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월요일마다 방과후 글쓰기 반을 한다. 5학년 4명, 6학년 3명이 온다. 전학생 1명을 빼고 모두 담임으로 가르친 아이들이다. 글도 쓰고, 토론도 하고, 가끔 강가에도 나간다. 12월 14일, 설명하는 글을 써보자고 했다. 6학년 아이가 <사는 법>을 설명했다.

----------- 사는 법

6학년

인생을 사는 방법은 4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 방법은 물 흐르듯 살기이다. 살다 보면 여러 가지 걸림돌이 있을 것이다. 그때 고민하지 않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사는 법이다. 어떻게 보면 생각 없이 사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 방법을 쓰면 나타나는 단점은 그 순간만 생각하지 않아 편하지만, 나중에 굉장히 곤란해질 때가 많을 것이다. 이 방법은 딱히 좋아 보이지도 않고 추천하지도 않는다.

두 번째 방법은 뭐든지 신중하게 사는 법이다. 신중하게 사는 방법은 위에 방법과 정반대로 사는 법이다. 그래서 위의 단점이 이 방법의 단점이다. 이 방법의 너무 큰 단점은 자기 주변에 사람이 없어질 것이다. 매순간 진지하고 신중해서 볼 때마다 답답해서 사람들이 떠날 확률이 높다. 하지만 혼자가 되어도 상관없으면 추천한다. 운이 좋으면 사는 방법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살 가능성이 있다. 인간관계를 신경 쓰지 않고 현명한 선택만 잘한다면 최고의 방법 같다.

세 번째 방법은 긍정적으로 밝게 사는 방법이다. 이 방법으로 살아서 가장 큰 단점은 다른 사람이 얕잡아 본다는 게 크다. 하도 밝고 긍정적이다 보니 약간 멍청해 보이기도 해서 더욱 그러는 것 같다. 나는 저렇게 사는 게 부럽기도 하다. 아무 걱정도 없어 보이고 내가 아는 방법 중 가장 행복해 보인다. 물론 속마음에 담아놓고 있을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볼 때만큼은 밝아서 남에게 힘을 주기도 하다. 단점을 보완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방법이다. 내가 다시 태어나 살고 싶은 방법이다.

마지막 방법은 부정적이게 사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모든 걸 비판적으로 본다. 그래서 물건 살 때 효율적이게 살 수도 있지만, 그 물건의 단점만 보기 때문에 물건 사기에 힘들다. 어쩌면 두 번째 방법과 비슷한 방법이기도 하다. 모든 걸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한 번 실패를 하면 다시 일어나기 힘들기에 좋지 않다.

(아이에게 한 조언 : 글 마지막에 결론이 있으면 좋겠다.)

아이 겉모습은 아주 시크하다. 대부분의 일을 별 것 아닌 듯 대한다. 그러나 속으로는 혼자 고민한다. 이런 모습을 나는 알지만, 친구들은 모른다. 그래서 이 아이를 무서워한다. 약간 싫어하기도 하지만 내색은 안 한다. 이 아이는 친구들이 자기들을 대하는 태도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쿨하게 반응하면서도 마음에 남는 게 있다.

친구 관계에 고민하지 않고 정말 시크하게, 쿨하게 생각하는 아이는 이런 글을 쓰지 못한다. 아이가 쓰는 글을 잘 읽으면 <진짜 모습, 자기 자신의 본래 모습>이 보인다.

참고로, 나는 신중하게 물 흐르듯 산다. ‘신중하게’를 기본으로 살아왔고, 나이가 들면서 ‘물 흐르듯’이 더해진다. 긍정은 잘 안 되고, 부정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아이_글의_저작권을_인정해_주세요.

#자녀나_학생에게_읽어줘도_되지만_딱_거기까지만!!!

