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서재 이름이 <책뜰안애>입니다.
책이 가득한 뜰에서 평안과 사랑을 나눈다는 뜻입니다.

책뜰안애 서재 책꽂이입니다.
높이 3m 50cm쯤 되고,  책꽂이 재료는 편백나무입니다.

가장 아래쪽은 수납장을 만들고 쿠션을 깔았습니다. 의자 겸 수납장입니다.
제가 설계한 책꽂이를 목수에게 맡겨서 만들었습니다.
"여기 책 다 못 꽂으면 가만 안 있을 거예요."
책꽂이 만들면서 목수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드는 게 힘들었나 봐요.
어쩌죠? 벌써 다 채웠네요!

책꽂이를 만들고 싶다면

1. 책꽂이 한 칸 높이를 책보다 3cm 정도 높게 계획하세요.
   (기성품 책꽂이는 간격이 높아서 책을 많이 꽂지 못합니다. 덩그러니 놓인 느낌도 납니다.)
   (제 책꽂이 가장 아래쪽은 33cm입니다. A4 크기를 넣고 3cm 남습니다.)

2. 책꽂이 앞뒤 폭을 책보다 5cm 정도 넓게 계획하세요.
   (기성품은 폭이 너무 넓습니다. 작은 책은 앞뒤로 두 줄 꽂아도 될 정도입니다.

3. 책꽂이에 책을 꽂을 때  앞쪽에서 2cm쯤 들어가게 꽂으세요.
   (책꽂이 뒤쪽에 닿게 책을 쭉 밀어넣지 마세요. 그럼 보기 싫어집니다.)

4. 꽂을 책 권수를 여유롭게 생각해서 만드세요.
   (책꽂이가 남으면 책 표지가 보이게 책을 펼쳐서 꽂으면 됩니다. 그러나 책이 너무 많으면 ~
    똑같이 다시 만드는 거 아주 힘듭니다.)

5. 책꽂이만 목수에게 맡기면 비쌉니다. 다른 걸 한꺼번에 만드세요.
   (저는 침대, 식탁, 옷장, 신발장, 소파까지 모두 목수에게 맡겼습니다.)

6. 책꽂이 한두 개를 싸고 손쉽게 만들려면 싱크대 회사에 맡기세요.
   (가로, 세로, 각 칸의 높이와 간격을 표로 그려서 만들어달라 하면 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책은 읽는 물건입니다. 꽂아두는 장식품이 아닙니다.
양쪽 책꽂이에 책이 삼천 권쯤 됩니다. 저는 대부분 읽었답니다.

2년 전 사진입니다. 지금은 책꽂이가 꽉 찼어요.
코로나 끝나고 여기서 모임하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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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9일에 쓴 글에, 페북친구가 좋아요를 눌러서 다시 읽었다.
이곳에 공유한다.
오늘 운동하러 앞산에 오르다가 문득 떠올랐다.
장로 위치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자격이 뭘까?
1. 성실성(과 책임감) : 반드시 필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성실성은 반드시 필요하다. 책임을 다하지 않는 사람은 지도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성실하다고 결정을 잘하는 게 아니다.
지방의회 의원 선거할 때 마땅히 뽑을 사람이 없어
인사 잘하는 사람, 교통정리 하는 사람, 봉사활동 하는 사람 뽑으면 낭패를 본다.
성실성은 바른 일을 결정한 뒤에 있어야 할 기준이다.
잘못된 결정에 성실하면 아돌프 아이히만을 만들어낸다.
유대인을 죽이라는 히틀러의 결정을 성실하게 실행한 인물.
잘못된 결정을 성실하게 이행해서 공동체를 분열로 몰고 가는 인물.
2. 공동체를 사랑하는 마음 : 반드시 필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공동체(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은 좋은 게 아니냐고 하겠지만 공동체를 자기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공동체를 망친다.
잘못된 열정이 지나친 열심과 만나면 폭풍을 일으킨다. 주의 전을 위하는 열심이 예수님을 죽인 것처럼.
어설픈 내 글보다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구절이 낫겠다.
<가짜 그리스도는 지나친 믿음에서 나올 수도 있고, 하느님이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사랑에서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성자 중에서 이단자가 나오고 선견자 중에서 신들린 무당이 나오듯이 ~ 아드소, 선견자를 두렵게 여겨라. 그리고 진리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여라.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는 대체로 많은 사람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때로는 저보다 먼저, 때로는 저 대신 죽게 하는 법이다. >
3. 공동체(교회) 모임 참여도 : 필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장로를 뽑을 때 예배와 새벽기도 참여도를 따진다. “새벽기도 안 하는 사람이 장로가 되겠다고?”
공동체 모임에 참여해야 한다.
모임에 나오는 사람, 모임에서 다루어지는 내용, 공동체 구성원들이 모임에 바라는 내용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열심히 참여한다고 장로의 자격을 갖춘 건 아니다. 무엇에서 나오는 열심인지 확인해야 한다.
(참고로 나는 주일 예배 외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는다. 내겐 지역교회 외에 참여해야 할 다른 공동체가 있다.
둘 다 하나님의 공동체라 생각한다.)
4. 재산(돈) : 상관없다.
 
