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이제는 감정적으로 이야기할 때 (리베카 헌틀리, 282) / 환경

교실에서 지구온난화를 줄이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실천한다.

이면지를 쓴다. 다 쓴 종이를 상자에 따로 모은다. 플라스틱도 따로 모은다.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 한다(50리터 쓰레기봉투를 한 학기에 두세 장 쓴다. 이것도 많다. 더 줄여야 한다.). 동료 교사들이 일회용 컵을 써도 나는 쓰지 않는다. 내게 음료수를 줘도 일회용 컵을 쓸까 봐 아예 받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어서 얼마나 지킬지 모른다. 지구온난화를 신경이나 쓸까

어떻게 접근해야 사람들이 지구온난화를 진지하게 생각하며 행동하게 만들까?

독특한 책이다. 기후변화가 지구를 위험에 빠드린다는 내용이 아니다.

<우리 일상을 바꾸려면 기후변화를 어떻게 말해야 할까>라는 부제처럼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말하는 내용이다. 기후변화가 가져올 위기는 당연한 결과로 놓고, 어떻게 말해야 사람들 마음이 움직일지 말한다. 예를 들어 죄책감(내가 쓴 빨대가 바다거북을 죽일 수 있다)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공포와 분노로는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기후변화 논의의 출발점은 우리가 사랑하는 것에 있다. 기후변화가 지구를 멸망시킨다는 말에는 사람들이 반응하지 않는다. 봄마다 보던 꽃, 여름에 듣던 새 소리, 가을에 먹던 과일을 보지 못하게 된다고 해야 반응한다. 절망보다는 희망(내게 소중한 것들을 더 보려면~), 상실보다 사랑으로 접근해야 한다. 기후변화뿐만 아니라 다른 주제에 관해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에게 접근하는 방법과 태도를 가르쳐주는 좋은 책이다.

 

어떤 이별은 견디기 어렵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온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시작한다. 누군 키가 좀 컸고 누군 얼굴이 까매졌다. 건강해 보인다. ‘, 누가 안 보인다. 어떻게 된 거지?’

  중학교 2학년 때 친구 하나가 2학기 개학식 날 학교에 오지 않았다. 공부를 잘하고 얌전한 아이였다. 남학생이라면 누구나 하는 싸움도 한 번 하지 않던 착한 친구였다. 산딸기를 큰 통에 가득 따와서 친구들에게 나눠주는 좋은 친구였다. 친구가 물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를 개학 하고 들었다. 여름 내내 공부만 하다가 한 번 가족과 함께 놀러갔는데 돌아오지 못했다. 조용한 친구였기 때문일까, 나와 그리 친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놀라긴 했지만 슬프진 않았다. 슬픔을 알기에는 너무 어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슬픔을 몰랐다. 친척 형들과 놀기만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슬펐지만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제자를 잃었을 때는 많이 울었다. 나와 마음이 통했던 교회 형이 하나님 곁으로 갔을 때는 통곡했다. 어떤 이별은 무덤덤하다. 그리고 어떤 이별은 견디기 어렵다.

  교사가 된 뒤에 아이들과 28번 헤어졌다. 전담교사로 헤어질 때는 그리 슬프지 않았다. 담임으로 만난 아이들과 헤어져도 같은 학교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때는 슬프지 않았다. 아쉽고 허전하고 때론 시원섭섭했지만 울 정도는 아니었다. ‘이런 아이들을 어디서 다시 만날까!’ 했던 때도 같은 학교에서 다시 볼 수 있으면 슬픈 이별을 생각하지 않았다.

  금요일에 헤어지면서 우는 아이는 없다. 월요일에 다시 만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금요일에 헤어지고 월요일에 만나고, 다시 헤어지고 만나고 하면 방학 동안 헤어져도 이별을 힘들어하지 않는다. 다시 만날 테니까. 그러나 언젠가 진짜 헤어져야 하는 순간이 온다.
엄마, 또 올게요.” “아빠, 설날에 내려올게요.”
  잠시 헤어졌다 다시 만나기를 되풀이하면 다음에 또 만날 거라 생각한다. 부모님이 많이 약해지긴 했지만 다음에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만남을 미루기도 한다. 그러다가 덜컥 다시 만나지 못할 형편이 되면 그 사람을 더 이상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온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어떨까? 이별을 미리 준비해도 슬픔을 견디기 어려운데 준비하지 못한 이별을 만나면 너무 힘들다.

눈으로 하는 작별

  《눈으로 하는 작별사랑하는 안드레아의 저자인 대만 작가 룽잉타이가 썼다. 책에는 가족, 일상, 인생 그리고 떠나보냄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아버지가 늙어가면서 점점 움직임이 줄어들고 자녀를 알아보지 못하게 되는 과정을 보면서 느낀 마음을 에세이로 썼다. 비슷한 종류의 다른 책처럼 다시 만나지 못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에 매달려 아버지 이야기만 계속 늘어놓지는 않았다. 어릴 적 추억과 풍경, 부모님의 사소한 습관을 기억하며 늙음과 죽음이 무엇인지 적었다. 책을 읽으며 크게 3가지를 느꼈다.

