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고통당하는 하나님만이』 북토크
1. 일시 : 2005년 1월 4일
2. 번역자 김종호 목사, 사회 권일한 교사

번역자 김종호 목사님과 북토크를 준비하며 질문을 만들었다. 1장을 하나님에게 하는 불평과 하나님에 관한 불평으로 소개한 내용이 좋았다. 2장 욥을 다루는 본문은 고통을 다룬 다른 책과 달랐다. 3장 하나님의 눈물, 4장 하나님과 자연적 악 부분은 어려웠다. 12월 말에 읽고 이해가 안 돼서 북토크 직전에야 질문을 완성했다.
책보다 북토크가 더 좋았다. 목사님은 사모님이 아팠다. 번역을 시작할 때 갑자기 많이 아팠고, 병실에서 최종 원고를 수정했다. 발행 직전에 사모님이 돌아가셨다. 저자인 라마찬드라는 20년 동안 내전이 벌어졌던 스리랑카에서 고통을 겪었다. 목사님은 고통을 겪으며 쓴 책을 번역하는 동안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모임과 교회에서 함께 읽고 번역자를 초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 고통을 겪는 분들이 위로를 받을 거로 생각한다.
북토크 질문을 소개한다.
1.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 책을 번역한 계기나 과정도 소개해주세요.
2. 고통을 겪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보다 고통을 더 힘들게 겪습니다.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신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이 왜 가만히 계시는지, 왜 가만히 계시느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어서 더 괴롭습니다. 여기에 더해 사람들의 반응이 아프게 합니다. 사실 도움이 되지 않은 교회가 훨씬 많습니다. 저자도 이런 고민을 한 것 같습니다. 1장에서 탄식하라고 이야기하는데요, 정말 탄식이 도움이 되나요? 좌절감과 낙심을 일으키지는 않을까요?
3. 저자는 1장을 하나님에 관한 불평과 하나님에게 하는 불평이라고 요약했습니다. 둘이 어떻게 다른지 말씀해주세요.
4. 욥은 하나님께서 공의로운 분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따졌다고 했습니다. 이는 서구 신학이 말하는 방식과 반대로 보입니다. 신학은 하나님을 설명하고 하나님을 변호했습니다. 신학의 방향이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5. 서구 신학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확신을 강조했습니다. 확신을 강조하는 신학의 단점과 불편함 때문에 교회를 떠나는 분도 많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6. 3장 논지를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3장 내용을 소개해주세요.
7. 3장에서 무기력하게 다른 이들의 손에 넘겨진 예수님을 말하며 ‘두 번째 유년기’에 들어간 사람들 곧 안락사나 조력 자살을 선택하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설명합니다. 탄식밖에 할 수 없는 처지에서 내재적 존엄성을 붙잡으라는 말이 무기력하게 기다리라는 말로 들리지 않을까요? 고통을 겪는 분들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가치를 붙잡고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8. 악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지만, 악과 싸우기 위해서는 악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럼 악이 스며들어 혼합주의에 빠지거나, 악한 문화를 이기려고 극단으로 치우칩니다. 때로는 교회를 비난하며 맞서다가 하나님을 잃기도 합니다. 윤동주는 슬퍼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여덟 번 말한 뒤에 저희가 영원히 슬플 거라고 썼습니다. 슬퍼하며 공감하는 마음, 진정성만으로 될까요?
9. 4장에서 저자는 하나님을 무능하거나 무정한 존재로 만드는 여러 이론과 주장을 소개한 뒤에 하나님께서 현재 고통과 불행의 자리에 함께하시며 우리와 연대하신다고 설명했습니다. 스리랑카에서 고통스러운 현실을 온몸으로 겪은 사람으로 하나님을 이렇게 바라보다니 놀랍다고 생각합니다. 저자의 생각을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10. 하나님이 고통받는 이유는 그분이 자신의 백성과 맺는 언약적 신실함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멀리서 지켜보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고난에 동참하는 분이라고 합니다. 초등 교사로 아이들의 고통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상처를 위로하고 도와주려고 했는데 많이 힘들었습니다. ‘교사가 아파야 아이가 회복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지쳐서 도와줄 힘을 잃기도 했습니다.
동참보다 해결이 쉽고 빠르지 않습니까? 동참은 무능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왜 악을 해결하지 않고 고통에 동참하실까요?
11. 저자는 5장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진정한 정체성으로 '소망'을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투쟁의 소망, 소망과 약한 자들의 실천, 예전적 삶의 방식 소망, 기다림의 소망, 어둠 속의 소망이라는 소제목에서 계속 소망을 말합니다. 목사님은 중간의 삶으로 끝이 아니라, 더 나은 모습이 우리를 기다린다고 확신하시나요? 이런 확신이 슬픔과 고통을 다르게 보게 했다면 이야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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