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바뀌면 하나님이 바뀌나?
『개역성경』, 『쉬운 성경』,『현대인의 성경』, 『표준새번역』
『개역개역 4판』, 『북한어성경』,『메시지』……
고 3때 성경을 처음 읽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잘 몰랐지만 고등학교 졸업 전에 한 번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방학 동안 생각 없이 읽었습니다. 그 뒤로 줄곧 개역 성경을 읽습니다. 사람이 습관의 동물인지라 처음 읽었던 그 말투가 제 입맛에 맞습니다. 하지만 개역 성경이 모두에게 정답은 아니지요. 한글 성경 10여 종류 중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원뜻을 가장 잘 담은 성경은 무얼까요?
성경번역 : 취향의 문제, 시대의 요구, 교단의 자존심……
우리나라에 성경이 처음 들어온 때는 사람들이 경전을 굉장히 고귀한 책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가장 고귀한 말투인 궁중체(궁궐에서 쓰는 말투)로 성경을 썼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고 ~ 운행하시니라’ 는 말은 정말 어렵습니다.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오래, 자세히 들여다봐야 실감나게 다가옵니다. ‘혼돈, 공허, 흑암, 운행하시니라’가 어떤 뜻인지 모르면 ‘쇠 귀에 경 읽기’입니다.
점점 평신도들 지적 수준이 높아지고 하나님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커져 직접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목회자의 해석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 읽으려고 하니 너무 어렵습니다. 참고자료가 있지만 거기까지 손대기엔 벅찹니다. 번역할 때 실수한 곳도 간혹 있어서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외치기도 했습니다. 또한 권위만을 내세워 교회가 잘못된 판단을 많이 했기 때문에 개역 성경을 고집하는 태도 역시 권위주의로 치부되었습니다. 이래저래 성경은 새로운 번역을 필요로 했죠.
게다가 지금은 오래, 자세히 보는 시대가 아니라서 성경이 쇠 귀에 경 읽기가 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딱딱한 음식을 먹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쉬운 번역이 나왔습니다. 이번에는 학자들과 보수주의 목회자들이 반발했습니다. 어린애들 장난도 아니고 소설처럼 읽는 성경은 수준이 안 맞는다는 말이죠. 절충안으로 내놓은 것이 표준새번역입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본을 사용하여 9년 3개월 동안 번역해서 1993년에 완성했고 2001년에 개정판을 냈습니다. 사람들이 기대를 많이 했죠. 권위와 친밀감을 갖추고 생생함이 커질 거라구요.
정말 친밀하고 생생하게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특히 시편과 아가서는 완전히 새롭습니다. 시가서(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는 시에 어울리게 편집해야 하지만 분량을 줄이기 위해서인지 개역 성경은 의미 구분 없이 줄줄이 인쇄했습니다. 그러다가 표준새번역을 보니 느낌이 살아나고 의미가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제 어머니는 아가서를 읽으며 ‘이게 원래 이런 뜻이었구나! 정말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 마음이 이렇구나!’ 하시며 여러 번 우셨습니다.
하지만 표준새번역은 보수주의 진영에 의해 비판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가서를 보고 누가 하나님을 생각하겠느냐며 호통을 치는 분도 있었습니다. 감히 하나님 말씀을 속되게 표현하는 걸 참을 수 없어 교단별로 다시 번역을 하겠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각 교단 입맛에 맞는 성경 번역본이 필요하다는 말은 하나님 말씀을 취향대로 고르겠다는 말이라 느꼈습니다. 복음보다 자존심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바리새인의 마음은 아닐까요? 하나님 말씀이 믿는 자들을 나누어버리는 도구가 되다니요!! 다행히 다급한 마음에 일단 다시 번역하겠다는 말을 던진 분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을 달리하셨는지 개역개정판으로 일단 성경 번역 논란은 가라앉았습니다.
성경번역본을 분류하면
저는 개역 성경, 쉬운 성경, 표준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개역 개정판, 공동번역 성경을 읽었고 북한어 성경도 읽습니다. 종류가 많지만 정리하면 두 가지입니다.
개역 : 낱말 하나의 의미가 강합니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고 할 때 묵시와 방자함이 무엇을 말하는지 뜻이 명확합니다. 하지만 묵시, 방자함을 모르는 사람은 ‘자왈, 유붕이자원방래면 불역낙호아’라는 논어 구절을 읽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의도와는 가깝지만 그걸 듣는 사람들과는 거리가 먼 번역입니다. 처음 읽으면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기 때문에 성경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물론, 깊이, 오래 생각하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습니다.
