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도서 : 「난설헌」, 최문희

초당 허엽



강릉은 묵향(墨香), 솔향(松香)의 고장으로 불린다. 예부터 글을 쓰는 선비들이 많아 먹물 냄새가 진하게 배어있는 곳, 소나무 향이 가득한 곳이다. 조선시대에 선비들은 경포대에 올라 경포호를 바라보며 글을 쓰기 원했다고 한다. 기회가 생기면 얼마 동안 강릉에 와서 시를 쓰고 벗을 사귀

다가 고향으로 돌아갔다. 여유가 있는 선비는 좋은 집에서 지냈지만 그렇지 않은 선비들은 풀과 짚으로 임시 거처를 만들고 잠시 동안 지내다가 돌아갔다. 풀로 지은 집이 많았기 때문에 경포호수 주변을 ‘초당’이라고 불렀다. 강릉시 경포호수 주변은 도로명주소를 쓰기 전까지 줄곧 초당동으로 불렸다.

강릉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초당두부가 있다. 초당 마을에서 주로 판매하는 초당두부는 허엽이 처음 만들었다. 허엽이 허균과 허난설헌의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초당두부 만든 인물로 더 알려졌을 것이다. 강릉은 천일염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두부를 만들기 어려웠다. 허엽은 소금 대신 동해 바닷물을 사용해서 두부를 만들었다. 동인의 우두머리인 허엽이 아낙네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초당두부를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허엽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허엽의 호가 바로 초당(草堂)이다. 고상한 뜻을 지닌 호를 만들 수도 있었는데 하필 ‘풀로 지은 임시 집’을 호로 삼은 까닭이 뭘까? 허엽은 화담 서경덕 밑에서 학문을 배웠고 동인의 영수였다. 이황과 다툴 정도로 학문이 깊었으며 대사성, 부제학을 지냈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의 학문과 권력을 가진 조선시대 양반이 두부를 만들었다니 이상하다. 조선시대 양반은 두부 만드는 방법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허엽은 당대 예법에 얽매이지 않았다. 아들뿐만 아니라 딸에게도 글을 가르쳤으며 자식들과 허물없이 시를 주고받았다. 난설헌 허초희가 안동 김씨 집안에 시집갈 때 시어머니가 “책 읽고 시 쓸 생각은 하지도 마라.”고 했다는 사실로 보아 허엽이 딸을 대한 태도는 당대 양반가에 파격으로 소문이 나있었다. 허초희의 글 솜씨가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에 시에 반해 허초희를 인정한 선비가 있었지만 조선시대에 여성에 대한 평가는 아들 낳는 어머니로 충분했다. 그러나 허엽은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다 해도 여자가 어찌 시를 쓴단 말인가!’라는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아버지 허엽의 자유로운 마음은 딸인 허초희를 시인으로 자라게 했다. 그러나 여성에게 어둠의 시대였던 조선은 허난설헌을 감당하지 못했다. 남성인 허균이 가진 파격적인 생각도 조선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우리가 재미있게 읽는 홍길동 이야기는 조선시대엔 이루어지지 않을 꿈이었다. 허균과 허난설헌은 시대가 감당하지 못했다.

난설헌 허초희

허균과 허난설헌이 태어난 곳은 지금 허균․허난설헌 기념관이 되었다. 소나무가 쭉쭉 뻗은 뜨락 사이에 정갈한 기와집이 있다. 나는 가끔 경포대와 허난설헌 생가에 간다. 경포대에서 호수를 내려다보며 호수 주변에 세워진 초당을 상상한다. 허난설헌 생가를 둘러싼 소나무 길을 걸으며 두 분이 어떤 마음으로 소나무 길을 걸었을까 생각한다. 사람과 가게, 자동차와 네온사인이 넘쳐나는 경포해수욕장과 달리 이곳은 옛 선비들의 숨결이 아직도 들리는 것 같다.

그러나 이젠 다시 그곳에 가면 슬프고 힘들 것 같다. 허난설헌이 시집가서 고생하다가 28살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난설헌」을 읽기 전에는 어떤 고생인지 몰랐다. 마음에서 솟구친 시상이 머리에서 넘쳐나는데도 쓰지 못하는 아픔, 자기보다 학문과 인품에서 부족한 남편의 질투와 냉대, 딸에게 시를 가르친 허엽 일가를 멸시하는 시어머니의 말과 몸짓이 얼마나 큰 아픔을 주었는지 느꼈다. 여성이었기 때문에 시를 쓰면 안 되고, 딸이기 때문에 추억이 어린 집에 가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허난설헌은 시어머니처럼 날카롭게 분노하지 않았다. 무능한 남편을 비난하지 않았다. 그 정갈함과 고고함이 시댁 식구들에게는 더욱 미운 털이 되었다.