  첫째, 룽잉타이가 부러웠다. 사랑하는 안드레아에서도 보여준 바 있듯이 룽잉타이는 보는 눈이 다르다. 같은 사물이나 사건을 보고도 보통 사람과 다른 생각을 펼쳐낸다. 나는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앞부분을 읽으면 작가가 무엇을 말하는지, 다음에 어떤 내용이 나올지 어느 정도 짐작이 된다. 하지만 룽잉타이의 생각은 거의 읽어내지 못했다. 작가가 펼쳐놓은 오묘한 이야기에 스르륵 빠져버렸다. 에세이 하나하나 모두 맛깔나고 색달라서 줄거리를 어떻게 요약해야 할지 모르겠다.

남미에는 비나무가 있다. 비나무는 큰 종처럼 커다랗고 둥글게 생겼는데, 한쪽 끝에서 다른 끝까지가 삼십 미터나 된다. 나뭇잎이 그토록 무성하고 빽빽한데도 비나무 밑에서는 작은 풀도 잘 자란다. 날이 흐리거나 어두워지면 비나무의 가는 잎이 오므라들면서 잎 사이로 비가 그대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형제는 영원히 평행선을 달리는 선로라기보다는 한 그루 비나무에 달린 가지나 잎이 아닐까. 비록 삼십 미터나 떨어져 있지만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고, 밤에는 잎을 오므리고 땅바닥으로 곧장 떨어지는 비를 함께 보면서, 나무와 비와 함께 늙어가는 것이다. 어찌 아니 좋겠는가! (61)

  게다가 룽잉타이는 박학다식하다. 처음 듣는 이야기가 참 많다. 지뢰, 홍콩의 역사와 문화, 한 번도 듣지 못한 작가와 시인, 우리나라 이야기도 나온다. 사랑하는 안드레아를 읽을 때는 처음이라 놀랐는데 이번에도 깜짝 놀랐다. 일상에서 겪은 평범한 일에 낯선 이야기를 엮어서 작품을 만들어냈다. 특히 비나무에 대한 글이 마음에 남았다. 약간 길지만 소개한다.

  둘째, 대만 국민의 아픔을 알게 되었다. 대만은 공산당(모택동)과의 싸움에 밀린 국민당(장개석)이 본토에서 쫓겨나와 세운 나라라고 알고 있었다. 본토에서 쫓겨난 아픔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 이산가족 문제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더구나 본성인(2차 세계대전 이전에 대만에 들어와 살고 있던 중국인)과 외성인(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당에게 패해 국민당과 함께 온 사람들) 사이에 생긴 갈등의 골도 상당히 깊다는 걸 알았다. 둘은 정치 성향까지 정반대여서 여당과 야당으로 지금까지 싸우고 있다.

  “지뢰 조심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에 대만의 진먼이라는 섬을 소개하고 있다. 진먼은 대만보다 중국에 가까운 대만 영토이다. 청일전쟁 때 평양이 불바다가 되었던 것처럼 대만과 중국 사이에 있다는 것만으로 폭탄 세례를 받았던 섬이다. 이 섬은 1958년 가을, 44일 동안 47만 발의 폭탄을 받아야 했다. 그 후로도 사십 년 동안 전투지역으로 봉쇄되면서 수많은 지뢰를 묻었다. 지금은 관광객이 가기도 하지만 모래사장을 뛰어다닐 수도, 숲에서 열매를 딸 수도, 바닷물에 뛰어들어 물장구를 칠 수도 없다. 지뢰가 어디에, 얼마나 남아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갑자기 들이닥친 모택동 군대의 공격을 피해 대만에 정착한 사람들이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면서 가난과 고통에 시달리는 모습이 꼭 우리가 625 이후에 겪은 이야기 같다. 이웃이 한순간에 폭탄으로 사라지고, 내 편 네 편 나뉘어 서로를 죽이는 곳에서 겨우 견뎠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진먼 역사 기념관의 그림 속 얼굴을 우리나라 사람으로 바꾸면 거기나 우리나 서로 비슷하다. 대만 사람이라면 우리가 겪고 있는 분단의 아픔을 이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셋째, 룽잉타이가 부모에게 정말 잘한다. 내가 아들이라서 그런가, 딸은 다 이렇게 애틋한가 싶다. 딸이 엄마에게 애틋한 건 이해하지만 아버지에게도 이런 마음을 가지다니 놀랍다. 더구나 룽잉타이는 문화부 장관으로 바쁘게 일하는 중에도 자주 아버지를 찾은 것 같다. 골목 사이에 숨은 작은 가게에서 아버지가 예전에 입던 양모 조끼, 모직 외투, 털실로 짠 장갑에 천 신발을 구해서 아버지에게 입혀 드린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것을 구해 드리는 게 효도이다.

  가장 마음에 드는 두 장면은 이렇다. 룽잉타이가 걷는 법을 잊어버렸을 지도 모르는 아빠 손을 붙잡고 아빠가 들려주던 시조를 읊으며 한 발 두 발 걷기 연습을 시킨다. “해는, 서산에, 기대어, 지려하고……한 발 한 발 내딛으며 황하는, 바다로, 흐을러, 가안다……방향 바꿔서~ (303~304) 두 번째는 할아버지 말문을 트게 하면 상금을 주겠다며 아이들을 꼬드기는 장면이다. 아이들이 할아버지에게 고향, 엄마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자 침묵을 깨고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해준다. 엄마 이야기를 하다가 죄송하다고 우는 할아버지 모습을 손자들이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할아버지에게 시조까지 배웠으니 최고의 효도를 한 셈이다.

