은 그야말로 나무 위로 도망치는 오누이 신세다. 더위를 피해 산으로 올라갈수록 동물의 종류와 개체수가 많아진다. 다른 동물과 싸워야 한다. 또한 산은 정해진 높이가 있다. 지구가 더 뜨거워지면 산꼭대기에 온갖 동물이 모여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오기만 기다릴 것이다. 동아줄이 내려올 리 없으니 남은 건 하나뿐이다. 멸종. 실제로 2020년 호주 산불에서 30억 마리의 동물들이 불에 타거나 질식해서 죽었다. 코알라들은 불길을 피해 나무 위로 올라갔다. 동아줄은 내려오지 않았고 코알라들은 모두 불에 타서 나무 아래로 떨어졌다.

피난하는 자연은 학자들이 조사한 내용을 가득 담았다. 수십, 수백 km를 이동한 동식물을 증거로 자연이 피난할 통로를 마련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보호구역만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보호구역이 더워지면 그곳에 살던 동식물도 피난처를 찾아야 한다. 보호구역이 도시와 도로로 둘러싸였다면 남은 건 멸종뿐이다. 저자와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학자들은 보호구역에 살던 동식물이 북쪽으로 이동하도록 통로(거점)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호주, 에콰도르, 싱가포르 등에서는 정부가 땅을 사들여 피난 통로를 마련한다.

피난하는 자연을 읽으며 지구온난화가 정말 심각하다고 다시 한번 느꼈다. 자연이 피난한다면 인간은 어디로 갈 것인가? 자연이 무너지는데 어디에 선단 말인가! 중고등학교에서, 교사 모임에서, 환경에 관심있는 분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추천한다.

 

#책_소개합니다

앞서 근무한 학교에 간 첫해, 2학년을 맡았다.
6학년이나 1학년이 아니라 2학년만 남았다니 의아했다. 2학년은 군대로 말하면 꿀 보직인데.
(자폐 아이보다 여자아이들 관계가 복잡해서 힘든 반이었다.)

자폐 남자아이는 까끌까끌한 느낌을 참지 못했다. 상표를 다 떼어야 했고, 실밥 하나만 있어도 옷을 벗었다.
아이가 옷을 벗으면 여자아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하루는 아이가 갑자기 바지를 벗었다. 속옷까지 다 벗겨졌다. 얼른 아이를 가로막고 옷을 끌어올렸다.

10명 내외의 아이들이 6년 내내 같은 반을 했다. 아이들은 6년 동안 자폐 아이와 같은 반으로 지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장애인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미워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잘 달래며 함께 지냈다.
아이들은 다르게 행동하는 아이를 이해하는 마음을 배웠다. 이건 황금을 주고도 배우지 못하는 훌륭한 태도다.

경쟁, 효율성, 경제적 가치를 따지면 00이는 어떻게 될까?
신자유주의는 약하고, 느리고, 불편한 이웃을 무능력한 존재로 만들었다.
장애인, 세월호, 강제로 수용된 아이들…… 예수님이 말한 고아와 과부들이 바로 이들이다.
그들도 그냥 사람인데 투명 인간처럼 보이지 말아야 했다.

                           자폐 아이는 사진을 찍으면 늘 고개를 돌렸다. 그 아이도 우리반이고, 친구들 곁에 있다.

『A가 X에게』와 『그냥, 사람』은 이에 맞선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구조에 반대한다.

『A가 X에게』는 연인에게 쓴 편지로 이에 맞선다.


2008년 부커상 수상 후보작이다. 사실처럼 쓰인 독특한 소설이다.
약국을 운영하는 ‘아이다’가 감옥에 갇힌 ‘사비에르’에게 편지를 쓴다. 사비에르는 편지 뒷면에 메모하며 편지를 모아둔다.
정권은 국민을 위협하며 국가를 이끌어간다.
돈도 없고 힘도 없는 국민은 세계화의 파도, 자본의 폭력에 희생당하면서 몸부림친다.
도망자를 살리기 위해 온몸으로 막아서고, 약국을 찾아온 사람을 살리고, 각자의 사연을 들어준다.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남기 위해 싸우는 거예요.” 라며. 
감옥에 갇힌 남자를 그리워하는 여성의 편지를 통해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모습을 보여주다니
작가의 능력이 정말 뛰어나다.

