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난 통일, 북조선 아이』
“모조리 아오지 탄광이야!”
북한을 탈출해서 강원도 바닷가에 온 학생이 있었다. 먼저 나온 고모가 여기 살아서 아이도 **시로 왔다. 대부분 그렇듯 탈북하느라 공부를 못했기 때문에 두 살 어린 동생들과 같이 배웠다. 중2 나이의 탈북학생이 초등학교 6학년으로 다녔다. 말투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생각이 완전히 다르니 어울리기 어려웠다. 학생은 말수가 적었다. 조용히 학교에 왔다가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다.
초등학교 6학년은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시끄럽게 떠든다. 선생님이 말해도 건성으로 대답한다. 아이들이 교실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어느 날, 아이가 벌떡 일어나서 양손으로 책상을 “꽝!” 하고 내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간나 쌔끼들, 북에서 이렇게 하믄 모조리 아오지 탄광이야!”
순간 정적이 흘렀다. 남조선 아이들 행동을 참다 참다 폭발한 모양이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남한에서는 배고프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탈출했지만, 이런 상황을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두 살 어린 동생들과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고, 예의 없고 철없는 모습을 계속 봐야 하고, 게다가 자기가 ‘간나 쌔끼들’보다 공부를 못해서 자존심 상할 줄은 예상도 못 했을 것이다.
북한이탈주민은 북한을 떠나 험하고 어려운 길을 거쳐 우리나라에 왔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만나면 어떨까? 우리나라에 온 삼만 명의 탈북민은 남한에서 행복하게 살까? 이웃과 사이좋게 지낼까?
그룹홈 ‘우리집’
3~12월까지 한 달에 두 편씩 글을 보내드리고 월 1만 원씩 받는 펀딩을 했다. 후원할 곳을 추천받으면서 그룹홈 ‘우리집’을 알게 되었다. 마석훈 대표가 그룹홈을 만들어 탈북청소년들과 함께 산다고 했다. 지금은 유치원부터 대학생까지 11명(해마다 달라짐)과 아파트에서 함께 산다. 북한을 탈출하면서 부모를 잃거나 헤어진 아이, 부모와 함께 지내지 못하는 아이들을 돌본다고 하셨다. 죽음의 길을 지나면서 상처받은 아이들, 표현이 강해서 함께 지내기 어려운 아이들과 18년 동안 같이 살았다는 말을 듣고 정말 놀랐다.
후원금을 보내드렸더니 책을 보내주셨다. 『우리가 만난 통일, 북조선 아이』라는 책이었다. 앞표지가 평범해서 자료집을 보낸 줄 알았다. 책을 뒤집었다가 뒷표지에 꽂혀버렸다. 지금까지 읽은 책 수천 권, 표지를 보았던 책 수만 권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뒷표지였다. 책을 읽으면서 뒷표지가 점점 아름다워졌다. 너무 귀한 책이다. 책벌레가 뽑은 올해의 책에 해당하는 책이다.
책은 5부로 쓰였다. 마석훈 대표는 하나둘학교(1부. 2001년, 북한이탈주민이 정착교육을 받는 하나원 안에 있는 학교), 늘푸른학교(2부. 2002년, 하나원을 퇴소한 무연고 탈북청소년의 생활훈련과 자립을 돕는 공동체), 그룹홈(3부. 2003~2005년, 임대빌라에서 탈북학생들과 함께 사는 집), 그룹홈 ‘우리집’(4부. 2006~현재)에서 탈북청소년들과 살았다. 아침에 학교 보내고 저녁에 돌아오는 아이들 맞아들이는 생활이 아니다. 아침에 학생들 만나 저녁에 집으로 보내는 것도 아니다. (5부는 통일에 대한 생각을 다루었다.)
남한은 북한과 다르다 . 이만저만 다른 게 아니다. 당장 말투가 달라 북한에서 온 줄 다 안다. 탈북청소년은 완전히 새로운 사회에 적응해야 한다. 부모와 헤어졌거나 부모가 죽기도 했다. 목숨 걸고 나오는 과정도 힘들었는데 남조선에서 살아가는 현실이 만만치 않다. 상처는 많고 가치관도 다르다. 별것 아닌 일에도 다툼이 생길 수 있다. 누군가 도와주어야 한다. 그런데 마석훈 대표 외에는 탈북청소년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것도 힘들 텐데 학교와 사회에서 적응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 과정을 이 책에 담았다. 학생들 설득하다가 다투고, 학생들이 학교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몸부림친 내용이다.