어떤 이별은 정말 슬프다

  아이들과 헤어지면서 엉엉 운 적이 있다. 힘든 일을 많이 겪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의 아픔을 글로 쓰고, 아픔을 치유해주려고 더 많이 사랑했다. 예수님을 전하며 사랑했고 또 사랑했다. 어떤 아이는 하나님 믿으며 잘 살고 있다. 다른 아이는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며 살고 있다. 어떤 아이는 어떻게 사는지 모른다. 내가 나이가 더 들어 추억을 곱씹는 즐거움으로 살아갈 때가 되면 아이들을 많이 보고 싶을 것 같다. 그때 아이들과 함께 모여 옛날이야기를 하면 얼마나 즐거울까! 나는 비나무 기둥이 되고 아이들이 삼십 미터나 되는 가지가 되어 함께 늙어 가면 참 좋겠다.

45세~60세 남성이 읽으면 정말 좋은 책을 만났다.
골목을 지키는 문구점과 구멍가게에 과자를 납품하는 과자 장수가 쓴 『나는 언제나 술래』다. 자신이 술래라는 뜻으로 책 제목을 정한 까닭은 어릴 때 약한 아이가 술래를 도맡았던 기억에서 나왔다. 지은이는 약자의 편이 되고 싶다고 했다.
책을 읽으며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 생각났다.
따뜻하다는 말은 이런 책에 붙여야 할 말이다. 따뜻한 마음으로 읽다가 먹먹해졌다. 지금 50대 초반인 저자가 겪었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동네 문구점과 구멍가게에 과자를 납품하는 지금 이야기까지 정겹고, 눈물 나고, 아름답다. 이런 분이 있어서 참 좋다.
게다가 저자가 정말 글을 잘 쓴다. 글쟁이라는 뜻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에서 따뜻한 글이 나오는 것 같다. 사람 마음을 살피고, 이웃의 처지를 눈여겨본다. 이 정도로 글을 잘 쓰는 사람이면 젠체하거나 우쭐대는 분위기가 드러낼 텐데 전혀 그렇지 않다. 시종일관 깊이와 따뜻함이 넘쳐난다.
책을 읽으며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나와 친구들 모두 가난했는데 나는 교사가 되어 가난에서 벗어났다. 이분은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같이 몸부림치며, 몸부림치다 무너져 버린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서럽고 슬픈 이야기를 읽으며 이웃에게 손 한 번 더 내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영세 자영업으로 가족을 위해 애쓰는 남편, 그런 아빠가 있는 분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6년 전에 나왔어요.)

대상도서 : 「난설헌」, 최문희

초당 허엽



강릉은 묵향(墨香), 솔향(松香)의 고장으로 불린다. 예부터 글을 쓰는 선비들이 많아 먹물 냄새가 진하게 배어있는 곳, 소나무 향이 가득한 곳이다. 조선시대에 선비들은 경포대에 올라 경포호를 바라보며 글을 쓰기 원했다고 한다. 기회가 생기면 얼마 동안 강릉에 와서 시를 쓰고 벗을 사귀

다가 고향으로 돌아갔다. 여유가 있는 선비는 좋은 집에서 지냈지만 그렇지 않은 선비들은 풀과 짚으로 임시 거처를 만들고 잠시 동안 지내다가 돌아갔다. 풀로 지은 집이 많았기 때문에 경포호수 주변을 ‘초당’이라고 불렀다. 강릉시 경포호수 주변은 도로명주소를 쓰기 전까지 줄곧 초당동으로 불렸다.

강릉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초당두부가 있다. 초당 마을에서 주로 판매하는 초당두부는 허엽이 처음 만들었다. 허엽이 허균과 허난설헌의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초당두부 만든 인물로 더 알려졌을 것이다. 강릉은 천일염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두부를 만들기 어려웠다. 허엽은 소금 대신 동해 바닷물을 사용해서 두부를 만들었다. 동인의 우두머리인 허엽이 아낙네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초당두부를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허엽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허엽의 호가 바로 초당(草堂)이다. 고상한 뜻을 지닌 호를 만들 수도 있었는데 하필 ‘풀로 지은 임시 집’을 호로 삼은 까닭이 뭘까? 허엽은 화담 서경덕 밑에서 학문을 배웠고 동인의 영수였다. 이황과 다툴 정도로 학문이 깊었으며 대사성, 부제학을 지냈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의 학문과 권력을 가진 조선시대 양반이 두부를 만들었다니 이상하다. 조선시대 양반은 두부 만드는 방법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허엽은 당대 예법에 얽매이지 않았다. 아들뿐만 아니라 딸에게도 글을 가르쳤으며 자식들과 허물없이 시를 주고받았다. 난설헌 허초희가 안동 김씨 집안에 시집갈 때 시어머니가 “책 읽고 시 쓸 생각은 하지도 마라.”고 했다는 사실로 보아 허엽이 딸을 대한 태도는 당대 양반가에 파격으로 소문이 나있었다. 허초희의 글 솜씨가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에 시에 반해 허초희를 인정한 선비가 있었지만 조선시대에 여성에 대한 평가는 아들 낳는 어머니로 충분했다. 그러나 허엽은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다 해도 여자가 어찌 시를 쓴단 말인가!’라는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아버지 허엽의 자유로운 마음은 딸인 허초희를 시인으로 자라게 했다. 그러나 여성에게 어둠의 시대였던 조선은 허난설헌을 감당하지 못했다. 남성인 허균이 가진 파격적인 생각도 조선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우리가 재미있게 읽는 홍길동 이야기는 조선시대엔 이루어지지 않을 꿈이었다. 허균과 허난설헌은 시대가 감당하지 못했다.