언제부터인가 재산이 장로 선정의 기준이 되었다.
재산이 많으면 교회에서 일을 잘하는 구조는
.
.
한 마디로 쓰레기다.
예수님 말씀에서 ‘돈’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지 하나님 일을 하는데 필요한 도구가 아니었다.
돈이 일을 쉽게 만들 때가 있지만 돈이 많은 사람을 뽑는 교회는 병들었다.
중산층 이상이 되어야 지도자가 되는 교회, 가난하면 교회에서 말하기 힘든 교회,
헌금 많이 내는 사람이 칭찬 받는 교회는 다시 말하지만 쓰레기다.
(과부의 두 렙돈 들먹이며 정성껏 헌금하라 하는데
그 말씀에서 정성껏 헌금하라는 결론만 내리면 코끼리 다리만 만진 셈이다.)
 
물론 돈이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보다 좋은 위치에 있다.
돈이 적으면 주눅이 든다.
돈으로 일하지 못하면 다른 일로 보탬이 되려 한다.
그럼 믿음과 상관없는 열성을 만들어 내기 쉽다.
믿음보다 더하려는 마음은 위험하다.
가난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귀한 존재로 살아가는 분, 부유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입은 죄인임을 아는 분
이런 분이면 좋겠다.
(나는 지역교회보다 이슬람 선교, 북한 선교, 교육을 위한 헌금을 더 많이 낸다. 이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5. 명예와 권력 : 논할 가치도 없다.
 
하나님 일을 많이 하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고?
난 성경에서 그런 말씀을 읽은 적이 없다.
교회에 고위 공직자, 교수, 농부, 일용직 근로자가 오면 하나님은 그들 모두를 똑같이 대하신다고 믿는다.
예수님 행동을 보면 후자를 귀하게 여길 가능성이 더 크다.
6. 겸손과 교만 : 논할 가치가 없다.
 
무조건 겸손해야 한다. 겸손한 척이라도 해야 한다.
스스로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교만하다는 말을 들으며 하나님 나라에 보탬이 되는 게 낫겠다.
(바로 위의 문장은 확신하지는 못한다. 아직은...)
7. 추진력과 신중함 : 때에 따라 다르다.
 
교회에 추진력이 필요할 때가 있다.
새롭게 시작할 때, 목표를 정하고 나아갈 때, 어려움을 만날 때 추진력 있는 장로가 있어야 한다.
“내가 책임집니다. 나를 따르세요.” 라는 사람.
또한 신중함이 필요할 때가 있다.
추진력을 발휘한 솔로몬의 뒤를 이은 르호보암은 신중하게 백성들 마음을 만져주어야 했다.
다독이고, 뒤를 돌아보고, 올바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내부를 든든하게 해야 할 때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추진력을 중요하게 여겼다.
교회가 발전했고 성장했으니까.
지금은 신중할 때인 것 같다.
(물론 지역교회마다 상황이 다르다.)
나는 장로 자격이 없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일곱 집사를 뽑을 때 내세운 집사 자격도 없다.
그래서 나이가 되면 누구나 받는 ‘집사’를 신청하지 않았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나이가 되었다고 집사를 시켜줬지만 난 아직도 집사라는 말이 버겁다.
그냥 평신도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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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로 살면서 가장 아픈(거친, 막무가내인) 아이들을 만났다.
날마다 싸우고, 욕하고, 폭발했다.
친구와 싸우고, 선생님께 욕하고 덤비고
5학년부터 아래 학년으로 내려가면서 싸우더니
4학년, 3학년 때리고, 1~2학년에게 욕을 해댔다.
폭발 소년 붙들고 울기를 몇 번,
폭발 소녀 붙들고 울기를 몇 번,
아이들과 같이 울기를 몇 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게 호통이 아니라 사랑이라 생각했기에
한 번도 소리치지 않았다.
사건 일으킬 때마다 상담했다. 주로 들어주었다.
감정의 쓰레기통 역할을 하면서
‘내가 왜 이 짓을 할까? 언제까지 해야 할까?’ 생각했고
더는 견디지 못하겠다 싶을 때 방학이 다가왔다.
(페북에서 몇몇 선생님 보면서 정~~~~말 부러웠다.
행복하다는 소식이 아니라 자신만만한 태도가~)
6월, 죽을 것처럼 힘들 때 학교폭력 사안이 접수되었다.
할머니가 폭력 소년을 학교폭력 가해자로 신고했다.
‘안 듣는 할머니’, ‘자기 말만 하는 할머니’라고 소문나서
3월에 가정방문을 갔었다.
이분이 마트를 하는데,
미성년자에게 담배 팔았다는 신고를 받고 찾아간 공무원들을 욕하며
막무가내로 버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내가 찾아가서인지, 아이가 선생님 좋다고 말해서인지
학교폭력 신고해놓고는 ‘손자 잘못은 없는지’ 물어보셨다.
저녁 늦도록 길~게, 길~게 통화한 다음날 학교에 찾아오셨다.
당신 아들이 학교폭력 때문에 인생이 꼬인 이야기를 하며 우셨다.
“손자만은 그렇게 당하게 하지 않게 하겠다.” 하셨는데
한참 말씀하시고는 내 말을 듣고 학교폭력 신고를 철회하셨다.
2학기가 되고 아이들이 조금씩 순해졌다.
지금은 많이 순해져서 나랑 농담 따먹기하며 논다.
2학기에 일어난 싸움은 딱 두 건~ 그나마 말로 잠깐~
11월 초에 문집을 나눠줬는데 며칠 뒤에 문자가 왔다.
할머니가 문집을 읽으셨나 보다.
이후에도 내게 전화할 때마다 ‘감사합니다.’ 하며 인사한다.
‘참지 말고 휘어잡았어야 하나?’ 수없이 생각했는데
‘참기 잘했다. 잘 보듬어주었다.’ 로 바뀌었다.
가스폭발사고 당한 아이들 만났을 때만큼 기억에 남은 한 해다.
이렇게 올해가 지나간다.