그 외의 성경 : 그야말로 쉽게 풀어 쓴 성경입니다. 개역 성경 내용을 쉬운 말로 풀었기 때문에 한 구절 한 구절을 이해하기 쉽습니다. 현대인의 말투에 맞아서 읽기 쉽습니다. 쉽게 내용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내가 이해한 내용이 당시 시대에 어떤 뜻인지, 지금은 어떻게 적용되는지, 하나님이 왜 그 말씀을 하시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쉽게 이해되기 때문에 고민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읽을 때는 알겠지만 성경을 덮으면 무엇을 말하는지 몰라 역시 어려워합니다. 뭔가 알 것 같지만 사실은 모르는 글을 읽는 셈입니다.
메시지
성경을 어려워하는 마음은 어디나 똑같은지 미국 역시 번역본이 많습니다. 미국판 개역 성경(예:KJV)을 읽으면 너무 어렵고 쉬운 성경을 읽으면 깊이가 없습니다. 우리와 똑같습니다. 유진 피터슨도 갈라디아서를 공부할 때, 성경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성도들 말을 듣고 현대에 맞는 이야기로 바꾸었습니다. 공부할 본문을 미리 현대에 맞는 상황으로 바꿔쓰고 나중에 묶어 'Traveling Light'라고 불렀습니다. 말투와 낱말을 바꾸고 완전히 의역했습니다. 10년 뒤에 냅프레스 출판사에서 편집을 맡고 있는 존 스타인이 신약 전체를 의역해 달라고 요청해서 메시지가 나왔습니다.
메시지는 개역 성경도, 쉬운 성경도 아닙니다. 말투와 낱말뿐만 아니라 내용까지 손을 본 번역입니다. 유진 피터슨은 ‘예수께서 여기서 가르치신다면, 이 말씀을 어떻게 말씀하실까?’라는 생각으로 번역을 했답니다. 목사님의 초점은 ‘여기서’입니다. 현대성을 크게 고려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굉장히 이해하기 쉽습니다. 성경을 안 읽던 사람들이 메시지 덕분에 성경을 읽습니다. 좋은 일이지요.
하지만 비판도 있습니다. 번역이 너무 작위적이라는 거죠. 예를 들어 “그때부터 예수께서 선포하여 말씀하시기를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하셨다.”를 “그분은 요한의 마지막 말을 이어받으셨다. 너희 삶을 고쳐라. 하나님 나라가 여기 있다."로 번역했습니다. 회개가 삶을 고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신약성경에 ‘Lord Jesus’가 115번 나오는데 이걸 ‘Master Jesus’로 썼습니다. Master라는 말이 뉴에이지에서 대가라는 뜻이기 때문에 이 말을 비롯한 여러 낱말을 증거로 들어 유진 피터슨이 뉴에이지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성경을 대하는 마음, 읽어내는 능력이 약해진다.
신앙의 형태, 신앙에 도움을 주는 도구들은 개인적인 적용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개인들의 모습이 모여 시대를 이루고 다음 세대에 영향을 줍니다. 우리가 메시지를 선택한 건 우리 수준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메시지처럼 현대성을 고려해서 귀에 쏙쏙 들어오게 해주는 성경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메시지는 원래 말씀과 다릅니다. 하나님이 당시 사람들에게 어떤 뜻에서 하신 말씀인지 모르고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하실지만 생각하면 곡해하기 쉽습니다. 원류를 아는 사람이 지류를 찾으면 전체를 이해하지만 원류를 모르고 지류에만 발을 담그는 사람은 편협해지기 쉽습니다. 지류를 원류로, 심지어는 대양으로 착각하는 거지요.
성경 저자들은 문화를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서는 문화에 맞서지만 예화, 비유, 상징, 설명, 시……은 시대적 배경을 바탕에 두고 썼습니다. 그걸 알면 정말 풍성하지요. 여리고 성을 왜 돌라고 하셨는지 알면 사고 싶은 건물이나 땅 주위를 도는 행위가 쓸데없는 짓이란 걸 압니다. 말씀을 이해하는 수준이 떨어지면서 진리를 깨닫는 수준도 떨어지는 건 아닐까요? 에라스무스의 말입니다.
“나는 농부가 쟁기질을 하면서 성경을 흥얼거리는 날이, 직공이 실을 짜면서 성경을 흥얼거리는 날이 여행자가 여행의 피곤함으로 지칠 때 성경의 이야기들과 함께 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열망한다.“
어떤 성경을 읽어야 삶에서 성경을 흥얼거리게 될까요? 제 수준에서 대답하라면 “메시지를 읽되, 개역 성경도 읽어낼 수 있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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