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박수를 보낸다. 지구를 악당에게서 구해내는 슈퍼맨, 고담시를 범죄자들에게서 구하는 베트맨에게 열광한다. 신화에나 나오는 토르와 만화 주인공 캡틴 아메리카가 같은 시대, 같은 장소에서 외계 괴물을 물리치는 말도 안 되는 영화에도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대단한 능력에 대한 찬사는 기네스북이라는 이상한 기록까지 만들어냈다. 손톱과 수염을 길게 기르고 이상한 자세로 오랫동안 꼼짝도 하지 않는 것조차 감탄의 대상이 되었다.

기네스북과 슈퍼히어로를 합쳐놓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지구를 구하고 범죄자를 소탕하며 화재현장에 뛰어들어 아기를 안고 걸어 나올까? 이게 사실이라면 멘사 회원들은 두뇌를 활용하는 곳에서 세계 평화를 위해 일해야 한다. 그런데 왜 책을 통째로 외우고 계산기보다 빨리 계산하는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갈까?

능력자가 화나면 무섭다.”

밉스 가족은 굉장한 능력을 갖고 있다. 할아버지는 지진을 일으켜 땅덩어리를 넓힌다. 할머니는 전파를 잡아 병에 넣어두고 듣고 싶을 때마다 음악과 연설을 듣는다. 다이나 이모는 사람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어서 경찰이 올 때까지 가만히 앉아있어.’라는 말 한 마디로 강도를 잡았다. 대고모 줄스는 재채기를 할 때마다 시간을 20분씩 되돌린다. 사촌 올리브가 째려보면 얼음이 언다. 로켓 오빠는 전기를 뿜어낸다. 피시 오빠는 폭풍우를 일으킨다.

밉스 가족과 친해지면 못할 일이 없겠다. 우리나라를 독도까지 연결해서 일본이 다시는 쓸데없는 소리 못하게 하겠다. 적군의 전파를 모두 들을 수 있으니 우리에게 덤비지 못하겠다. 시간을 돌려 로또와 복권에 계속 당첨되겠다. 전기를 만들 수 있으니 발전소를 짓자 말자 하며 싸우지 않아도 된다. 가뭄과 홍수도 조절할 수 있다. 아니, 다이나 이모만 있어도 되겠다. 방송에 나와서 착하게 살아라.’ 외치면 우리나라는 범죄와 폭력이 사라진 나라로 바뀔 것이다.

물론 밉스 가족을 화나게 하면 큰일 난다. 로켓 오빠가 화나면 전기기구가 다 망가지고 전등이 모조리 깨진다. 아빠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는 온 도시를 암흑으로 만들어버렸다. 피시 오빠는 폭풍을 일으켜 창문을 깨고 지붕을 날려버리며 집을 무너뜨렸다. 그래서 밉스 가족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학교와 가게, 주유소도 없는 아주 작은 마을에 산다. 지구를 구하기는커녕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피해 다닌다. 왜냐하면 자신의 능력을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통제하지 못하는 능력은 재앙이다.”

밉스 가족은 13살이 되면 놀라운 능력이 생긴다. 어떤 능력을 갖게 될지는 생일이 되어야 안다. 밉스네 가족은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갖고 생일을 기다린다. 대단한 능력을 갖게 되는데 왜 걱정하느냐고? 능력을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피시 오빠의 13살 생일날에는 예상치 못한 폭풍우가 몰아쳤다.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밉스네 가족은 피시 오빠를 진정시키고 이사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통제하지 못하면 재앙을 불러온다.

초등학교 1-2학년과 지내면 예상치 못한 사고가 일어난다. 의자에 앉는 곳과 등을 대는 곳 사이에 있는 공간에 머리가 끼어 119 구급대원이 의자를 줄칼로 잘라내고 머리를 빼낸 아이가 있다. 앉는 곳과 등을 대는 곳 사이 공간에 머리를 넣는 흉내를 내다가 힘을 조절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급식으로 준비한 국통에 빠진 아이도 있다. 친구를 밀어 다치게 한 아이는 장난삼아 살짝 밀려고 했는데 갑자기 힘이 팍 들어갔다고 말했다. 모두 자신의 힘을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고이다.

 

대단한 능력을 조절하는 건 다름 아닌 평범한 원리다.

밉스 버몬트(주인공)13살이 되기 이틀 전에 아빠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온몸의 뼈가 으스러질 정도의 큰 사고여서 의식이 돌아올 것 같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다. 밉스는 13살 생일날 자신에게 사람을 살리는 능력이 생기기를 바란다.

