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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4학년 때 학과 친구들 모두 지능검사를 했다. 우리나라 사람 몇이 모이면 IQ가 높아서 천재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 하나쯤은 나온다. 우리가 IQ 검사에 대한 추억을 내놓으며 설레발을 치자 교수님이 “이 검사는 평균이 100 나온다. 너희도 평균 100 나올 거야. 검사 끝난 뒤에 보자.” 하셨다. ‘교육대학 학생이면 IQ가 꽤 높은데 평균 100이라니~’ 생각했다.
검사 결과가 나왔다. 20명 평균이 거의 100이었다. 가장 높은 친구가 118이었고, 가장 낮은 친구가 82였다. IQ가 가장 높은 친구와 가장 낮은 친구가 고등학교 동창이고, 같은 하숙집에 살아서 더 재미있었다. 둘이 같이 다녀야 IQ 100이라며 놀려댔다. 졸업할 때 학점은 IQ 82인 친구가 더 높았다. IQ 118인 친구는 지금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고, IQ 82인 친구는 교감으로 성실하게 교사들을 도와주고 있다. IQ는 그저 숫자에 불과했다.
IQ는 ‘학습준비도 검사’이다. 고정된 학습 능력을 측정하는 도구가 아니다. 지능 이론의 대표 학자는 비네와 웩슬러이다. 두 사람은 지능을 다르게 정의했다. 사실 지능검사가 일반화된 건 미국이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쟁에 참여할 정도의 인식 능력을 가진 사람을 가려내기 위해 검사하면서부터이다. 한 사람이 얼마나 인식 능력이 있는지, 창의적인지, 합리적으로 선택하는지 등을 재는 건 처음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지능검사가 한 사람의 능력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되어갔다.
일단 검사를 실시하면 평균을 계산한다. 우리나라는 상대평가의 기반이 견고해서 평균을 따질 일이 많다. 평균보다 낮으면 무언가 해서 평균에 이르려 한다. 평균보다 높으면 평균으로 내려가지 않으려 한다. 평균은 되어야 하고, 기왕이면 평균보다 높아야 하고, 결국 평균 수준의 사람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정도가 되고 싶어 한다. 평균에 만족하는 사람이 적다. 지능의 획일성, 단순성을 깨뜨린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 이론조차 ‘학원 광고’에 이용할 정도로 뛰어나고 싶은 욕망이 크다. 이런 사회에서 평균은 중간이 아니라 최소한의 기준이 된다. 그럼 평균 이하의 사람을 무시하거나 얕보는 분위기가 커진다.
평균은 이용하기 편하다. 평균에 맞추면 일을 빠르고 편하게 한다. 평균 치수의 물건을 준비하면 조금 크거나 작아도 적당히 맞춰 쓴다. 각 개인에게 맞추려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서 효율성이 떨어진다. 군대에 갔다 온 사람은 동의하는 내용이다. 오죽하면 “군대 가면 중간만 해라.”는 말이 있을까! 그렇다면 과연 평균(중간)만 하면 될까? 중간만 하면 된다는 말이 옳을까?
『평균의 종말』은 평균이 허상이라고 주장한다. 재미난 사례가 나온다. 미국 라이트공군기지에서 4063명의 조종사를 대상으로 140개 항목의 치수를 측정해서 평균 치수를 산출했다. 이를 바탕으로 조종석을 설계했다. 평균 치수로 조종석을 만들면 대부분(적어도 다수)의 조종사가 정상분포 내에 포함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니얼스 중위가 키, 가슴둘레, 팔 길이 등 조종석 설계상 가장 연관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10개 항목의 평균값을 냈다. 평균값과의 편차를 30%로 넓게 잡은 뒤 평균과 조종사 개인 수치를 대조했다. 10개 항목 전체에서 평균 범위에 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0명이었다. 10개 항목 가운데 임의로 3개를 골라 평균치에 드는 조종사를 찾아봐도 3.5%밖에 안 됐다. 평균에 맞는 조종석은 아무에게도 맞지 않는 조종석이었다. 지금 비행기 조종석은 조종사 각자에게 맞추어 제작된다고 한다.
『평균의 종말』은 3부로 쓰였다. 1부에서 평균이 기준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보여준다. 케틀레가 평균적 인간이라는 개념을 착안했고, 테일러가 표준화 시스템을 만들었다. 기업이 공장식으로 바뀌었고 학교도 평균 수준의 산업 일꾼을 길러내는 시스템의 일부가 되었다. 표준화 시스템은 기업에 이익을 가져다주었고 소비자들은 상품을 저렴하게 구입했다. 그 결과 평균을 바탕으로 한 표준화 시스템은 절대 불변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졌다.
평균의 시대는 두 가지 가정 위에 세워졌다. 첫째, 평균이 이상적이라면 개개인은 오류이다.(케틀레의 신념) 둘째, 한 가지 일에 탁월한 사람은 대다수의 일에서 탁월성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골턴의 신념) 평균주의 과학자로 오랜 기간 활동하며 업적을 쌓은 몰레나도 두 가정을 믿었다. 그러나 갑자기 떠맡은 강의 <지능검사의 이론과 방법을 주제로 한 토론식 수업>에서 삶의 방향을 바꿔놓을 순간이자 사회학의 토대를 흔들어놓게 될 순간을 체험한다. 이 체험은 평균주의가 실용적이고 효과적이기 때문에 수용되었지, 옳기 때문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주었다. 몰레나는 개개인을, 가장 중시되는 인간 자질에 따라 살피는 평가 도구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2장은 교육 혁명을 위한 개개인성의 원칙을 설명한다. 평균주의는 개인을 평균에 맞추어 개개인성을 평균으로 가둔다. 이는 다차원적인 인간의 재능을 단순하게 판단하고 측정한다. 저자는 들쭉날쭉의 원리, 맥락의 원칙, 경로의 원칙을 들어 이를 비판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구글의 인재채용법을 증거로 제시하는데 재미있다. 궁금하면 읽어보시라.