난설헌 허초희

허균과 허난설헌이 태어난 곳은 지금 허균․허난설헌 기념관이 되었다. 소나무가 쭉쭉 뻗은 뜨락 사이에 정갈한 기와집이 있다. 나는 가끔 경포대와 허난설헌 생가에 간다. 경포대에서 호수를 내려다보며 호수 주변에 세워진 초당을 상상한다. 허난설헌 생가를 둘러싼 소나무 길을 걸으며 두 분이 어떤 마음으로 소나무 길을 걸었을까 생각한다. 사람과 가게, 자동차와 네온사인이 넘쳐나는 경포해수욕장과 달리 이곳은 옛 선비들의 숨결이 아직도 들리는 것 같다.

그러나 이젠 다시 그곳에 가면 슬프고 힘들 것 같다. 허난설헌이 시집가서 고생하다가 28살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난설헌」을 읽기 전에는 어떤 고생인지 몰랐다. 마음에서 솟구친 시상이 머리에서 넘쳐나는데도 쓰지 못하는 아픔, 자기보다 학문과 인품에서 부족한 남편의 질투와 냉대, 딸에게 시를 가르친 허엽 일가를 멸시하는 시어머니의 말과 몸짓이 얼마나 큰 아픔을 주었는지 느꼈다. 여성이었기 때문에 시를 쓰면 안 되고, 딸이기 때문에 추억이 어린 집에 가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허난설헌은 시어머니처럼 날카롭게 분노하지 않았다. 무능한 남편을 비난하지 않았다. 그 정갈함과 고고함이 시댁 식구들에게는 더욱 미운 털이 되었다.

허난설헌은 정말 외로웠을 것 같다. 조선시대 여성에게 씌워진 굴레에 신경 쓰지 않았던 아버지 허엽은 경상도관찰사를 지내던 중에 병을 얻어 돌아오다가 상주에서 객사했다. 글로 마음을 나누던 오빠 허봉 역시 함경도 종성에 유배를 간 뒤에 금강산에 들어갔다가 38세에 객사했다. 허난설헌을 아는 사람들, 허초희의 글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쓸쓸하게 사라져갔다. 고립무원의 섬 같은 시댁에서 허난설헌은 외로움에 짓눌렸다. 아들과 딸을 하나씩 두었으나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고 시어머니에게 빼앗겼고, 그마저도 병 때문에 둘 다 어려서 죽었다.

허난설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허균뿐이다. 허균은 27살에 죽은 누이의 시를 모아 시집을 만들었다. 시집은 중국과 일본 학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래도 허균은 힘들었을 것이다. 허균 역시 이루어지지 않을 이상을 홍길동전에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누나를 잃고 허균이 느낀 마음이 곧 허난설헌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기념관 현판을 신영복 선생이 썼다. 이 책에 관련 이야기가 나온다.


백일홍, 간지럼나무

허균, 허난설헌 생가 마당에는 나무 백일홍(배롱나무)이 서있다. 허난설헌은 백일홍을 좋아했다. 시어머니는 껍질이 벗겨지고 속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백일홍을 싫어했다. 형식으로 껍질을 둘러치고 시대의 생각에 매여 살아가는 사람은 껍질이 부서지며 자라는 백일홍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껍질을 깨뜨리고 인간의 존재 깊은 곳에 무엇이 있는지 찾아가며 고민하는 사람을 억누르려고만 했다.

지금은 나무 백일홍을 간지럼나무라고 부른다. 껍질이 벗겨진 나무 둥치를 쓰다듬으면 잎이 파르르 떨리는 것 같아서 간지럼을 타는 나무라고 이름을 붙였다. 아이들은 간지럼나무라는 말을 좋아한다. 나무 둥치를 살살 문지르며 잎이 움직이는지 바라보는 모습이 정말 예쁘다. 남녀 아이들이 나무에 옹기종이 붙어 나무를 간지럽히는 모습을 허난설헌이 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백일홍을 간지럼나무라고 부르는 시대는 허난설헌에게 박수를 보내며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을 텐데 아쉽다.

15년 전에 만난 아이가 <순서>라는 제목으로 시를 썼다. 재기발랄한 아이의 마음이 허난설헌을 생각나게 한다.