공교롭게도 생일날 아침에 밉스네 집에서 기르던 거북이가 겨울잠에서 깨어났다. 죽은 줄 알았던 거북이가 깨어나는 걸 보고 밉스는 자신이 아빠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밉스는 말이 없는 동생 샘슨, 목사님 딸 바비, 아들 윌 주니어와 함께 병원이 있는 도시 이름이 적혀있는 성경 배달 버스에 몰래 올라탄다. 자신의 능력을 통제하지 못해 외딴 곳으로 온 피시 오빠와 함께.

그러나 버스는 병원과 반대쪽으로 달린다. 버스 운전사인 레스터 씨는 아이들 앞에서도 우물쭈물 말하는 주눅 든 남자다. 자신감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자기에게 일자리를 준 칼린에게 붙들려 시키는 대로 한다. 레스터 씨는 아이들의 부탁을 거절하고 칼린에게 간다. 칼린이 사는 곳 바로 옆에는 거대한 호수가 있다. 물이 있는 곳에서 피시 오빠가 일으킨 폭풍우 때문에 이사를 갔는데 버스가 호수를 향해 달리고 있다. 어떻게 될까?

버스에는 대단한 능력을 가졌으나 조절하지 못하는 아이가 타고 있다. 바비와 윌 주니어는 자기 문제 때문에 자신들만의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레스터 씨는 아예 능력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이들이 함께 여행하면서 대단한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한 대단한 능력을 조절하는 건 다름 아닌 평범한 원리라는 걸 배운다. 사랑, 믿음, 이해, 용기, 배려가 없으면 대단한 능력은 재앙을 일으킨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

부모들은 자녀가 뛰어난 능력을 갖기 원한다. 공부, 운동, 노래와 춤, 그림이나 피아노 무엇이건 다른 사람보다 잘하기 원한다. 그래서 공부만 잘하게 된다면 돈이 조금 더 들어도,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도, 힘들어도 참는다. 가족들이 서로 사랑하며 추억을 남겨야 할 시간에 능력을 기르라고 등을 떠민다. 너무 떠밀어 아이가 구덩이에서 헤매는 지도 모른다.

 

개미
김근기 (6 )

개미가 모래 구덩이에 빠졌다.
나가려고 허우적댄다.
나가려도 발버둥 쳐봐도 모래가 무너져 나갈 수가 없다.
개미가 드디어 탈출에 성공했다.

무래 구덩이는 어른들!
개미는 우리들이다.
언제쯤 우리는 모래 구덩이 바깥으로 나갈 수 있을까?

어른들은 아이들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너무 오래 전에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일까, 아이들 마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밉시는 사람 마음을 읽는 능력을 받았다. 몸에 문신이나 그림이 있으면 그 사람의 마음을 들을 수 있다. 손에 얼굴만 그려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능력을 자기만을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어 한다. “내 초능력이 반대로 일어날 수만 있다면 아주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내 손등에 방긋 웃는 해를 그려서 사람들한테 내 느낌을 하나하나 다 말해 주고 내가 지금 이 완벽한 순간에 너무나 행복하다는 걸 알려 줄 수만 있다면 아주 좋을 것 같았다. (267)”

아이들은 어른과 세상을 다르게 본다. 아이들은 바람만 불어도 웃는다. 가방을 떨어뜨려도 웃고 주머니에서 동전이 짤랑대도 웃는다. 아이들이 깔깔대고 뛰어다니며 사는 까닭은 하루하루를 새롭게 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늘 똑같다고 생각하는 삶에서 놀라움을 발견한다. 낙엽이 떨어져도 놀랍고, 눈이 와도 놀랍고, 바람에 빗방울이 흩날려도 놀라워한다. 아이들은 자신을 둘러싼 것들을 사랑한다.

이 능력이 부럽다. 서로 믿어주고 사랑하는 능력, 아무하고나 친구가 되는 능력, 날마다 똑같은 일상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능력, 일상에서 놀라움을 찾아내는 능력, 구덩이에 빠져가는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손을 내미는 능력……

 

(보물섬, 산호섬, 15소년 표류기 그리고 파리대왕, 멋진 신세계)

코로나 19로 개학이 5주나 연기되었다. 보물섬을 꿈꾸던 아이들이 15소년 표류기를 맞은 셈이다.
어떤 나라는 통제로(멋진 신세계처럼), 어떤 나라는 방임으로(파리대왕처럼) 대처했다.
이럴 때 아이들은 집에서 무얼 할까?
책을 읽으면 좋겠는데 부모가 책으로 자녀를 이끌지 모르겠다.