3부는 <평균 없는 세상>이라는 제목으로 개개인성을 바탕에 둔 기업을 소개한다. 월마트는 직원이 200만 명이 넘는 거대기업이지만 이직률이 50%에 달한다. 테일러주의식 효율성으로 기업을 운영하기 때문에 해마다 100만 명의 직원이 바뀌어도 신입 직원이 빈자리를 채운다. 코스트코는 2014년 ‘일하기 좋은 최고 기업’에 4년 연속으로 뽑혔고 구글에 이어 ‘급여 및 직원 혜택 부문 최고 기업’ 2위에 올랐다. 직원의 88%는 회사가 지원해주는 의료보험에 가입해 있다. 급여는 월마트보다 75% 정도 더 높다. 그런데도 회사가 이익을 남긴다.
코스트코는 월마트와 반대로 개개인성에 관심을 갖고 회사를 운영한다. 직원을 찍어내는 게 아니라 정중하게 대우하고 공정하게 경력을 쌓도록 길을 열어준다. 그러면 뛰어난 성과가 따른다고 한다. 이는 시대가 변한다는 증거이다. 대장간에서 만든 호미가 외국 정원사들에게 팔려나가는 것만 봐도 증명된다. 이제는 테일러주의식 효율성을 앞세운 대량생산이 아니라 한 분야에 능통한 ‘장인’이 개성 넘치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시대로 바뀔 것이다.
평균은 우리나라 교육에서 핵심 위치에 있는 개념이다. 우리나라 교육이 등급 매기기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이는 학생에게 평균, 즉 다른 모든 학생과 똑같이 하되 더 뛰어나야 한다고 강요한다. 평균으로 보여줄 수 있는 획일적인 영역에서 다른 학생보다 뛰어난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치르지만 정작 개인의 성장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학위 시스템 혁신, 성적 시스템 혁신, 자율 결정형 교육, 새 시대의 교육모델을 제시한다. 『평균의 종말』은 이 부분에서 아쉽다. 간단하게 슬쩍 이야기하다가 끝난다. 개개인성을 인정하자는 주장이 사회에서 꽃을 피우게 해주는 후속작이 나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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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대로 글이 되는 우리 아이 첫 글쓰기』 책 소개합니다.
나명희 씀, 양철북 출판, 220쪽, 13000원, (1~3학년 대상 글쓰기 지도)
내가 쓴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이 그대로 쓰였다.
책을 읽으며 내 수업, 내가 만난 아이를 보는 줄 알았다.
이분은 내가 하는 말을 한다.
『책벌레 선생님의 행복한 글쓰기』에 쓴 내용을 저학년에 맞춰, 쉽게 이해하도록 썼다.
아이들 글도 내가 만난 아이들 글 같다.
『책벌레 선생님의 행복한 글쓰기』를 읽은 분들이 책 내용이 좀 어렵다고 말했는데, 이 책은 쉽고 재미있다.
『말하는 대로 글이 되는 우리 아이 첫 글쓰기』를 먼저 읽고 이어서 행복한 글쓰기를 읽으면 좋겠다.
책 내용은 글쓰기 시작하기, 글감 찾기, 글 쓰는 방법 알려주기, 아이 글을 바라보는 눈, 시 쓰기, 일기 쓰기, 아이가 책을 읽게 하는 방법을 순서대로 썼다. 내가 책을 쓰는 순서와 비슷하다.
저자는 지난해에 내가 읽은 『나에게 시가 왔습니다』를 엮은 분이다. 이 책도 참 좋았다.
<책에 나온 내용>
아이들은 저마다 시의 씨앗들을 품고 있습니다. 착한 마음, 순진한 마음, 거짓 없는 솔직한 마음, 엉뚱한 마음, 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밝은 눈, 반짝이는 호기심, 세상의 틀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생각, 이런 마음들이 다 시의 씨앗들입니다.
‘어린이시’는 존재 자체가 시인인 아이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쓴 시를 말합니다. 그냥 ‘시'라고 해도 좋습니다.
양철북에서 나온 책 몇 권 같이 소개한다.
<교육>을 생각하는 분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 생각한다.
1. 가르친다는 것 (윌리엄 에어스)
--- 만화판과 에세이판 두 권이 있다.
--- 책 좀 읽은 분에게는 만화판을 추천한다. (난 만화판을 더 좋아한다.)
2. 교사로 산다는 것 (조너선 코졸)
--- 이 구절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다.
"학생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 수업은 공책에 필기한 내용도 아니고, 교과서에 인쇄된 궁핵한 문장도 아니다.
그것은 수업하는 내내 교사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메시지다. 그것이야말로 평생 잊히지 않는 교훈이 될 것이다."
3.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하이타니 겐지로)
--- 아이를 가르치는 분이라면 하이타니 겐지로는 읽어야 한다.
--- 아! 내가 만난 데쓰조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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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러설 수 없는 희망에 대하여 (0) | 2020.07.26 |
대학에 들어갈 때, 철학책 읽고 토론하며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제가 아이들 앞에 설 때 본으로 삼을만한 교수님을 강의실에서 만나기 원했습니다. 삶을 나누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할지 함께 고민하는 진짜 스승을. 하지만 제가 대학에서 만난 교수님들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그저 권위만 내세우는 직업인이었습니다. 윤리의식이 모자란 사람, 고등학교 때보다 못한 수업을 하는 사람, 편협한 생각으로 사람을 옥죄며 학점으로 위협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영향력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모범을 보이지 않고 강요하면 아예 무시했습니다.
