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좋은교사에 소개한 글입니다.
글을 보여달라는 요청이 있어 공개합니다.
『왕의 재정』, 김미진, 규장
『벼랑 끝에 서는 용기』, 로렌 커닝헴, 예수전도단
<왕의 재정> 강의가 유튜브 조회 합계 천만 건을 넘어섰다. 교회마다 앞다투어 강사로 초청한다. 사업가로 승승장구하다가 50억 이상 빚을 지고 자살할 지경에 이르렀지만 빚을 다 갚고 다시 부자가 된 사람 이야기라면 듣고 싶어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재정관리에 대해 말한다고 권하는 사람도 있고, 성도가 돈에 눈이 먼 거라며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다니는 교회에도 강의하러 왔기에 <왕의 재정>과 <벼랑 끝에 서는 용기(이하 벼랑 끝)>를 함께 읽었다.
로렌 커닝햄은 YWAM(국제 예수 전도단)의 설립자이며 열방대학 설립자 겸 총장이다. 김미진은 YWAM 간사였다. 둘은 똑같이 YWAM에서 사역했으며 하나님께서 필요할 때마다 재정을 채워주신 이야기를 한다. 로렌 커닝햄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필요한 재정을 채워주는 예화를 통해 성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과정을 알려준다. <왕의 재정>도 비슷한 이야기를 통해 청지기로 믿음의 삶을 사는 원리를 알려준다. 두 저자가 말하는 내용과 간증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기복주의나 물질만능주의를 말하지 않을까 경계하며 읽었다. 그러나 돈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말하며 저자의 생각을 성경 말씀으로 뒷받침하려고 애를 쓴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만 강조하지 않고 신구약에서 골고루 인용한다. 감당도 못 하면서 나눠주라고 하지 않으며 잘 관리하고 절제하라고 권한다. <벼랑 끝>에선 기복주의 생각도 못 했고 <왕의 재정>은 저자가 경계하며 썼다고 느꼈다.
책에 나온 증인들은 평범하게 살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마련해 준다고 믿으면서 미련하게 벼랑 끝에 선다. 무조건 하나님께서 주신다 믿고 기다리라고도 하지 않는다. 필요한 자에게 나눠주되, 필요할 때 기다리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렇게 하라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하나님이 공급하신 일을 증거한다.
두 책이 다른 점
<벼랑 끝>은 재정 문제뿐만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성도가 생각해야 할 다른 태도를 줄곧 말한다. 달란트 비유가 반드시 재정적인 부의 증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격이 성숙하는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가 확장하는가에 관한 문제라고 말한다.(83쪽) 주님은 우리를 먹이는 일보다 우리를 자신의 형상대로 바꾸어 가시는 일에 더욱 관심을 가지신다(205쪽)고 말한다. 우리의 필요가 채워지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210쪽)고 고백한다.
<왕의 재정>은 맘몬을 경계하라고 말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돈 이야기를 한다. 씨 뿌리는 이야기를 돈으로 해석한다. 달란트 비유도 돈으로 해석한다. 재정이야기를 하는 책이므로 돈 이야기를 하는 게 맞지만 <벼랑 끝>에서 느껴지는 하나님 중심의 삶보다는 ‘돈’이 자꾸 중심으로 치고 올라온다. 그래서 하나님께 쓰임 받고 싶다면 지극히 작은 것, 재물, 남의 것에 충성해야 한다(154쪽)는 말도 ‘하나님’보다 ‘재물’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느껴진다. 인용한 성경 구절도 모두 돈과 관련짓는다.
물론 성경에 돈과 관련된 구절이 3000개나 된다고 하니 많이 인용할 수도 있다. 저자가 성경을 100번도 넘게 읽었으니 엉뚱하게 인용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나는 성경을 사랑하고 꾸준히 읽는다. 저자만큼은 아니지만, 많이 읽었다. 그래서인지 내게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든 성경으로 해석하려 한다. 중요한 일이건 사소한 일이건 모두 말씀으로 해석하려 한다. 저자는 나보다 성경을 많이 읽었으니 어떤 문제가 생기면 성경을 떠올릴 것이다. 그 문제가 ‘돈’이다.
<벼랑 끝>은 돈을 흘러가야 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A가 B에게 10만원 주는 것보다는 A가 C에게 주고, C는 D에게 주고, D가 B에게 다시 주는 게 하나님 나라의 원리라고 한다. B가 하나님께서 필요한 돈을 채워주신 경험을 하는 동안 A만이 아니라 C와 D도 과정에 함께 참여하는 게 복이라 한다. 즉, 돈에 관한 기도가 얼마나 자주 이루어졌느냐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하나님 음성을 듣고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참여했느냐를 귀하게 여긴다.