Thanksbook(2015년 11월호)에 기고한 글이다.

모험이 이렇게 끝나면 좋겠지만~

어릴 때 텔레비전에 나오는 만화 <보물섬>을 빠지지 않고 봤다. 짐 호킨스가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벗어나 보물을 찾아 돌아오는 모습을 보며 행복했다. <보물섬>은 모험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잘 나타냈다. “끝이 좋아야 한다!!”

로버트 밸런타인이 쓴 <산호섬>은 모험 이야기 공식에 맞게 행복하게 끝난다. 세 소년이 폭풍을 만나 산호섬에 표류하지만 절망하지 않고 어려움을 함께 이겨낸다. 세 젊은이는 원주민 부족의 해묵은 갈등을 해결하고 원주민을 기독교인으로 교화한 뒤에 돌아온다. 그야말로 행복하게 살았더래요.’이다.

모험 이야기 하면 쥘 베른이다. 쥘 베른은 모험 소설의 수준을 높인 작가이다. <해저 2만리>, <80일간의 세계 일주>, <15소년 표류기> 제목은 대부분 들어봤을 것이다. 해저 2만리(원제목은 해저 20만리)는 네모 선장이 노틸러스 호를 타고 바다 속을 종횡무진 다니는 이야기이다. 네모 선장은 물고기와 해저 괴물이 득실대는 곳에서 사는 것이 인간 사회에서 사는 것보다 좋다고 생각한다. <80일간의 세계 일주>에서 필리어스 포그는 80일 동안 세계 일주를 하겠다며 내기를 한다. 80일 만에 돌아왔지만 조금 늦어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다음날 날짜변경선을 지나면서 하루를 앞당겼다는 걸 알고 내기에서 이긴다.

소개한 책은 모두 1800년대 후반에 쓰였다. 과학기술이 인류에게 희망을 불어넣을 때였다. 당시 사람들은 인류가 끝없이 진보할 것이며 과학기술이 이를 확실하게 뒷받침할 것이라 생각했다. <15소년 표류기>는 이런 분위기를 잘 드러낸 작품이다. 중학생 15명을 무인도에 보내면 어떻게 될까? 쥘 베른의 ‘15소년은 어른도 하지 못할 일을 해낸다. 표류했지만 총과 탄약과 각종 물건을 잔뜩 건져낸다. 배에 있는 도르래를 끌어내 물건을 산 위로 올린다. 동굴을 파서 집을 만들고 밭을 개간한다. 야생동물을 잡아 키우고 바다표범을 사냥해서 기름을 만들어 불을 피운다. 해적과도 싸워 이긴다. 곰과도 싸운다. 그러나 한 명도 죽지 않는다.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현실은 이렇게 끝나지 않는다.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모험이다. 폴 투르니에는 우리의 삶을 <모험으로 사는 인생, IVP>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겪는 모험이 19세기 후반에 쓰인 이야기처럼 끝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기개발서가 꾸준히 인기를 끄는 까닭은 자기를 잘 개발하면 행복한 결말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자기개발로 성공하는 사람이 적다. 자기개발서를 요약하면 성실성+통찰력을 갖추라는 말이다. 둘 다 책 몇 권 읽고 마음을 다잡는다고 되지 않는다. 현재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 모르면서 미래만 바라보면 절망하기 쉽다.

<산호섬>에 표류한 세 사람 이름이 랄프, , 피터이다. 공교롭게도 윌리엄 골딩은 <파리대왕>에 랄프와 잭을 다시 등장시킨다. 파리대왕의 아이들은 산호섬 아이들과 완전히 다르다. 몇 명이나 표류했는지도 파악하지 못한다. 바람과 비를 피할 임시 오두막도 완성하지 못한다. 구조를 위해 봉화를 피우자는 랠프에 맞서 잭은 멧돼지 사냥에 마음을 빼앗긴다. 주도권 다툼 하면서 친구를 죽이고도 죄책감을 내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이 처한 상황을 가장 잘 파악한 사이먼을 죽이고 랄프까지 죽이겠다고 단체로 인간 사냥을 벌인다.