『그냥, 사람』은 고통당하는 이웃을 그대로 보여준다.
장애인 곁에서 보고 듣고 느낀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냥, 사람』은 한겨레 신문에 5년 동안 쓴 칼럼이다. 스스로 움직이기 어려운 중증장애인들의 이야기가 많다.
한없이 약한 사람들이 거대 권력, 거대 자본 앞에서 억눌리고 억압당하고 괴로워하며 고통당한 사연이 많다.
죽어가면서도 그들은 자기들이 그냥 사람이라고 외쳤다.

자폐 아이에게 ‘괜찮아!’ 말한 2학년 아이들은 자폐 친구를 화장실에 데려갔고, 몸을 가려주었다.
걸어갈 때 기다려줬고, 운동회에서 손을 잡고 뛰었다.
난 다달이 5만원씩 장애인야학 후원금을 보낸다. 곁에서 그들의 고통을 지켜보는 것보다 돈 보내는 게 쉽다.

 

책 놀이를 하며 아이들이 책으로 <봄> 글씨를 만들었다.

나를 꽤 힘들게 한 아이들이었는데 이 아이들에게도 봄이 왔다.

『A가 X에게』와 『그냥, 사람』에 나오는 분들에겐 언제 봄이 오려나?

대통령이 바뀌면서 청와대가 개방되었다. 때에 맞춰 청와대를 소개하는 책이 나왔다. 청와대 출입기자가 청와대 곳곳을 찍은 사진에 설명을 더했다. 청와대의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하고(1장), 청와대 건물을 전통과 관련해서 자세하게 설명한다(2장). 청와대 본관(3장)과 건물들(4장)을 소개하고, 청와대 앞길(5장)과 주변(6장)을 소개한 뒤에 마지막으로 국가 행사(7장)를 설명한다.
뒷장부터 거꾸로 읽었다. 특별한 까닭은 없다. 후기부터 읽는 습관이 있는데, 마지막에 국가 행사를 소개한 내용을 읽다가 자연스럽게 한 장씩 앞으로 읽었다. 국가 행사를 보고, 청와대 바깥에 있는 성곽과 산을 둘러보고 청와대 앞길을 지나 청와대로 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읽었다. 청와대 주변 건물을 살펴보고 청와대 본관을 살펴본 셈이다. 청와대에서 먼 곳부터 차례차례 읽으며 ‘청와대가 어떤 곳일까?’ 기대하게 되었다.
2015년에 펀딩 ‘곁에.서.’의 주인공들(가스폭발 관련 아이들) 데리고 청와대에 갔었다. 아이들과 함께 갔기 때문에 나는 편안하게 둘러봤다. 엄중하게 지키는 국가기관이라 해도 초등학생에게는 관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많이 긴장했다. 꼼짝하지 않고 선 경비원과 경찰을 보며 말소리를 줄였고 장난도 치지 않았다. 국가 지도자가 일하던 장소가 주는 무게감을 아이들도 느꼈나 보다.
지금은 국민 누구나 둘러보도록 개방되었다. 대부분 대통령이 일하던 곳을 보고 싶다는 호기심에 찾을 것 같다. ‘지붕 선이 아름답다, 그림이 멋지다, 가구가 의외로 소박하다, 전통 방식으로 지은 건물이 하나밖에 없다, 청와대에 주목이 있구나……’ 하겠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이 책을 읽고 가면 더 많이 보일 것이다.
3장, 4장, 6장이 마음에 들었다. 청와대 본채를 소개하고 그림과 가구를 설명한다. 그림이 참 멋졌다. 가구가 소박하고 정갈해서 좋았다. 정원에 관심이 많아서 4장 청와대 정원 녹지원과 전통 한옥 상춘재가 좋았다. 6장 칠궁(왕후가 되지 못한 왕의 어머니를 모신 곳)은 새로웠다. 왕의 어머니인데도 양반이 아니라고 왕후라고 불리지 못한 분들을 모신 곳이다. 또한 사진이 좋았다. 기자가 찍은 사진이라 전체부터 부분까지 잘 보여주었다. 사진이 ‘청와대 안 건축과 그림과 문화의 아름다움에 빠지다’라는 부제를 잘 드러냈다. 개인 의견이 적고 객관적인 설명이 많아서 지루할 수 있는데 그때마다 사진이 보여서 괜찮았다.
앞으로 청와대가 어떤 역사를 이어갈지는 모른다. 대통령이 일하는 역할을 다시 한다면 한동안 국민에게 개방한 기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겠지.

『파이 이야기』, 얀 마텔, 작가정신

- 좋은 교사 잡지에 썼던 책 소개 글입니다.