교사가 되고나서 본받기 싫은 교사를 많이 만났습니다. 본받을만한 교사를 만나게 해달라는 기도는 10년도 더 지나 ‘좋은교사’를 만나서야 이루어졌습니다. 교육과정과 교과서도 권위에 도전하는 제 마음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가끔 만나는 ‘도저히 가르칠 수 없는 내용’을 핑계 삼아 교과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고 재구성했습니다. 말이 재구성이지 ‘내 멋대로’ 가르쳤습니다. 그때 아이들과 좋은 추억이 많지만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 미안한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권위를 의심하는 제 성향 때문에 저는 국가가 요구하는 내용은 일단 내 가치관을 통과하지 않으면 가르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교육과정이 편협하기 때문에 편협한 생각을 가진 제 판단이 오히려 올바를 때가 많았습니다. 물론, 잘못된 제 생각과 태도를 고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습니다.
조너선 코졸은 권위에 대한 반항아입니다. 일반인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통찰과 분석으로 교육계의 촘스키로 불립니다. 미국의 차별적인 교육과 사회 불평등에 맞서 싸워온 교육자이며 미국을 대표하는 미국 비판 지성인입니다. 그는 학교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가르침이 일어나는 곳이 아니라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원하는 생각을 주입하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권위를 계속 유지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교과서를 만들었다는 증거를 밝힙니다. 학교가 진실, 아름다움, 위대한 영혼의 추구, 인간적인 가치……을 중요하게 여기는 듯 말하지만 실상은 포장만 요란하지 내용은 주는 대로 받아들이라고 주입한다는 겁니다.
미국 교과서 역시 적당한 사실만 알려주고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말라는 식으로 기술되었나 봅니다. 코졸은 올바른 가치를 위해 정부에 대항했던 인물들이 사라진 교과서를 비판합니다. 인종차별적인 생각을 가졌던 링컨의 발언은 삭제하고 정직한 에이브만 보여줍니다. 파업참가와 단식, 투옥을 마다하지 않은 도로시 데이처럼 비범한 의지를 가진 여성들은 전복적인 인물로 취급해서 교과서에 싣지 않습니다. 헬렌 켈러가 열심히 노력해서 유명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는 이야기는 실으면서 노동착취가 일어나는 빈민가를 방문하고 탐욕스러운 지도자와 기득권층에 대해 도전한 내용은 싣지 않습니다. 역사, 경제, 정치, 철학, 사회질서, 도덕적 가치 모두 취사 선택하고 적당히 편집해서 그들이 알려주고 싶은 내용만 교과서에 남습니다.
「교사로 산다는 것」이라는 책은 저자가 30년 전에 썼습니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도로시 데이나 헬렌 켈러가 교과서에 실릴 수 있지만 미국 우월주의와 사회질서 유지 위주의 내용은 바뀌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교과서로 배운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요? 히틀러의 명령을 철저히 따른 아돌프 아이히만의 순종적인 태도는 독일 공립학교에서 길러졌다고 합니다. 잘 통제된 공립학교에서 복종하는 것을 배우면, 아이히만처럼 지배자들이 요구하는 ‘낮은 사고력과 높은 애국심’을 갖춘 시민이 된다고 합니다. 코졸은 교사가 물들지 말고 올바로 가르치라고 합니다. 상처 받기 싫어 세운 보호막에서 내려와, 생각을 바꿔주는 수업을 하라고 합니다. 언제나 중도에 가까울수록 진실하다는 믿음을 버리고 올바른 것이라면 극단을 선택할 줄 아는 학생을 길러내라고 합니다. 예수님도 당시 사회에서는 극단주의자였다면서……
저자는 “학생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 수업은 공책에 필기한 내용도 아니고, 교과서에 인쇄된 궁색한 문장도 아니다. 그것은 수업하는 내내 교사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메시지다.” 라고 말합니다. 정말 공감합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교사가 수업 시간에 눈빛으로 메시지를 뿜어내지 않는다면 학생들은 기존 질서를 유지하며 금권을 독점한 지배세력에게 순응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교사가 이런 모습으로 가르치고 있으면 안 되겠지요.
「1984」를 읽기 전에 저는 조지 오웰을 유명한 작가로만 생각했습니다. 이 책 역시 동물농장처럼 미래사회를 재미난 우화로 표현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1984」는 ‘빅 브라더’로 불리는 절대권력을 가진 통치자에 의해 지배되는 세상을 표현합니다. 곳곳마다 텔레스크린(감시도구로 CCTV 기능에 스피커 역할도 하는 도구)이 있어 사람들을 감시합니다. 동시에 사람들의 행동을 통제하는 말도 흘러나옵니다. 여러분이 이 글을 읽다가 잠시 다른 일을 위해 일어선다면 “○○선생, 어디 가는 거야! 마저 다 읽고 가야지!”라는 말이 곧바로 튀어나오는 겁니다.
주인공 윈스턴은 과거 기록을 조작하는 부서에서 일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일에 매달려 있는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2011년 12월까지 주가를 3000으로 만들겠다고 대통령이 말했는데 1700밖에 안 된다고 가정합시다. 주가 3000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으면 1700인 지금은 문제상황입니다. 그래서 3000이라고 말한 기록을 1700이라고 말했다고 조작합니다. 과거의 모든 기록(신문, 방송자료, 논문, 책……)을 주가 1700으로 바꿉니다. 지금이야 이런 일이 벌어지면 당장 온 나라가 들끓으며 대통령 탄핵을 말하겠지만 그 사회는 이런 마음조차 사라져 버렸습니다. 지나친 통제와 감시, 조직화된 조작으로 사람들이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조작인지조차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득권층이 가장 원하는 모습이지요.