과학이 인류에게 멋진 미래를 선사할 것이라는 꿈은 1차 대전과 함께 깨졌다. 2차 대전은 인간 자체에 대한 소망도 깨버렸다. 인간에게 정말 아름다운 미래라는 게 있을까 의심하게 만들었다. 윌리엄 골딩은 이런 분위기에서 <파리대왕>을 썼다. <산호섬>에서 행복하게 살았던 랠프와 잭이 맞서 싸우게 만들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70년이나 흐른 지금, 우리는 미래를 어떻게 바라볼까? 도와줄 사람, 이야기 나눌 사람 없이 홀로 남은 것만으로도 견디기 어려운데 호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일까? 얀 마텔은 <파이 이야기>에서 우리를 두렵게 하는 존재와 함께 표류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호랑이 덕분에 오히려 절망하지 않았다고 한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한 배에 탔다면 오히려 견디기 더 어려웠을 것이다.

멋진 신세계와 유토피아

토머스 모어는 500년 전에 <유토피아>를 썼다. 모어가 생각한 유토피아는 사유재산이 없는 국가를 보여준다. 신분의 구별이 없어 모두 평등하게 살아간다. 당시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이웃의 물건을 탐내지 않는다. 이것 역시 현실성이 없다. 모든 국민이 규칙과 질서를 지키며 평안하게 살아간다. 어림도 없다. 유토피아가 맞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속의 나라이다.

토머스 모어는 괜찮은 인문학자였다. 윌리엄 틴들에게 협력하는 사람들을 죽이고, 루터교 신도를 죽이고 감옥에 보냈다. 나는 틴들과 루터를 좋아하지만 이들을 반대한 토머스 모어도 좋아한다. 그래도 유토피아에 대한 그의 기대는 그저 마음에 그리는 상상,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이라 생각한다. 500년이 지난 지금, 우린 여전히 불평등한 세상에서 살아간다. 탐욕은 더 커졌고, 사람들은 여전히 정의에 굶주려 있다. 모어가 꿈 꾼 유토피아를 여전히 꿈꾸고 있다. 앞으로 500년이 더 지나면 어떻게 될까?

<멋진 신세계>는 올더스 헉슬리가 1932년에 쓴 책이다. 포드 기원 141년에 9년 전쟁이 일어나 세상이 바뀌고 다시 500여 년이 지난 뒤의 세상을 말한다. ‘포드 기원은 아마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대량생산 시스템을 만든 헨리 포드가 태어난 해(1863)일 것이다. 포드 기원 632, 지금보다 480년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올더스 헉슬리는 인류가 유토피아를 이루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올더스 헉슬리가 생각한 <산호섬>이 아니라 <파리대왕>이었다.

유토피아가 이루어지지 않은 까닭, 멋진 신세계가 전혀 멋지지 않은 까닭이 무엇일까? 중학생들과 토론하면서 5가지를 찾았다. 첫째, 계급제도 때문이다. 헉슬리는 모어가 꿈꾼 계급 없는 세상이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계급제도를 유지하되, 모두 자기 계급에서 만족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어떻게 다른 계급을 부러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차라리 호랑이와 한 배에 타는 것이 생각이 다른 사람과 지내는 것보다 쉽다.

둘째, 세뇌이다. <멋진 신세계>는 정해진 계급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세뇌를 이용한다. 세뇌당했기 때문에 다른 계급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사회 질서에 의문을 품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는 국민만 모인다면 행복하게 살 것이다. 지도자의 명령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행복해 한다면 정말 유토피아다. 플라톤이 원한 철인정치가 이렇지 않을까?

셋째, 소마가 있다. 정해진 계급에서 정해진 일을 하도록 세뇌되었지만 <멋진 신세계> 주민도 사람이다. 기쁨과 슬픔, 분노와 우울함을 느낀다. 힘들고 어려울 때, 원하는 걸 얻지 못할 때 소마를 먹는다. 기본으로 하루 반 알, 기분이 나쁠수록 더 먹는다. 현재에 만족해서 사회에 의심을 품거나 불만을 갖지 않게 만드는 마약이다. 소마는 대가를 치르지 않는 기쁨을 약속한다. 원주민 공동체에서 멋진 신세계로 들어온 존은 대가를 지불한 것만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레니나는 그저 하룻밤 상대로 존을 원했지만 존은 레니나를 위해 대가를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거부한다.

넷째, 그러나 사회 체제를 의심하면 죽인다. 멋진 신세계에서 다름은 틀림이다. ‘촉감영화보고 방향오르간으로 만족하고 장애물 골프즐기지 않으면 위험인물로 간주한다. 멋진 신세계에서 혼자 지내며, 생각하고, 남들과 다르게 행동하는 것은 금기사항이다. 소마를 의지하고 않고 옛날 책을 보면 섬으로 보내버린다.