허난설헌은 정말 외로웠을 것 같다. 조선시대 여성에게 씌워진 굴레에 신경 쓰지 않았던 아버지 허엽은 경상도관찰사를 지내던 중에 병을 얻어 돌아오다가 상주에서 객사했다. 글로 마음을 나누던 오빠 허봉 역시 함경도 종성에 유배를 간 뒤에 금강산에 들어갔다가 38세에 객사했다. 허난설헌을 아는 사람들, 허초희의 글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쓸쓸하게 사라져갔다. 고립무원의 섬 같은 시댁에서 허난설헌은 외로움에 짓눌렸다. 아들과 딸을 하나씩 두었으나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고 시어머니에게 빼앗겼고, 그마저도 병 때문에 둘 다 어려서 죽었다.

허난설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허균뿐이다. 허균은 27살에 죽은 누이의 시를 모아 시집을 만들었다. 시집은 중국과 일본 학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래도 허균은 힘들었을 것이다. 허균 역시 이루어지지 않을 이상을 홍길동전에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누나를 잃고 허균이 느낀 마음이 곧 허난설헌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기념관 현판을 신영복 선생이 썼다. 이 책에 관련 이야기가 나온다.


백일홍, 간지럼나무

허균, 허난설헌 생가 마당에는 나무 백일홍(배롱나무)이 서있다. 허난설헌은 백일홍을 좋아했다. 시어머니는 껍질이 벗겨지고 속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백일홍을 싫어했다. 형식으로 껍질을 둘러치고 시대의 생각에 매여 살아가는 사람은 껍질이 부서지며 자라는 백일홍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껍질을 깨뜨리고 인간의 존재 깊은 곳에 무엇이 있는지 찾아가며 고민하는 사람을 억누르려고만 했다.

지금은 나무 백일홍을 간지럼나무라고 부른다. 껍질이 벗겨진 나무 둥치를 쓰다듬으면 잎이 파르르 떨리는 것 같아서 간지럼을 타는 나무라고 이름을 붙였다. 아이들은 간지럼나무라는 말을 좋아한다. 나무 둥치를 살살 문지르며 잎이 움직이는지 바라보는 모습이 정말 예쁘다. 남녀 아이들이 나무에 옹기종이 붙어 나무를 간지럽히는 모습을 허난설헌이 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백일홍을 간지럼나무라고 부르는 시대는 허난설헌에게 박수를 보내며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을 텐데 아쉽다.

15년 전에 만난 아이가 <순서>라는 제목으로 시를 썼다. 재기발랄한 아이의 마음이 허난설헌을 생각나게 한다.

---------순서

김샛별 (삼척초 4)

어제는 할머니 댁에 갔다가
바로 외갓집으로 갔다.
난 외갓집에 먼저 가는 걸 한 번도 못 봤다.
남자 쪽이라서?
그건 너무 불공평해 !
순서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

맞다. 순서가 있는 게 아니다. 허난설헌이 살던 시대에도 순서가 없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허난설헌은 경포 호수와 소나무 가득한 이곳에서 배롱나무를 키우며 초당 허엽에게 시를 배웠다. 8살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을 지어 신동으로 불리었다. 그림에도 뛰어났고 용모와 성품도 아름다웠다. 허난설헌이 지금 태어났다면 사람들에게 사랑 받으며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계를 마음껏 펼쳐냈을 것이다. 오빠들과 시를 나누고 인간의 존재를 자유롭게 토론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슬프고 마음이 아프다. 편견에 사로잡힌 시대가 아름다움과 고귀함을 짓밟고 어둠과 절망을 남겼다. 허균도 벼슬에 올랐다가 파직당하고, 다시 벼슬에 올랐다가 파직당하기를 되풀이했다. 시대가 감당하지 못한 생각을 가진 두 남매는 조선시대에 날개가 꺾인 남성과 여성의 대표자이다. 허난설헌과 허균은 수백 년의 시간을 앞선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꽃을 피우지 못하고 꺾였다.

한(恨)이 없는 시대

허난설헌은 세 가지 한이 있다고 했다.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서 태어난 것, 그리고 남편의 아내가 된 것……”

지금은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한스럽다고 말할까? 여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대답 대신 다른 이유들이 또 생겼을 것이다. 우리를 아프고 슬프게 하는 편견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편견이 클수록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세상이 줄어든다. 사람들이 꿈을 꾸게 하려면 발목을 붙잡아 끌어내리는 편견이 사라져야 한다.

「난설헌」은 제1회 혼불문학상을 받았다. 저자는 난설헌의 아픔을 되풀이하는 사람이 없

기를 바라며 글을 썼을 것이다. 책을 읽고 자유롭게 생각을 나누며 마음껏 글을 쓰는 세상이 우리에게도 열려 있다. 아이들이 책을 읽고 깔깔거리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책을 읽고 이야기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는 모습이 얼마나 귀한지! 생각을 글에 담아 표현하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우리가 살아가는 곳이 허난설헌을 길러내는 학교가 되면 좋겠다. 그래서 편견 없는 세상, 모든 사람이 꿈을 꾸는 세상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허균허난설헌 기념관 안채에서 고등학생들과 글 쓰고 발표하는 모습 (일반 관람객은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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