 

12월 31일, 할머니가 전화로 고맙다고 인사했다.
이 맛에 선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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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짧게 쓴 글)

막내가 고 3이다. 오늘 진로상담을 했다고 종알댄다.
대학 몇 곳을 추천받았다고 한다.
그곳에 가면 학교에서 정문에 현수막을 붙일 거다.
선생님이 그걸 생각하고 말했는지는 모르겠다.
내 고민은, 막내가 어느 대학에 가느냐가 아니다.
대학 이름은 아주 잠깐의 희열을 줄 뿐이다.
난 막내가 자기 길을 걷기 원한다.
다른 사람이 부러워하는 길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다른 사람이 부러워하는 길을 따르면 자기 길을 잃기 쉽다.
그러면 자신이 누군지 잃거나, 나중에 자신을 찾으려고 후회를 할 거다.
조금 더 칭찬받고, 조금 더 벌고, 조금 더 높은 자리~
웃기지 마라!
그거 누리다가 자기를 잃으면 다 잃는 거다.
내 자녀 둘은 책 읽으란 잔소리를 듣지 않았다.
그런데도 책을 읽었다.
학원에 가지 않았고, 독서실에도 가지 않았다.
공부하기 위해 특별한 무언가를 한 적이 거의 없다.
지금도 날마다 8시간 이상 잔다.
학교에서 아무리 “조금만 더 노력하면~”을 휘둘러도 무시했다.
난 아이를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난 두 아이에게 “조금만 더 노력하면”이 아니라.
“천천히 가라. 네 길을 가라. 다른 사람 신경 쓰지 마라.” 했다.
흔들리는 사람이 많다고 진리가 되지는 않는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적다고 잘못이 되지도 않는다.
“얘야, 넌 네 길을 가라. 아빠가 응원하는 길이다.”
내 자녀들은 방송매체, 교사들, 주위 사람들이 아니라 나를 믿었다.
이게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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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에게 쓴 글 중에서  (0) 2021.11.20
3월에 <곁에.서.>라는 이름으로 펀딩을 시작했다.
한 달에 두 번 글을 보내드리고, 1만 원씩 후원받았다.
아픈 아이 곁에서 지낸 이야기, 아이 곁에, 선, 이야기다.
3~10월까지 가스폭발 사고를 당한 아이들 이야기를 썼다.
11~12월까지는 내 곁에서 죽은 분과 나보다 먼저 떠난 제자 이야기다.
글을 쓰며 아이들 생각이 나서 여러 번 울었다.
오늘은 산사태로 죽은 제자 이야기를 썼다.
교사로 첫걸음을 뗀, 지금 근무하는 학교에서 만난 아이다.
출근할 때마다 아이가 살았던 집터를 지나간다.
아이는 죽고, 집이 있던 곳에는 옹벽을 세웠다.
집터는 사라지고, 아이도 없고, 오래 간직한 이야기만 남았다.
이제 두 번만 글을 보내면 끝난다.
155명이 3월부터 만 원씩 12월까지 후원을 약속했는데
135명이 꾸준히 후원하셨고, 20명이 가끔 후원하셨다.
지금 1300만 원가량 후원금을 모았다.
후원금은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를 위해 쓸 계획이다.
화상 재단에 천 만원,
부모가 교도소에 간 아이들을 위해 잔액(300~400만원)을 쓴다.
지난해 이맘때 성경 말씀 묵상하다 떠오른 생각을 이렇게 실천했다.
올해는 참 아픈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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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칭찬하고 부러워하면 기쁘고 감사하다.
그러나 붕 뜨지 않으려 노력한다.
칭찬으로 높아진 곳이 내 자리가 아니라 생각한다.
나를 칭찬하고 부러워하는 그분도 칭찬받을 점이 꼭 있다.
내가 잘한다고 말하는 그걸 잘하는 사람 많다.
나 혼자 뛰어난 듯 보여도 나는 그들 중 한 사람일 뿐이다.
다만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 눈에 내가 띈 것이지!
나를 봐주고, 칭찬한 분께 고마워하며 섬길 일이다.
세계 최고로 불린 김연아, 김연경 같은 선수가
칭찬과 박수를 받을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운이 좋았어요!”
칭찬을 들으면 그저 고맙고 송구스럽다.
자랑하고 싶다면 집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나게 자랑하면 아내, 남편, 아이들이 이렇게 말할 거다.
“청소나 하라고~”
“설거지는 언제 하려고 그래?”
“아빠, 놀아주기로 했잖아!”
남들의 칭찬보다 가족의 잔소리가 더 중요하다.
그 말을 잘 듣는 사람이 진짜 좋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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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에게 보낸 메일 중 일부에 몇 줄을 보탰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공개한다.
……
 
