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학교에 갔어요. 학교를 옮겼더니 바쁜 3월이 훨씬 더 바쁘네요.
전 수업 시간에는 업무를 하지 않고 전화도 안 받아요. 수업 끝나면 열심히 일합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아이들이 싸우지 않고 잘 지내기만 하면.

아이들에게 두 가지 부탁했어요. “욕하지 마라.”, “친구 괴롭히지 마라!”
그런데 어제 여학생이 남학생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바닥에 쓰러뜨린 뒤에 남학생 몸에 올라타고는 머리를 흔들었어요.
지난해(5학년)에는 여학생과 이렇게 싸웠다고 해요.
모른 척하고 오전 수업을 마쳤어요. 점심도 평소처럼 먹었어요.
그리고는 한 명씩 차례로 따로 불러 이야기했어요.

우리 반에는 일곱 아이가 있어요. 한 아이는 내내 떠들어요. 선생님들이 ‘조증’이라 하네요.
3월 2일, 처음 아이들을 만난 날 정신이 나가는 줄 알았어요.
28년째 아이들을 만나는데 이렇게 말 많고 정신없는 아인 처음이에요.
쉬는 시간에는 아임교(메이플스토리 주인공을 믿는 종교) 전도하러 나가요.
일기에는 아임교 탄생 설화를 창작해서 가득 써놓았어요. (장난인 줄 알지만 난감하네요.)

두 여학생은 동생이 도움반이에요. 동생 스트레스가 엄청 심해요.
남학생 머리카락 쥐어뜯은 까닭도 자기 물건 만져서예요. 동생이 자기 물건 함부로 만지기 때문에 아주 민감하네요.

우리 반에 도움반 아이가 한 명 있어요. 이 아이는 자꾸 일러요. 억울하대요. 어린아이 모습을 보여요.
다른 아이들은 도움반 친구와 부딪치지 않는데, 두 아이는 부딪쳐요.
집에서 동생과 지내며 스트레스가 쌓였는데 학교에서 친구가 동생처럼 행동하니 참기 어려운가 봐요.

전학 온 아이는 밥을 안 먹어요. 자꾸 발목이 아프다 해요.
오늘은 인대가 늘어났다며 붕대를(깁스는 아니고) 감고 왔는데 점심시간에는 땀 나게 뛰어놀았어요. 그리고는 아프대요. 하!

28년째 아이들을 만나며 1학년 4번, 2학년 5번, 3학년 6번, 4학년 6번, 5학년 5번, 6학년 4번 했어요.
(두 학년을 함께 가르친 적이 있어서 경력보다 담임 횟수가 더 많아요.)
6학년 담임하면서 힘들게 버틴 적이 있어요. 그래서 6학년 담임이 두려워요.
‘잘 해낼까?’ 걱정하면서도 티를 내진 못했어요.
사람들이 저에 대해 '어떤 아이를 만나도 잘할 거라고' 말하니까요.

머리끄덩이 붙잡고 싸운 이야기 듣고 어제 잠이 안 왔어요. 오늘 아침에 출근할 때 토요일이기를 바랐어요.
저도 어떤 아이는 힘들어요. 두려운 마음이 들 때도 있어요.
이렇게 쓰고 보니 우리 반 아이들이 문제투성이인 것처럼 보이네요.
아니에요. 우리반 아이들은 착하고 좋아요. 그리고 특별해요.

오늘은 실과 시간에 화목한 가정을 배워요, 배려, 존중, 대화, 사랑…
교과서와 반대로 접근했어요. “너희들 마음의 평안을 깨는 가족이 누구야?”
“그 아이가 하는 미운 짓 베스트 3를 말해보자.”
세 가지만 말하진 않았지요. 말하고 또 말하고 또 말했어요.
배려, 존중, 대화, 사랑도 말했지만 전체 과정은 동생 흉보기였어요.
그런데 머리끄덩이 잡은 아이가 '동생이 참 좋은 때가 있다'고 말해요.
수업하면서 두 아이가 그래요. “이런 수업 너무 좋아요.”
“스트레스가 풀려? 다음에는 산에 가서 동생 욕할까?” 너무 좋대요. 꼭 가자고 하네요.
“그래, 집에서 스트레스가 쌓이면 자기도 모르게 친구 머리끄덩이 잡지!
화 풀어라. 친구 머리끄덩이 잡는 일은 없어야겠지!” 했어요.

오늘은 즐겁게 집으로 돌아왔지만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요.
꽤 오랫동안 약간의 두려움과 긴장감으로 아이들을 만날 것 같아요.
이겨내야죠. 착하고 귀한 아이들이니까.

참, 애들이 교과서로 하는 국어 시간이 재미없대요. 너무 싫대요.
2단원부터는 『마당은 나온 암탉』으로 수업해요. 교과서는 참고만 해요.
3월 정신없는 시간 지나면 수업한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함께 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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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 22:6절 사울은 다윗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나타났다는 말을 들었다.