행복은 참 좋습니다. ,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건강하게 살면 좋겠습니다. 오래도록 죽지 않고 고통당할까봐 두렵습니다. 고통은 피하고 싶습니다. 이런 마음 때문에 하나님 잘 믿으면 축복 받고 행복하게 살다가 죽으면 더 좋은 곳에 간다는 말을 따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믿음은 강하게 가질수록 좋다고 믿고 축복을 강하게 구합니다.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외칩니다. 과연 그럴까요?

행복(Happiness)‘Happen' , 일어난 일에서 느끼는 감정입니다. 좋은 일이 생기면 행복합니다. 원하지 않는 일이 생기면 불행합니다. 우리가 겪는 일이 마음을 좌우합니다. 행복을 원하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좋은 사건을 찾습니다.

축복(Bless)’Blood‘에서 나온 말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가 우리를 정결케 한다는 믿음입니다. 우리에겐 죄악을 이길 힘이 없지만 하나님 은혜로 인해 왕노릇한다는 사실을 믿고 기뻐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도 하나님 자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축복이 더 좋다고 인정하지만 그래도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믿으면 축복 받는다고 할 때 사람들이 생각하는 축복은 행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다는 축복에 더해서 좋은 일이 많이 생기게 해달라고 합니다. 하나뿐인 아들, 자신과 동일하신 아들을 주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계속 이기적입니다.

외나무다리에서 호랑이를 만난다면?

인도에서 동물원을 하던 파이아버지는 정부의 지원이 끊기자 가족들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떠납니다.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나 화물선은 침몰하고 파이만 목숨을 구합니다. 구명선에 다친 얼룩말과 굶주린 하이에나, 오랑우탄이 함께 탑니다. 하이에나가 얼룩말을 잡아먹고 오랑우탄을 죽이지만 하이에나도 맥없이 죽습니다. 보트 아래에 몸을 숨기고 있었던 벵갈 호랑이 리처드 파커때문입니다.

구명선에는 생존지침서도 있고 통조림으로 된 비상식량과 물도 있습니다. 낚시 도구도 있고 바닷물을 민물로 바꿔주는 장치도 있습니다. 구명선도 7-8m 정도로 꽤 크고 생존을 도와주는 도구들이 많습니다. 이 정도면 살아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얀 마텔은 구명선에 200kg이나 되는 호랑이를 던져놓고 묻습니다. ‘호랑이와 함께 망망대해를 헤쳐 나가는 게 나을까? 혼자 구명선에서 버티는 게 나을까?’

생존을 도와주는 도구가 많지만 망망대해에서 혼자 살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파이는 호랑이와 함께 지내야 합니다. 먹이를 구해주고 물도 나눠 먹어야 합니다. 호랑이는 자기 영역을 표시하고 확실하게 지킵니다. 좁은 구명선에서 호랑이가 정한 영역 안으로 들어가거나 먹이가 떨어지면 파이는 어떻게 될까요?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묻는다면 대부분 호랑이가 없는 게 낫다고 할 겁니다. 살면서 호랑이(Unhappiness)를 만나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병에도 걸리지 않고 슬픈 일을 만나지도 않으면 좋겠죠. 나이가 들어도 자다가 평온하게 하나님께로 가고 싶습니다. , 교통사고, 감당하기 어려운 직장 상사, 마음을 무너뜨리는 아이들…… 모두 없으면 좋겠습니다.

표류하면서 죽을 고비를 만났을 때 파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진정시킨 것은 리처드 파커였다. 이 이야기의 아이러니가 바로 그 대목이다. 무서워 죽을 지경으로 만든 바로 그 장본인이 내게 평온함과 목적의식과 심지어 온전함까지 안겨주다니(205)”, “리처드 파커가 있어서 다행스러웠다. 마음 한편에서는 파커가 죽는 걸 바라지 않았다. 그가 죽으면 절망을 껴안은 채 나 혼자 남겨질 테니까. 절망은 호랑이보다 훨씬 무서운 것이 아닌가. 내가 아직도 살 의지를 갖고 있다면, 그것은 리처드 파커 덕분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가족과 비극적인 처지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나를 계속 살아있게 해주었다.(207)”

파이는 하나님을 믿는 걸까?