아무튼 나도 왜 사는지 고민 많이 했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는데 결심이 클수록 죄책감이 크더라.
20대는 죄책감 가득한 삶을 살았고 (동시에 다른 사람을 비난하며 살았고)
 
30대는 혼란 속에 살았고 (더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는 망상에 빠진 나날)
 
40대가 되면서 왜 사는지 고민이 줄었어.
하루하루 만나는 아이들과 즐겁게 지내려 했어.
겉으로 평안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내면에는 폭풍우가 치는 경우가 있어.
 
대부분 자기 자신이 만든 폭풍우 가운데서 헤매는 거야.
(외부에서 오는 같은 파도라도 어떤 이는 태풍으로 받아들이지)
 
헤매는 게 필요하긴 한대,
잘못된 시간이나 잘못된 장소에서 흔들리면 멈춰야 할 때 멈추지 못해.
 
최근에 맞이한 50대가 그나마 평안한 건
흔들려야 할 때 많이 흔들렸기 때문인 것 같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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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19일, 말씀을 묵상하다 문득 든 생각>

나는 여백이 많은 동화와 소설을 좋아한다.

정해진 결론을 이야기하는 책, 교훈을 주는 이야기는 싫어한다.
작자가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이야기는 읽지 않는다.
슬며시 다가와 은근하게 말하면 홀딱 넘어가 마음을 빼앗긴다.
우리나라는 성급한 판단과 평가가 많은 나라다.
우리나라에서는 빨리 결정해야만 하는 상황이 많이 벌어졌다.
보이는 모습으로 판단하고, 재빨리 결론을 내린다.
나는 이게 싫어서 이야기 안으로 도망갔다.
현실이 싫어서 이야기 속으로 피한 셈이다.
내가 꿈꾸는 이야기를 내 생각으로 채우는 이야기 안으로.
작가가 남겨둔 여백을 찾아다니는 즐거움이 컸다.
아이들 글에도 여백이 많았다.
아이들이 글로 채우지 못한 공간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글을 쓰라고 꼬드겼고, 토론하며 아이들 생각을 들었다.
내 글쓰기 지도와 토론은 ‘나 자신의 고유한 특성’에서 나왔다.
가르침은 정해진 내용을 전달하는 효과적인 방식이 아니다.
가르침은 자기만의 세계를 가진 한 사람이
다른 세계를 가진 한 사람에게 자기를 나누는 과정이다.
글쓰기 방법, 책놀이 방법, 독서토론 방법을 배워야 하지만
‘마음’을 읽지 않으면 손에 잡히는 게 없다고 느낀다.
'해도 안 되더라. 해봐야 소용없다.' , '저 사람이니까 하지.' ~
그러니까 “너 자신을 알라.” 그리고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알라!”
나 자신이 Full my life 하려고 노력하고
내 주위 사람들이 Full your life 하게 도와주자.
굳이 비법을 들자면,
내 앞에 있는 사람의 여백을 궁금하게 여기는 마음.
그 마음을 읽기 위해 '귀 기울여 잘 듣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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