삼상 231절 다윗은,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치고, 타작한 곡식을 마구 약탈하여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윗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사울이 다윗을 쫓는다. 아히멜렉이 다윗을 도왔다는 말을 듣고는 제사장 85명과 가족까지 모두 죽인다. 사울은 소식을 듣고 무고한 이스라엘 백성 수백 명을 죽였다. 이 소식을 전한 사람은 이방인 도엑이었다.

다윗은 블레셋이 이스라엘 성읍 그일라를 공격해서 추수한 곡식을 모두 빼앗아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윗은 땀 흘려 일한 대가를 빼앗겨 억울해하는 백성의 소식을 들었다. 왕인 사울이 들어야 할 소식이다. 백성을 지키며 돌봐야 하는 게 왕의 역할 아닌가!

사람들은 자기 관심사에 관한 소식을 듣기 원한다. 자기가 잘하고, 자기가 바라는 대로 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해지길 원한다. 예수님은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 하셨다. 세리와 죄인에게 관심을 가지셨다. 로마제국의 정책, 사두개인들의 계획에 관한 소식은 듣지 않았다. 예수님은 가난한 이웃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어제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아이들을 만났다. 오랜만에 6학년을 해서 아이들이 어떤지 관찰하기만 했다. 무얼 원하는지, 어떻게 지내고 싶은지 들었다. 아이들이 “놀아요.”, “놀아요!”, “숙제 내지 말아요!”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어떤 아이는 소리를 높이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했고, 어떤 아이는 입을 다물고 표정과 몸짓으로 <내 이야기도 들어주세요.> 했다.

아이들 이야기를 두 시간 동안 들어주고 1분 동안 부탁했다.
"얘들아, 내가 너희들 의견을 들었잖아. 나도 하나 부탁해도 돼?"
"네, 뭐예요?"
"두 개야. 욕하지 말자. 그리고 친구 괴롭히지 말자."
"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피곤했다. 책 읽다 10시 전에 곯아떨어졌다. 오늘 아침에 큐티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들었다. “높고 귀한 사람이 아니라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 힘들다고 호소하는 사람의 말을 들어라!” 그래! 내가 들어야 할 말은 아이들 목소리다.

오늘 국어 시간에 <비유하는 표현>을 배웠다. 교과서는 보조 자료, 주 자료는 나와 아이들이다. 80분 동안 비유 표현으로 신나게 이야기했다. 화날 때 마음을 비유했고, 기분 좋을 때 마음을 비유했다. 나, 학교, 가족을 비유하는 문장을 썼다. 교과서 내용보다 훨씬 실감 났다. 수업 5시간하고, 점심시간에 놀아주고, 학기초 업무까지 내달렸더니 또 피곤하다.

그래도 아이들 이야기 듣는 게 재미있다. 오십이 되었는데 아직은 아이들 이야기가 들린다. 낮은 자리에서 듣자. 솔로몬도 창녀의 이야기를 듣고 재판할 때는 좋은 왕이었다. 공주들에게 둘러싸여, 공주들을 위해 살 때는 백성들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억울해하는 백성들 이야기에서 멀어질수록 나쁜 왕이 되었다. 잘 듣자.

오늘 첫 수업 시작하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누가 공부 잘하는지 알아?”
아이들이 “어쩌고 저쩌고...” 하며 여러 가지를 말했다.
“잘 듣는 사람이야. 잘 들으면 올바르게 말한단다.” 라고 말해줬다.
나는 아이들 말을, 아이들은 내 말을 잘 듣는 한 해가 되면 좋겠다.

올해도 아이들 말을 잘 듣겠습니다.
이 마음 변하지 않으려고 여기 올립니다.

김재균, 김은아, 외 2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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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지었다. 이름을 <책뜰안애>로 지었다.
책이 있는 뜻에서 편안하게(안) 자신을 사랑하고 서로를 사랑하자는(애) 뜻이다.

2020년 8월, 몇 분과 함께 2박 3일 동안 <책뜰안애>에서 연수를 했다.
<책뜰안애>에 오신 분들 주무시는 이른 시간, 아침을 준비한다.
오이, 참외, 양배추, 부추, 방울토마토, 대추토마토, 흑토마토, 찰토마토.
농약 없이, 잘게 부순 골뱅이 껍질과 풀로 만든 퇴비를 넣어 길렀다.
허브인 ‘보리지’ 꽃을 하나씩 올리기도 했다.
아버지가 기른 도라지 끓인 물, 내가 기른 작두콩을 우린 차.
물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에 음악 들으며 먹는 아침!
<책뜰안애>에 온 분들과 함께 행복을 누린다.