---------순서

김샛별 (삼척초 4)

어제는 할머니 댁에 갔다가
바로 외갓집으로 갔다.
난 외갓집에 먼저 가는 걸 한 번도 못 봤다.
남자 쪽이라서?
그건 너무 불공평해 !
순서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

맞다. 순서가 있는 게 아니다. 허난설헌이 살던 시대에도 순서가 없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허난설헌은 경포 호수와 소나무 가득한 이곳에서 배롱나무를 키우며 초당 허엽에게 시를 배웠다. 8살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을 지어 신동으로 불리었다. 그림에도 뛰어났고 용모와 성품도 아름다웠다. 허난설헌이 지금 태어났다면 사람들에게 사랑 받으며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계를 마음껏 펼쳐냈을 것이다. 오빠들과 시를 나누고 인간의 존재를 자유롭게 토론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슬프고 마음이 아프다. 편견에 사로잡힌 시대가 아름다움과 고귀함을 짓밟고 어둠과 절망을 남겼다. 허균도 벼슬에 올랐다가 파직당하고, 다시 벼슬에 올랐다가 파직당하기를 되풀이했다. 시대가 감당하지 못한 생각을 가진 두 남매는 조선시대에 날개가 꺾인 남성과 여성의 대표자이다. 허난설헌과 허균은 수백 년의 시간을 앞선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꽃을 피우지 못하고 꺾였다.

한(恨)이 없는 시대

허난설헌은 세 가지 한이 있다고 했다.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서 태어난 것, 그리고 남편의 아내가 된 것……”

지금은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한스럽다고 말할까? 여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대답 대신 다른 이유들이 또 생겼을 것이다. 우리를 아프고 슬프게 하는 편견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편견이 클수록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세상이 줄어든다. 사람들이 꿈을 꾸게 하려면 발목을 붙잡아 끌어내리는 편견이 사라져야 한다.

「난설헌」은 제1회 혼불문학상을 받았다. 저자는 난설헌의 아픔을 되풀이하는 사람이 없

기를 바라며 글을 썼을 것이다. 책을 읽고 자유롭게 생각을 나누며 마음껏 글을 쓰는 세상이 우리에게도 열려 있다. 아이들이 책을 읽고 깔깔거리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책을 읽고 이야기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는 모습이 얼마나 귀한지! 생각을 글에 담아 표현하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우리가 살아가는 곳이 허난설헌을 길러내는 학교가 되면 좋겠다. 그래서 편견 없는 세상, 모든 사람이 꿈을 꾸는 세상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허균허난설헌 기념관 안채에서 고등학생들과 글 쓰고 발표하는 모습 (일반 관람객은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다.)

 

101살 할아버지의 마지막 인사 (벤자민 페렌츠, 149) / 인문, 인생,, 홀로코스트

우와~! 정말 좋은 책을 만났다. 101살 할아버지 내공이 장난 아니다. 저자 소개를 읽지 않고 책을 읽으면 <성공한! 멋진! 40~50대 법률 전문가>가 썼다고 생각하겠다.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이야기하는데 ~!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소년을 읽다와 함께 단숨에 올해 최고의 책 후보에 올렸다.

저자를 간단하게 소개하면 이렇다. 1920년 트란실바니아(지금은 없어진 나라)에서 출생. 9개월 때 미국으로 이민. 맨해튼 우범 지구에서 굉장히 가난하게 살면서 유머를 잃지 않음. 영어를 모르면서도 주눅 들지 않음. 고등학교 졸업장 받지 못했지만, 하버드 로스쿨 졸업. 2차 세계대전에서 포로수용소를 돌며 전범 증거 수집. 2차 세계대전에서 후 뉘른베르

크 전범 재판에서 나치 학살부대 기소. 이스라엘과 서독 간 유대인 배상 협상에 참여해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에게 재산을 돌려주는데 앞장섬.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에 선구적인 역할.

다시 말하지만, 이 책 정말 좋다. 낙관적으로 생각하며, 웃음을 잃지 않고, 어려워도 부딪치고 계속 노력하며, 인간을 위해 살아가는 훌륭한 분이다. 100년 동안 도전하고, 노력하고, 힘든 일을 만나도 즐겁게 부딪치며, 이웃을 위해 살아왔다. 정말 멋진 노인이다. 나는 슬픔과 우울을 친구 삼아 사는데 좀 가볍고 즐겁게 살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내용이 정말 많다. 다만, 같은 분량의 다른 책에 견주어 책값이 약간 비싸다. (저작권료가 비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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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두려운 것이라도, 우리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전혀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다. 두려움은 우리 시대의 직장이나 교육 환경에서 살아남게 해주고, 우리가 원하는 삶을 이루게 해주며, 우리가 익숙해진 것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무엇을 잃을까봐 두려운 것이라 해도, 역시 나쁠 것이 없다. 그 말은 곧 싸워서 지켜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니, 그만큼 그것에 집중하다 보면 두려움은 오히려 생산성과 효율성, 용기와 스피드 같은 것으로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다(53).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곧장 돌아 나와야 한다. 비록 그것이 우리가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잘못된 길을 계속해서 고집했다가는 벼랑 아래로 곤두박질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논쟁에서도 마찬가지다(106).

한때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조언을 구한 적도 있었다. 십 대가 된 아이들은 전혀 통제가 되지 않았다. 의사는 아이들이 좀 더 편안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아이들은 곧 괜찮아질 거라고, 아이들에겐 좋은 부모와 좋은 가족이 있고, 또 바르게 자랐다고도 했다. 잊지 말아야 한다. 사춘기는 일시적으로 제정신이 아닌 시기라는 것을 말이다. 그때는 우리 모두가 반쯤은 미쳐 있는 것이다(109).