강원도 시골길을 따라 자전거 타고 학교에 간다. 굽이굽이 오십천 강물 따라가는 길이 아름답다. 봄에는 황어 떼를 만나고, 여름에는 새 소리가 화려하다. 가을이 깊어지면 백로가 날아와 먹이를 찾는다. 낙엽 지고 어둡게 변한 배경에 새하얀 백로가 눈에 띈다. 꼼짝 않고 물을 바라보며 먹이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자전거를 저으며 다리 위로 지나가자 백로가 겁을 내며 날아갔다. 날개 펼친 모습이 멋졌다.

다음부터는 백로가 있는 쪽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조용히 지나간다. 백로가 나를 보지 않게 하려고 몸을 웅크리고 페달을 젓는다. 오랫동안 물을 바라보며 먹이를 기다린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백로가 날아가는 우아한 모습을 보지 못하지만, 나 때문에 놀라 도망가지 않아서 좋다. 백로를 헤칠 마음이 없다는 걸 백로는 모른다. 사람을 보면 두려워 움찔대는 백로의 마음을 이해한다. 백로에게 상처받을 일 없는 내가 맞춰주어야 한다.

학교에서도, 일상에서도 특정한 말이나 행동에 움찔대는 사람이 있다. 상처가 있는 사람은 '건들지 마라. 아프다!' 하는 신호를 보낸다. '가까이 오지 말라.'는 표시다. 아픈 아이가 많다. 아프게 한 사람이 부모여서, 가족이어서 참아야 했다. 자기가 참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견디는 아이도 있다. 아픈 아이를 만날 때마다 ', 참 이상하구나!' 하지 않고 아프구나! 아파서 그러는구나! 네가 아프면 내가 조심할게.’ 해줬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아프다고 호소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글로 보여주었다.

제목 : 개울가 내 얼굴 
** (5학년)

어렸을 때 사람들이 나보고 엄마를 많이, 무지하게 닮았다고 한다.
엄마와 아빠가 떨어져 살고 나서 엄마를 다시 볼 수 없었다.

지금 나는 12살이다.
", 엄마 많이 닮았다!“
그 생각이 나면 엄마가 보고 싶어 개울가로 달려가 본다.
개울물 위로 얼굴을 들이대 본다.
내 얼굴이 보인다. 두 개로 보인다.
한 쪽은 엄마 얼굴 같고 한 쪽은 약간 비슷한 내 얼굴이다.
사람들이 나보고 엄마 닮았다는 게 약간 이해가 된다.

하지만 내 얼굴이 가슴을 바늘로 콕콕 찌른다.
아프다. 울고 싶다.
개울 속 내 얼굴을 보며 상처 나지 않게 조심 또 조심해야겠다.

아이 마음을 읽는 게 좋았다. 시를 읽으며 기뻤고, 슬펐고, 놀랐고, 안심했다. 일기에 댓글을 써주며 마음을 나누었다. 다달이 문집을 만들며 아이들을 더 이해하게 되었다. 외계인 같던 아이들이 점점 사랑스러워졌다. 아이들이 준 글 선물을 학교에서 외계인을 만나다1부에 담았다.

2016, 오랜만에 1학년 담임을 했다. 얘들은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했다. 아이들 마음을 살피며 지내왔는데 이번에는 정말 외계인을 만난 것 같았다. 견디기 어려울 때마다 글을 썼다. 글을 쓰면서 아이 한 명 한 명을 이해하게 되었다. 1학년과 1년을 보내면서 외계인을 알아내는 방법 10가지와 외계인을 다루는 방법 10가지를 깨달았다. 이 내용을 학교에서 외계인을 만나다2부에 담았다.
외계인을 알아내는 첫 번째 방법을 소개한다.

외계인을 알아내는 방법 1. 외계인은 순간을 산다.

수학 시간입니다. 수학책을 가져오세요.”
선생님, 수학책이 없어요.”
어제도 없었잖아. 집에 가서 찾아보라 했는데 찾아봤니?”
아니오. 잊어먹었어요.”
~

다음 시간이다.
국어 시간입니다. 국어책을 가져오세요.”
선생님, 국어책이 없어요.” 수학책 집에 두고 온 그 아이다.
어제 도서관에 가서 공부할 때 가방에 꼭 넣으라고 했지요.”
.”
그런데 책이 어디 갔어요?”
귀찮아서 그냥 놔두고 왔어요.”
~

국어 시간이 끝나고 우유를 먹었다.
여기 우유는 누가 먹다 남긴 건가요?”
이거 네 우유잖아.”
나 아니냐. 다 먹었는데……또 그 아이다.
딱지치기 구경하면서 네가 여기서 먹었잖아.”
, 맞다.”

