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슐러 르 귄이 쓴 책을 열 권 넘게 읽었다. 이 책이 가장 마음에 든다. 짧게 쓴 에세이를 4가지 주제로 모았다. 1장. 아흔을 넘기며(25쪽 분량)은 썩 와닿지 않았다. 2장, 문학 산업(80쪽 분량)은 정말 재미있었다. 독자의 질문, 아이들에게 받은 편지, 문학상, 서사적 재능과 도덕적 난제 등 대부분 빠져들어 읽었다. 특히 『분노의 포도』를 다룬 내용은 놀라웠다. 힘겹게 읽은 『분노의 포도』를 제대로 다시 읽어야겠다. 3장. 이해하려 애쓰기(70쪽 분량)는 저자가 이해하려고 애쓴 주제를 다루었다. 여성, 제복, 정치, 거짓, 분노 등 한 마디로 정리하기 어렵다. 내용은 탁월하다. 뉴욕타임즈 역사정보란에 나오는 서너줄 분량의 인용문으로 이어가는 글 <온통 거짓>은 놀라웠다. ‘분노’를 다룬 글을 쓰는 중이라, <분노에 관하여>라는 글은 쏙 빠져 읽었다. 4장 보상(83쪽 분량)은 일상에서 접하는 것들을 썼다. 오페라, 비서, 달걀, 노트르담, 크리스마스트리, 모임에서 들은 말 한마디, 방울뱀, 스라소니.
르 귄은 글을 정말 잘 쓴다. 생각이 남다르다. SF의 거장은 일상을 남다르게 보는구나 느꼈다. 추천한다.

→ 현실 부정을 통한 격려는, 아무리 선의가 있어도, 역효과가 난다.
→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반항하는 주인공이 나오는 동화책은 한없이 많다. ~ 거기에 나오는 주인공 어린이는 체제 반항적일 뿐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편협하고 강압적인 사회, 멍청하고 비열하고 무딘 어른들에 비해 한없이 뛰어나다. 주인공은 다른 아이들과 우정을 쌓기도 하고 다른 피부색을 가진 인자한 할아버지 유형의 인물에게 이해심을 배운다. 어쩌면 사회 주변부를 살아가는 인물이나 사회에서 소외된 다른 유형의 인물에게 그와 같은 것을 배울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과 같은 부류의 어른들에게는 배울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어른들도 주인공에게 뭘 가르칠 깜냥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주인공 어린이는 항상 옳은 인물, 자신을 억압하고 오해하는 어른들보다 현명한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렇게 대단한 통찰력을 가진 현명한 아이가 그 현실에서 탈출한 방법이 없다. 이 아이는 희생자다. 홀린 콜필드가 이런 어린이의 전형임 피터 팬은 그의 직계 선조라 할 수 있다.
톰 소여도 이 아이들과 공통점이 있고 허클베리 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191~192)
<<분노에 관하여>>
→ 언젠가 화를 내야 할 때가 온다. ~ 나는 화를 무기라고 생각한다. 전투와 자기 방어를 위해 사용할 때만 유용한 도구
→ 분노가 모욕과 무례의 올바른 대처법이긴 하지만 현재의 도덕적 풍토에 따르면 자신의 생각을 꾸준하고 단호하게 표현하며 도의적인 행동을 할 때 가장 큰 효과를 보게 되는 것 같다.
→ 분노로는 권리를 잘 이해할 수 없다. 권리는 집요하게 정의를 추구함으로써 제대로 행사할 수 있다.
→ 분노가 그 효용을 넘어 계속되면 정의롭지 않아지고, 나아가 위협으로 바뀐다. 분노 자체를 목적으로 성장하고, 분노 그 자체를 가치 있게 여겼다가는 목표를 잃고 만다. 분노는 적극적 행동주의 대신 퇴보, 집착, 복수, 독선을 땔감으로 쓰기 때문이다.
→ 위협을 받을 때 우리는 무기를 꺼내 든다. 분노다. 그러면 그 위협이 그냥 지나가거나 사라진다. 하지만 무기는 아직 내 손에 쥐어져 있다. 이 무기는 유혹적이고 더 나아가 종독적이다. 나에게 용기, 안전, 지배력을 보장한다.
→ 지인들의 삶을 보면 아주 깊이 억압된 분노가 실은 얼마나 심한 타격을 입혔는지 알 수 있다. 고통이 억압된 분노를 낳고, 그 분노가 다시 고통을 낳는다.
'내가 읽은 책 > 일반독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276쪽) / 인문 (1) | 2026.04.13 |
|---|---|
| 가재가 노래하는 곳 (0) | 2026.03.31 |
| 자존가들 (김지수) (0) | 2026.03.10 |
|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0) | 2026.02.23 |
| 혼모노를 읽고 (0) | 2025.10.2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