점심은 현지인이 아는 동네 맛집, 저녁에는 금방 캔 감자, 따서 바로 찐 옥수수에,
제자가 파는 골뱅이 삶아 비빔면에 담았다. (면보다 골뱅이가 더 많은 이상한 요리)
깻잎 순 같이 따서 나누고, 몇 분은 대파와 가지를 가져갔다.
기념품으로 만든 화분에 다육이, 와송, 아스파라거스를 드렸다.
겨울에 오는 분들을 위해 땅콩과 고구마를 기른다.
벽난로에 고구마 구워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해야지.

책벌레가 이런 공간을 만든 까닭은, 하나님을 나누고 누리는 작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학교가 점점 사무화, 기계화된다. (사람 마음보다 매뉴얼이 앞선다.)
교회는 솔직하게 마음을 드러내면 안 되는 곳이 되었다.
(교회에 당위, 구호, 사명은 있으나 ‘나 자신’과 ‘우리’가 사라졌다.)
교회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라 목사가 되었고, 학교의 주인은 아이가 아니라 교장이 되었다.
전**은 예견된 일이다. 시골 교회 목사 중에 리틀 전**이 많다.
그들은 기회만 주어진다면 전**처럼 행동할 것이다.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골에서 버티는 목사님이 몇 분 계신다.
(하나님 나라에서 별과 같이 빛날 분들이지만 너무 적다.)
대신 중앙에서 밀려나, 어쩔 수 없이 시골로 온 사람이 많다.
사기 치고 도망 온 목사, 간음한 목사, 알코올 중독 목사… 여럿 봤다.
그들의 공통점은 ~ 뻔뻔하다. 자기를 돌아볼 줄 모른다.

빛나는 목사님과 뻔뻔한 목사 외에 보통 목사들도 많다.
성도는 그들을 의지한다. 그래서 그들이 점점 변한다.
성도가 그들을 의지할수록 그들은 점점 성도를 소유한다.
하나님의 소유 된 백성이 목사에게 소유된 교인이 된다.
목사는 그들을 놓아주지 않고, 그들은 목사만 바라본다.
스스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나아갈 생각을 못한다.

<책뜰안애> 연수를 금요일에 시작해서 주일 예배로 마쳤다.
목사 없이, 내가 설교하지 않고, 함께 말씀을 나누었다.
교회 다니지 않는 분도 함께 말씀을 나누었고, 교회 다니는 분도 스스로 말씀을 읽고 뜻을 나누었다.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고, 함께 울고 웃었다.
<책뜰안애>가 저물어 해 질 때에 모인 환자들을 받아주는 곳,
삶을 나누고 위로받으며, 때로 낫는 곳이 되길 바란다.

우린 나 자신이나 목사의 소유가 아닌, 하나님의 백성이다.
나 됨의 가치를 알고, 진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를.
Full Your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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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다닌 교회에서 한 분이 신천지에 기웃거렸다.
교회에서 직책도 있고 맡은 일도 있는 분이었다.
아마 이런 마음이었을 거다.
‘이곳에서 채워지지 않는 걸 그곳에서는 채워줄까?’
이렇게 생각하는 건 자연스럽다. 우린 사람이니까.
이곳에서 만족하지 못하면 다른 곳을 찾아다니기 마련이니까.

 

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그분을 슬쩍 언급하며 뭐라 하셨다.
그분이 신천지에 발을 끊은 뒤라 씁쓸한 기억 정도로 지나갔다.
그러나 신천지에서 무얼 배우는지, 어떻게 잘못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냥 거긴 이상하니 가지 말라고만 했다.
미리 알려줬다면 기웃거리며 안달하지도 않았을 텐데
그거 공부하는 게 그리 힘들었을까? 잠깐이면 될 텐데 말이다.
더구나 이곳에서 채워지지 않는 게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또 다른 신천지가 나오면 아마 몇몇은 그리로 갈 거다.
‘아무리 기다려도 채워지지 않는데, 혹시라도 거긴 어떨까?’ 하면서.

 

한때, 나보다 먼저 그 교회에 있던 사람들이 그 교회를 떠났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 교회에 다니던 사람들도 다른 곳을 찾아다녔다.
이유는 간단했다.
성경을 알고 싶은데 교회에서는 알려주지 않으니 떠날 수밖에.
우리끼리 모여서 성경을 공부하면 목사들이 못하게 한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가르쳐주지도 않는다.

 

난 성서를 읽다가 책에 빠졌다.
읽고 묵상하고, 쓰고 또 읽고 또 묵상한다.
목사가 알려주기만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함께 공부하자고 주장한다.
그래서 『성경을 돌려드립니다』를 썼다.

하나님 말씀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을 목사들이 알아주면 좋겠다.
신자들이 성경을 공부하도록 도와주면 좋겠다.
직접 가르치거나, 스스로 공부하게 놔두면 좋겠다.
그러면 신천지 같은 곳에 덜 기웃거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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