조지 오웰의 천재성이 드러난 부분은 3부입니다. 윈스턴이 왜곡과 조작으로 세워진 나라를 뒤엎기 위해 과거의 진실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발각되어 잡힙니다. 고문과 회유, 협박과 위협에 갈등하는 윈스턴이 결국 신념을 포기하고 사회에 적응하는 사람으로 돌아갑니다. 윈스턴을 고문한 오브라이언과 윈스턴이 대화하는 내용이 절묘합니다. 오브라이언은 적대자를 무조건 고문해서 죽이지 않습니다. 단순한 위협과 고통은 순교자를 만들어 반대자들을 더 격렬히 타오르게 만듭니다. 그래서 극렬히 반대하다 죽는 사람이 생기지 않게 합니다. 겉으로는 반대하는 척하며 속으로는 여전히 생각을 바꾸지 않는 사람으로 놔두지도 않습니다. 자기 생각을 의심하고 결국은 자신이 믿었던 진실이 한순간의 몽상이었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조지 오웰이 극단적으로 표현한 사회는 사실 기득권층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전략을 과장해서 보여준 겁니다. 기존질서를 의심하지 말고 순응하여 살라고 말합니다. 잘못된 것을 믿으면서 무엇이 잘못인지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고 의심할 능력마저 빼앗아 갑니다. 시험 잘 보고 좋은 성적 받아서 돈 많이 버는 직장에서 여유를 누리며 살기 위해 다른 건 신경쓰지 말라고 합니다.
조너선 코졸 역시 정부가 교육과정을 통제해서 나라에 충성하는 충실한 일꾼들만을 길러내려 한다고 말합니다. 정말 위험한 매체는 방송입니다. 2-3살 아기일 때부터 텔레비전을 보며 수많은 광고와 이미지에 노출된 아이들이 결국은 방송의 노예, 방송의 제자, 방송의 아들딸이 됩니다. 사라는 물건을 사고, 하라는 행동을 하며,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의 충실한 노예들이 됩니다. 가끔씩 이상한 과거 경험에 의해 저처럼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이 생길지 모르지만 대세를 거스르긴 어렵습니다.
제가 하는 독서모임에서 중학생들과 「1984」로 독서토론을 했습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 부르키나파소를 궁핍으로 몰아넣은 프랑스 지배층의 음모를 살폈습니다.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에서 소말리아 내전에 개입한 미국의 행동을 따져봤습니다. 우리를 두렵게 하는 두려움과 우리가 살아갈 미래사회가 좋아질지 나빠질지 토론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빅 브라더’인지 물었더니 아이들은 ‘성적, 경쟁, 경제논리, 부모, 방송, 국가’를 꼽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말했죠. “너희들처럼 생각하고 공부하는 아이들이 1984를 바꾼다. 이 작은 독서모임에서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나올 것이다.” 두 책 읽으시고 같은 소망을 품기를 바랍니다.
『교사로 산다는 것』을 처음 읽었을 때, 들리는 메시지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9년만에 다시 읽으며 <자기만의 수업을 하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년 전부터 나라는 인격에서 나와, 아이라는 인격을 만나는 나만의 수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멋진 아이디어, 감탄을 자아내는 도구를 사용해서 아이들을 사로잡는 수업은 아닙니다. 아무 도구 없이, 온전한 나 자신에게서 나오는 수업입니다. 조금씩 배우고, 변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간단하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자기만의 수업을 방해하는 세 가지 걸림돌이 생각납니다.
시선.
전 동네 곳곳, 골목과 언덕과 개울을 다니며 수업합니다. 우리 반만 뒷산에 가고, 운동장에서 비 맞으며 수업하면 주위 분들이 한마디씩 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사람들 눈치를 받지 않습니다. 우리 반만 다달이 문집을 내고, 우리 반만 현장학습 가고, 우리 반만 책상 위에 걸터앉아 노래를 불렀습니다. 전 그게 좋아서 선배들이 주는 눈치를 이겨냈습니다. 그때 시키는 대로 했다면 제 수업의 큰 부분이 사라졌을 겁니다.
교과서.
“이상한 짓 하지 말고 교과서대로 해!” 사실 시키는 대로 하면 편합니다. 문제가 생길 때 시킨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면 됩니다. 교과서만으로 가르치면 안전합니다. 그러나 저는 코졸의 의견을 받아들였습니다. 코졸의 책을 읽기 전부터 교과서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국어 글쓰기 내용은 많이 바꿔서 가르쳤습니다. 교과서에서 제시하는 주제를 버리고, 아이들 삶에 바탕을 둔 글감을 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우리 이야기’를 쓰게 했습니다.
막연한 생각.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교과서를 무시하면 무얼 할까요? 무너뜨리기는 쉬워도 세우기는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 수업을 분석하고 비판할 점을 찾기는 쉽지만 나만의 수업을 만드는 건 어렵습니다. 막연한 생각은 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할지 찾는 건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게 힘들었습니다. 지금도 계속 찾습니다.
교사로 산다는 건, 아이들이 자기만의 길을 걷도록 안내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정해진 길, 사람들이 성공이라 부르는 길만을 따르게 하는 교육이라면
학원에만 다녀도 되지 않을까요?
3. 2011-11월 좋은교사 소개 글 중의 한 문단
저자는 “학생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 수업은 공책에 필기한 내용도 아니고, 교과서에 인쇄된 궁색한 문장도 아니다. 그것은 수업하는 내내 교사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메시지다.” 라고 말합니다. 정말 공감합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교사가 수업 시간에 눈빛으로 메시지를 뿜어내지 않는다면 학생들은 기존 질서를 유지하며 금권을 독점한 지배세력에게 순응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교사가 이런 모습으로 가르치고 있으면 안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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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이들과 글을 씁니다. 아이들이 바라보는 시각을 사랑합니다. 어른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밋밋하고 단순합니다. 아이들은 어른들 눈에 무채색인 세상에 자기만의 색깔을 입힙니다.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새롭습니다. 감탄을 일으킵니다. 마음을 울리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아이들 글 덕분에 다르게 생각하는 마음, 기다리는 마음, 보통의 어른과 다른 태도로 다가가는 마음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이런 태도와 시각을 보여 주지는 않습니다. 많은 아이가 마음을 표현할 기회를 갖지 못합니다. 글을 쓴다고 해도 진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배우는 시는 내용을 잃고 형식이 앞섰습니다. 일기는 보여 주기 위해 꾸며 씁니다. 편지에는 마음이 없고, 독서 감상문에는 줄거리뿐입니다. 논술은 논리를 앞세워, 사려 깊은 고민이 사라졌습니다. 잘못 배웠기 때문입니다. 원래 아이들은 이렇지 않습니다.