저 자신의 영웅이 되어야 한다. 내게는 우상이 없었다. 나는 양키 스타디움에서 베이브 루스가 홈런을 치는 걸 본 적이 있다. 모두들 굉장히 흥분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세게 공을 칠 수 있다고 해서 그게 어떻다는 건가?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의 홈런을 치기 위해 애쓰고 있다(145).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 소년원에서 국어 수업을 한 기록이다.
글이~ 완전~ 예술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문학가가 쓴 것 같다.
짧게 툭툭 내뱉듯 쓴 문장을 천천히 읽고 또 읽게 만든다.

서현숙 선생님, 글을 정말 잘 쓴다생각이 깊이가 있는데, 읽으면 밝고 가벼운 느낌이 든다.
편하게 읽으면서 깊게 생각하게 만들다니 굉장하다.
소년원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문장에 가득 담겼다.
정말~ ~말 좋은 책이다.

나도 재소자, 소년원 아이들과 인연이 있다.
교도소에 갇힌 사람과 1년 넘게 편지를 주고받았다.
나는 후원자였고, 그 사람은 글쎄~
내 마음을 훔쳐 돈을 얻어간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2019~20202년 동안 소년원 아이들이 쓴 편지를 읽었다.
내가 선정한 책을 교보재단에서 소년원에 보내주었고,
소년원 아이들이 응모한 편지를 심사했다.
마음 아픈 이야기가 많았다.
올해는 심사위원이 아니다. 아이들 이야기를 못 읽어서 아쉽다.

소년을 읽다를 읽으며 야학에서 수업했던 때가 생각났다.
학업을 관둔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애들이 참 착했다.
나도 선입관을 갖고 다가갔다가 애들 보고 깜짝 놀랐다.
그때는 얘들이 왜 학교를 관뒀지?’아무리 생각해도 몰랐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소년을 읽다, 참 좋은 책이다.

 

근철이가 느낀 고마움 너머, 거기에 미안함이 있다. 어른인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고마움에 미안함이 왜 찰떡처럼 들러붙어 있는지 말이다. 마음의 일이어서 그렇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마음으로 꽉 채워져 있어서 그렇다. 바다는 푸른 물결이 가득 차서 끊임없이 넘실거린다. 사람 안에는 마음이 가득하다. 마음은 단단하지 못한 채로 항시 흔들린다. 미안함, 고마움, 그리움으로 꽉 차서 넘실거린다. (77)

우리는 소년에게 책을 주지만 소년이 손에 받은 것은 자신을 돌보며 사는 마음 아닐까.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 수 있는 마음 아닐까.(116)

나는 이 푸대접의 공간에 익숙해졌다. 3월 초에는 교실을 보고 낯이 뜨거웠다. 여기에서 수업을 하라고? 이 정도면 총고 아니야? 이 공간에서 수업을 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모멸로 느껴졌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익숙해진다. 아무렇지도 않아진다. 누구를 초대하고도 누추함에 대한 부끄러움이 옅어졌다. 슬픈 일이네. 바꾸지도 못하면서 익숙해지기만 했으니 말이야. (166)

여기 도무지 글과는 인연이 없어 보이는 소년원의 소년들이 글을 만나 눈을 반짝이는 마법 같은 이야기가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들이 글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만날 글과 이야기가 없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니, 이들의 삶에 눈을 반짝이는 글과 말에 우리가 얼마나 무지하고 무관심했는지 깨닫게 된다. 이들이 할 이야기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에게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나아가 세상이 사랑하는 많은 글과 이야기가 사실은 좁디좁은 세계의 한 줌 사람들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부끄럽게 돌아보게 된다. 그들이 책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책을 우리 세계에 가두었다는 것을 말이다. (엄기호 추천글)

 

 

그땐 그랬지!”

그땐 그랬지!” 하면 어떤 추억이 떠오를까? 625나 가난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테고, 중요한 시험에 합격한 순간이나 성공한 기억, 어릴 적 친구들과 놀던 일을 떠올리기도 하겠다. 2016년을 맞이하는 대한민국 학생들은 무얼 추억으로 떠올릴까?

지난해 10월에 학부모와 함께 울릉도에 현장체험학습을 다녀왔다. 전교생 10명이 엄마, 아빠, 선생님과 울릉도에 가서 시내버스 타고 다녔다. 내수산 전망대에서 삼선암 쪽으로 3시간 동안 걷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 지나가는 봉고차를 얻어 탔는데 어쩌다 보니 봉고차 한 대에 22명이 가득 탔다. 봉고차 안에 쭈그리고, 허리 숙이고, 끌어안고 낑낑대면서도 다들 웃었다.

다음날에 지나가는 시내버스를 히치하이킹으로 세웠다.

아니, 내가 손을 들면 한 번도 차가 서지 않던데 선생님은 손만 들면 차가 서네요.”

이렇게 말하는 아빠는 얼굴이 무섭게 생겼다. 뭐라 말하기 어려워서 그러게요.’ 하며 웃었다. 관광업체와 계약하지 않고 다녔기 때문에 많이 걷고, 지루하게 시내버스 기다리기도 했다. 땀 흘리고 헉헉대면서 이럴 줄 알았으면 따라오지 않는 건데……하던 학부모들이 돌아오는 길에 내년에 다시 가자고 한다. 고생 많이 해도 하루만 지나면 추억이 되나 보다. 힘들었기 때문에 더 소중한 추억!!

