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선수가 도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자 페미냐는 주장이 일었다. 국가를 대표해서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에게 했던 기자의 질문은 눈과 귀를 의심케 할 지경이었다. 단발머리를 했다고 페미냐는 질문을 받는 것도 우습고, 페미를 무슨 테러리스트 취급하는 것도 이상했다. 2021년에 메카시즘을 다시 만나서 황당했다. 안산 선수가 금메달을 따지 못했으면 논란이 오래도록 불타올랐을 것이다. 안산 선수가 세계선수권에서도 금메달을 따면서 비난이 가라앉았지만, 이듬해(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새로운 연료를 만나 불타올랐다. 페미니즘 광풍은 통계도 일반적인 정서도 깨뜨릴 정도로 강력했다. 대통령을 바꿀 정도였으니까! 나는 그들이 왜 페미냐고 공격하는지, 페미가 어떻게 문젯거리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맨박스 페미니즘』을 읽고 속이 시원해졌다. 이제 이해가 된다.

저자는 50대 남자 교사로 남학생에게 페미니즘을 알려주기 위해 『맨박스 페미니즘』을 썼다. 남자 교사가 짊어져야 할 페미니즘 교육은 여자들에게 “깨어나라” 하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남자들에게 “좀 들어라” 하고 외치는 것(10쪽, 서문)이라며. 나보다 선배인 50대 남자 교사가 페미니즘 교육을 어떻게 말할지 궁금했다. 권재원 선생님이 쓴 책을 세 권 읽었는데 모두 참 좋았다. 선생님 글은 균형 잡힌 생각을 하게 도와준다. 그래도 ‘페미니즘이라니?’ 하며 읽었다.

“감탄했다!” 권재원 선생님은 평소 균형 잡힌 정보를 제공하고, 정당한 논리를 내세워 사람들의 편견과 인식을 깨는 글을 자주 썼다. 이 책은 더욱 그랬다. 나도 글을 쓰는 사람이라 어느 정도 책 내용을 예상한다. 『맨박스 페미니즘』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상을 벗어났다. 트럼프 당선을 성 대결로 해석한 내용,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떠오른 이대남, 이대녀, 페미 사냥 등을 해석한 내용이 참으로 놀라웠다. ‘난 왜 이렇게 생각하지 못했을까?’

저자는 여성이 지금까지 줄곧 희생하며 살았다고 한다. 스스로 삶을 선택할 자유를 누리지 못한 여성들이 균형을 잡으려고 하는 걸 남성이 양보하고 심지어 빼앗기는 걸로 받아들인다고 설명한다. 한두 문장으로 쓴 내 요약은 설득력이 없다.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을 읽으면 남자다움으로 포장된 상자를 깨뜨리는 것보다 훨씬 더 나아가야 한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공감하는 내용이 너무 많아 일일이 소개하기 어려울 정도다. 특히 남성이 분노하기 전에 감정을 배워야 한다는 부분이 크게 다가왔다. 내가 분노를 참으려 해도 안 되었는데 감정을 살피면서 분노를 다스리게 된 경험이 있다. 하나 더, 공산당 선언으로 본론을 시작한 부분을 읽으며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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