일본 작가 하이타니 겐지로는 17년 동안 교사로 지내며 아이들과 글을 썼습니다. 저는 《난 선생님이 좋아요》에서 아이들에게 배우는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태양의 아이》에서 약하고 아픈 사람들을 사랑하는 어른을 만났습니다. 《상냥한 수업》에서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가르침을 만났습니다.
《상냥한 수업》에는 초등학교 우리 반 아이에게 읽어 주고 싶은 글, 독서반 중고등학생에게 읽어 주고 싶은 글이 많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저는 중학생 신분이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중학교는 한 달도 채 다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가끔 결석을 했지만, 중학교는 한 달밖에 안 다녔다고 해도 될 정도로 학교에 가지 않았습니다. 이 3년은 저에게 굉장히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64쪽)
중학교에 제대로 다니지 않은 아이가 쓴 글이 마음을 울립니다. “… 저는 너무 지쳐 버렸습니다. 하지만 숙제를 해야 했습니다. … 공부 말고,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을 스스로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깊이 생각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 우리보다 세상을 오래 산 어른들에게 배우고 싶은 것은 수학이나 영어만이 아닙니다.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배우고 싶습니다. 우리는 아직 어리니까 앞으로 많은 벽에 부딪힐 테고, 어쩌면 산산조각이 나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때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와 벽을 마주할 수 있는 힘을 어른들에게 다시 배우고 싶습니다.”(65~66쪽) 너무 지쳐 학교를 떠나 버린 학생의 마음에 글이 있었습니다. 가게에서 껌을 훔치고 쓴 아이 마음에도, 집이 불 타 버린 아이 마음에도 글이 있습니다. 아이들 글을 보여 주는 선생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책에 힘든 아이만 나오지는 않습니다. 저자가 존경하는 선생님의 수업, 저자의 수업 이야기도 나옵니다. 저자가 소개하는 우라기 히데오 선생님 이야기를 읽으며 예전에 했던 다짐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을 만져 주고, 아이들이 더 높은 곳을 향해 가게 만드는 수업을 꿈꿨습니다. 어느새 무뎌져 가는 마음을 다시 돌아봅니다. 저자가 소개하는 ‘상냥함에 대하여’란 수업은 제가 해 보고 싶은 딱 그런 수업이었습니다.
이 책은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만큼이나 좋은 책입니다. 선생님이 만났던 아이들 이야기를 해 주는데 따뜻하고 마음이 울렁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아이들 앞에 서야지, 계속 아이들과 글을 써야지, 이 글은 아이들에게 읽어 줘야지, 이렇게 수업하고 싶다….’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잔잔하게, 소박하게, 그렇지만 따뜻하게, 울림을 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은 분께 권합니다.
지금도 계속되는 시리아 내전, 독재자 아사드 정권이 다라야를 4년 동안 포위했습니다. 다라야는 사람도 물건도 드나들지 못하는 데다가 사린가스 공격을 받았습니다. 드럼통 폭탄이 떨어져 건물이 무너지고 주변이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4년 동안 8,000개가 넘게 떨어진 폭탄을 피해 사람들이 지하로 스며들었습니다. 그곳에 갇힌 사람들이 무너진 폐허에서 건져낸 책을 모아 지하에 도서관을 만들었습니다. 독재자와 극단주의 이슬람 세력 사이에서 책을 모아 분류하고 라벨을 붙이고 지하에 정신의 보고를 세웁니다.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며 토론하고, 자유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은 권력을 가진 독재자에 대항하여 정신으로 맞선 사람들이 보여 주는 희망의 이야기입니다.
고립된 도시, 언제 어디에서 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처지에서 무얼 할까요? 먹을 것이 줄어들고, 환자는 늘어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저는 책을 읽을 겁니다. 우리를 죽이는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독재와 반대편에서 자기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을 이기는 방법은 ‘그들의 정신에 동의하지 않는 태도’, ‘총과 칼이 아니라 대화’, ‘나와 다르면 모두 적으로 여기는 태도를 벗어 버리게 만드는 토론과 나눔’입니다. 이걸 갖추게 해 주는 게 바로 책입니다.
아흐마드는 그렇게 소란한 가운데서도 무너진 건물의 잔해에서 수천 권의 책을 구해 내어 모든 주민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한곳에 모아 만든 ‘책으로 된 피난처’를 만들었습니다. 쉴 새 없이 퍼붓는 폭격에 대한 공포와 허기를 달래기 위해 책으로 만든 수프, 정신을 살찌우려고 미친 듯이 책을 읽습니다. 이 도서관은 포탄에 맞서는 그들만의 은밀한 요새, 대중 교육을 위한 무기였습니다.(13쪽) 이것만으로도 모자라 친구 오마르는 병참선에 자신의 ‘작은 도서관’도 만듭니다. 모래주머니 뒤로 틈을 메워 완벽하게 정렬한 10여 권의 책으로 꾸민 도서관입니다. 폭탄이 잠잠해지면 책을 돌려 가며 읽습니다. (72쪽)
아흐마드와 다라야의 다른 운동가들은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자, 그리고 절망감으로 과격화하는 것을 막으려고 ‘혼돈’이라는 잡지를 만듭니다. 아이들과 여성들을 위한 이동도서관도 만들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고 참호를 지킬 때도, 폭탄이 떨어지는 곳에서도 그들은 증오를 이겨 내는 책의 힘을 붙듭니다.