도시에 사는 아이들은 무얼 추억으로 간직할까? 30년 뒤에 무얼 떠올리며 그땐 그랬지!”라 할까? “그땐 ○○○ 게임을 했지!”라고 하진 않겠지! 학원에서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았다고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도시 아이들이 무얼 추억으로 간직할지 모르겠다.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 사는데도 도시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텔레비전을 보지 않기 때문일까?

지금은 안 그래요.”

공간의 차이가 생각의 차이를 만든다. 사는 곳이 다르면 생각이 다르다. 시골에 사는 아이와 도시에 사는 아이는 생각이 다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은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공간의 차이가 줄어들었다. 옛날에는 서울 가면 코 베어간다고 했지만 지금은 시골 사람이 더 약았다고 한다. 시골에서도 인터넷 활용해서 공간의 차이를 뛰어넘는다.

그렇다면 시간의 차이는 어떨까? 30년 전을 추억으로 간직한 부모와 지금을 추억으로 간직할 자녀가 서로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30년이라는 시간이 만들어낸 생각의 차이를 좁힐 수 있을까? 어렵다. 변화가 느린 시대, 부모와 자녀가 비슷하게 살았던 고대 사회에도 세대 차이가 존재했다. 기원전 1700년 경 수메르 시대에 쓰인 점토판에 요즘 젊은 것들 버릇이 없다.” 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사람은 자신이 겪은 일을 기준으로 판단하기 마련이다. 부모는 그때겪은 일, 30년 전에 생긴 가치관으로 판단한다. ‘그때를 모르는 자녀는 지금은 안 그래요.” 라고 말한다. 당연히 차이가 생긴다. 부모는 자녀가 철이 없다, 버릇이 없다고 한다. 자녀들은 부모 세대를 고리타분하다, 말이 안 통한다고 한다. “그땐 그랬지.”지금은 안 그래요.”의 차이가 어찌나 큰지 부모와 자녀가 서로에게 으르렁대게 만든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사랑하는 아들에게라고 편지를 시작하면 어떤 내용을 쓸까? 공부 열심히 하고 건강해라, 항상 최선을 다하고 행복해라, 게임 그만하고 성공하라고 쓸까? 부모는 자녀가 건강하고 행복하고 성공하기 원한다. 이를 위해 게임 그만하고 공부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자녀는 부모 말을 듣지 않는다. 건강에 좋지 않은 것들을 즐긴다. 미래보다 현재의 즐거움을 더 좋아한다.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 지금 행복하기 원한다. 부모 속을 긁어댄다. 그래서 부모가 자녀를 이해하기 힘들다.

룽잉타이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1986-1999) 독일에 갔다. 대만 문화국장 일을 하기 위해 독일을 떠날 때 아들 안드레아는 14살이었다. 문화국장 일을 끝내고 홍콩에 건너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안드레아는 18살이 되었다. 4년 동안 떨어져 지낸 아들은 와인 잔을 들고 차갑게엄마를 바라보았다. 아들은 담배를 피우고, 엄마의 물음에 심드렁하게 대답하며, 자기는 엄마의 사랑스런 아들 안안(어릴 때 부르던 이름)이 아니라고 말했다.

엄마 룽잉타이는 안안을 잃어버린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아들 안드레아를 영영 잃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들과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아들을 알아가려면 잘 지내니? 밥은 먹었니?”만 물을 수는 없다. 엄마가 어릴 때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내세워서, 아들을 엄마의 그림자에 가두어도 안 된다. 서로를 이해하려면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서 해야 한다.

사랑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만큼 불편한 상대가 어디 있으랴! 사랑하지만 미워하고, 사랑하지만 오해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더 미워하기 싫어서, 더 멀어지지 않으려고, 가까이 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가까이 하지 않는다. 또 실망하고 더 미워하게 될까 두려워한다. 서로에게 남긴 상처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민감한 이야기를 피하고, 서로의 솔직한 생각을 알면 감당하지 못할까 두려워한다. 진실한 사랑만이 두려움을 이긴다. 그래서 어렵다.

천천히 생각을 나누면서

편지는 느린 방식이다. 세상이 빠르게 변해가면서 편지가 그땐 그랬지의 대상이 돼버렸다. 전화하거나 만나면 될 일을 굳이 편지로 쓰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빠르게 지나가면 깊이 보지 못한다. 한 번 해버린 말은 신중하게 다시 생각하기 어렵다. 나태주 시인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가까이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했다. 말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면 조금씩 덧붙여져서 뜻이 바뀌기 쉽다. 편지는 내용이 그대로 남는다. 오해하지는 않았는지, 편지 쓴 사람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다시 읽으면서 생각할 수 있다.

편지를 쓰는 자체도 어렵지만 30년간의 시간 차이도 부모와 자녀를 가로막는다. 부모와 자녀가 안부편지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편지를 쓴다니 얼마나 힘들까! 편지에는 감정 대립, 논리 싸움이 계속 이어진다. 그래도 룽잉타이와 안드레아는 3년 동안 꾸준히 편지를 썼다. 신문에 칼럼을 내면서 원고료를 주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부모와 아들이 3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사실도 귀하지만 둘이 편지에서 나눈 내용이 더 귀하다. 개인 일상이야 당연히 나누겠지만 홍콩, 대만, 독일, 싱가포르에서 일어난 이슈로 논리 싸움을 벌인다.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 시작한 편지가 가치관, 문화, 취미, 인생의 목표에 대한 대화로 이어진다. 그러면서 부모와 자녀의 세대 차이, 독일에서 자란 사람과 대만에서 자란 사람의 문화 차이,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극복해간다. 우리나라 18살이 이런 생각을 할까 싶다. 교수이며 문화부 장관이었던 사람의 생각이 깊은 거야 당연하다 생각하지만 18, 여전히 부모를 의지하는 나이인데도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통찰을 보여준다. 감탄하고 부러워하며 읽었다.