<왕의 재정>에선 계속 돈만 말한다. 하나님께 맡기면 이자율이 3000%라고 한다. 저자가 성경을 잘 알기에 돈을 경계하라고 말하지만 결국은 돈이 하나님께서 일하는 통로라고 한다. 엘리야, 베드로, 청지기…… 모두 돈으로 해석한다. <왕의 재정> 부제는 ‘내 삶의 진정한 주인 바꾸기’이다. 내 삶에서 하나님을 진짜 주인으로 바꾸어야 할 영역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저자는 돈만 말한다. 20년 전에 쓰인 <벼랑 끝>에 지금 인기를 끄는 ‘자기계발’, ‘긍정의 힘’을 덧붙인 듯하다.
<왕의 재정>은 왜 돈 이야기만 할까?
결혼하고 아이를 갖지 못한 친구가 얼마 전에 아이를 입양했다. 행복해 보였다. 예전에 같은 처지에서 하나님 은혜로 아이를 낳은 다른 사람 간증을 나누었다. 그분이 성경을 읽을 때마다 ‘아이’가 들어가는 낱말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자녀가 없는 부부 눈에는 ‘아이성’이 ‘아이’ 성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관심을 기울이는 내용을 눈여겨 본다. 긍정의 힘을 믿는 사람은 ‘주신다. 성공한다, 잘 된다’를 읽는다. 이게 심해지면 조엘 오스틴처럼 뽕나무에 올라간 삭개오를 긍정의 힘을 가진 좋은 예로 바꾼다. 성경에서 무엇을 읽어내느냐가 곧 그 사람을 말한다. 김미진은 계속 재정을 말한다. 앞에서 말한 논리를 비약해서 ‘돈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많이 나눠주고 돈에 매이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는, 더구나 책으로 낼 때는 신중해야 한다. 로렌 커닝햄은 돈뿐만 아니라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려야겠다는 마음을 전해주었다. <왕의 재정>은 돈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가장 중요한 도구라는 생각을 갖게 할 위험이 있다. 하나님을 알고 경험하고 싶다면 왕의 재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 외친 이야기를 간증해야 한다. 그럼 듣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선지자는 백성이 듣기 싫어하는 말씀을 외쳤으니까.
하나님 음성을 듣는다?
두 책엔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내용이 자주 나온다. 누구에게 5달러를 주라는 말씀, 돈이 없는데 집을 사거나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기다리라는 말씀 등을 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화장품을 ‘설화수’로 갖다주라는 말씀도 듣는다. 구한다고 다 말씀대로 이루어지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합리적인 내 생각과 다르게 일하는 분이라고 믿기에, 하나님이 하셨다고 받아들였다.
나는 하나님 음성을 듣는다는 말을 어렵게 한다. 잠깐 떠오른 생각이나 느낌, 우연히 들은 설교나 성경 말씀, 갑자기 생긴 사건을 하나님 음성이라고 확신하지 않는다. 정말 하나님 음성일까 신중하게 생각하고 하나님께 묻는다. 두 저자는 하나님 음성을 자주 듣는다. ‘나도 들으면 좋겠다’고 부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론 ‘정말 하나님 음성을 그렇게나 자주 들을 수 있을까? 하나님 음성일까?’ 생각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는 것에 대해서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인다. 김미진은 우리 교회에서 ‘오늘 이곳에 모인 사람 가운데 암 환자가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낫는 환자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볍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낫지 않아도 ‘나을 수도 있다는 얘기였어’ 하고 받아들인다. 진지한 뜻으로 말했다면 암 환자가 나았어야 한다. 가볍게 한 말이라면 공적인 장소에서 강의하며 다니지 말아야 한다.
김미진이 로렌 커닝햄 정도만 말했다면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해결되는 걸 보면서 내 믿음이 부족하다고 고백했을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고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인데 내가 합리적 판단을 앞세워 믿음을 놓쳤다고 돌이켰을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고 정해진 레일로만 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리새인이 아닌지 돌아봤을 것이다. <벼랑 끝>만 읽었다면, <왕의 재정> 감수의 글 제목이 “한국교회의 부흥의 열쇠는 재정에 있다”가 아니라 ‘부흥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썼다면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이 오셔서 ‘네 소유를 다 팔고 나를 따르라’ 하시면 ‘이거 다 팔면 30배, 60배, 100배 주신다!’ 하며 따를까? 돈으로 하나님 영광을 사려는 짓이 아닐까? 교회에서 지나치게 돈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서 차라리 나처럼 주어진 범위 안에서 신중하게 사는 것도 괜찮겠다 생각한다. <재정 강의>는 마치 돈이라 쓰고 하나님이라 읽는 것 같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했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돈’을 사랑하면 괜찮다고 바꿔 버렸다. 왕의 재정이 아니라 ‘돈에서 해방된 교회’가 읽힌다면 얼마나 좋을까!
<재정 강의>에 대한 내 생각이 틀렸을 수 있다. 편견으로 오해했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부흥의 열쇠는 재정에 있지 않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하나님이 땅을 고치는 일은 하나님 이름으로 일컫는 백성이 악한 길에서 떠나 겸손하게 기도하며 - 돈이 아니라 - 하나님 얼굴을 구할 때 온다.(대하 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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