파이는 집 곳곳에 힌두교, 천주교,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 상징물을 놓아둡니다. 여러 신을 모두 믿는다고 말합니다. "저는 신을 더 사랑하고 싶은 것뿐이에요" 라고 얘기합니다. ‘파이 이야기를 읽은 대학생 제자가 무엇인가를 얻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들과 관계하기 위해 종교를 갖는구나!’ 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파이 혼자 구명선에 타기 전, 어린 시절부터 여러 종교를 다 믿는다고 말했으니 이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종교다원주의 주장처럼 산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가지이고 어느 길로 가더라도 정상에 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반대로 봤습니다. 호랑이 덕에 바다에서 227일이나 표류하고도 살아났지만 다시 호랑이와 함께 구명선에 올라가기는 싫을 겁니다. 극한 상황에서 호랑이가 살아야겠다는 의지와 목적의식을 되살려 주었지만 그건 마음에 남은 의미이지 다시 겪고 싶은 이야기는 아닙니다. 파이는 겪고 싶지 않은 일을 피하기 위해 여러 신을 함께 믿기로 했다고 봅니다.

주일마다 하는 중고등학생 독서토론모임에서 파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 )는 아이들 대답입니다. 지면에 맞춰 짧게 요약했습니다.

한 사람이 여러 종교를 믿을 수 있을까? (있다.) 나는 탁구, 배드민턴, 테니스, 축구, 배구를 좋아한다. 이래도 될까? (된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나는 여인 1, 여인 2, 여인 3, 여인 4, 여인 5를 사랑한다. 이래도 될까? (안 된다. 된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다.) 왜 될까? (당시에는 허용되었다.) 지금도 이런 문화를 허용하는 곳-아랍, 아프리카, 중남미 일부-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다.) 일부다처는 왕이나 부자들이 주로 애용한다. (......)

왜 스포츠를 좋아하는 건 되고, 여자를 여럿 좋아하는 건 안 될까? (여기서 토론이 길어졌고 결국 인격’, ‘사람 사이의 관계로 의견이 모아졌다.) 파이는 여러 종교를 모두 믿는다고 하는데 각 종교의 사제들은 파이가 자기네 종교를 믿고 있다고 볼까? (아니다.) 왜 아닐까? (종교는 스포츠가 아니라 인격 사이의 관계 문제이다.) 사제들은 무얼 원할까? (파이가 자기네 종교만 믿는 걸 원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필요를 위해 스포츠를 고른 셈이다.) 힌두교는 다신교이다. 적어도 힌두교 사제만은 파이가 다른 종교를 믿더라도 인정해주지 않을까? (아니다. 힌두교만 믿기 원할 것이다.) 그럼 힌두교의 다신주의는 뭘까? (힌두교의 다신들만을 믿으라는 것 아닐까?) 천주교 사제가 스님과 함께 서로를 인정하며 함께 할 때 그분들은 어떤 마음일까? 스포츠 개념일까? 인격 개념일까? (스포츠를 좋아하는 수준이다. 인격으로 믿는 자기네 종교를 높이는 마음은 여전히 갖고 있다.) 그럼 파이는 자기 중심으로, 자기 경험에 비춰, 자기 필요를 채우기 위해 여러 종교를 믿는 것이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여기까지 말했습니다. 아이들이 종교는 선택이 아니라 인격을 나누는 것이다. 가장 인격적인 종교, 사람 사이에 인격적인 나눔이 아니라 신과 인격적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은 하나님뿐이다를 토론으로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

파이는 호랑이가 있어서 절망에 빠져들지 않습니다. 긴장하고 호랑이를 견뎌내며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절망은 사람을 무너뜨립니다. 차라리 호랑이를 만날지언정 절망은 피하고 싶습니다. 절망을 어떻게 이기는지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말하지도 못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절망에 빠지지 않게 할까요? 무엇이 호랑이를 만나고도 살아갈 이유를 줄까요?

저는 욥기를 너무 좋아합니다. 욥이 없었다면 삶에서 누리는 의미가 많이 줄어들었을 겁니다. 욥은 견뎌내기 힘든 일을 만납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습니다. 아내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해도 뭘 모르고 하는 소리구만합니다. 친구들이 비난해도 견뎌내려 합니다. 가장 가까운 욕하고 비난하면서 마음이 점점 힘들어지지만 견뎌내려 합니다. 욥이 정말 힘들어한 건 갑자기 닥친 비극이나 사람들의 비난이 아니라 대답하지 않는 하나님입니다. ‘내가 이렇게 고통 당하고 힘들어하는데, 하나님은 왜 대답을 하지 않으십니까?’

대답 없는 신, 내 생각대로만 움직이는 신, 절대주권을 갖지 않은 신을 붙잡고 살아가는 게 절망입니다. 파이는 호랑이 없이 살아가는 현실에서 온갖 신을 붙듭니다. 죽음의 순간에 파이는 절망하지 않을까요? 정말 궁금합니다.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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