둘은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는 기쁨을 느꼈을 것이다. 룽잉타이와 안드레아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상대의 생각을 확인하고 이해한다. 아들이 엄마처럼, 엄마가 아들처럼 되지는 않지만 어느 부분에서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하며 받아들인다. 게다가 신문에 낸 칼럼을 읽고 독자들이 보낸 편지가 균형을 더한다. 대만과 독일의 차이를 넘어서서 세계적인 시각으로 균형을 잡아가게 돕는다.

부모와 자녀 세대가 지금처럼 멀어진 적이 있을까! 앞으로는 얼마나 더 멀어질까!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 자녀가 부모를 좋아하는 마음만큼 서로를 이해하면 삶이 얼마나 풍성해질까! 부모와 자녀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같은 길을 가면서 이야기하면 좋겠다. 정치 색깔이 다르다고 비난하지 말고,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며 대화하는 국민이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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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독한 우울증의 압력에 짓눌려 살았던 분의 고백이 깊다. 적당한 우울을 다룬 책, 우울증을 심각하게 앓았지만 글로는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책을 여럿 읽었다. 괜찮은 책도 있었지만 그다지 깊진 않았다. 이 책은 다르다. 우울증이 무엇인지 몸으로 보여준다.
-- 우울증에서 벗어난 과정도 예사롭지 않다. 좋은 직장 사직하고 배낭여행을 떠났다가 1주일 만에 교통사고가 났다. 가난한 나라 라오스에서 일어난 사고라 처리도, 치료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버스에 짓눌려 몇 시간 동안 구조대를 기다리며, 말이 안 통하는 병원에서 떠밀리며 느낀 감정들이 또한 깊다. 이분을 위해 어렵사리 휴가를 내서 함께 여행길을 시작한 친구가 사고에서 죽었다. 자신만 살아남은 죄책감과 살고 싶은 마음이 거대한 버스 무게만큼이나 무겁게 짓눌렀다. 다친 몸을 치료하면서, 우울증과 싸우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깨닫는다. 이걸 쓰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 그렇지만 이분 곁에는 좋은 분들도 참 많았다. 같은 버스에 탔던 여행객은 버스에서 부상 당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안아주었다. 자기들 여행 계획을 바꿔서라도. 아는 사람 전혀 없는 외국 병원에서 혼자 내버려진 기분으로 떠는 사람을 찾아와 고향 음식을 해주며 돌봐준 분도 있다. 함께 걸으며 아픔을 들어주고, 자기들 아픔을 이야기해준 분도 있다. 짧게 듣고 처방해주는 의사가 아닌, 길게 들어주고 사고 났을 때 병원까지 찾아와주는 의사도 있다. 그런 분들 덕분에 짓눌리는 무게가 조금씩 가벼워졌으리라!
-- 나는 인간의 고통, 고통을 대하는 감정에 관심이 많았다. 20대와 30대 내내 홀로코스트를 겪으며 포로수용소에서 견뎌낸 분들의 책을 읽었다. 하나님이 왜 고통을 그냥 보기만 하시는지 논하는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내가 만난 아이들 마음에도 같은 고통이 숨어있는 걸 보았고, 아이들 마음을 회복시키려고 아이들과 글을 썼다. 그때 참 마음이 아팠는데, 이 책은 그보다 더 무거웠다. 우울함에 눌리는 분들, 우울함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분들(교사도)에게 추천한다.
-- 더불어 걷기 좋아하는 분에게도 추천한다. 저자가 우울증을 이겨내려고 여행길에 나섰고, 여행에 나섰기 때문에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이를 이겨내려면 다시 여행길을 걸어야 했고, 안전하게 돌아와야 했다. 그래서 혼자 산티아고를 걸었다. 산티아고 걷고 쓴 책을 몇 권 읽었는데 모두 별로였다. 그래서 산티아고 걷기 원하는 분들에게 ‘거기 아닌 다른 곳도 괜찮지 않냐?’ 물었다. 이 책을 읽고는 ‘산티아고 걷는 거 괜찮겠다’ 생각한다.
-- 다만 '자기 중심성'의 함정을 조심하자. 아주 많이 아픈 사람 이야기를 들으면 자기 자신도 아프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렇게 아픈데 사람들이 몰라주는구나!' 생각하기 마련이다. 어릴 때 어떻게 살았는지 이야기하면, 대부분 자기가 가장 힘들게 살았다고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 이야기가 덧붙여져서 자기가 아주 많이 힘들게 살았고, 지금 괜찮게 사는 건 노력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즉, 나를 알아달라고 외친다. '우울증'도 이렇게 쓸 수 있다. 그냥 운동하면 괜찮아지는 사람, 친구 만나 맥주 한 잔 하며 이야기하면 괜찮아지는 사람이 이 책의 어느 한 부분을 붙잡고 '나도 이렇게 힘들었다'고 빠져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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