외계인은 자주 잊는다. 솔깃한 일이 생기면 자기가 무얼 하고 있었는지 완전히 잊는다. 순간을 살기 때문이다. 외계인에겐 현재 이 순간만 있다. 과거를 모르고 미래도 모른다.
어제도 그러고, 그전에도 그러더니 계속 왜 이래?”(과거)
계속 이렇게 하다가 나중에 뭐가 될래?”(미래)
과거와 미래를 들먹여도 소용없다. 외계인의 귀에는 바로 이 순간외에는 들리지 않는다.
지구인은 외계인의 이런 습성을 이해하지 못해 화를 낸다.
내가 우유 다 먹으라고 했지?”
책을 가방에 넣으라고 했잖아. 왜 말을 안 들어?”
그럼 외계인은 왜 별것 아닌 일에 화를 내는지 모르겠지만, 화를 내는 모습이 무서워서 일단 미안한 표정을 보인다. 그러나 내일 우유 먹을 때 또 똑같이 행동한다.

탄광마을 학교에서 외계인 34명을 가르쳤다. 외계인들이 날마다 내게 묻는다.
선생님, 우유 먹어도 돼요?”
나한테 묻지 말고 그냥 먹어. 알았지?”
다음날 또 묻는다. “선생님, 우유 먹어도 돼요?”
얘들아, 잘 들어. 우유 먹어도 되는지 묻지 말고 그냥 먹어. 이제부터는 묻지 말고 먹어라!”
또 묻는다. “선생님, 우유 먹어도 돼요?”
그래서 우유를 가져오자마자 칠판에 크게 썼다.

우유 먹어!”

한 외계인이 다가온다. “선생님 우유 먹어도 돼요?”
손가락으로 칠판을 가리켰다.
~ 그렇구나!”
다른 외계인이 다가온다. “선생님 우유 먹어도 돼요?”
또 손가락으로 칠판을 가리켰다.
~ 그렇구나!”
다른 외계인이 다가온다. “선생님 우유 먹어도 돼요?”
, 여기 서서 우유 먹어. 그리고 친구들이 우유 먹어도 되는지 물으면 칠판에 써놨으니 우유 먹으라고 알려줘!” 했다.

외계인들이 공격을 개시했다. “선생님, 우유 먹어도 돼요?”
내 옆에 서 있던 외계인이 대신 말한다. “칠판을 봐. 우유 먹으라고 써놨잖아.”
다른 외계인이 묻는다. “선생님, 우유 먹어도 돼요?”
또 다른 외계인도, 다른 외계인도 계속 묻는다.
옆에 선 외계인이 폭발했다.
, 선생님이 아까 전부터 우유 먹으라고 했잖아. 칠판에 있잖아. 우유 먹으라고 했는데 왜 자꾸 물어?”
오잉!”
아까 자기도 나한테 우유 먹어도 되는지 물었으면서 친구를 외계인 취급하고 있다. 이 외계인은 조금 전에 자기가 무얼 했는지 잊었다. 순간을 살기 때문이다. 난 외계인을 오랫동안 연구했기 때문에 이걸 알고 있다. 그래서 화를 내지 않고 조용히, “누가 우유 쏟았어요?” 하고 묻는다. 혼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면 많은 외계인이 고백한다.

한두 개 남은 우유가 누구 것인지 밝히는 건 더 어렵다. “누가 우유 안 먹었어요?” 에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외계인은 자기가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모를 정도로 순간을 산다. 그래서 각오해야 한다. 우유 먹어도 되느냐고 물을 때, 외계인이 또 우유를 쏟을 때, 우유를 안 먹고 남길 때, 화를 내지 말고 대답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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