책을 읽으며 자꾸만 멈추어야 했다. 아이들이 목숨 걸고 나온 이야기가 슬프고, 극적이고, 대단해서가 아니다. 불쌍하거나 놀라워서도 아니다. 마석훈 대표가 학생들을 대하는 모습에 너무 공감해서이다. 인간을 이렇게나 깊이 이해하다니 놀랍다. 탈북청소년들과 같이 살면서 겪은 이야기를 과장하지 않고, 동정심을 유발하지 않고, 인간으로 대하는 모습이 너무 고마웠다.
통일 하나! 가지게 되더라도 남에게 거만하지 않게 베풀고,
통일 둘! 도움 받아 살더라도 비굴하지 않게 받으며,
그룹홈 ‘우리집’ 가훈은 다섯 가지다. 첫째가 가지게 되더라고 남에게 거만하지 않게 베풀자는 내용이다. 자립하자, 성공하자 하며 목표를 이루자는 내용이 아니다.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공동체에서 비굴함과 거만을 가훈으로 삼다니 대단하다. 후원금을 보냈더니 마석훈 대표가 사진 찍고 기사 내는 그런 걸 원하지 않냐고 물으셨다. 목숨 걸고 북한을 탈출한 아이들, 더구나 돌볼 사람이 없는 아이들만 지내는 곳이라 하면 사람들 반응이 딱 보인다. “아이고, 불쌍해서 어떻게 해?”, “불쌍한 아이들에게 뭐라도 줘야겠다!” 하겠지.
불쌍해서 주는 건 좋지 않다. 아이라서 도와주고, 같은 민족이라 도와주고, 예수님 생각하며 도와주는 건 괜찮지만 상대가 불쌍해서 도와주는 건 반대한다. 도와주는 자신을 우위에 두고, 상대를 저기 아래에서 손을 내미는 하찮은 존재로 만드는 건 오만이다. 오만은 도와주는 사람, 도움받는 사람 모두를 망친다. 탈북학생들은 이런 태도를 정말 싫어한다. 마석훈 대표도 운영비 쉽게 마련하는 방법을 알지만, 방송을 이용하지 않는다. 자신이 겪은 일을 과장해서 불쌍한 척하며 후원자를 이용하는 학생들을 꾸중하고 혼낸다. 탈북학생들 내세워 비굴한 표정 지으면 돈이 생기고 편해지는데 그러지 않는다. 배짱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기 때문이다.
“제 돈이 아니에요. 돈 받아서 전하는 사람이라 그런 거 안 합니다. 받은 돈 전달했으니 알아서 쓰세요!”
했다. 이 말을 듣는 마석훈 대표 표정에서 내 마음을 보았다. 돈 주면서 생색내는 사람들에게 질린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볼 때의 표정이었다.
통일 셋! 누구 하나 소외됨이 없도록 늘 깨어있으며,
통일 사천만! 가난한 이웃을 섬기기 위해 내 삶을 나누고,
누구 하나 소외하지 않고 늘 깨어, 가난한 이웃을 섬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용서하고, 보듬고, 한없이 너그러워야 할까? 현실을 모르는 사람이나 할 이야기다. 언젠가 우리의 삶이 아름다워지겠지만, 살아가는 과정은 다툼과 긴장의 연속이다. 자녀를 기르면서도 꾸중하고, 설득하고, 화를 내야 하는데 탈북한 청소년들과 함께 살면 장난 아니다. 마석훈 대표가 참고 기다린 내용, 학교에 가서 빌었던 내용도 좋았지만 학생과 싸운 내용, (어쩔 수 없이, 때론 쿨하게) 포기하는 내용도 좋았다. 그룹홈을 떠난 학생에게 “어찌 내게 그럴 수 있을까, 내가 지를 어찌 키웠는데, 쌍누무 새끼.” 하는 부분이 참 좋았다. 아이를 사랑한 사람이라면 이 마음 안다.
통일 팔천만! 한반도의 평화공존을 위해 노력합니다.
우리,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함께 갑니다!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통일해야 하느냐 물으면 대부분 하지 말자고 한다. 북한이 고개 숙이고 들어오면 받아주는 통일을 원한다. 어른들도 잘사는 우리나라가 못 사는 북한을 흡수하는 통일을 원한다. 통일을 기업 인수합병처럼 생각한다. 기업에 이익이 되는지 따져보고, 대기업이 중소기업 삼키듯 북한을 먹어버리려 한다. 북조선 동포들이 그런 통일을 받아들일까? 마석훈 대표는 영토 통일, 자원 통일이 아니라 사람 통일을 말한다. 오천만 국민이 삼만 명 탈북민을 받아주지 못하면 이천오백만과 어떻게 통일하겠느냐고 묻는다. 오만하게 도와주고, 그들이 굽신거리며 고마워하는 걸 보고 싶어 하는 통일이라면 글쎄~ 과연 그게 통일일까?
이 책은 책벌레 이름을 걸고 추천한다. 꼭 사서 읽으세요. 빌리지 말고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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