“살아남은 그는 책이 주는 유익함을 믿었다. 몸의 상처를 치유할 수는 없다고 해도, 마음의 상처를 달랠 권리는 있는 것이다. 책을 읽는 단순한 행위가 아부에게는 엄청난 위로였다. 그것은 도서관을 세우면서 알게 된 감정이었다. 그는 한가로이 책장을 넘기는 것이 좋았다. 끊임없이 책장을 넘기며 훑어보는 것, 마침표와 쉼표 사이에 몰입하여 길을 잃는 것, 미지의 대륙을 탐험하는 것.”
“책은 지배하지 않습니다. 책은 무언가를 선사해 주죠. 책은 거세하지 않습니다. 책은 성숙하게 합니다.”
언젠가 어둠의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날이 올 때 그들이 읽은 책이 그들을 인도할 것입니다. 지배하기보다 선사하기를 원한 사람들, 적을 제거하지 않고 함께 성숙해지기 원한 사람들이 시리아를 다스리는 날이 꼭 올 것입니다.
저는 아이들 글이 좋습니다. 아이들은 어른이 보지 못하는 세상을 보여 줍니다. 그 세상이 너무나 아름다워 기대하며 글을 씁니다. 또한 저는 책이 좋습니다.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 생각을 편하게 읽는다니 얼마나 좋습니까! 폭탄이 떨어지는 도시, 폐허가 된 곳 지하에서 책을 모으고 읽는 사람들 마음을 이해합니다. 저라도 그랬을 겁니다. 칼과 창, 탱크와 폭탄을 막으려면 더 강한 무기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상냥한 수업》과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을 꼭 읽어 보세요. 책에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실 거예요.
평균의 종말 (5) | 2021.0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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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이들에게 모두 빚진 사람들이다./ 송인수 / 우리학교
강원도 시골에서 교사로 지내면서 답답했다. 생각을 나눌만한 사람이 너무 적었다. 학교를 하나님이 주신 사역지로 생각하는 사람은커녕 교회 다니는 교사도 드물었다. 교회에서 집사, 장로인 교사도 학교에서는 그냥 교사였다. 일반 교사 중에 좋은 사람 많았지만 자꾸만 나쁜 교사가 눈에 들어왔다. 초보로 허덕이며 “존경할만한 선배를 보내주세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학교를 사역지로 생각하며 아이에게 삶을 쏟는 교사를 만나게 해주세요.” 기도했다. 책에 나오는 인물이 아니라 나와 똑같은 살과 피를 가지고 살아가는 교사 중에 존경할만한 사람을 보내달라고 기도했다. 내 곁에도 좋은 교사가 있었지만 ‘존경’이라는 말을 쓸 정도는 아니었다. 내 기도제목은 기독교사대회에 참가하면서 응답 받았다.
가치 있는 일에 자신을 쏟아 붓는 사람
기독교사단체 연합모임인 <(사) 좋은교사운동>에서 2년마다 한 번씩 기독교사대회를 한다. 처음 참가한 기독교사대회에서 송인수 선생님을 만났다. 좋은교사운동 대표로 섬기던 선생님은 기독교사대회 마지막 날 우리에게 후원금 증액을 요청했다. 지금도 좋은교사운동은 교사들의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앉아있는 1800여 교사들은 돈을 내는 위치였고 선생님은 후원을 요청하는 위치다. 뭐라 해야 할까? 귀한 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에 후원해 달라고 부탁해야겠지.
고통당하는 아이들 사진을 보여주거나 효과가 많은 사역이라고 홍보하면 후원금이 늘어난다. 동정심을 유발하거나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설득해도 늘어난다. 헌금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설득한다. 예배당 짓는 걸 ‘성전 건축’이라고 해야 헌금이 늘어난다. 헌금 많이 하면 복이 올 거라고 말하면 역시 헌금이 늘어난다. 하나님 나라에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해도 늘어나겠지만 다른 방법보다 후원금이 많아지진 않을 것이다.
선생님은 당당하게 요구했다. 우리나라 교육을 살리는 일인데 후원금 조금 내고 만족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돈 내놓으라는 소리 듣고 찔렸다. 교회에서 가난한 성도에게 이런 말 하면 안 된다. 선생님도 안다. 그러나 우린 교사다. 아이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이를 위한 일에 후원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나! 미안해하며 증액했다. 후원 더 해달라는 소리를 그렇게 떳떳하게 말하는 분은 처음 봤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모두 빚진 사람들이다>에서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후원을 요청한다는 것은 가치 있는 일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요청한 자가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나는 늘 당당하게 요구하려 한다. 만일 내가 타인에게 운동에 초대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면, 그것은 상대에게도 미안한 일이다. 아니 그 이전에, 자신에게 더더욱 미안한 일이다. 그런 일은 당장 중지해야 한다. 자신에게나 남에게 미안한 일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 일에 자신을 밀어 넣을 만큼 가치를 확신할 때 우리는 타인에게 스스럼없이 돈과 시간을 요구할 수 있다.(102-103쪽)”
교회에서 동정심, 성전 건축,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라는 가치, 예수 그리스도가 원한 일이라는 가치를 외치며 헌금하자는 소리를 듣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모한 운동가
송인수 선생님은 구로고등학교에서 13년 동안 교사로 생활하다 2003년 사직했다. 기독교사모임인 좋은교사운동을 섬기기 위해 안정된 직장을 포기했다. ‘안정’을 포기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아이들 곁을 떠나는 게 힘들었다고 한다. 강의 중에 선생님은 자살한 고등학생의 시를 읽으며 ‘아이를 위해 자신을 내던져 헌신하라’고 울부짖었다. 함께 울었다. 더 높은 가치, 고귀한 목표를 위해 교사인 우리가 더 낮아지고 고생하자고 외쳤다. 돈 많이 벌지 말고 고생하자는 말에 박수를 쳤다.