이승원(부구중학교 3학년, 멋진 신세계 독서토론 후기)

오늘 수업을 하면서 내가 우리나라 사회에 세뇌되어 있다는 생각이 물씬 들었다. 처음 내가 받았던 질문인 현대 사회를 계급으로 나누어야 한다면 무엇으로 계급을 나눌까?’ 라는 질문에서 당연할 지도 모르는 성적이라는 대답을 했다. 근거로 시험이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가장 객관적인 기준이다라고 하였는데 혹시 내 대답이나 근거마저 내가 어릴 때 교육 받으면서 세뇌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계급사회일까?” 라는 질문에서는 성공한 자와 성공하지 못한 자가 누리는 혜택이 다르다고 대답했는데 이것마저도 성공해야 우리나라에서 어깨 펴고 살 수 있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대답한 것 같아 나는 세뇌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나라 교육의 모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게 하는 수업이었다. 상당히 재미있었다.

<멋진 신세계>는 인간의 인간됨을 귀하게 여기는 사회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승원 학생처럼 자신의 생각이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지 짚어봐야 한다. 자신의 생각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살펴보는 생각이 귀하다. 얄팍한 생각으로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은 헉슬리가 생각한 <멋진 신세계>를 만들 뿐이다. ‘다름틀림으로 생각하면 <산호섬><파리대왕>이 된다.

<파리대왕>을 만들지 않기 위해,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 나는 인간의 힘으로 유토피아를 이룰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상상도 못한 순간에 갑자기, 외부의 혁명적인 간섭으로 하루아침에 격변이 일어나는 게 더 쉽다고 생각한다. 그때가 될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성실하게 하려고 한다. 학생들이 깊이 생각하도록 돕는 게 내 일이다. 학생들이 정답 찾는 기계에서 벗어나 생각하는 인간으로 자란다면 조금이라도 유토피아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1.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기억전달자, 로이스 로리, 비룡소

- 이방인, 알베르 까뮈

- 사이렌, 전성현, 문학과지성사

 

첫째의 추천으로 <책뜰안애 독서모임>에서 토론하려고 읽었다. 뇌가 하는 일을 세밀하게 소개한다. 기존의 뇌과학 책과 다르다. TV 프로그램(6부작)으로 만들어져서 독자 친화적이다. 사진이 많고 새롭다. 인간이 누구인지, 어떻게 의미를 만드는지, 어떤 존재가 될지 등의 문제를 로 풀어간다.

 

함께 읽은 분들은 저자의 견해에 놀라면서도 반대 의견을 냈다. 나도 반대한다. 실험 사례가 극단적(병에 걸리거나 특이 현상을 겪는 사람)이거나 과학으로 검증할 수 있는 것들이다. (방송으로 제작했기 때문에 호기심을 끄는 사례를 많이 보여준 것 같다.) 과학이 아니라 다른 길로 접근해서 균형을 잡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자도 이를 의식했는지 철학의 문제를 꺼낸다. 그러나 우리의 뇌가 우리를 결정한다는 주장에 대한 증거로 과학만을 내세운다. 아쉽지만 굉장한, 굉장하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는 책이다.

 

당신의 정체성은 움직이는 표적과도 같다. 당신의 정체성은 절대로 종착점이 이르지 않는다. (12)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뇌와 몸은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조금씩(시계의 시침이 움직이는 것처럼) 변화한다. 예컨대 당신의 적혈구들은 4개월마다, 피부세포들은 몇 주마다 완전히 교체된다. 7년이 지나면, 당신의 몸을 이루는 모든 원자가 다른 원자로 교체될 것이다. 물리학적으로 보면, 당신은 끊임없이 새로운 당신이다. 다행스럽게도 다양한 당신의 버전들 모두를 연결해주는 상수가 하나 있다. 바로 기억이다. 어쩌면 기억은 당신을 당신으로 만드는 연속적인 실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억은 당신의 정체성의 핵심에 자리를 잡고 단일하며 연속적인 자아감을 제공한다. (34-35)

기억의 적은 시간이 아니라 다른 기억들이다. (38)

당신은 대상들을 있느 그대로 지각하지 않는다. 당신은 대상들을 당신답게 지각한다. (52)

우리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는 미완성 작품이다. (52)

의식은 무수한 세포들이 자신들을 통일된 전체로서 보는 한 방식, 복잡한 시스템이 자신을 거울에 비추는 한 방식이다. (132)

더 나은 결정을 하려면, 당신 자신을 아는 것뿐 아니라 다양한 당신 자신들을 모두 아는 것이 중요하다. (174)

자아는 진공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208)

인공지능 로봇에 대해 (고통 없는 습득이 인식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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