5년 동안 좋은교사운동 대표로 섬긴 뒤에 우리나라 사교육 문제와 맞서 싸우겠다며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시작했다. 무모하다. 사교육 걱정을 없애겠다니 가당키나 한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골치 아픈 곳이 교육부장관 자리다. 무얼 해도 욕먹는다. 아이를 생각하면 이익집단에 욕먹고 학부모 생각하면 관료가 욕한다. 교사를 생각하면 학부모가 욕한다. 사교육 문제는 논란의 핵심에 있다. 모두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 오기를 원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느냐?’ 물으면 저마다 말이 다르다. 국민 전체의 생각을 바꾸어야 하는 문제다.
선생님은 학생들이 사교육에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꿈을 꾸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교육이라는 철옹성에 온몸을 부딪칩니다. 사교육업체에 고발당하고 위협도 받지만 ‘가치’에 투자한 이상 맞서 싸웁니다. 무모한 출발에 놀랐는데 치밀한 정책, 꼼꼼한 추진력, 성실한 태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학생을 향한 사랑에 감격한다.
선생님은 지독하게 가난한 시절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았다. 원하는 고등학교에 다닐 형편이 되지 않아 당시 대통령에게 호소하는 편지 보냈다가 고생도 했다. 문제집 팔아주고 받은 돈으로 회식하는 문화에 반대해서 왕따를 당하며 괴로운 시절을 보냈다. 그런 삶이 있어서 ‘물러설 수 없는 희망에 대하여(책의 부제)’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었겠지요. <우리는 아이들에게 모두 빚진 사람들이다>는 선생님이 틈날 때마다 쓴 생각 모음(일기, 에세이)입니다.
빚진 자로 사는 삶
선생님은 ‘기록’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생각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페이스북에 글을 자주 올립니다. ‘아깝다 영어 헛고생’을 출판한 출판사에서 여러 번 요청해서 나온 책입니다. 틈날 때마다 올린 글이라 한 가지 주제로 정리하지 못한다. 책을 내려고 글을 쓴 글이 아니라 주제로 내용을 구분하기 어렵다. 가족(아들, 아내, 어머니), 소소한 일상(날씨, 전철에서 만난 제자), 묵직한 운동(시민운동을 하는 이유, 운동의 품격, 운동을 하는 자세와 방향), 미래에 대한 소망과 헌신에 관한 이야기가 얽혀있다.
가족 이야기를 읽으며 ‘안타깝다’, ‘멋지다’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빚진 자로 분투하며 가족에게 빚을 지는 마음을 안타깝게 읽었다. 그러면서도 아내를 위해 가정일을 나누고, 아들과 단둘이 텐트 꾸려 여행을 다니며, 환경을 위해 여전히 선풍기로만 버티는 모습이 멋졌다. 한 발 물러서기가 얼마나 쉬운 줄 알기 때문에 이 악물고 서서 버티는 모습에 마음이 짠했다. 다음 세대를 위해 힘든 길을 선택한 남편과 아버지를 존중하며 함께 가는 가족이 멋집니다.
책에서 가족만큼이나 중요한 내용은 ‘운동’입니다. 운동가로서의 기질과 성품을 갖지 못한 저로선 시민단체를 이끌어가는 리더십에 그저 놀랄 뿐입니다. 운동을 왜 하는지, 누구와 어떻게 하는지 이렇게나 고민해야 하는지 몰랐다. 언젠가 조선소 회장이 수십 억의 후원금을 제안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절박하게 필요하고 고민하고 아파하고 기도할 때 들어온 돈이 아니어서 거절했다고 한다. “절박하게 운동하다가 적절할 때 들어오는 거액은 거액이 아니다. ‘사명의 규모’가 ‘후원금’보다 큰 조직이 되어야지, 후원금의 규모가 사명보다 큰 조직은 위태하다.(124쪽)” 저는 이런 생각 못한다. 운동의 효과만 생각하고 감사하게 썼을 겁니다.
“길은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다. 모순에 자신을 던지는 사람이 바로 길입니다. 그렇게 던지면 없던 길이 생깁니다.(39쪽)” 모순은 해결할 방법이 없는 문제라 피해가라는 뜻 아닌가요? 모순이기 때문에 자신을 던져 길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사교육’이라는 거대한 모순에 구멍을 뚫고 돌을 깨며 조금씩 길을 만드는 걸 보면 정말 길이 생기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하나님 앞에서 산다.
선생님께는 삶이 곧 글입니다. 지금 겪어내는 일상과 앞으로 만들어갈 일상의 바탕에는 ‘빚진 자’라는 마음이 엿보입니다. 현실에 바탕을 두되, 미래를 바라보며, 깊은 절망과 아픔을 딛고 서는 모습을 써낸 글이라서 귀한다. 천천히 두고두고 읽어야겠다.
“‘뜻’이 있어야만 직면할 수 있는 강물과 계곡이 우리 각자에겐 얼마나 많은가. 한 번 건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닌, 생이 끝날 때까지 반복되는 삶의 숙제 앞에 우리는 겸손하게 ‘뜻’을 구하며, 얻어진 답에 우리 생을 실어야 한다. 그것만이 가장 안정된 선택이다. 진정으로 용감한 선택이다.(231쪽)”
평균의 종말 (5) | 2021.0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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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로 산다는 것』으로 교사들과 토론했다.
1. 2011년 11월 좋은교사에 『교사로 산다는 것』을 소개한 글 중 일부
타성과 무기력을 가르치지 말자.
조너선 코졸은 권위에 대한 반항아입니다. 일반인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통찰과 분석으로 교육계의 촘스키로 불립니다. 미국의 차별적인 교육과 사회 불평등에 맞서 싸워온 교육자이며 미국을 대표하는 미국 비판 지성인입니다. 그는 학교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가르침이 일어나는 곳이 아니라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원하는 생각을 주입하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권위를 계속 유지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교과서를 만들었다는 증거를 밝힙니다. 학교가 진실, 아름다움, 위대한 영혼의 추구, 인간적인 가치……을 중요하게 여기는 듯 말하지만 실상은 포장만 요란하지 내용은 주는 대로 받아들이라고 주입한다는 겁니다.
미국 교과서 역시 적당한 사실만 알려주고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말라는 식으로 기술되었나 봅니다. 코졸은 올바른 가치를 위해 정부에 대항했던 인물들이 사라진 교과서를 비판합니다. 인종차별적인 생각을 가졌던 링컨의 발언은 삭제하고 정직한 에이브만 보여줍니다. 파업참가와 단식, 투옥을 마다하지 않은 도로시 데이처럼 비범한 의지를 가진 여성들은 전복적인 인물로 취급해서 교과서에 싣지 않습니다. 헬렌 켈러가 열심히 노력해서 유명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는 이야기는 실으면서 노동착취가 일어나는 빈민가를 방문하고 탐욕스러운 지도자와 기득권층에 대해 도전한 내용은 싣지 않습니다. 역사, 경제, 정치, 철학, 사회질서, 도덕적 가치 모두 취사 선택하고 적당히 편집해서 그들이 알려주고 싶은 내용만 교과서에 남습니다.
「교사로 산다는 것」이라는 책은 저자가 30년 전에 썼습니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도로시 데이나 헬렌 켈러가 교과서에 실릴 수 있지만 미국 우월주의와 사회질서 유지 위주의 내용은 바뀌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교과서로 배운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요? 히틀러의 명령을 철저히 따른 아돌프 아이히만의 순종적인 태도는 독일 공립학교에서 길러졌다고 합니다. 잘 통제된 공립학교에서 복종하는 것을 배우면, 아이히만처럼 지배자들이 요구하는 ‘낮은 사고력과 높은 애국심’을 갖춘 시민이 된다고 합니다. 코졸은 교사가 물들지 말고 올바로 가르치라고 합니다. 상처 받기 싫어 세운 보호막에서 내려와, 생각을 바꿔주는 수업을 하라고 합니다. 언제나 중도에 가까울수록 진실하다는 믿음을 버리고 올바른 것이라면 극단을 선택할 줄 아는 학생을 길러내라고 합니다. 예수님도 당시 사회에서는 극단주의자였다면서……
2. 2010년 2월에 토론하고 덧붙인 생각
『교사로 산다는 것』을 처음 읽었을 때, 들리는 메시지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9년만에 다시 읽으며 <자기만의 수업을 하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년 전부터 나라는 인격에서 나와, 아이라는 인격을 만나는 나만의 수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멋진 아이디어, 감탄을 자아내는 도구를 사용해서 아이들을 사로잡는 수업은 아닙니다. 아무 도구 없이, 온전한 나 자신에게서 나오는 수업입니다. 조금씩 배우고, 변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간단하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자기만의 수업을 방해하는 세 가지 걸림돌이 생각납니다.
시선.
전 동네 곳곳, 골목과 언덕과 개울을 다니며 수업합니다. 우리 반만 뒷산에 가고, 운동장에서 비 맞으며 수업하면 주위 분들이 한마디씩 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사람들 눈치를 받지 않습니다. 우리 반만 다달이 문집을 내고, 우리 반만 현장학습 가고, 우리 반만 책상 위에 걸터앉아 노래를 불렀습니다. 전 그게 좋아서 선배들이 주는 눈치를 이겨냈습니다. 그때 시키는 대로 했다면 제 수업의 큰 부분이 사라졌을 겁니다.
교과서.
“이상한 짓 하지 말고 교과서대로 해!” 사실 시키는 대로 하면 편합니다. 문제가 생길 때 시킨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면 됩니다. 교과서만으로 가르치면 안전합니다. 그러나 저는 코졸의 의견을 받아들였습니다. 코졸의 책을 읽기 전부터 교과서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국어 글쓰기 내용은 많이 바꿔서 가르쳤습니다. 교과서에서 제시하는 주제를 버리고, 아이들 삶에 바탕을 둔 글감을 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우리 이야기’를 쓰게 했습니다.
막연한 생각.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교과서를 무시하면 무얼 할까요? 무너뜨리기는 쉬워도 세우기는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 수업을 분석하고 비판할 점을 찾기는 쉽지만 나만의 수업을 만드는 건 어렵습니다. 막연한 생각은 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할지 찾는 건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게 힘들었습니다. 지금도 계속 찾습니다.
교사로 산다는 건, 아이들이 자기만의 길을 걷도록 안내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정해진 길, 사람들이 성공이라 부르는 길만을 따르게 하는 교육이라면
학원에만 다녀도 되지 않을까요?
3. 2011-11월 좋은교사 소개 글 중의 한 문단
저자는 “학생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 수업은 공책에 필기한 내용도 아니고, 교과서에 인쇄된 궁색한 문장도 아니다. 그것은 수업하는 내내 교사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메시지다.” 라고 말합니다. 정말 공감합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교사가 수업 시간에 눈빛으로 메시지를 뿜어내지 않는다면 학생들은 기존 질서를 유지하며 금권을 독점한 지배세력에게 순응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교사가 이런 모습으로 가르치고 있으면 안 되겠지요.
평균의 종말 (5) | 2021.0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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